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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pr 13. 2019

‘대배우 리를티미(Little Timmy)’ (1)  

-배우: 티모시 살라메(Timothee Chalamet)



 * 글이 너무 길어져 둘로 나누어 올립니다.


-영화: <핫 썸머 나이츠(Hot Summer Nights)>(2017, 감독: 엘리야 바이넘)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eat.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적어도 두 작품은 봐야 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하자는-별로 엄격하거나 중요하지는 않은- 암묵적인 원칙이 있다. 허나 티모시 살라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하나로 충분했다. 그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 언제든 어디서든 그 이상과 다른 방식이 가능한 배우라는 확신을 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엘리오는 그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만한 사랑스러운 소년이다. 모든 면에서 건강하며, 이상적이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미있고 활동적이며 표현력도 뛰어나다.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훌륭하다-이것이 엘리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르치아와 올리버가 엘리오를 바라보는 눈빛에 관객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한 주인공을 바탕으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다른 갈등 없이 오로지 사랑에 관한 사건에만 집중한다. 그리하여 엘리오라는 인물 자체에 보다는 그가 하는 사랑에 공감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원작은 엘리오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가 추억 속에서 미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만 보면 꿈이나 환상 같을 정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그것이 작품의 특징이고, 그대로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주 뛰어난 작품은 아닐지도 모른다. ‘상류층’의 ‘부유한’ 일상과 감정에 집중하는 루카 구아다니노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만 그려낸다. 하지만 그 감정에는 보편적인 면도 있다.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티모시 살라메다. 그의 연기는 사랑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랑에 빠진-사랑이 온몸에 흘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년을 너무 사랑스럽게 표현해서, 관객은 말 그대로 티모시 살라메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빠져들게 된다.


엘리오는 정말 이상한 캐릭터다. 상대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역할인데도 작품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하게 휘몰아치듯 아름다운 루카의 연출과, 티모시 살라메의, 본인에게 있어서도 다시 없을 비주얼과 연기, 시대/공간/계절적 배경 모두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모든 장면을 저장하고 싶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작품이 나와버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사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엘리오는, 내가 감히 샅샅히 파헤칠 수 없는 대상이다. 짧고 단편적인 글을 몇 쓰기는 했으나 그 정도 이상은 불가능하다. 작품에 대해서도, 캐릭터나 연기에 대해서도, 선뜻 묘사할 수 없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감히 건드릴 수도 없고, 너무나 아이콘이 돼버린 엘리오를 제외하고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 자체를 살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핫 썸머 나이츠>의 다니엘과, 캐릭터가 약간 비호감인 <레이디버드>의 카일, 너무도 달라 연기를 잘 드러내는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써 보기로 했다.



<핫 썸머 나이츠>(2017)


 
“티모시 살라메의 얼굴이 감독들에게 옛 여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는 걸까.”(예전에 쓴 글에서 따온 문장) 티모시 살라메는 <핫 썸머 나이츠>(2017)에서 다시 한 번 몇 십년 전의, 여름에 취한 소년이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특별한 성격과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면, <핫 썸머 나이츠>는 평범한 주인공이 특수한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다. 엘리오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상태에서 사랑을 담는 일부분만 요동친다면, 다니엘의 상태와 감정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탄다’. 다니엘은 엘리오와 닮아 있지만 다르다. 평범함보다 ‘못해서’ 현실적이다. 같은 사람이 다른 신체조건과 환경에서 자랐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격은 다르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얼굴에는 비슷한 데가 있어서다.
 


<핫 썸머 나이츠>(2017)


초반의 다니엘은 움츠러들어 있다. 첫 등장에서 이마에 요상한 띠를 두르고 말없이 흡입기를 입에 대며 엄마를 보는 그의 눈은 텅 비어 있다. 졸리거나 무슨 약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아빠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다. 순수하지만 꼬여 있고, 남들의 눈치를 자주 보며 어설프게 행동한다. 웅얼거리는 말투는 살짝 둔하고, 나사가 빠진 것 같다. 어깨를 굽히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건들건들로 보이고 싶지만 어기적어기적으로 보이는’ 걸음걸이로 어색하게 돌아다닌다. 입은 벌리고 눈은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다.


