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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pr 09. 2023

퍼퓸 지니어스, 마이크 헤드레어스. (Part 1)

Perfume Genius (Part 1)



Perfume Genius

Mike Hadreas with Alan Wyffels


Part 1) <Learning>, <Put Your Back N 2 It>, <Too Bright>



마이크 헤드레어스의 음악을 듣기 시작할 무렵, ‘Perfume Genius’만큼 아티스트의 작품세계를 직관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예명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작업은 순간과 음악의 화학작용으로 탄생한 향수를 뿌리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 향은 피부의 외면이 아닌 내면 깊숙이 배어, 방치되었던 영혼의 조각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인디/얼터너티브/아트팝 월드에서 퍼퓸 지니어스가 잡은 포지션은 기성의 위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이 꺼리거나 엄두내지 못했던 허공에 그만의 ‘그리드’를 짜 놓고 포즈를 취한 것과도 같았다. 진실로, 그와 ‘유사한’ 아티스트는 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청자가 누구이든 울림을 얻을 만한 요소가 있다. 그러나 퀴어- 특히 90년대에- 오픈리 게이 맨으로서 십 대를 보낸 개인의 경험이 녹아 있는 곡들을 대강 보편적인 언어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도 안 될 말이다. ‘마이크 헤드레어스’에게서 떨어져 나온 기억과 관계의 조각들이 담겨 있는. 그 귀하고 솔직한 예술적 여정을 부족한 언어로나마 차례대로 훑어내리며 퍼퓸 지니어스가 나누어 준 과분한 가치에 감사를 보내려 한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오픈리 게이였던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호모포빅한 폭력을 자주 겪었다고 한다. 괴롭힘이 너무 심해져서 졸업반 때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었는데, 이후에도 살해 협박을 받다 공격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시애틀에서 뉴욕으로 이사하게 됐다.)

“그때 창조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야망은 0이었지. 긴긴 시간 동안 자유롭게 out한 채로 있었다. 굉장히 무모하고 무책임한 상태로, 약을 하고 술을 마시며. (스물 다섯에 재활원에 들어가며 시애틀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식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명확한 형태로 표현할articulate 길이 음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Mike Hadreas, interview by. El Hunt 2020.05.15. [nme.com]


그렇게 모은 이야기들을 열 세 트랙으로 다듬은 첫 앨범 <Learning>. 그것을 듣는 행위는 깨지기 쉬운 유리구슬을 공들여 굴리는 기분이 들게 했다. 곱고 위태로운 레코드, 차분한 템포의 반주와 가느다란 보컬로 구성된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첫 리스닝부터 와닿는 무언가가 있지만… 피아노 멜로디를 베일처럼 두르고 있어, 거기 숨어 있는 목소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며 내가 곡에게, 그리고 ‘곡이 나에게’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건드리면 부서져 흩어질 것 같은- 그렇다고 고이 모셔 두면 점점 희미해지다 사라질(fade away) 것 같은 엔젤릭한 사운드.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 고막에 이 아름답고 슬픈 음표들을 붙들어 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과정을 마치고 나니,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힘과 위로가 가슴속에 퍼졌다.


그 속에 담긴 것은 개인적이고 종종 초월적인 고백들, 오래된 흉터나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침착하게 꺼내놓는 곡들이다. 여기 마이크 헤드레어스가 겪었다던 호모포빅하고 폭력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면 ‘뻔한’ 흐름인가. 그러나 그것들은 드라마를 위한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겪은 일들. 그가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한 예술과, 예술적인 인터뷰로 들려주고 있음에 세상은 감사해야 한다.


https://youtu.be/LCvQlnJ0uZs

'Lookout, Lookout' mv.


“아무도 네 기도를 듣지 않을 거야, 네가 그 드레스를 벗을 때까지, 아무도 네 울음소리를 듣지 않을 거야, 네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렇지만 넌 날 신경 쓰는 법을 배우게 되겠지, 나로 살아남는 법을 알게 될 거야.” (‘Learning’)


“조심해, 조심해, 그것들에 대한 살인이 일어나고 있어.” “브라이언의 얼굴이 아래를 향하고 있네. 네 위트는 접어둬.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을거야. 그에겐 함께 시작할 가족이 없었어.” (‘Lookout, Lookout’)


스토리텔링들은 목적을 갖고 한데로 수렴하지 않고 각자의 촛불로 켜졌다 사그라든다. 그 아픔은 카타르시스화 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되다 때로 청자, 아마도 ‘노말 피플’에게 건네어진다. “내가 궁금해? 그럼 내 신발 한 번 신어 볼래? 안되겠다고?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타인에게 빌려온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것, 스스로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빚어낼 수 있는 상이다.


