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8호 07화

분류: 노동자

[ON TIME] 편집위원 오월

by 연희관 공일오비

형식에 방점을 둔 원고입니다. pdf 파일로 읽으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아이돌

최근 수정 시각: 2023-02-28 01:5B:18

분류: 노동자


목차


1. 아관고(아이돌에 관한 주관적인 고찰)

2. 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

3. 연소근로자 아닌 청소년 근로자

3.1. 외부인의 시선

3.2. 내부인의 시선: 도내와의 대화

4.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리스너


1. 아관고(아이돌에 관한 주관적인 고찰)


나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멀리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무래도 아이돌일 것이다. 아빠가 주신 아이팟에 매달 30곡씩 아이돌이 부른 노래들을 신중히 골라 채워 넣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이폰 속 애플뮤직으로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골라 듣는 지금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아이돌은 없던 적이 없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게 꾸준히 일정량 이상으로 아이돌 영상을 추천하고, 나는 한 달에 일정 시간 이상을 아이돌에 관심을 가진 채 보낸다.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구오빠’들은 여전히 나의 술자리에서 툭하면 거론되는 대화 소재이고, 아이돌을 함께 좋아하며 다져갔던 우정들은 여전히 내 곁에 가까이 자리한다. 예전처럼 맹목적인 팬으로 살아가던 때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돌과 가장 멀고도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 중이다.


그런 내가 아이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예견된 미래였다. 식견이 한없이 부족한 탓에 쓰기보다는 읽고 삼키기 바쁜 다른 분야와는 달리, 아이돌과 케이팝은 오랜 시간 읽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글은 써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글을 써낼 소재도 무궁무진하다고 믿었다. 아이돌 사생활 문제, 팬과의 관계, 직업 특성 등등…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아이돌의 노동 문제와 연습생 시스템을 다루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데에는 그 모든 문제가 결국 노동 문제로 귀결된다는 판단이 숨어있었다. 판단이 선 나는 마침내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소재를 꺼내 펼쳤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이돌의 노동 문제에 관해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아이돌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아이돌의 계약이 어떤 식인지, 계약 내에서 아이돌의 업무 영역은 어떻게 정해져 있는지, 연습생들은 어떤 식으로 계약하는지 등… 다양한 정보들이 알려진 바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연구를 찾아보아도 대체로 아이돌의 시장 가치나 팬과의 관계 등에 집중했을 뿐, 아이돌의 노동에 대한 연구는 찾기 힘들었다. 학기 중보다 더 많은 논문을 찍어 먹어보고 실패의 맛을 본 나는 고민 끝에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한다. 하나, 아이돌에 관해 ‘전문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다시 한번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우를 범해보자. 둘, 얼굴에 철판 석 장 깔고, 연습생을 했던 친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나의 두 가지 결심으로 인해 이 글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분석하는 글이라기보다는 외부인이 바라보는 아이돌의 노동과 내부인이 바라보는 아이돌의 노동을 주관적으로 고찰하는 글로 바뀌었다. 따라서 나는 나의 글의 포맷을 다시금 고민해야 했다. 내 글은 어떤 사이트에 담기는 형식으로 써져야 마땅할까? 이 글의 첫 시작은 ‘객관적 자료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아이돌 노동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글이 되고자 했으나 이는 장렬히 실패했다. 따라서 나의 글이 실릴 사이트는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커녕 ‘위키피디아’조차도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주관성과 감상이 난무하는 나의 글은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돌 덕질의 시발점. 아이돌 팬들이 모으고 모은 정보들의 총집합체. 객관성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결국 나의 아이돌을 칭찬하거나 실드치기 위한 노력의 산실. 나무위키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즉 이 글은 나무위키 속 ‘노동자’ 분류에 속한 직업군 중 ‘아이돌’에 대해 설명하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글이다.


2. 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1]


“야, 아이돌 걱정이 제일 쓸데없어. 내 인생 꾸리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누굴 걱정해.”


