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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5호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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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Oct 19. 2021

n명의 존재 - ‘부캐’ 이리저리 살펴보기

[헤엄치기] 편집위원 서로

- ‘좋아한다’는 것

 무언가를 ‘좋아한다’라는 말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기억이 있다. 그 말의 온도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냄비 같은 성격의 나는 어떤 것에 대한 애정이 금세 끓고 또 식게 되는 사람이기에, 그 어떤 것을 꾸준히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다른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 그것을 공부하고, 고민하고, 또 자신만의 방법을 채워가며 그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좋아한다고 생각한 어떤 분야를 (어쩌면 어설프게) 지켜보다, 나보다 그것을 더 우직하게 공부해온 다른 이의 열정에 데이고 만 기억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나도 그것을 과연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좋아하게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불쑥 등장하곤 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도 그곳에는 나보다 소위 ‘진심’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앞에서 냄비 같은 내가 과연 그것에 대해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를 생각해왔다. ‘좋아한다’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무언가에 대한 ‘해박함’ 혹은 ‘능숙함’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남들보다 더 잘 알아야 하고, 더 능숙해야 하는 것. 그것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고 여겨왔다.


 무언가를 ‘좋아함’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여러 매체 속 ‘부캐’[1]가 눈에 들어왔다. 2인조 아이돌 그룹 ‘매드 몬스터’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매드 몬스터’의 활동 영상을 보면, 그들의 춤과 노래는 기존 아이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실력이다. 완벽함이 사람됨보다 중시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그들의 도전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그들에게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듯이 특정 분야를 쉽게 좋아하고 그만큼 또 쉽게 내쳐버리는 나는 ‘부캐’가 주는 신선함에도 매료되었다. 특히나 ‘매드 몬스터’의 멤버 중 한 명인 ‘제이호’는 본디 이창호라는 개그맨으로, 그는 ‘제이호’ 외에도 회사 내 본부장, 산악회 부회장으로서의 또 다른 부캐로 활동하고 있다.[2] 그의 부캐는 조악하고 다소 유치한 콘셉트로 흥미를 잃기 쉽지만, 그는 이 세 가지 ‘부캐’를 다채롭게 전환하며 유치함과 유머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신선한 이미지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 글은 매체 속 부캐의 의미와 그 상업성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와 함께 매체의 상업성에서 벗어난 부캐의 사례 또한 톺아볼 예정이다. 또한 “MZ 세대의 무한 부캐 사랑” 따위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무수히 쏟아지는 지금, 그것의 의미와 의의를 논하고 미래 사회의 부캐에 대해 상상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글의 마지막에는 ‘부캐’가 앞선 나의 고민에 남긴 일말의 해답지를 담아보았다.



- 매체 속 ‘부캐’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플랫폼에서는 연예인이 자신의 기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제3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때, 연예인의 새로운 이미지는 그의 ‘부캐’라고 지칭된다. 연예인의 부캐를 다루는 많은 사례 중,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와 앞서 언급한 아이돌 그룹 ‘매드 몬스터’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논해보자.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 유산슬, 유두래곤 등 다양한 ‘부캐’를 통해 트로트 가수, 아이돌, 프로듀서 등으로서의 역할을 체험하는 내용을 담는다. 방송이 이어지며 유재석뿐만 아니라 이에 등장하는 다른 연예인들 또한 부캐를 활용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에서 제작된 8인조 남성 보컬 그룹 ‘MSG워너비’에서 ‘유야호’로 활동한 유재석과 함께 ‘별루지’라는 부캐로 활동한 지석진 등이 그 예시이다. 가수를 본업으로 삼지 않는 연예인들도 부여받은 부캐를 통해 촬영 기간 동안 가수로서 활동했다.


 코미디언 곽범, 이창호는 그들의 <빵송국>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각각 탄, 제이호라는 이름으로 ‘매드 몬스터’라는 2인조 보이그룹을 결성하여 데뷔하였다. 이들이 2021년 4월에 발매한 ‘내 루돌프’라는 곡이 특히나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들의 비현실적으로 큰 눈과 갸름한 턱, 작은 얼굴이 그 화제 요소 중 하나였다.


