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 Dapperton, <Henge>
From 'Sunset' to 'Sunrise', "Underworld" and "Human Nature"
Gus Dapperton, <Henge>(2023)
‘Moodna, Once With Grace’를 재생할 때마다 -대체 나는 18세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거스 대퍼튼이 열 여덟에 낸 데뷔 싱글은 완벽하고도 유일했다. 그루비한 베드룸 팝에 늘어붙은 절제된 멜랑꼴리에 빠져들면, 그 늪에서 영원히 헤엄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Brendan Patrick Rice로 태어난 소년은, 작업한 음악을 세상에 선보이며 스스로를 ‘Gus Dapperton’이라 칭한다. 예술과 자아를 자유로이 펼치기 위해 지나온 삶을 뒤고 하고 ‘다음 챕터’로 접어드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제스처였다. ‘거스’는 예명이나 페르소나보다는 본질에 가깝다. (‘거스’는 ‘브랜든’을 ‘him’으로 일컫는다.) 십대에 이미 인간적/예술적으로 주체적이고 심도 있는 성장을 겪은 비범한 자, 이 멀티플레이어 지니어스에게 드리운 영광은 온전히 그 자신의 업적이었다.
https://youtu.be/xjlTOqagjuY?si=7jKXJZOW5ql250bS
J: “당신이 태어나며 받은 이름인 ‘브랜든’은 너의 더 어린 버전,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인격을 받아들이며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름인 ‘거스’의 인격을 받아들일 때는, 한 번도 불편했던 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브랜든에게 해주고픈 조언이 있나?”
G: “워릭(in 뉴욕, 대퍼튼의 홈타운.)과 고등학교의 제약 너머 바깥에 온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역과 주변 규모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규모로 사물을 봐야 한다고. 세상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봐야지, 단지 네 고향에서 받아들여지는 대로 봐선 안 된다.”
J: “‘거스’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G: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왜냐면 브랜든이 되려고 애쓰는 게 힘들었거든, 거스가 되는 일은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됐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된 나 자신. 그 전에 실은 얼마나 불편했는지(알게 되는 것)조차 내겐 위안이었다. I started to not give a fuck about anything, 그건 사실 어깨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 Gus Dapperton With. Jess Farran, 2019.02.14, [i-d.vice.com]
대퍼튼은 이듬해 연달아 낸 EP <Yellow and Such>와 <You think you’re a comic!>에서, 첫 싱글과 유사한 스타일을 다채로운 무브로 유영하는 와중 신스의 활용법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인디 히트 ‘Prune, You Talk Funny’는 꿈꾸듯 유쾌한 하모니로 가득하고, 이어지는 ‘I Have Lost My Pearls’는 리듬과 보컬을 무겁고 처연하게 늘임으로써 색다른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니, 정규 1집의 넓은 음악적 폭은 이미 예고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인디’라고밖엔) 장르를 특정하기 힘든 <Where Polly People Go to Read>는 오프닝 트랙 제목처럼 ‘Verdigris청록’을 띠고 있다. 위태로운 로맨스의 다이나믹에서 비롯된 블루, 한밤중 떠난 드라이브의 서늘함, ‘어두운 공간’으로 다이빙한 날 뜻밖에 발견한 수정구슬이 발하는 빛, 그 색은 전부 청록이다. 어글리-캐주얼-리드미컬한 사운드, 초현실과 현실이 혼합된 러브포엠들. “더 이상 피터팬이 아니어도 괜찮은”[i-d.vice.com]이의 새로운 자기소개라고 할까.
그럼에도 비쳤던 장난스러움, 일종의 피터패-니악함은, <Orca>에서는 찾기 힘들다. 2집으로 넘어가며, 대퍼튼은 넓히기보단 집중해 파고들었다. 내면 깊은 곳으로 손을 밀어넣어 끄집어낸 덩어리를, 가슴아프게 아름다운 형상으로 빚어냈다. 비유이건 말그대로건 ‘중독’에 대해 고백하기도, 진지하게 타나토스에 가닿기도 한다. 감성적 록발라드나 잔잔한 어쿠스틱 포크도 들리는데, 레코드의 주된 정서와 만나며 장르를 벗어난다. 고요한 아우성, 절제된 몸부림, <Orca>에는 그런 표현이 어울린다.
