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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Feb 05. 2023

브랜디 칼라일의 ‘이야기’

Brandi Carlile


 

Brandi Carlile

and <In These Silent Days>

 


https://youtu.be/D9nUHnqpHJM

'The Story' SNL 퍼포먼스


스피커에서 브랜디 칼라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귀 기울이지 않기는 힘들다. 허스키하고 밀도 있는 음색에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가창력. 워낙 호소력이 짙어 볼드하고 심플한 표현법이 어울린다. 날것의 감정들을 툭 던져 놓는데, 적당한 여백과 여유를 곁들인다. 갈라지거나 메이면 청자의 마음도 찢어진다. 거기에선 가슴 바닥에 맺힌 응어리와 거침없는 태도가 함께 감지된다.


Follow your heart and see where it might take you

Don’t let the world outside there break you

They know not who you are inside

They’ve never felt your hell

Don’t ever let them crack

- ‘Follow’, <Brandi Carlile>


첫 앨범의 첫 트랙, 첫 절에서부터 브랜디 칼라일은 선언했다, ‘바깥 세상이 날 무너뜨리게 두지 않고, 내 심장을 따르겠다’고. 데뷔 앨범 <Brandi Carlile>의 커버에는 컨트리풍 셔츠와 진, 러그를 대강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이쪽을 응시하는 그의 실루엣이 있다. 대범한 눈빛이 말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브랜디 칼라일, 언제나.’ 처음부터 완성형이었던 송라이팅과 보컬은 컨트리와 클래식 로큰롤에 베이스를 두고 그 무한한 폭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곤 했다. 거의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그 핵은 변치 않았다, 더 깊이 익었을 뿐.


<Brandi Carlile> 커버.


‘Follow’의 ‘you’는 칼라일 본인을 일컫는 말로도 들렸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 수록곡 ‘The Joke’, 화자는 조금 다른 포지션에 있다. 그때의 자신과 유사한 벽을 마주한 이들을 향해 응원을 건네는 듯하다. 결국엔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드물게 그런 이들이 있다, 삶의 이른 시기에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디를 바라보며 살 것인지 깨우치거나 결정하고 수퍼 쿨하게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 브랜디 칼라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 쉬울 리 없는 (어쩌면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그것을 해낸다. 바로 제 ‘스토리’를 솔직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당시 이사를 많이 다녔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이 가장 심할 때였고. 우리(그와 그의 브라더)는 모든 수업에서 낙제를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커밍아웃out of closet했다. 내게 있어 굉장히 커다란 일이었다. 정말로. 작은 마을에서 열 네 살이 아웃 한다고 생각해 보라. 내가 거기서 유일한 게이였다. (……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 했다는 내용.) 나는, 이걸 또다시 할 수는 없어, 새 장소에서 또 커밍아웃 할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다. 수업에서 뒤쳐져 있기도 했고. 그냥 내 밴드를 하고 싶었고, 여기 더 이상 나올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학교를 나옴으로써, 학교 중퇴라는 부모의 유산을 이어받았지. 청소년기에서 그다지 아름다운 순간은 아니었다.”  

- Brandi Carlile, 2021.04.05 interview by. Terry Gross [npr.org]


클로짓으로 사는 ‘선택’지는 애초에 고려한 적도 없었다는 듯- 그는 털어놓는다. 뮤지션으로서의 칼라일 역시 딱히 대중에게 클로짓이었던 적이 없었다. 가사 속 사랑과 이별의 상대방은 늘 여성이었다. 앰버 리, 조세핀, 캐롤라인과 같은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나 아마도 여성의 것일) 이름들이 등장하는 러브송들. “그는 널 용서한다고 말했지, 난 네가 싫다고 말했어. 그는 나보다 큰 남자였고, 난 열 여섯이었지.”(‘That Year’) 같은 구절들에도, 스트레이트라면 겪었을 가능성이 낮은 상황과 감정들이 암시돼 있다. 그러나 다시, 본질은 러브송이다. 칼라일은 이 사랑의 보편성을 자신의 특별한 재능으로 곡에 담는다.


 컨트리 베이스여서가 아니라- 브랜디 칼라일(& Hanseroth 트윈스) 송라이팅과 싱잉은  가장 꾸밈없는 예술로 다가왔다. 핵심은 언제나 가사와 멜로디, 인터뷰나 퍼포먼스  그의 언어에 솔직하고 깔끔한 모양으로 드러나 있다. (이쯤에서 굳이  필요가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 언제는 필요에 의해 썼나.) 칼라일이 그간 들려준 ‘이야기 대한 그다지 심층적이지 않고 꽤나 주관적인 감탄을, 직전  스튜디오 앨범의 곡들을 중심으로 시작하기 앞서,  사이 발매된 트랙 하나를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https://youtu.be/JlvCcwynz2o

‘If She Ever Leaves Me’ 라이브.


