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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pr 20. 2019

grandson이 grandkids에게.

-뮤지션: grandson



“솔직한, 현재 시대를 반영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로큰롤, 힙합,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트랩 등 내가 듣는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섞어본다면 어떨까 하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했었다. 그런 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날마다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제까지 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젊은이들이 힘이 없다고 느끼지 않도록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다. 사람들이 무관심에 대항해 싸우도록 격려하고 싶다. 진보적인 의제를 지구별 전체로 확장시키고 싶다. 그게 내 목표다.”   [mindequalsblown.net]
 
‘grandson’이 자신의 음악적 배경과 영감에 대해 소개한 말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했다. 이토록 본인의 음악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는 뮤지션도 참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본래 ‘grandson(손자)’은, 혈연관계로 특정 인물을 표현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누군가의 손자가 아닌 그냥 ‘grandson’, Jordan Edward Benjamin이 음악을 낼 때 쓰는 이름이다.
 
스스로의 설명처럼 grandson의 음악에는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 일렉트로닉, 로큰롤, 트랩, 힙합, 때로는 약간 레게까지 들린다. 사운드는 강렬하고 분명하지만 한 가지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보컬은 소울풀하게 멜로디를 따라가다가도, 랩을 하거나, 소리지르듯 고음을 내는데, 갈라짐이 독특해 특징을 부여한다. 비비드vivid하다. 다듬어져 있지 않아 오히려 인스트러멘탈과 잘 어울린다.
 
배경음악과 보컬에 대해 먼저 묘사했으나, grandson의 음악에서 사운드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메시지다. 앨범 커버나 가사, 뮤직비디오, 인터뷰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정치적인 주제를, 무겁고 강한 단어를 사용해 가사에 담으며, 직접적으로 상징적인 그림을 커버에 넣는다. 오그라들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일단, 이미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며, 가사에 쓰는 표현이 무겁지만 이해하기 쉽고, 허세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컬처럼 솔직하고 비비드해서 호소력 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기로 한 건,) ‘grandson 프로젝트’의 맨 처음부터였다. 2016년에 창의적인 친구를 만나 함께 곡들을 쓰기 시작했다. ‘Bills’는 우리가 처음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것에 대해 쓴 곡이었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좀 더 정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그거’였다.”  [onestowatch.com]
 


싱글 ‘War’ 커버.


‘War’ 앨범 커버에 그려진 얼굴은 누가 봐도 도널드 트럼프의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몰아치는 그의 인기는, 현시대의 비극을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grandson은 부러 거리를 두고 관찰자의 시선에서 인간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겪는 비극을 호소하기도 한다. 특히 이 시스템을 만들고 재생산하는 데에 중심 역할을 한, ‘위대한’ 인간들을 겨냥해서 말이다.



싱글  ‘Thoughts & Prayers’ 커버.

 
Smile for the camera
카메라를 보고 웃어봐
another politician bought
또 다른 정치인이 산.
I swear I heard another shot
분명 또 총소리를 들었어
Cash another payment
또다시 대가를 지불해
Blood all on the canvas
캔버스 가득 피를 칠해
There’s murder on the campus
캠퍼스에서 살인이 일어나잖아
And let the press conference
기자회견을 허용해
Nothing gets accomplished
아무것도 이루어낸 건 없어
The suit is an accomplice
수트는 공범이야
Money is the motive
돈이 동기고
The war is in the street
거리에서 전쟁이 일어나
Watch history repeat
역사가 반복되는 걸 지켜봐
 
-‘Thoughts & Prayers’ 중. (verse part)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 중 하나가 ‘Thoughts & Prayers’,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의미로 만든 곡(anti-gun violence track)이다. (잘 모르지만)락과 트랩이 섞인, 힙합스러운 비트를 사용하는데, 보컬은 끝으로 갈수록 갈라지고 샤우팅에 가깝게 변하며, 코러스와 섞이기도 한다. grandson은 멜로디가 있는 벌스에도 라임을 맞추어 보다 리드미컬하게 만들어 따라부르기 쉽도록 하는데, ‘Thoughts & Prayers’의 경우 문장을 짧게 끊고 그 끝마다 각운을 넣어 더욱 시적이다.
 