“<Orca>의 첫 곡 ‘First Aid’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그동안 내 음악에 대해 하지 않았던 말들을 해 주었다. 과거에는 사운드와 나,에 대해 그저 몹시 신나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가사와, 그것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더라. 있지, 많은 이들이 ‘그게 어떻게 자신들을 구했는지’ 털어놓더라고.”
- Gus Dapperton, By. Megan Armstrong, 2023.06.29 [uproxx.com]
일방향으로 점차 심화되거나 딮 다운하게 하강했던 정서들은 3집에 이르러 압축/정리되었다. 아니다, 앞 문장을 지워야겠다. <Henge>를 이전 레코드에 이어 설명하는 행위는 적절치 못하다. 반짝이는 청록과 짙은 핏빛을 뒤로 하고 글리터블랙&애쉬블랙의 시기에 다다른 거스 대퍼튼. <Henge>는 아티스트로서 다음 챕터라고 해도 좋을 작업, ‘헨지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쓰고플 정도로 명확한 구상이 짚이는 픽셔널 콘셉트 앨범이다. 이를 테면, “Jess will lead the way”(‘My Favorite Fish’)나 “If it wasn’t for my sis”(‘First Aid’) 같은 문장은 <Henge>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대퍼튼이 그린 <Henge>의 비전을 접했을 때 “영화나 책을 보는 듯했다”고, 프로듀서 Ian Fitchuk은 회고한다.
“거스는 내가 세션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Henge>-앨범, 비전, 윤곽, 스토리-에 대해 실질적으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건 내게 놀라울 정도의 영감을 주어서, 그 모멘텀이 이어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게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여기, 내가 창조하고 있는 세계야; 이 일부가 될래?’ 이랬으면 좋겠다.”
- Ian Fitchuk, By. Megan Armstrong, 2023.06.29 [uproxx.com]
대퍼튼의 앨범 커버아트는 주로 그의 초상, 오디오-비디오와 조화를 이루는 독립된 작품이다. <Henge> 커버 역시 그러하며, ‘이 세계’로의 몰입을 돕는 엑스트라의 메시지를 포함한다. 80년대풍+알파(아이라이너와 넥카라 디테일을 보라)로 스타일링한 대퍼튼의 상반신이 보인다. 그는 <~Polly People~>처럼 정면을 응시하거나 <Orca>처럼 그늘 아래서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눈은 이쪽을 향하고 있지조차 않다. 내리깔려 있고, 생각에 빠졌거나 홀린 듯 초점이 흐리다. 아트워크는 회화 질감. 이를 베이스로 한 비주얼라이저를 살피면,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배경은 불길처럼 유동한다. 적당히 인상적이고, 묘하고, 비밀스럽다. 드리미-판타지한 에스테틱이다. 레코드를 재생하기 전 이미지를 던지는데, 모호한 맛보기 정도이므로 음악까지 지배해버리지는 않는다.
픽셔널 콘셉트 앨범이라 하여 한데 묶을 수는 없다. 당연한 소리지만, 아티스트의 비전과 송라이팅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작년 글에서 다뤘던 악틱 몽키즈의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를 예시로 가져와 본다. 애초에 여러모로 서로 비교하기 힘든 작업을 하는 이들이니, 뒤의 설명은 ‘말하자면 그렇다’의 톤으로 읽기를 바란다. <Tranquility~>는 근미래 배경 SF에 동시대 사회 풍자를 담았다. <Henge>는 제한된 시공간의 판타지 월드를 통해 “Human Nature”(‘Horizons’)를 들여다본다. 송라이팅에는 루즈하게 반영된 편이라, 트랙을 개별적으로 들으면 ‘콘셉트의 농도가 기대보다 옅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헐거운 가사’는 의도된 바다.
“가사들은 자신의 경험을 붙여넣어 연관지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루즈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정말로 강력한 콘셉트가 있었다, 뉴욕시의 지하세계에 갇힌 사람에 대한. 해가 지면 그는 이 언더월드에 갇히고, 해가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 Gus Dapperton, By. Megan Armstrong, 2023.06.29 [uproxx.com]
<Henge>는 ‘Sunset’으로 열려 ‘Sunrise’로 닫힌다. 그 사이 ‘Horizons’, ‘Midnight Train’, ‘Lights’ 따위의 제목들이 배치돼 있다. “곡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기도 전에 제목들을 적어내려갔다”[uproxx.com]고 대퍼튼은 회상한다. 이를 송라이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의 출발점에는 ‘Sunset’이 있었다.
