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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02. 2023

블론드 & 크롬

Jesse®, ‘Born to Be Blonde’, <&>



https://brunch.co.kr/@yonnu2015/290


‘무한한 유동성을 지닌 변형자shapeshifter’ Jesse Rutherford. 앞선 글에서는 그가 걸어온 길과 다다른 장소에 관한 나름의 해석을 정리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블론드 에라’로 거슬러 올라가, 세기의 트랙 ‘Born to Be Blonde’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5년쯤 뒷북으로)그 천재성에 감탄해 본다.

 


<&> 커버.


The Neighbourhood의 팬이었다면 오히려 더, Jesse®의 첫 솔로 스투디오 레코드 <&>은 그다지 귀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물론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아티스트를 존중해야 한다’는 법칙은 대개 옳다. <&>의 가치를 말할 때는 이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뿐이다. 일렉트로닉과 트랩합이 자주 들리나, 형식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거나 버무렸다. 개성이 뚜렷한 곡들은 따로 놀지 않고 한데 모인다. 오토튠과 클럽 비트, 종종 표면적으로 가볍고 corny한 가사들은 일종의 위장이다. 이 쉘로우 그레이브를 파고들면, 청자는 “내면에서 썩어들어가고 있는”(‘Blame’) 덩어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제시 루더포드의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까닭  하나는 가끔 이모션이 투머치 할지언정 ‘땅에 발을 딛고있어서다. 이는 경우에 따라 ‘비행기를 타고 나는우화를 거치는데, 추락 혹은 허공에 묶이는 모먼트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다채로운 결과 다크한 재치를 겸비한 ’Born to Be Blonde‘ 그렇다. 익히기 쉬운 멜로디와 천연덕스럽고 고운 보컬이 순조롭게 귀에 감긴다. 언뜻 단순해 보였던  트랙은 들여다볼수록 복합적이다. 제시 루더포드가 탈색을 하고  펀치라인과 비유들은 의도적으로 터무니없고 피상적이며, 자아도취적인 동시에 미묘하게 자기비하적이다.  문장들이 여느 래퍼 꿈나무들의 그것처럼 얕고 cringe하지 않은 까닭은, ‘스타덤 ‘스타됨 무의미함과 공허함, 외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구성된 것이어서다.(‘Guinea Pig’  나르시시즘도 이에 연결할  있다.) 그러나 완전한 페이크는  아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픽셔널한 캐릭터성이 창작자의 조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https://youtu.be/X09C8jz2jJY

'Born to Be Blonde' mv.


Zack Sekuler가 연출한 비디오를 시청하면 숨은 의미를 보다 직관적이고 분명하게, 한층 풍부한 ‘재미’를 감각하며 이해할 수 있다. 올드스쿨한 뉘앙스의 흑백 화면, 금발을 하고 닷 패턴 셔츠를 입은 제시(블론드 1)가 차분하게 리듬을 타며 노래한다. 그러나 곧 비디오의 전개는 심상찮은 턴을 맞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일지도(금발이 되기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며 불특정한 청중에게 말을 건네던 화자는 “You were born to be me / I was born to be you”라고 verse1을 마무리한다. 이때 ‘you’가 지칭하는 대상은 앞 맥락에 이은 ‘그대들 모두’에서 특정한 ‘너’로 틀어지고, 비디오는 캐릭터 안에 존재하는 ‘남성성’/‘여성성’의 양면을 시각화 한다. “You were born to be me”라고 ‘블론드 1’이 노래하면, ‘같지만 다른’ 제시(블론드 2)가 등장해 “I was born to be you”라고 받는다. 역시 닷 패턴의 셔츠를 입고 있으나, 카라가 없고 어깨와 소매에 퍼프가 있어 ‘여성복 블라우스’로 분류될 법하다. 그는 소위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행동들-몸을 앞뒤로 흔들며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다시거나, 눈을 살며시 내리깔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등-을 하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verse2로 넘어가면, 화면은 앤디 워홀식 팝아트 필터를 입고 ‘블론드 2’를 조명한다. 복장과 행동의 ‘남성적’/‘여성적’ 이미지를 언어로 옮기니, 그 구분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이 새삼스럽다. 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그리고 얼마나 (두려울 정도로) 촘촘하게 내면화되어 있는지. 여기, 이를 예리하게 감각하는 제시 루더포드의 퀴어니스가 있다. 처음부터 그는 ‘blond’가 아니라 ‘여성형’ 워딩 ‘blonde’를 택했다.


