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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7호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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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19. 2022

#0 어떤 움직임

[넘실대다] 기획 퓨

모든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움직임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어디로도 가지 않고 무엇도 하지 않는 이는 항상 같은 삶을 살 테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이에겐 늘 새로운 경험과 흐름의 기회가 찾아올 수밖에 없죠. 그러나 한편으로 움직임이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너무나도 쉽게 삶의 배후로, 관심의 바깥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동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이동을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배경처럼 우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여러 탈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버스, 지하철, 기차, 자전거, 비행기, 택시, 자동차, 휠체어, 전동킥보드… 혼자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삶과 세계의 어느 구석으로 각자를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인프라 자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목하는 순간, 모두가 이동하지만 누구나 쉽게 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추위에도 폭염에도 세찬 비에도 계속해서 투쟁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퇴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는 그러한 이동이 모두에게 당연히 보장되고 있는 권리가 아님을 폭로한 가까운 사례일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늘 매끄럽고 당연한 것만 같았던 이동의 이야기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덜컹임을 마주했습니다. 표면상의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현상 뒤에는 박탈당한 권리, 제도의 허점, 기술적 공백, 지역 간 격차, 세대의 소외, 경제적 불평등, 기후 위기 등 우리가 직면한 거의 모든 종류의 의제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늘 열려 있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전’과 ‘투쟁’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때로는 과도한 이동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고 때로는 자유로운 이동의 가로막힘으로 인해 기회가 사라지는 모순적 상황에 입이 깔깔해지기도 합니다.


움직임에 관해 말하는 것은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이고,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모였을 때 드러나는 새로운 움직임의 필요성이 우리를 또 다른 곳으로 데려다놓으리라 믿는 마음으로, 어떤 움직임의 궤적들을 하나의 기획으로 묶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이동이 뻗어나가는 곳곳의 이야기들을 함께 들여다보며 여러분의 움직임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도 고개를 뻗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기획 퓨 (rachopin3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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