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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Jul 14. 2024

아메리칸 히어로(가 아닌)

Towa Bird, <American Hero>

 


Towa Bird, <American Hero>(2024)  


* 인용에는 오역 가능성이 있음



Towa Bird’를 구글링하면 유난히 “르네 랩의 여자친구”라는 구절이 섞인 헤드라인이 여럿 떠오른다. 그 자신은 이 호칭을 오히려 반길 듯도 하지만, 토와 버드는 누군가의 파트너로 일컫기 민망한 록스타, 보다 어울리는 수식을 꼽는다면 “Z세대의 조안 제트”[Vogue]나 “뉴 기타 히어로”[Rolling Stone]이리라. 소셜 미디어에 기타 솔로 커버를 업로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지난 6월,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채로 첫 스튜디오 앨범 <American Hero>를 공개했다.


https://youtu.be/xq__ExLF3Lk?si=4Ftfzkiurygcerxq

'B.I.L.L.S.'


“Bills! / I’m so tired of paying rents”

“Land of the free / If you can afford it / Joke is on me / Being broke is boring”

- Towa Bird, ‘B.I.L.L.S.’


일곱 살에 기타를 처음 잡았고 열 넷에 밴드를 시작했다는 토와 버드에게, 송라이팅과 퍼포먼스는 이미 삶의 일부일 테다. 깔끔하고 힘있는 보컬과 강렬한 기타 연주를 앞세운 ‘B.I.L.L.S.’는 헤드뱅잉을 유발하는 곡이다. 토와 버드는 Z세대 프롤레타리아(꽤 안 어울리는 단어 조합이다)의 영웅이 되려는 것일까. 그러나 가사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선동(?)보단 건조한 토로에 가깝다. 홍콩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고,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토와 버드, 그는 스스로 “별로 아메리칸이 아니”며 “히어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American Hero”라는 워딩의 아이러니를 강조한다.[Vogue]


“‘American’과 ‘hero’ 두 단어를 함께 생각하면, 나는 6‘4피트의 백인 남자를 떠올리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 금발의 푸른 눈을. 그건 중성적인 퀴어로서 내가 대표하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나는 안티-아메리칸 히어로다, 그러나 내가 이민자이기 때문에, 그게 나를 거의 미국인,으로 만든다. 내 삶에서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 부분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왜냐면 I’m being vulnerable, I’m almost a hero.”‘

- Towa Bird, interview by. Alex Rigotti [NME]


‘B.I.L.L.S.’는 사실 앨범 안에서 주제/정서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트랙이다. 경쾌한 팝록부터 옅은 농도의 슈게이징, 어쿠스틱 포크까지 닿는 트랙들은 기타를 찢는 록스타이자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로맨티스트의 정체성으로 모인다. 작년 인터뷰에서 토와 버드는 당시 파트너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 망할bloody 앨범 전체가 그녀에 관한 것”[NME]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었다. 현재진행형 관계든 과거의 추억이든, 그 흔적은 시공간을 넘어 유효하다. 퀴어-러브의 순간을 담은 곡들은 송라이터 저만의 일기로 남지 않고 새로운 로맨틱-록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다.


토와 버드는 록 위에 당당히 서서 팝을 넘본다. 끝내주게 터지는 그룹사운드, 유명한 기타 연주는 재능을 과시하기보단 함께 즐기자며 리스너와 어깨동무한다. 가능성이 흘러넘치는 둔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은 귀가 소화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였다. 힘을 빼고 공기를 넣어 뱉거나, 내지르더라도 리드미컬하게 끊으며 소리를 쌓고 분산하는 레코딩을 택한다.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이고, 트렌디하면서 클래식하고, ‘곤조’ 있으면서 대중적이다. 그리고 직관적이다. 아티스트의 경험, 특정한 상대방과의 관계에 기반한 곡들은, ‘head over heels in love’한 상태에 머물러 본 이들, 특히 Z세대 퀴어들이라면 공감(혹은 열광)할 만하다. 이를 테면 ‘Drain Me!’가 그렇다. 토와 버드 자신에겐 “보통의 감각”인, 동시에 “바깥 세상에서는” 드문 “대표성”을 띠는-“레즈비언 섹스에 대한 록 트랙”[NME]. 직설과 암시, 은유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그 황홀함을 전한다. 로우키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몽롱하게 취해 있다 보면, 혀 끝에 “Sweet and sour”한 감각이 느껴진다.


https://youtu.be/V2kuNc5aXek?si=xsjZufdqK6RsFkww

'Drain Me!' mv


“Drip drop in the dark / Butterfly / Baby / Waterfall / Super soak / Do or die / Crazy”

- ‘Drain Me!’


“You, I can’t believe that you could tame my wild wild heart”

- ‘Wild Heart’


앨범 인트로가 지나자마자, 화자는 “Fuck my life, 왜냐면 난 너 없이 살 수 없거든”(‘FLM’)이라고 고백한다. 앞서 언급한 ‘Drain Me!’에 뒤따르는 건, ‘너’는 ‘나’의 “심장을 길들일” 원앤온리한 존재라고 어필하는 ‘Wild Heart’다. ‘나’의 마음은 다양한 모양으로 터져 ‘너’에게 꽂힌다. ‘이가 아플 정도로 스윗하고 토할 만큼 귀여운’ 상대를 향해 ‘징그럽게 솟아나는 갈망’(‘EW’), 그리고 ‘부메랑처럼 나를 떠나가는 너’에 대한 일종의 분리불안(‘Boomerang’) 등을 포함한다. 이별 노래 역시 있다. ‘Deep Cut’의 화자는 상처를 주고 떠나간 상대를 “깊이 베인 상처” 자체에 비유하며, 아물고 나면 “친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노래한다. 일종의 대응 기제coping mechanism. 반면 ‘Last Dance’는 “다른 여자와 있는 너”와의 댄스를 추억하며 “텅 빈 심장”을 열어버린다. 우정과 로맨스의 틈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Sorry Sorry’), 외로움과 공허(‘The Party’)에 대한 곡들이 사이사이 배치돼, 한껏 달아오른 피부를 식히고 뱃속 어딘가를 가만히 건드린다.


