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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09. 2023

How close

<클로즈>(2022)


 

<클로즈(Close)>(2022, 루카스 돈트)

Feat. <걸(Girl)>(2018)

 

* <클로즈>의 핵심 전개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걸>이 그러했듯 <클로즈>는, ‘다름’을 재단하는 시선 자체보다는 ‘남다르다’, ‘예민하다’고 여겨지는 영혼들이 그것에 영향을 받는 모양에 집중한다. 다만 <클로즈>의 카메라는 <걸>만큼 집요하지 않았고, 보다 인물의 공간을 존중하며 참을성 있게 움직였다.

 

<클로즈>(2022)


감독 본인이 짚기도 했듯, ‘close’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먼저 ‘closeness가까움’의 그것이다. 레미와 레오는 서로의 배를 베개 삼아 눕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나란히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 침대에서 잠들곤 한다. 때로 레미의 엄마 소피까지 합류하기도 하는 몸의 맞닿음은 친밀감과 편안함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까지는 우정으로 분류되고, 어디서부터는 로맨스인가. 어느 정도 가까워야 ‘정상’이고,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이상’한가. 관계에 물음표를 던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레오와 레미. 기성의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그들의 유대에 타인의 불필요한 시선이 섞여들며, ‘close’의 두 번째 쓰임이 등장한다.  

 

이 ‘close’는 ‘closing닫음’과 ‘closet클로짓’의 그것, 타인과 연결을 끊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벽장에 가두는 행위다. <걸>의 카메라가 호의를 가장한 폭력을 감당하던 라라의 얼굴을 관찰했듯, <클로즈>의 카메라는 ‘사소한’ ‘의심’이나 ‘장난’을 감각하는 레오의 얼굴을 관찰한다. 어쩌면 별 악의조차 없을 듯한 말들이 어떻게 레오에게, 이어 레미에게 침범하는지를. 이성애규범적 관습이 촘촘히 스며든 집단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다름’을 삭제하는 과정을.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 남들보다 섬세한 -혹은 서로 덕에 그 섬세함을 보존해 온- 두 소년의 세계는 평범하게 무신경한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깨진다. 레오는 제 일부를 닫고 레미와 단절되고, 레미는 내면으로 파고들다 끝내 욕실 문을 닫아 건다.


<클로즈>(2022)


영화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괜찮지 않음’의 조각들을 포착한다. 레미의 조각은 레오의 눈동자가, 레오의 조각은 카메라가 담는다. 레오는 설명하기 힘든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외부의 기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하고, 레미는 기대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레오의 반응에 반응한다. 레오는 레미를 밀어내고, 레미는 거리를 알아채고 속상해한다. 레오는 상대방의 아픔을 감지하고 자신도 아파하지만, 벌려 놓은 거리를 좀처럼 다시 좁히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미가 죽는다. 레오는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다. 침대를 적시고, 죽음의 순간을 상상한다. 레미의 집을 찾아가지만 도망쳐 나온다. 마음의 상처가 손목의 부상과 함께 물리적으로 드러나고, 그는 애도를 가로막았던 죄책감을 털어놓게 된다.

 

레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짐작해 보았지만, 결국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관객은 레오가 느끼는 만큼만 알 수 있으므로 그가 레미를 저도 모르게 벼랑으로 몰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나 적었듯, 그건 레오가 느끼는 바다. 레미는 생각이 밀려와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그가 욕실 문을 잠그면 소피는 불안해했다. 레오는 곁에서 그의 불면을 감각하고 수면을 돕거나 함께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이, 레미를 세상에 붙잡아 두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 해도 ‘역할’을 인지하고 감당하기에 레오는 너무 어렸다. ‘레미의 죽음은 레오의 탓이 아니다.’ 그의 자책을 듣고 소피는 그렇게 답했어야 했지만, ‘내리라’고 했다 하여 아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레오는 뒤늦게 고백했고, 소피는 뒤늦게 그를 쫓아갔다. 그들은 엉엉 울며 너무 늦지 않게, 서로를 끌어안는다.  

