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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Nov 03. 2022

사사미가 되찾은 언어

SASAMI, <Squeeze>



SASAMI, <Squeeze>(2022)



Sasami Ashworth사사미 애쉬워스의 <SASAMI>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가 하려는 음악은 mbv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Isn’t Anything>과 <loveless>를 번갈아 돌리다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고 시도하는 기분이다’라는 생각이 스친 적이 있었다. <SASAMI>를 듣고 있으면 사사미가 음악을 통해 건넨 손을 잡고, 앨범 커버 속 그가 위태롭게 딛고 서 있는 얼음판에 한 발을 얹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체리 글레이저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했다. 자신의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고, 밴드에서 탈퇴했다. 솔로 데뷔 앨범 <SASAMI>에선 대체로 일관된 사운드가 들렸다. 슈게이징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나는 인디 록. 차분하게 힘을 빼고 속삭이는 듯한 보컬이 칠chill한 분위기를 더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이는 종류는 아니었다. 목소리에 종종 더해지는 에코, 자주 찡하게 울리는 그룹사운드… 불규칙함으로 규칙을 이루다 별안간 그것을 깨버리기도 했다.  


"늘 전원 여자로 구성된 밴드와 함께 투어를 하곤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케어와 집중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사운드 엔지니어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피지컬 배틀’이 벌어질 수가 있다. 지속적으로 앰프 소리를 줄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매우 말 그대로의 표현인 거다, 내가 작아진다고 느낄수록, 난 앰프 소리를 키우고는 목소리를 더욱 공격적으로 내버린다."

- Sasami Ashworth, 2022.01.14, Interview by. Jon Blistein, [rollingstone.com]



https://youtu.be/wdDvwyUWDjM

'Skin a Rat'


올해 초 낸 두 번째 정규 <Squeeze>의 첫인상은 사뭇 다르다. 첫 곡 ‘Skin a Rat’부터 헤비한 그룹사운드가 고막으로 부서져 내린다. 그러나 다음 곡 ‘The Greatest’는 웅장하고 감성적인 록발라드. 그러더니 ‘Say It’은 일렉트로닉으로 가버린다. 강렬한 드럼과 서늘한 기타+코러스와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보컬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Call Me Home’이 그랬듯, 팝펑크 분위기로 리드미컬하게 흘러가는 ‘Make it Right’도 도중에 별안간 메탈릭해지며 고조되는 파트가 있다.


아무리 ‘얼터너티브’라 해도, 한 앨범의 사운드가 이 정도로 오르내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도, ‘아직 무엇에 집중하고 싶은지 결정하지 못했어’도 아니다. ‘난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어’의 경우 어느 정도 있기는 하나 역시 핵심은 아니다. 트랙들은 전하려는 이야기에 맞는 형태를 띠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메탈, 인더스트리얼 팝, 인디 록, 컨트리, 클래식… 장르들은 의도한 듯 뒤섞인 자체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이 레코드의 매력은 거기에 있기도 하다. 분명한 테마와 함께 설정된 ‘프로타고니스트’의 면면을 각자 다르고 특별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 각기 다른 까닭으로 진입장벽을 느낀다 해도, 취향에 맞는 트랙만을 골라 듣기 시작하더라도(그렇게 해도 괜찮다), 이내 앨범을 통으로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Squeeze>가 지닌 장르의 폭은 사사미가 커버가능한 송라이팅과 보컬의 넓이이기도 하다. 헤비메탈부터 포크까지, 샤우팅부터 담백한 바이브레이션까지. 스타일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기보단 본디 가지고 있던 것을 내보인 것에 가깝다. 단적으로- 사사미 애쉬워스는, 다니엘 존스톤의 메탈식 커버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처럼 상당한 결과물을 내놓는 인간이다. 거대한 폭풍 같은 흐름을 끊어 유사한 스타일의 트랙끼리 뭉쳐 놓으려니 망설여졌다. 그러나 장르적 특성은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과 그것을 수용하는 정서에 영향을 미치므로, 일단 나 자신의 이해부터 돕기 위해 거칠게 묶어 보기로 했다.


https://youtu.be/2QB-V3VWJ7U

'Say It'