https://youtu.be/NhmP6bnMra4?si=tAZ2aBrd28ATeFKr
단조의 기타 리프가 고요하게 흐른다. 희미한 에코가 얹힌 보컬, 그 차분한 피 부 아래 날카로운 고통이 숨어있다. 여기서 일단, 음악이 멎는다. 그리고 트랙의 ‘첫 장’이 넘어간다, 혹은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며 시네마가 열린다’. 앞선 리프가 이번엔 건반으로 연주되며 웅장하게 귀를 채운다. 더욱 샤프해진 보컬이 타이트한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뱉어낸다. 건반이 잦아들고, 그룹사운드가 등장한다. 변주, 쉼표, 다시 변주. 전체적으로 풍부하고 비장하나 그 강약을 마디마디 세심하게 조절했다. 틀에서 벗어나 실험을 감행했음에도, 정갈하다. 조바심과 욕심을 걷어냄으로써 곡의 영혼을 살렸다.
“I’ve come too far”
‘Sunset’의 첫 문장이자 끝 문장이다. 언뜻 조각나 있는 가사에는 뮤직메이킹과 삶에 대한 진행형 통찰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에는 “지나치게 똑발라 곡선의 자리라곤 없는 길”과 “고통의 집”이, 실버라이닝이 아닌 “결코 보지 못할 봉화와 같은 당신의 빛”이 있다. 모든 것이 벅차고 탁한 가운데, 화자는 분투한다. “Killed the flame, I’m divin’ deeper in the darkness / Burned every bridge, now there’s nothin’ left to spark it“ - “때로 우리는 감정적으로 밑바닥에 닿는 순간, 비로소 다시 올라갈 힘을 받기도 한다.” The Cactus Blossoms 글에 썼던 문장, 허나 ‘Sunset’-<Henge>의 철학은 이와도 조금 다르다. 화자는 되돌아가려 애쓰는 대신 그 컴컴한 수렁으로 다이빙한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면, 길은 카오스로 나아가는 쪽에 있을지도 모른다.
“~ 해가 지나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기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론이나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는, 훨씬 간단했다. 모든 것은 엄격하게 느낌과 호기심이었지. 지금은 연주하기 시작하면, 나보다 앞서 이미 그려진 것들이 다 보인다. I don’t know how but with ‘Sunset’, 나는 그 오리지널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구조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를 내던져 버리고, 그저 칠했다. 내 가장 자랑스러운 창조물, 이것 없이 이 앨범은 아무 것도 아닐 테다. 내 목표는 영감을 주는 일이다. 늘 그래왔다. 그러나 최근까지는, 그런 식으로 정의하지 않았었다. 이 작업으로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멋대로인 리스너로서 편애할 수밖에 없는 ‘Sunset’. 변명하자면, 대퍼튼 스스로도 편애를 숨기지 않는 작품이다. ‘뮤직메이킹의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해 준’ 작업이라서일까, 이제껏 본인이 만든 어떤 음악과도 다르고, 이렇다할 타 뮤지션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되풀이할수록 깊이 들리는, 원앤온리한 마스터피스.
<Henge>를 정의할 곡을 꼽는다면 ‘Sunset’일 테지만, 그외 트랙들은 (표면적으로) ‘Sunset’과 별로 닮지 않았다. 이안 피척의 프로듀싱을 거쳐 워너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Henge>,는 거스 대퍼튼이 낸 레코드 중 가장 ‘메인스트림 팝’에 가깝다. 그러나 ‘유행을 따른’다거나 ‘스타성을 노린’다는 뉘앙스는 없다. 곡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색과 실험적 요소를 갖추고, 아티스트가 공들여 그린 아크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베드룸 팝으로 분류할 음악적 요소는 찾기 어렵다. 자주 들리는 신스도 <~Polly People~>의 그것처럼 펑키-인디하기보단, 웅장하게 고조되거나 정제된 발라드로 늘어지곤 한다. 그룹사운드만큼 보컬도 상당히 풍부해졌다. 초기에 즐겨 썼던 저음이 들리기도 하나, 훨씬 다듬어졌으며 가볍다. 뱃심으로 밀어낼 때도 묵직하게 끄는 대신 시원하게 뱉어낸다. 입을 다 벌리지 않고 음을 내보내는 특유의 딜리버리를 선택적으로 사용해, 감정이 멜로디에 밀착되도록 돕는다.