브랜디 칼라일이 참여한 아메리카나 프로젝트 밴드 The Highwomen의 ‘If She Ever Leaves Me’. 칼라일의 리드 싱잉으로 녹음된 이 곡은 맴버 아만다 샤이어즈와 그의 남편 제이슨 이스벨, 크리스 톰킨스가 썼다. 이어지는 내용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이스벨이 덧붙인 설명이다: “원래는 이 곡이 헤테로섹슈얼 컨트리 러브송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만약, 어쩌면 만약, 브랜디 칼라일이 이 곡을 부른다면, 게이 컨트리 송이 되리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관점에서 곡을 이어 썼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랑 노래가 그러한 관점에서 쓰여지고 바라봐져야 한다. 브랜디 칼라일은 거기 있는 것만으로 새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감각을 불러오는 존재다. 단지 오픈리 퀴어 아티스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스토리’로 컨트리 씬에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칼라일은 이스벨이 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훨씬 이전부터 ‘문’을 두드리고 열어젖혔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노래함으로써.


(‘If She Ever Leaves Me’가 퀴어적 관점에서 매우 잘 받아들여 졌다는 것에 대해)

“퀴어 피플도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는데, 가끔 그 점에 대해 커뮤니티 내에서 클로짓인 것 같다고 느낀다. 그치만 좋아하는 건 맞다. 단지 컨트리가 우리를 향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할 뿐. 만약 열어 준다면, 끝내주게wildly 만족스럽지.”

- Brandi Carlile, 2021.04.05 interview by. Terry Gross [npr.org]


개인의 경험과 감정, 삶의 방식이 녹아 있는 어떤 예술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다. 칼라일이 싸워 왔던 건, 음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만이 아니었다. 스트레이트-시스-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것들을(“It’s your brother’s world for a while longer” -‘The Joke’) 보란 듯이 제 것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가능’을 넘어 ‘당연’의 차원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위 몇 문장 탓에 이 글이 칼라일의 음악을 운동movement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읽힐 수도 있겠다. 당연히 아니다. 아닌 까닭을 굳이 설명해야 할까, 그의 음악을 듣고 라이브 비디오를 시청하고 가사를 시처럼 음미하다 보면, 그의 세계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화자와 함께 사랑하고 아파하고 떠돌게 된다는 것을?


이어 적으면, 칼라일의 곡에서 화자는 아티스트 본인과 일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 ‘The Mother’는 그의 첫아이 이반젤린 칼라일에 관한 곡, 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애정을 섞어 투덜대기도 한다. 부드럽게 말을 건네듯 이어지던 보컬에 힘이 들어가는 구절이 있다, “세상은 우리 앞을 막아섰어, 널 위해 싸우도록 만들었지. 그리고 네 이름을 고를 때, 너 또한 그 권력에 맞서리라는 걸 알았어.” 그렇게 엄마됨의 과정과 감정을 노래하던 칼라일은 마무리한다, “저들은 저들의 보물을, 기계와의 공감대를 가지라고 해, 난 이반젤린의 엄마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엄마로서 느끼는 정서는 각자 다름을 말하는 ‘Mother’는, 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음 역시 말한다. 엄마 브랜디 칼라일이 딸 이반젤린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트랙의 결은 이토록 풍부하다. 칼라일의 스토리텔링을 단순히 ‘경험을 담는 송라이팅 스타일’로만 분류할 수 없는 까닭이다.  


https://youtu.be/JLNr95zE5yA

'Mother' 라이브.


한 라이브에서, 칼라일은 긴 시간을 할애해 ‘게이 여성으로서 ’전통적’ 형태의 가족을 이룬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집에 여자들이 가득하지, 난 와이프까지 있는 걸.”이라고 유머를 던진 후 느긋하게 관중의 반응을 기다리기도 하고, (스트레이트 게이 트랜스 엄마 아빠를 모두 호명하기도 하고) 진지하게 톤을 바꿔 “여기 텍사스에서, 내가 나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런 형태의 삶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중요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바탕 털어놓은 후 여유롭고도 정성스러운 태도로 ’The Mother’를 부르는데- 꼭 뮤지션과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무대가 펼쳐진다.


사실 이 비디오의 시작은, 이반젤린이 무대에 올라와 엄마를 안아주는 퍼포먼스(?)였다. 처음엔 그저 모녀의 사랑스러운 모먼트로 보였으나- 어쩌면 그 행위부터가 그날 ‘The Mother’의 시작이었다. 이 ‘가시화’를 감히 ‘이용’이라고 일컬으려는 사람이 혹여나 있다면- 높은 확률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족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한다는 생각을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자들, 그게 특권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자들이리라.