첫 트랙 ‘Skin a Rat’, ‘Squeeze’와 ‘Say It’, ‘Need It to Work’ 까지가 메탈, 인더스트리얼 풍으로 유사하다. 이 곡의 화자들이 일컫는 ‘너’는 여성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폭력의 언어를 통해 분노를 해소하는 시스-남성적 주체인 듯하다. ‘Need It to Work’의 화자는 반복해 묻는다, “날 좋아해?”, “날 벌주고 싶어?” 거기 ‘내가 널/그걸 원한다’는 전제는 없다. ‘나’는 ‘작업을 하기 위해 그게 필요하다need it to work’. ‘너희들’의 폭력성과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걸까? 뒤에 언급할 ‘스퀴즈의 프로타고니스트’의 특성을 인지한다면-‘너희들’을 잡아먹을 동력이 되는. ‘Say It’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괴로워하고 싶지 않아, 네 사과를 원치 않아, 니가 플레이하고 싶은 대로 말해 봐(피해자로 다뤄지고 싶지 않아, 대충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지 마, 어디 한 번 지껄여 봐)”


Laughing, drinking, sucking, thinking, running, reeling, farther

Breathing, breaking, fucking, taking, scraping, feeling, harder

Pulling, peeling, stalking, stealing, wanting, dreaming, murder

Lying, stripping, licking, dripping, squeezing ‘til you hurt her

- ‘Squeeze (feat. No Home)


쥐어짜듯 째지며 고조되는 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Squeeze’의 후렴에 묘사된 행위들은, 실제로 하는 것일 수도 음악/공연 속 픽션일 수도 있다. “거짓말하고, 벗기고, 핥고, 떨어뜨리고, 쥐어짜, 네가 그녀를 다치게 할 때까지.” 픽션이라 해도 ‘그녀’는 상처 받는다. 누군가에겐 목소리가 없고 사실 딱히 ‘인간도 아닌’ 허구의 ‘희생양scapegoat’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거부해도 결국 이입하게 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victim’다.


폭력을 묘사하며 즐기는 행위 자체를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왜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기반이 약한 이들을 습관적으로 향하는가, 어째서 고발과 비판을 명분으로 전시된 폭력들조차 때로 그 대상을 착취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런 문화는 누구를 배제하며 무엇을 고착화하고 있는가- 창작과 예술, 특히 픽션의 영역에서 이런 류의 물음표를 띄우는 것은 어렵고 까다롭지만, 필요한 일이다. 사사미 역시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rape-y한” 기존의 메탈을 들어 왔다. 그러나 분노를 터트리는 음악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또다른 종류의 분노와 “디아스포라diaspora of metal heads”를 겪었고, 그것을 모조리 집어 삼켜 에너지로 응축해 그만의 메탈로 토해냈다.


"나는 정말로 그 폭력적인 언어의 일부를 되찾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매일 또 항상 폭력이 기어오르는지에 관한 곡이다. 별안간 누군가 지하철에서 시발 날 만지려고 한다든지. 나는 이 공격적인 곡을, 뭔가를 느끼게 만드는 공격적인 가사들을 포함해서 만들고 싶었다, 단, 내 소유로 느껴지는, 대상화되는 느낌의 반대에 있는."

- Sasami Ashworth, 2022.01.14, Interview by. Jon Blistein, [rollingstone.com]


사사미가 “되찾은 폭력적인 언어”에 있는 자학성은, 꼭 ‘너희 몫의 죄책감을 돌려주겠다’는 선언 같다. “breaking”, “fucking”, “stalking”, “murder”, “squeezing”(‘Squeeze’)…등은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표현이 아니다. ‘시스-헤테로-남성적 메탈’이 ‘해소’를 위해 허구적(어쩌면 실재하는) victim으로 지목한 개체의 특성을 지닌, 그 위치에서 모든 고민 없는 콘텐츠들을 소비하거나 하지 못해 온, 자신과 같은 이들의 목소리다. 폭력의 주체에 이입해버리기를 택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빅텀’의 신을 신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럴 때마다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죄책감, 그것을 감내하고 ‘즐기(지 못하)거나’ (guilty pleasure), 결국 멀리하게 되거나. 사사미와 같은 멋진 예술가들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왜 그 guilt를 내가 느껴야 하느냐’고 묻는다. ‘내 몫이 아닌 guilt’를, 마땅한 자들의 손에 쥐여준다. 그리하여 이 곡들이 ‘당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방식은, 동일한 폭력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설정한 ‘victim’으로서 목소리를 내거나, 그 ‘빅텀’의 눈을 마주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러링보다 선호하는 방식이다.)


https://youtu.be/2LBul25G6Io

'Squeeze'


강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릴렉스 돼 낮게 내리깔린 보컬이 헤비한 사운드와 어우러지며 독특한 매력을 더한다. 이미 완전하며 가능성이 가득한 이 목소리는 ‘The Greatest’, ‘Call Me Home’, ‘Tried to Understand’와 같은 인디/컨트리 록에서는 완전히 다른 색의 에너지로 청자의 귀를 매혹한다. 앞에서 묘사한 곡들이 심장을 내리친다면, 이 곡들은 영혼을 건드린다.