 매드 몬스터는 사진 보정 어플리케이션 ‘스노우’를 이용해 외형을 왜곡하여 촬영한다. 이 매드 몬스터의 탄생 배경과 인물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매드 몬스터의 소속사인 ‘매드 엔터테인먼트’의 존재, 2017년 한국 최초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한정판으로 발매한 앨범과 함께 데뷔했다는 사실(여담으로 현재는 매진 상태라고 한다. 앨범의 실물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들과 같이 왜곡된 외모를 지닌 매니저와 프로듀서까지. 매드 몬스터는 유튜브 영상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TV 프로그램에서도 왜곡된 외형과 함께 등장하여 그들의 알량해 보이는 부캐에게 나름의 신빙성을 부여했다.


 연예인들의 부캐는 높은 상업성을 가지며, 그들은 매체 속 세계관을 현실에까지 확장해 활동 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있다. 데뷔 연차가 오래 쌓인 다수의 연예인은 각종 TV 프로그램과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그의 부캐를 통해 침체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신선함을 획득한다. 부캐를 통해 얻은 신선함은 연예인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속도를 늦추고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도구로 작용하게 된다.


 매드 몬스터의 제이호, 즉 이창호 개인의 사례를 통해서도 매체 속 부캐의 그러한 상업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제이호와 더불어 유튜브 채널 <피식 대학>의 세부 코너 ‘비대면 데이트’ 속 이호창 본부장, 또 다른 세부코너 ‘한사랑 산악회’의 이택조 부회장으로서의 세 가지 부캐를 갖는다. 그의 이 부캐들은 상업광고에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는 ‘이호창 본부장’으로서 매일유업의 커피 브랜드 ‘바리스타 룰스’를 광고한 바 있다. 오만한 재벌 3세라는 설정을 지닌 이호창 본부장이 직원들에게 이른바 ‘아재 개그’를 선사하고 매일유업 직원들이 그와의 협업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재치있게 풀어낸 해당 광고 영상은 (7월 기준) 135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더불어 신세대 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모습을 담아낸 ‘한사랑 산악회’는 샌드박스[3] 라이브 커머스에서 바람막이와 목베개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가 준비한 부캐의 서사는 광고주에게 해당 서사 속에 광고를 넣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4] 그는 코미디언 이창호가 아닌 ‘제이호’, ‘이창호 본부장’ 등으로 활동하며 기업들이 그 서사를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뒷광고’에 분노하며 소비자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현 대중은 노골적인 ‘앞광고’에 대한 호응이 크다. 부캐는 이러한 앞광고를 위해, 광고를 교묘히 숨긴 뒷광고와 달리 광고자를 숨겨 웃음을 선사하고 광고에 대한 대중의 이질감을 해소한다. 부캐의 상업성이 더욱 치밀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제까지 매체 속 부캐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한편 나는 그것의 불완전성으로부터 매력을 느낀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놀면 뭐하니> 내 8인조 남성 보컬 그룹 ‘MSG워너비’ 편이 있다. 해당 회차에서는 가수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무대에 서며 카메라를 찾지 못하거나, 리허설에서 음 이탈을 내는 등 다소 긴장한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는 이 실수와 모자람을 도전의 일환으로 흔쾌히 받아들인다. 부캐의 ‘부(副)’ 특성은 완벽하지 않은 도전을 허용한다. 타인보다 더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경쟁 사회의 모습과 달리, 연예인의 ‘부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행착오를 그대로 드러내며 큰 사랑을 받는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나는 도전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고 완벽함에 대한 높은 허들로부터의 해방감을 느꼈다.


 서론에서 나는 ‘좋아함’의 필드를 공유하는 타인과 비교해 상대적인 ‘완벽함’을 논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매체 속 부캐의 존재는 이에 대해 나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남긴 것만 같다. 내가 갈망하는 분야에서 기준조차 모호한 ‘완벽함’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는 ‘부캐’의 존재를 생각해본다.


