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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pr 11. 2023

본즈 앤 올과 본즈 앤 올 지버리시

까미유 드안젤리스의 <본즈 앤 올>, 루카 구아다니노의 <본즈 앤 올>



* 까미유 드안젤리스의 <본즈 앤 올>과 루카 구아다니노의 <본즈 앤 올>의 핵심 전개 포함

 


장편소설의 첫리딩은 꼭 진행중인 글 작업이 0인 휴무일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로 하루이틀에 걸쳐 후루룩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날이 드물어 갈수록 월평균 독서량이 줄어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러하여 본즈 앤 올도 영화를 본 지 얼마 안 되어 책이 생겼지만 이제야 읽게 됐다. 까미유 드안젤리스의 원작은 일단 재미있다. 잘 읽히고,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심리 묘사도 섬세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읽을수록 영화가 더 좋네,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런 경우 거의 없는데. 책이 별로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영화 각색이 그만큼 취향이었다는 것. 파워 오브 도그나 캐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영화랑 책 둘 다 각각 다르게 좋다,였는데 본즈 앤 올은 영화가 확실히 더 좋다… 영화로 이야기를 처음 접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책을 먼저 읽었어도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됐을 것 같다.

 

인물 설정들에 차이가 있는데, 성별이 뒤바뀐 경우가 많다. 매런을 키우고 떠난 것이 엄마, 카니발리즘 유전자는 아빠의 것. 드안젤리스가 이걸 노리고 문제삼기 위해 쓴 것인지 그냥 주인공 서사 만들기의 일환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책에서는 리와 매런의 공통점이 대디 이슈가 아닌 마미 이슈였고, 여기 좀, 모성 이데올로기의 흔적이 있다. 매런을 보호하고 키웠지만 그를 버린 것이 된 매런의 엄마. 물론 매런은 엄마를 이해하고 끝에는 그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남긴다. 그러나 리의 엄마는 어떤가, 매런의 엄마와 같은, 그러니까 ‘엄마라면 으레 해야 할’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 “냉장고도 채워두지 않는” 엄마다. 책에서 리가 먹은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의 n번째 남자친구였는데, 술을 달고 살며 폭력을 행사한 건 그였음에도 리가 미워하게 되는 건 결국 ‘고만고만한 놈들을 집에 데려오고 나와 동생을 돌보지 않았던 엄마’인 거다. 케일라와 리의 아빠가 다른 것도 ‘엄마가 그런 여자여서’라는 식으로 설명된다. 영화에서도 그런 대사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있었더라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거다.(원작에서는 리에게 접근하는 젊은 여자들을 서술할 때도 약간 슬럿…으로 대상화하는 게 감지되고…이건 리를 좋아하는 열 여섯 살 매런의 시선이어서, 라고 볼 수는 있다.) 리의 엄마가 잘못한 건 맞지만, 짚고 넘어가 보는 거다.

 

때문에 리의 ‘고백’ 장면도 다르게 다가온다. 리에겐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식인을 목격한 게 더 이슈였어서, 이걸 듣는 매런의 정서에 질투가 섞여들기도 한다. 영화는 리가 카니발리즘 유전자를 준, 늘상 폭력을 행사했고 자기를 먹으려고 했던 친아빠를 먹게 만들었는데. 엄마탓,을 차단하면서 리의 서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원작은 이 설정이 다르기도 하고, 매런의 시선으로만 그려져서인지 리의 위태로운 자기파괴욕이 별로 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흥미로운 성별 반전은, 먹는 대상에 있다. 원작에서 매런이 이제껏 먹은 이들은 죄다 또래 남자다. 주로 로맨틱한 감정이나 성적 호기심으로 매런과 단둘이 있으려 해서 일이 벌어지는 것. 책에 등장하는 유일한(유일하게 명시된) 여자 카니발이 매런이라는 것과 겹쳐보면 이 ‘식성’은 의도적이다.(책을 그대로 영화화했다면 <로우>와 좀 닮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매런이 사람을 먹는 첫 장면은 어떠했나, 동급생들과의 파자마 파티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제 또래 여자의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매런이 상대의 냄새를 맡고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 모양에는 섹슈얼 텐션이 분명 있었다.

