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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Aug 10. 2019

‘아마추어’ 밴드, SQÜRL

-뮤지션: SQÜRL


이미지 출처: squrlworld.com


짐 자무쉬의 영화, 평범해서 독보적인 이야기 구조와 공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영상 뿐 아니라, 약간 어둡고 나른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운드트랙을 관심 있게 살폈다면, ‘SQÜRL’ 이라는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Only Lovers Left Alive>(2013) 이후 꾸준히 짐 자무쉬가 감독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이 밴드에는, 감독 본인이 속해 있다.

“처음에는, Bad Rabbit 이라는 이름으로 <The Limits of Control>(2009) 에 쓸 ‘instrumental   pieces’를 몇 개 만들었다. 함께 작업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음악을 더 만들기 시작했다. 아방가르드 노이즈록- 단조로운, 윙윙거리는- 것들에서 부터 보컬이 들어가 노래의 구조를 갖춘 것까지 다양하다. ~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계획은 없다. 그냥 음악을 계속 만든다.(자무쉬)”

[nytimes.com]

SQÜRL의 음악을 만드는 이들은, 사운드 엔지니어 Shane Stoneback과 <패터슨>(2016)에서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Carter Logan, 짐 자무쉬, Jozef van Wissem이다. 짐 자무쉬가 감독한 영화 음악을 만든 경험에서 출발한 밴드일지는 몰라도, ‘짐 자무쉬의 밴드’는 아니다. 짐 자무쉬 본인도 이 점을 강조한다.

“나는 SQÜRL에 속하고, 요제프는 SQÜRL에 속하고, 쉐인은 SQÜRL에 속한다. 근데 SQÜRL은, 나랑 카터 로건이다.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표현처럼, ‘나랑 내 밴드 SQÜRL’이 아니다. 우리는 동등하다. 리더는 없다. 우리는 그냥 함께 일하는 것 뿐이다.(자무쉬)”

[nytimes.com]



위에서부터 각각 ‘#1’, ‘#2’ 커버.


그런 의미에서 영화 사운드트랙 말고, SQÜRL의 EP앨범을 살짝만 살펴보기로 했다. SQÜRL은 <Only Lovers Left Alive>가 완성된 해인 2013년에 EP앨범 #1과 #2를 연달아 발매했다. 두 앨범의 구조는, 각각의 커버 아트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첫 곡의 제목은 ‘Pink Dust’, ‘Purple Dust’로, 왠지 대칭적이다. ‘Purple Dust’에는 아예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나, ‘Pink Dust’ 중간중간에는, 어떤 목소리가 프랑스 억양의 영어로 나레이션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고, 다만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가끔 프랑스어로 하는, ‘1, 2, 3’이 들린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1의 ‘Dead Naked Hipples’와 ‘Little Sister’, #2의 ‘I’m So Lonesome I Could Cry’와 ‘The Boat of Love’에는 보컬이 들어가는데, 인스트러멘탈을 배경으로 보컬을 위에 얹은 것이 아니라, 보컬도 인스트러멘탈 중 하나인 듯 들린다. My Bloody Valentine(내가 MBV 사랑해서 그냥 언급하고 싶었음)의 보컬들이 그렇듯. SQÜRL의 곡에 들어간 대부분의 보컬이 그렇다. 일부러 음색을 다운시키고, 울리는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음의 높낮이 폭을 줄여, 악기 사운드와 조화됨을 넘어 함께 뭉그러지도록 한다. 다른 뮤지션의 곡들도, 비슷한 느낌으로 리메이크해 녹음한다.

‘I’m So Lonesome I Could Cry’의 원곡은, Hank Williams의 유명한 컨트리 송이다. SQÜRL이 리메이크한 곡을 들어보면, (잘은 모르지만) 기본 박자와 뭔가 무심하게 말하는 듯한 멜로디라인은 똑같은데, 원곡처럼 반주 위에 노래를 녹음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덧입혀 발음이 뭉개지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삽입했다. 담담하게 우울한 원곡의 매력은 유지하면서, 전자악기의 끝없이 울리는 소리를 이용해 새로운 느낌의 우울함을 덧붙였다.


https://youtu.be/4WXYjm74WFI

Hank Williams - I’m So Lonesome I Could Cry

https://youtu.be/TPvJDkerZV4

SQÜRL - I’m So Lonesome I Could Cry



“우리는 ‘DJ Screw’를,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 컨트리 음악, 특히 슬픈 컨트리 노래를 사랑한다. 라이브를 할 때, 몇 곡은 느리게 연주하기도 하고, 질척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Hank Williams의 ‘I’m So Lonesome I Could Cry’를 공연하기도, ‘Little Sister’를 로커빌리 스타일로 연주하기도 한다. 우리 입맛대로 “SQÜRL-izing” 하기를 좋아한다.(자무쉬)”


“이는 미국 음악의 ‘vernacular’한 부분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덧붙여 행해지고, 다시 행해지고, 재해석되었다. <Only Lovers Left Alive>를 위해 녹음했던 Wanda Jackson의 ‘Funnel of Love’의 경우, 우리가 궁극적으로 한 건, 느리게 만들고, 리믹스하고, Madeline Follin의 보컬과 함께 다시 녹음한 것이었는데, 옛 컨트리 로커빌리 곡에 ”DJ Screw“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로건)”

