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ume Genius, <Glory>(2025)
‘마이크’는 신발까지 신은 채 침대에 파묻혀 있다. 전통적인 ‘여자’와 ‘남자’의 상은 단역으로 지나가고, ‘알란’이 다가온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그를 ‘마이크’는 제지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손이 뺨을 감싸자 고개를 돌린다. 그 방향은 손이 있는 쪽이어서, 이는 눈을 피하는 행위이자 더 밀접하게 닿는 행위가 된다. 낯에는 갈망과 두려움, 역겨움과 설렘이 번갈아 오가거나 한데 겹친다. 그 만남이 일종의 전기 충격을 일으킨 걸까, 방은 ‘푸른색으로 폭발’하고 ‘마이크’는 음미한다. 다음 씬에서 그는 도로를 달리는 바이크 뒷자리에 타 있다. 코르셋에 바이크 재킷, 스틸레토 힐, 먼지범벅의 뺨과 오렌지빛 헤어. ‘밖으로 나왔’으니 ‘나’를 잃어버릴 차례다. 바이크가 자동차와 충돌하며 ‘필름은 끊기고 카메라 시선은 바닥에 널브러진다’. 떨어져나간 일부를 내버려두고 걸으며, ‘마이크’는 참기 힘들다는 듯 웃는다.(이쯤에서 ‘Take Me Home’을 잠시 돌이킬 수도 있겠다.) 한 무리의 바이커를 거쳐 도착한 곳은 또다른 ‘내’ 앞, ’마이크‘는 분신의 분신self-burning을 지켜본다. 퍼퓸 지니어스의 정규 7집 <Glory>의 열한 트랙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마이크 헤드레어스와 파트너 알란 와이플스가 주연을 맡은 ‘It’s a Mirror’ 뮤직비디오에 혼재한다. 비디오와 앨범의 서사는 진실을 체화한 허구다.
https://youtu.be/hx2_NGaDPrk?si=m9lQAnOPOXms7EzI
선공개된 신곡들을 듣고 먼저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를 떠올렸다. 듣도 보도 못했던, 동시대에 꼭 필요했던 퀴어 인디록- 그 맥을 이으리라 예상하며, 예상이 백지화될 순간을 기다렸다. <Glory>에는 앞선 여섯 앨범의 흔적이 전부 있다. <Set My Heart~>의 재해석된 아메리카나 리듬과 목끝까지 벅차오르는 갈망이 있다. <Learning>의 반짝이며 바스러지는 사운드에 스며 있던 연약함과 무던함, 그것을 잇되 보다 선명한 색채와 단단한 밀도를 지닌 <Put Your Back N 2 It>를 되짚게 하는 멜로디가 있다. <No Shape>에서 피어났던 생의 에너지와 기이한 관능이, 스스로 비체가 되어 눈을 부릅뜨는 <Too Bright>의 공격성(?)마저 있다. <Ugly Season>의 실험들도 들리는데 특히 ‘Capezio’의 화음에는 ‘Pop Song’이 겹친다. 들어 보았다면 당연히 알겠지만, 자가복제라는 뜻은 아니다. <Glory>는 말하자면 ‘Normal Song’에서 ‘Whole Life’, ‘My Body’에서 ‘Ugly Season’, ‘Mr. Peterson’에서 ‘Jason’까지를 포개면서도 거기서 독립한다.
<Set My Heart~>에는 ‘Describe’과 ‘Some Dream’이 공존했고, <No Shape>은 ‘Run Me Through’ 다음 ‘Alan’을 배치했다. <Too Bright>에는 ‘Grid’와 ‘All Along’의 방식이 둘 다 있었다. <Glory>에는 빛처럼 부서지는 ‘Full On’에 끈적하게 늘어붙는 ‘Capezio’가 뒤따르고, ‘In a Row’의 상승에 ‘Hanging Out’의 침잠과 분해가 이어진다. 앨범을 관통하는 코발트 블루를 가만히 쓸어 보면, 일부러 불규칙하게 엮인 실의 감촉이 느껴진다. 리프들은 간결하고 독특한데, 자꾸만 멈추고 튕겨나가며 때로 테잎이 되감기는 인상마저 남긴다. 트랙들은 티나게 뒤집히기보단 어깨를 툭 치는 감각으로 어긋난다. ‘It’s a Mirror’는 중간 즈음 가라앉았다가 다시 살아난다. ‘Left for Tomorrow’는 지잉 울리며 갈라졌다가 봉합된다. ‘Full On’의 마무리에서 기타연주는 차분하게 반복되다 단 한번 걸음을 헛디딘다. 기묘한 서스펜스가 감도는 ‘Hanging Out’의 도입부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룬다.
