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8호 04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GO TO GATE] 편집위원 온

by 연희관 공일오비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disappear!


Everything


모든 것이 있는 온라인에서 우리는 늘 마저 넘겨야 할 페이지와 마저 내려야 할 스크롤과 마저 눌러야 할 재생버튼 사이에 있다. 눈 앞에 영화를 틀어놓으면서도 휴대폰으로 아까보던 유튜브 페이지를 마저 스크롤 하고, 통화를 하는 중에도 스피커폰 화면 위로 아까 하던 쇼핑을 마저 이어간다. 다음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도 새로 올라온 신작 드라마의 재생버튼을 누른다. 어쩌면 수많은 할 것들과 볼 것들이 넘쳐나는 온라인에서 우리는 때때로 산만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아간다.

이것도 하나의 삶의 패턴이라면 마저 보고, 마저 넘기고, 마저 누르는 삶이 이 온라인 세계에도 새 롭게 생기게 된 셈이다. 온전히 하나에만 고유한 가치를 둘 수 없어질 만큼 우리가 보던 것 위로 새 로운 글이 올라오고, 새로운 영상이 올라온다. 그 속에서 내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나의 관찰 예능은 이런 패턴을 보일 것이다.

우선, 어젯밤 불을 켜지 않고 방을 돌아다니다 무릎을 크게 찧은 것이 생각나 쉽게 탈부착이 가능 한 ‘미니LED등’을 사기로 결심한다. 유튜브에서 추천템 리뷰를 검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 을 켜니, 그 위에 떠있는 알림들이 보인다. 어느새 유튜브는 뒤로한 채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온 알림을 클릭한다. 세상엔 왜 이렇게 봐야 하고, 보고 싶고, 읽을 거리들이 많을까 생각하며 한참을 보다, 목적을 잃은 손으로 간신히 유튜브를 누른다. 이젠 정말 ‘탈부착 LED등’을 검색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번엔 알고리즘이 불러온 추천 영상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잘 정렬된 알고리즘에 따라가기 시 작하고, 평소 구독하는 채널들의 새 영상들을 훑기도 한다. 그러다 지금 당장 보고 싶지는 않지만 분 명 도움이 될 것 같은 영상을 발견한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중에 볼 동영상’ 목록에 추가한다. 그리고 또다시 스크롤. 새롭지만 맞춤형으로 잘 정렬되는 알고리즘 추천 동영상 목록을 보다 그제서야 뒤늦게 ‘LED등’을 검색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곧 어제 다 보지 못하고 잠든 신작 드라마에 눈을 빼앗긴다.

자세히 보면 아직 ‘LED등’은 검색조차 하지 않았고 ‘나중에 볼 동영상’에 넣어둔 영상들의 존재는 잊어버렸다. 여기에 더해, 처음 구독할 때의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제대로 읽지 않는 이메일들과 넷 플릭스 속 찜해 둔 영화 목록만 아마 하염없이 늘어날 것이다. 언젠가 볼 거라며 ‘기약’만 하며 일단 구독하고, 일단 메모한다. 심지어 더 확장될 나의 교양을 위해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1001’, ‘쉽게 읽 는 간추린 고전’, ‘지적인 대화를 위한 무지 넓은 지식’ 같은 타이틀을 가진 글들까지 잔뜩 북마크를 해 둔다. 글로 나열하고 보니 내가 아주 미련한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다 정 점을 찍는 그다음 행동을 소개한다면 바로, 저장해 놓은 수많은 것들을 한껏 뒤로한 채 또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덕분에 늘 수많은 콘텐츠들을 다 거느리고 섭렵하겠다는 ‘기약’만 하면서 999+가 된 메일함이 보인다. 꽉꽉 채워진 스크랩 목록과 갤러리 속 다시 찾지 않는 수천 개의 스크린샷 역시 남아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아직 읽지 않고 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모두 다 붙들어 매고만 있다. 배짱 넘치는 생활이 인터넷 위에 있다.