verse2가 끝나며 ‘블론드 1’과 ‘블론드 2’가 함께 “I’m a f***ing icon”이라고 뱉을 때쯤, 시청자는 비디오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된다. 꽉 차 있던 팝아트 화면에서 카메라가 줌아웃되며 그것이 수트 차림의 누군가가 들고 있는 핸드폰 화면임이 드러나고, 그는 예상할 수 있듯 제시 루더포드다. 그의 머리카락은 블론드 1, 2처럼 깔끔한 원 톤 금발이 아니다. 갈색의 뿌리가 돋아나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헤어 제품 코너에 멈춘 그는, 염색약 포장지에 인쇄된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브릿지의 가사는 탈색 과정을 묘사한다. “두피에는 딱지가 지고, 뿌리는 타고, 머리 끝은 갈라진.  모든 과정을 견디면, “God damn I’ll look cute” 그러나 화면  제시는 염색약을  내려놓고 자리를 뜬다. verse1 가사가 다시 흘러나오는 가운데, 어두운 터널을 지나 해변으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I was born to be blonde” 라임을 루즈하게 맞춰 의식의 흐름처럼 붙인 “I’m getting bored of this song” 서사를  ‘완벽하게 만든다. 이때쯤 제시는 응시하고 있던 핸드폰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해변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 쓸쓸한 등을 비추며, 비디오는 끝난다.


곱씹게 되는 것은 , ‘화면 제시가 두르고 있는 콤플렉스한 상태다. 주로 옆모습이나 뒷모습만을 보여주며,  표정 없이 눈을 내리깔거나  곳을 응시하는. 같은 앨범의 ‘Blame’ 비디오, 어두운 조명 아래 얼굴을 카메라로 들이미는 제스처와 반대이나, 어떤 면에서는 닿아 있다. 내면의   구멍을 관조하는(인식하고, 내버려두는) 듯한 정서가 <&> 전체에 흐른다. ‘Born to Be Blonde’    뛰어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허구적 캐릭터성을 입은 블론드 스토리텔링이 아티스트의 일부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브릿지의 마지막 구절은, “Then I think I might be ready for you 그러고 나면  맞이할 준비가 될지도 몰라”. 앞선 “You were born to be me / I was born to be you” 통한다. 나르시시즘적 껍데기인  전시되었던 ‘블론드 1, 2’,  하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가면이기도 하다. 그가  이상 블론드 헤어를 고집하지 않으리라는 비디오 엔딩의 암시는, ‘이제 ‘위장없이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겠다 선언의 실마리가 아닐까.


더 나아가, 그 저변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칩 크롬의 복선이 깔려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어쩌면 창작자도 몰랐던). 염색약 코너에 멈춘 금발의 제시에게서, ‘Pretty Boy’ 비디오 속에서 지친 손놀림으로 분장을 지우던, 혹은 일련의 비디오들 속에서 분장을 하던 칩의 뺨에 묻은 페인트의 탁한 은빛이 비쳤던 것도 같았다.


The NBHD의 첫 정규 앨범에서 “세상을 내 손 안에 두길 원해”(‘Sweater Weather’)라고 노래하던 제시 루더포드는, 솔로 첫 정규 앨범에서 “세상이 내 것인 것처럼 느끼곤 했어, 지금은 뒤쳐지고 있는 기분이야.”(‘IDK’)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블론드부터 크롬까지, 기꺼이 텅 빈 아이콘이 되었다.



Born to Be Blonde

Written by. Jesse Rutherford & Dylan Brady


I was born to be blonde, I was raised by my mom

She was made for the job, she’s a saint like Laurent

I was born to be blonde so I say what I want

I get paid when I want, I get laid when I want

I was born to be blonde, maybe all of us are

If you gave it a try you would feel like a star

I was born to be blonde and you were born to be too

You were born to be me, I was born to be you (Ooo)


I was born to be blonde, too shallow for you

I’m Axl Rose in ‘84 (Yeah) or in a throne we can too (No)

Like Rodman on the court hanging with Kim Jung Un

Better warn you I’m blonde, you never know what I’ll do

Always having more fun, (Yeah) it’s sad but it’s true

I’m Chanel winter fall, you’re Michael Kors at the mall

I’m Madonna with Pac, (Yeah) you're like the dancer that she fucked (Fucked)

I was born to be blonde, (Hey) I’m a fucking icon (Ah!)


Scabs on my scalp, burning my roots

And when it’s all over, god damn I’ll look cute (Ooo)

Splittin’ my ends, purple shampoo

Then I think I might be ready for you


I was born to be blonde, I was raised by my mom

She was made for the job, she’s a saint like Laurent

I was born to be blonde, can’t tell me I’m wrong

I was born to be blonde, I’m getting bored of this song



https://youtu.be/X09C8jz2jJY





+

다른 한편으로는 ‘Bloom Later’에 꽂혀 있는데. ‘Born to be Blonde’의 오디오는 깔끔하고 가벼운 톤 안에 복합적인 속뜻을 품고 있었으며, 비디오는 기승전결/트위스트와 함께 잘 짜여 있었다. ‘Bloom Later’의 오디오는 묵직하고 dope하면서도 여리게 흐른다. 시적이고, 애처롭고, 느긋하고, 자유롭고… 비디오의 에스테틱도 그렇다. 탈색모를 잘라내 짧게 솟은 머리카락, 해맑게 웃으며 꽃밭을 뛰어다니는 제시 루더포드를 루즈하게 조명한 슬로모션은 약간, 초현실적인 미를 두르고 있다.


https://youtu.be/LoPz56gtdZo

'Bloom Later'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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