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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Sep 05. 2023

No Buses는 오늘도, 버스를 기다린다.

No Buses



<Boys Loved Her>(2019)

<No Buses>(2021)

<Sweet Home>(2022)

+ ‘Eyes’(2023)

 

 

Arctic Monkeys의 데뷔 직후 EP에 수록된 ‘No Buses’는, 말그대로의 버스,에 관한 곡은 아니다. 이루어지지 못할 로맨스를 향한 열병을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행위에 빗대는 것으로 들린다. 영어덜트 시기의 로맨틱한 외로움이- 록 베이스의 느긋하고 처연한 그룹사운드, 철학적이기까지 한 가사, 날것의 매력이 있는 보컬을 통해 전해진다. 당시 나온 여러 곡과 마찬가지로, 이 베테랑 밴드가 더는 만들지 않을 법한 음악이다.  

 

밴드 No Buses의 초기 스타일은 이름대로이면서 그 이상이다. NME의 인터뷰어가 “Strokesian”이라 적기도 했듯, 주로 The Strokes나 초기 악틱스러운 개러지 록인데, 이들의 우상 악틱 몽키즈에게 있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송라이터 스스로 ‘불완전하다’, ‘불만족스럽다’고 일컫는 초반 작업부터, 미완성/날것 그대로 완전하다.

 

‘No Buses버스 없음’는 표현 자체로 이들의 작업과 어울리는 네이밍이기도 하다. 쿨하고 칠하면서 은근한 긴장감이 있는 음악, 보컬은 무심한 듯한 호소력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노스탤직한 분위기를 띤 특유의 기타 멜로디와 멜랑꼴리한 가사가 만나 묘한 공상을 불러일으킨다. 늘상 맞닥뜨리는 사물과 장면들을 풀 수 없는 퍼즐 조각처럼 모아 놓은 스토리텔링은, 그럴듯한 해석을 거부하며 흘러 한데 고인다. 그것은 저마다의 우울하고 보잘것없는 비밀을 비추는 못. No Buses가 ‘No Buses’라는 곡을 낸다면, 버스정류장에 관한 이야기라 해도 우습지 않을 테고, 거기서 인생 철학을 끌어낸다 해도 놀랍지 않을 테다.  

 

도쿄에 기반한 이 밴드가 쓰는 가사는 대부분 영어. 해외 리스너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인지, 메인 송라이터인 콘도의 예술적 자아가 쓰는 언어라서인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쓰고 싶어서’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건 이 선택이 작품에 독특함을 더했다는 점. 단순한 단어들의 생소한 배치(‘Sick Humor’ 대신 ‘Ill Humor’라고 하는 식이다.), 자주 알아듣기 힘든 발음- ‘일부러 로우파이’한 언어적 요소 역시 No Buses의 음악이 고유의 박자로 귀를 울리는 까닭 중 하나다.


 https://youtu.be/JFnQ0ZiwLd0?si=XlmxmTCh12kObG-U

'Tic'.


You know what’s going on

You forgot what you saw and told

It will rain and snow

It falls down on my face, I know

Days are boring

No excuse, I don’t have lie and truth

Bird is flying low

Wings fall down on a street I know

- ‘Tic’

 

2016년, 대학 클럽의 네 친구 콘도 타이세이, 고토 신야, 스기야마 사오리, 이치카와 이세이가 모여 만든 밴드 No Buses는(라이브 기타리스트였던 와다 하루키가 2집부터 공식 맴버가 되며 현재는 다섯 명이 활동 중이다.), 유튜브에 올린 ‘Tic’(2018) 비디오(아쉽게도 지금은 비공개로 돌아갔다.)가 바이럴해지며 이름을 알렸다. 데뷔 근처의 다른 영상들도 유사한 에스테틱을 띠고 있는 듯하다. 인디 트렌드의 한 갈래이기도 하지만, 이들만의 개성과 유머가 듬성듬성 널브러져 있어 특별하다. ‘Pretty Old Man’: 저화질의 화면, 화려한 빈티지 가구로 가득한 저택에서 네 맴버는 공연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다. 무표정이거나, 웃음을 참고 있거나. 저 어설프고 귀여운 춤은 대체 또 뭔가. 이어 ‘lll Humor’를 살펴보면, 이번엔 노란 배경이 깔린 촬영 스튜디오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공연하는 친구들. 보컬은 마이크…가 아닌 노란 바나나를 들고 노래한다. 모든 요소가 아기자기한 핸드메이드인 ‘Untouchable You’에도 등장하는 소품이다.

