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제모름 Jun 19. 2023

Cover By Them

Cover recordings by my queer gods



[St. Vincent : 곡의 핵심과 intimacy를 짚어내는 재해석의 대가]

 

1. ‘Emotional Rescue’(The Rolling Stones) by St. Vincent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세인트 빈센트가 롤링 스톤즈 커버를 녹음했다. 앞 문장에서 이미 훌륭한 게이 에너지가 느껴지나, <비거 스플래쉬>는 일단 스트레이트적 관계들이 지저분하게 얽히는 이야기다. 목소리를 삭제당했거나 침묵 뒤로 숨은 록스타, 그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남편, ‘자유로운’ 전 애인과 그를 닮은-연인 같은 딸.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유혹한다. 작품은 그 과정에서 다 가진 듯 보이는 이들의 위선과 내밀한 욕망, 공포를 섬세하고 교묘하게 저울질한다. 소용돌이는 점차 거세지고, 끝내 폭풍우가 쏟아진다.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듯했던 마리안과 폴에게 재앙처럼 휘몰아친 부녀, 해리와 페넬로피. ‘Emotional Rescue’는 두 사람 각자의 (착각이 담긴) 테마송처럼 들리기도 한다. “당신은 그냥 돈 많은 남자 집에 있는 불쌍한 여자야”라는 화자, 허나 정작 “아이처럼 우는” 건 “당신의 감정적 구원이 되겠다”던 ‘나’다. 영화엔 롤링 스톤즈의 오리지널과 세인트 빈센트의 커버 모두가 삽입돼 있다. 그들의 젠더와 성적 지향, 그리고 밴드/뮤지션으로서 밟아 온 궤적의 차이는, 청자가 서사와 화자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모양에 역시 차이를 불러온다.


세인트 빈센트는 경쾌한 팝록의 핵심을 심플하게 짚어 센티멘탈하고 섹시하게 소화했다. 커버가 공개된 시기는 그의 셀프 타이틀드 정규 앨범이 발매된 이후. <St. Vincent> 감성적이고 실험적인 록과 신스 그룹사운드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작업이었다. 세인트빈센트스러우면서도 생소한 보컬은 원곡을 세련되게 살려  생명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나올 다음 앨범 <Masseduction> 실마리가 언뜻 잡혔다면 아마 비약이겠으나, 그가 ‘무엇이든   있는뮤지션/보컬임을 새삼 인지하게 했다는 점은 말할  있겠다.


https://youtu.be/HDiYf5FZybg

The Rolling Stones, 'Emotional Rescue' (original)


https://youtu.be/vOzC_q4357c

St. Vincent, 'Emotional Rescue' (cover)



2. ‘Sad But True’(Metallica) by St. Vincent


2021년, <Daddy’s Home> 발매 몇 달 후 세인트 빈센트는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다. 로열 블러드와 YB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이 ‘Sad But True’를 개성대로 퍼포밍했고, 세인트 빈센트는 그 중 하나였다. 이 트랙은 먼저, 보컬의 중요성-같은 곡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가 된다. 단순히 음색의 차이가 아니라 보컬적 해석의 문제, 그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너바나 맴버들과 함께 공연했던 ‘Lithium’과 최근의 ‘Glorybox’(Portishead) 라이브를 연달아 시청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무겁고 풍성한 그룹사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원곡, 세인트 빈센트는 보컬의 딜리버리와 코러스, 포인트 악기 등의 요소를 보다 리드미컬하고 밀접하게 사용했다.


