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8호 05화

정에 대하여

[GO TO GATE] 편집위원 구름

by 연희관 공일오비

애정


제주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를 뵈러 가고는 한다. 할아버지의 유골함은 절에 안치되어 있어서 산속의 절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차를 타고 절로 향하다 보면 점점 높은 건물이나 잘 포장된 도로는 사라지고 나무와 풀, 청명한 하늘만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라 그런지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절에서 한참을 늘어져 있고는 했는데, 그 빨간 풀을 본 날도 그랬다.


그날의 사찰은 꽤 부산스러웠다. 딱히 엄청난 규모의 사람이 모였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유골함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는 많아야 한둘의 스님들만이 다니기만 했었기에 단 몇 명의 사람이 대화하며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제법 신기한 일이었다. 그날 사찰을 찾은 사람들은 주로 동물이나 식물을 다루는 사람들이 입을 법한 조끼를 입고 사파리 모자를 쓴 채로 절 근처의 온갖 거친 곳까지 돌아다녔는데, 아무래도 산속의 이런저런 식물을 찍으러 온 식물학자인 듯했다.


그들은 풀을 스치며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순간 멈춰서고는 무언가 굉장한 것이라도 본 듯 들뜬 목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들이 있던 곳 근처의 벤치에서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는데, 그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살랑거리는 나뭇잎 위로 언뜻 보이는 하늘만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이 바라보는 것에 꽤 흥미가 갔는지 "그건 뭔가요? 희귀한 건가요?" 하면서 물었다.


슬쩍 보니 그들이 그렇게 신기해하다가 사진까지 찍기 시작한 것은 빨갛게 생긴 식물이었다. 갈색의 가지 위로 길쭉하지만 뭉툭한 끝을 가진 붉은 열매가 여럿 달린 식물.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들 중 한 명이 무슨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네, 으름난초라는 거예요."라고 답하고는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인터넷에 '으름난초'를 검색했다.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우리나라의 자생지는 제주도 일원을 비롯해 10곳 미만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국가적색목록 취약 등급 식물로 지정한 희귀 식물. 멸종위기종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니, 멸종위기종을 본 것은 분명 처음이 아니겠지만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안 채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인터넷을 검색하는 사이 사진을 찍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제 절을 떠나려는 듯 주차되어 있던 차를 가지러 갔고, 단 한 사람만이 그 빨간 풀이 있는 자리에 한참을 앉아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양 세세하게 관찰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나도 벤치에 앉은 채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저 멀리서 자동차가 부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바로 앞에 멸종위기종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을까? 그 빨갛고, 길쭉하면서도 뭉툭한 끝을 가진 멸종위기식물이 왜 그저 주변의 흔한 풀 한 포기로 보였을까.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빨리 오라는 부름이 들렸다. 그 말을 듣고도 사진을 찍던 사람은 아이 잠깐만, 잠깐만, 하다가 끝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발걸음을 뗐다. 그 표정에서 엄청난 크기의 애정이 보여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수많은 식물 사이에서 으름난초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한 애정이, 끝까지 빨간 풀에서 걸음을 떼지 못했던 그 식물학자의 애정이,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냉정


애정은 물이 흐르듯 자신으로부터 주변으로 발산하고 동경은 별을 향해 활을 쏘듯 먼 곳을 겨눈다. 그래서 애정은 주변에 있어야만 닿을 수 있고 동경은 멀리 있어야만 겨눌 수 있다. 가장 처음에는 그 둘의 차이점을 몰랐었다.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배우는 것과 실험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갔다. 책 속에서는 이중 슬릿 실험이나 알파 입자 산란 실험과 같은 신기한 실험 기기를 이용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도 정작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은 비커나 스포이트, 그리고 몇몇 시약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첫 연구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설렘이었다. 분야를 선택하고 연구팀을 꾸리기 전에 선생님들로부터 지금까지 진행한 주요 연구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험실 견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싸고 멋진 실험기기나 유독하고 보호장비가 필요한 시약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견학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도 신기했다. 몇천 년 된 화석이 방 하나를 통째로 채웠다. 포크레인처럼 생긴 운동 실험 장치가 천장까지 뻗어 있기도 했고, 온갖 주의 표시가 달린 시약 통이 장 안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기도 했다.


한 선생님은 현관문에나 쓸 법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그 안의 온갖 첨단기기를 보여주면서 장난 반 진담 반 “이거 비싼 거라 나중에 쓰다가 고장 내면 안 된다,”라고 했는데, 슬쩍 기기에 붙은 꼬리표를 보니 몇천만 원씩 하는 가격이었다. 처음 듣는 실험에 사용하는 기기도 많았는데, 이중 슬릿이나 알파 입자 산란 실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건 내가 저 실험 기기를 직접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뭔가 진짜 과학자가 된 느낌이야,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다음에는 어떤 신기한 걸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커졌다. 다른 선생님이 나와 동기들을 인솔했고, 새로 들어간 곳은 실험실보다는 교실과 비슷하게 생긴 공간이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선생님은 말을 시작했다.


