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ume Genius (Part 2)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Perfume Genius
Mike Hadreas with Alan Wyffels
Part 2) <No Shape>,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 <Ugly Season>)
그의 실루엣이 뒷모습이어서였을까, 아니면 구부정해서였을까, <No Shape> 커버 아트의 첫인상은 타나토스였다. 그러나 레코드를 플레이하자, 사랑과 생의 에너지가 나를 압도했다. 오프닝은 ‘Otherside’의 단독 건반 연주. 가느다란 보컬에 다른 목소리가 쌓였다가 잦아들더니, 별안간 커다랗고 풍성한 그룹사운드가 귀를 깨우고는 내려앉는다. 마치 부활하듯 삶의 ‘아더사이드’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묘사[참고: NPR], 천상의 보석이 깨지는 소리라고 할까, 웅장하고, 카오틱한 동시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우아하다. <No Shape>은 그렇게, 어쩌면 퍼퓸 지니어스 스스로 그려왔을 생사의 ‘shape’을 해체하고 ‘다른 면’으로 걸어가며 시작한다. 왠지 무덤가를 연상케 했던 커버는 이제, 동이 트는 따스한 세계로 천천히 넘어가는 모습으로 와닿는다.
이전에 그가 “빛 속을 걷고 있다”(‘Go Ahead’)고 노래했다면 ‘heaven’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Too Bright>에서 과감하게 ‘어두워지기를’ 택했던 그가 이번에 말하는 빛은 천상의 흔적이 있음에도 인간의 하늘에 가까이 있다. 창백하고 희기만 한 것이 아니다. <No Shape>에서 퍼퓸 지니어스는 자신과 ‘저들’, 그리고 “너무 밝은” 빛의 그늘에서 살짝 벗어나- 당장 눈앞에 있는 온기와 타인을 응시한다.
과연 1-3집에 비해 밝고 팝적인 레코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촘촘하고 경쾌한 리듬과 풍부하고 묵직한 그룹사운드는 절대 익숙한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평범’이라면 마이크 헤드레어스와 가장 멀리 있는 말 중 하나(그의 normal은 plain하지 않다는 뜻이다), 첫 곡 ‘Otherside’의 구성부터가 그 증거다. 클래식한 바이올린 연주와 음울한 미가 어린 보컬이 흐르는 ‘Choir’는 또다른 무언가다. ‘Wreath’의 후반부나, ‘Go Ahead’ 의 엇박은 또 어떤지. 퍼퓸 지니어스는 늘 최선을 다해 ‘weird’하다. 즉, 독특한 형태로 아름답다.
‘Wreath’, “wreath upon the grave무덤 위의 화분”. 화자는 언덕 위를 달린다. “모든 무게를 벗어 던질 거야, 내 몸이 포기하고 입을 닥칠 때까지.” 몸을 지치고 “닥치게” 만드는 행위는 그 생생한 호흡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자 하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화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프레임 위의 빛줄기를 본다”, “프레임 바로 위로 움직이고”, “무덤 위의 화분을 본다”. 그는 무덤 속에 누워 있지 않다. 무덤 바깥에서, 하루하루를 목격하며 살고 있다. 곡의 후반부에서 퍼퓸 지니어스는 “grave”를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수십 번에 걸쳐 노래한다. ‘Wreath’는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삶에 가닿는, 생의 에너지로 가득한 곡이다.
How long must we live right
Before we don’t even have to try?