칼라일이 비교불가한 싱어/송라이터인 것과는 별개로, ‘컨트리’ 씬에서 게이 여성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는 일은, 다른 종류의/겉으로 드러난 것 훨씬 이상의 어려움과 압박을 수반했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한다. ‘내 것’인 음악 안에서 조차 ‘내 자리’를 위해 싸워야 했음이, 인터뷰와 가사 일부에서 비친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떤 곡들을 들을 때면 최전선에 서서 ‘어디 누를 테면 눌러 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게 그를 사랑하는 까닭 중 하나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으로서 어찌 지치는 날이 없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칼라일의 최근작은 왠지 기쁘다. 부드러운 용사요 강인한 현자로서 우리 곁에 자리하며 속이 끓더라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던 그지만, 이번엔 살짝 ‘마음을 놓은’ 것 같다고 할지. 이전 앨범들을 그대로 하나하나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달리 반가웠다.


https://youtu.be/FW5xe1FpDfQ

‘Party Of One’ 오피셜 비디오.


‘The Mother’가 수록된 <By the Way, I Forgive You>의 마지막 트랙 ‘Party Of One’은 잔잔한 사운드와 특유의 갈라지며 고조되는 보컬의 조화가 가슴을 파고드는 곡이다. 가사는 관계에 대한 내용, ‘너’가 반복적으로 처하며 때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상황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묘사하며 ‘나’는 고백한다, “I am tired”. 그러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툭 내려놓듯 뱉는 ‘tired’에 담긴 정서가 곡 밖으로 흘러나와 현실의 것들-지속적으로 겪는 음악 산업/씬 안팎의 혐오나, 직접 언급한 내면의 압박 같은-을 포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펜데믹은 약간… 날 가만히 앉혀 놓고 어떤 것들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나를 쳇바퀴로 돌려 놓는 것, 이토록 과도하게 일하게 만드는 것, 야망과 회피의 교차점이랄까. (……) 난 여기 있는 걸 좀 즐길 필요가 있었다, 지속적으로 여기 있을 권리가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고, 속하고 동화되려 애쓰는 대신.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나는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계속 올라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여기 앉아서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내겐 아이들과 와이프가 있고, 내 음악에 있어 항상 원했던 확신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이 책을 썼다.(<Broken Horses>) 내 세상에서 약간 견고한 상태solid이고, 또 사랑 받고 있다고 진심으로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 내 공간을 마침내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할까.”

- Brandi Carlile, 2021.04.05 interview by. Terry Gross [npr.org]


‘지쳤다’는 ‘Party Of One’의 끝이 아니었다. “더 이상 집에 가고 싶지 않다”던 화자는 끝내 집으로 향한다, “나는 너의 것이므로”. 거기가 이 트랙과 앨범이 다다른 곳이었다. 다음 앨범의 첫 곡이 ‘Right on Time’이라는 건, 왠지 설득력 있는 전개다. 앨범 제목 ‘In these silent days’를 따온 이 트랙은, ‘너’에게 대화를 청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직면했던” “고요한 나날들”- 스스로 조금 만족하고 살아도 괜찮겠다고 깨달은, 그리고 내면의 두려움이나 흔들림을 다른 방식으로 꺼내 마주했던 시간-을 드러낸다. 일관되게- ‘Letter to the Past’는 직설적이고 따스한 뉘앙스로 마음을 들여다본다. ‘과거로 보내는 편지’는 화자가 마음을 전하려는 상대방을 비유하는 표현이지만, 가사 전체가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다. “고무 밴드로 가득한 세상 속 단단한 돌벽, 믿음의 기둥”이었던 칼라일 자신에게. “친구들folks이 기대어 오다가 균열을 발견하면 떠나도, 나는 옆에 있을게”, 칼라일은 “언제나, 울어도 괜찮다”고, “아직 실마리 하나 찾지 못했지만”, “게임에서 져도 괜찮다”고 노래한다. ‘너’의 “떨리는 손”을 잡아 줌으로써 듣는 이들의 어깨 역시 감싸 준다.



https://youtu.be/bN5JK1LPrnI

‘You and Me on the Rock’ 오피셜 비디오.


‘You and Me on the Rock’의 ‘너’는 다르다. 관계의 상대방, 어쩌면 그의 와이프 캐서린. 화자는 “바위 위 너와 나면 돼”라고 경쾌하게 노래한다. ‘바위’는 칼라일과 친구들이 프라이드로 단단히 쌓은 토대일 테다.


