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Lagoon, <Rarely Do I Dream>(2025)
<Heaven Is A Junkyard>에서 유스 라군, 트레버 파워스는 현재의 몸에 남은 고통의 감각으로 판타지/안티판타지를 오가며 “heaven is a junkyard”라는 비단정적인 주제를 풀어낸다. 어렴풋이 그 시퀄로 예상했던 <Rarely Do I Dream>은 아티스트 개인의 뿌리를 파고든다. 주재료는 앨범 전체에 걸쳐 흐르며 ‘Gumshoe(Dracula From Arkansas)’ 뮤직비디오에 시각적으로도 등장하는 실제 홈비디오로, 창작의 출발지이자 표면적인 목적지다. 파워스는 녹화된 과거를 재방문하며 그 사이 오래된 공백-기억, 기록되지 않은 장면이나 이면의 정서를 픽션으로 재해석해 한데 조합한다.
나른하게 떠다니거나 하늘로 뻗는 멜로디, 명랑한 리듬, 섬세한 디테일, 전작에 비해 한층 안정적으로 울리고 쌓이는 싱잉, 푸티지 속 탄성과 웃음소리들, <Rarely Do I Dream>의 첫인상은 달콤한 향수다. 일부러 쉽게 해체되도록 짜인 위장이다. 노스텔직한 사운드 디자인에는 불길한 반전이나 미묘한 어긋남이 스며 있다. 특유의 음성은 편안함과 위태로움, 추억과 회한을 넘나들며 해맑은 미소와 어두운 속삭임, 냉소가 공존하는 문장들을 전한다. 이를 테면 ‘Neighborhood Scene’의 평화로운 일상과 명랑한 웃음에는 “톰에게 걔 아빠를 노 로맨스 버니 목장에서 봤다고 말해줘야 할까? 카우걸은 걔 엄마가 아니었는데.” 따위 가사가 얹힌다. 클라이맥스의 그룹사운드는 뭔가를 폭로하기 전 두근거리다 포기하고 가라앉는 마음의 청각화 같다. 반복되는 “Light it up”은 구겨 머릿속 다락에 던져 놓은 기억을 밝히는 주문처럼 들린다.
음악 요소들은 트랙에서 트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Heaven~>의 것들이 그렇듯 무의식을 건드리는 기시감이지 노골적인 반복은 아니다. ‘Neighborhood Scene’ 후반부의 헤비한 그룹사운드는 ‘Speed Freak’의 기타 리프, ‘Perfect World’의 후렴과 닿아 있고, ‘Gumshoe(Dracula From Arkansas)’의 기타 연주는 ‘Seersucker’에서 변주돼 건반으로 전해진다. 이 맞물림은 군데군데 삽입된 홈비디오와 더불어 앨범을 하나의 느슨한 흐름으로 연결한다. 처음 듣고 <Heaven~>의 인스트러멘탈 ‘Lux Radio Theatre’를 잇는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Rarely Do I Dream>은, 어쩌면 무심한 딜리버리의 웨스턴 호러 ‘Little Devil From the Country’를 가장 닮아 있다. 문자그대로 ‘가족들의 대화가 녹음된’ 자전적인 앨범에 트레버 파워스는 허구의 캐릭터와 초현실적 존재들을 소환한다. “시골에서 온 작은 악마”와 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경유해, 파워스는 그시절 아이다호를 여러 조각이 상실된 퍼즐로 재창조한다.
