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크루즈 웬즈데이 윤이형 최고
본즈 앤 올과 맥심 밸드리를 쓰고 난 후 좀 놀았다. 세이브 원고를 다듬고 기획안을 짜다 만 후 영화와 드라마를 마구 보며 제대로 된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았다. 오피셜 컴피티션을 보고 조금 끄적이다 영 완성할 의욕이 나지 않아, 더 메뉴를 보고 연결할 지점이 있으면 써야겠다고 미루었다. 그리하여 12월의 마지막 날 저녁 더 메뉴를 보았다. 어떤 대화의 주제와 특정 대사가 작가의 감수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일종의 소강적 클라이맥스랄까(?무슨 말이니)싶은 전개가 내 입맛엔 좀 투머치 할리우드스러워서, 잌 하고 집중력을 잃었다. 별로였던 점을 먼저 언급했지만 사실 잘 봤다. 올해 마지막 영화로 나쁘지 않았어.
두 작품 모두 작가를 반영했을 인물이 보였는데, 그들은 풍자 혹은 응징의 주체이면서 대상이기도 했다. 자조가 묻어났다는 것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비슷한 데가 있지만 결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역시. 내 역량으로는 함께 두고 쓰면 억지스러운 흐름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 사실 다 핑계다. 쓰려니 이상하게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뒀다. 취향을 건드린 요소가 둘 다 있긴 했는데, 라이팅 버튼을 누를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헉 했던 장면들은 있었다. 오피셜 컴피티션에선 아마 관객 대부분이 기억할 페넬로페 크루즈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씬이었고, 더 메뉴에서는 어쩌면 어떤 관객은 기억하지 못할 안야 테일러 조이와 주디스 라이트의 모먼트였다. 헉의 뉘앙스가 전자는 헉 세상에 최고다, 였다면 후자는 헉 너무 좋잖아, 였달까.
그래서 기승전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스 라이트. 크레이지한 헤어에 번쩍거리는 패션을 한 괴짜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라니… 늘 리스펙하는 배우이긴 했지만 아직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속 그를 누를 내취향 캐릭터를 만나진 못했었는데, 아니 감독님 속편 내실 생각 없겠죠 나 롤라를 더 봐야겠는데. 그리고 주디스 라이트. 영화 본 까닭 중 하나였는데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다. 그만의 사소한 제스처들을 몹시 좋아한다. 더 폴리티션 n차 하면 잔뜩 볼 수 있으니까 뭐.
한 나흘 집에 틀어박혀 봤던 것들은 브로드처치 전 시즌, 웬즈데이, 글래스 어니언, 젠틀맨. 브로드처치는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오는 작품. 잘 만들었다는 뜻이다. 시즌1의 결말 선택에 조금 의문이 들었는데 2를 보며 이해했다. 3은 앞 시즌들을 감싸주면서 별개로 훌륭했고.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초과하므로 다시 보진 않을 거 같다. 캐릭터적 매력은 주로 두 주인공이 다 가져갔다. 앨리 밀러 만세, 알렉 하디 만…세? 앨리는 수사를 하고 알렉은 인상을 구긴다. 데이비드 테넌트 얼굴 너무 작품 톤에 어울리도록 웃기게 쓴다. 웬즈데이는 전체적으로 재밌었는데 살짝 유치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팀 버튼 연출은 대개 좀 유치한 스토리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스토리는 그렇다 치고, 이 노잼 헤테로 로맨스 라인 웬말이냐! 타일러는 웬즈데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고 자비에는 좀 전형적 내취향이긴 했지만 캐릭터에 힘이 없었다. 자비에는 뭐니뭐니해도 자비에 플림톤이지.(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AHS) 그러니 웬즈데이 아담스와 이니드 싱클레어 쉽을 타도록 하겠다. 결국 흠 잡을 데 없이 흥미로웠던 건 웬즈데이 아담스와 제나 오르테가.
글래스 어니언은 볼만했다. 다니엘 크레이그 인터뷰에서 제임스 본드 대놓고 싫어하던데 여기선 즐거워 보여 다행이야. 나이브즈 아웃과 겹치는 주제, 주인공 여성. 잘 짜인 팝콘 추리극에 동시대성이 위트있게 녹아들어 적당한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고르자면 나이브즈 아웃. 글래스 어니언엔 토니 콜레트가 없잖아. 또 크리스토퍼 플러머 때문이다. 두 번 봤고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한데 슬퍼서 못 봐. 글래스 어니언은… 자넬 모네 멋졌고, 덕질 모먼트는 역시 에단 호크와 휴 그랜트. 음… 휴 그랜트였지! 아마 그래서 다음 날 젠틀맨을 보기로 했나보다. 그렇지만 젠틀맨은 실망스러웠다. 매튜 매커너히와 미셸 도커리는 핫했고 다른 배우들도 이름값 했지만 그게 다였다. 지루한 스토리텔링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올드한 유머감각. 레이시즘적이고 호모포빅한 뉘앙스가 있는데 문제 삼긴 애매한 정도였고 아무튼 재미도 그럴듯한 이유도 없었다. 딱 한 마디만 얹자면, 아니 헨리 골딩을 그렇게 밖에 못 쓰냐고. 휴 다들 애프터 양이나 보길 바라.
또 그 사이사이 윤이형의 러브 레플리카를 읽었다. 이제껏 읽은 소설집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뭔가 적어보고 싶지만 마음을 채우는 문장들을 잔뜩 읽어서인지 내 문장이 잘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도 소설 리뷰는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처음으로 빠졌던 픽션의 형태는 동화와 소설이었다. 기억이 닿는 곳부터 최애 작가를 적어보면, 미하엘 엔데와 C.S. 루이스에서 아서 코난 도일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이어졌고… 하이틴 시절 미하엘 엔데(그러니까 모모와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자유의 감옥과 거울 속의 거울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다)와 김승옥, 이상, 김훈, 스콧 피츠제럴드, 헤르만 헤세……(여기까지 나열한 작가 중 아직도 읽는 이들은 이상, 엔데, 헤세.)를 지나 스무살 이후 김사과, 황정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윤이형. 여기까지 왔다. 김영하는 거의 다 읽었지만 한 번도 완전히 좋아했던 적은 없었고, 김숨과 임솔아의 경우 최애로 꼽지는 않으나 완전히 좋아한다. 요시다 슈이치나 주제 사라마구는 대체로 좋은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퍼레이드와 예수복음) 그래서 현재 최애는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황정은, 윤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