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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pr 25. 2023

“당신은 무엇인가요, 제시?”

Jesse®, <Joker & Rainbow>



The Neighbourhood의 보컬이자 프론트퍼슨, 코어인 Jesse Rutherford는 변화된 아이덴티티를 작품에 반영할 때면 종종, 상징적 죽음을 고하곤 했다. n년 전에는 “이걸 장례식이라고 불러도 좋아”(‘R.I.P. 2 My Youth’)라고 노래했고, 27세가 되던 날에는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폭파하고 이어 ‘칩 크롬’을 탄생시켰다. 3월 말 낸 솔로 레코드 <Joker & Rainbow>에서 그는 칩 크롬을 ‘죽이고’ ‘조커’를 소개했고, 이어 그마저 파괴한다.

 

 <Joker & Rainbow> 커버.


몇 년 전, 페르소나 칩 크롬을 만난 제시 루더포드와 The NBHD의 송라이팅에는 일종의 절제미와 ‘재미’가 더해졌다. 트렌디한 팝록부터 올드스쿨 블루스와 컨트리까지 닿으며, 다듬어진 블루와 실버라이닝, 초월적 비관주의 등을 깔끔하게 배치했다. The NBHD와 잠깐 분리된 채로 낸 Jesse®의 최근 싱글은, 제시 루더포드가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Next Era’에 접어들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이번에 그는 무감각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공존하는 스피치를 쏟아내거나, 천연덕스럽고 위태로운 연극을 하지 않는다. 오랜 관계를 끝낸 후 “혼자 보내는 시간,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이 필요했다”는 제시.[Apple Music Radio] <Joker & Rainbow>를 떠올리고 완성하며 그가 주력했던 바는 아마도 ‘내려놓기’다.  


“(……)나는 대개 (곡의) 구조에 매우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았다.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곡을 쓰곤 했었고. 이걸(‘Joker’) 쓸 때는 그냥 멜로디 하나를 떠올리고 그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Rainbow’에서는 일종의 전통적인 공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클래식한 노래처럼 들리는데, 동시에 어떤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듯한 뉘앙스도 있다. (……)내겐 그게 중요했다, -나는 되게 진지한 사람이다(웃음). 나도 어쩔 수 없는데, 동시에 스스로 그걸 못 견뎌한다- 충분한 ‘멍청함stupidity’이 들어가는 것. 최상의 방법으로 dumb down하는 것.(……)”

- Jesse Rutherford, The Zane Lowe Show EP. 475 [Apple Music Radio]


(‘Rainbow’)“비가 내린  나오는무지개. “다들 모르지 않는 이야기인데, 그의 송라이팅과 보컬을 통하니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들린다. “너는 나의 천사야,  아마 죽었나봐”, “  배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느낌을 , 토할  같아양가의 정서를 묘하게 블렌딩한 가사는 명확하고 시적인 형태로 멜로디와 만난다. “You motherf***er you’re too easy to love / My mama even likes you too”: “사랑에 빠지기 지나치게 쉽다에 있는 애증의 뉘앙스는 청자가 곡을 쉽게 ‘닫아버릴 없게 하고, 결국  작품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만든다. 예쁜 멜로디에 “motherf***er”라는 비속어를 섞어 19 딱지를 붙여버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 ‘mama’ 등장시키는 ‘고약함  어떤가.  다채롭고 ‘정갈 양가성의 카오스는 제시 루더포드의 송라이팅에 있어 왔던 요소이나, 창작자의 의도대로 한결 단순하고 살짝 장난스러운 방향으로 ‘다운그레이드’(혹은 업그레이드) 되어 도리어 풍부한 울림을 준다. 힘을  “dumb down” 멜로디가 부담없이 귀를 열고, 보컬과 가사가 서서히,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심장에 스며든다.


트랙 순서와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라인은 ‘Joker’에 ‘Rainbow’가 뒤따르도록 구성돼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리스닝 경험을 고백하면: 두 곡을 차례대로 흡수하기보단, 번갈아 듣다 한꺼번에 받아들이게 됐다. 창작자 본인은 “무언가의 인트로덕션처럼 다가왔다, 곡보다는 작은 순간little moment에 가까워 좋았다”[Apple Music Radio]고 했으나, ‘Joker’는 ‘Rainbow’나 다른 피스의 ‘도입부’보다는 자체로 독립적인 피스이자 ‘제시 루더포드’에 대한 ‘소개’에 가깝게 느껴진다. ‘조커’라는 키워드로부터 삶과 관계,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 여기엔 아티스트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청자 개개인의 내면에 반사되어 달리 구체화될 가능성 또한 있다.


Call me insane, put me in a box

Tell me who I am and all that I’m not

Are you confused? I know, me too

Winning or losing, I don’t need a suit

Put me on trial and I’ll tell the truth

If you want me to

- ‘Joker’


 https://youtu.be/DqaAsvUcJJQ

'Joker' mv.



https://youtu.be/VNPn3Y09Lxc

'Rainbow' mv.


