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17호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19. 2022

#1 투명 망토

[넘실대다] 기고자 띵동

길에서 두 시간을 보내는 이유


“부근에 현재 62명 대기하고 계십니다.”


62명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집에서 약속 장소로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게다가 곧 있으면 퇴근 인파에 겹쳐 도로 상황이 온통 정체일 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약속 시간에 늦는 수밖에 없으니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억누르며 나는 친구에게 서둘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택시 대기 시간이 길어서 아무래도 너 먼저 입장해야 할 것 같아. 도착하면 전화할게.’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친구는 금방 알았다고 답했다. 택시는 한 시간 뒤에 배차가 되었고, 거기에 30분이 꼬박 더 지나고 나서야 집 앞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약속 시간보다 몇십 분이나 늦었다. 오늘도, 늦어버렸다.


휠체어를 탄 나는 평소에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장애인콜택시는 차량 수가 수요보다 많지 않아 오래 대기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다. 애플리케이션을 쓰면 일반 택시는 5분 이내에 바로 탈 수 있을 만큼 이용이 편리하다. 하지만 내가 장애인콜택시에 탈 때는 사정이 다르다. 택시를 호출하면 20분이 걸리기도 하고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복불복 택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콜택시 때문에 ‘하염없이’라는 단어의 뜻을 몸소 실감한 날들도 있었다. 그중 하루는 저녁에 공연을 관람한 날이었다. 막이 내리고 9시쯤에 공연장을 나왔다. 콜택시 대기에 이골이 났던 나는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미리 장애인콜택시를 호출했다. 야간에는 운행되는 차량 수가 비교적 적어 대기 시간이 더 길다는 점을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일찍 귀가하려던 나의 노력은 허무하게도 별 의미가 없었다. 10분, 20분, 30분……. 1시간이 훌쩍 넘게 기다렸지만, 차량이 도착하기는커녕 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늦은 밤이라 실내에 머무를 공간이 없었다. 근처 카페는 문을 닫은 상태였고, 다른 가게들 역시 하나둘씩 불이 꺼지고 있었다. 서늘한 밤공기를 피할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우두커니 있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밖에서 2시간 반을 허비하고 나서야 택시가 도착했다. 귀가하고 나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덧 자정을 넘겨 다음 날이었다. 40분 거리의 집으로 가기 위해 3시간에 달하는 상연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기운 빠지게 했던 점은 따로 있었다. 이렇게 길에서 허송세월해도 더는 짜증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택시를 오래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거나 공연 혹은 영화의 앞부분을 보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즉, 이런 일이 익숙하기 그지없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달관하고 있었다. 게다가 장애인콜택시는 어디까지나 나에게 최선의 선택지다. 장애인콜택시의 대기 시간이 아무리 길고 비효율적이라도 달리 선택할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중교통에 거부당했다고, 나는 줄곧 그렇게 여겨왔다.


첫 번째로 거부됐던 때는 자그마치 10년 전이었다. 사촌들과 놀고 싶었던 동생과 나는 어느 날 부모님 몰래 친척 집으로 놀러 가기를 계획했다. 친척 집은 버스를 타고 환승 없이 20분 정도만 가면 될 만큼 우리 집과 매우 가까웠다. 버스 정류장이 친척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어서 길을 잃어버릴 리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동생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 동생은 혼자 버스를 타고 친척 집에 가보았던 경험이 있었고, 어릴 때부터 내 휠체어를 밀어준 덕분에 훌륭한 휠체어 운행자였다. 그렇게 초등학생 둘은 호기롭게 길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 자매의 여정은 버스를 타기도 전에 막혔다. 저상버스가 세 번이나 정차했지만, 정작 차 문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높은 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계단 한 단보다도 가팔라서 휠체어가 이 턱을 내려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칫 잘못하면 휠체어가 넘어져 우리 둘 다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버스 정류장 뒤에는 휴대전화 가게가 있었는데, 가게의 직원분이 턱 앞에서 쩔쩔매던 우리를 지켜보다가 턱을 넘도록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도 버스는 탈 수가 없었다. 저상버스에서 경사로를 내려주지 않아서였다. 어른인 엄마가 동행했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터였다. 휠체어가 넘을 수 없는 턱과 우리를 외면하는 버스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첫 번째 거부였다.