이렇게 온라인 세계에서 내가 잔뜩 붙들어 매고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과연 이 모든 것을 남겨두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내 관찰 예능의 분야가 미련 가득한 인간의 일상인 건지, 그냥 무엇이든 미루는 인간의 일상인 건지 특정하기 위해서라도 이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일단’ 구독하고, ‘일단’ 저장하고 보는 이 습성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온라인은 내게 어떠한 감정과 공간의 대상일까?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가까이 붙어있는 온라인 세계에서의 우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Everywhere


어딘가에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떠올려보다 문득 내가 요즘 온라인 세계만큼이나 오프라인 세계를 오래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창 서울에서의 자취를 앞두고 나의 거취에 대한 생각으로도 머릿속이 가득 차는 요즘, 그 누구보다 오프라인에서의 내 삶과 온라인에서의 내 삶을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으니 온라인 세상이 ‘하나의 집’으로 다가온다.

다만 최대한 짐을 많이 두며 살지 말자고 다짐하는 오프라인에서의 나와는 다르게, 온라인에서의 난 ‘오늘의 집’과 같은 어플에 들어가 사고 싶은 가구들과 필요한 가구들을 또 마구 스크랩한다. 나중 에 참고할 목적으로 ‘자취방 잘 꾸미는 법’, ‘자취10년차의 필수템 추천’을 썸네일로 건 영상들을 또 ‘나중에 볼 동영상’에 추가한다. 이 와중에도 온라인에서의 내가 짐을 늘리는 모습이 보인다. 품을 줄이고 보다 더 쾌적한 집을 구하고자 고심하는 나는 온라인에서 자꾸만 미련해진다. 이런 나의 행동에 이유를 붙인다면, 과연 무엇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 나중을 기약하며 유예하는 것들은 어떻게 보면 새 집에서 아직 풀지 않은 짐과 같다. 대신 온라인에서 내가 들인 이 짐들은 ‘데이터’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이때 데이터는 차지하는 용량이 수치로만 나타내어질 뿐 부피를 알기 힘들다. 그렇기에 데이터는 자취방에 들일 의자, 책상, 침대와는 달리 크기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살림살이가 내 집 평수에 맞는 사이즈의 침구를 사는 일이라면, 온라인에서는 들일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어 어떤 경우에는 무엇이든 들일 수 있게 된다. 온라인은 아주 방대한 정보들이 들어차더라도 괜찮은 아주 넓은 나의 집이 된다.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서 차가 빽빽하게 들어선 고속도로의 정체를 느낄 수 없고, 그곳이 짐으로 가득 차더라도 ‘좁다’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피부로 와닿는 감각이 없으니 온라인에 많은 것을 두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모든 사람과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온라인에서 정체를 느끼지 않으니 자꾸만 남겨놓는 것들이 생긴다. 미뤄지고 ‘유예’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은 우리의 공간과 차지에 대한 생각마저 유예해버린다.

하루는 야심 차게 보고 싶다고 잔뜩 다운 받아 둔 파일과 언젠가 추억하기 위해 잔뜩 찍어 둔 영상 들로 휴대폰의 용량이 가득 찼다. 용량이 없어 사진을 클라우드에 2달이 넘도록 업데이트하지 못했 던걸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파일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온라인 공간은 평수가 달린 현실의 집들과는 달랐다. 저장 공간을 늘리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대한 드라이브가 있고, 영상을 SNS에 업로드해두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결국 정리하지 않고 남겨둔 파일과 영상이 아직도 고스란히 휴대폰에 남아있다.

넓지만 실체를 규정하기에는 한없이 거대한 온라인을 보며 생각한 것은 어쩌면 언제든 사라지지 않고 굳건한 공간이기에 우리가 기약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점이었다. 언제든 내가 돌아갈 수 있고 쉽게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검색창에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면 나오는 방대한 정보들이 하나씩 우리의 기약을 만들어왔다. 너무나 크기에 오히려 공간감이 사라진 온라인은 유예하는 것들로 인해 현재성마저 가지지 못한다. 지금 나눠야 할 것들을 나누지 않고, 봐야 할 것들을 남겨두는 이 공간은 참 굳건하다고 생각했다.


All at once... disappear!


