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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Nov 28. 2019

중독의 매커니즘

<시빌>(2019)


 
<시빌(Sibyl)>(2019, 감독: 쥐스틴 트리에)
 
*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마다 캐릭터를 설득하는 법이 다르다. 차근차근 설명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시빌>의 방식이 아니다. 불쑥 불쑥 등장하는 과거와 복잡한 얼굴을 먼저 보여 준다. 그게 취향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나도 보면서 이해가 완전히 되지는 않았다.
 
극장을 나와 찬찬히 돌이키다, 작품이 사실 다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꾸 돌이키는 기억을 통해, 시빌을 이해해 볼 수 있다. 마고가 들려주는 이고르와의 관계에서, 과거 가브리엘과의 타오르는 사랑이 떠올랐고, 예상치 못한 임신과 그에 대한 생각 차이까지 겹쳐져, 이야기로 쓰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겠다. 쓸수록 글에 빠져 그 속 캐릭터와 현실의 인물, 스스로를 분리하는 데에 실패한다-아니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던 듯 하다-. 마고인 척 연기하거나, 이고르와 섹스하며 가브리엘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상당히 명확하다. 술 대신 스토리에 중독된다. 초반 중독자 모임에서 시빌이 하는 말, “글자에 중독되는 건 나쁜게 아니잖아요?”는 절대적이지 않다.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동생의 말처럼, 어떤 중독자는 다른 사람 인생까지 망치려 든다. 처음에 넘은 선인 글에 중독되어 현실의 선마저 넘은 시빌은, 신뢰를 잃고 촬영장에서 쫓겨난다. 이후에도 헤어 나오지 못해 그대로 책을 내버리고, 영화 시사회를 찾아가 술에 취해 망가진다.
 

<시빌>(2019) 스틸컷.


불안정한 심리가 중독과 행동으로 이어진 매커니즘을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문제없다는 뜻은 아니다. 시빌은 분명히 잘못했다, 단 법적이 아니고 윤리적으로. 미카가 마고에게 디렉팅했듯, 사람 심리는 복잡하고 때로 모순적이다. ‘책에 들어간 것이 오히려 좋다’고 반응한 마고가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 그 말이 면죄부를 주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았으나, ‘시빌이 마고의 삶을 망치지 못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빌에게 의존하고 이용당했던 마고가 시빌을 케어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함으로써, 시빌의 주제넘음이 부끄럽게 부각됐다.


<시빌>(2019) 스틸컷.


‘내 인생 자체가 소설이란 것을 깨달았다. 선택은 내가 하는 거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시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교훈적이어서 약간 촌스럽게 들리긴 했으나, 핵심을 전달한다. 시빌이 허락 없이 구성하고 옮겨 적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삶이다. 그 문장에 닿기 까지의 모든 과정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으나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비르지니 에피라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연기를 폭발적으로 해 줘서, 내내 불편한 긴장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었다. 비르지니 에피라가 겹겹이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낸다면,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는 폭포를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시빌>(2019) 스틸컷.


작품이 이고르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시선 자체를 주지 않는다. 자기 얘기를 할 기회도 거의 없다. 마고의 말이나 시빌의 시선을 통해 옮겨지고, 대상화 된다. 명백한 ‘나쁜놈’이라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는 듯 했다. 공식적 파트너와 합의 없이 다른 여성을 만나고, 집착하고, 폭력적으로 굴고, 임신 중절 수술을 못하게 하고, 했다고 화나서 다 폭로해 버려 촬영에 차질을 빚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여성과 잔다. 제멋대로 굴고 책임은 피한다. 그래도 ‘괜찮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남성 배우인 이고르가 아닌, 여성 신인 배우이자 임신한 당사자인 마고에게 비난이 집중된다. 마고의 멘탈이 붕괴될 만도 하다. 헌데 작품의 시선도 마고에게 집중되면서, 그러한 현실의 문제가 영화적 전개에서도 똑같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작품의 의도와 상관 없이 애초에 마고의 문제였던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가스파르 울리엘의 팬으로서 한 마디 덧붙이면, 아깝다. 물론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남성 배우가 여성 중심 서사 작품을 택했다는 사실이 뿌듯했으며, 역시 그의 연기는 적절했고, 기능적 인물이었음에도 치명적으로 만들었다. 허나 그의 아웃사이더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는, 이고르와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에 쓰이기엔 너무 아깝다. ‘왜 다들 그렇게 저놈한테 끌리는지’ 별 말 필요 없이 설득 시키는 게 그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지만.


<시빌>(2019) 스틸컷.


 
+ 가스파르 울리엘은 <단지 세상의 끝>(2016)에서 자비에 돌란과 작업한 적이 있다. 가브리엘 역의 닐 슈나이더는 자비에 돌란의 초기작(이자 그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하트비트>(2010)에 나왔었다. <시빌>에서는 한 화면에 잡히지 않았으나, 두 배우가 자비에 돌란의 작품에 함께 캐스팅되는 상상을 잠깐 해본다. 닐 슈나이더의 밝은 몽롱함과 가스파르 울리엘의 여린 어두움이, 스타일리시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어울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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