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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7호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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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19. 2022

015B 17호 여는 글 및 목차

편집장 곤지, 퓨

지난 2년간, 서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세계는 이제 너무 멀어져버린 간극을 허망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봉쇄와 거리두기가 추동한 강력한 척력은 우리의 의지를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깨어진 유빙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듯,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들이 순식간에 멀어집니다. 각자의 극점으로 유유히, 절대 멈추지 않고 이동합니다. 그 이동은 조용하고 성실하게 세계를 두 동강 내고 있었습니다. 지구적으로는 신냉전의 양상을 띠는 거대한 블록화, 국내적으로는 협치의 가능성을 공격하는 정치적 극단화, 사회적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는 공동체 의식의 부재. 올봄, 이 파괴적인 양극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쟁과 정쟁의 방식으로, 각자의 알량한 피해를 떠들고 단죄의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기계적 공평함에 열광하고 폭력적인 자기방어를 숭배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이때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서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지금의 간극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경계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끝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지금도 고민은 계속됩니다. 다만, 우리는 종종 바다를 떠올렸습니다. 경계와 구획이 무용해지는 공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자아내는 공간, 만남의 가능성을 품은 공간, 쉽게 파괴되거나 균열되지 않는 공간, 우리는 바다의 넉넉함에서 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읽어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목격한 혼란과 분노, 투쟁과 연대, 포용과 애정의 복잡한 실마리들이 바다에서 만나 모습을 바꾸며 서로의 존재를 흡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17호의 글들은 넘실대며 흘러가기도 하고, 요란하게 굽이치며 나아가기도 하고, 빛과 만나 부서지기도 하며 하나의 바다를 이룹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 ‘넘실대다’에서 우리는 끝없이 넘실대는 물결에 잠시 몸을 맡겨 봅니다. 고유한 방향과 속도를 지닌 수많은 물결은 어느덧 흐름이 되고 방향이 되어 존재들을 어디론가 이동시킵니다. 퓨는 도시와 세계가 내뿜고 때로 가로막히는 저마다의 흐름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그 흐름에 묵묵히 흔들리던 퓨는 마침내 자신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발견하고야 말죠. 외따로 진행되는 듯 보이던 복수의 흐름이 사실 비밀스럽게 서로에게 흐르고 있음을 자각한 순간, 독자들 역시 공간과 세계를 향해 발산하는 각자의 흐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필진이 참여한 공동기획 역시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이동’과 ‘탈것’의 의미를 곱씹으며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물결들의 존재를 되짚어 봅니다.


바다는 그런 수많은 흐름들이 얽히고 부딪히면서 때로 격랑이 이는 시끄러운 곳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 ‘굽이치다’는 여러 목소리가 요란하게 부딪히며 나아가는 장면을 포착한 글들로 묶였습니다. 먼저 곤지는 폭력과 억압을 수반하는 무의미한 승리 앞에서, 지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투쟁’의 동력을 탐색합니다. 곤지가 말하는 완결 없는 투쟁은 다른 무언가의 흐름을 끊어냄으로써 끝내 어딘가에 정착하는 멈춤이 아니라, 물결들이 이어지는 과정과 이동 그 자체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심술은 배제와 구획을 기본으로 하는 말이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말 바깥의 세계, 법의 인위적 테두리 바깥으로 비죽비죽 모습을 드러낸 정의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한편 모자는 학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을 되짚으며 당연한 권리의 보장을 요구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지닐 수밖에 없는 확장성과 정치성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느루는 온라인상에서 형성되는 개별적 논의들로부터 정형화된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낱낱이 분석해 각각의 레토릭이 가진 위험과 모순을 차근차근 논파합니다.


마지막 카테고리 ‘부서지다’에서는 잠잠해진 물에 빛이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는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글들이 보입니다. 오월은 어느 등대지기의 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바다의 배타성과 포용성을 기록하고, 바다를 인간의 시선에 덧대어보면서 때로 겹치고 만나는 세계 앞에서 기꺼이 곁을 내주는 공감의 가치를 담아냅니다. 온은 할머니와의 기억을 돌이키며 자신만의 기이함과 역동성을 지닌 치매인의 삶을 다룹니다. 과거의 기억보다 흘러가는 현재의 감각을 더 가까이하는 이와 함께한 온의 경험은 서로를 돌보고 지탱하며 이루어지는 관계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상상케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는 소중한 이의 조울과 조우한 경험을 풀어냄으로써 아픔과 건강의 경계선을 고민하고, 애정과 사랑을 부표 삼아 우리의 안녕을 찾아가는 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17호의 마지막을 닫는 서로의 글은 ‘돌아가기(回歸) 대신 나아가기’라는 소제목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일시적인 것 배후의 영원한 본질을 상정한 다음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매 순간 새로이 들이닥치는 물결을 들여다보고 변화하며 움직이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아픔 없이 건강하기만 했던 과거, 감염병의 영향 없이 자유롭기만 했던 과거, 예외 없이 규칙적인 계절만을 맞이했던 과거, 시끄러운 투쟁 없이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했던 과거 같은 것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이전을 바라보며 정착을 꿈꾸는 대신, 넘실대고 굽이치고 부서지는 바다 한가운데서 새로이 맞닥뜨릴 물결과 우리가 만들어갈 다음을 믿기로 합니다. 공일오비의 작은 흐름이 여러분의 물결과 만나는 순간을 포함해서요.


편집장 곤지(yonzgonz@gmail.com), 편집장 퓨(rachopin329@naver.com)






[연희관 015B 17호 목차]


넘실대다

복수의 흐름

어떤 움직임


굽이치다

당신이 지지 않길 바라요.

말 言의 세계에서 말 밖의 삶을 부를 때

보이지 않던 노동을 마주할 때

언어가 칼날이 될 때


부서지다

어느 등대지기의 기록

우리는 나아가도 좋고 멈추어 있어도 좋다

조울과 조우하기: 아픔을 껴안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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