기본 멜로디와 리듬이 유사함에도 ’장르가 바뀌었‘다. 세인트 빈센트의 ’Sad But True’는 어쩌면 샘 펜더의 피아노 발라드 버전보다 더 ‘intimate’한 트랙이다. <Daddy’s Home>의 어떤 곡들(‘Pay Your Way in Pain’, ‘Down’)에 있는 끈적하고 펑키한 우울이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으로 발현됐달까. ‘애니 클락’의 개인사와 대놓고 닿아 있는 <Daddy’s Home>의 가사들과 달리 ‘Sad But True’는 불특정적이고 초월적인 화자가 ’너‘를 향해 말을 거는 형식이다. 헌데 이 버전으로 들으니 저 위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고보단 귓가의 속삭임에 가깝게 다가온다. 후렴구에 묘하게 쌓은 화음은 의미심장하고 살짝 ‘안드로이드적’이어서, 뮤직비디오와 함께 놓고 보면- 사이버펑크한 분위기까지 얹혀 한층 풍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https://youtu.be/TpohVYomw2o

Metallica, 'Sad But True' (original)


https://youtu.be/K0K9xypNQVU

St. Vincent, 'Sad But True' (cover)


‘다른 곡’으로 리메이크할 능력을 차고 넘치게 지닌 아티스트임에도, 세인트 빈센트는 롤링 스톤즈와 메탈리카를 커버하며 본래의 뼈와 살을 유지하되 고유한 컬러를 섞는 방향을 택했다.(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의 ‘All Tomorrow’s Parties’는 또 다르다.) 원곡과 음악 전반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곡의 핵심과 intimacy를 짚어내 그만의 오리지널을 탄생시켰다.





[Perfume Genius : 모든 요소의 자기화, “queering up”의 정의]


3. ‘Can’t Help Falling In Love’(Elvis Presley) by Perfume Genius


퍼퓸 지니어스의 커버는 장르에 보다 일관성이 있었다. 그 장르의 이름은 (당연히) ‘퍼퓸 지니어스’. 보컬과 리듬을 자기화하면서, ‘개인적이고 정치적으로’ 뒤집기도 했다. 여기서 소개할 레코딩은 ‘When I’m With Him’(Empress Of) 같은 동시대 음악이 아닌, 엘비스 프레슬리와 바비 대린의 곡이다. 퍼퓸 지니어스의 음악과 그다지 매치되는 스타일은 아니므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그동안 수많은 뮤지션에 의해 다시 불린, 전설적 (straight-cis-white-masculine-male) 팝스타의 히트송, 로맨티시즘/러브식의 정석 같은 예쁜 곡이다. 퍼퓸 지니어스가 부르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 곡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젠더가 명시돼 있지 않은 가사 그대로를 입에 올린다 해도, 쌓아온 존재감 자체가 메시지. 그는 처음부터 ‘man to man’의 로맨스와 섹스에 관한 곡을 만들었던 아티스트다. 싱글이 공개되기 전 대중이 마지막으로 접한 그의 작품은 <Too Bright>, 호러적 미학과 천상의 소리를 지닌데다, “No family’s safe when I sashay-”라는 아이코닉한 라인을 포함하고 있는 앨범이 아닌가.


“Shall I stay, would it be a sin?”이라는 물음을 마이크 헤드레어스가 특유의 떨리는 미성으로 던졌을 때, 거기엔 없던 정서가 들어섰다, 몇 년 후 나올 ‘On The Floor’의 그것과 연결되는. 퍼퓸 지니어스는 ‘노말한’ 러브송을 ‘퀴어의 것으로 보편화’하며, 편협한 사회에 의해 내면화된 퀴어 쉐임의 조각을 얹었다- 무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에. ‘On The Floor’가 “그저 그가 내 팔에 안겨 있길 원해”로 끝을 맺(고 ‘Your Body Changes Everything’으로 이어지)듯,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난 당신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로 마무리된다.(순서가 바뀐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 ambient하게 늘어지는 사운드 하며... 퍼퓸 지니어스는 이 유명한 곡을 해체해 아름답게 “queer up” 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https://youtu.be/vGJTaP6anOU

Elvis Presley, 'Can't Help Falling In Love' (original)


https://youtu.be/ebA6uZeMCzs

Perfume Genius, 'Can't Help Falling In Love' (Cover)


