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위쇼(Ben Whishaw)
<디 아워(The Hour)>(BBC Two)
<크리미널 저스티스(Criminal Justice)>(BBC One)
<할로우 크라운(The Hollow Crown)>(BBC Two)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2007, 감독: 토드 헤인즈)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 <크리미널 저스티스>와 <할로우 크라운>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eat.
<런던 스파이(London Spy)>(BBC Two)
<어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A Very English Scandal)>(BBC One)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Perfume - The Story of a Murderer)>(2006, 감독: 톰 티크베어)
<대니쉬 걸(The Danish Girl)>(2016, 감독: 톰 후퍼)
<더 랍스터(The Lobster)>(2015,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제로법칙의 비밀(The Zero Theorem)>(2013, 감독: 테리 길리엄)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감독: 수오 마사유키)
어쩌면 한국 사람들에겐 벤 위쇼라는 이름보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의 주인공 그루누이를 떠올리는 게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향수>는 벤 위쇼를 세상에 알린 작품 중 하나지만, 허구적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 그루누이는 배우 자체의 매력을 풍부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스물셋에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후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커리어를 넓히고 있는 벤 위쇼는, <햄릿>의 감독 Trevor Nunn의 말을 빌리자면, ‘특별하게 민감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피부를 한 겹 덜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배우다.[theguardian.com]
그의 외모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꽃미남’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고 독특하다.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묘한 얼굴이다. 흔들리는 여린 눈은 관객의 마음도 흔들어 놓는데, 살짝만 치켜떠도 반항심이 묻어나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는 이를 끌어들인다. 연기를 할 때 소리의 강약 조절을 훌륭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얼굴’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2007)다. 밥 딜런을 여섯 인물로 나눠 묘사한 이 작품에서, 벤 위쇼는 덥수룩한 머리의 젊은 시인으로 등장해, 담배를 물고 삐딱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노려본다. 목소리를 원래의 톤보다 낮게 깔고, 미국식 발음을 대충 굴려 귀찮은 듯 말을 뱉는다. 손가락에 걸친 담배가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다.
배우를 모르고 작품을 본다면 벤 위쇼의 ‘시인’이 기억에 오래 남는 캐릭터는 아닐 수도 있겠다. 케이트 블란쳇의 ‘록스타’나 히스 레저의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무법자’ 등 분량도 많고 활동적인 인물들이 더 눈에 띈다. 벤 위쇼의 ‘시인’은 흑백 화면 속에서 한 공간에 앉아 계속 이야기를 할 뿐이다. 허나 그의 얼굴은 여러 갈래로 나뉜 이야기 사이의 중심을 잡고, 말은 설명을 부여한다.
똑똑한 배우인 그는 <더 랍스터>(2015) 같은 영화를 통해 샤프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제로법칙의 비밀>(2013)이나 007 시리즈에서 외모보다 두뇌가 돋보이는 캐릭터를 맡아 뇌가 섹시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벤 위쇼의 Q를 보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007이란 것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근육질의 007보다 Q가 훨씬 섹시하게 느껴졌다. 분량도 적고 매력을 충분히 담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가 주로 활동한 판은 영화보다는 드라마다. 오히려 좁은 면이 있는 할리우드 영화판과, 꼼꼼하고 완성도 높기로 유명한 BBC 드라마나 그 제작환경을 떠올리면 현명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그는 작품과 캐릭터를 잘 선택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냉전시대 BBC 뉴스 프로그램의 탄생을 다룬 작품 <디 아워>(BBC Two)다. 할리우드에서 똑똑한 박사나 엔지니어 역할에 캐스팅된 원인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디 아워>의 프레디는 벤 위쇼에게 어울리는 캐릭터였고, 그는 단순히 어울리는 것 이상으로 탁월하게 소화했다.
프레디는 예민해 보이는 마른 체격에 ‘안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다. ‘미남’인 데다 번지르르하게 말도 잘하는 헥터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똑똑하고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그의 모습은, 무엇도 열심히 하지 않고 타고난 외모를 이용해 쉽게 권력을 쥐려고만 하는 헥터와 역시 비교되어, 돋보인다.