           

- It’s the freakiest show/ Life On Mars?, David Bowie     

 연예인들이 부캐를 통해 자신에게 새로운 서사를 다채롭게 주입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이 꼭 도화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흔적도 담기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 그리던 그림을 더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게 될 때 새로이 꺼내보는 새 도화지와 같은 존재. 새로운 도화지, 부캐가 그것의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신선함과 새로운 기회는 연예인의 상업성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상업적인 부캐가 두드러지기 이전에도, 부캐는 오랜 시간 존재해왔다.


 그중에도 어떤 부캐들은 자신의 캔버스를 무지개로 채워내기도 한다. 바로 ‘드랙(drag)’[5]이다. 1930년대 이후의 드랙은 사회가 기대하는 특정 ‘성별’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을 꾸미는 행위가 주를 이루었다. 드랙은 단순히 ‘남성처럼 치장하는 것’, ‘여성처럼 치장하는 것’을 넘어 드랙의 주체가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여러 기능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드랙은 대중에게 화장의 목적이 아름다움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흰 피부에 발그레한 뺨, 붉은 입술 등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의 통념과 달리, 드랙 퍼포머들은 얼굴 전체를 도화지 삼아 색색의 그림을 그려낸다. 혹은 긴 속눈썹과 수염 등 사회집단에서 특정 성별의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를 과장하고 혼용하여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드랙의 외관은 사회가 칭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지만, 드랙 퍼포머들은 남들 못지않게 그들의 ‘화장’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그들의 화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화장의 주체가 갖는 사회 내에서 갖는 고정된 성 역할을 의심케 한다. 타인에게 나의 치부와 추함을 가리기 위한 화장이 아니라, 그것들을 타인이 읽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화장인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는 자칫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외관을 통해 사회의 정상성에서 이탈한 그들의 정체성을 유쾌하고 진솔하게 드러낸다.


 한편 드랙 퀸[6] ‘허리케인 김치’는 드랙이 “또 다른 능력과 자신감을 주는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드랙 퀸이 아닌 일상의 자신은 내향적이지만, 드랙을 하고 ‘허리케인 김치’로 거듭나면 일상에서 드러내지 못한 예술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고 더 외향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언급했다.[7] 실제로 그는 2019년부터 드랙 퀸으로서 직접 작곡한 곡을 발매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해오고 있다. 이처럼 드랙은 개인이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과 남성성에 의해 억압된 젠더의 ‘그림자’[8]를 표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개인의 성격적 특성마저도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게 한다.


 드랙과 더불어, 자신의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위해 여러 개의 캔버스를 가져온 부캐도 존재했다. 이는 1900년대 후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위는 흔히 ‘글램록의 아버지’로 언급되기도 한다. ‘글램록’은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흥행한 록 음악의 하위 장르이다. 중성적이고 양성적인 차림새와 퇴폐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보위는 다수의 앨범을 발매하며 곡에 맞는 다양한 ‘부캐’를 형성했다. 그가 오랜 활동을 통해 선보인 부캐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그는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를 발매하며 ‘지기 스타더스트 ziggy stardust’라는 부캐로 활동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화성에서 내려온 안드로진[9] 바이섹슈얼 록스타다. 지구 밖 세계를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전에 SF영화 <2001: Space Odyssey>(1968)로부터 큰 감명을 받아 ‘Space Oddity’(1969)라는 곡을 발매했고, 뒤이어 화성에서 온 록스타의 존재를 담은 ‘Life on Mars’(1971)라는 곡을 노래했다. 그는 오랜 시간 이어온 지구 밖 우주에 대한 상상을 서사를 담은 ‘새로운 자아’를 통해 표출했다. 발매한 앨범의 제목은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흥망성쇠’로 직역된다. 여기서 ‘화성에서 온 거미들’은 지기 스타더스트와 함께 지구 구원을 위해 내려온 밴드 그룹을 의미한다.