 

“물론, 우리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한 이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저 뭔가 이상한 걸 보고 싶었던 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한 괴상한 그룹이 -외계인처럼- 등장했으니, 그에 대한 반응이 있었던 거랄까.”

“그걸 지켜보며 겁에 질렸다. (‘Tic’은) 정말로 우리가 적절히 만들어 내놓은 첫 음악이었다. 그다지 완전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낀 무언가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토록 빠르게 퍼져나가니 - 그걸 보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다.”

- Taisei Kondo, interview by. JX Soo, 2021.07.12. [nme.com]


https://youtu.be/xtn_SmyT87s?si=cBim8o-YEelyp5Ln

'Pretty Old Man' mv.


나 또한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Pretty Old Man’을 ‘목격’했고, 그 로우파이함, 어색함, 이상함, 신남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좋아한다’고 깨달은 것은 오디오를 파고들면서부터. ‘Boys Missed The Bus’라는 제목을 단 쓰리피스 미니 앨범의 첫 트랙 ‘Pretty Old Man’은, 역시나 몹시 ‘오리지널’하다. 오디오는 기침소리로 스타트를 끊는다. 화자이자 관찰자, ‘(아마도)버스를 놓친 소년’이 ‘기침을 하는 꽤나 늙은 남자’에게 던지는 몇 마디처럼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신의 입김이 내 머리카락을 날려, 이 붐비는 곳에서. 늘 냄새가 나, 당신은 더 늙었으니까.” 소년은 남자와의 마주침을 달가워하지 않는 걸까. 그는 잇는다, “당신은 늘 담배를 피워, 심각하게 병들고 말 거야. 당신이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더 오래.” 이 대목에서 청자는 괜히 뭉클해지고 만다. 화자는 ‘늙은 남자’가 더 오래 살기를, 좀 쉬기를 바라며, 심지어는 “정말 울고 싶어져”라고 고백한다. 기성 세대의 ‘지나치게 근면성실한’ 태도는 그에게 반감보다는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화자가 쓰는 단어는 ‘old’가 아니라 ‘older’, 늙음은 상대적이라는 걸 그는 인지한다. 그러나 어쩐지 그에겐 ‘영원한 소년’의 분위기가 풍긴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Mama always said to me, go to sleep early”에서도 ‘소년스러움’이 감지되나, 초월자에 가까운 느낌도 있다. 여기서 ‘We’라는 지칭어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남자를 ‘쉼’이 있는 영원한 세계로 끌어들이며 자신과 한데 묶는 제스처일까, 남자와 ‘우리’를 분리하는 표현일까. 꿈꾸듯 반복되는 구절 “We can live forever”과 “We can sleep forever”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끌림이 동시에 느껴진다. 거기 ‘젊은이’ 특유의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와 도인의 여유가 공존한다.


 <Boys Loved Her> 커버.


이듬해 나온 정규 데뷔 <Boys Loved Her>, 타이틀은 ‘Rat’의 가사에서 따왔다. ~하이틴 스트레이트 보이~가 앓는 러브식의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네이밍을 취했으나, 결코 한정된 주제를 맴돌지는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꿈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하고, 어떤 이야기는 지나치게 일상적이다. 몇몇 감정들은 부러 미성숙하고, 몇몇 표현들은 초월적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의식의흐름적’ 감상이 있는 레코드다. 그룹사운드는 대개 여유롭고 경쾌하며, 적당한 무게감을 갖췄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푸드 플라스틱은 버리고 접시를 쓰고, 설거지도 깨끗이 해’… 표면적으로는 ‘식사동요’스러운 ‘In Stomach’을 듣고 있자니 -어린이는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뱃속에 곰팡이가 자라는” 정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허기의 원인은 뱃속보단 ‘무언가 기어다니는’ 심장 쪽에 있으리라. 불경한 무늬의 포장지에 싸인 이어캔디, ‘When You Sleep With Your Son’은 또 어떤지. 콘도의 송라이팅 스타일을 고려하면 (sleep=sex가 아니고) 제목의 뜻이 단순히 ‘당신이 당신의 아들 곁에서 잠들 때’일 가능성도 있지만, 글쎄. ‘son’이 비유이거나, “Ill(sick) Humor”일 수도 있다. 두루뭉술한 스토리텔링, 몽환적인 리듬에 실려 가는 ‘love’의 정체가 궁금해 진대도- 그저 중독되는 수밖에.

