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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un 19. 2019

그 뮤지션은 배우다. (2)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as 조 스트러머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배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Jonathan Rhys Meyers)
-캐릭터: 조 스트러머(in <런던 타운>)
 
-영화:
<런던 타운(London Town)>(2016, 감독: 데릭 보르테)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2007, 감독: 커스틴 쉐리단)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런던 타운>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던 타운>(2016)


허스키하게 긁는 목소리로 짧고 곧게 내지른다. 위로 뻣뻣하게 솟은 짧은 머리카락, 검은 가죽 재킷, <벨벳 골드마인> 이후 거의 20년,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런던 타운>(2016)에서 보여 준 얼굴은 다시 70년대의 것, 펑크 밴드 ‘더 클래시The Clash’의 조 스트러머다. 주인공은 아니며, 나오는 장면도 손에 꼽을 정도지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상징, 아니 그보다는 시대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와 픽션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허나 어쨌든 <런던 타운>은 픽션이다. 따라서 그를 ‘조 스트러머의 재현’이 아니라 허구의 캐릭터 ‘조 스트러머’로 봐야 할 것이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또다시, 실존 인물을 모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음악과 무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런던 타운>(2016)


조 스트러머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공연장, 무대 위에서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관람하고, 주인공 셰이는 무대 아래 관객석에서 공연하는 조 스트러머를 관람한다.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무대처럼, 두 겹의 벽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무대 위 조 스트러머일 때,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한다. 카메라와 눈을 맞추거나 멋져 보이려는 노력 없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밴드 맴버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에 온 신경을 쏟는다. 이마엔 땀이 맺혀 있고 몸은 박자에 맞춰 빠르게 흔들린다. 시선은 소리에 집중하는 사람 특유의 것으로 허공을 향해 내리깔려 있다. 공연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공연,을 하는 것이다. 감독은 화려한 편집을 끼워 넣는 대신, 공연장 관객, 즉 셰이의 시선에서, 사람들 머리에 가리거나 공연장 불빛 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조 스트러머를 담으며 현장감을 높였다. 그리고 정말 펑크 공연을 보는 듯한 그 현장감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노래하고 연주할 줄 아는, 공연하는 방법을 아는 배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런던 타운>(2016)


 
허나 조 스트러머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와 다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셰이의 택시에 올라탐으로써, 무대 위 우상으로만 남지 않고 현실로 ‘내려온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더 클래시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 셰이에게 시치미를 뗀다. ‘생일 축하’ 명목으로 택시비 이상의 돈을 건넨다.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의 눈 앞에 한 인물로 다가온 것이다. 스스럼없고 어딘지 장난스럽게 상기된, 그러나 순간 진지하고 어른스럽게 돌변하기도 하는- 밝음과 그늘이 동시에 느껴지는 미스터리한 남자로. 아직 셰이가 그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대의 뮤지션과 택시 안 남자는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다.
 

<런던 타운>(2016)


‘이어짐’은 유치장에서 일어난다. 더 클래시 콘서트에 갔다가 스킨헤드와 붙어 잡혀온 셰이에 이어 끌려들어온 조는, 마치 전에도 여러 번 유치장을 경험한 듯, 소리치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이번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셰이를, 전과 다름없이 스스럼없이 대한다. 삐딱한 자세로 얼굴을 구기며 호탕하게 웃고,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역시 사이사이 가만히 보이는 그늘은, 작품이 그리 깊지 않게 다루는 캐릭터의 깊이를 더한다. 진지하게 셰이의 이야기를 듣고 다 안다는 듯한 말투로 조언을 던지는데도 ‘꼰대’ 같이 들리지 않는 것은, 그 진지함과 스스럼없음의 조화 때문이며, 그가 셰이를 동등한 ‘친구’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셰이가 조를 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런던 타운>(2016)


유치장에서 나온 조는 셰이를 연습실에 초대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소개한 뒤 곧바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준비할 새도 없이 ‘스타’와 ‘친구’ 사이 거리는 허물어진다. 노래하는 모습 자체는 공연장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음악 자체에 집중한다. 하지만 가끔 셰이를 보며 웃는다. 그 담백하고 꾸밈없는 웃음은, 셰이와, 그의 시선을 통해 화면을 보는 관객에게 ‘나만을 위한 공연’이라는 설렘을 부여한다.


<런던 타운>(2016)


 
조 스트러머의 다음 얼굴은 TV화면을 통해 등장한다. 더 클래시가 온다며 포스터까지 만든 상태에서 만날 길이 없는 조 스트러머는 다시 닿을 수 없는 스타의 공간으로 가버린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조는 TV속에서 나와 셰이의 눈 앞에 등장하고, 셰이에게 희망을 줬던 그 음악으로 마지막 희망을 지켜 준다. 그리고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예의 그렇듯 음악에 집중해 기꺼이 배경 음악이 됨으로써, 셰이의 미소를 돋보이게 한다.