화자는 자주 관찰하는 자리에 있다. “아마도 축구공을 잡은 누군가가 아닌” 이들의 단상, ‘Football’의 미지근한 엉망은 청량한 건반음과 화음으로 별로 철저하지 않게 덮여 있다. 절묘하게 잠기거나 이를 악물고 뱉는 질감의 보컬은, 이야기가 순탄하게 굴러가고 있지 않음을 청자가 얼른 알아채길 바라는 듯도 하다. “She would fuck the preacher if he only payed enough” 같은 구절이 귀에 꽂히면, 부드러운 멜로디 틈새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Gumshoe(Dracula From Arkansas)’는 어떤가, 고운 기타 연주와 가성은 웃음소리와 어우러지나, 행간의 위화감은 금세 감지된다. 힘없는 나무 위 잠복과 “물밑의 소녀”,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장면들이 있었던 세상”은 소년으로 하여금 뱀파이어를 믿게 만든다. 그 소년은 다른 날에 ‘Parking Lot’을 구경하며 머릿속으로 “주차장의 왕”이 주인공인 장르 영화를 한 편 찍고 있었을까? 밝은 멜로디라인은 삽입된 어린아이 목소리와 만나 순진하게 들린다. 허나 상상은 2분 30초가 채 지나지 않아 허물어지고, 다음 트랙(‘Saturday Cowboy Matinee’)의 허무를 극대화하는 역할마저 수행한다.
‘Lucy Takes a Picture’의 화자는 “모르핀 한 스푼”을 삼키고 꿈에 빠져들기를 기다렸을까? 루시는 사진을 찍는다, “세상에 얼어붙은frozen 채”. 멎은frozen 세상의 일부를 카메라에 담아야 할 그는 자신이 멎어버렸다. 환상이나 기억 속의 상이라서일까. ‘My Beautiful Girl’은 ‘Lucy~’와 짝을 이루는 듯한 트랙이다. 경쾌하고 샤프한 신스 리프, 가볍고 희미한 보컬이 주를 이루는 ‘Lucy~’와 달리 나직하다.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것도 같다. 곡의 마무리, Lucy를 부르는 것은 현재 트레버 파워스의 음성이다. ‘My Beautiful Girl’이 대상을 되풀이해 부르며 전하는 것은 위로, 어쩌면 애도다. “모든 무덤은 우리가 구하지 못한 이들의 모텔”, “카나리는 빛 안에서 노래하지만, 날아가지 못해”: 언뜻 러브송이라는 착각을 유발하는 ‘Canary’의 로맨틱한 멜로디가 아무렇지 않게 “취한 듯한 뱀파이어 두셋”을 불러오며 하려는 것 역시 포괄적인 애도이리라 짐작해 본다.
부서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둘러싸인 어떤 화자들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노래한다. ‘Seersucker’는 기록의 빈칸을 음울한 고백들로 메운다. 곡을 여는 녹화본의 평화로운 소음은 우울한 배경음악과 만나 상실감을 자아내고, 착 가라앉은 보컬이 청자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린다. 문장에 밴 절망의 농도를 짙게 만드는 것은 “awful”, “cried”, “broke”, “killed” 따위 단어들보단 “We’re doin’ alright”이라는 주문과 불안한 “maybe”들이다. 그룹사운드가 빽빽한 후반부는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물음과 초조한 코러스로 어지럽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Perfect World’의 화자는 전부 잃고, 팔리고, 넘어진 채로 남은 것을 다 걸고 도박을 한다. 음색은 여전히 곱지만, 특유의 앓는 듯한 보컬은 문장 끝을 띄우거나 새되게 끌어올리며 허공에 머무른다. “내 행운의 숫자”로 시작되는 후렴은 매번이 클라이맥스다. 웅장하게 울려퍼지되 가녀린 디테일을 갖춘 그룹사운드에 공기를 머금은 보컬이 여러 겹 쌓여 가슴을 벅차고 설레게 한다. 그러나 그 끝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느낌만 있을 뿐이다. “악마의 티는 언제나 너무 진하다.” “완벽한 세계”는 애초부터 신기루였을까. 헌데 환상이 한차례 지나가고 난 다음의 정서는 의외로 그다지 좌절이 아니다. 비극이 휘몰아친 후의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단 차분한 깨달음으로 들린다. 