후렴구를 살펴보면 제목 ‘Thoughts & Prayers’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것도 ‘기도로 극복’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비극은,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grandson이 말하는 건 그 다음이다. 부정적인 표현으로 절망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비극적인 기운을 끌어올려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것 같다.
 
No thoughts, no prayers can bring back what’s no longer there
어떤 생각도, 어떤 기도도 더 이상 그곳에 없는 것을 다시 불러올 수 없어
The silent are damned
침묵은 저주받았지
The body count is on your hands
시체의 수는 당신 손에 달려 있어.
 
-‘Thoughts & Prayers’ 중. (chorus part)
 

https://youtu.be/4DQ-2tDzJxw


곡은 아이들이 합창하는 후렴구로 조용하고 웅장하게 시작된다. 총기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 같기도,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아이 목소리를 사용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법은 힙합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음악에서 종종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 곡과 grandson이라는 아티스트를 특별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다.
 
“LA에서 ‘Our Lives protest’에 참여했다. 나처럼 총기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건, 굉장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콜럼바인 사건 이 일어났을 때 나는 대여섯살 쯤이었고, 샌디 훅 사건 때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도화선이 될 순간임을 깨닫고는, 활동가들, 커뮤니티 리더들, 조직가들에게 힘을 줄 예술작품을, 행진에 늦지 않도록 만들어내고 싶었다. 소속사에 아이들의 목소리로 코러스를 넣고 싶다고 부탁했다………..내 곡을 위해 녹음을 해 주었던 아이들과 함께 행진했다. 여섯 살 부터 열 여덟 살 까지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걷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경험이었다.”  [mindequalsblown.net]



싱글 ‘Blood // Water’ 커버.


grandson의 곡들 중에는 ‘Thoughts & Prayers’ 처럼 후렴구로 시작하는 것들이 몇 있는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를 앞에서부터 강조하려는 것 같다. ‘Blood // Water’가 대표적이다. 특히 드럼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곡인데, 웅장한 쿵쿵거림을 배경으로 시를 읊듯 잔잔하게 노래하다가, 악기와 비트가 덧붙으며 분위기가 고조되고, 후렴 부분에는 높은 일렉기타의 멜로디가 반복된다. 가사에는 상징성이 강하고 자극적인 표현들을 사용해, 일종의 예언의 서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We’ll never get free lamb to the slaughter
우리는 양을 절대 도살장에서 풀어줄 수 없을지니
What you gon’ do when there’s blood in the water?
물 속에 피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The price of your greed is your son and your daughter
욕심의 대가는 당신의 아들과 딸일지어다
 
-‘Blood // Water’ 중. (chorus part)
 
 https://youtu.be/tjIwXKPGf80


뮤직비디오 또한 가사와 사운드처럼 강렬하다. 시작은 옛날 미국 카툰 같은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이다. 흑백 화면에 익살맞은 음악이 배경으로 흐른다. 곡이 시작되며 실사로 전환되어, 화사한 톤의 화면에 아메리칸 드림의 표준처럼 보이는 가족이 등장한다. 넓고 화려한 집, 완벽한 미소를 짓는 어머니, 머리에 젤을 바른 아이들, 잘 차려입은 정치인 아버지.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이 가족은, 어딘가 어색하다. 꾸며낸 행복을 연기하는 것 같다. grandson은 이들에게 우유를 배달해주는 일꾼으로 등장하는데, 하얀 옷에 나비넥타이 위로 보이는 커다란 미소가 만화 캐릭터의 것 같아 크리피(creepy)하다.


‘Blood // Water’ 뮤직비디오에서 캡쳐.


앞의 파트가 은근히 부자연스럽다면, 후렴 부분에서는 편집이 확 달라져, 대놓고 부자연스럽고 정신없어진다.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매개로 해,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의 평화로운 풍경과 함께 여러 화면을 섞어 놓았다.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람, ‘그 물을 마시라’는 만화스러운 광고 문구, 실험실 혹은 공장, 환자복을 입은 사람 등이, 어둡게 화려한 색색의 필터를 거쳐 빠르고 불안하게 지나간다. 앞에서는 평화롭게 보였던,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은 덧씌워진 색 때문에 기괴하다.
 