 

‘Dirty Feeling’의 화자처럼, <Boys Loved Her>에는 틴에이저를 졸업하는 과도기적 시기의 성장통, must와 want 사이 어긋난 상태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인공/관찰자적 화자들은 그 결과로 ‘기성 사회가 인정하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꼭 ‘Dandruff’의 ‘you’처럼 외톨이가 되지는 않더라도, 별난 자아를 찾으며 외계인/이방인적 존재로 거듭난다. 2년 후 발매된 <No Buses>에 그 실마리가 있다. 밀도 있는 사운드와 감성적인 보컬,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가 들리는 앨범이다.

 

<No Buses> 커버.


뮤지션이나 밴드의 이름을 (데뷔가 아닌) 앨범에 거는 까닭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했다’ 해도) 예술적 스타일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는 암시는 어느 정도 있으리라. No Buses가 이름과 얼굴을 전면에 내건 <No Buses>에는, 자아와 관계에 대한 탐구가 적당히 진지하고 우울한 톤으로 담겨 있다.

 

“더욱 정제된, 실험적 경향들이 있는, 여러분이 우리를 밴드로서, 앙상블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앨범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걸 하게 되면서, 그 공포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진실로 좋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느끼자마자, 레코드를 만드는 일이 진실로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다.”

- Taisei Kondo, interview by. JX Soo, 2021.07.12. [nme.com]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 듯한, 몸과 마음이 자리하는 공간이 일치하지 않는, 꿈 속에서 사는 듯한, 일상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어떤 상식이나 ‘으레 그러한’ 현실을 거부하지만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그저 비상식을 실천하는 아웃사이더적 화자들. 이들의 철학은 1집에 비해 분명한 언어로 드러난다. ‘In Stomach’에서는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더니, ‘Not Healthy’에서 ‘안 건강해도 나는 괜찮다’고 노래한다.

 

Well I’m not in the sun

And I know I’m alright

Always alive to do something

Not do something to be alive

- ‘Not Healthy’, <No Buses>


Call me by my name

Sometimes I feel like I’m nothing

I’m in a garden with an imaginary friend

- ‘Yellow Card’, <Not Buses>


https://youtu.be/MlrrywADLvQ?si=ME6b_L-bOXwCqqIe

'Yellow Card' mv.


‘괜찮은 척’ 보다는 삶의 태도를 선언함에 가깝다. ‘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 불리느니 혼자 남아 있겠다’는, ‘건강하지 않아도 스스로 괜찮음을 알고 있다’는. 삐딱하고, 사회적이지 못하고, 특수하게 지속가능한- 태도다.

 

반대로 ‘안 괜찮음’을 조금 ‘언쿨’하게 호소하기도 한다. “My loneliness is actually a good situation.”(‘Yellow Card’)에는 ‘정말로 good’과 ‘애써 good이라고 말함’이 함께 감지되고, 이는 모순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고독하겠다’에 가깝지, ‘평생 고립되어도 괜찮다’는 아닌 것이다. 모든 곡엔 허무와 외로움이 그 짙기를 달리하며 깔려 있고, 로맨스마저 끝나가고 있거나 허상이다. 첫 트랙 ‘Preparing’과 마지막 트랙 ‘Imagine Siblings’에는 겹치는 구절들이 있는데- 늘 그렇듯 그 관계성은 불명확하다. 특정 시대의 미소지니적 문학풍이 연상되지만 너무 흐릿해 넘어갈 수 있는 수준.