https://youtu.be/ucEmEFj3s9I?si=inLT2GiEVYmXMOpY
“I’m sorry I forgot the things that I promised”: 두 번째 트랙 ‘Phases’는 대중적 사랑-이별 노래의 그것으로 손색없는 첫 문장과 서정적이고 부담 없는 멜로디로 위장하고 문을 연다. 러브송/브레잌업송이라 해도 아주 틀린 수식은 아니다. ‘Phases’에는 과연 어긋난 관계에 대한 묘사가 있다. 그러나, 메인스트림 발라드 팝의 특징을 갖춘 선율에는 드문 질감의 소로우, ‘아련한 유감’이 묻어나며, 가사는 겉으로 보이는 상황을 서술하거나 한쪽의 입장을 던지는 대신 본질을 꿰뚫어 아우른다. 그들이 공유했던 것이 로맨스인지 우정인지, 어떤 특수한 신뢰였는지는 불분명하다. ‘you’는 하나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다. 화자는 사과한다. 그는 “약속했던 것들을 잊었”고, “배운 것들을 파괴했”지만, 전적으로 제 잘못은 아님을 안다. “너는 정확히 원하는 바로 그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내 전부를 앗아가서는 오직 절반을 위해서만 머물렀”다. “나는 사실을 진술할 때마다 혼났고, 우그러뜨려졌”다. 관계를 여기까지 끌어내린 것은 양쪽 모두. “I never really tried to stop / But you never really tried to save it / I never thought I’d be thrown off by the changes”
Come and find me, find me again
I’ll get behind your last attempt
To climb that mountain if you can
I’ll be waitin’, estimating all the weight of my offense
- ‘Phases’
뼈있는 브릿지다. ‘날 찾아’로 시작하므로 언뜻 화해의 제스처로 들리지만, ‘나’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너의 마지막 시도 뒤를 쫓는”다. “할 수 있으면 그 산을 올라와 봐. 기다리고 있을게, 내 악의의 무게를 합산하며.“ 끝내자-는 결론은 아니다, 화자는 어딘가에 발이 묶여 있는지도, 그와 ‘너’의 관계는 끝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you’는 이후 곡들에도 등장하나, 특정하기 힘들다. 동일한 존재란 법도 없다. “Homebody I’m a nobody but you’re somebody to me”: ‘Homebody’의 후렴이 짚는 포인트는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너’는 “꿈에서 본 듯한”, “어젯밤 돌아오는 길에 내게 들이닥친” 이, 실재하는지도 확실치 않다, 허나. ‘노바디’인 내게는 ‘썸바디’인 네가 있(으므로 아무튼 괜찮)단다. 이상하고 로맨틱한 구절이다. 이 미지의 ‘너’에는 ‘Midnight Train’의 ‘너’와 유사한 데가 있다.
‘Midnight Train’, “자정의 열차”를 탄 화자는 말한다, “내 길엔 오직 사랑만이 있어”, “내 혈관에는 불과 얼음이 흘러”, “내 뇌에는 도파민이 흘러” 그러나, “완벽한 그림 속 세상은 날 프레임에서 잘라내 버렸”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벌스 마무리마다 화자는 털어놓는다, “이번에는 두렵다”고. ‘트레인’은, ‘헨지 유니버스’ 안 환상의 열차이자, 현실 속 마음의 상태나 연속되는 생각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How could I trust myself? / Runnin’ right off of the rails / How could I break the spell? / Up this high, the ride prevails”: 아마도 운전석에 앉은 이는 화자일 테지만, ‘운전의 주체’는 아니다. ‘열차’는 달리고,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라이드’ 자체에 지배당한다. 속도를 늦출 수 없으므로, “네가 나타나주어야만” 한다. 테크노틱한 신스는 질주하는 트레인을 연상시키고, 둔한 오토튠이 얹힌 보컬은 사로잡힌 화자의 심리를 표현하는 듯하다.
https://youtu.be/2SU1RACheeQ?si=HaVLZnxDM2vjhiio
때로 추상적이거나 몽롱한 ‘너’들, 거기에 드리운 것은 ‘나’다. 아마 두 연인의 이야기일 BENEE와의 합작 ‘Don’t Let Me Down’조차, 대퍼튼이 부르는 파트는 ‘나’를 돌아보는 데에 무게가 실려 있다. <Henge>는 결국 ‘세상과 나, 삶의 비밀’에 관한 레코드다. <Orca>가 파고들었던 내면이 퍼스널한 스트러글이 소용돌이치는 그것이라면, <Henge>가 여행하는 내면은 인간 보편, 앞서도 언급했던 “human nature”(‘Horizons’)와 연결되는 그것이다.