- ‘Valley’, <No Shape>
그 하루하루에는 관계와 사랑이 빠질 수 없다. “내 손을 잡아, 내 모든 걸 가져가. 우리에게 찰나의 순간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게 줘.”, “내 사랑, 그들은 우리가 취한 형상을 깨트리지 못할 테니, 그 모든 목소리들이 슬며시 떠나가도록slip away 내버려 둬.“(‘Slip Away’) 서로의 신체에 맞닿아야만 취할 수 있는 따스함, 오로지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황홀한 ‘도피’. 뮤직비디오 속 두 배우(물론 그 중 하나는 아티스트 본인이다.)의 포지션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원초적’ ‘남성성’과 ‘여성성’을 입고 있지는 않다. 하늘하늘한 복장에 컬러풀한 메이크업을 한 그들은 서로를 보듬고, 손을 잡고 무작정 달리고, 과일을 따먹고, 풀숲에서 잠든다. “모든 점프와 박자 하나하나가 당신의 몸에서 태어나고, 당신의 몸을 통해 노래해. 나는 그 소리에 끌려가.” 시적인 묘사는 경쾌한 박자, 차분하고 고운 보컬과 만나 시청각을 풍요롭게 한다.
비디오의 막바지, 그들은 ‘요정’들을 피해 달리다 장막을 걷어내는데, 거기 있는 것은 따뜻한 빛이 아닌 거대한 불덩이다. 이 결말은 비극보다는 일종의 오픈 엔딩으로 해석된다. 앨범 발매 당시 퍼퓸 지니어스는 ‘Slip Away’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뜻함과 좋음을 훔치는 것에 관한 곡이다, 밖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건, 어쨌든 가져가는 것.” [NPR]
‘Just Like Love’가 ‘Slip Away’와 유사한 온도와 채도를 띠고 있다면, ‘Die 4 You’나 ‘Run Me Through’는 보다 관능적이고, 서늘해 보이지만 손을 가져다 대면 뜨거운 러브송이다. 자주색 아이섀도를 칠한 퍼퓸 지니어스의 우아하고 섹시한 체어 댄스가 중심이 되는 ‘Die 4 You’ 비디오를 살펴본다. ‘Queen’이나 ‘Fool’, ‘Grid’에서의 뚜렷한 응시에 ‘저들’을 향한 ‘F*** you’의 메시지가 있었다면- 카메라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 ‘Die 4 You’ 속 그에겐 (비디오 속에서는 아마도 정체모를 덩어리로 이미지화된)자신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는 뉘앙스가 있다. 그는 언제나 멋졌고, 언젠가부터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를 참고해[KEXP] 감히 말하자면, 살짝 더 편안해졌다고 할까.
다음 트랙 ‘Sides’에서, 퍼퓸 지니어스는 “가끔 넌 나를 아주 약간이라도 들여보내 주는 걸 잊는 것 같아, 가끔 넌 어딘가로 가버리곤 해”라고 노래하고, 피쳐링한 Weyes Blood는 ‘너’의 보이스로 “날 사랑하는 게 쉽지 않다면, 코드를 끊고 날 놓아 줘”라고 응한다. 곡은 이내 “사랑하는 건 쉽지 않아”라고 포괄하며 끝을 맺는다. 퍼퓸 지니어스는 ‘계속 해왔음에도 사랑을 모름’을, 그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동시에 사랑으로 가득한 순간의 감각을 “스피리츄얼한” 형태로 담아내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No Shape> 속 사랑은 그처럼 몸을 닳게 하고 상대에게 자신을 다 건네게 만드는 것인 동시에,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완전히 shaping 되지 않는 그대로 선명한 컬러를 띨 수도 있는 것이다.
무덤과 심장, 사와 생, 로맨스가 공존하는 <No shape>, 다채롭고 하나같이 아름다운 러브송 사이에서도 ‘Alan’은 다르고 특별하다. 처음부터 곁에서 함께 음악을 만들었던 그의 연인, “하루 24시간” 인생의 동반자 알란 와이플스. 퍼퓸 지니어스는 ‘마이크’가 되어 ‘알란’에게 속삭인다. “We are here, how weird?” ‘우리의 러브스토리’에는 극단적 고통이나 욕망, 드라마틱한 업앤다운만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모먼트가 있음을 노래한다.[참고: NPR]
“내가 욕심이 나버렸거든.(웃음) 이 좋은 감정을 조금 맛보고 이러는거지, 흠 이 상태로 계속 있고 싶어.”