 

4. ‘Not For Me’(Bobby Darin) by Perfume Genius


<No Shape> 이후 나온 ‘Not For Me’는 조금 다르다. 바비 대린 본인이 쓴 이 곡을 청자는 그의 개인사와 연결하지 않고 듣기 힘든데, 거기 담긴 우울엔 보편성 또한 있어 공감하게 된다. 퍼퓸 지니어스를 통하며 아웃사이더적 정서는 다른 모양을 띠게 되었는데, 원곡의 것과 겹치면서도 갈라진다. 마이너 키로 고독을 묵직하고 공허하게 던져 놓는 느낌이었던 바비 대린, 그러나 그는 매 구절의 끝을 늘여 뱉어 보다 엉망으로 여린 블루를 덧붙였다. 퍼퓸 지니어스는 그 떨림을 캐치해 곡 전체에 흩뿌렸다. 풍부한 피아노와 코러스, 모호하게 퍼지는 리듬. 그다운 방식으로 연약하-면서도 강렬하게 흔들린다.  


“I am without love / But I don’t doubt love can be / Warm and tender for some /

But nor for me”

‘교회의 종소리’, ‘가수들의 노래’, 그리고 사랑. 그것들은 존재하지만 “날 위한 것은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고립된 듯한 상태, <No Shape> 이전 퍼퓸 지니어스의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부분이다. 가까이는 짙은 ‘Grid’부터, 멀리는 담담한 ‘Learning’까지- 그러나 “우린 널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담은 ‘Gay Angel’ 역시 그의 시작에 있었다.


한 아티스트의 창작 세계의 원천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그 결과물에는 그의 가치관 말그대로가 적혀 있지 않다, 그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한 층위와 방법으로 작업에 반영할 것이다. 퍼퓸 지니어스가 ‘Not For Me’를 낸 시기는 사랑과 생의 에너지로 가득한 앨범 <No Shape> 발매 이후이나, 그의 음악이 어떤 면으로 ‘밝아졌’다 하여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이분법적 수식과 해석의 어리석음은 예술을, 특히 퍼퓸 지니어스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알고 있을 테니, 하나마나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KFKC91trFiQ

Bobby Darin, 'Not For Me' (original)


https://youtu.be/R31RYtrFKfg

Perfume Genius, 'Not For Me' (cover)





각자 음악을 만들고 퍼포밍하는 스타일과 예술가로서 잡은 포지션, 퀴어니스를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가 커버에도 묻어남이 흥미롭다. 세인트 빈센트-애니 클락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리바이어던(‘Pieta’)이다. 그는 섹슈얼리티를 정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퀴어하다. 그는 작품마다 가면을 바꿔 쓰며 불안과 결핍, 허무와 고독 등을 형상화한다. 아무리 깊은 곳으로 내려가더라도 거기엔, 사람과 음악, 사랑 자체에 대한 사랑이 비친다. 퍼퓸 지니어스-마이크 헤드레어스는 찢기고 넘어진 퀸(‘Queen’), 게이 엔젤(‘Gay Angel’)이다. 자신의 성적 지향이 자주 언급되는 그의 음악에는, 개인적 과거와 고민, 괴로움, 로맨스와 섹스가 정갈하게 뒤엉켜 있다. 그 특정한 이야기들은 이상하게도 청자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건드린다.


둘의 레코딩을 하나의 글에 묶자는 아이디어는 애초에 사심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까닭들은 각자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 분리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넘쳐 흐른 일부나마 설명해 보면: 이들의 예술은 솔직하고 용감하며, 고유한 영역을 지니면서도 폐쇄된 공간을 맴돌지 않는다. 이 세인트와 지니어스는, 인간적/예술적인 탐험을 지속하며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해 놀라움을 안긴다. 우리를 흔들어 놓고, 따스하게 감싸고,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9월의 마지막 날 나온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