‘Blood // Water’ 뮤직비디오에서 캡쳐.


본격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다음 벌스와 함께다. 아이가 다 먹은 접시를 개수대로 가져가는데, 수도꼭지가 쇠사슬로 친친 감겨 있다. 어머니는 물을 쓰지 말라며 손을 젓는다. 출근한 아버지는,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와 돈이 가득 든 가방과 물을 거래하고는, 그 물을 따라 건배한다.


‘Blood // Water’ 뮤직비디오에서 캡쳐.


다시 후렴과 함께 어지럽게 화면들이 지나간다. 첫 번째 후렴과 비슷하지만, 추가된 장면들이 있다. 물이 차오르는 욕조는 빨간 필터 때문에 마치 피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단순히 몸이 아픈 것 같지만은 않다. 무언가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어쩌면 강제로 끌려와 실험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Blood // Water’ 뮤직비디오에서 캡쳐.


아이가 욕실로 들어가자, 욕조와 세면대의 수도꼭지에 쇠사슬이 감겨 있는 것이 보인다. 헌데 거래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가는 아버지의 상태가 이상하다. 물을 마셨기 때문일까. 기도하던 어머니가 욕실로 들어서는데, 금지했던 물이 틀어져 있고, 아이는 피를 흘리며 욕조에 쓰러져 있다. 아버지는 목을 감싸며 계단에 주저앉는다. 돈가방이 떨어져 지폐가 흩날린다.


‘Blood // Water’ 뮤직비디오에서 캡쳐.



자극적인 비유로 이루어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충격을 주는 영상이다. 아티스트보다는 분명한 메시지, “The price of your greed is your son and your daughter.”를, 머리 한구석에 새기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짜임과 편집도 괜찮고 전개가 곡의 강약과 들어맞아, 몰입해서 보게 된다.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곡이 끝나면, ‘내가 뭘 본 거지’ 싶으면서도 영상과 현실을 연결짓게 된다. 끝부분의 브릿지에서 꼭 무언가 예언하듯 갈라지도록 소리치는 grandson의 목소리를 들으면,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I am the people, I am the storm, I am the riot, I am the swarm
내가 민중(그다지 쓰고 싶은 단어는 아니었지만 ‘people’의 뉘앙스와 가장 비슷하게 옮기고 싶었다.)이고, 내가 폭풍이며, 내가 시위고, 내가 군중이다
When the last tree’s fallen the animal can’t hide
마지막 나무가 쓰러지면 동물들은 숨을 수 없을 것이며
Money won’t solve it
돈은 해결해주지 않을것이다
What’s your alibi?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엇인가?
 
-‘Blood // Water’ 중. (bridge part)
 
가사는 ‘blood in the water’지만, 곡 제목의 ‘blood’ 와 ‘water’ 사이에는 ‘and the’가 아닌 ‘//’ 가 있다. grandson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기호를 제목에 썼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허나 내게 그 슬래시 두 개는, ‘물 속에 피가 있다’는 표현보다 더 묘하고 불편하게, ‘물이 곧 피’라는 선언으로 다가왔다.


 

EP  ‘a modern tragedy vol. 1’ 커버.


2018년, grandson은 이제까지 낸 싱글 중 몇에 곡을 추가해 총 다섯 트랙으로 이루어진 EP앨범을 낸다. 첫 곡은 ‘Blood // Water’, 앨범 타이틀은 ‘a modern tragedy(vol. 1: 이는 연결된 프로젝트로, 얼마 전 vol. 2가 발매됐다.)’이며, 커버는 총과 죽은 독수리(미국 국장 앞면에 새겨진, 연방제의 정치적인 통일과 평화 등을 상징하는 그림의 중심에 흰머리 독수리가 있다.)를 들고 웃는 건지 비명을 지르는 건지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눈은 X자 표시로 가려져 있다. 이렇듯 grandson의 앨범 커버에 그려진 얼굴에는, 눈마다 X자 표시가 있다. 아이들에게도(EP ‘a modern tragedy’ vol. 1, vol. 2.), 자유의 여신상에도(싱글 ‘Overdose’), 트럼프에게도(싱글 ‘War’), 트럼프 카드 킹에도(싱글 ‘Bury Me Face Down’) 미국 국기에도(싱글 ‘Thoughts & Prayers’).
 
