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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Mar 18. 2023

애프터썬만의 언어

어떤 슬픔과 어떤 유대. <애프터썬>(2022)



<애프터썬(Aftersun)>(2022, 샬롯 웰스)

 

* 위 작품의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프터썬>은 설명하지 않는다. 카메라 속 영상이 불러온 소피의 기억 속에 담긴 감각을 따라간다. 그 조각들은 퍼즐처럼 맞물려 완성되지 않는다. 한데 모였으나 하나되지 않는 모자이크로 남아 있다. 여름, 여행지의 오늘과 내일. 느긋하고 유쾌한, 살짝 우울하거나 날카로워지기도 하는 두 사람의 순간들 주위에서 <애프터썬>이 포착하는 것은 분위기, 인물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슬픔의 방울들이다. 소피와 캘럼 사이의 허물없는 웃음, 거리감, 미묘한 위화감, 캘럼의 상태, 그것을 감지하는 소피- 그 전부를 담아내는 화면이 햇빛이나 조명, 바다나 수영장과 섞여 쏟아진다. 특정한 의미를 짚어내기 힘든 컷까지 모두, 영화에 필요하다. 그 흐름이 주는 울림은 불명확한 그대로 특별하고 유일하다. Somehow, <애프터썬>은 영화만이 가진 언어로 관객에게 닿는 데에 성공한다. 아래는 그 접촉면에서 구체화된 어떤 가능성들에 대한 서술이다.


<애프터썬>(2022)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를 감는 소리가 들린다. 소피가 찍은 캘럼과 캘럼이 찍은 소피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어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뿌연 모자이크의 형태로 유동한다. 다음 삽입된 컷은 어둡고 텅 빈 공간. 어지러이 번쩍이는 창백한 불빛 아래 춤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 가운데, 웃음기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이가 있다. 어른이 된 소피다. 소피의 꿈 혹은 상상인 듯한 이 초현실적 ‘다크 볼룸’은 이후에도 종종 화면에 끼어든다. 나이 든 소피는 나이들지 않은 채 춤추는 캘럼을 응시한다. 그때 느끼지 못했거나, 느꼈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생각한다. 영화는 과거를 돌이키는 소피의 작업을, 마음 속/판타지적 공간에서 소피가 캘럼을 찾아내고, 바라보고, 마침내 보듬는 여정으로 형상화한다. <애프터썬>의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갔기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이나, 모든 장면을 알고 있다 해도 확신하거나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소피가 그 튀르키예 여행을 떠올리는 것은 마지막이었기 때문일까, 혹은 그저 오래된 비디오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혹시 서른 한 번째 생일을 맞아서일까. 환상 속의 아빠가 늙지 않은 것은 정말로 그가 늙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그날을 생각하고 있어서일까. 영화는 상상하게 하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현재 소피의 침실에는 당시 캘럼이 산 카펫이 깔려 있다. 선물이거나 유품일 그 카펫에는 여행의 나날과 어떤 슬픔의 기운, 그리고 말없는 유대의 흔적이 있다.


<애프터썬>(2022)


로맨스나 성에 관한 잡지를 몰래 살피곤 하는 시기를 지나던 열 한 살의 소피. 그의 시선 끝에는 주로 하이틴 소녀들이 있었다. 카메라가 그들의 어깨나 팔목, 셔츠 아래로 비치는 피부에 머물렀던 까닭이 단순히 그의 눈높이와 겹쳐서일 리는 없다. 소피는 자꾸 훔쳐보게 되던 언니가 물속에서 (아마도) 남자친구와 밀착하는 것을 보고 왠지 기분이 다운되어 자리를 뜨기도 한다. 결국 키스는 또래의 남자아이와 하게 되는데,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날 함께 어울렸던 두 소년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현재 소피는 연인 또는 와이프와 살며, 갓난아이를 키운다.


캘럼은 어떤가, 소피의 새 담임 선생님이 ‘예뻐서 기억해 두었다’고 너스레를 떨 때, 그의 짓궂은 미소에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과장이 섞인 것을 느꼈다면 착각일까? ‘키스Keith와 집을 구할 예정인데, 네 방을 두어도 좋다’는 ‘고백’은 뭐였을까? 번역에는 “구상”, “계획” 따위의 명확한 단어가 쓰였지만, 원래 캘럼이 했던 말은 “New thing’s going on with Keith.키스와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어.” “We’re figuring things out.우리도 알아내고 있는 중이야.” 같은 것이었다. 이는 캘럼의 지나간 인연인 클레어, 그리고 아마도 그와 열어보려 했던 카페에 관한 대화에서 이어진 이야기. 단지 사업과 이사에 관한 서술인지, 관계나 삶의 형태에 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관계는 삶을 상대와 나누게 하고, 일이나 생활에 변화를 불러온다.) ‘다크 볼룸’에서 소피는 캘럼이 한 남자와 스치듯 마주하는 모습을 목격하는데, 그는 혹시 키스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캘럼은 어머니를 만난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그의 열 한 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았다. “애든버러에서 한 번도 내가 여기 속한다고 느끼지 못했어.”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소피가 “나는 속한다고 느껴, 고향이니까.”라고 답하니 다행이라고 응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라고 덧붙이며 강조한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어.”. 그는 그렇게 소피에게,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들을 심어준다. 소피가 또래 소년과 키스했음을 털어놓았을 때, 캘럼은 무관심하지도 그리 무겁지도 않게 반응하며 진지하게 잇는다, “나한테는 뭐든 말해도 되는 거 알지?”, “정말이야, 나도 다 해 본 거니까.” 그것들은 어쩌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딸에게 건네는 포괄적인 지지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버팀목이 되어주려는 제스처. 짐작일 뿐이나, 하나의 가능성이다.


