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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6호 10화

#0 종말은 종말을 말하지 않는다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편집위원 곤지, 퓨

by 연희관 공일오비

모두가 종말을 말하는 시대입니다. 멸망을 그려내는 재현물들은 끊임없이 쏟아져나오고, 번번이 주목을 받죠.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뉴스나 영화 속에는 각양각색의 종말 시나리오가 등장합니다. 기후위기나 인구 문제처럼 현실에서 당면한 위기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외계인 침공,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 소행성 충돌 등 다소 픽션적인 소재들도 창작물에서는 인기입니다.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쯤 되면 모두가 사실 종말을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걱정이군요. 세상이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데 전 인류가 몰두해 있는 동안 세상이 정말로 아무도 모르게 망해버릴까 봐요. 세상이 종말에 열광하는 지금 이 장면이야말로 진짜 종말의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종말을 비틀어보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열광하는 세계의 대단원에 딴지를 걸어보자고 모의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간편하게 종말을 그려왔습니다. 손가락 한번 튕기면 사라져 버리는 세계와 생명들,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리는 관계의 역사, 영원한 마지막과 돌이킬 수 없음으로 범벅된 서사들. 거대한 파괴력만이 기형적으로 부각된 지금의 종말 앞에서 우리는 조금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만지면 비틀리고, 넘치거나 쪼그라들고, 존재들과 뒤엉키는 종말의 이야기들. 우리는 이토록 다채로운 종말의 창발성을 목격했습니다.


종말의 다른 모양을 묻는 질문에 이 기획에 참여한 각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군가는 파괴되어 버린 관계의 세계에 ‘종말’ 대신 ‘안녕’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게으르게 국가의 존망을 운운하는 그들의 손에서 종말을 뺏어오기도 하지요. 또 누군가는 종말의 낭만적인 재현을 벗겨내고 그것이 가진 실재적인 고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종말이 유인하는 맹목적인 다음 순간을 거부합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말하는 일상 회복 속 종말의 징후를 포착해 내고 또 누군가는 잔인한 이 세계의 종말을 내심 기다리기도 합니다.


종말의 사전적 정의는 ‘계속된 일이나 현상의 맨 끝’이라지만, 종말은 종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실은 누구나 알고 있죠. 우리가 어떤 세계의 끝을 선언하고 종말의 전후를 그려온 것은 단순히 파괴나 끝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간절히 그 세계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요. 그래서 종말을 비틀거나 뒤집은 자리에는 더 이상 종말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대신 이런 문장이 나오죠. “종말은 ( )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만나온 뻔한 종말에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을 선고합니다.



기획

편집위원 곤지(yonzgonz@gmail.com)

편집위원 퓨(rachopin3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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