아이돌의 노동 문제나 인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그 끝에 이 말을 하게 된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모두가 수긍하고 다음 주제인 우리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긍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내가 꼽아본 세 가지 이유는 이러하다: 1) 내 코가 석 자라서 2) 아이돌의 삶에 큰 관심이 없어서 3)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와도 같아서.


하나씩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1) 내 코가 석 자라서. 이건 굉장히 간단한데 우리는 보통 우리가 알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아이돌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대학생인 우리가 바라보기에 그들은 돈도 있고 직장도 있다.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그런데 두 번째 이유와 세 번째 이유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현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사전적 정의는 우상이다. 우상의 삶은 당연히 현실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나와 같은 노동자라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정하다는 계약직이라는 것은 쉬이 와 닿지 않는 진실이다. 나도 그들이 우상 같았고, 이런 진실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들에 계속 관심이 갔다. 관심이 갈수록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알아가게 될수록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학창 시절의 배경음악이 되어준 그들을 오랜 시간 봐오면서 느낀 부조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사람에게 관심 없기로 정평이 난 내가 이렇게 아이돌과 팬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내가 이례적으로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이 관계는 ‘별나고 이상한 사이’다. 별나고 이상해서 자꾸만 뜯어보게 되는 관계. 돈과 사랑이 한데 얽혀 애와 증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관계. 팬은 현재 케이팝 업계 내의 강력한 소비 권력이자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소비자다. 팬, 국민 프로듀서, 빠순이, 덕후… 어떤 명칭으로든 아이돌의 곁에는 언제나 팬이 존재한다. 나도 그들의 곁에 팬으로서 존재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아이돌의 팬으로서 아이돌의 소속사에 산더미 같은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대체로 아빠였다. 일상처럼 당시 내가 덕질하던 아이돌의 소속사를 욕하는 나에게 아빠는 그럼 불매운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물건은 대체재가 있지만 내가 덕질하는 나의 아이돌은 대체재가 없다고. 그 사람은 그 사람뿐이라고. 사람이 주요 상품인 산업은 이게 문제라고 푸념을 늘어놨다. 이때의 짧은 대화는 그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진행되었으나 이후 오래도록 내 마음에 박혀 떠나지 못했다. 그러게, 팬이라는 건, 팬심이라는 건 뭐길래 이렇게 나를 모순적인 존재로 만드는 걸까.


팬심은 수많은 복잡한 마음 중에서도 손에 꼽게 복잡하고 이상한 마음이다. 팬은 화도 많고 사랑도 많다. 어떨 땐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에게 한없이 베풀다가도 어떨 땐 놀랍도록 냉철하다. 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업계의 암묵적인 룰을 체득하고, 그 암묵적인 룰을 당연하다는 듯 아이돌에게 바란다. 팬들에게 잘하고 무대도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이돌, 즉 ‘효녀/효자돌’의 기준은 갈수록 높아진다. 본 무대도 잘하는 동시에 직캠 카메라[2]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고, 셀카도 잘, 자주 찍어서 올려줬으면 좋겠다. 남들도 다 보는 인스타그램으로 셀프 마케팅을 하기보다는 버블[3]에 와서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해줬으면 한다. 다른 아이돌과 친하다는 걸 너무 티 내지 않았으면 좋겠고, 음주 운전 논란이 터질까 두려우니 운전도 안 했으면 좋겠다. 타투도 안 하는 게 좋고 담배 피우는 건 당연히 싫다. 감히 영원을 약속해보는 트윗을 주기적으로 작성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품고 있고, 항상 널 믿는다고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어도 내심 내 아이돌이 사고를 칠까 봐, 겉으론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일까 봐 걱정하는 마음들은 암묵적인 규칙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연예계에서 사고가 터질수록 암묵적인 규칙은 점점 많아지고, 케이팝 산업이 발전할수록 아이돌의 업무도 가중된다.