(말그대로)눈물이 맺힐 만큼 아름다우나 어딘가 날카로운 <Glory>의 키 멜로디들은, <Learning>의 피아노 연주들이 송라이터의 여정을 따라 흐르고 변형돼 돌아온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헤드레어스는 자전적인 곡들로 데뷔해 점점 그 범위를 넓히거나 다른 주제에 귀기울이는 편이었다. 헌데 <Glory>를 들으면 수 년간 창작을 해 온 베테랑 감독이나 소설가가 신중하게 수놓은 ‘자전적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헤드레어스가 <Glory>에서 밟고 선 것은 삶의 다음 계단 보다는 계단 이전의 공간 혹은 경계선에 가깝다. 그동안 퍼퓸 지니어스의 음악에 군데군데 비쳤던 “mode of being”[The Guardian]과 오래된 정서는, 현재의 맥락에서 흩어지기 위해 한데 모인다. 복기한 기억과 감각들은 허구의 서사를 입고 집의 모양을 한 무대에 올라간다. 이 집에는 카메라가 있다. 화자는 그곳에 갇혀 있고자 하면서도 빠져나가려 분투한다. 그 충돌의 몸부림은 셀프로 촬영된다.
<Glory>에 퍼진 블루는 아직 잃지 않은 것이나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애도를 포함한다. “What do I get out of being established? / I still run and hide when a man’s at the door.”(‘It’s a Mirror’) 상상된 상실은 일상에 실재하는 불안과 번뇌, 내면의 분투inner struggle에 닿아 있다. 그 대상은 각 트랙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때로 떨어져나간 신체 일부다. Aldous Harding이 피쳐링한 ‘No Front Teeth’는 “앞니가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아마도 “평생 동안” 지속되었던 상태다. 그의 관심은 이제 앞니보단 ‘결여된 느낌’에 있는 듯하다. “It’s in the palm on my hand, I feel something / My entire life / It’s fine” 없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Better days, let them touch me”- 천사 혹은 분신(알도스 하딩)의 목소리를 빌려 ‘나’가 빛을 수용하자, 곡을 부드럽게 감싸던 기타 연주는 드럼비트에 힘입어 시원하게 폭발한다. 이내 두 목소리는 함께 노래한다.
‘Left for Tomorrow’에는 소중한 타인의 영원한 부재가 ‘있다’. 보컬은 거의 흥겨운 전주가 1분 남짓 흐른 후에야 들어선다. 미소지으려 애쓰며 여러 번 울음을 삼키고 나서야 꺼내는 애도 같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음성이 첫 소절을 토한다, “반대편 끝은 그저 무거운 숨이야.”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화자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답은 제 흐느낌의 메아리로 돌아온다. 점차 북받치던 보컬이 “Hung, dried, left for tomorrow”라고 지쳐 맺을 무렵, 곡은 주욱 찢어져 흉을 남긴다. 공허와 상처는 ‘극복’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듯, 화자는 다만 어깨에 그 무게를 진다. “And I carry it on my shoulders / My shoulders / Without her / Without her”
‘Capezio’는 '과거의 조우'를 잊고 재창조한다. <Set My Heart~> 속 ‘Jason’의 씨퀄이 아닌 그와 not so straight한 관계를 맺는 연작이다. 헤드레어스는 특유의 고운 가성을 서늘하게 조각해 내보낸다. ‘제이슨’을 망각/복기하며 나타난 제 3자 ‘her’, 그녀야말로 주체다. ‘카메라 앞에서 당황한’ ‘제이슨’에겐 발언권이 없다. 사실 ‘제이슨’은 별로 중요치 않은 것도 같다. 가사는 ‘No Front Teeth’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대입해보면 ‘her’, ‘me’, ‘Jason’의 포지션에 있는 것은 각각 헤드레어스, 하딩, 와이플스가 연기하는 캐릭터다. 송라이터는 ‘나’와 ‘그녀’를 오가며 ‘제이슨의 상’을 묘사하는데, ‘나’ 또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Is this alright?”- 이 판타지의 이상한 미를 극대화하는 불안정성, 통제 불가능성은 <Glory> 전체를 관통한다.