<런던 타운>(2016)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대충 하는 것 같으면서 세심하게 신경 쓴다. 자신이 믿는 옳고 그름, 그에 근거해 사는 삶에 자신이 있는, 그러면서도 항상 귀를 열어 두고 우월감은 멀리하는 사람,이 <런던 타운>이 그리는 조 스트러머다. 미화한 말이긴 하지만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런던 타운>(2016)


좀 비틀어 작품과 거리를 두고 보면, 사실 무대 아래 조 스트러머는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진 일종의 판타지적 존재다. 허나 오히려 조 스트러머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곡은, 무대 아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철저히 이미지를 연기함으로써 솔직해지는 브라이언 슬레이드와 달리, 조 스트러머의 공연에는 ‘연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허구의 이미지를 입고 시대를 앞서갔다면, 조 스트러머는 현실에 뛰어들어 시대에 저항한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두 스타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퍼포먼스’를 통해 ‘살아났’다.
 

<런던 타운>(2016)



정말 내키지 않고 글의 일관성도 해치지만, <어거스트 러쉬>(2007)를 빼놓을 수는 없다. 취향이 생긴 후에 봐서 그런지, 작품 자체는 굉장히 재미 없었으나, 배우들의 연기는 볼 만 했다. 특히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노래하고 연주하는 연기 만큼은 다시 보고 싶다. ‘연기’라고 했는데, <어거스트 러쉬>에서 그는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완전히 ‘배우’로서 역할한다. 뮤지션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그냥 사랑에 빠진 사람에 가깝다. 무대 장면도 무대에 선 인물의 입장에서 그리기 때문에 시선과 느낌이 다르다. 목소리와 음악에 집중하는 태도 만큼은 뮤지션의 것이지만, 극의 톤과 어울리게 너무나 드라마틱한 표정을 보이곤 한다.
 
뮤지션의 느낌은 오히려 무대 밖, 에반과 기타 듀엣 연주를 하는 그 유명한 장면에서 두드러졌다. 음악에 맞춰서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연기가 아닌’ ‘뮤지션의 순수한 음악적 즐거움’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싶은 어떤 것이 얼굴에 묻어났다.


https://youtu.be/BAWw3SN7FRo

<어거스트 러쉬>(2007) 기타 듀엣 장면.


<어거스트 러쉬>를 언급한 또 하나의 이유는, OST앨범에 포함 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이름이 붙은 유일한 공식적 음악 트랙들이다. 이 트랙들에서는 그의 자연스러운 보컬을 들을 수 있다. 비음과 허스키함이 섞여 약간 금속성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Elvis - The Early Years>(2007) 포스터.


그러고 보니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출연한 ‘음악 영화’마다 각기 다른 장르의 보컬을 넘나들었다. 록, 펑크, 팝까지 -TV영화 <Elvis - The Early Years>(2007)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형태로 변하며 종류가 다른 기타 연주와 결합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연기를 하는 뮤지션이라고 해야 할지, 뮤지션의 능력을 지닌 배우라고 해야 할지 잠깐 헷갈릴 정도로. 하지만 그는 역시 배우다. ‘음악 영화’가 아닌 40개가 넘는 작품에서, 노래와 무대 퍼포먼스가 아닌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매치포인트>(2005)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눈은, 힘을 빼면 멍할 정도로 푸른데, 어느 순간에는 로맨틱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찢어지게 슬퍼 보인다. <어거스트 러쉬>에서 매우 잘 쓰였다. 팔짱 끼고 저게 뭐야 하고 있다가, 루이스가 눈물 고인 눈을 겨우 뜨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막 노래하는 것을 보고 약간 목이 메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초반에 루이스가 공연이 끝나고 왠지 아련하고 어두운, 마치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는, ‘배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 가 느껴지기도 했다.
 

<핀바를 찾아서>(1996) 포스터.



하지만 다시, 그 몇 되지 않는 ‘음악 영화’ 때문에, ‘배우’라는 단어가 그를 수식하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진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뮤지션’으로 한정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벨벳 골드마인>(1998)


“<벨벳 골드마인>이 그리는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새로운 것을 구상하기보다는 남들이 가진 반짝이는 것을 가져와 완전하고 독특하게 자기화 한다. 작품이 노골적으로 말하듯 ‘다른’, 타고난 감각과 분위기로. ‘이미지’를 만든 것이 누구건, 브라이언이 입는 순간 그것은 완전히 그의 것이 된다. 자발적으로 대상화 됨으로써, 자신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게 한다. 이미지와 스타일로 이루어진 스타, 진짜 자신을 드러내게 해 주는 가면을 쓰고 새로운 세계를 연 브라이언 슬레이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그와 닮아 있었다. ”  

(1부 마무리에서 인용)


<벨벳 골드마인>(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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