다시 맨 처음에 꼽아보았던 세 가지 이유로 돌아와 보자. 세 가지 이유 중에서도 두 번째 이유, ‘아이돌의 삶에 큰 관심이 없어서’로 돌아오는 거다. 우리는 정말 아이돌의 삶에 큰 관심이 없을까? 관심이 없다기엔 아이돌의 일상은 이미 엄청난 수요를 오랜 시간 증명해왔다. 아이돌은 디스패치를 피해 몰래 연애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진과 함께 목격담이 공유되며, 팬들을 위해 브이로그를 찍고 버블로 일상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이돌의 삶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아이돌의 삶에 너무도 관심이 많다. 다만 브이로그처럼, 편집된 무대처럼 편집된 삶만을 궁금해할 뿐이다. 연애하는 모습은 담지만, 계약서는 편집하는 식으로. 심지어는 이따금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의 눈으로 자체 편집을 하기도 하니, 두 번째 이유는 틀렸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이돌을 볼 때조차도 지치고 싶지 않아서’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아이돌의 삶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도출해내기에 우리는 너무 지쳤다. 계약직의 삶,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기나긴 법적 분쟁을 거치는 삶은 도처에 널려 있고, 나도 그중 하나일 때가 있으니까. 계약서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임금이 늦게 들어오는데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겨우겨우 예쁜 말들을 골라 사장님께 ‘문의’하는 삶을 뒤로 한 채[4] 아이돌을 보는 건, 세 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종의 현실 도피이기도 할 테다. 현실을 잠시 잊고 바라본 아이돌에게조차 익숙하고 눅눅한 힘듦을 느끼고 싶지 않은 지친 마음은 아이돌의 연속적인 삶을 편집한다.


최근 아이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쏟아졌다. OTT 서비스 왓챠에서는 <다음 빈칸을 채우시오>가, 또 다른 OTT 서비스 티빙에서는 <케이팝 제너레이션>이 나왔다. 최근 올라온 문명 특급의 영상에서는 BTS의 멤버 제이홉이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될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홍보했다. 아이돌 개개인을 파헤치는 것부터 아이돌 업계 자체를 조명하는 것까지, 최근 아이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시작되고 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줌인과 줌아웃이 너무 극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줌인이 과도할 때는 아이돌 한 명을 바라보고, 줌아웃이 과도할 때는 케이팝 업계 자체를 바라본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단지 아이돌, 즉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이돌의 계약에 관해, 아이돌의 지난날에 관해… 아이돌이 느끼는 관행과 꿈을 이루는 루트는 얼마나 비상식적일지도 늘 궁금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는 아이돌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다만 모든 측면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청소년 근로자로서의 아이돌과 근로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연습생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먼저 외부인인 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 청소년 근로자로서의 아이돌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3. 연소근로자 아닌 청소년 근로자


자료조사를 위해 읽었던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왔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오빠들은 모두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노래가 재생되면 멀리서 빛나고 반짝이는 사람들을 좇던 그때의 내 모습도 함께 따라온다. 멜로디 사이사이 끼어드는 나에게서 근심 없는 행복이 느껴진다." - <아무튼 아이돌>, 윤혜은


그래, 내 인생의 한 페이지. 너무 공감이 가는 표현이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 역시도 그렇기 때문이다. 비스트 노래를 들으면 초등학생이던 내가, 트와이스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생이던 내 모습이 노래에 줄줄이 엮여 달려 나온다. 아이돌은 ‘어떤 존재’로서 내 일상 한편에, 내 인생 한편에 자리했다기보다는 그냥 언제나 숨 쉬듯이 같이 있어서 인식하기 힘든 수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내가 노동자로서, 혹은 예비 노동자로서 근로 관련 법을 마주할 때조차 그들이 내 인생 한편에 자리할 거라는 건, 정말 몰랐다.


3.1. 외부인의 시선


내가 아직 교복을 입던 시절, 나는 사회탐구 과목 중 정치와 법을 제일 좋아했다. 법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제 사례나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 적용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찾아보다 보면 나오는 정보들이 수능 특강보다 훨씬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나는 국어와 수학을 피해 재밌는 현실 도피를 하러 정치와 법으로 도망을 나온 상황이었다. 오늘 펼친 페이지는 연소근로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연소근로자라, 내가 아는 연소근로자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돌. 당시만 해도 나보다 어린 아이돌 멤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보아와 카라의 막내 강지영, 그리고 어린 내 눈에도 정말 어렸던 엔시티 드림이 떠올랐다. 자동으로 아이돌을 생각하면서 다음 개념을 읽어 나갔다. 연소근로자에 관한 내용은 이러했다.