‘Me & Angel’에서는 ‘과거의 자신’이 떠나간다. <Learning>의 ‘Gay Angels’에서 “우리는 널 정확히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던 천사는, <Too Bright>의 ‘Grid’에서 부정된 바 있었다.(“There’s no angel above the grid”) ‘Me & Angel’의 ‘천사’는 작가의 기분이나 의도에 따라 있거나 없는 초월자가 아닌, 누군가를 비유하는 언어로 들린다. “나처럼 보이거나 예전의 나와 닮은 자”, 잠시 ‘me=angel’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려는 듯하나, 천사는 이미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화자는 과거의 자신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도록 놓아주고, “내가 기댈 코어로” 곁에 현존하는 타인의 미소를 응시한다. “Who am I to keep a smile form your face?” ‘Me & Angel’은 ‘Alan’ 이후에 쓰였으나 사실상 ‘Gay Angels’부터 시작됐던, 안정과 균형, 일상의 러브스토리다.
그런가 하면, ‘In a Row’는 안정과 균형, 일상이 흔들리기를 원한다. 카타르시스로 범벅된 트랙, 이는 딱히 긍정적인 뜻이 아니며 송라이터의 의도가 그렇다. 비극을 두려워하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이중성이 “I don’t even know what’s going on / I hear them coming”에 담겨 있다. 후렴에서 화자는 고통을 낭만화한다. “Think of all the poems I’ll get out / Turning on a spit / How sickening” 흐드러지는 신스 그룹사운드가 맺히면 후련함이 찾아오는데, 그건 일종의 공허이기도 하다. 그 상태를 지양하자는 ‘주장’, ‘자기비판’보단 ‘인지하고 서술함’에 가깝다. <Glory>는 퍼퓸 지니어스가 그간 꾸준히 그려왔던 모순된 욕망과 복잡한 정서를 모조리 체화한다. 그 형상 안엔 ‘꿈이 사라진, 깨끗한 심장’(‘Clean Heart’)에서 얻은 깨달음도, ‘깨지고 뒤집힌 것들을 일렬로 줄세우고자’(‘In a Row’) 하는 욕망도 있다.
‘Hanging Out’의 “이미 숨이 끊어진” ‘그’는 일단, 욕망하거나 적대하는 타인이다. 늘어지고 풀어진 ‘그’의 “얼굴을 씹는” 전개에는 과연 <Too Bright>를 지배했고 이후 레코드에 매번 등장했던 "I’m gonna eat somebody!"[DIY]의 뉘앙스가 있다. 죽음의 이미지는 ‘나’에게도 있다. ”My neck, it cracks a million times / My back is a worn out limousine / It’s inspiring” “갈라지고, 껍질이 벗겨지는” ‘Queen’이 겹치지만, ‘나’의 관심은 ‘쉿 소리로 저들을 위협’하는 것보단 ‘그를 데리고 노는’ 일과 ‘매우 느린 파괴’에서 비롯되는 “영감”에 있어 보인다. ‘Fool’이나 ‘Grid’ 등의 곡에서 보컬링으로 발산되었던 균열의 에너지는 인스트러멘탈이 넘겨받았다. ‘Left for Tomorrow’에 삽입된 것이 ‘가슴이 죽 찢어지는’ 소리라고 한다면, ‘Hanging Out’의 마무리에 들어간 (그라인더를 연상시키는) 소음은 앨범의 무대, 방과 신체를 해체하는 제스처로 들린다. 그 파편이 흩날리는 와중 ‘Glory’가 방문한다. “(내)몸의 손님”은 자신을 낯설게 보는, 언젠가는 몸을 떠날 영혼을 인식하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늘”에 내려앉는 “고요한 영광”은, 영원의 축복보다는 유한한 존재들을 향한 사랑, ‘훗날 세상이 끝나리라는’ 것을 받아들인 자의 특권이 아닐까.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이 비밀을 음악으로 빚어 건네주었다. 앨범의 바탕에 깔린 블루는 슬픔의 색이자, ‘It’s Mirror’ 비디오가 보여주었듯 새파랗게 맑은 하늘의 색이다. “신성한 테러”, “서서히, 부드럽게 진행되는 붕괴”(‘It’s a Mirror’)의 감각을 만끽하며, 화자는 문을 열고 생으로 걸어나가고자 한다. <Glory>는 송라이터 스스로의 소멸을 포함해- 미래에 찾아올 모든 상실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https://youtu.be/kb7o26DaKFw?si=amW7UV1b-6Wxqf9k
