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w Hum
Low Hum’s low internal humming
<Nontiction>(2021)
<Room to Breathe>(2019)
기약없는 팬데믹이 이어지며, 콘서트가 멈췄다. 인디 뮤지션 펀딩과 연결된 실시간 홈라이브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고, 스튜디오 라이브는 더욱 소중해졌다. 지금 마스크를 벗고 돌아보는 당시 영상들은, 꽤나 별거다. 현장 관객이라곤 촬영팀 정도인 스튜디오 라이브를 이끄는 방식에는, 콘서트에서 면대면으로 팬들과 만나는 모습만큼이나(&그와는 다른 모양으로) 아티스트의 성격과 음악적 정체성이 반영돼 있다.
이를테면 half•alive는 오케스트라 리메이크 EP <in Florescence> 녹음현장을 비디오로 찍어 공개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콜라보를 지속해온 안무가 듀오 JA Collective는 물론 드로잉 아티스트까지 섭외해 퍼포먼스 아트를 펼쳤고, 그 시리즈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보컬 조쉬 테일러가 편집한 메이킹 다큐멘터리까지, 여러 모로 그들다운 작품이었다. 어째서 이를 새삼 떠올렸는가 하면, Low Hum의 라이브 EP <Live at Sunset Sound>의 비디오 버전을 최근에야 접해서다. <in Florescence>와 전혀 다르면서, 그처럼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쪽으로 완전했다. EP로 발매된 것은 작년이나, 촬영은 1집 <Room to Breathe>와 2집 <Nonfiction> 사이인 2020년 12월에 이루어졌다. 일곱 트랙 중 다섯이 <Nonfiction>에 수록된 ‘신곡’. 이는 이미 알려지고 익숙한 곡을 라이브로 기록하는 회고적 작업보다는 ‘넥스트 에라로 넘어가려는’ 제스처에 가까워 보인다.
https://youtu.be/ooCBCIqg1Zo?si=RworRXx-eO23sCTz
공연에 열중하는 Collin Desha와 밴드 맴버들이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다. 사방의 스크린에서는 볼륨-리듬을 시각화한 환상적인 화면이 재생된다. ‘일렉트로닉 소닉 만다라’라고 부르고픈 이 “라이트 쇼”는, Spaceface가 구성하고 비디오 아티스트 Bokeh Monster가 감독했다. 스튜디오를 채운 온갖 장비들을 보라. 로우 험은 사운드를 ‘올바른’ 모양으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툴의 종류나 수에 제한을 두는 송라이터는 아닌 듯하다. 맥시멀하게 터지는 음향이 반복됨에도 귀가 피로하지 않은 까닭은, 레코드와 트랙 내 여백과 강약을 신중하게 조절해서다. 보컬은 테크닉을 자랑하며 분리되기보다는 ‘음악 요소 중 하나’로서 조화를 이룬다. 여유로우면서도 긴장을 간직한 음색이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콜린 대샤의 작업에서는 자주 바다와 바람이 들린다. “예술적 자유를 베이스로 하는” 대샤의 프로젝트, 로우 험low hum의 소리는 ‘바다의 허밍humming’을 닮았다, 인간 내면의 영역에 울려퍼지는. 방문을 닫아걸고 홀로 작곡에 몰두할 것 같은 음악적 인상과는 반대로, 대샤의 송라이팅은 주로 투어 중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영감을 받곤 한다”[quipmag.com]는 그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질감이 첫 앨범과 차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프닝과 엔딩을 엠비언트하게 배치하고, 그 사이를 강렬한 박자감의 인디-일렉트로-익스페리멘탈 록 그룹사운드로 채웠다. 몽환적인 노이즈 리프과 연약한 가성의 보컬링이 자주 들렸던 1집. 2집은: 여전히 사이키델릭하지만 보다 날카롭고 건조하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멜로디가 주를 차지하며, 보컬에도 힘이 들어갔다. 로우 험 데뷔 이전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콜린 대샤의 솔로 연주는, 전작과 다른 색으로 빛을 발한다.