“(위기를) 풀 수 있는,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내 생각엔, 어떤 것을 가볍게 다루면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내 인생 전체에 걸쳐 같은 걸 해 왔거든. 헤쳐나가기 위해선 할 일을 해야지.(의역)”

Mike Hadreas, interview by. El Hunt 2020.05.15. [nme.com]


“내가 그를 충분히 사랑했다고 설득할 수 있었다면.” ‘Mr. Peterson’은 십 대에 만난 교사 ‘미스터 피터슨’에 관한 이야기. 기억에 프레임을 씌우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낀 것을 노래한다. 차분하게 애도할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에겐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어. 내가 열 여섯 살 때, 그는 빌딩에서 뛰어내렸어. 미스터 피터슨, 당신이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걸 알아요. 그대가 머무를 공간이 있기를 바라요, 저 위에든, 저 아래에든.” (‘Mr. Peterson’)


https://youtu.be/1j0M0Z5U25A

'Gay Angels' mv.


‘Divine Faxes’의 하얗게 와글거리는 소리는 저 구름 위에서 날아온 ‘성스러운 팩스’일까. 처음부터 퍼퓸 지니어스의 곡에는 ‘heaven’이 어른거렸다. 가장 초반 작업 중 하나인 ‘Gay Angels’ 뮤직비디오를 들여다본다. 오디오는 묘사하자면 뭐랄까, 고운 아우성. 천사들의 속삭임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듣게 된다면 아마도 그런 소리일 것 같다. 비디오를 재생하면, 얼굴까지 뒤덮는 분홍색 전신 스타킹을 입은 형상이 있다. 저화질의 화면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와중 그에겐 환한 빛줄기가 어려 있는데, 빛이 그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로부터 뻗어나가는 듯 보인다. 형상은 러닝타임 내내 분홍을 벗는 데에 집중한다. 그 속에는 검정이 있다. 이 비디오는 그 자체로 말한다. 앞 문장은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화면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Gay angel I hear you / I will give this to my true love / Gay angels / I hear you / My true love calls / Gay angels call / And they’re singing / We love you exactly as you are / We love you exactly as you are / With all our hearts / It’s ok”


“우리는 널 정확히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는 ‘노말’한 아가페가 굳이 문장으로 등장한 까닭은, 작품의 제목이 ‘게이 엔젤’이라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까닭은- (‘노말한’) 신과 천사는 게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종교가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장들을 읽기만 하는 것과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 하이퍼-인디-아티스틱한 와중 상당히 직관적인 이 작품에 몇 분간 홀려야만 느낄 수 있는 울림이 있다.


https://youtu.be/8EF9c45PKb8

'Normal Song'


이어 다음 앨범으로 넘어가기 전, ‘노말리티(보통의 것/평범성/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어떤 이에겐 생을 시작하고 마감할 때까지, 쉽게 피부에 가지고 있으므로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것. 다른 누군가에겐 그가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나 포기하였다고 인식되는 것. 어찌하여 노말해야 할 이 개념은 구체적이고 촘촘한 배제를 통해 특정한 상을 띠게 되었나. 자신의 ‘업노말’ 뷰티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퍼퓸 지니어스는, 이 ‘비정상적인 정상성abnormal normality’을 다시 퀴어의 것으로 보편화하는 작업 역시 해왔다. 그의 두 번째 앨범 <Put Your Back N 2 It>의 두 번째 트랙이 바로, ‘Normal Song’이다.


‘노말 송’은 일단, 소위 “노말”은 아니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거기 하나의 노말이 있다. 노말하다는 건 대체 무언가, 너의 노말은 나의 스페셜이고, 그의 노말은 나와 너의 업노말. 이 곡은 ‘노말’ 송, 이 아닌 ‘노말 송’, 이 이야기는 ‘노말’이 아닌 말그대로의 노말,이며, 그 누구의 평가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잔잔한 선율의 곡은 이토록 보통이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첫 절에서 “내 손을 잡아줘, 두려워, 내가 저기 가 있을 때 날 위해 기도해 줘.”라던 화자는, 후반부에 “내 손을 잡아, 네가 두려울 때, 그럼 내가 기도할게, 네가 저기 바깥에 나가 있다면.”이라고 노래한다.(‘Normal Song’) ‘너’와 ‘나’가 연인인지 친구인지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그 안에는 무조건적 믿음과 상호 의지라는 전제가 있다. 현재진행형의 관계와 타인, 그것이 <Learning>에 비해 <Put Your Back N 2 It>에 보다 선명히 비치는 것 중 하나다. 커버 아트는 1집과 동일하게 수채화 느낌이나 이번엔, 홀로의 초상이 아닌 군상 속의 ‘너와 나’다. 사운드를 살피면, 단독 보컬과 피아노 외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한’ 느낌. ‘Take Me Home’, ‘Hood’처럼 그룹사운드가 꽉 차오르는 트랙들이 있다. 조금 덜 조심스럽게 재생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Dark Parts’처럼 가까운 이가 겪은 폭력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곡도 있다. “I will take the dark part of your heart into my heart”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쓰였다 해도, 듣는 이들은 모두 가슴이 무너지며 위로 받게 된다. (여전히 카타르시스는 없다.)