15세 미만인 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로 고용할 수 없다. 단, 예외적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급한 취직 인허증을 지닌 경우 15세 미만자도 취업할 수 있다.
18세 미만인 연소 근로자의 근로 시간은 원칙적으로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을 넘지 못하며, 연장 근로도 1일 1시간, 1주 5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야간 근로와 휴일 근로는 불가능하나, 본인의 동의와 노동부 장관의 인가가 있으면 가능하다.


짧은 다섯 줄의 글이었는데도 문장마다 쉬이 넘어가지 못하고 턱턱 걸렸다. 15세 미만인 자는 원칙적으로 고용할 수 없다기엔 내가 아는 15세 미만 아이돌이 꽤 많았다. 15세 미만 노동자는 야간 근로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시상식에서도 대부분의 15세 미만 아이돌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연말 시상식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내가 보았던 여러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비하인드 영상들이 떠올랐다. 밤에 추운 밖에서 담요, 혹은 롱패딩을 몸에 두른 채 낮부터 시작해서 새벽까지 촬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중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야간 근로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런 건 제재가 없는 건가?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촬영마다 받아야 하는 건가?


실제로 이 부분에 관해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2010년, 당시 활동 중이던 15세 미만의 아이돌이 취직 인허증을 발급받지 않은 채 활동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지목된 것이다. 지목된 세 아이돌 중에는 법적으로 고용이 금지돼 있는 만 12세의 청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연예인은 근로자가 아닌 예외 대상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예인은 노동부 기준 청소년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취직 인허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청소년 노동자의 기준은 1) 정해진 근무처와 근무 시간, 2) 확정적인 급여 지급 이 두 가지인데, 연예인은 이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예인은 계약에 따라 신변 보호와 수익 조정이 가능하고, 이는 일반 15세 미만 근로자와 다른 예외적 상황이므로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노동부의 입장이었다.


물론 이 입장과 동시에 노동부는 15세 미만 연예인을 보호할 법망이 없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부의 설명은 내 마음에 온전히 와닿지는 못했다. 연예인은 정말 계약에 따라 신변 보호와 수익 조정이 가능할까? 아이돌을 시작하는 나이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 아이들이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원활히 사측과 협상하고,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 법정 대리인과 함께 계약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몇 년 동안 데뷔 하나만을 바라보고 노력한 연습생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까? 노동부의 답변은 내게 뜬구름 같았다. 그저 이상만을 말하는.


2010년 이후 전혀 발전이 없던 것은 아니다. 15세 미만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부속합의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속합의서의 존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연말 시상식이다. 연말을 여러 가요 대전이나 시상식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10시 이후 자리를 뜨는 미성년자 아이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해당 부속합의서 제8조 1항 때문에 생긴 변화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대중문화예술용역 제공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부속합의서에는 15개의 조문이 청소년 연예인, 연습생의 권리 보호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부속합의서가 만들어지는 등 처우 개선의 노력이 있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아이돌 세계는 청소년에게 척박해 보였다. 부속합의서가 보호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청소년 아이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속합의서가 만들어졌다고 어느 날 한순간에 모든 청소년 아이돌이 성인 아이돌과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 아니었고, 대중들도 청소년 아이돌을 더 보호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 딸기를 너무 예쁜 척하고 먹는다며 욕을 먹을 때에도, 피자 광고 촬영 현장에서 피자를 작위적으로 먹는다는 이유로 욕을 먹을 때에도 부속합의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법과 공식 문서가 고려하는 것보다 실제 현실은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보통 청소년이다. 이들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몇 년 동안의 불확실한 연습생 생활을 견뎌낸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어떤 무게가 지워지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블랙핑크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기, 블랙핑크 멤버들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회사에 맞추고,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마저도 회사에 맞추어야 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기에 회사를 나보다 우선시하고 데뷔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아이들. 이 아이들이 아이돌 계약, 연습생 계약의 부당함과 문제점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자신의 직업이 어떤 직업군에 분류될지, 이 직업의 전망은 어떨지, 이 직업의 평균 연봉은 어떤지 알아보고 달려들었을까. 그걸 알았더라도, 자신의 꿈을 목전에 두고 이 길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무수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실제로 아이돌을 꿈꾸던 청소년에게 물었다.