볼드하게 분출하는 사운드는 앨범의 지향점에 닿는다. 말하자면 <Nonfiction>의 화자는, <Room to Breathe>의 (아마도 동일한) 화자와 반대쪽을 바라본다. 1집에서 어딘가로 파고들었던 그는, 2집에 이르자 벽을 깨부수려 애쓴다. 전작에서 수렴시킨 자아를 가두었던 방문을 열고, 공기중에 스민 서늘한 습기를 내보내는 고온의 바람을 일으킨다. 이렇듯 로우 험의 2집은 1집을 기반으로 지어졌으며, 정서와 상태를 직면하고 풀어내는 능동성을 포함한다. 인간적/예술적으로 성장하는 이 메시지틱한 여정에는 더하기보단 덜어내는 행위가 강조된다. 마침내 어떤 지점/단계에 다다른 순간의 평온한 기쁨을 다루기도 한다.
“9할이 2019년 가을에 쓰였지만 2020년, 모두의 삶이 바뀌던 팬데믹 동안 녹음됐다”는 <Nonfiction>. 콜린 대샤는 “앨범이 이 시기 삶과 창작에 있어 찾아온 대폭의 변화를 깨닫도록 도왔다”고 말한다. “여러 부분에서, 곧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할 것인지 깨닫기 전에 앨범을 쓴 느낌이다. 아직도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돌이키는 중이고, 그게 시간이 지날수록 앨범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내 고유의 자그마한 포츈텔러였달까.” [quipmag.com]
그러고 보니 <Nonfiction>은 인디-익스페리멘탈 록 리스너들이 왠지 안어울리게(자조적 농담임) 정신 건강을 생산적으로 다스리고자 할 때 적합한 앨범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어, 살짝 주제넘은 음악 추천 컨셉으로 이 논픽셔널한 레코드의 조각들을 살펴본다.
https://youtu.be/KxewPwqdJVY?si=SVsy-wliHXFAbGMv
과도한 생각과 고민에 뇌가 짓눌려 있다면, ‘Take the Layers Off’를 들으며 ‘한 겹 한 겹 벗겨내’면 어떨까. “생각을 벗겨내 /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전부”, “벽을 찢어 / 맨살, 환희 가득한 리뉴얼”. “예전의 나를 풀어내고 난 애프터글로우”를 느끼는 화자는 이제 “내 더 나은 부분을 컨디셔닝하자”고 다짐한다. 이만큼 ‘건강한’ 록 가사도 드물 테다. “층을 벗겨내는” 행위를 청각화한 듯 끊는 포인트가 잦은 리듬과 보컬링, 첨예하게 고조되는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와 거친 기타 솔로에 몸을 맡기면, 탈피할 껍데기를 한두장쯤은 발견할지도 모른다.
고여 있는 기분이 들거나 큰 변화를 받아들일 감정적 준비가 필요한가? ‘Escape’과 ‘Phantasms’을 연속 재생하자. 사운드적으로 1집의 흔적이 들리는 ‘Escape’은, 아티스트가 “팬데믹에 잘 들어맞는 느낌”이라고 일컬은 곡이기도 하다. 웅장한 사이키델릭 일렉트로 리프에 흠뻑 취해 있으면, 엔딩의 ‘파도소리’가 ‘Phantasms’의 비트로 이끈다. “I had that dream / No sign to tell if I’m up / Days act the same / Like time might be stuck / Oozing through minutes / I start to realize / The only constant / Keeps constantly changing” (‘Phantasms’) ‘Phantasms’의 꿈, 초현실은 ‘Escape’의 현실과 다르지 않으리라. 멈춘 건 아마도 ‘나’, 화자는 “탈출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게 좋겠다” (‘Escape’)고 되뇌인다. ‘탈출’은 팬데믹을 고려해도, 아니 그렇다면 더욱, 물리적이기보단 철학적인 의미에 가깝게 들린다.
https://youtu.be/Fb2MF11D-ZA?si=a6LV12aV8rKxBtRK
https://youtu.be/rJmd6KQewU8?si=f5gDweSFje6-aL3D
삭제하고픈 관계나 유혹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는 ‘Listen to the Rain’. 현실적으로 끊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곡이 흐르는 5분 남짓 만이라도 “난 차라리 여기 앉아서 빗소리를 듣겠어”라 선언하는 화자에 이입해 버리자. 빠른 템포의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가 내적 댄스를 부른다.