실재하지 않기에 그릴 수 있는 “완벽한 세계”- <Heaven~>의 ‘Mercury’가 ‘천국’에 대해 던지는 물음과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Rarely Do I Dream>이 의도한 위화감은 트랙의 형태를 띠기도 하며, 정확히 두 번째와 (뒤에서) 두 번째에 배치되어 있다. 트레버 파워스가 ‘Speed Freak’과 유사한 곡을 낸 적이 있었던가? 엔진음을 닮은 강렬한 전자기타 리프가 건반을 포인트로 업고 시동을 건다. 서두르지 않고 등장하는 보컬은 읊조림을 택하며 커버아트의 캐주얼한 로드트립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재생할수록 화자의 스피딩은 상쾌한 여행이나 휴식이 아닌 중독과 도주에 가깝게 들린다. “You make my problems disappear”에 담긴 것은 애정에서 도피로 변한다. “I feel sorry, I’m a speed freak” 뒤에는 아마도 ‘(I can’t help it)‘이 생략되어 있다. 연약한 보컬은 기타 리프와 점점 하나가 되며, “물에 비친 얼굴처럼” 이지러진 자화상을 그린다. 드라이브 테마의 뮤직비디오도 이 멋진 불협화음에 한몫한다. 음울한 아메리카나 ‘Saturday Cowboy Matinee’ 또한 별종이다. 화자는 수십년 전 서부극에서 소환된 카우보이의 옷을 입고 있지만, 호전적인 효과음 “fire!”는 금세 흩어진다. “리오 그랜드 너머의 산이 되고 싶은”, “리볼버를 쥐고 베라 크루즈를 보는” 그는 씁쓸히 냉소하며 사람이 아닌 총과 약에서 열쇠를 찾는다. 후렴의 찢어지는 기타와 허무한 보컬은 곡을 지배하는 탁한 안개를 더 짙게 드리울 뿐이다. 1절과 2절 가운데 끼어든 녹화 푸티지의 어울림은 상당히 기이하다. 마무리 직전 주의를 환기하려는 것도 같다.
홈비디오 푸티지를 통으로 복기하는 라스트 트랙 ‘Home Movies (1989-1993)’는, 동어반복 보너스 트랙보단 생략된 행간을 리스너 저마다의 상상에 맡기는 대단원으로 다가온다. 녹화 영상은 음악으로 재구성된다. 배경의 피아노 연주는 대화와 일상 소음들이 박자에 맞춰 춤추게 하고, 거기 정서와 뒷이야기를 부여한다. <Rarely Do I Dream>을 몇 번 되풀이해 듣는다면 그런 찰나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Home Movies (1989-1993)’의 목소리나 웃음소리 사이 빈칸에서, 테잎이 되감기는 소리에서, “아칸사스의 드라큘라”나 “주차장의 왕”, ‘날아가지 못한 카나리’, “물밑의 소녀”, 혹은 “구멍을 판 Donnie”나 “봉 위의 Mary”...를 감각하게 되는.
트레버 파워스는 감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우리는 <Rarely Do I Dream>에서 어린 시절의 무해한 장면을 골라내 노스텔지아에 잠길 수도 있다. 허나 픽션의 힘을 빌려 두려운 시공간의 덩어리를 끄집어내, 지키지 못한 대상이나 순간을 떠올리고 기릴 수도 있다. 파워스는 모호하게 미화된 플래시백을 늘어놓거나 자기 연민의 폭포를 쏟아내지 않는다. 그의 이상한 자전적 앨범은 음과 박을 양분으로 자생한다. 마치 본인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제 손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작가처럼, 파워스는 그 모든 목소리들이 성대와 악기에 내려앉길 허락하고 다만 ‘묵묵히’ 운전한다.
https://youtu.be/ekMawTmTAZ8?si=t6Oe0jfZK36Pla1Q
+ 인터뷰 일부 번역 (오역 가능성 있음)
기사 1
“내 목표는 비디오테잎을 페인트 컬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야기 전체는 캠코더에 들어 있지 않다. 친구가 뭔가 웃긴 이야기를 한다고 치자, 우린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가장 좋은 일부만을 녹음하고 업로드할 것이다. 싸움이 일어난다면, 카메라는 올라가고, 끝나면, 다시 내려올 것이다. 그건 그저 우리가 사회에서 사람들로서 기능하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이다. (……) We like to build these stories around ourselves that are super glamorized.”