- Mike Hadreas, interview by. Rebecca Nicholson 2020.05.02. [theguardian.com]
3년 후 발매된 5집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는,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정확히 필요했던 모양을 한 마스터피스였다. 펜데믹이 한창일 무렵의 신보라 안타깝기도 했지만, 덕분에 단절의 시대를 견뎠다. 당시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근 몇 년 동안 자신의 상태가 “laughing”과 “sort of irritated” 두 가지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새로이 느끼게 된 “커다란 감정”을 레코드에 담고 싶었다고. 커버에는 상반신을 노출한 채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는 퍼퓸 지니어스가 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 들어맞는 직감이기는 했다. 그러나 ‘강렬한 사랑과 욕망이 풍부하고 섬세한 웨이브로 넘실거리는 레코드’라고만 수식하기에 <Set My~>가 지닌 결은 지나치게 풍성하다.
‘불타는 심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험과 복합적인 정서를 탐구하는 <Set My~>, 이 더없이 볼드하고 센서티브한 앨범의 첫 문장은 “내 인생의 절반이 지나갔어”(‘Whole Life’). 직전 앨범을 열었던 ‘Otherside’가 삶의 ‘아더사이드’로 넘어가는 상징, 그 모먼트의 유동적인 기운이 묻어나는 곡이었다면, ‘Whole Life’는 정적이고, 회고적이며, 초월성마저 띤다.
Half of my whole life is gone
Let it drift and wash away
Shadows soften toward some tender light
In slow motion I leave them behind
- ‘Whole Life’,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퍼퓸 지니어스는 “이 곡에 담긴 슬픔에는 스윗함 또한 있다”고 말한다.[KEXP] ‘Without You’는 어떤가. 전형적 이별노래 제목인 듯도 했으나, 여기서 ‘you’는 관계의 상대방him도 ‘저들’them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울 안에서 너의 얼굴을 거의 찾아낼 수 있어.” 과거의 자신/자신의 일부였던 무언가로 해석되는데, 질병, 우울, 고통 따위의 한 단어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말하자면 덩어리나 색채에 가까울 듯하다, 퍼퓸 지니어스가 송라이팅을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창작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너 없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기분은 “가장 이상한, 알려지지 않은, 거의 좋기까지 한”, “흐릿한 모양, 뒤엉킨 테이프, 그렇지만 온전한”으로 표현된다. 긍정적/부정적인 양면이 공존한다-기보단 뒤얽혀 고요한 카오스를 이룬다. “커다랗고 좋은 감정”을 예술화하는 하나의 방법이리라.
이 작품에는 이렇듯 ‘다른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레코드 전체적으로도, 한 트랙 안에도. 슬픔과 고독에 평화가 있고, 의존성과 주도성이 함께 있고, 또 편안함 안에 두려움이 자리한다. 심장이 터질 듯 부풀고 피부가 달아오르는 상태, -퍼퓸 지니어스만이 쓸 수 있는 가사와 멜로디의 조합으로 묘사되는- 상대와 살을 맞대는 경험 역시 그러하다. 마이크 헤드레어스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매우 육체적/물리적인 무언가로 끌어들일funnel수 있는 쉬운 공간”[TheGuardian]이라고 일컫는, ‘섹스’ 말이다. 알란 와이플스와 함께 쓴 ‘On the Floor’, 바로 다음의 ‘Your Body Changes Everything’의 숨막히는 긴장은 첫째로, 끌리는 상대에 대한 떨림과 설렘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거기엔 두려움 또한 있다. ‘타인과의 만남은 아무리 미세할지언정 어느 정도의 거부감과 공포를 수반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는 아니다. ‘오래된 학습’의 잔재, 쉐임의 찌꺼기가 떠다닌다.