결론적으로 <Glory>는 창작자 본인에게 있어서도 시공간을 넘어 거듭 재해석되는 작품이 된 듯하다. 몇 인터뷰에서 마이크 헤드레어스는 작업의 동기/과정과 더불어 앨범 완성 이후 일어난, 어떤 면에서는 현재진행형인 상실을 털어놓는다. 반려견 Wanda의 갑작스런 죽음, LA를 휩쓴 산불로 소실된 그(와 와이플스)의 집과 동료 뮤지션들의 집… 완다가 살아 있을 때 썼던 곡들이 ‘이제는 완다에 관한 곡이 되었다’(“they are now”)고 그는 말한다.[The Guardian] 트럼프 정부를 선두로 한 조직적 혐오세력이 행하는- 소수자를 겨냥한 구체적인 위협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한다. 겪지 않은 바에 대해 코멘트를 얹기는 조심스러우나, 하나 적어볼 수 있는 건 당사자의 태도다. 헤드레어스는 오래된 불안과 몰아치는 사건들이 자신을 방에 가두기를 허락하는 대신, 공포심과 무력감을 (인터뷰)테이블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자주 실제의 특정한 모티브가 있었던 그의 데뷔 초 곡들은 내러티브를 벗어나 듣는 개개인과 공명했다. <Glory>가 노래하는 예측되고 상상된, 불특정한 애도의 힘은, 청자 저마다의 것으로 수렴하는 동시에 우주적인 규모로 확장될 가능성 또한 지닌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하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다. 관계들을 하고 싶다. 내 건강을 하고 싶다. 일어나고 있는 모든 끔찍한 일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세상이 진행중인 동안에 그것들을 헤쳐 나가고 싶다. 더 이상은, 그저 하나를 고를 수 없는 것이다.” - Mike Hadreas, [NME]
+ 인터뷰 일부 번역 (오역 가능성 있음)
기사 1
https://www.nme.com/features/music-interviews/perfume-genius-glory-interview-3848910
“내가 음악을 만들 때 지니는 아름다움, 영광, 상냥함을 생각하는 것… 내 실제의 삶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레코드는 그걸 추동하려는 시도 같다.”
(트럼프 당선 직전에 마이크와 알란은 결혼했다. 왜냐면,) “(그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내 밴드에 있는 Meg는 여권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투어할 때 그they의 여권에 X표가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그런 거. (……) 내 친구들 모두가 총 소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그전엔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왜냐면 그들을 믿을 수 없음이 분명한데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고, 권력을 갖고 있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으니까, 국가를 믿을 수 없으니까, 가까운 사람과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줄 친구들 외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으니까.”
기사 2
“세상에 나와 있는 건 내게 있어 매우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런 많은 것들에 직면하려고 애썼다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어떻게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안에, 세상 안에 존재하며 더욱 많은 것의 일부가 될 것인가, 내가 겁에 질려 있는데도? (……) 나는 한 시간 동안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서른 번 구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웃이 내게 말을 걸려고 하면, 나는 이런다- ‘알란, 이웃이 여기 왔어’ 나는 모든 것을 드라마화한다. (……) 지금은 내 몸 안에서 그와 동일한 감각을 느껴서는 안 되는 거다. (……) 나는 내 존재함의 모드mode of being에 대체적으로 질렸다. 난 더 이상 열 다섯 살이 아닌데, 왜 이 남자가 나한테 못되게 굴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난 이제 다르고, 모든 것이 이젠 다르다, 헌데 나는 아직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 이건 자기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더 나아지고 싶지 않다. 그저 더 즐겁고 싶고, 더 상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