왼쪽부터 <Learning>, <Put Your Back N 2 It> 커버.


비디오를 살피면: 재킷에 아이보리 진 차림으로 모텔방에 고독하게 앉거나 누워 있던, 긴장이 가시지 않은 눈을 카메라와 겨우 맞추던 그(‘Lookout, Lookout’ mv)에 비해, 티셔츠 원피스에 핑크 힐을 신고 도로에 쓰러져 있거나, 쓸쓸히 거리를 배회하거나, 벽에 기대 포즈를 취하거나, 편의점 앞에 주저앉아 크림빵을 입에 쑤셔 넣고 이쪽으로 해맑은 웃음을 날리는 그(‘Take Me Home’ mv)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거울 속 상이기도 한 드랙퀸의 차를 타고 ‘저들’의 건물에 ‘침입’해 통제실을 부수는 그, 회의 테이블을 댄스 무브로 기어다니며 난장판으로 만드는 그(‘Queen’ mv), 롤러 블레이드를 신은 ‘미운오리새끼’에서 흑조를 거느린 백조로 분해 춤추다 이내 심사위원 테이블에 올라가 버리는 그(‘Fool’ mv). 슬로모션을 적절히 가미한 판타지적이고 아티스틱한 연출, 섬세한 안무와 의상. 이 파워풀한 비디오들의 각 요소는 완벽하게 제 역할을 했다.


앞 문단에서 맛본 영상들은 그의 세 번째 앨범 <Too Bright>의 뮤직비디오들이다. 그 기반, 그리고 전면에는 역시 아티스트 본인이 있었다. 화이트와 골드 안에서 더 신비롭고도 인간적으로 빛나는 퍼퓸 지니어스의 우아한 매 동작, 카메라를 피하기는커녕 똑똑히 응시하는 눈동자. 얼굴을 가린 수채화풍 자화상을 그린 1, 2집의 커버와 달리, 징이 잔뜩 박힌 민소매를 입고 의도적으로 어긋난 포즈를 취한 채 어딘가를 노려보는 그의 상반신 사진이 실린 커버는 상징적일 뿐 아니라 선언적이다.


<Too Bright> 커버.


I can see for miles

The same old line

No thanks

I decline

Angel just above the grid

Open, smiling, reachin’

That’s alright

I decline

- ‘I Decline’, <Too Bright>


앨범의 첫 트랙 ‘I Decline’의 가사 전부를 옮겼다. 그는 오래된- 그러니까 늘 있어왔던 것을 거부한다. “그리드 위에서 자신에게 웃으며 닿으려 하는 천사들”을. 거절은 부드럽지만 분명하다. 여전히 ‘천사’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답한다. 좀 더 삶에, “내 몸”에 닿아 있겠다는 뜻이 아닐까.


여기서 타이틀이자 끝에서 두 번째 트랙의 제목이기도 한 ‘Too Bright’을 가져온다. 밝은 빛은, 삶의 희망을 뜻하기도 하지만 ‘너무 밝은’ 빛은 무엇을 연상케 하나, 죽음. ‘Queen’의 비디오는, 분신인 ‘퀸’이 옥상에서 점프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이 뒤이어 뛰어내리는 엔딩을 맞는다. 그들은 땅에 닿기 직전 깃털이 되어 흩어지고, 치어리더들은 그 잔해를 눈처럼 맞으며 환호하지만- 이 판타지적 자유의 암시를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그의 음악에는 늘 ‘heaven’에 닿는 구석이 있었으므로. 열린 하늘길에서 쏟아지는 빛을 견디며 죽음에 한 발을 걸친 삶. <Too Bright>은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시야가 하얗게 되는’ 것을 견디며. 그런가 하면, 그 반대 혹은 사각지대의 컴컴한 면을 스케치하는 트랙들 또한 있었다. 가슴을 조이는 잔잔함과 성스러움이 있는 ‘No Good’과 ‘Don’t Let Them In’ 사이사이에는, 어둠을 응시하고 적나라하게 토해내는 ‘My Body’와 ‘Grid’가 있다.  


“첫 두 앨범은 매우 개인적이었다. 구체적인 것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 어떤 경험들은 어둡고 이상한 것들이었음에도 그 아래 있는 음악 자체는 달콤하고 부드럽고 따스하기를 바랐다. 이번 앨범은 (.….) 내가 어둡고 못된nasty 것에 대해 말할 때, 음악 역시 어둡고 내스티 하기를 바랐다.”