그러나 우리는 얼마 전, 모든 것이 한 번에 사라지는 일을 곳곳에서 경험하게 된다. 온라인에서의 우리가 아주 먹통이 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온라인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유예하는 우리를 모두 받아낼 만큼 무슨 일에도 끄떡 없는 공간인 것만 같았는데 이것이 잠시나마 무너져 내린 상황이 찾아왔다. 2022년 10월 15일, 카카오 서버가 설치된 경기 성남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비상시를 대비한 이중화 작업이 사전에 이뤄지지 않았기에 피해가 가중되었는데 그로 인해 12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상의 마비를 경험해야했다. 카카오톡에 연결된 부수 서비스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월간 사용자가 약 4750만명에 달했던 카카오톡이 가장 먼저 끊겼고 카카오택시와 카카오페이, 다음 메일 등의 각종 서비스에서 오류가 일었다. 누군가는 카카오 어플로 대여한 킥보드 반납을 하지 못해 몇 천 원으로 갈 거리를 몇십만 원을 들여 뒤늦게 자동 결제를 했으며, 누군가는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아 길을 잘못 들어 하염없이 헤매기도 했다.

나는 그날 동아리 회의 전 읽겠다고 미뤄둔 카카오톡 공지를 읽으려던 찰나에 카카오톡 서버가 마비되는 일을 경험했다. 졸지에 팀원들과 만날 장소를 모르게 되었는데, 팀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 였던 데다 전화번호 교환도 없이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던 우리는 순식간에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아주 오래 지하철역 주위를 팀원 전체가 서성거렸다. 전화번호를 미리 주고받았더라면, 혹은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공지를 미리 읽어 두었더라면 우리는 이 예상치 못한 사고 앞에서 조금 덜 서성거렸을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제서야 얼마나 내가 온라인 서비스에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읽지 않고 ‘유예’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영영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온라인에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늘 접 속이 가능했던 사이트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람들과 내가 멀리 떨어져있다는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수단이 없었다면 연락하지 못하는 아주 먼 사이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당혹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확한 위치도 정해져있지 않고, 거리감도 없고 부피도 없던 온라인이 아주 새로운 ‘감각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이번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해 먹통이 된 서버는, 단순히 온라인에서의 원작성자가 게시글을 삭제하여 우리가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 것들과는 다른 문제였다. 전혀 연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오프라인 속 화재 한 번에 먹통이 된 통신망을 보며, 연결을 총괄하는 허브가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다운될 수도 있다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때 불거졌던 또 하나의 사건,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가 내걸은 정책이 바로 그 예시이다. 2022년 10월 27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후 CEO로서 회사 운영을 시작했다. 개편하기로 결정한 첫 정책은 공식 계정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는 주요 인물의 계정임을 공 식적으로 인정한다는 표시로 아이디 앞에 파란색 체크 표시가 붙었는데 그는 이것을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했다. 트위터 유료 서비스만 구독한다면 누구나 파란색 체크 딱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유명인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한다고 밝혔지만 2022년 11월, 론칭된 해당 유료 구독 서비스는 인증 마크를 산 가짜 계정들이 진짜 흉내를 더 잘 낼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에 불과했다. 코카콜라 등의 공식 계정을 사칭하는 이들 이 발생했고, 유명인들을 사칭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트위터는 곧 해당 서비스를 중지했지만 이용자 들은 트위터가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트위터 유료 구독 서비스는 유지하되, 이용자가 갖는 혜택을 개편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따라 유료 구독 서비스 ‘트위터 블루’는 자신이 쓴 글을 수정할 수 있는 기능, 한 글에 쓸 수 있는 글자를 280자에서 4,000자로 확대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개편을 거치게 된다. 트위터에서 기준 글자 수에 구애받지 않고 더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다른 SNS에 비해 글로서 소통이 이뤄지는 성격이 강했던 트위터에서 바로 그 ‘글’을 쓰기 위해 전에 없던 이용료를 계속해서 지불해야 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와 같은 이미지와 영상 위주의 SNS와는 다르게, 트위터의 주 이용 목적은 ‘실시간 대화 및 공유’였다. 트위터 코리아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위터 이용자의 61.4%가 실시간 이슈를 확인하고 공유 하기 위해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 나아가 글과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 등에 참여하거나 온라인 서명을 통해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글을 통한 행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SNS가 바로 트위터였다. 취미와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곳을 이용하는 만큼 헤비 유저도 많았는데, 트위터 접속 빈도를 묻는 질문에 70%의 이용자가 매일 트위터에 접속하며, 22.2%의 이용자가 하루10회 이상 트위터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새로운 인수자의 등장과 그가 내놓은 변경 사항에 트위터라는 세계의 성격이 흔들리자 이용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페이스북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동시에 글로서 많은 이들의 생각을 읽고 공유하기 좋은 포맷의 SNS를 볼 수 없을 텐데, 과연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이토록 익숙한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와 같은 일종의 허망함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시작은 고작 구독 서비스 하나를 도입할지 말지를 논의하는 것이었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단순히 구독을 할 사람은 순응하고 아닌 사람은 이대로 버티는 식의 편 가르기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온라인은 여전히 ‘사람’이 만나는 공간으로, 이용 기록만큼 익숙해진 각자의 사용 패턴과 시간이 녹아있고, 그 공간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SNS 속 프로필을 바꾸는 일부터 올릴 사진, 나눌 이야기를 고심하는 모든 순간은 ‘온라인에서의 나’를 만들어내고 그 공간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나’가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순간, 타인의 글이 있는 타임라인이 뒤죽박죽 섞이고, 내 글마저 자유롭게 쓰거나 읽지 못하게 되며, 일부 계정을 사적인 목적으로 차단 시키는 일을 강행했던 일론 머스크의 행동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글에 #트위터침몰, #트위터의_명복을_빕니다 등의 해시태그를 달거나 트위터 자체를 탈퇴하는 이용자들이 대거 발생했으며, 트위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기업 중 한 곳인 애플도 탈퇴하는 이용자에 맞춰 트위터를 상대로 광고를 전면 철회하겠다며 경고하였다.