 다니엘의 눈은 가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는데, 차에서 내린 헌터를 볼 때가 그렇다.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본다’기 보다는 ‘눈을 떼지 못하다’가, 약간 삐죽거리는 표정을 한다. 아주 짧은 순간에 부러움-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솔직한 얼굴이다.


<핫 썸머 나이츠>(2017)


 
마리화나를 처음 하고 신세계를 맛보고 뒤로 쓰러지는 장면에서도 그의 몸과 얼굴은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 같게도 움직이는데, 이후의 ‘취한’ 전개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평소에도 약간 마리화나 한 듯 얼이 빠져 있는 다니엘이, 마리화나에 취한 채로 마리화나를 팔겠다고 할 때는 정말 바보같아 보인다. 하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눈은 풀려 있는데, 흐허허 하고 웃고 발음까지 새면서, ‘쿨한 척’ 하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그는 엄청나게 귀엽다. 헌터도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귀여움에 못 이겨 그냥 같이 하자고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마지막 순간 해변에 있는 두 사람이 아주 멀리서 잡히는데, 기분 좋게 취한 다니엘이 뒤로 벌러덩 눕는다. 들려 있는 한쪽 다리가 킬링포인트다. 어떻게 그 조그만 실루엣에서조차 ‘리를티미’가 묻어날 수 있는지. (인터뷰하다 뒤로 넘어진 게 생각나고….)


<핫 썸머 나이츠>(2017)



속이 다 보이는 것 같은 다니엘에겐 예측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칼훈과의 만남에 겁먹고 헌터에게 쏟아낼 때의 몸은, 금방이라도 튀어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긴장되어 보인다. 당장 그만둔다고 말할 것 같던 그가 하는 말은, “주유소에서 알바할래, 주유소 사장할래?”다. 예상치 못했던 대사지만, 묘하게 일관성이 있다. 티모시 살라메가 불안과 흥분의 경계에서 감정의 줄타기를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손가락질을 하며 헌터의 눈을 똑바로 보는 얼굴에서는 약간 흠칫 할 정도의 단호함마저 느껴진다.  


<핫 썸머 나이츠>(2017)


마리화나 장사에 있어 헌터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 다니엘에겐 바로 그 단호함이 생겼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했던 상태가, 열기와 약에 취해 질주하는 상태로 바뀌었다. 헌터에게 사업을 확장하자며 주저 없이 말을 이어가다가 “I’ll be back.”이라고 뱉은 후 눈을 부릅뜬다. 엄청난 깡패 앞에서 몸을 계속 흔들고 말을 더듬으면서도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본인의 목적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시 다니엘은 그 정도까지다. 경험도 배짱도 힘도, 헌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깡패의 머리를 끊임없이 내리치는 헌터를 보며 구석에 얼어붙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움찔거린다. 커다랗게 정지된 눈과 살짝 벌어진 채 긴장된 입가, 짧고 사소한 움직임이 굉장히 실감난다.


<핫 썸머 나이츠>(2017)



그 여름 다니엘을 홀렸던 것은, 마리화나와 돈 뿐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묘사할 것은 엘리오가 떠오르게도 하는, 다니엘의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앞에서 설명한 장면 후, 헌터와 다니엘이 탄 차가 사건 현장을 떠나는 모습과 함께 Vitamin C(Can)가 흘러나온다. 곡은 장면이 바뀌어서도 이어진다. 드럭스토어에서 다니엘이 미카엘라와 마주치는, ‘롤리팝 씬’이다. 공간도, 대사와 동작의 속도도 다르고, 어두운 화면은 밝고 따뜻한 색감으로 바뀌어 있지만, 음악이 그대로 흘러나와서일까- 전 장면의 긴장감이 완전히 씻기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종류의, 섹슈얼한 서스펜스가 심장에 덧붙는 느낌이 든다. 배경음악 사운드는 대사와 함께 줄어들었다가, 동작과 함께 커지기를 반복한다.
 