“너희는 딱히 거창해 보이는 연구는 하지 않을 거야. 연구 주제도 전부 너희가 직접 너희 주변에서 찾게 될 것이고.”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오직 그 선생님만이 어떠한 기구도, 시약도 소개하지 않았다. 냉정하고 단호한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 설명이 전부였다. 그 첫 마디가 어찌나 멋없고 초라해 보이던지 나는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귀를 닫고 내내 무료함에 펜을 굴리며 반드시 다른 선생님 아래에서 연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그리 어렵지도 않게 이루어졌다. 애초에 그 선생님이 지도하지 않는 다른 분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고 연구에 선행해서 들어야 하는 안전 교육을 이수하면서 그 냉정한 말을 들었던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나와 우리 팀은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연구 주제를 생각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처음에는 온갖 무모하고 멋있어 보이는 주제를 생각했다. 그때쯤 한참 생리대에 유해한 물질이 존재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진짜로 어떤지 연구해보는 건 어떨까? 연구논문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탈락. 압력을 통해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데, 이런 발전 기구를 우리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우리의 힘으로 그런 제작은 불가능하므로 탈락. 담수화 시스템? 가능할 리가. 몇십 장 되는 자료 뭉텅이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대로는 안 된다. 노트북을 접고서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이럴 때는 그냥 뇌를 비우는 게 맞았다. 나는 옆방을 찾았다.


옆방 연구팀과는 같은 층을 쓰는 김에 말을 트고 가끔 서로의 일이 잘 안 풀릴 때 위로의 탈을 쓴 놀림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그날 그들은 어쩐지 무언가를 가운데에 두고 한참 열띤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무엇을 보고 그리 열심히 토론하나 싶어서 조용히 다가갔더니 내 앞에 보이는 건 실험 기구도 아니고, 시약도 아니고, 밀가루 포대였다. 그냥 밀가루 포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밀가루를 가지고 그렇게 열심들이람, 생각하는 사이에도 그들은 그 밀가루 포대를 가운데에 두고서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토론을 이어갔다. “이거 연구에 쓰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그제야 나를 알아챈 듯 “어? 어.” 하면서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빨간 풀과 식물학자를 봤던 날 같았다.


연구 주제가 뭐길래 밀가루를 쓰냐고 물었더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마치 학회에서 멋지지만 이해할 수 없는 논문 발표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고작 밀가루에 느끼다니. 뭔가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해는 포기한 지 오래였지만 이해한 척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다 안다는 듯 웃으면서 나도 다른 팀들이 뭘 하는지 못 알아들어,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뜻 과거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딱히 거창해 보이는 연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구 주제는 전부 주변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하던 말. 나는 ‘멋진’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멋진 연구라는 것은 그저 남들이 보는 시선 아니었을까? 그것도 고작 설명 한 번에 바뀌는 가벼운 시선?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그 선생님이 꺼냈던 말은 자신이 지도할 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구에 해당하는 것임을. 내게는 그저 별것도 아닌 밀가루가 옆방 연구팀에게는 아주 중요한 연구 소재였고, 내게는 그저 빨간 풀이었던 그 식물이 절에서 만났던 식물학자에게는 멸종위기종인 으름난초였던 것처럼 결국 나는 내 주변을 돌아봤어야 했다.


연구는 딱히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팀도 돌고 돌아서 결국 선배들의 연구논문에서 연구 주제를 찾았다. 언젠가 옆방 연구팀 사람에게 우리 주제를 말했더니 최선은 다했지만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구나, 했는데 밀가루 연구에 대해 들었을 때 내 표정이 딱 저랬겠구나 싶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 연구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 게 연구였다.


한편으로는 내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비수 같았고, 한편으로는 멋이라고는 하나 없는 초라한 변명으로 느껴졌던 그 냉정한 말은 지나고 보니 새로운 시도에 겁먹지 않도록 하는 다정한 위로였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가장 빠르게 인도하는 길잡이였다.


그래, 모든 것은 내 곁에 있었다. 단지 내게 필요한 건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눈길 하나였다.



열정


혹자는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이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또 혹자는 이 분야를 감성의 대척점에 있는 이성적인 분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봐온 연구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애정과 사랑이 필요한 분야가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이다. 장담하건대, 애정과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하더라도 그 마음을 지속할 열정만 있다면 결국에는 원하는 곳에 닿을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고전 게임을 가지고 연구한 적이 있었다. 웬만한 컴퓨터에는 설치되어 있지만, 또한 웬만한 사람들은 플레이하지 않는 그 게임에 관심을 주었다.