3.2. 내부인의 시선-도내와의 대화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시간이 안 된다고 빠지던 친구가 있었다. 항상 바쁘게 사는지 매번 검은색 차를 타고 먼저 사라지던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학원이 있어, 자격증 시험 보러 가야 해, 하는 말들을 듣고 섭섭함과 아쉬움을 느끼며 보내주던 친구. 몇 년이 지난 뒤 친구는 사실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너희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궁금한 마음에 이것저것 묻는 내게 친구는 말을 아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마다 들리는 생활의 단상들은 친구의 힘들었던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팬으로서, 연습생으로서, 또 나와 같은 수험생으로서 시간을 보냈던 친구의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움과 슬픔, 그리고 지난 시간을 몰랐던 나의 무심함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고민 끝에 어렵사리 인터뷰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쓸데없는 경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너에게 도움이 되니 좋다고 해주었던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한다.


소속사의 비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했다. 몇 가지 부수적인 정보는 각색하여 인물을 특정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인터뷰이의 경험에 기반한 인터뷰이므로,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하길 바란다.


앞서 설명했듯 내가 가진 가장 큰 궁금증은 계약에 관련된 사항이었다. 그나마 이미 데뷔한 아이돌에 관한 정보는 드러난 것들이 있었지만, 연습생 계약이 어떻게 되는지, 연습생은 얼마나 보호받고 있는지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연습생이 어떻게 되는지 그 경로조차도 몰랐기 때문에 어디서 시작할지도 몰랐다. 고로 제일 먼저 물어볼 것은 연습생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에게 제일 먼저 연습생 시스템과 계약에 관해 물었다.


오월: 가장 먼저 연습생 시스템이 궁금하다. 연습생은 어떤 과정을 거쳐 계약하게 되나?


도내: 보통 오디션에 합격하면 연습생이 아니라 견습생[5]이 된다. 견습생은 계약 없이 기초 트레이닝을 받고, 1-3개월 동안 연습한 후 연습생 평가를 통해 연습생이 된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비주얼이 좋으면 바로 연습생이 될 수도 있다.


오월: 연습생 계약에 대해 알고 싶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도내: 연습생 계약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지금은 많이 잊어버려서… 기억에 남는 것들만 이야기해보겠다. 먼저 계약금에 관련된 내용이 있고, 생활 태도 불량이 누적되거나, 실력이나 태도가 안 좋아서 제적되면 억 단위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외에도 담배 금지[6], 학교폭력 금지, 연애 금지, 마약 금지 등의 내용과 임의로 성형수술이 불가하며 위반 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데뷔 조에 들어가서 데뷔 확정이 되면 다시 계약한다. 전해 들은 바로는 수익 분배 비율 중 음원 판매 비율, 해외 일정/공연/해외 콘서트 비율이 다 조금씩 다르다. 아이돌의 금지 규약은 사라지고, 중대 사안이 아니라면 계약서에 일일이 표기하지는 않는다.[7]


그리고 연습생 계약을 안 하는 회사들도 있다.


오월: 그럼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없나?


도내: 아예 없다. 이런 혜택이 있다, 하고 구두로 전달되는 정도에 그친다. (구두로 전달되는 혜택은 어떤 게 있나?) 숙소 지원 정도다. 일반 연습생은 회사에서 트레이닝과 숙소를 제공받는 것 외에는 회삿돈으로 받는 지원이 없다. 데뷔 조에 들어가게 되면 회삿돈으로 지원받아 관리를 할 수 있게 되고, 소정의 생활비도 받을 수 있다.


오월: 이외에도 구두로 전달되는 사항들이 있나?