미카엘라가 다니엘에게 다가오고, 클로즈업 된 두 사람의 얼굴이 화면에 번갈아 잡힌다. 자신있는 미소와 힘이 들어간 눈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미카엘라와 대조되어, 다니엘의 눈은 멍하고 입은 롤리팝이 들어간 채 벌어져 있다. 대화는 이어가고 있지만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카엘라가 자신의 입에 있던 롤리팝을 빼 그녀의 입으로 가져가자, 속삭이듯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신이 혼미한 듯 눈썹을 올린다. 장면 통틀어 그의 진심이 담긴 대사는, 이 순간의 “Oh fuck.” 뿐인 듯 하다. 멍한 상태에서조차 미카엘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해 설명했지만, 동작과 대사, 그것을 몸에 붙이는 방식은 전부 티모시 살라메의 것이다.  


<핫 썸머 나이츠>(2017)



이제까지는 미카엘라에게 홀리기만 했던 다니엘은, 마침내 정확하고 분명하게 행동한다. 마리화나를 거래할 때의 자신감은 어쩐지 불안하다. 발에 땅을 딛지 않고 무언가에 쫓겨 위태롭게 달리는 것 같다. 하지만 미카엘라에게 목욕소금을 들고 다가온 순간의 자신감은 다르다. 티모시 살라메의 눈꺼풀은 살짝 내려와 있어서, 눈에 힘을 빼면 동공의 반이 가려진 상태로 쳐지는데, 눈웃음이 담기면 굉장히 로맨틱하게 보인다. 올라간 입꼬리와 아무렇게나 뻗친 앞머리가 귀여움을 더한다. 물론 다니엘의 것이라서 약간 얼빠진 데가 있지만, 뭐 어떤가. 그대로 완벽하다.


“I’m hooked.”라고 말하는 다니엘, 그러니까 티모시 살라메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눈썹을 올리고, 나른하게 뜬 채로 부드러운 웃음기가 담긴 눈을 키우며, 단어를 발음하는 동시에 어떤 감정을 드러내듯 입도 활짝 연다. 얼굴 전체를 잠시 확장시켰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대사는 맥락상 중의적인 표현이지만, 얼굴이 정확하게 진심을 드러낸다.


<핫 썸머 나이츠>(2017)


미카엘라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뒤돌아,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평소처럼 몸을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걸어가는 다니엘을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걸어가다 멈추어 흡입기를 꺼내 입에 대려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치켜뜨고는 다시 돌아 걸어가며 던져버린다. 좀 전과 같은 걸음걸이지만, 차분하고 단호하다. 다니엘이 미카엘라를 턱 감싸안으며 키스함과 동시에, 이제까지 나른하게 흘러나오던 Space Oddity(David Vowie)의 클라이맥스가 터지고, 불꽃놀이도 터진다. 잘 짜인 연출도 한몫했지만, ‘티모시 살라메 표 사랑에 빠진 몸’ 연기가 없었더라면 의도한 효과의 반도 못 봤을 것이다.  


<핫 썸머 나이츠>(2017)



불꽃놀이 며칠 후, 화장실에 가려고 가게에 들어갔는데 미카엘라 패거리를 마주친 다니엘은, 어정쩡한 자세로 난처해한다. 좋아하는 상대가 눈 앞에 있지만, 생리적 현상이 급해 비난에 표면적으로만 대꾸한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서야 스스로의 멍청했던 대처를 되새기며 중얼거린다. 그때 미카엘라가 들어온다.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본 다니엘은,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듯, 놀란 표정으로 다시 미카엘라를 돌아본다. 같은 자세에서 비슷한 속도로 두 번 고개를 돌리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미카엘라는 다니엘에게 다가가 뺨을 때린 후 거의 곧바로 키스한다. 다니엘은 그녀가 따라 들어올 줄 몰랐고, 뺨을 때릴 줄은 더 몰랐으며, 키스할 줄은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뺨을 맞는 순간과 키스를 당하는 순간 사이의, 놀라 입이 벌어진 티모시 살라메의 표정에 눈이 간다. 뺨을 맞았을 때는 단순히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미카엘라가 키스하려고 자신의 뒷목을 감싸자, 눈은 더 커지고, 입은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위아래로 쩍 벌어진다. 내 짐작이지만, 철저한 계산으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표정이다. 찰나의 감정 변화를 얼굴에 바로바로 입히는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는, 훈련되어 능숙하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에 가깝다.