I’ll build my house up on this rock, baby, every day with you

There’s nothin’ in that town I need after everything we’ve been through

Me out in my garden and you out on your walk

Is all the distance this poor girl can take without listenin’ to you talk

I don’t need their money, baby just you and me on the rock

- ‘You and Me on the Rock’, <In These Silent Days>


“Only broken horses know to run”.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Broken Horses’에 터져 나오는 삶을 맞닥뜨리면 가슴이 벅차 울렁거리고, ‘Mama Werewolf’에 가득한 위태로움은 너무 맑게 일렁여 아프다. “망가진 말”과 “늑대인간”. 그들은 그저 ‘스토리’의 일부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아티스트가 자아의 한구석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짐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가 겪은 날들을 아는 척 얄팍한 ‘해석’을 흩뿌리는 일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 말할 수 있는 건, 두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울먹이지 않기는 힘들었는데, 그 눈물의 색이 조금 달랐다는 것.


https://youtu.be/odZCQhibzGM

'Broken Horses' 오피셜 오디오.



가끔 칼라일은 위 두 곡과는 다른 뉘앙스로 픽셔널한, 일종의 거리감이 있는 송라이팅을 택했다. 아메리카나풍 ‘옛날 옛적에’랄까- 화자가 관찰자나 전지자의 위치에서 특정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식인데, 여전히 분명하고 솔직하다. 록의 향기가 진동했던 <The Firewatcher’s Daughter>의 ‘The Stranger at My Door’가 그 예다. 이번 앨범에서는 ‘Sinners, Saints and Fools’가 그렇다. 비장하고 서늘한 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적에, 신을 두려워하는 남자가 살았다네. 그는 푯말을 그려 머리 높이 들고 자랑스럽게 흔들었지, (……) 법을 어겨서는 안 될 지니, 규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죄인들, 성인들, 바보들이여. (……) 책에 적힌 대로 해야만 한다, 예외는 없으리니.”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무어가 그리 두려워- 인간의 관습에 얽매인 채 신을 핑계삼는 자들에 대한 우화. 그가 게이라는 까닭으로 세례를 거부했다던 교회를 비롯해, 칼라일이 오랫동안 맞서 왔던 수많은 ‘그들’과 연결될 테다.


“신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신이 이 교회에 있었나? 이 사람들 사이에?... 어쩌면 신은 내가 아직 가지 않은 데에 있는지도 몰라, 음악 안이라거나, 이 마을 밖이라거나, 길 밖 혹은 내 집 밖에.”  

- Brandi Carlile, 2021.04.05 interview by. Terry Gross [npr.org]


“당신의 서류를 보지 못했다”며 사람들을 거절하던 남자는 결국 어찌 되었을까. “그는 더 안전하다고 느끼지도 못했고, 바랐던 희망을 찾지도 못했다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았지.” 그러니, 저들보고 “웃을 수 있을 때 웃으라고 하자.”(‘The Joke’) 그리고 마지막에, 비웃어주자. “영화는 늘 그렇게 끝나니까, 이제는 그들 차례이니까.” 물론 현실의 “영화”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태도와 에너지는 묵직하게 와닿는다. 더 많은 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수록 그 엔딩은 앞당겨지지 않을까-라고 쓰니, 말이 참 쉽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칼라일의 말은 절대 쉽게 나온 것이 아니므로.



 https://youtu.be/5-33HggcyEY

‘Sinners, Saints and Fools’ 오피셜 오디오.



Don’t ever let them steal your joy

And your gentle ways to keep ‘em from running wild

- ‘The Joke’, <By the Way, I Forgive You>


Don’t let the world make you callous

Be ready to laugh

- ‘Stay Gentle’, <In These Silent Days>


웃음과 부드러움. 칼라일의 힘은 거기에 역시 있다. ‘hard’는 ‘strong’의 동의어가 아니니- “변화의 바람”(‘Sinners, Saints and Fools’)을 일으키는 선구자는 가장 민감하고 세심하고 유쾌한 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끊임없이 타인에게 닿으려 하는 이. ‘그대들’을 응시하는 칼라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데이빗 보위의 ‘Rock ’N’ Roll Suicide’가 나를 채웠을 때의 기분을 얼핏 떠올렸다. “sinner”로 불렸던 saint, 브랜디 칼라일. 그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노래한다.


‘The Joke’ 비디오, 다양한 외양의 사람들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들”이 끌어내리려는 “boy”s와 “girl”s, 어쩌면 둘 다 아닌 이들의 소리가 흑백 화면 가득 빛난다.


Let ’em laugh while they can

Let ’em spin, let ‘em scatter in the wind

I have been to the movies, I’ve seen how it ends

And the joke’s on them

- ‘The Joke’, <By the Way, I Forgive You>


https://youtu.be/5r6A2NexF88

'The Joke' 오피셜 비디오.




+

그러고 보니, <In The Silent Days> 디럭스 에디션의 보너스 트랙은 보위의 ‘Space Oddity’ 커버다.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라고 칼라일이 노래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웅장해진 청자가 나뿐은 아니었으리라. 컨트리를 즐기지 않았다던 보위지만… 이번만큼은 응답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 인터뷰


https://www.npr.org/2021/04/05/983815671/singer-brandi-carlile-talks-ambition-avoidance-and-finally-finding-her-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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