그 어느때보다 뒤숭숭해진 트위터 속에서 이용자로서 나의 감상은, 변하는 SNS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됨을 느낀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내 팔로잉 목록 속 계정들을 보며 이곳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굳건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세계가 실은 아주 약했다는 것, 휴대폰을 켜거나 PC에 접속하기만 하면 바로 만날 수 있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감각되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화재가 진압되고 시스템을 복구하기 전에는 만날 수 없는 세계, 새로운 정 책 앞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세계를 오래 생각해보았다. 페이지 뒤에는 또 새롭게 업로드 되는 온라인 활자들이 있고, 스크롤만 하면 또 새롭게 정렬되는 영상과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잃어버림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정말 온라인에서의 우 리가 갖는 위치성이 위태롭고, 아주 순간적일 수 있음에도 여전히 유예하는 것들이 넘쳐난다면 우리는 온라인 속 한 세계가 사라질 때 과연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어떤 마음을 먹고 털어 낼 수 있을까?


Nevertheless, scroll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또 한 번 스크롤을 내린다. 바로 윗 문단에서 만날 수 없는 세계, 어떤 위태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scroll’ 한 글자를 쓰고 잠깐 다른 영상을 보 고, 쇼핑 장바구니에 물건 하나를 담고 말았다.

사라질 것을 감각하지 못한 채 많은 것을 유예해두는 것은 사실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습관 같은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언젠가 볼 동영상을 저장해두고, 언젠가 볼 글들과 사진들을 모으고, 다음에 할 논의를 아껴 두는 것이다. 어쩌면 다음 계절의 배부른 행복을 위해 먹을 거리를 잔뜩 모아두고 겨울잠에 드는 것들의 일과도 비슷하기에 미래에 일용할 양식들을 인터넷 재료로 담아두는 것은 어쩌면 나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종종 지금 다룰 필요가 있는 소재들마저 온라인에서 함께 유예하고 있다면 어떨까? 사소하게는 볼 영상 하나를 미루는 것부터 지금 해야 할 말과 이야기마저 어딘가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일까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지난 계절 숨겨둔 음식을 찾지 못하는 다람쥐처럼 우리는 다음 해에 또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또 잊고, 또 같은 문제를 반복하기 쉽다. 그렇기에 현재를 잘 살아내기 위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음 스크롤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rchive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인간을 따라잡는 AI를 만들면서 우리는 점점 더 인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제쳐 두곤 한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은 오히려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가 무 엇인지를 논의해야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새로운 지향점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하고, 인공지능 로봇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노동의 가치는 무엇이냐는 물음을 마주해야한다. 이렇듯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는 세상 앞에서 중요한 것들을 유예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인문학자들이 선택한 길은 디지털 인문학으로, 그들은 여러 방면에서 논의 되는 것들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디지털 세계 위에서도 함께 펼치기로 선택했다. 역사, 문학, 철학 등의 인문학 지식을 보다 용이하게 아카이브의 실물에 다가갈 수 있게 디지털 큐레이션을 택했다.