“No, I’m not the one / But I know you needed someone”

- ‘The Party’


사랑에 빠진 화자는 ‘너’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판타지의 몸집을 불리기보단 ‘나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너’를 묘사함으로써 결국 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너를 바라보는’ 식의 문법이다. ‘FLM’(Fuck My Life)이나 ‘EW’(‘으’와 유사한 효과음)처럼 (‘영’하게) 직접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지만, 잘 짜인 구성과 특유의 무게조절 감각은 리스닝의 부담을 덜어낸다.


그 적나라한 러브식에서 토와 버드가 종종 기타 솔로 커버곡을 골랐던 앨범, <AM>이 언뜻 겹치기도 한다. 악틱 몽키즈의 <AM>이 아티스트와 거리를 두고 모호한 감정과 구체적인 판타지, 현실과 초현실을 짜릿하게 오간다면, <American Hero>는 살짝 엉망인 그대로 분명하고 정직한 방향으로 뻗어 리얼리티와 만난다. 허나 컨셉앨범보단 데뷔앨범에 가까운 <American Hero>는, 한 주제보다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모인다.


“Love songs falling out of my mouth / Trust me I know how I sound”

- ‘EW’


https://youtu.be/af9kO2eY7L0?si=1C6h69nJrFsEsxRI

'EW'


갈망의 언어적 형태가 그리 독특하지 않음을, 토와 버드는 알고 있다. 한편으로 이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와 연결해, 다른 한편으로 <American Hero>는, 오랫동안 특정한 누군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러브-록의 언어를 ‘나와 같은 사람들의 것으로’ 되찾으려는 시도(중 하나)다. 바로 그것이 토와 버드를 “히어로”로 만드는 하나의 지점이다. 그가 되려는 것은 백인-남성-주체의 카피가 아닌, 때로 자발적으로 객체가 되는 ‘나’다.


“(<American Hero>는) 퀴어 러브와 그 에센스에 대해 완전히 솔직해지는 것이다. 아주 많은 갈망과 연약함, 그리고 어려운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정말 많은 male-gaze-y한 러브송들을 들으며 자라 왔고, 내가 어렸을 때 스스로 원했던 음악과 같은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중요했다.”

- Towa Bird, interview by. Concetta Ciarlo [Vogue]  


그 안에서 ‘B.I.L.L.S’와 ‘This Isn’t Me’는 각각 달리 튄다. ‘B.I.L.L.S’는 헤비한 인더스트리얼 록 바이브 그룹사운드를 두르고 흘러가지만, 소화하기 쉽고 중독성까지 갖춘 트랙이다. 모든 요소가 간결하고도 풍부하다. 힘을 조절한 벌스에서 에너지를 가두었다가, 파워풀한 후렴에서 한꺼번에 방출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억만장자들, 땅주인들, 보스들과 거대 기업들에게: ‘fuck you’라고 말하는”[NME] 곡, ‘돈이 없는데 끊임없이 돈을 써야 하는 일상’에 ‘tired’나 ‘boring’따위 워딩을 붙여, 자본주의 시스템이 버린 평범한 개인(=아티스트 자신)을 대변한다. 이 솔직하고 쿨한 ‘내뱉음’의 스토리텔링은 공감(혹은 열광)을 이끌어낸다.


https://youtu.be/rvzlPlZryFA?si=-Ekoi0VC04lK2fCi

'This Isn't Me' mv


록발라드 ‘This Isn’t Me’의 상황은 그 반대편 어딘가에 있는 듯하지만 에센스는 닿아 있다. 유명세에 따라오는 것들 한가운데에서, 어색하고 소외된, “이건 내가 아니라는” 기분을 느끼는 어느날의 심정. 로맨스를 걷어낸 두 곡을 마지막에 다룬 까닭은, 토와 버드의 예술적 원천을 감지할 수 있어서다. 그것을 인지한 채 러브송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보면, 사실 매 트랙에 ‘그것’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다지 드림팝은 아니나 자주 드리미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토와 버드의 로맨틱-록은 ‘땅에 발을 딛고’ 있다. “모범적인 미국인”도 “전형적인 영웅”도, 고로 “아메리칸 히어로”도 아닌 토와 버드는, ‘아닌 스스로를 잘 앎’으로써 히어로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주제가를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하든 연인에게 찬사를 보내든 어느 피로했던 하루를 돌이키든, 음악을 통해 제 “심장”을 건넨다. 그 제스처는 리스너와 아티스트 간의 특별한 유대로 번진다. “내게 있어, 곡들은 항상 살아온 경험의 퍼즐과도 같았다.”[Vogue]는 그의 음악에는, ‘무언가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잣대와 가능성을 지니는-그 자신이 있다.  


“사람들이 여기에 춤추고, 울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것만큼의 감정을 끌어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또한, 사람들이 여기에 깃든 내 심장을 느끼기를 바란다.”

- Towa Bird, interview by. Alex Rigotti [NME]


https://youtu.be/DIyDZbxVAmY?si=9rtuI-yOpUF3Cf2N

'Intro'




* 참고 인터뷰


https://www.nme.com/features/the-cover/the-cover-towa-bird-interview-drain-me-3531278


https://www.vogue.com/article/towa-bird-debut-album-american-hero-interveiw-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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