조금 스파이시한 맛을 원하는 당신을 위해, 로우 험이 루즈한 풍자를 준비했다. 나르시시즘의 탈을 쓰고 무기력을 호소하는 ‘Model Me’. ‘House on Fire’가 불러내는 ‘너’는 ‘나’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You’re perfectly comfortable mute to the vulnerables / Spirals spin in your eyes properly hypnotizing / All the elephants in the room” , “Can we get along / like a house on fire? / Can we get along? / ‘Cause this house is on fire” (’House on Fire‘) 깔끔한 엔딩, “Wake up”. 흔하고도 닳은 말을 새기게 되는 건 왜일까. 경쾌한 멜로디 안에 무뎌진 피부를 찌르는 송곳을 품고 있는 트랙들이다.
창작의 불모지처럼 보이는 공간을 배회하고 있다면 / 일종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면, ‘Said and Done’을 들을 차례다. 로우 험은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곁에서 고민을 나눌 것이다. 화자는 담백하게 묻는다, “모든 것이 이미 이야기되고 행해진 것이라면, 내 몫으로 남은 게 있을까?” 언뜻 회의적이나, 콜린 대샤가 이 물음을 연주하고 보컬링하고 편집한 방식은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금 증명한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언어로만 말하지 않고, 이미 뻗은 길로만 걷지 않는다. 날마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해방,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있는”(‘New Again’) 상태에 다다르려면, 그역시 필요하다.
https://youtu.be/Lov57CpqH8g?si=dq-k4DsJSNsBEXKV
이제 시간을 거슬러, <Room to Breathe>을 들여다보려 한다. <Nonfiction>에는 상징적인 벽을 부수고 나아가려는 화자가 있다. <Room to Breathe>에는 무언가에 사로잡혔거나 어딘가에 정체된 화자가 있다. 방을 해체하려는 화자와 방으로 들어가려는 화자, 비약적 이분화이나 일단 그렇게 아우른다. 약간 억지스럽대도 역순으로 설명해야 했던 까닭은, 음악은 ‘옳거나’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말하고 싶어서다. 시간순으로 로우 험의 작업을 다룬다면 위에 적은 미성숙/성숙의 이분법이 글의 결론이라는 오해를 낳을까 우려되었다. 뭐, 내 기술에 대한 불신과 로우 험의 정규 데뷔 앨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기우이리라. 아무튼, “(<Nonfiction>에 비하면) <Room to Breathe>는 창작 과정의 사춘기처럼 느껴진다”는 콜린 대샤의 평가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그의 1집은 어떤 페이즈가 아니다. (물론 그는 본인의 전작을 부정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의 기분에 어울리는 곡을 찾을 때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 주곤 하는 보물상자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못하리란 것을 알지만 잠시 그저 꿈꾸고 싶다면, ‘Nebraska’를 최대 볼륨으로 들어 보자. 강렬한 그룹사운드가 사고를 정지시키고 중독성 강한 후렴이 주문처럼 “뇌벽을 튕긴다”(‘Escape’). 화자는 아마 연인일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네가 떠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네가 내게 준 것과 같은 사랑을 가진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이어지는 후렴에서 화자는 상실을 직면하는 대신 자기최면으로 도피한다. “네가 나를 기다렸음을 느낄 수 있어 / 그 꿈에서 내가 널 그렸을 때 / 그게 내가 아는 이유야 / 우리가 언젠간 함께하리란 걸” ‘너’를 향하는 듯 결국 자신을 향하는 말들, 곡의 첫 구절은 “Selfish me이기적인 나”, ‘너’와의 재회는 판타지임을 화자도 알고 있다. “숨길 수 없는 공허”를 메우기 위한 제스처다. 이 의도적인 폐쇄성은 앨범 전체에 드리워져 있으나, 음악 자체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로우 험은 이 특수한 욕구 혹은 무욕을 -(멜로딕 록부터 슈게이징까지 이런저런 장르가 들리나 하나에 끼워 넣는 것이 불가한)- 로우험스러운 일관성을 띠면서도 다채로운 메아리로 실험한다.
https://youtu.be/Du0NkUb1qdw?si=3pW72PynOGV9WQVU
‘head over heels’적인 정서를 두른 러브송들, 거기엔 수동적 집착이 있다. “‘Cause strange love is coming over me / And I can’t do a thing”(‘Strange Love’) ‘Sun Chaser’에서 움직이는 건 ‘너’, “내 삶으로 뚝 떨어져서 내 심장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 것, “예상치 못하게 내 삶을 바꿔 놓은” 건 ‘너’다. ‘Sink Your Teeth In’은 어떤가, “사랑에 빨려들어가 녹아내렸”다. “Tangled up in a web of lust and ignoring all the signs”, “You sink your teeth in, you swallow me alive / I should be leaving, instead I come inside”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며,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그에 휘둘린다.