“He acts like everything is over / She acts like she’s the owner” (‘Preparing’)

“Behaving like you own me / Planning with your friends” (‘Imagine Siblings’)

 

1집의 라스트 트랙 ‘Medicine’의 ‘약’은 가사에 그 정체가 언급되지 않아 정황상 ‘drug’에 가깝게 들리기도 했다. 반면 ‘Surprised’의 ‘medicine’은 구체적인 ‘unwell’의 증거다. (“왜, 왜 놀라? / 나 안 괜찮은 거 나도 알아 / 약 먹고 있어 / 약을, 어쨌든”) 잔잔하고 몽환적인 멜로디는 어둠을 상쇄시키기보단, 수용가능한 것으로 흩뜨려 고요한 카타르시스로 이끈다.

 

“If I die alone / I will never call you” (‘Surprised’)

“Seeking the difference / At the end we all die” (‘Number Four or Five’)

”Why am I never lucky? / Why don’t we just google it” (‘Very Lucky’)

죽음이 어른거리는 ‘Number Four or Five’ 다음에는 ‘Very Lucky’의 냉소가 뒤따른다. 다음 트랙은 ‘Alpena’, 화자는 펜데믹에 고립된 틴에이저의 목소리를 지녔다. “어떻게 살아남는지 좀 알려줘 / 학교 수업은 다 온라인이야 / 아무것도 가르쳐 주는 게 없어 / 착한 아이가 되려면 / 홀로 깨우쳐야 해” ‘마음 속 어두운 면’이 힘없는 보컬로 딜리버리 되는데, 기타 솔로는 느긋하게 노스탤직한 멜로디에서 펑키한 리듬으로 반전된다. 두 사운드는 결국 한 줄기로 합쳐져 고조되며 아름답게 터진다. (“기타에 있어서 매우 거친 접근을 했다, 때문에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을 정도였다.” - 콘도)

 

‘Playground’의 화자는 아마 ‘Alpena’의 그이거나 더 어린 누군가다. “좋은 일이라곤 없고 우리가 갈 데도 없어”, “언제든 집에 돌아가야 해” 여전한 펜데믹의 흔적. 화자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네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네 엄마가 전화를 받네 / 네가 집에 없다고 / 시간 될 때 알려줘 제발.” 결국 그는 ‘내 적(=외로움)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차일디시한 단어와 상황들에는 특수한 시대의 보편적 블루가 녹아 있다.

 

이쯤에서, 글에 언급한 순서는 트랙리스트 순이 아님을 고백한다. 처음부터 듣는다면 리스너들은 냉소적 우울과 어긋난 관계의 묘사, 심지어는 죽음의 암시를(‘Surprised’) 지나고 난 후에 ‘Not Healthy’와 ‘Yellow Card’의- 밝지는 않으나 꽤나 단단한 의지를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레코드가 향하는 곳이 막다른 길은 아니라는 짐작을 해 본다.  


https://youtu.be/CMkiDYugPsY?si=iAj8p7YzLR0LoYkT

'Having a Headache' mv.


https://youtu.be/eSVi0dsvMYU?si=N1dznrJnTIhABJmP

'Alpena' mv.


과연, 실내에 갇혀 온라인 스쿨링을 하는 화자를 둔 ‘Alpena’ 비디오의 배경은 야외, 산과 암벽 앞이다. 자연의 빛을 받은 화면은 사운드와 어울린다. 사실 이는 ‘Having a Headache’로부터 연결되는데- 사무실에서 맴버들이 각각 따로 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화면 분할 편집으로 전개되는 비디오다. 엔딩에서 다섯은 한 모니터 앞에 모인다. 거기엔 ‘Alpena’의 야외 퍼포먼스 영상이 떠 있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 그렇게 ‘Alpena’는 ‘Having a Headache’의 모니터 프레임에 둘러싸인 채 시작된다. 허나 프레임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카메라는 현장에 머문다. 콘도가 한 ‘거친 접근’의 결과물일 기타 솔로 파트에서는 카메라 역시 빠르게 줌 인/아웃을 반복하며 ‘거칠게 접근’한다. 이렇듯 2집의 비디오들은 데뷔 초에 비해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짜임새를 지녔다. 편집이나 화질, 특수효과 등 기술적으로도 훨씬 ‘덜 로우파이’하다. (대부분 DIY였던 1집-‘Untouchable You’를 보라.) 그러나 No Buses만의 개성과 감각은 여전하고, 어쩌면 더 뚜렷해졌다.