“퀴어 퍼슨이라면 섹스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역겹다고 여겨지는 자기 자신의 느낌’(의역)이 된다. 잘못된 부분, 더러운 부분. 내가 열 두 살 때 그랬다. 아무와도 섹스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내게 잘못된 뭔가가 있다는 말을 듣곤 했다, ‘내가 결국 누구와 섹스하길 원하게 될 것인가’ 때문에. 그건 굉장한 외로움, 수치심의 원천이 되고, 그 주위로 온갖 감정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거다, 그게 진짜로 뭔지 알아내 보도록 허락받기도 전에 말이다!”
- Mike Hadreas, interview by. Rebecca Nicholson 2020.05.02. [theguardian.com]
“그의 가슴이 가득 나를 덮고 있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게 내가 볼 수 있는 전부야.”, “문을 잠그고, 털어내고, 변화할 것이라 약속하고, 그 남자의 이름에 줄을 그어”, “이게 씻겨 내려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내 몸이 안전해지려면? 내가 빛으로 걸어나갈 수 있으려면? 이 심장이 내 것이 아니게 되려면?” ‘On the Floor’의 가사에서 일단 ‘그’와 ‘나’의 만남은 위험한/금지된 것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멜로디와 함께 곡 자체를 들으면,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자가 벅차 (좋은 의미로)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는, ‘그’를 떨쳐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만남을 기뻐하고, 심지어는 축복하고 기념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마지막 구절 “I just want him under my arms”에 이르러 정서가 비로소 하나로 모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 타인을 향한 감정과 몸과 몸의 만남은 매초 유동하는 것이며, 한곳에 묶어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퍼퓸 지니어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말하자면 ‘On the Floor’의 ‘다음 에피소드’ 같기도 한- ‘Your Body Changes Everything’의 쉐이핑은 탁월했다.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닫고 상대와 몸을 섞는 황홀한 여정을 묘사하지만, “fallin’ down”, “suffocate”처럼 ‘어두운’ 단어들을 배치한다. 귀를 압도하는 건반이 삽입된 그룹사운드와 그에 어울리는 보컬링은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거기엔 분명 혁명적인 숭고함이 있다. 특히 후렴의 “Your body changes everything”이 “Our body changes everything”으로 변환되는 지점에 이르면. 이어 화자는 “Can you feel my love?”라고 묻고, “I know”라고 수없이 반복하며 마무리한다. 바로 그 순간의 감정적 언어의 포착이다. (capturing emotional language of the very moment)
Our body changes everything
I can hardly breath
And now you’re right above me
And your shadow suffocates
- ‘Your Body Changes Everything’,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앞서 ‘On the Floor’를 가사-오디오의 순서로 간단히 살폈는데, 퍼퓸 지니어스 본인이 감독한 비디오까지 관람하면 트랙을 더욱 입체적으로/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흰 ‘남성용’ 민소매에 진, 워커 차림을 하고, 전신에 흙과 먼지를 묻힌, ‘낯선’ 분장의 퍼퓸 지니어스. 체인이 감긴 커다란 바위와 타이어를 쌓아 만든 의자를 감싸며 관능적인 댄스를 잇는다. 한 남자가 도중 끼어들고, 그들은 팔다리를 엮고 춤을 추며 서로를 샅샅이 나눈다. 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그는 타자이고 관계의 상대방일 것이다. 송라이터/싱어 마이크 헤드레어스에겐 늘 댄서/퍼포머의 기질이 묻어났다. 이번엔 본격적으로 ‘춤 추는 법’과 ‘몸을 다루는 법’을 터득한 듯, 자유롭고 능숙하고 농염하게 움직인다. 그가 해왔던 작업과 닿아 있으면서도 새로운, 다이나믹하고 더티섹시한 에스테틱을 두른 채.