벤 위쇼의 감수성 넘치는 연기는 정의롭고 저돌적인 동시에 섬세하고 위트 있는 프레디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어깨는 삐딱하게 구부리고 항상 생각에 빠진 것처럼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빠르게 걷는다.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두리번거리는 경우도 많다. 허나 예민한 감각과 호기심 때문에 항상 곤두서 있는 프레디가, 엷게 미소를 짓거나 부드러운 농담을 하는 순간 관객은 자연스레 그에게 빠져든다. 작품에서 인물들의 연애사가 중심은 아니지만, ‘왜 벨이 프레디를 두고 잘생겼지만 멋없는 헥터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어느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벨이 프로그램의 심장이고 헥터가 피부라면, 프레디는 혈관이며, 그걸 타고 흐르는 피다.
스마트함 외에 벤 위쇼가 갖고 있는 얼굴은, 초기작이자 또 다른 BBC 드라마 <크리미널 저스티스>(BBC One)에서 볼 수 있다. 평범하고 순수한 사람이 용의자로 몰려 망가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서, 벤 위쇼는 뛰어난 연기로 작품 자체의 질을 높인다. 궁지에 몰려 어쩔 줄 모르는, 무너져 내리는 벼랑 끝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버티는 개인의 모습은, ‘크리미널 저스티스(Criminal Justice: 영국 사법제도)’가 구현하는 ‘정의롭지 않은 정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첫 화에서 멜라니가 마약이나 칼을 가지고 놀기를 권할 때 벤의 흔들리는 표정은, 싫지만 거부할 수 없는 나쁜 끌림을 관객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한다. 그는 칼에 찔린 멜라니를 보고 바로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마치 본인이 살인을 한 것처럼 흔적을 지우고 도망친다.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고 울음을 참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움직이는 벤은 어느새 내가 되어 있다. 행동을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몸이 느끼게 된다.
2화의 마지막, 벤이 마약을 목구멍에 숨기지 못해 쩔쩔맬 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줄이고 핸드폰을 던졌다. 그 상태로 남은 부분을 다 봤다. 볼 수가 없는데, 보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이 장면을 비롯해 <크리미널 저스티스>에는 CCTV 영상을 통해 벤을 관찰하듯 살피는 연출이 중간중간 섞여 있는데,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어 클로즈업된 벤의 얼굴을 볼 때와는 다른 초조함을 일으킨다.
벤이 약하고 격한 감정을 표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경관이 성폭행범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취약 병동에 가겠냐고 묻자,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가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부당한 행위에 대해 조용히 묻기도 한다. “제 리스크 레벨이 몇인가요?” 하고 물으며 미소를 지을 때는 완전히 무해하고 순수한 인간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 무해함, 그에게선 ‘무해한 강함’이 느껴진다. 전에 일본 배우 카세 료에 대한 글에서도 쓴 표현인데, 이어가 보자면, <크리미널 저스티스>는 온도와 정도는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를 떠오르게 한다. 평범한 주인공이 누명을 쓰는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는 드물지 않지만, 굳이 둘을 연결시키는 까닭은 닮아 있어서다. 벤을 연기하는 벤 위쇼의 모습이, 카세 료의 탓페이를 연상시킨다. 배우치고는 평범하지만 섬세한 떨림이 있어 기억에 남는 외모와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는, 화면 속 허구를 내 이야기로 느끼게 한다. 벤 위쇼가 인물에 불어넣는 것은 새롭고 개인적인 에너지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작품 전체로 확장되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연기하는 순간 그는 그 인물인 동시에 벤 위쇼이며, 보고 있는 관객 하나하나가 된다.
벤이 유죄판결을 받고 해탈한 듯 시니컬하게 감옥생활을 하는 모습과,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여전히 무해해 보이나 결코 이전처럼 해맑지 못한 표정은, 시스템에 의해 개인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벤 위쇼는 한 작품 속에서 두 종류의 얼굴을 적절하고 차분하게 연기해낸다.
마지막 부분 벤에게 감도는 차가운 분위기는, <할로우 크라운>(BBC Two)의 리처드 2세를 떠오르게 한다. 벤 위쇼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표현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벤과 달리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의 감정은 특별한 동시에 보편적이어서 관객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리처드 2세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귀족과 군인들 사이에서 홀로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엷은 미소 뒤에 슬픔을 감추고 있는 외로운 왕이다. 언뜻 약해 보이지만 깊고 영리한, 그렇기에 말로가 더 안타까운 캐릭터였다. 그를 연기하는 벤 위쇼의 모습은 최고라는 찬사를 불러일으킬만했다.