 보위는 ‘지기 스타더스트’ 이후 그의 두 번째 자아 ‘핼러윈 잭 Halloween Jack’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핼러윈 잭’은 당시 조지 오웰의 <1984>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매료된 보위가 이러한 테마를 그의 음악에 녹여내고자 한 시도였다. 그와 함께 나온 앨범은 <Diamond Dogs>(1974)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원하러 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노래한 지기 스타더스트와 달리, 완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루는 존재였다.


 이후 보위는 미국의 R&B 장르에 도전한 ‘소울 맨 The Soul Man’과 광대로 몰락한 귀족 ‘씬 화이트 듀크 The Thin White Duke’라는 부캐를 창조하며 그의 음악 장르를 크게 확장해 나갔다. 보위는 자신이 도전하고자 한 장르와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따라 다채롭게 네 가지 부캐를 구사해냈다. 자신의 음악적 색채에 매번 달라지는 관심사와 가치관을 담아내는 것은 보위 한 사람의 특색만으로는 다소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부캐들은 얼핏 보면 교집합이 없는 독립적인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보위 그 자체라는 핵심적인 교집합을 지니고 있다. 우주 세계와 디스토피아 등에 대한 그의 관심과 다채로운 음악 장르에 대한 도전은 여러 ‘부캐’를 통해 현현되었다.


왼쪽에서부터 <Ziggy Stardust>,<Halloween Jack>
왼쪽에서부터 <The Soul Man>, <The Thin White Duke>


 그는 ‘핼러윈 잭’과 ‘소울맨’으로 활동할 시기 마약 중독, 퀴어 부캐로 활동하며 겪은 젠더 디스포리아[10], 대중과 언론의 그를 둘러싼 루머로 인한 편집증 등 수많은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는 1987년 한 인터뷰에서, 다양한 부캐를 탄생시키며 깊은 혼란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다채롭게 사용했던 이유를 넌지시 드러냈다. 당시 그는 “나를 위해 곡을 쓰는 것은 진실처럼 와닿지 않았다. 나는 함께 일하는 창작자들이 원하는 분위기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창조한 아티스트를 위해 곡을 쓰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라고 언급했다.[11] 보위는 그의 ‘부캐’를 상정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일부 단면을 극대화함으로써 그의 정체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앞서 말한 ‘부캐’라는 도화지에 색을 더하고 자신이 완성한 이 나름의 그림을 관람하기까지 한 셈이다. 이처럼 부캐를 통해서는 사용자의 일부 특성을 자유롭게 확대하고 축소하며 들여다볼 수 있다. 보위가 ‘우주 과학에 매료된’, 때로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빠진’ 그 자신을 위해 곡을 만들었던 것과 같이. 부캐는 그에게 자신의 ‘본캐’[12]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해왔다.          



- ‘부캐’의 결을 짚어가며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이 내세운 ‘지기 스타더스트’에게 오히려 자신이 집어삼켜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설정상 지구를 구하기 위해 5년 동안은 머물러있어야 했던 ‘지기 스타더스트’는 그것이 ‘본캐’ 보위를 잠식하게 된 탓에 데뷔한 지 불과 1년 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보위의 부캐와 본캐의 위치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할 만큼 흔들렸던 것이다. 2021년이 바야흐로 부캐의 전성시대라 불리고, 본래의 ‘나’를 숨기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모든 것이 부캐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본래의 자아와 완벽히 배타적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는 ‘부캐’와 그 소유자의 ‘정체성’ 간의 경계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부캐’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그 연관 검색어에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이 함께 뜬다. 부캐를 주제로 한 많은 기사가 그것과 ‘멀티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함께 다룬다. 멀티 페르소나는 다중 정체성으로 직역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융이 언급한 페르소나 개념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가 연극에서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하는 말이다. 개인은 자신이 갖는 여러 사회적 역할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행위를 알맞게 꺼내어 쓴다. 융은 이렇게 개인이 하나의 사회적 관계에서 이에 순응하기 위해 갖는 일련의 행위와 태도를 페르소나라고 지칭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부캐는 페르소나의 가면과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다만 가면을 쓰는 목적이 사회에의 순응을 위한 것이냐, 그 순응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목적을 명확히 분리해 구별하기보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가면적 특성을 페르소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부캐’의 특성을 다루기 위해 이를 분리해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멀티 페르소나를 다중 정체성이라고 번역한 것이 온전한 번역일까? 정체성은 개인을 구성하는 본질적이고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이를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삶에 있어 중요한 숙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에 순응하기 위해 쓰는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와 달리, 정체성은 가면 너머의 표정과 같다. 융은 페르소나를 통해 가리고자 한 자아의 일부를 ‘그림자’라고 칭한다.