온라인/내면 세계를 탐험하는 다른 몇 비디오의 경우,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로 제목과 가사 사이 논리적인 이음새가 바로 보이지 않는 곡들이다.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설정이 있는 ‘Yellow Card’. 옅은 사이버펑크 에스테틱을 띤 ‘Imagine Siblings’에는 신체를 클로즈업하는 기이한 씬이 있고, 그보다도 실험적이고 초현실적인 애니메이션이 뒤따른다.


https://youtu.be/6rngOxxNHl4?si=TGWWlghnZyQ5GhJ6

'Rubbish:)' mv.

 

3집에서도 ‘사이버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계속된다. ‘Rubbish:)’는 가상현실 속 무대 위에서 맴버들 각자의 3D 아바타가 공연하는 컨셉이다. 아바타들의 머리엔 실제 얼굴의 평면 이미지가 부자연스럽게 부착돼 있다. 의도적으로 괴이하고 조악하다. 그런가 하면, ‘I’m With You’는 ‘Alpena’처럼 밝은 야외에서 촬영돼 ‘아날로그’한 아우라를 뿜는다. 화면에는 가사와 음표가 나열되고, 미니멀한 프레임이나 굴곡을 활용해 독특한 효과를 내는, 엉뚱함까지 겸비한 작품이다.

 

또 겹치는 요소 중 하나는 보컬 없는 기타 중심 트랙. 2집에 ‘Biomega’가 있다면 3집에는 ‘Biomega2’가 있다. “그냥 기타 사운드를 좋아한다”는 프론트맨 콘도의 사심일 수도 있지만- 적절한 쉼표,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인스트러멘탈이기도 하다.

 

‘Biomega2’가 그렇듯, <Sweet Home>의 첫인상은 음울하고 웅장하다. 메탈릭+사이키델릭+슈게이징하게 부서지는 트랙들이 두드러지는 앨범이나, 몇은 리드미컬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등 장르적으로 다양하다. 주로 무심하거나 살짝 힘없이 담백했던 콘도의 보컬에 한층 감정이 실리며, 다채로워졌다. 샤우팅(‘Sunbeetle’)이나 톰요크스러운 드래깅(‘In Peace’)이 들리더니, 다음 트랙 ‘Rubbish:)’는 경쾌하고 상큼하다. 첫 랩 피쳐링도 들어갔다.(‘Daydream Believer’) 또 처음인 것은, 일본어 가사.(‘Freezin’) 스토리텔링은 대개 추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데, 2집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일관된 메시지/정서로 모이는 편이다.

 

사운드를 묘사하며 악틱 몽키즈의 <Humbug>가 얼핏 떠올랐다. 타이틀에선 <Suck It And See> 수록곡 ‘The Hellcat Spangled Shalalala’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home sweet home, home sweet home, home sweet booby-trap.” 허나 No Buses의 ‘Sweet Home’에 있는 뉘앙스는 덜 냉소적이며, 다른 방향으로 이중적이다. 하니 악틱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No Buses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을 훑어보기로 한다.

 

<Sweet Home> 커버.