 


<클로즈>(2022)


레미와 레오의 놀이터였던 꽃밭은 레오의 일터가 되었다가, 둘 다가 된다. 실물의 꽃을 키우는 일은 내면의 연약한 꽃을 지키는 일과 닮았다. 영화는 ‘꽃을 재배하는 소년’과 ‘꽃밭에서 뛰노는 소년’ 모두를 레오에게 드리운다. 레오가 하키 수트를 입고 레미와의 거리를 벌리며 누르려 했던, ‘남자답지 않은’ 남성성이 거기 있다. “아빠는 태어났을 때부터 남자였을까?” <걸>에서 라라의 아빠가 딸에게 위로를 건네며 했던 대사다. 두 영화의 중심에는 물음이 자리한다, 우리가 강요된 답을 학습하고 수행해 왔기에 물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걸>의 물음이 ‘WHAT is a Girl?’ 이었다면, <클로즈>의 물음은 ‘How close two boys can be?(두 소년은 얼만큼/어떤 식으로 가까울 수 있는가?)’다. <클로즈>에는 또 하나의-그리고 앞선 것들과 이어지는, ‘남자됨’의 정체에 관한 물음(‘How boys should behave?’)이 있다. (그러므로 레오가 겪은 상실을 ‘소년이 남자가 될 때’, ‘성장통’ 따위로 수식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아무리 영화에는 다양한 감상이 따른다 해도- 틀렸다,고 말해야겠다.)

 

엔딩, 레미와 함께 달리던 꽃밭을 레오는 홀로 달린다. 뒤돌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는 활짝 핀 꽃 한가운데에 있다. ‘꽃밭을 달리는 소년’의 남성성, ‘함께 꽃밭을 달리는 두 소년’의 관계. 영화는 그 규정불가한 아름다움을 담는다. 그동안 수많은 소년들의 내면에서 닫혀 버린 것들을 애도하고, 남아 있는 것들이 지켜지기를 소망한다.

 

<클로즈>(2022)



https://youtu.be/8EF9c45PKb8

'Normal Song' by Perfume 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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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의 아이디어에 관한 루카스 돈트의 설명


“뉴욕 심리학자 Niobe Way의 연구를 접했을 때, 이게 내 새로운 작업이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는 소년 150명의 5년을 따라간다. 13세에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꼭 사랑 이야기처럼 표현한다. 서로를 향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다정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연구를 따라가면, 소년들이 나이가 들고 그들을 향해 남성성에 대한 기대가 강해질수록, 어떻게 그 언어에서 완전히 단절되는지가 읽힌다. 우리는 남성성과 친밀감이라는 두 개념을 나란히 놓기 매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남자들이 이 세상에서 친밀감을 찾는 유일한 곳은 섹스 뿐이라고 이야기되고, 사랑과 연약함을 다른 남자에게 드러내는 일이 굉장히 콤플렉스해 보이게 되는 거다. 우리는 종종 유해한 이미지들 -폭력이나 전쟁-이 남성성과 연관되어 전시되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 두 소년이 함께 침대에 누워 서로 가능한 한 가까워지려고 하는- 친밀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보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클로즈>의 배우들에게 항상 말했다, “이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는 상관 없어요, 레오나 레미는 퀴어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이 소년들의 진술을 읽으면, 그들 중 일부는 퀴어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아닌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기반을 둔- 몸과 연결된 행위 코드를 통해 서로 단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게 있어서는, 아주 어린 나이의 두 소년 사이에 있던 아름다운 우정을 (우리가/세상이) 살해한 느낌이었다.”


- Lukas Dhont, interview by. Matthew Jacobs Vanity Fair 2023.01.13


https://www.vanityfair.com/hollywood/2023/01/awards-insider-lukas-dhont-close-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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