 그가 칭하는 그림자는 무의식의 인격이자 자아의 어두운 면을 의미한다. 사회 내 윤리와 규범에 벗어나는 개인의 모습은 페르소나 뒤 그림자로 자리 잡게 된다. 정체성은 사회 속에서 개인이 의식하여 받아들이는 자아의 속성과, 그렇지 못한 자아(그림자)의 부분을 모두 포함한다. 사회에 순응하기 위해 착용한 가면 자체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더해 그 가면 뒤편의 그림자까지의 이해는 다른 차원의 논의이다. 페르소나를 단순히 정체성으로 번역하기에는 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융은 그림자의 존재를 언급하며 이를 의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개인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알아가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앞서 부캐와 페르소나의 목적에 대해 논했듯이, 부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자를 위한 페르소나에 가깝다. 나는 이것이 ‘부캐’가 우리에게 신선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페르소나가 갖는 가면의 속성은 유지하되 그 용도를 사회에 대한 순응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에 대한 그림자의 표출을 위한 것으로 둔 것이다. 이는 이전까지 사회의 규정된 틀에 녹아들기 위한 것이었던 페르소나와는 분명 다른 성격의 것이다.


 부캐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변화가 있되 ‘나’[13]를 남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캐는 사용자의 고유한 속성, 즉 정체성을 남긴다. 세부적으로 나눠본다면 부캐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첫째, 변화가 있는 것. 둘째, 그럼에도 ‘나’의 속성을 남기는 것. 나는 이러한 ‘부캐’의 속성이 ‘변장’과 ‘연기演技’의 그것과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대부분 ‘부캐’의 존재는 변장, 혹은 연기와 같은 외관과 내면의 변화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외적인 변화가 있지만 ‘나’의 내적 속성은 그대로인 변장, 외적, 내적으로 모두 변화가 있지만 ‘나’의 속성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연기’. 변장은 외관에만 물리적인 변화를 주고, 연기는 그와 더불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자아를 연출한다.


 변장, 혹은 연기로 극찬받는 대상은 ‘나’를 얼마나 잘 숨겼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타인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수록, ‘나’에게서 자신이 아닌 타인의 자아가 뚜렷하게 드러날수록 그것은 훌륭한 변장과 연기로 꼽힌다. 그러나 부캐는 이들의 숨김과 더불어 ‘드러냄’의 특징을 갖는다. 잘 숨김으로써 잘 드러내는 것. 그것이 부캐의 미덕으로 작용한다. 부캐는 ‘본캐’가 지내오던 삶의 영역을 깊게 침범할 수 없기에, 기존의 페르소나를 숨긴 채 자신의 억압된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이 그러한 부캐의 의의로 작용한다.


 이러한 부캐의 사용은 억압되고 경직된 사회적 ‘나’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해방’이란 단어를 곱씹으면 형언하기 힘든 거대하고 묵직한 자유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개인의 부캐도 시간이 갈수록 굳건해지는 사회적 페르소나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고군분투의 일부이기에.