Oh, it may take time
I don’t know when, but I know how
We’ll waste the daylight
And drive that dusk into the ground
All we ever had on paper was a wild imagination
All we ever had to wager was my wild human nature
I know, you know / It takes fire to find the weakness
I know, you know / Old horizons fall to pieces
- ‘Horizons’
<Henge>에서 거스 대퍼튼이 ‘맡은 캐릭터’는 ‘The Stranger’. 본인이 감독한 ‘Horizons’ 비디오, ‘스트레인저’는 ‘언더월드 크리쳐’들의 타겟이다. 한밤중의 레스토랑 구석자리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는가 싶더니, 모두를 마법에서 깨워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기라도 하려는 듯, ‘성가시게’ 군다. 노트를 빼앗기고 보이지 않는 와이어에 매달려 다른 ‘사로잡힌 이들’ 가운데 섞여 퍼핏 댄스를 춘다. 이내 와이어를 끊고 지휘봉을 빼앗는데, 그가 원하는 건 지휘자의 위치가 아닌 ‘자유’. 벗어나려면, 노트를 되찾아야 한다. 거기엔 희망보다는 절망, “wild imagination”, “worst intention”(‘Homebody’)이 그려져 있다. ‘언더월드’가 현실에서 무엇을 상징하든, 풀려나기 위한 열쇠는 ‘직면’이라는 의미일까.
https://youtu.be/3uZ9i4QYRLo?si=0v66pO6bxhIDC6_S
사로잡혔다 풀려나고(‘Horizons’), 홀려 들어갔다 빠져나오고(‘Don’t Let Me Down’), ‘nowhere’에서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온다(‘Homebody’). 오디오가 ‘루즈’한 만큼, 비디오는 ‘타이트’하게 콘셉트에 충실하다. 소품이나 착장부터, 헤매듯 허우적거리는 대퍼튼의 몸짓까지. 이 ‘밀도 차이’는 우리가 헨지 유니버스를 다양한 방법으로 탐험하며 감각하고 상상하고 영감을 받도록 돕는다. 공감하고 더 나아가 동일시하거나, 거리를 두고 픽션으로 즐기거나.
꼭 ‘Horizons’에서 이어지는 듯한 ‘Homebody’ 비디오는 나머지 두 mv와 다른 스타일로 콘셉트를 따른다. ‘언더월드’에서 탈출한 ‘스트레인저’가 지하철역 벤치에서 깨어나며 시작되는 일종의 초단편 로드무비. 대퍼튼은 한밤중에서 아침까지 도시를 배회한다. 카메라는 주로 저 멀리 떨어져서 줌인으로 그 실루엣을 포착한다. 드론으로 촬영했을 법한 화면도 자주 등장한다. 가로막는 ‘언더월드 크리쳐’가 없음에도, 길은 왠지 힘겹다. 앞서 ‘배회한다’고 적었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목적지는 “home”으로 정해져 있고, 딱히 ‘걷는’ 것도 아니다. 대퍼튼은 도로와 인도, 넓은 사거리와 골목길을 무기력한 스텝으로 움직인다. ‘춤’보다는 ‘몸/마음 상태의 몸짓화’에 가깝다. 주저앉거나 아예 도로 한가운데 대자로 드러눕기도. 머리카락은 점점 하얗게 센다. 끝내 집에 도달하고, 어리둥절해한다.