2집 커버 아트, 다섯 맴버 뒤에 펼쳐진 배경은 새파란 하늘이었다. 3집의 커버 아트 배경 역시 푸른빛, 그러나 짙고 탁한 블루다. 방치된 지 오래된 듯 보이는 곰인형이 기대어 있는 벽지의 색. 이 그늘진 이미지와 제목 ‘Sweet Home’을 연결해 해석을 시도한다: 셀프 타이틀드 앨범인 <No Buses>가 사회와 시대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에 관한 탐구였다면, <Sweet Home>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라는 물음에 대한 비관적 답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home’은 가정보다는 세상, 곰인형의 주인은 인류가 쌓아온-아름답지만은 않은 유산 더미에 파묻혀 괴로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The boy he got wings from a bug / He’s not a bird” (‘Sunbeetle’)

“How am I to be a bird” (‘Stopstopstop’)

“A dreaming bird falls down below” (‘Daydream Believer’)

 

2집에 펜데믹의 흔적이 있었다면, 3집에는 아포칼립틱한 정서, 표현하자면 ‘개인적인 아포칼립스’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Stopstopstop‘의 마무리를 비롯해 여러 곡에 언급되는 ‘새’, ‘꿈’, 혹은 ‘꿈꾸는 새’는 앨범의 화자가 동일시하거나 동경하는 상태를 비유한 것일 테다. 하지만 ‘Sunbeetle’의 주인공은 새의 것 대신 ‘벌레의 날개’를 단다.


He’s devoid of human touch

But he can’t forget the rules

Across the world

Way to be liars

- ‘Sunbeetle’, <Sweet Home>


‘Sunbeetle’은 ‘해를 먹은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새가 되지 않았거나 못했다. ‘벌레로부터 날개를 얻었고 더듬이가 돋아났’다. 위에 옮긴 구절이 샤우팅으로 딜리버리된 후, 곡은 가라앉아 관찰자적 화자의 감상으로 마무리된다.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 / 그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었나봐” ‘그’는 ‘거짓을 말하는 규칙을 터득하며 자라는’ 인간사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고 싶었나. 아니면 ‘휴먼 터치’에 결핍되었을 따름인가. 자꾸 이 우화의 ‘교훈’을 탐색하게 되지만, 영원히 모를 테다. 거기엔 듣는 이를 상상하고 고민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다섯 맴버가 캄캄한 공간에서 기이하게 흔들리는 비주얼라이저도 꽤나 별거다.


https://youtu.be/aUr9ctUQqDI?si=MzkbWhk68xhcwPzH

'Sunbeetle'


다음으로 두 곡을 다루며, No Buses가 <Sweet Home>에 심은 complex한 (복합적이고 복잡한) 메시지에 다가가 본다. 부드럽고 어쿠스틱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Stopstopstop’에는 존재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개인은 ‘저마다의 폭풍을 맞이하고 완벽히 다시 태어난다’. ‘내 실수도, 네 실수도, 내 부모의 실수도 아닐’ 것이다.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없다. 항상 대안이 있는 건 아니고, people에게 더 밝은 미래는 없다.(여기서 ’people’은 아마도 human kind를 일컫는 듯하다.) 우리는 결국 도망치기를 멈춘다.‘ “I wanna spend days like we were dreaming / All I can do is just waiting for” 비관적이나, 절망을 직시한 후 희미한 희망을 붙잡는다. 꽤나 직설적인 가사는 실버라이닝의 청각화-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멜로디를 타고 점차 고조된다.

 

‘Home’에는 리듬 위주의 연약한 보컬, 메탈릭하게 부서지는 그룹사운드와 실험적으로-재지한 리듬이 번갈아 흐른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우러지는 기이한 트랙이다. 보컬 콘도가 잠에서 깨어나는 씬으로 시작되는 비디오, 배경은 가정집이다. 맞은편에 위치한 카메라는 그의 일인칭 시점으로 움직인다. 굴곡진 채 마구 흔들리는데, 화자의 상태를 대변하는 듯하다. 깨어나자마자 약을 삼키고, 미로 같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티를 마시거나, 동료들과 공연하거나, 그저 배회한다. 몸은 뱅잉과 휘청거림을 오간다.


https://youtu.be/jHJ1rWUugp0?si=BMmnyuTCgfpIAREQ

'Home' mv.