지하철은 내게 비교적 친숙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과천에는 지하철역이 다섯 개나 있어서 종종 지하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유년의 추억 때문인지 몰라도 지하철은 어색하거나 거북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플랫폼과 열차 사이에 바퀴가 빠질 위험이 있고 나를 향한 다른 승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2년 전 고속터미널역에서의 두 번째 거부는 지하철에 대한 좋은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갈 때였다. 역 플랫폼 안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사람에 치일 정도였다. 인파를 뚫고 이동하는 것은 타인과 나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기에 나는 승객이 하차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승차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승차하려는 사람들에 휩쓸린 나머지 그만 남들보다 조금 늦게 차에 타게 되었다. 일은 찰나에 벌어졌다. 승차하던 도중에 문이 닫혀서 내가 문 사이에 끼여버린 것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달려와 억지로 문을 열려고 했는데도 휠체어는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엄습하는 공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몇 초가 더 흐르고 난 뒤였을까. 다행히 지하철 문이 열린 덕분에 완전히 승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 사이에 갇혀있던 10초 동안 저승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아니, 귀가할 때까지 내내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안이 벙벙했고 식은땀이 났다. 그렇게 문 사이에 있는 상태로 지하철이 출발했으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 다친 곳 없이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철 이용을 꺼리게 됐다. 버스도 지하철도 안 되니 결국 돌고 돌아 장애인콜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감춰졌다고 해서 부재한 것은 아니다.


연초부터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근래에 와서야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예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사실 여태껏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목소리가 묵살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도 메가폰을 잡은 주류 언론은 현재 장애인 이동권 실태보다 시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정치인의 발언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교묘하게 사회의 민폐로 치부하며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담론 자체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행태에 장애인이 마주하는 것은 결국 혐오다. ‘이것저것 불편하면, 그렇게 생겼으면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지.’와 같은 혐오. 폭력적인 시선 속에서 장애인은 자신이 사회에서 주변화되었음을 다시 한번 아프게 깨닫는다.


한편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알고 보면 세상은, 마치 투명 망토 같은 것으로 한 겹 덮여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망토 안에서, 누군가는 망토 바깥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망토 밖에서 망토 안의 세상은 투명 효과로 보이지 않아서 망토 안 사람들의 삶은 가려진. 이는 어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투명 망토는 인식의 부재를 의미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투명 망토에 감추어진 것처럼 우리의 삶이 비장애인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바로 장애인의 발화가 이루어지는 기회 자체가 매우 적은 데서 비롯된다. 먼저 우리의 목소리가 나오고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누군가에게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인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장벽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인식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행정부의 조치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려면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높이고 장애인콜택시 같은 지원 차량을 확대하는 등 방안을 강구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와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행정부의 입장은 어떠한가.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장애인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매도한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이 정도면 대중교통이 장애인에게도 괜찮은 수준’이라며 우리의 목소리를 어물쩍 뭉개려고 든다. 앞서 언급했듯 모 정치인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논점을 흐리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라는 사안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를 봉쇄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대략 우리에게 ‘당신들이 불편한 건 알겠는데 언젠가는 나아질 테니까 가만히 있으라’라는 요지로 말한다.


우리는 이동권 문제로 ‘불편’한가? ‘불편’한 것은 그들의 태도이지, 우리의 이동권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다름 아닌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노동하려고, 누군가는 교육을 받으려고 밖으로 길을 나선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역시 직장에 가고 학교에 가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동에 제약이 생김으로써 장애인의 삶은 파괴된다. 당장 장애인콜택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장애인콜택시 외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콜택시를 기다리느라 매일 직장에 늦게 출근한다면 과연 그곳에서 제대로 노동할 수 있을까. 어떤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노동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노동을 학업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매일 이동 문제로 학업 활동 참여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곧 우리가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낙상하거나 휠체어가 전복되는 일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예시가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수많은 장애인이 일상에서 이러한 장벽을 마주한다. 우리에게 이동권 문제는 생존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발견되지 않은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흐름은 정말 쉽게 볼 수 있다. 장애인의 삶도, 이들이 교통이라는 문제에서 배제됨으로써 이루어진 이동권의 침해도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나는 발화한다. 나의 경험을 여과 없이 꺼내놓으며 이동 중에 어떤 장벽을 맞닥뜨렸는지 더 크게 말하고자 한다. 고로 이 글은 내가 내는 목소리의 첫 번째 조각이 될 것이다. 내 경험담을 읽고 한 번이라도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유의미한 성과가 되리라 믿는다.



기고자 띵동 (glowingpinky0@gmail.com)

이전 03화 #0 어떤 움직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