https://youtu.be/SniQFYjvzkQ?si=E_IEw3N0Vv6VJKjH
I fantasize / To see if there’s a space for me in mind
I held on tight / To memories that made my alibi
But now I take the blame
An era full of misery and shame
From here on out, I will not fit that frame
Let the time reclaim, let the time reclaim
You freeze when danger knocks at your door
The pent-up pain is keepin’ it closed
Let the stranger out of the mold
Let the stranger out of the mold
- ‘The Stranger’
‘The Stranger’의 화자는 ‘스트레인저’, ‘Horizons’ mv의 그일 테다. 그러고 보니 삽입된 기이한 효과음에는, ‘Horizons’ mv에서 그를 붙잡아두려고 수를 쓰던 크리처의 음성과 유사한 데가 있다. 비디오 속 ‘스트레인저’는 “wild imagination”을 되찾고 그곳을 탈출했다. ‘The Stranger’의 화자는 ‘더 이상 상황을 판타지화하거나 변명하지 않으리라’, ‘부정적인 기억을 마주하리라’, ‘틀에 나를 끼워맞추지 않으리라’ 선언한다. 여기서, ‘스트레인저’에 있는 두 가지 의미를 추측해볼 수 있겠다. 하나(픽션 버전)는 ‘언더월드’의 뉴페이스로서 ‘낯선 이’다. 다른 하나(논픽션 버전)는: 화자/개인/인간 보편에 존재하는 아더사이드, 안주를 거부하고 ”블레임과 리스크를 감수“하며 “변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또하나의/낯선 자신’이다.
“이 앨범의 모든 것이 개인의 한 면과 또다른 면 -카오스, 자유, 변화를 갈망하는 부분 / 그리고 안전, 루틴, 단조로움을 원하는 부분- 사이의 배틀을 상징하고 있다.”
“내 성스러운 삶의 만트라가 전부 음악으로 흘러들어올 때가 많다.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따르는 불편함을 경험해야만 한다 - 리스크보다 리워드가 더 거대하다. 내 음악은 고통을 느끼고 치유와 긴장의 방출로서 곡을 만드는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 Gus Dapperton, By. Megan Armstrong, 2023.06.29 [uproxx.com]
‘Lights‘의 ’나와 너’는 ‘개인의 양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배틀”의 목적은 승패를 갈라 한쪽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필연적/필수적으로 공존하며, 서로를 밀고 당기거나 이끌기도 한다. “나는 적어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너의 마음은 죽었”고, “나는 갇혀 있지만 너는 울타리 안에 있”다. ‘나’는 “너의 희생으로 가진(탈출하진) 않겠어”라고 잘라 말한다. 위험을 지나는 동안 힘을 잃은 ‘너’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혹은 나를 따돌리고는, 주저앉아버렸다. “저주가 활개치는 동안 열린 기회가 닫혔지만, somehow 나는 네가 마지막에 성공할 거란 걸 알아” 그러므로 ‘나’는 ‘너’를 기다린다. “비록 남은 희망이 없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리라” 고백한다. “불안정하고, 화나고, 상처받은 채로 늘 어둠이 그립다고 말하지만, 첼시 마켓에 찾아든 빛은, 너의 마음을 훔쳐.” ‘lights’는 ‘darkness’의 (공간적)반대편이 아닌 (시간적)앞뒤에 위치한다, 그것으로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다 지칠 무렵 나타나 주위를 밝힌다.
Sinister, remote, and stark
You always say you miss the stars
But when the lights come on in Central Park
It steals your heart, it steals your heart
Insecure, provoked, and scarred
You always say you miss the dark
But when the lights come on in Chelsea Market
Steals your heart, it steals your heart
- ‘Lights (feat. Cruel Santino)’
강렬하고 생소하게 오프닝을 끊은 <Henge>. 이후는 익숙하게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대퍼튼만의 창의력과 섬세한 디테일이 빛을 발하는 트랙들의 연속이었다. 완만한 경사로 가라앉던 긴장감은, ‘Wet Cement’에서 서서히 타오르다 완전히 연소된다.
https://youtu.be/Q2DCm-cRRkA?si=8ZRP14DOl_-T88vT
곱고 차분한 벌스, 몰아가며 고조시키는 후렴.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신중한데, 튀어나오는 날것의 정서를 다듬어버리는 대신 보존했다. 청자는 귀에서 터진 그 잔해의 이명을 두른 채 ‘해돋이’로 이끌린다. 라스트 트랙 ‘Sunrise’는 거스 대퍼튼이 작곡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Ocean Vuong의 시낭송.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헨지 유니버스’에 적합한 구성이 중요했던 대퍼튼은, 라스트 트랙에서 기꺼이 오션 브엉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스트레인저’를 품은 우리들에게, 삶의 여행길은 직선보단 ‘커브’의 반복, 해넘이와 해돋이처럼 순환이다. 카오스로 다이빙해 나아갈 용기를 냈다면, 어디선가 햇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따스함에 기꺼이 “심장을 내어주어라”(‘Lights’). 맨살을 드러내어라, 거기 피어 있는 “곰팡이를 빛이 찢어버리도록”(‘Wet Cement’) 허락하라, 돌아보고, 걷어내고, 느끼라-고 <Henge>는 노래한다, “그대들 각각의 타오르는 날개가 마침내 음악으로 만들어지리니.”