“창작할 때 고립되곤 하는 마법의 세계가 진짜 몸과 이어지도록 도와주었다”는 춤, 그에게 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하는 행위”다. “운동도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스스로 더 나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한다”, “(병이 재발했다고 해도) 내 몸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KEXP]
위에 잠깐 언급했듯, 그의 원앤온리한 예술적 감각은 디렉팅으로도 발현된다. 개인적으로 ‘On the Floor’ 비디오보다 먼저 ‘Describe’ 비디오를 접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대뜸 플레이하고는 충격과 감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이후 크레딧 란의 “디렉팅: 마이크 헤드레어스”라는 설명을 읽고 놀라면서도 어쩐지 납득했다.
“그 오래된 로큰롤 노래들과 함께 자랐고, 그중 많은 것들을 인생 전체에 걸쳐 끌고carry 왔다, 그러나 항상, 그 세계에 완전히 속하진 못한다고 느꼈다. 그 점을 간직하고 이용하는 게 좋았다. 늘 그 공간들과 세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이들에게 매혹당해 왔다. 어떤 이들은 마음 속으로 굉장한 온전함을 느끼게 하는 이런 류의 거만함cockiness을 지니고 있다.”
- Mike Hadreas, interview by. El Hunt 2020.05.15. [nme.com]
퍼퓸 지니어스는 흰 민소매를 입은 일관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관능적으로 허리를 뒤틀며 상대방이 합류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여자를(!) 뒤에 태우고 바이크를 멋지게 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일종의 ‘패밀리 농장’. 그는 리더 역할로 보인다. 입에는 시가를 물고 비스듬히 기대어,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장난치는 것을 지켜본다. 심지어는 다른 남자와 나이프 결투를 하기까지. 전형적 가부장제에 기반한 ‘유토피아’ 상인가 싶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 ‘소녀스럽게’ 노는 여자들의 움직임은 퀴어하고, 나이프 결투는 섹슈얼한 안무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Queer Up”[NME] 되었다. 사실 ‘남자’가 남자인지, ‘여자’가 여자인지도 모호하다. 이 에스테틱/트위스트는 음악적 측면과도 일치한다. 마무리, 이들은 한데 모여 전신을 뒤섞는다. 아, 이제 진정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Perfume Genius’라는 스테이지 네임을 고려한다면 톰 티크베어의 <향수>, 그루누이가 사형대에 올라 향수를 뿌리자 벌어지는 ‘문제의 장면’이 겹치지만, 사심을 얹어 가져 오고 싶은 것은 워쇼스키즈의 <센스 8>(netflix), ‘8+n人 러브씬’이다.
“커버와 비디오가 바로 그 같은 것을 갖고 있길 바랐다. 따뜻하고 노스탤직하지만, 뭔가 좀 맞지 않는. 과도하게 남성적hyper-masculine인데, 거기 뭔가 빠진off 게 있다. 내 프레젠테이션, 내가 입은 것들-거기엔 분명 퍼포먼스적 요소가 있고 그게 정말 좋다. 그러나 또한 그 핵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그 순간 내가 있는 장소라는 점이 포함돼 있다.”
- Mike Hadreas, interview by. Rebecca Nicholson 2020.05.02. [theguardian.com]
“하고 싶은 것” 이라니, 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마이크 헤드레어스의 입에서 나오니 왠지 감격스럽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주저한 적은 없었지만, ‘해야겠어서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어서 하고 싶은 것’의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어서다.