‘Joker’ 비디오, 화면에 처음 보이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칩 크롬의 얼굴이다. 카메라가 줌 아웃되며 그것이 생명을 잃은 ‘머리’였음이 드러나고, 그 형상을 받치고 있는 손이 보인다. 손의 주인은 조커 페이스에 수트를 입은 제시. 그는 칩 크롬의 머리를 들고 왈츠 스텝을 밟고, 이내 내려놓으며 작별을 고한다. 이 퍼포먼스는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던 반면, ‘Rainbow’ 비디오의 배경은 빛이 내리쬐는 황무지다. ‘조커 제시’는 오랜 관계를 끝내고 단잠에서 깨어나 홀로 자갈밭을 배회한다. 폭발하는 집과 동화적으로 쏟아지는 파편들 사이 우뚝 선 ‘조커’. 브릿지에 이르자 그의 머리가 터져 버린다. 그렇다면 비디오의 엔딩, 반쯤 그늘진 채 이쪽을 돌아보는 자는 ‘무엇’인가, 무엇도 될 수 있고 “당신들이 말하는 그 무엇도 아닌”, 제시 루더포드다. 이런저런 가면을 골라 쓰며 언제나 솔직한 자신이었던, 인간/아티스트로서 변화하고 성장하며, 때로 ‘길을 잃는’ 여정을 세상과 기꺼이 공유해 왔던.


‘마침내’ 기나긴 ‘방황’ 끝에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것이냐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일단 그 과정은 기승전결에 부합하는, 대단원을 위한 단계들이 아니며, 각 작품은 자체로 존재한다는 당연한 포인트를 짚는다. 다음으로-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무한한 유동성이야말로 제시 루더포드의 고유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어도 굳건하게 한 자리를 지킴으로써(구체적 표현법은 달라지더라도) 많은 이들의 기준이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러나 제시 루더포드는 가장 솔직한 변형자shapeshifter다. (그가 칩 크롬 분장을 하는 일련의 비디오들을 떠올려 보라.) 내/외면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자기화해 작업물에 반영하며, 그 유연성과 민감함으로 주변, 팬, 리스너, 어쩌면 헤이터,들에게 영감의 창을 열어 준다. 이 작용은 감사하게도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사람들 앞에 서면, 그들에게 이미 말했다 하더라도, 내가 누군지 그들이 말해 주기도 한다.”고 제시 루더포드는 말한다.[Apple Music Radio]  


‘칩 크롬 에라’ 당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언제나 사이에 껴 있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기분을 느낀다고 했었다.[interviewmagazine.com] “내가 누군지 말해 봐, 그 중 아무것도 내가 아니야”(‘Joker’), 악틱 몽키즈의 데뷔 앨범 타이틀-“Whatever people say I am, that’s what I’m not”과 표면적으로 닮아 있으나, 그 특정한 나이에만 유효한 반항/반작용과는 종류도 무게도 다른 선언(물론 이전 글에 적었듯 악틱 몽키즈는 그 의미를 바꾸고 확장시키며 유효하게 유지해 왔다), 오래 전 성숙했고 영원히 규정되지 않을, 인간적/예술적 존재의 것이다. 제시 루더포드는 스스로를 틀에 끼워맞추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특히 최근 들어) 꾸준히 보내 왔다. 그 주제는 섹슈얼리티일 수도, 음악 스타일일 수도, 삶을 대하는 태도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여기서 직전 솔로 앨범의 ‘Girls & Boys‘나 ‘Bi’, 네이버후드 작업이었던 ‘Pretty Boy’나 ‘Middle of Somewhere’, 혹은 조금 더 거슬러 ‘Born to be Blonde’ 같은 곡들을 어떤 ‘근거’로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제시 루더포드가 쓴 문장들은 우리가/그들이 바라보고 싶은 대로 작용해주지 않을 테다.


“……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이런, 나 완전 자신에 대해 확신했었구나! 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 이… identity thing 말이야.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정말로 이상한 거야. 스스로 누구인지에 대해 매우 확신해야 한다고들 하잖아. 근데 선택지가 너무나 많고, 영향과 영감을 주는 것들도 너무 많단 말이야. 나는… 나는 그냥 확신이 안 서. 그리고 그게 괜찮다고 생각해. 사람들도 그렇게 느껴야 맞는 거 아닌가? 나는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 Jesse Rutherford, The Zane Lowe Show EP. 475 [Apple Music Radio]


“당신은 ‘무엇’인가요, 제시?”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제시는 언제나 제시였다, 기성의 언어로 자신을 정의함으로써 누군가의 짐작이나 기대에 응할 의무가 없는. 그는 무슨 ‘baiting’을 하는 것도, 자아 탐구를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장을 갈망하고, 현실과 연결되며 타인과 관계하려 애쓰고, ‘어딘가로 빨려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순간의 진실을 찾아낸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아이덴티티 그대로를 드러내는 용감하고 신중한 스토리텔러, 제시 루더포드. 그의 목소리가 몹시도 필요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

재작년 쓴 ‘칩 크롬’ 리뷰를 다시 읽고: 표면적이고 어수선하며 (나쁜 의미로)제멋대로다. 쓸 당시 덕심이 부족하여 그다지 돼먹지 못한 글이 나온 것 같다. 핵심이 앨범에 다 있었는데 줍지 못하고 이리저리 버려 놨다. 미안 칩 크롬, 조심히 날아가렴. & 만나서 반가워 제시, 제대로 좋아해 줄게.



* 참고 인터뷰

https://music.apple.com/kr/station/jesse-and-alexis-ffrench/ra.1678800018



* about 'Born to Be Blonde'

https://brunch.co.kr/@yonnu201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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