도내: 있다. 성형 시술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얼굴에서 고칠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예술 고등학교 입시를 권유하기도 한다. 보통 부모님의 동의를 얻고 구두로 진행한다. 내 경우에는 데뷔조에 올라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월: 계약에 대해 당시 느꼈던 것들을 간단히 말해달라.


도내: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에서 맺는 계약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수직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계약이었다. 계약 전반에서 내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수직적인 계약 아래에서 이뤄지는 연습생의 생활은 어떨까. 나는 블랙핑크가 그들의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시간이었다’고 소회하고, 극도로 경쟁에 내몰리는 환경이었다며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것을 보았다. 또 <프로듀스 101>의 영상 클립을 보면서 연습생 생활을 추측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그 일과가 어떠했는지, 어떤 압박을 견디고 살았는지는 구체적인 언어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무수한 실패를 겪고 반 뼘씩, 혹은 한 뼘씩 천천히 자랄 동안 연습생들은 얼마만큼의 성장을 요구받았을까? 실패해도 되는 환경이긴 했을까? 매주 토요일, 함께 듣던 수업이 끝난 후 편의점으로 달려가던 우리를 뒤로한 채, 매주 친구를 싣고 사라지던 검은 차 너머엔 어떤 삶이 있었을까? 연습생 생활에 대해 친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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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연습생 생활에 관해 이야기해달라. 일과는 어땠나?


도내: 평일에는 주로 학교에 다녔는데, 내 경우 주말에 개인적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토요일 연습을 빠지는 대신 월요일 학교를 빠졌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서울에 가서 월요일까지 연습했다. 데뷔 조에 올라간 뒤에는 본가와 서울을 매일 오갔기 때문에 오전 수업 일부만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들은 뒤 서울에 도착해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이었다.[8]


주말에는 나도 숙소에서 살았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에 퇴근한다. 보통 하루 중 13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출근하는 길에 전자기기를 압수당한다. 수업은 출근하자마자 시작되어서 오전 내내 댄스 수업을 듣고 30분 동안 점심 식사를 나가서 하고 와야 한다. 데뷔 조는 따로 식단을 관리해주지만, 일반 연습생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나가서 알아서 밥을 챙겨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3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한다. 이 때는 연기, 작사, 작곡, 예능, 뮤지컬 등의 2차 특기 중에 하나를 골라 수업을 듣는다. 제2외국어도 1시간 정도 수업을 듣는다. 저녁이 되면 다시 30분 동안 외출해서 밥을 먹고 돌아오고 그 뒤에는 자율 연습을 하거나, 트레이너 선생님들에게 1:1로 코칭을 받는다. 월말 평가가 있거나 데뷔 쇼케이스가 있는 날도 있다.


오월: 월말 평가와 데뷔 쇼케이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도내: 월말 평가는 월말에 회사 임직원이 전부 모여서 데뷔 평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월말 평가는 누적제라서 월말 평가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데뷔조가 될 수 있다. 춤, 노래, 랩 중 주특기를 하나 선택해서 개인으로 무대를 하나 하고, 팀을 이루어서 무대를 올리는 팀 미션도 하나 한다. 매달 10%가 이 월말평가로 인해 연습생을 그만두게 된다.


1년에 1-2번 데뷔 평가를 하는 콘서트 방식의 무대가 있는데 이게 데뷔 쇼케이스다. 여러 팀으로 나누어 팀 미션을 진행한다. 이 무대를 통해 멤버 합과 실력 등을 평가한 뒤 데뷔조를 정하는데, 여기서 40% 정도의 연습생들이 그만두게 된다. 데뷔 조는 주축 멤버 몇 명을 제외하고는 계속 바뀐다. 컨셉이 정해진 뒤에도 계속 다른 팀에서 사람을 추출해서 데뷔 조에 넣고 빼는 등의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며, 어떻게 데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월: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성적도 관리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가?