“전에 만든 어떤 곡들은 반항적이었고, ‘사람들에다 대고sing AT people’ 부르는 곡들도 있었다, 화났었으니까. 그러다가, 현재 내가 뭘 느끼는지, 뭘 느끼고 싶은지… 또 내가 영감을 받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게 됐다. 가장 최근의 레코드는 그 모든 것들의 조화 아닐까 싶다. 처음에 썼던 방식으로 쓰고 싶었다. 그 가사들이 정말 자랑스러웠거든. 그런 식으로 쓰는 게 더 만족스럽기도 하다. 일부는 ‘메모리’지만, 보다 ‘스토리’가 되게 하고 싶었다. 정서 자체에 대해 쓰기보단, 그 정서들이 자리할 상황이 포함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 Mike Hadreas, interview by. Cheryl Waters, 2020.06.26. [KEXP (at Home)]
정서 자체이건 스토리이건 퍼퓸 지니어스의 모든 곡은 최고이지만, 원했던 바가 그러했다면- 스스로를 더욱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것 같다. ‘Jason’ 이야기다. 스물 셋, ‘제이슨’과의 하룻밤에 관한 스토리텔링. “내 옷을 벗기고 본인은 부츠마저 벗지 않고 있던”, “깨어난 후 나가달라고 말했던”. 보컬링은 (퍼퓸 지니어스라는 걸 감안해도) 미성으로 담담하게 이루어지는 와중, 높은 톤의 건반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사운드가 귀를 가득 채우며 고조된다. 그리고 엔딩. 단어가 모여 구성하는 문장을 인지하는 순간, 감탄의 숨을 내뱉든 말문이 막히든 눈이 절로 떠지든, 어떤 반응이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I stole $20 from his blue jean.그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20달러를 훔쳤어. I’m pretty sure that he saw me.그가 그걸 봤다고 꽤나 확신해.” 화룡점정이다. 이 콤플렉스한 모먼트를 위트로 감싸버렸다. 실제 있었던 일을 그저 옮겨온 것이라 해도- 역사적인 구절이다. 가사, 멜로디의 구성, 보컬의 딜리버리…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새로운 사운드경험을 선사한다.
‘Jason’에 이어 적으면: 그의 곡은 물론 자주 ‘개인적’이나, 그 기반이나 원천을 서술한다면 이모셔널emotional보다는 아티스틱artistic이나 스피리츄얼spiritual(그의 말대로) 등의 단어가 사용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일기장에도 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음악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리하여 청자/관객은 창작자의 감정에 파묻히기보단,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 어쩌면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자유롭다고 느끼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도 든다.”[TheGuardian]는 그의 말처럼- 이제껏 낸 레코드 중 가장 ‘안정된’ ‘힘있는’ 분위기를 띤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는, 부유하는 어둠, 파괴, 위태로움의 정서를 외면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 “어글리”와 “뷰티풀”에 대해 설명했듯, 퍼퓸 지니어스는 “어둠의 면과 빛의 면 역시 동시에 가져야 한다”[NME]고 말한다. “서로를 고양시킨다”고.
Why’d we hide?
My life for one more try
Your hand in mine
I’d run straight to the light
Oh, baby blue / I still see you
- ‘One More Try’,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네 손을 잡고 있으니) 빛을 향해 똑바로 달려갈 수 있는” 상태와 “베이비 블루’가 공존하는, ”한 번 더 시도하는 삶“을 고요하게 노래하는 ‘One More Try’. 이어지는 마지막 두 트랙, ‘Some Dream’, ‘Borrowed Light’에 그 ‘다크 파트’가 녹음되어 있다. ‘Some Dream’이 그 혼합물의 초현실적 형상화, 뮤직비디오가 그렇듯 혼돈이 묻어나는 곡이라면, ‘Borrowed Light’은 초연하게 정리하듯 맺는 곡이다.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이 모든 아름답고 드라마틱하고 영적인 것들이 전부 공허한 것,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쩌지”라는 아이디어가 들어간 “지금 당장 매우 깊게 슬픈” 곡이라고 설명한다. “pretty heavy shit”임에도 “당시에 고통스러웠던, 머나먼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는 ‘Dark Parts’처럼, 이 불안도 언젠가 그에게 기억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NME] 무엇보다… 모든 것이 “빌려온 빛”일지도 모른다는 슬픔 곁에는, “숨을 맞추고” “손을 맞댈” 너’가 있지 않은가.