 

이 점을 인지하고 이어 읽으며, 유원지에서 리가 헌팅하는 장면이 책에도 나올까, 나온다면 혹시 ‘이런 식으로 다를’까,라는 짐작을 했는데, 들어맞았다. 상황은 동일하나, 그 대상이 여자, 그것도 매런 또래 소녀다. 리는 홀로 ‘이팅’을 마치고 설리반과 있는 매런에게 합류한다. (책에서는 이때쯤 설리반이 재등장해 두 사람에게 하룻밤 묵을 곳을 제공해준다. 브래드와 제이크는 각색 과정에서 창조된 인물이고. ‘이터’가 아님에도 카니발리즘에 매료되는 이가 원작에도 등장하는데, ‘먹히길 원하는 자’의 형태다.) 그래서 매런이 질투를 하기도. 영화에선 그 헌팅 대상이 리보다 대여섯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되는데, 영상화 했을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남자가 자기보다 어린 십 대 여자를 성적으로 유인해 뜯어먹는 묘사를, 글로 읽었을 때와 영상으로 관람했을 때 충격은 분명 다를 테니. 그치만 그게 다가 아니었을 거다. 와이프와 아이가 있는 자가 왜 굳이 낯선 남자애를 따라 풀숲으로 들어갔겠냐는 거지. 원작 세계의 관계성은 all so straight 했어서 말이다… “queer up”[NME]이라는 게 이건가! (그거 아니야… 맘에 드는 표현 얻어주워서는 자꾸 쓰고 싶어함)

 

설리반=설리도 아주 다르다. 그가 사실 매런의 할아버지였다는 게 원작의 주요 플롯 트위스트. 손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보호자처럼 접근한 후 리와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세상 모든 아이는 실수”라며 매런을 해치려 한다. ‘죽은 자만 먹는다’고 말하거나, ‘머리카락을 모은다’거나 한다는 디테일은 동일한데, 존재 이유가 다른 인물이랄까... 영화는 ‘자손을 먹으려 하는 카니발’이라는 캐릭터성을 리의 아빠와 매런의 엄마에게 (각기 다른 형태로) 나눠 씌운 것 같고. 설리가 매런을 해치려 할 때 리가 마침 와서 위기를 넘기는 전개는 같지만, 원작은 매런이 욕실에 있는 동안 리가 설리를 먹게 만든다. ‘구해 주는’ 거지. 그날 밤에야 둘은 첫키스를 하고, 매런이 ‘어쩔 수 없는 욕구로’ 리를 먹는 동안 리는 그를 내버려둔다. 자세한 묘사는 없고, 다음날 아침 매런이 상황을 돌이키고 리의 기억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영화에서는 리가 설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 매런이 설리의 심장을… 꺼내버린다. 이렇게 적으면 이상한 사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장면 매우 좋았다…기보단 굉장했다. (테일러 러셀 최고) 그 다음에… “Eat me, bones and all.” 씬이 등장하는 거다.

 

리가 유원지에서 사람을 헌팅해 먹는 장면, 또 매런이 리를 먹는 장면을 원작과 영화가 다르게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첫째로: 책에는 사람을 먹는 것에 대한 묘사 자체가 거의 없다. ‘먹었다’는 이야기는 자주 나오고, 매런이 그들에게서 맡는 냄새, ‘내가 저 사람을 먹게 되리라’고 깨닫는 순간 등등은 디테일하게 적혀 있지만, 바로 ‘그 행위’에 대한 건 굳이 없고 일종의 블랙아웃으로 처리한다. 영화에도 전 과정이 등장하는 건 아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긴 한다. 리가 방금까지 끌어안고 있던 남자를 베고, 뜯어먹으면서 조용히 매런에게 손짓하는 장면의 기이한 유대감-

 

여기서  번째 차이를 이어 적으면: 책은 결국 ‘매런의 이야기. 매런과 리는 내내 키스도 하지 않은 상태로 동행한다. 처음부터 서로 끌리고, 특별한 본딩도 있는데, 영화의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둘밖에 없는 듯한-  느낌은 아니다. 매런에게 리가 필요했다는  감지되는데, 리에게 매런이 ‘필요했는지는 딱히 언급되지 않는다. 리의 포지션 자체가 조금 다르다고  수도 있겠다. 플롯은 매런의 일인칭 서술로 진행되고, 다른 이들이 그렇듯 리도 매런에 의해 관찰됐다. 매런이 어떤 ‘정착지 찾는 것도 완전히 홀로된 다음이다. 이후 매런은 카니발이 아닌 또래 남자를 만나고, 그를 ‘유인 ‘이팅 시작하기 직전에 작품이 끝난다. 결론적으로 보면 리도 그가 먹은 또래 남자  하나가  . 물론 리와 매런의 관계는 다르다. 피해자로 당한  아니라 기꺼이, 그리고 이해하며, 먹혔다고 할까. 영화에서는 리가 애원해서 먹은 것이지 욕구 때문이 아니었고- 그러니까 매런의 사랑에 대해서는, 영화가 희한하게  희망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원작은 말하자면 로맨스보다는, 매런이 본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성장 스토리에 가깝다. 리는 거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주는 존재인 거고. (보호자보단 첫사랑이 필요했던 거야) 영화는 리에게 더 파고들고 이것저것 각색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본즈 앤 올”이라는 구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고. 너무 드라마틱하고 자극적인 각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짚어보면 다 까닭이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오히려 원작 팬들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듯도 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지독한… (로맨틱한)사랑이 최고인 세계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본즈 앤 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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