두 플레이어가 패들을 들고, 공 하나를 서로에게 넘기다가 빈틈에 골을 넣고자 하는 게임. 두 명이 각각 패들 하나를 움직이며 대결할 수도 있고 혼자서 컴퓨터 플레이어와 대전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패들을 움직이는 방법을 컴퓨터 플레이어가 포착하고 대처할 수 있으면 어떨까? 게임에서 점수를 얻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컴퓨터 플레이어가 내 움직임을 전부 예측할 테니까!


나는 그 '컴퓨터 플레이어'에 주목했고, 게임에서 AI 플레이어가 더 좋은 성능을 내도록 팀과 함께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 알고리즘은 기존의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한 AI 플레이어보다 더욱 향상된 결과를 보였다. 실제로 누군가 우리가 만들어낸 AI 플레이어를 상대한다면 그 상대는 점수를 얻기 매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라면, 아예 점수를 얻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작성한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 평가 결과, 논문 자체의 접근 방법과 그 결과에 관한 부분은 모두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논문의 활용도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는 별로 하지도 않는 고전 게임의 AI 플레이어를 개발해서 어디에 쓰겠냐는 의미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면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플레이하는 사람도 이제는 얼마 없고, 설령 그 상대로 이 AI 플레이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상대로 점수를 1점이라도 올릴 수 없는 게임을 누가 재밌다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재밌는 점은, 이 논문이 종합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플레이어를 잘 만들어도 사용처가 없는데 어떻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시선일 뿐이다. AI 플레이어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알고리즘은 고전 게임 단 하나만이 아니라 다른 방면의 AI에도 사용될 수 있다. 평가자들은 AI 플레이어 그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용된 알고리즘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니 섣부르게 계산해 그 애정을 쉬이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윤리에 관한 질문이 아닌 한 애정을 오롯이 간직하는 그 열정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면, 설령 결과가 처참하기 그지없더라도 언젠가 애정의 결과는 빛을 본다는 희망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당장 당신의 근처에 있을 핸드폰만 해도 그렇다.


핸드폰은 작지만 거대한 기술의 집합체이다. 그 안에 들어간 엄지손톱만 한 칩 하나에도 온갖 기술이 집약되어있다. 그 칩은 문자나 전화를 포함해 인터넷, sns까지 온갖 통신에 필요한 송수신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 칩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원거리 통신을 할 때 사용하는 시스템으로는 대표적으로 호모다인 방식과 헤테로다인 방식이 존재한다. 헤테로다인의 등장 이후, 호모다인 방식은 헤테로다인과의 압도적인 성능의 차이로 인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성능이 좋은 시스템을 두고 성능이 나쁜 시스템을 일부러 사용하겠는가? 그렇게 자그마치 근 100년의 시간동안 호모다인 방식은 사라져 갔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더 작은 크기의 통신기기를 만들고자 했던 연구자들은 하나의 작은 칩으로 통신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이때 헤테로다인은 구조적인 문제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누군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호모다인을 사용하면 안 되나?


호모다인은 헤테로다인보다 성능이 나쁘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나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령 호모다인 시스템을 칩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 연구자들은 오랜 토론과 연구 끝에 실제로 호모다인 시스템을 활용해 사용 가능한 칩을 만들었다. 그것이 흔히 아는 2G 시스템에 들어가는 칩이다.


지금은 2G를 넘어서 4G, 5G의 시대이다. 그러나 아직도 호모다인을 사용한 칩은 GPS 수신 용도 등으로 사용된다. 여전히 헤테로다인은 성능을 강점으로, 호모다인은 간단한 구조를 강점으로 서로의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현실을 만들어낸 것은 호모다인을 버리지 않았던 연구자들의 열정이었다.



감정


모두가 반대하는 낮은 확률에 자신을 걸어보는 것을 흔히들 바보 같은 믿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보 같은 믿음은 줄곧 과학에 새로운 변화를,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켜왔다. 무릇 과학자라면 한 번쯤 꿈꿔볼 과학사의 거대한 족적은 모두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작은 무언가로부터 시작했다.


“균에 대해서 연구하면 뭐가 좋나요?”

“균이요, 영어로 fungi잖아요. Fun으로 시작하니까 재밌다는 거죠.”


자 그럼, 지금 ‘자연과학,’ ‘과학기술,’ ‘연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휘황찬란하고 비싼 실험기구일 수도 있고, 다크서클이 저 아래까지 내려온 채로 새벽까지 실험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저 실없는 농담과 웃음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모습을 만들어주었던 감정이, 아무래도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편집위원 구름(cloudy00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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