- 서로의 도화지     

 그림자는 빛의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무수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는 물리적인 그림자뿐만 아니라 개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융의 그림자 개념 또한 그러하다고 여긴다. 개인의 내밀한 마음 한편에 존재하는 욕망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라는 가면 아래 억압된 욕망, 즉 그림자는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새어 나온다. 예를 들어 모종의 이유로 물리적, 심리적 결핍을 겪는 이가 그것을 채우고자 도벽 증세를 보이는 것과 같이. 이처럼 건강하지 못한 욕망의 표출은 범법의 여부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화무쌍한 욕망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융의 생각에 나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캐는 이러한 그림자를 인식하고 이를 표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MBTI를 비롯한 각종 성격 유형 검사가 유행하는 등 자신의 고유한 속성과 특질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과 맞물려 생각하면 왜 그토록 부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지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자아를 탐독하려는 시도는 오랜 시간 계속될 것이다. 획일화된 대량생산을 지향하던 초기 자본주의와 개인보다 국가의 번영이 우선이라고 여기는 전체주의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통과했으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인식하고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부캐를 통해 더욱 건강해지고 다채로워지길 희망한다.


 앞서 언급한 연예인의 상업적 부캐와 예술과 음악 장르에서 발현되는 ‘부캐’의 사례들, 사회가 부여하는 정상성에 저항하고자 하는 부캐 ‘드랙’, 개인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위한 소셜미디어 가명 계정,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이용해 개인의 아바타를 창조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등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나고 활용되는 ‘부캐’는 이 모든 범위를 담기에는 참으로 엉성한 말이다. 이후에 이러한 부캐 개념에 ‘멀티 페르소나’와 같은 멋진 학문적 이름이 새로이 붙여질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캐’라는 말의 엉성함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되려 그 말이 엉성하고 느슨하기 때문에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이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본문에서 이러한 부캐가 도화지와 같이 느껴진다고 언급한 나는 모두가 이 엉성한 도화지 위에 색색의 물감을 헝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서로의 도화지를 자유롭게 관찰하고 마음껏 예찬하는 일에 어떤 재단裁斷이나 계산이 개입하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끓고 식기를 반복하는 냄비 같은 성격을 가지면서도, 내 안에는 꽤나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존재한 욕심이 하나 있었다. 여전히 밝히기에는 다소 부끄럽지만, 글과 책에 대한 욕심이다. 새삼스럽지 않게 언제나, 모든 분야에서 그러했듯이 나보다 더 ‘능숙하게’ 글과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필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능숙함으로 좋아함의 척도를 판별하려는 시도를 잠시 그만두기로 했다. 그 대신 나에게도 글을 갈망하는 어떤 ‘부캐’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상정하고, 그 부캐가 활동할 필드는 사회의 완벽함에 대한 요구에서 벗어난 구역임을 떠올린다. 이번 공일오비에서 그 무명의 부캐에게 이름이 생겼다. 나는 그 새로운 이름과 함께 15호에 엉성한 첫발을 내디뎌본다. 자그마한 ‘부캐’로의 도전을 끝까지 지켜봐 준 당신께 감사하며.



편집위원 서로 (lilywithwd2016@gmail.com)


[1] ‘부캐릭터(副character)’의 준말.

[2] 다음 챕터에서 구체적으로 후술할 예정.

[3] 유튜브 채널 <빵송국>의 소속사.

[4] 2021, 한겨레, <내 루돌프>의 매드 몬스터, ‘김갑생 할머니 김’의 이호창 본부장, ‘한사랑 산악회’의 이택조 부회장의 세계

[5] 개인이 사회 속에서 갖는 성별이나 지위로서 기대받는 외관과는 반대로 자신을 꾸미는 행위.

[6]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강조한 겉모습으로 치장한 드랙 아티스트.

[7] 2018, 대학신문, 드랙: 내가 나일 수 있도록

[8] 심리학자 융이 언급한 무의식의 인격이자 자아의 억압된 욕망.

[9] 한 인격체 내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합된 성별적 표현, 또는 그러한 사람.

[10] 자신의 신체적인 성별과 성역할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 개인의 신체적인 성별과 젠더가 일치하지 않아 느끼는 경우가 많다.

[11] David Bowie on Stardust / Blank on Blank

[12] ‘본(本) 캐릭터’의 준말.

[13] 여기서 언급한 ‘나’란 ‘부캐’의 사용자를 의미한다. 후술할 내용에서도 ‘부캐’의 사용 주체를 편의상 ‘나’로 언급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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