“집에 갈 거야 / 그날이 다가오고 있어 / 천장에 닿으려 날아오르지만 / 너무 아래 있는 느낌이야 / 군중 속에서 소리쳐 /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달아나 / 댐 아래로 가라앉아 / 사람들로부터 달아나 / 어떻게 시작하지? / 끝내야만 해 / 수영장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야 / 언제 시작했더라? / 벌써 다 끝냈는데 /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모든 게 다 끝나버렸어 / 집에 가는 길은 너무 힘들어 / 너무 오래 걸어왔어 / I’m ready to go home but still trying to stay” - ‘Home’, <Sweet Home>


전체 가사를 거친 번역으로 옮겼다. 그는 ‘집에 가고자 하는 동시에 머무르고자 하고’, ‘시작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이미 끝냈다’. 모순되는 욕구와 행위가 쓰러지기 직전의 지치고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묘사된다.  ‘home’ 앞서 설명한 ‘home’과는 다르다. 떠나왔거나 머무르고 있는 장소가 아닌 다다르려는 장소다. 실재하는 장소가 맞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데, ‘집으로 가겠다 말의 뜻은 ‘으로 돌아가겠다 선언이나,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제스처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도 포기나 도피는 아니다.

 

이 레코드에서 Home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기반하고 있는 현 세계로서의 ’(bitter) sweet home’(1)과, 긴 고난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real) sweet home’(2-그것이 무엇이든). 레코드의 화자는, home1에서 home2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모호한 해석을 해본다.

 

그 여정의 대단원-혹은 인터미션-에서 No Buses는, 탁한 호수 위에 둥둥 떠 서로의 손을 맞잡고 “I’m with you”라고 노래한다, “너의 소중한 감정들을 그러쥐고 싶다”고. 이 ‘보통이 아닌’ 시대를 배회하는 ‘평범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향해, ‘평범하지 않은’ 아름다운 위로를 건넨다. 이제 보니 커버의 곰인형은 둘, 서로에게 기댄 자세로 놓여 있었다.

 

Dear my friend

I want to grasp your precious feelings

No one can take your place

- ‘I’m with you’, <Sweet Home>

 

https://youtu.be/dgwEjOqlK74?si=9pwUq0v7CbrZPpDJ

'I'm With You' mv.



No Buses는 쉬지도 않고 올해 3월, 싱글 레코드를 내놓았다. 루즈한 재즈 리듬, 고운 질감의 보컬을 택한 ‘Eyes’에는 후렴의 강렬한 그룹사운드를 제한다면 (거칠게 말해) 베드룸 팝이라고 분류해도 좋을 분위기가 있다. <Sweet Home>에 짙게 깔려 있던 고독과 갈증은, 차분한 허무로 가라앉았다.

 

화자는 ‘eyes’를 ‘unfeeling’으로, ‘life’를 ‘meaningless’로 수식한다. 그러고 보면 이 meaninglessness의 그림자는 No Buses가 탄생한 날부터 있었고, 형태와 강도를 달리하며 항상 레코드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창작자/밴드로서 세상과 맺을 관계의 모양을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떨어지는 조각들을 모아 작품으로 세공하는- 인간적/예술적 여정을 거친 후 나온 정서는 그 밀도가 다르다. ‘의미없음’은 결론이 아니다. No Buses는 ‘그럼에도 의미와 이유를 찾아 헤매는’ 일을 지속할 것이고,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인 무기력증과 삶의 무의미함을 노래하는 이들의 음악에서, 순간을 버티게 해줄 옅은 빛을 발견하게 된다.


We don’t need another reason to live this life

But I can’t stop searching for

With these unfeeling eyes

- ‘Eyes’


https://youtu.be/NDvZ8N8R_c0?si=8Yj9xv2u3ShmlYky

'Eyes' mv.


외계에서 뚝 떨어진 귀여운 괴짜들-로 첫인상을 남긴 No Buses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던 지구에서 n년을 버티며 그보다 훨씬 굉장한 존재로 거듭났다. ‘Tic’에서 ‘Eyes’까지, 그 이상weird한 독창성을 유지하고 또 갈고 닦으며 늘 그 이상more과 이상ideal을 바라보았다. No Buses는 오늘도,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 참고 인터뷰

https://www.nme.com/en_asia/features/music-interviews/no-buses-tokyo-indie-rockers-self-titled-sophomore-album-interview-2021-299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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