“8미리 테잎으로 작업하는 것에는 매우 촉각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건 비쌌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웃고 좋은 음식을 먹고 사람들로 가득한 순간들을 녹화하고 싶어했다. 가족 사이엔 사랑이 넘쳐났지만, 다른 가족처럼 비하인드 더 씬, 에서 스트러글이 발생하고 있었다. (……) 누가 그런 걸 찍고 싶어하겠는가? (……) 나는 이 테잎들을 가져가서, 보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피버 드림과도 같은 내러티브를 거기 얹고 싶었다. 이 자전적인 앨범으로 얼마나 줌 인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사람들이 1995년 내 형제와 함께 방안에 있는 것처럼 듣고 느끼기를 원했다. 확대경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사람들이 거의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 가까움을, 그 초현실을 원했다. 그러한 욕망을 내 포크테일을 향한 사랑과 뱀파이어에 대한 매혹과 같이 가져갔고, 그것들을 하나의 레코드에 담았다.”
기사 2
https://www.thefader.com/2025/02/20/youth-lagoon-rarely-do-i-dream-album-interview
“캠코더와 8미리 테잎 때문에 이 앨범이 노스텔지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오해가 발생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와 엄마 사이 언쟁이 발생할 때면, 캠코더는 꺼진다. 이후, 캠코더는 다시 켜지고 생일 파티로 돌아간다. 그러니 진실을 말하는 것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유스 라군의 첫 시기에 만든 음악이 비교적 노스텔지아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트레버 파워스는 “그렇다”고 답하지만, 바로 “그것조차 사람들이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어둡다”고 잇는다. “사람들이 집어내지 않는 정말 많은 악마들이 들어가 있다. 마술 트릭과도 같다: 특정한 느낌을 띠게 하도록 톤을 만들면, 그것들을 초대하는 듯한 방식으로 옷입히면… 나는 악마와 씨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디어를 알맞은 포장지에 싸놓으면, 사람들은 내가 뭔가 달콤한 것을 노래하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그 어둠을, 그 급소를, 반대편에 있는 주제와 연결 짓는 데에 완전히 빠져 있다. 당신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곡은 내 딸에 관한 거야“ 그러나 또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또다른 복잡한 정서를 끌어내서 이 곡이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틀린 답은 없고, 이게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음악의 측면이다. 우리 자신의 현실에 거울이 된다는 점.”
(……)“내 마음속엔 그들 각자에 대한 영화들이 있다. 개인적인 메모리 뱅크에는 반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건 명백히 거짓이기도 한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으면, 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강력한 감정들의 묘사하기 힘든 혼합이었다. it completely wrecked me. (……) 내가 작업하고 있던 캐릭터들에 과한 아이디어를 확장시키며, 진실을 말하는 방법이 더 여럿 있다는 걸 발견했다. / 판타지를 다큐멘터리와 연결짓는 작업과 사랑에 빠졌다- 우리 집 거실을 줌 인 하고, 내가 이스터 에그 사냥을 하는 동안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하는 걸 듣고, 그것을 뭔가 상상의 산물에 붙여서 하나의 결합된 진실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우리가 삶에 참여하는 행위에는 완벽함이 요구되지 않는다. 삶은 늘 옳은 결정을 하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는 것에 관한 게 아니다. 두려움을 운전하는 것에 관한 거다. 그게 진실이 있는 장소이며 성장하는 방식이다. 불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삶은 진부해질 것이고, 모든 것은 매우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내 창작은 의식의 물줄기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한 조각으로 맞추기 위해 위해 초-의식을 거쳐야 한다. 정리하지 않는다면, 꿈처럼 느껴질 것이고, 나는 의사소통 요소를 잃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핵에 있어서, 효과적인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내가 인간으로서 겪어나가는 바를 의사소통하는 것, 그리고 그 바톤을 당신에게 건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