Mike Hadreas, interview by. Cheryl Waters, 2014.10.23. KEXP 


‘My Body’는 제 몸을 “썩은 복숭아” “배가 갈린 돼지” 따위에 비유해 혐오스럽게 묘사하며, 자신과 분리해 바라보았다가 다시 자신의 것으로 “입는”데, 감추지 않고 활짝 드러내는 제스처를 보인다. 일종의 긍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You can have it, if you handle the stink”, (‘If you cannot, that’s on you, not me.만약 악취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건 너의 탓.‘)


‘grid’는 그가 ‘Grid’ 이전부터 써 온 말이다. 첫 곡 ‘I Decline’ -보다도 앞서, ‘Take Me Home’에 “I work the corner of an endless grid”라는 구절이 있다. 그 끝없는 그리드, 천상과 닿는 환상적 경계선으로 그려졌던 이 장소의 슬프고 ‘평화로운’ 뉘앙스는 ‘Grid’에서 Maybe-쯤의 강도로 부정된다. “그리드 위에 천사는 없어, 어쩌면 자기, 이게 다인가봐”, “그리드가 자꾸 불러, 전부 내 머릿속에 있어.”(‘Grid’) “불결하고 이상하기를 바랐다, <Labyrinth> 속 고블린 킹 데이빗 보위를 떠올렸다”[KEXP]는 뮤직비디오, 퍼퓸 지니어스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창백한 뺨, 눈가에는 시퍼런 멍이, 입가에는 시뻘건 핏줄기가 있다. 살짝 귀찮은 듯한, 혹은 크레이지한 미소를 띤다. 자신을 자꾸 잡아당기고 끌어내리는 크롬색 형상들에 둘러싸여, 연극적 안무가 어떻게 뻗어나가든 카메라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https://youtu.be/FfUzs4NDa64

'Grid' mv.


두 곡, 뒤따르는 ‘Longpig’와 ‘I’m a Mother’까지, 네 트랙 모두 사운드에 호러적 매력이 있다. ‘Grid’의 시작은 거의 경쾌할 정도인데, 심상찮은 보컬 라인과 배경 악기처럼 삽입된 괴성이 곡을 ‘괴상’하게 만든다. 공연에서 퍼퓸 지니어스는 이를 레코딩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라이브로’ 비명을 지른다. 이 모든 것에 “어글리”와 “뷰티풀”이 함께 있다. 한 존재의 어떤 면은 ‘미’로, 다른 면은 ‘추’로 구분된다는 뜻이 아니다. 두 면은 한데 있다. 어글리함은 뷰티풀함이며, 또한 뷰티풀함은 어글리함이다.


“추함과 아름다움은 서로를 고양시킨다. 그 두 가지는 늘 동시에 존재했다. 나 자신 안에서도 느끼는 바다.” 

Mike Hadreas, interview by. El Hunt 2020.05.15. [nme.com]


‘Queen’이야말로 가장 비비드하고 아이코닉한 ‘예’일 테다. “찢겨져, 숨을 내쉬는, 발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는” “황금 나뭇잎에 감싸여 빛나는”, 이 ‘퀸’은, (‘여왕’으로 번역할 수 없고.) 완벽하고 예쁜 형상이 아니다, “금이 가 있고, 살이 벗겨지고, 병으로 가득 찬” 몸을 지녔으며, “쉿” 소리로 “가족”들을 “안전하지 않게” 만드는 ‘불경한’ 존재다.


Rank, ragged

Skin sewn on in sheets

Casing the barracks

For an ass to break and harness into the fold

Mary

- ‘Queen’, <Too Bright>


“No family’s safe when I sashay-” (‘Queen’)

퍼퓸 지니어스는 이 문장 하나로, 퀴어를 ‘정상’ 가족/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몰아가는 가부장적 기득권층의 목소리를 비꼬며 ‘그래, 내가 너희의 안전을 깨는 퀸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강렬한 가사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조합의 그룹사운드에 홀려 처음에는 감지하지 못했으나, 이 구절을 뱉을 때 보컬은 사실, 떨린다. ‘예쁜 여왕’이 아니었듯, ‘퀸’은 강하기만 한 무적의 존재 역시 아니다. 그 면면이 공존하는 퀸은 신이며, 그 자신의 거울이다.  


https://youtu.be/Z7OSSUwPVM4

'Queen' mv.


I don’t need your love

I don’t need you to understand

I need you to listen

- ‘All Along’, <Too Bright>


레코드를 열었던 ‘I Decline’이 그랬듯, 닫는 위치의 ‘All Along’ 역시 차분하고 소프트한 동시에 단호하다. 이 이야기들은 ‘당신들’의 애정과 이해, ‘인정’을 바라고 풀어놓은 것이 아니며,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들이 듣는 것” 뿐이라고, 퍼퓸 지니어스는 강조한다.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 참고 인터뷰 목록은 다음 글 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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