No sun
Hangs outside
Just borrowed light
Now match my breathing
Now rest your hand in mine
- ‘Borrowed Light’,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존재의 “추와 미”, 시공간의 “빛과 어둠”을 감지하고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사물과 공기에서 낯선 가치를 발견해 내는 아티스트. 자신의 살갗에 있는 향을 음악에 녹이는 퍼퓸 지니어스, 마이크 헤드레어스. 그 고유의 향기는 타인/예술과의 상호작용으로 달라지고, 때문에 그의 음악은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늘 새롭다. 신중하면서도 용감하고, 방어적이지 않으면서 과장도 없다.
작년, 그는 6집 <Ugly Season>을 발매했다. 안무가 Kate Wallich와의 콜라보 작업, 댄스 피스 <The Sun Still Burns Here>로 시작된 레코드다. 초기 스타일이 떠오르기도 하는 보컬, 그러나 곧게 뻗어나가는 힘을 유지한다. 끝의 가느다란 진동은 불안한 떨림보다는 의도된 바이브레이션에 가깝다. 앨범 커버는 포토에서 다시 페인팅으로 돌아왔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얼굴이 페인팅을 가면처럼 쓰고 있다. 많은 픽션들이 다루어 온 주제이기도 하지만- 가면은 민낯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도록 하는 장치일 테다. (피부에 무언가를 칠함으로써 내면의 본질을 드러내었던 <Pygmalion’s Ugly Season> 필름 속 캐릭터와 닿아 있을 듯도 하다.) 내내 솔직한 음악을 해왔던 퍼퓸 지니어스에게 가면은, 또다른 영역으로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 레코드를 바탕으로 한 댄스 필름 <Pygmalion’s Ugly Season> 속 그의 포지션은 뮤직비디오에서와는 또 다르다. 본인의 보컬이 흘러나옴에도,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댄서로서, 화면의 구성요소가 된 것처럼 자리잡는다.
퍼퓸 지니어스에게는 이제 ‘뮤지션’보다는 ‘예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다른 아티스트에 대한 글에서 적었듯 송라이터, 싱어, 댄서, 디렉터, and 페인터 전부,라고 수식하려니, 그것도 영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음악과 안무를 만들고, 노래와 춤을 공연하고, 그것들이 포함된 비디오를 연출한다. 각각 한다는 뜻이 아니다. 창작과 퍼포먼스를 같은 코어에서 끌어올려 각자의 형태로 분리했다가, 다시 최상의 흐름으로 연결해 융합한다. “녹음을 하다 보면 곡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하는데, 어쨌든 만족스럽다”[KEXP]는 퍼퓸 지니어스, 그는 늘,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하나뿐인 방법으로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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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퍼포먼스, 피아노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면 눈을 커다랗게 뜨고 굴리거나 인상을 쓰곤 하던 퍼퓸 지니어스. 때로 무대를 뛰어다니거나 씩 웃기도 하나, 그 사이사이에는 긴장과 약간의 불안이 자리했다. 반면 그의 손과 입에서 비롯된 사운드는 몹시 고요하고 고운 색을 띠고 있었다. 녹음된 오디오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 뮤직비디오 속 그를 보는 것, 그리고 라이브를 시청하는 것은 각기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 편안하고 익숙해졌다는 증거인지- 최근 공연에서는 자주, 내내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것을 차단한 채 노래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또 달리 매력적인 와중, 그 독보적인 존재감은 여전하다.
* 참고 인터뷰
The Guardian
https://amp.theguardian.com/music/2020/may/02/perfume-genius-im-constantly-demanding-a-big-feeling
NME
https://www.nme.com/features/perfume-genius-interview-set-my-heart-on-fire-immediately-2669564
NPR
https://www.npr.org/2017/05/09/527096344/perfume-genius-is-still-figuring-out-how-to-be-in-love
KEXP, <Too Bright> 발매 직후
KEXP, <No Shape> 발매 직후
KEXP, <Set My~> 발매 직후
https://www.youtube.com/live/ATA_9ZxYeRg?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