인문학자들이 다른 분야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디지털 영역을 자신들의 공간에 포함한 것은 이제는 인문학 연구실과 온라인이 별개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자꾸만 유예되기 쉬운 논 의들을 현재에도 멈추지 않기 위해 대학의 강의실, 연구실, 박물관 등이 각각 물리적 공간으로서 기능했던 아날로그 세계의 성격을 가져가면서, 동시에 디지털을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으로 여겼다. 인문학 연구와 증거 자료를 하나의 디지털 공간으로 불러와 모두가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꺼내 보고 공유하는 상호 참고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디지털은 강의실이 되기도 하고, 연구실이 되기도 하고, 전시실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공간감과 현재성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온라인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실체가 없다고 느꼈던 온라인을 실체로 마주 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 속에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정보들은 단순한 짐이 아닌 ‘데이터’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데이터들이 모인 데이터 센터는 서버, 네트워크 등IT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한 건물 안에 모아 24시간, 365일 내내 운영하고 통합 관리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톱 PC 한 대 한 대가 이 데이터 센터에 연결되어 있으며, 이용자가 서비스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게 많은 양의 기기가 집 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온라인이라는 것은 비가시적이고 비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물질적인’ ‘공간’이 된다.

온라인은 아주 무한한 우주 같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데이터 센터를 짓기 위해 큰 건물이 필요하고, IT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고효율펌프, 발전기, 배터리, 서버, 냉각탑 등의 실제 장비가 있어야 하며, 이 데이터 센터를 관리하는 실제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 결국 온라인이 아주 물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실체’에서 기반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전에는 실체 없는 아주 넓은 집과 같 다고 여겨졌던 온라인 공간이 어느 정도 실체가 잡힌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해야 할 이야기들을 유예하는 우리는 무작정 스크롤을 내리는 마음보다, 온라인의 일도 결국 실제의 것과 연결된 것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 속의 무언가로 보기보다 온라인을 새롭게 제대로 인식한다면 반드시 실체적인 무언가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지점이 생길 것이다.


And then, enter!


그런 다음 우리가 할 일은, 바로 ENTER 키를 누르는 것!

우리는 현재 온라인상에 잔뜩 유예해둔 이야기와 볼 거리, 읽을 거리들을 넘쳐나게 갖고 있다. 수 많은 정보들을 나르는 데이터 센터는 오늘도 엄청난 발열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고, 냉각탑은 꾸준히 발열량을 줄이고자 온도 낮추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센터의 운영자들은 서버 운영에 더욱 집중을 가할 것이다. 우리가 유예하는 것들이 이렇게 실체적인 업무로 다가오는 지금을 제대로 잘 마주하는 일, 그리고 양가적으로 우리가 유예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논의해야 할 생산적인 것들이 많이 ‘축적’ 되어있다고 받아들이는 일. 이 두 가지를 잘 해낸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완벽한 문장이 완성되었기에 가감 없이 엔터를 누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를 기반으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타인의 삶을 들여놓는 일이 줄어드는 세계에서, 여전히 타인과 쉽게 이어질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가 지금껏 제쳐 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이야기 나눌 때, 온라인은 우리에게 여전히 짐이 가득한 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위원 온(eunyeongj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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