<핫 썸머 나이츠>(2017)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미카엘라와 연애하는 다니엘은, 더 이상 자신없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는다. 능숙한 기술과 엄청난 경험은 없어도, 마치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그윽한 눈으로 스스럼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를 배려한다. 다른 사람 같기도 하며, 엘리오의 모습이 겹쳐진다. 차에 뛰어들어 미카엘라와 몸이 겹쳐졌을 때는, 렉 걸린 듯 삐걱거리도록 눈알을 움직여 서서히 미카엘라를 바라본다. 입은 웃으며 숨을 내쉬려다 만 것 같은 형태로 벌어진 채다. 비를 피해 손을 잡고 달리는 씬 같은 청춘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도, 티모시 살라메의 이토록 티없는 얼굴과 만나면 세상에 없었던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핫 썸머 나이츠>(2017)



하지만 두 사람의 풋풋한 연애에 미소짓는 사이 불안이 끼어든다. 상황은 위태롭고, 관계는 꼬여 있다. 미카엘라와 헌터가 당시 다니엘의 거의 전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을 각각 속이지 않고서는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적당한 때에 진실을 밝혔더라면 좋았겠지만, 현명한 방법을 찾기에 다니엘은 너무 몰랐고, 너무 취해 있었다. 다니엘의 맹한 얼굴에는 자주 멍한 그늘이 드리운다. 답답해 속이 타다가도, 순진해 빠진 얼굴을 보면 뭐라 할 수가 없다. 그 얼굴에 달린 입에서 코카인을 팔자는 말이 나올 때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무렇지 않게 미소지으며 태연하게 문장을 뱉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속이 다 보이는 캐릭터인데, 알 수가 없다. 이성적인 생각과 계획이 없고, 열기에 들뜨고 취한 상태에서 순간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허리케인과 함께 마을에도 폭풍이 몰아치고, 이야기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코카인 장사꾼을 찾아가 일을 그르치고 겁을 먹은 다니엘은, 벌벌 떨거나 숨을 거칠게 몰아쉬지 않는다. 눈을 동그랗게 떠 눈치를 보며, 얼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겨우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뿐이다. 그러다 울먹거리는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러한 미세한 표현이 관객의 마음을 더 조여들게 한다.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는, 항상 예상을 깨면서도 납득시킨다.


<핫 썸머 나이츠>(2017)


 
때로는 절제하지 않고 온몸을 내던지는데도, 과장되거나 부담스러운 느낌 없이 빠져들게 한다. 헌터에게 정신없이 달려가 폭우를 맞으며 소리치는 장면이 그렇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내쫓는 건데, 속도 모르는 다니엘은 울분을 터트린다. 눈을 찡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빗물과 침이 튀기고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내지른다. 그가 수용할 수 있는 상황과 감정은 그 정도다. 얄팍하고 이기적이며 눈앞의 것만 본다.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어렸고, 뭘 몰랐을 뿐이다. 다니엘의 탓이지만 막상 탓하기는 힘들다. 마음이 바닥까지 무너져 있는 것이 보여서,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티모시 살라메가 아니었다면, ‘못난’ 다니엘에게 그 정도까지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한 헌터의 눈빛과, 엉망인 채 운전하는 다니엘의 흐트러진 눈은 대비된다.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의 동작마저 티모시 살라메는 다니엘처럼 표현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몸과 얼굴은, 화들짝 놀라 창백하게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핫 썸머 나이츠>(2017)


절뚝거리며 미카엘라의 방으로 들어가지만, 그녀는 헌터를 찾아간 상태다. 총에 맞아 쓰러진 헌터를 발견한 미카엘라의 얼굴과, 테이블에 놓인, 어린 시절 헌터와 미카엘라의 사진을 내려다보는 다니엘의 얼굴이 번갈아 화면에 잡힌다. 미카엘라가 마지막 순간 떠올린 것이 자신이 아님을 슬퍼하는 다니엘은 초라하고 찌질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 헌터의 죽음 때문이었는지 다니엘의 ‘보잘것없는’ 아픔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사람들의 말처럼 영화가 정말 별로였는지는 확실히 판단이 서지 않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는.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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