No one told us we were good, but we were good
In possession of the cells flowering
As it vanishes inside all the yesterdays behind us
How can we not jump?
Here, at the end
Where each of your burning wings is finally made of music.
- ‘Sunrise (feat. Ocean Vuong)'
“이 레코드가 영화라면 ~ 유일한 분위기와 철학적 대사로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슬로우번 사이버펑크 필름에 가까울 테다.”라고, <Tranquility~>를 비유한 바 있다. <Henge>에는 어떤 비유가 어울릴까. 레코드가 다루는 것은 해넘이에서 해돋이까지, 밤-새벽 사이의 (환상/현실/내면) 세계다. ‘보통’ 해돋이는 탄생, 새로운 시작, 활기를, 해넘이는 마무리, 소강, 회고를 의미하겠으나… <Henge>가 시네마라면, 기존의 상징과 화법을 뒤집어 사각지대를 조명한 장르 클래식의 뒤를 따른다. 그 안의 토큰들은 각자 동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맞물려 일방향의 흐름을 이룬다. 가장 긴장되고 고조된 상태에서 선셋으로 한 세계가 깨어나고, 선라이즈와 함께 잠드는 동시에 다시 불타오른다. 거꾸로의, 순환하는 앨범. 한 번 더-이게 시네마라면, 클리셰적 기승전결과 클라이맥스를 거부하고 고유한 플롯을 쌓아 관객을 설득해내는, 매니악한 판타지 수작이다.
https://youtu.be/EFsT_KNUjr8?si=jtO0GvxwW85jxbxB
“나는 훌륭한 가수나 훌륭한 기타 연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저 하고픈 말이 있으므로, 그걸 해내기 위해 주위의 모든 도구를 쓰는 거다.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여기지 않는 만큼 뮤지션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혹은 master of none으로 여긴다 - 죄다 하면서, 그중 무엇의 전문가도 아니지만 방향성과 의견을 지닌 채 그것들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알고 있는.”
- Gus Dapperton, By. Megan Armstrong, 2023.06.29 [uproxx.com]
“미술과 음악과 시네마, 그리고 사진은 어느 인간에게나 동등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다. 누구나 그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늘 내게 마법으로 다가왔다. 누가 무슨 언어로 말하거나 노래하는지 몰라도 된다, 노래에 언어가 포함될 필요조차 없다, 세계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가 당신과 같은 곡을 듣고 당신이 느끼는 것과 정확히 같은 식으로 느낄 수가 있는 거다. 언어와 달리, 음악과 음정과 화음에는 모든 인류의 커먼 그라운드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진실로 마법같다.”
- Gus Dapperton With. Jess Farran, 2019.02.14, [i-d.vice.com]
매혹적인 음색에 타고난 댄서의 관절, 개성 있고 깔끔한 마스크에 얹히는 저만의 표정. “I wanna be in the movie”(‘World Class Cinema’)가 진심이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게다. 다채로운 재능의 냇물을 꾸준히 흐르도록 갈고닦아 바다로 연결해낼 줄 알면서도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자칭 “master of none”, 거스 대퍼튼. <Henge>는 그가 신중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쌓아온 예술적 여정과 삶의 철학을 콘셉트라는 금형에 찍어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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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챘을지 모르겠으나, 위에 인용한 2019년 인터뷰는 당시~현재 거스 대퍼튼의 파트너이자 사진작가, mv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스 패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패런의 사진 속에서 대퍼튼은 마음껏 어둡고 솔직하다. 이렇게 나는 또 남들의 로맨스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독보적 감각의 협업을 지속하는 아티스트 커플, 이 얼마나 프레셔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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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리스트 순서에 따라 ‘Sunset’을 먼저 접한 후 ‘왜 나머지는 이 분위기가 아니냐’며 아쉬워했었다. 이리도 제멋대로인 리스닝 자세라니. 만약 죄다 ‘이 분위기’였다면 ‘Sunset’이 그토록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았으리라. (이제 선셋 n번 재생하러 간다.)
* 참고 인터뷰
https://uproxx.com/pop/gus-dapperton-interview-henge/
https://i-d.vice.com/en/article/d3md3y/an-intimate-interview-with-gus-dapperton-by-his-girl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