So precious.
<Bones and All>에 대해 찾아보고 싶을 때 종종 <Call Me By Your Name>의 작품 정보를 들여다보며 루카 구아다니노의 이름을 누를까 티모시 샬라메의 이름을 누를까 하고 이상한 고민을 한다. 9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아직 시청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이기도 하고, 아껴보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또… 현재 덕질 뇌가 음악 쪽으로 활성화되어 있어서이기도 하다. 9와 30이라는 숫자의 조합에 무어라도 있었던 건지, 그날 0시부터 시작해 밤을 보내고 나서도 자꾸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새 작업물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그날 공개된 음원들에 대한 짧고 제멋대로인 리뷰다. (Body Paint와 I’m Coming Up (Again)의 경우 다음 글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해 부러 자세히 살피지 않은 면도 있다.)
1. Arctic Monkeys, ‘Body Paint’
악틱 몽키즈의 새 정규 앨범 <The Car>가 곧 발매된다. ‘Body Paint’는 두 번째로 선공개된 곡이다. 2018년, 이들이 5년만에 던져 준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를 들었을 때 귀의 반응은 …Alex...?(곡을 쓰는 자가 알렉스 터너이니) 정도였다. 별로라기보단 ‘내가 알던 악틱이 아니’라는 느낌. <AM> 이전의, 아니 <AM> 정도의 하드함이라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고백하자면, 딱히 집중하지 않은 상태로 한두 번 돌려 보고는 이전의 앨범들을 더욱 반복해 들었었다.
앞서 공개된 ‘There’d Better Be A Mirrorball’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했던 생각은- 악틱은 소프트해지기로 했구나,였다. 헌데 절대 덜 소프트하지 않은 ‘Body Paint’를 재생하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게 Damn.. Alex.. 라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취향을 건드린 게 무엇이었을까, 미성인데 곱지만은 않은.. 짜내는 듯한 보컬? 왠지 천연덕스러운 배경음? 가사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 갑자기 끼어드는 ‘And if you’? 글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아티스트의 팬이라면서 그들이 ‘내가 기대하는 것’을 가져다 주기만을 바라는 것도 좀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 아닌가. 달라진 모양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변했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밀어 두면 된다. 당시 그렇게 했었는데, 그래도… 그리 밀어 두었어야만 했을까. 스스로 좀 반성하며 새삼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를 유심히 들었고, 발매됐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소프트한데, 그게 다가 아니다. 날카롭고, 서늘하고, 웅장하고, 여전히 핫하고… 일단 여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종류의 사운드에 귀가 열렸거나, 음악적 이해력이 향상되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그때 내 귀를 악틱으로부터 앗아간 다른 뮤지션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 최근 두 앨범에서 <Favourite Worst Nightmare>의 ‘505’(좋아하는 코스는 ‘Old Yellow Bricks’에 바로 이어 듣는 것)를 제치고 최애가 될 곡을 찾게 될지는, 더 들어봐야 알겠다.
2. Terra Twin, ‘I’m Coming Up (Again)’
지금까지 테라트윈의 이름으로 나온 작업물은 네 곡으로 이루어진 EP와 싱글 하나다. 다섯 곡 중 현재 스트리밍이 가능한 곡은 셋. 이미 확실한 개성은 각각의 곡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멜로디도 가사도 쿨하고 부드러운데 거리를 두듯 건조한 느낌이 있었던 ‘Eastern Boy’, 음절을 최소화한 가사가 울려 퍼지며 청자를 아스트랄계로 끌어들이듯 경쾌하게(?) 늘어졌던 ‘I Don’t Know’. 둘 다 보컬은 대놓고 로우파이다. 이번에 낸 싱글 ‘I’m Coming Up (Again)‘에선 보컬에 울리는 효과를 넣지는 않았다. 악기 중 하나로 두기보단 별개의 요소로 기능하도록 배치한 느낌이나 여전히 싱잉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류이고, 그마저도 종종 타악기처럼 사용한다. 두드러지는 음색, 발음과 소리를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맥심 밸드리는 제 보이스의 매력을 알고 그 가능성을 자꾸만 넓힌다. (Another Her 시절까지 생각하면-)
위에 맥심의 이름만이 등장한 까닭은 내 귀로 가장 자신 있게 분석할 수 있는 사운드가 사람의 목소리라서다. 테라트윈은 맥심 혼자만의 그룹은 아니다. <Terra 1>에 대한 글을 썼을 당시 스포티파이에 적혀 있던 소개글은 “맥심 밸드리와 제임스 하비의 장거리 음악 콜라보레이션”이었다(왠지 외우고 있다). 그동안 맴버에 변화가 있었고, 이제 이들은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가 됐다.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뻔한 말을 굳이 적어야 할까?