도피적이거나 수동적인 화자들은 가슴을 꽉 채우거나 반대로 텅 비우길 원한다. 사랑이든 상실이든 불균형이든 하나의 감각에 몸을 맡긴다. 청자는 그 감각에 둘러싸임을 느낄 수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묶여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위해 ‘극복’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상태들-<Room to Breathe>는 그것들의 집합체다. ‘너’를 설정해도 ‘나’로 수렴하고, 스토리텔링의 흐름은 닫혀 있다.
첫 트랙 제목은 ‘Fake Reality’. 곡은 로우 퀄리티 배경음으로 열리고, 곧바로 그룹사운드가 귀의 틈을 메운다. ‘리얼리티’에서 화자가 머무르고자 하는 ‘페이크 리얼리티’로 넘어감을 상징할 테다. “자유는 내 마음 속에 살고 있어 / 돌아오고 있어 / 그 느낌을 놓지 않을 거야 / 날 그냥 내버려 둬” 상당히 적나라한 선언으로 ‘방’을 쉐이핑 해 놓고 페인트칠을 시작하는 앨범 - 방어적이기까지 한 짜임새다. 쓰인 워딩은 ‘판타지’도 ‘픽션’도 아닌 ‘페이크 리얼리티’, 화자가 ‘페이크’성을 인지하며 택했음을 의미한다. 정확한 위치를 알면서도 되풀이해 발을 담그고 마는 수렁이 있다. <Room to Breathe>는 우리가 거기 잠시 웅크리고 싶을 때 쉬어갈 방을 제공한다.
https://youtu.be/QpCiihgITgE?si=zVdhdmOi33We6Wjq
로우 험이 다루는 것 중 하나는 ‘무감각numbness’. 이 워딩이 직접 언급되는 트랙은 ‘Room to Breathe’ 그리고 ‘Comatose’다. 내외면의 소리들에 짓눌리는 ‘Room to Breathe’의 화자는 ‘숨을 틔울 방’을 갈망하며, “Numbness ain’t the remedy to all the noise 무감각은 그 모든 소음의 처방이 아니”라고 직시한다. 그러나 ‘Comatose’의 화자는 말한다, “Numbness never felt so right 무감각이 이토록 옳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휴먼 컨디션에 옳고 그름이 있을까, ‘right / wrong’이 아니라 ‘feel right / feel wrong’이며, ‘느낌’은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그 바다에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떠 있거나, 흐린 상을 찾으려 시도하거나- 어느 제스처도 틀리지 않다.
‘I Don’t Know Me like You Do’의 화자는 “나를 마주보는 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를 응시하며, “나는 네가 아는 것만큼 나를 몰라”라고 고백한다. ‘너’는 ‘나’고, ‘나’는 ‘너’이나, 늘 하나는 아니다. “네가 아는 만큼 나를 알고 싶어”, 그거다. 콜린 대샤가 세운 “에코 체임버스”(‘Room to Breathe’)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앉은 리스너들이 끝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내면이다. 압박에서 자유로운 채 ‘나’와 마주하는 공간, 컴포트 존이 될 수도 성찰의 방이 될 수도 있으나 어느 쪽이건 세이프 스페이스인. <Room to Breathe>가 선사하는 것은 돌고 돌아 진정으로, “숨을 틔울 방”이다.
그리하여, 무감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아마도 ‘Comatose’가 적절하다. 차분하게 매혹적인 전자음 리프와 몽환적인 보컬이 고막을 사로잡는다haunting. 반복해 듣다 보면 자연히 가사의 문장들 또한 머릿속을 맴돈다. 화자와 함께 그 안에 좀 더 머무르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끼거나 깨닫는다면, 빠져나와도 좋겠다.
https://youtu.be/JRLFr6THaTI?si=yDxelXEBCO2BM73k
* 참고 인터뷰
https://quipmag.com/low-hum-reflecting-on-the-joy-of-making-music-that-brings-people-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