So you burn it down

With your cold heart out

And your brain sitting down on ice

You’re dancing around an empty club

With tears falling out of your eyes

You’re spinning out like a penny on the ground

- ‘Tried to Understand’


‘Tried to Understand’의 화자는 ‘너’의 상처와 눈물을 들여다본다. 스스로 ‘약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감추고 더욱 증오와 비웃음을 과시하는 누군가. ‘사실 네가 생각보다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라고, 이해를 시도한다. 화자의 말을 들은 대상은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어 수치스러워했을까, 분노했을까. 그러다 위로받았을까? “난 알아, 늘 보이려 하는 모습보다 네가 연약하다는 걸. 하지만 넌 늘 즐거움과 괴로움만을 찾아. 그 사이는 없지.” 화자는, “이해해 보려고 했어”라고 반복해 노래한다. 시제가 과거형이라는 건 어쩌면 그가 내민 손을 끝내 상대가 잡지 않았다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XyD3oKg3MVU

‘Tried to Understand'


And that’s the strangest part

At the bottom of a broken heart

With all that room to fall

The greatest love of all

- ‘The Greatest’


‘The Greatest’에는 실연의 정서가 가득하다. 이 웅장함과 비장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쩌면 ‘너’가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까. 그래서 ‘나’가 손을 붙잡지 못하도록 자꾸 선을 긋고 총을 겨누고 밖으로 내보내는 것일지도. 그러나 ‘나’는, “그 선에 묻은 페인트를 핥고, 절대 널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널 체인처럼 온 몸에 지고 갈 거야/ 내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노래처럼 넌 날 홀려”. ‘너’가, 특정 사람이 아니라는 해석을 던져 볼 수도 있다. 아티스트 본인에 가까운 화자-가 짝사랑했으나 그를 배제하고 밀어내기만 한 어떤 음악/씬을 일컫는 것은 아닐까. 뭐, 단순히 연인의 마음이 식은 상황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곡이 노래하는 것은 ‘나의 감정’, 그 “깨지고 버려진 마음의 바닥”에 남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https://youtu.be/KwpZ8-vCABE

'The Greatest' 오피셜 비디오.


‘The Greatest’ 비디오에서 사사미는 감정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진지하게 노래하거나, 메탈릭한 분장을 하고 드럼을 열정적으로 두드린다. ‘Make it Right’ 비디오에서는 또다른 자신을 뒤쫓는다. 애초에 앨범 커버 한가운데에 박힌 ‘괴물’의 얼굴부터 본인의 것이지 않은가. 사사미는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캐릭터를 제 얼굴과 몸에 입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수퍼 시스-메일지배적인 씬의 위협에 있는 신화를 제거demystify하고 싶었다. ‘스퀴즈’를 위한 프로타고니스트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희생자가 아닌 여성적 존재를. 복수심이 가득하건 랜덤이건, 폭력의 가해자인. 일본의 요괴 ‘누레온나(wet woman)’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순종적인, 아름다운 여자인데, 공격적이고 뻔뻔한 선원들이 다가오면 이 존재가 그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게, 너무 좋다. 그런 곡들의 아주 좋은 심볼이다, 스스로 핫함을 느끼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나는 전갈자리이기도 해서, 그녀가 water bitch 라는 사실을 보고 이랬다, ‘그래, 여기 바로 내 bitch가 있네! fucking 물뱀이야, 이거지!’"

- Sasami Ashworth, 2022.01.14, Interview by. Jon Blistein, [rollingstone.com]


<Squeeze> 커버.


강하고 불편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이미지다. 요괴 ‘누레온나’를 변형한 형상. 뱀과 전갈을 합쳐놓은 듯 긴 몸에 다리가 달려 있다. 날카로운 꼬리에서는 분명 독이 뚝뚝 듣고 있을 것 같다. 긴 혀를 빼물고 이쪽을 노려보는 얼굴은 사사미의 것이다. 옆에는 볼드한 체의 한글로 ‘스. 퀴. 즈.’라고 적혀 있다. 일본의 요괴 형상과 한글, 이쯤에서 사사미의 모친이 자이니치 정체성을 지녔으며 일본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정보를 적으면 무언가 이해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넘겨짚을 부분은 아니다. 동시에 또, 그리 복잡한 해석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첫 앨범의 ‘Morning Comes’ 뮤직비디오를 ‘할머니의 김치 비법’으로 만든 바 있기도 한 사사미. 그 바탕에 ‘내 뿌리의 계승’이라는 막연한 당위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본인의 말을 빌려 “랜덤한 집단, 이상한 눈송이”를 예술적 영감과 스토리텔링의 원천, 표현법의 실마리로 쓰는 것에 가깝다. 오히려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쓰임새’다. 다른 한편으론, 자기 자신의 헤리티지이고 문화적 소수성이기에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꼭 <스퀴즈> 프로타고니스트의 테마 송인 것만 같은 ‘Feminine Water Turmoil’. 이 클래식 오케스트라(사사미는 음악을 클래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인스트러멘탈이 엔트리처럼 작용하며 라스트 트랙인 ‘Not a Love Song’으로 이어진다. 무겁고 느리고 풍부하게 서정적인 그룹사운드, 잔잔한 바이브레이션이 두드러지는 보컬에 귀 기울이다 보니 들려 오는 가사는 메타예술, 송라이팅에 관한 내용이다.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 그저 아름답고 아름다운 소리야.” 아름답고 아름다운 그 멜로디에서 동아시아 포크송의 흔적이 비쳤다면 착각일까.