<애프터썬>(2022)


영화가 인물의 마음을 전하는 장치 중 하나는 음악이다. 소피가 가라오케에서 부르는 곡은 ‘Losing My Religion’(R.E.M.). “당신의 눈에 있는 거리”, “당신이 웃는 걸 들었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노래하는 걸 들었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애쓰는 걸 봤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그 가사들은 캘럼의 마음에 닿으려는 소피의 제스처로 들리기도 한다. 장난스럽게 인터뷰를 시도했듯, 소피는 아빠가 자꾸 궁금하다. 그에게 친밀감과 함께 거리감 또한 느낀다. 캘럼은 홀로 노래하는 소피 곁에 서지 못한다. 무엇인지 모를 -어쩌면 한데로 모이지 않는- 내면의 괴로움 탓에 딸에게 완전히 다가가지 못한다.


침대에 누운 소피가 ‘다운된’, ‘몸의 뼈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분에 대해 설명할 때, 욕실 거울에 비친 캘럼의 표정은 묘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본인도 그것을 -다른 깊이와 농도와 빈도로, 아마도 매 순간- 느끼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이 장면처럼 그들은 자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른 곳을 보고 대화한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어린 딸을 혼자 두고 나오게 만드는 것, 캘럼의 마음엔 내내 그것이 얹혀 있다. “솔직히, 마흔 살의 내가 그려지지 않아요. 서른 살까지 살아남은(made it) 것도 놀라운 걸요.” 낯선 남자에게 그는 말한다. 길을 건너다 버스에 치일 뻔 하고도 반응하지 않고, 몸에 까닭 모를 상처를 입는다. 베란다 난간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고, 생일 전날 밤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소피가 선물한 생일 축하 합창을 듣는 복잡한 실루엣에, 알몸으로 침대에 앉아 엉엉 우는 뒷모습이 겹친다. 주로 등을 보이고 있어, 캘럼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는 소피도 관객도 알 수 없다.


<애프터썬>(2022)


‘Under Pressure’(Queen & David Bowie)가 스크린에 차오르며,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춤추던 캘럼과 초현실적 공간에서 춤추는 캘럼이 겹친다. 그날은 캘럼이 소피의 팔을 잡아끌어 함께 안고 춤을 추었다. 환상 속에서 소피는, 넋이 나간 채 몸을 흔드는 캘럼에게 “Stop!”이라고 외친다. 꽉 안아준다. 그는, 그때 “밤의 끝자락”을 지나며 “Let me out!”이라고 소리없이 외치던 아빠에게로 돌아가 등을 보듬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왜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해? 둘이 헤어졌는데.”, “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봐.” 여기서 소피가 말하는 사랑과 캘럼이 말하는 사랑은 조금 다르나, 결국 연결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오래된 표현”이 지닌 범위는 무한하다. 가족을 향한 사랑, 연인 사이의 사랑,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사랑, 끝이 있거나 없는 사랑, 타인을 보듬게 하고 “자신을 케어하는 방법을 바꾸는” 사랑. 소피와 캘럼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캘럼은 소피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 주고, 소피는 캘럼의 등에 유황을 발라 준다. 서로의 뺨을 화장솜으로 부드럽게 닦아 주기도 한다. 서로의 등을 받쳐 주는(I got your back), 보이지 않는 눈물을(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알아채고 닦아주는, 모든 아빠와 딸이 맺을 수는 없는 특별한 관계. 거기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과 유대가 있다.  


<애프터썬>(2022)


엔딩, 캘럼이 찍은 영상 속에 담긴 소피가 보인다. 했던 인사를 하고 또 하는 그의 작은 얼굴. 작품의 카메라가 서서히 회전해 현재 소피의 집을 비춘다. 낡은 카메라를 앞에 둔 소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 있다. 카메라는 회전을 멈추지 않고 다시 과거/상상으로 움직여, 떠나는 소피를 찍던 캘럼을 비춘다. 그는 카메라를 내리고, 뒤돌아 문을 열고 ‘다크 볼룸’으로 들어간다. 배경에서 들리는 것은 갓난아이의 소리.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이 만난다. 어디까지가 사실/기억이고 어디서부터가 짐작인지 경계는 모호하다. 불명확한 그대로 <애프터썬>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

‘Under Pressure’ 가사에 쓰인 표현들을 빌렸다.


Can’t we give ourselves one more chance?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Cause love’s such and old-fashioned word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The people on the edge of the night

And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This is our last dance

This is ourselves under pressure

- Queen & David Bowie, ‘Under Pressure’


++

폴 메스칼이 뿜어내는 섬세한 위태로움의 기운, 그것을 감지하는 프랭키 코리오의 투명하고 깊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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