[clevescene.com]

 
이들에게 라이브는, 단순히 만들어 놓은 음악을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있던 곡을 다른 방식으로 녹음하기도, 그 곡을 다시 원래대로 연주하기도 하는 등, ‘하나’의 음악에 다양하고 끝없는 변화를 주어, 라이브로 선보일 때마다 다른 곡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 변주를 통해 새로운 매일매일이 되는 모습을 담아낸 <패터슨>(2016)처럼. 사실 SQÜRL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브에서 CD를 튼 것처럼 똑같이 공연하는 뮤지션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SQÜRL은 그 의미를 알고, 설명함으로써,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음악이라는 무한한 마법을.  


https://youtu.be/BXV19NfP3hA

Wanda Jackson - Funnel of Love

https://youtu.be/pqApo9BWK3s

SQÜRL - Funnel of Love(Feat. Madeline Follin)



참지 못하고 <패터슨>을 사용해 비유했다. SQÜRL이 ‘짐 자무쉬의 밴드’가 아니라는 점과는 별개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영화 사운드트랙이 아니어도) 짐 자무쉬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의 영화를 볼 때처럼, 템포가 느리면서도 사이사이는 꽉 차 있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이 두 서술이 모순되지 않은가, 둘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이 글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Only Lovers Left Alive>를 예로 들면, 각본과 감독은 짐 자무쉬가 했다. 그가 세상을 느끼는 시선이 담겨 있고, 보편적으로는 ‘짐 자무쉬의 영화’라고 말한다. 허나 이 작품은, 각자의 해석이 담긴 배우들의 연기가 완성한 캐릭터, 이들의 의상을 비롯한 소품과 배경 디자인, Jozef van Wissem과 SQÜRL이 만든 음악, 따위의 수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은 각본이었을지 몰라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짐 자무쉬의 영화’이나, ‘짐 자무쉬만의 영화’는 아닌 것이다. 정확히 짚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SQÜRL의 음악을 짐 자무쉬 개인의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도 그가 감독한 영화와 연결해 떠올릴 수 있는, 실마리 정도는 되지 않을까.  


https://youtu.be/-cpFmuz8kH8

SQÜRL - The Dark Rift



“An enthusiastically marginal rock band from New York City who like big drums & distorted guitars, cassette recorders, loops, feedback, sad country songs, molten stoner core, chopped & screwed hip-hop, and imaginary movie scores.”

[squrlworld.com]

SQÜRL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밴드 소개글의 첫 문단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말들이 있어 그냥 옮겨왔는데, 대강 이 소개를 보고 받은 인상은, 모든 음악에 열려 있지만, 아주 깔끔한 것 보다는 약간 올드하거나 갈라진 사운드를 선호하고, 방향을 정확히 규정하거나 촘촘히 계획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이런 저런 예술과 피드백에 영향을 받아 작업하기를 좋아하는, 자신들의 결과물을 내는 데에 심취하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소비와 사랑을 아끼지 않는 예술가들, 이었다.

“enthusiastically marginal”에 대해 짐 자무쉬와 카터 로건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열정적이고enthusiastically, 변두리에 있다marginal. 우리는 커다란 스태디움 쇼 같은 데 서지 않을 것이다. 지하 펑크 클럽에서 공연할 수 있다면 운 좋은 것이지.(자무쉬)”

“우리가 스스로를 프로 뮤지션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 이상이다.(로건)”

“우리는 프로 뮤지션들을 존중하지만, 음악에 대한 모든 접근법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난 항상 자신을 프로 필름메이커로 여기지 않는다. ‘아마추어’라는 말의 뿌리는, ‘the love of a form’이다. ‘프로패셔널’은 돈을 벌기 위해 한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의미 말고, 그런 의미에서 아마추어 필름메이커라고 한 것이다. 돈을 지불해야 할 때를 빼면. 그때는 부정적인 의미가 된다.(자무쉬)”
[clevescene.com]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가진 자의 여유’보다는, 거대한 ‘예술산업’ 덩어리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는, 중심을 지키려는 노력, 이 느껴졌다. 뮤지션으로서의 짐 자무쉬와 필름메이커로서의 짐 자무쉬는 다르지만, 각각의 예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QÜRL의 음악이 짐 자무쉬 개인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두 예술가가 만나 함께 작업을 한다, 고 해야 맞겠다.

‘작품’을 만들어 저 위에 전시해 놓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세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고 시도한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견해는 각자 다르겠지만, SQÜRL의 방식은 그렇고, 나는 그게 좋다. SQÜRL이 영원히 ‘아마추어’로 남기를, SQÜRL스러움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쓰고 있기는 하나, 딱히 바랄 필요도 없이 아마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260’ 커버.



* 참고 인터뷰:


https://www.nytimes.com/2015/02/17/t-magazine/jim-jarmusch-soundtracks-surrealism-with-his-rock-band-squrl.html?_r=0


https://m.clevescene.com/scene-and-heard/archives/2017/10/20/in-advance-of-their-cleveland-museum-of-art-performance-jim-jarmusch-and-carter-logan-talk-about-their-experimental-duo-sq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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