https://youtu.be/dhMwmpRZMyA

‘Not a Love Song’



"내 가족은 늘 파친코 기계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 픽션(이민진, <파친코>)을 읽기 전까진 그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가족- 이 랜덤한, 어쩌면 DNA로 연결되지 않았는지 어쩐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의 굉장히 흥미로운 원천이다. 모두의 가족은 이상한 눈송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역사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판타지 세계를 점화하는 걸 돕는다는 건 자연스럽다."

- Sasami Ashworth, 2022.01.14, Interview by. Jon Blistein, [rollingstone.com]


글에서 몇 번 인용한 롤링스톤즈 인터뷰의 타이틀은, “Sasami’s Heavy Metal for soft souls연약한 영혼들을 위한 사사미의 헤비메탈”이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스퀴즈>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자길 잡아먹으려는 남자들을 잡아먹는 여자, 이 레코드에 ‘소프트’라는 표현이 과연 적합한가,하고. 그러나 물음표는 곧 사라졌다.


‘소프트하다(부드럽다/연약하다)’는 말은 ‘예민하다’와 유사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곤 한다. ‘단지 픽셔널한 가사일 뿐인데 왜 hit이나 rape 같은 단어에 상처를 받느냐, 너무 소프트한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을 향해, 사사미는 물뱀전갈여자로 분해 답한다. 이 존재의 공격성은 ‘으레 그래왔던 방향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내 소울이 너무 소프트한 것이 문제인지’ 고민해보지 않았을, 특권적 폭력성을 누려온 자들을 타겟으로 한다. 동시에 소프트한 소울들- 분노를 표출하도록 도와줄 줄 알았던 음악/씬에서조차 필연적으로 상처받아야 했던(어쩌면 일상에 실재하는 폭력을 겪기도 했던. 꼭 생물학적 여성일 필요는 없다) 이들, 그리고 특권적 위치에 있더라도 ‘빅텀’들에 공감하며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낄 감수성을 지닌 이들-을 위로하며, “나를 당신들의 고향이라 부르라”(‘Call Me Home’)고 노래한다.


https://youtu.be/ghCr5C2ukIU

‘Call Me Home’


사사미 애쉬워스가 그저 ‘화이트한 아메리칸’이었더라면 일본 요괴를 탐구하게 됐을 가능성은 훨씬 낮았으리라. 시스 헤테로 남성이었더라면 아마 메탈 공연장에서 ‘elbow를 throwing’하다 <스퀴즈>를 탄생시키는 일은 없었으리라.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바꿀 수 없는 요소들이 우리가 결국 자신의 의지로 다다르는 장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흥미롭고 또 이상하지 않은가. 사사미 역시 변수들의 조합이 이끄는 삶의 미지성에 매료됐고, 그것을 가장 자유롭고 폭발적이며 아름다운 모양으로 자기화했다.


"모든 경험이 예술을 창조할 감정적 어휘를 준다, 그리고 대항문화적 경험 속에서 자라는 것은,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 어떤 조각이 기관에서 왔고, 또 가족의 짐가방에서 왔고,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에서 왔고, 환경에서 왔는지- 풀어내기는 힘들다. 예술을 만드는 일의 많은 부분은, 감정적 경험이 필연적으로 어디서 왔는지 질문하지 않으면서도, 실마리를 잡아당겨 그곳에 이르는 것이다."

- Sasami Ashworth, 2022.01.14, Interview by. Jon Blistein, [rollingstone.com]



사사미의 라이브 스틸컷들. 출처: SASAMI 오피셜 페이스북 페이지.



* 참고 인터뷰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sasami-squeeze-artist-you-need-to-know-1281087/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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