https://music.apple.com/kr/album/im-coming-up-again/1644745721?i=1644745722
(애플 뮤직 광고는 아니다. 테라트윈이 유튜브 계정에 오디오를 안 올려줘서 어쩔 수 없었다.)
3. The Cactus Blossoms, <If Not for You (Bob Dylan Songs, Vol. 1)>
어떤 커버는 뮤지션만이 할 수 있는 종류의 덕질이 아닐까.
칵투스 블라썸즈는 여태껏 정규 앨범 제목을 수록곡 중 하나의 제목과 동일하게 뽑아 왔다. 올드스쿨한 방식이다. 그랬기에 이번에 낸 밥 딜런 커버 EP에서 ‘If Not for You’를 첫 트랙으로 배치하고 또 앨범 제목으로 올린 것 역시 특별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이내 다른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https://www.instagram.com/p/CjIyYuMrIma/?igshid=YmMyMTA2M2Y=
“If it wasn’t for Bob Dylan we probably wouldn’t be making music.”
“밥 딜런이 아니었다면 우린 아마 음악을 만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삶에 빛을 가져다 준 상대를 향한 고백, 러브송에 가까웠던 ‘If Not for You’를 잭 토리와 페이지 버컴이 커버하며 ‘you’는 밥 딜런 자신을 의미하게 되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으로 시작하는 존경의 세레나데 같은 레코드랄까. ‘If Not for You’는 유독 거의 내내 두 사람이 함께 화음을 맞추며 부른다. 모창이 가능한 음색과 스킬을 지녔음에도 이들은 안다, 커버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칵투스 블라썸즈는 10+n년 전부터-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 줄 알며 남이 만든 음악을 제 목소리로 소화할 줄 아는 뮤지션들이었다. ‘밥 딜런이라니 너무 당연하면서도 황홀한 선택’이라고 이전에 적었는데, 과연 들을수록 그렇다.
‘vol. 1’이라는 꼬리를 vol. 2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제스처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하프얼라이브처럼 <Give Me Your Shoulders, Pt. 1>을 내놓고는 다음 작업물 소식에 “우리에겐 파트 투가 필요하지 않았어”라고 적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할 법한 이들도 아니고, 그럴 만한 성격의 앨범도 아니니.
(+ 오해가 있을까 덧붙이면: 파트 투를 계획했다 엎었든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든 하프얼라이브에겐 타당한 예술적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설명하며 소통하는 게 그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포인트는, 뮤지션/아티스트로서 칵투스 블라썸즈와 하프얼라이브의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는 거다.)
(++ 라이브 영상을 보지 않은 채 각 트랙의 메인 보컬을 추측하는 중이다. ‘If Not for You’는 말했듯 거의 같이 부르다시피 하고, ‘To Ramona’는 잭 토리, ‘Went to See the Gypsy’는 페이지 버컴, ‘Tell Me That it isn’t True’는 다시 잭 토리… 인 것 같다. 다른데 비슷하고 역시 다른데 종종 비슷해서 가끔 구분하지 못한다.)
& Beck, ‘Old Man’ (Neil Young Cover)
다시, 어떤 커버는 뮤지션만이 할 수 있는 종류의 덕질이 아닐까.
iDKHOW가 벡의 ‘Debra’ 커버 싱글을 내고 또 벡은 닐 영의 ‘Old Man’ 커버 싱글을 내고… 9월 30일보다 며칠 앞서 공개됐으니 사실 주제에 들어맞는 트랙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마디 얹지 않을 수 없었다.
벡은 만능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