 

‘Broken Down Vol. 1’ 커버.


커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해보면, ‘a modern tragedy vol. 1’에 수록된 두 곡의 어쿠스틱 버전을 녹음해 ‘Broken Down Vol. 1’이라는 제목으로 또다른 앨범을 냈는데, 그 커버에는 ‘a modern tragedy vol. 1’에 그려진, 아이 손에 들린 죽은 독수리가 확대되어 있다. 가슴께를 쭉 찢어내 무언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 보이는 편집을 덧붙이고, 역시 눈에 X자 표시를 해 놓았다. grandson이라는 아티스트의 자세와 곡의 완성도를 보면 ‘팔아치우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고, 진짜 의미는 그와 아트워크를 맡은 디자이너만 알겠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짐작해 보면 ‘a modern tragedy현대의 어떤 비극’에서 그 ‘비극’으로 무너져 내린 개인의 상태 자체를 음악에 심화시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쓰고 보니 별로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앨범의 일부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내며 그 커버를 원래 앨범 커버의 일부를 이용해 만든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 였다고 생각한다. ‘Blood // Water’ 어쿠스틱 버전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끝부분에서 목소리의 갈라짐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와, 마음 속 깊은 곳을 찢어놓는 기분이 든다.


https://youtu.be/yQKlfQsRaHk




맥락을 이어, grandson의 곡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상태와 감정을 잊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상황에 대한 묘사처럼 보이는 가사도 사회적인 맥락과 연결짓게 되고, 사회적인 단어들에서도 개인의 비극이 느껴진다. EP앨범에 수록된 ‘Overdose’의 경우, 가사는 그냥 마약에 중독된 한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헌데 앨범 커버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눈에 X자가 그려진 그 회색 얼굴을 괜히 뚫어져라 보며 몇 번 듣고 나니, ‘overdose’가 약물 과다복용 자체가 아니라 어떤 은유, 이를테면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은유까지는 아니더라도, ‘overdose’가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Q: EP 제목, ‘a modern tragedy vol. 1’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인가? 그냥 당신 주변 세계를 둘러본 건가?
 
A: 그렇다. 이 EP 시리즈는 내게 ‘State of the Union’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포함할 것이다. (이 앨범들은)하나의 민감한 이슈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나 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리를 빼앗긴 기분을 느끼게 한-그래서 화낼 필요성을 느끼게 한 시스템적 실패를, 적나라하게 응시한다. 나는 매우 운이 좋았다. 내 음악이 자신들에게 화낼 공간을 주고 풀어내게 해 주었다고 말해 준 팬들과 연결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게 무엇이건, 굽히지 않고, 사탕발림으로 넘기지 않는 제목을 달고 싶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건 망할fucking 비극이니까.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걸 견디기 위해 “약물과다overdose”나 폭력에 중독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정말로 슬픈 이야기다.”   [onestowatch.com]


 

싱글 ‘Overdose’ 커버.



다른 글에 비해 인터뷰를 옮기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grandson의 음악에는 정확한 목적이 있고, 인터뷰에서 그 토대가 된 생각과 의도를 알아듣기 쉬운 말로 분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명쾌하게 드러내 주니, 굳이 덧붙일 말이 없었다. 혹시나 ‘좁다’는 비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이렇게 사용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므로, ‘좁다’ 보다는 ‘정확하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예술과 삶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스타일을 택한 아티스트들도 물론 존중한다. 자신의 분야와는 별개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나 배우들도 많다. 다만 grandson에게 있어 예술은 실제 삶과 뿌리부터 연결되어 있고, 그게 바로 그의 작업을 훌륭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겠다.
 