<할로우 크라운>은, ‘결과적으로는’ 헨리 5세가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허나 네 편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헨리 5세가 왕이 되기 위해 필연적인-리처드 2세가 왕에서 쫓겨나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헨리 4세에게 왕관을 넘기는 장면이다. 리처드 2세는 왕관을 넘기는 과정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말을 이어가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웃기도 한다. 눈가는 계속 눈물로 붉어진 채다. 곧 무너질 것 같은데도 어쩐지 차분한 얼굴을 한 그가, 사촌을 향해 중얼거리는 ‘God save the king’은 저주의 주문으로 들리고, 엎드린 채 굴려 보내는 왕관은 그 저주가 담긴 물건처럼 느껴진다. 왕관은 헨리 4세에게 넘어갔지만, 그 장면의 왕은 'unkinged' 되는 리차드 2세를 연기하는 벤 위쇼였다.
물론 헨리 4세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나 헨리 5세 역의 톰 히들스턴도 티 없이 매우 훌륭했다, 허나 초반에 물러난 리처드 2세야말로 제목 ‘Hollow Crown(텅 빈 왕관)’을 가장 잘 드러낸 캐릭터였고, 벤 위쇼의 몸짓과 표정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텅 비게 만들었으며,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셰익스피어스러운’ 대사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벤 위쇼는, 기존의 남성성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가 주로 맡아온 것은 신체적 힘은 강하지 않지만 강단과 끈기로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힘이 있는 캐릭터다. 그중에는 ‘벤’이나 ‘리차드 2세’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해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떨어질 듯 약해 보이면서도 꿋꿋이 자신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인물들도 꽤 있다. ‘The Guardian’에 쓰인 표현을 빌리자면, ‘상처받고 파멸하는, 아름답고 저주받은’. 그러나 바로 그 인터뷰에서 벤 위쇼 본인은, “이상하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인물을 많이 연기하긴 했는데 왜 그런 식으로 됐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전의 연기에 대해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 했던 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 좀 더 새롭고 다른 것을 연기하고 싶다.”라고. 이후의 선택들은, 과연 그가 자신의 말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벤 위쇼는 비교적 최근작인 <대니쉬 걸>(2015), <런던 스파이>(BBC Two), <어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BBC One)등의 작품에서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남성 동성애자를 연기하는 방식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는다. 특징적인 전형보다는 자연스러운 개인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가 실제로 게이이며 공식적인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와 관련 없지 않을 것이다. 성 소수자와 연기자로서 가지고 있는 각각의 감각과 타고난 감수성의 조합이다.
어쩌면 본인은 이러한 분석을 반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감추고 싶지도, 드러내고 싶지도 않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개인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는데, 그게 문제를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가 흥미진진하고 끔찍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성 지향성이 공개되지 않았을 당시, 한 기자가 배우자 Mark Bradshaw와의 사생활을 기사로 써 버렸는데, 이후 오히려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를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짐작하는 바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 한다. 배우의 삶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연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그저 머릿속에 작은 공간을 두고 싶다.” (theguardian.com)
여러 번 말하지만, 내가 쓰는 글은 주로 연기보다는 배우의 매력이나 그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헌데 벤 위쇼의 연기는 글쎄, 내게 뭔가 다른 의미다. 보는 것만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하게 만든다. 클래식한 메소드 연기와는 달라 배우가 묻어나는데, 끔찍하게 섬세하고 완벽하다. 동시에 평범한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캐릭터가 화면 속이 아닌 내 뱃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작품 속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기보단 마음이 아프고 멍해진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포인트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연기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연기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한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벤 위쇼가 사람들이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연기에 집중해주기를 원하니, 나도 관찰은 이쯤 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어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을 볼 궁리나 해야겠다.
+
<런던 스파이>와 <어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을 본 후에 쓰고 싶었으나 합법적인 경로를 찾을 수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 글을 써버리게 된 것인데(런던 스파이는 사실 전에 어찌어찌 1화를 찾아서 봤으나 그 다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용이 욕심만큼 풍부하지 못해 속상하다. 보지 않아도 벤 위쇼는 최고일 것임을 알고 있으나 매우 현기증이 나 영국으로 날아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참고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