 
“버니 샌더스와, 그가 자신의 플랫폼을 두드러진 이슈에 대해 말하는 데에 사용하면서 쇼로 만들지는 않는 방식에 엄청난 팬이었다.”  [onestowatch.com]
 
grandson이 버니 샌더스에게 반한 부분이 그에게서도 느껴진다. 민감한 정치, 사회적 사건을 곡에 ‘이용해’ ‘이슈화시켜’ ‘쇼 비즈니스’를 하려는 의도는 만져지지 않는다. 진짜 본인이 느끼는 바를, 그의 표현처럼 ‘날것raw’으로 써낸 것 같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사회를 이야기하고, 다시 사회적 현상과 개인을 연결시켜, 흩어져 있는 개개인을 불러모은다.
 
EP앨범의 타이틀 역시 ‘The Modern Tragedy’가 아닌 ‘a modern tragedy’다. 본질적인 원인은 같을지라도, 그 ‘비극’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이의 표현 같다. 커다란 덩어리보다는 각자를 살피는 느낌이다. 언급했듯, grandson은 개인을 배제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이 개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곡에 담는다. 시스템의 문제로 빚어진 ‘modern tragedy’를 겪는 것은 개인들이며, 그것을 깨부술 힘 또한 개인들이 모여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혁명은 개인들이 모여 이룬다’는 것을.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느낌이 가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한다. 좌절해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나처럼 생각하거나, ‘이런 류의 생각을 공개할 권리가 내게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위해’ 내게 동의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런 어려운 대화를 끌어내며 나 자신에 도전하고 싶다.
………………
언젠가 우리가 뭉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깨닫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미쳐야만 한다. 망할fucking 테이블을 뒤집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야 한다는 걸 각인시킬 불을 지펴야만 한다.…………당신이 망해버렸거나 약을 너무 많이 했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냥 내 음악을 틀고 나가서 소리지르고 팔뚝질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약속한다.”  [mindequalsblown.net]


출처: mindequalsblown.net / photo by. Jessica Tyler


 
마지막으로 눈여겨볼 것은, 네이밍이다. 보통 이름의 첫 자는 대문자이지만 grandson은 EP앨범의 타이틀에서 그랬듯 그대로 소문자를 쓴다. 분명 한 뮤지션의 예명인데,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명사로, 세상 모든 손자(아들도 아니고 손자.)를 뜻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아래 마무리로 인용할 인터뷰 구절을 읽고, 짐작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이밍부터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가. grandson은 말한다, ‘당신들’이 이 곡을, 메시지를 들을 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이 수많은 생명의 피로 오염시킨 유산을 물려받을, 우리 ‘손자’들은 만날 것이라고, 개개인의 목소리를, ‘대의’를 위해 지워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아 내지를 것이라고.
 
“그랜썬grandson이 되기에 너무 늦은 시기란 없다.(그랜키드grandkid. 미안하다.-앞에서 남성만을 지칭한 것에 대해 사과함-) 그랜키드grandkid에 조인해라. 당신은 딱 적절한 시기에 왔다, 혁명은 지금이다. Let’s fuck shit up.”  [mindequalsblown.net]
 

출처: mindequalsblown.net / photo by. Jessica Tyler



 
+ 넣고 싶었는데 도저히 끼울 데가 없어 포기한 새 EP ‘a modern tragedy vol. 2’에 대한 간단한 감상.

 

EP ‘a modern tragedy vol. 2’ 커버.


새 EP앨범을 잠깐 뜯어보면, 일단 랩이 많다. ‘Fallen’은 아예 힙합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곡이다. 심지어 좀 돕dope 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아예 힙합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곡에서 랩을 하지만, ‘Dark Side’의 경우 후렴구가 오히려 더 멜로디컬하고, ‘Apologize’는 랩이지만, 멜로디컬 랩이다. 다시 한 번 grandson은 원래 있던 것들을 탁월하게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증명했으며, 의심을 깨부쉈다. 그는 음악을 통해 말한다, ‘내 음악은 색깔이 확실하지만, ‘예측’할 수는 없으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 순수하게 음악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다’고.
 
(사족의 사족: 공식 유투브 채널에서 재생하면, 커버의 TV 화면들이 깜박거리는 디테일이 있다.)



* 참고 인터뷰


http://mindequalsblown.net/interviews/grandson-interview-music-activism-and-whats-next-in-2018


https://www.onestowatch.com/blog/qa-grandson-speaks-on-his-politically-fue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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