도내: 다른 미래를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연습만 하므로 다른 분야를 준비하기 힘들다. 시험 기간에 한 시간 일찍 끝내주거나, 등교 허용해주는 것 외에는 연습만 하게 되는 환경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일반 연습생이 평균 점수를 넘어야 연습생 생활을 지속할 수 있긴 했다. 미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원해준다는 명목이었지만 그렇다고 학교 공부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공부는 자율의 영역으로 맡겨두었다.


그렇다면 도내의 주변 환경은 어땠을까.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 속 트레이너들은 연습생들을 향한 냉랭한 조언, 혹은 혹평을 일상적으로 행했고 이는 영상 클립으로 온갖 SNS와 커뮤니티를 떠돌았다. 전국으로, 혹은 전 세계로 송출되는 영상 속 연습생들은 움츠러들어 있었고, 눈물을 흘렸다. 이후 연습생들은 2층 침대가 빼곡한 좁은 방에 들어와 혼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다잡았다. 도내도 그랬을까? 도내는 어떤 환경에서 잠을 잤고,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을까? 청소년에 불과했던 도내의 세상은 따뜻했을까? 도내에게 연습생 당시 주변 환경에 관해 물었다.


오월: 아까 숙소에 관해 설명해줬는데, 숙소 환경은 어떤가?


도내: 최악이다. 20평 정도 되는 집에서 8명이 산다. 2층 침대 4개를 두고 사는 거다. 이 상태에서 연습생이 더 들어오면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자야 한다. 화장실이 하나라서 씻기 순서에 따라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씻어야 하기도 한다. 개인 식사를 반입할 수 없어서 냉장고에는 물이나 과일만 있다. 물과 과일도 회사 지원이 아니라 연습생의 보호자들이 가져다주시는 것들이다. 집안일은 주로 당번을 정해서 하는데 텃세가 심한 편이라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안 좋은 시간대를 맡거나 불호가 높은 당번을 맡게 된다.


오월: 식이 조절은 어떻게 했나?


도내: 데뷔 조가 아닌 일반 연습생이라면 식이 조절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덜 해도 괜찮은 건 아니다.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욕을 먹는다. 나는 연습생 이후로 여러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 문제들이 자율적인 식이 조절로 인한 거였다. 데뷔 조에 들어가게 되면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데뷔 조와 일반 연습생 간의 격차가 더 심해지기 때문에, 일반 연습생이 더 독하게 살을 빼게 된다. 나의 경우 일주일간 물만 마시고 살아본 적도 있다.


오월: 그 외에 사소한 것이라도 힘들거나 부당했던 점들이 있었나?


도내: 이건 진짜 사소한 건데 엘리베이터를 못 쓰고 계단만 써야 했다. 숙소를 불시에 검문하는 것도 불편하고 싫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만나면 90도로 인사를 해야 했다. 회사 내에서 잘못하면 반성문을 쓰고, 모든 임직원에게 도장을 받아 제출해야 했다. 월말 평가에서 외모 평가와 성희롱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당시 나는 170cm에 51kg이었는데 데뷔하려면 40kg대여야 했기 때문에 몸무게를 잴 때마다 욕을 먹었다. 무례한 말들에 대응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대응하면 월말 평가가 안 좋게 나오고, 그러면 연습생을 잘려서 데뷔를 못 하게 되기 때문에 꿈을 위해서 참고 넘겨야 했다.[9]


학교생활 관련해서도 피해가 컸다. 우선 수학여행, 운동회 등의 학교 중요 행사엔 하나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없어서 친구가 없었다. 데뷔 조에 올라간 뒤에는 학교를 오전만 다니는 바람에 정규 교육 과정을 들을 수가 없어서 연습생 관두고 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학기마다 학교 생활기록부를 떼 와야 했던 것도 싫었다.


데뷔 조 생활하면서는 단기간에 살을 많이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했었는데, 길을 가다가 쓰러진 적도 있고 갑상선 관련 질환, 호르몬 계통 이상이 생겼다. 이 때문에 생리불순, 자궁근종 등도 생겼다. 식이장애도 생겨서 식도와 내장 기관이 다 헐었던 적도 있다. 또, 한번 초절식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뭘 먹던 살이 엄청나게 찐다. 이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는데, 이걸 해결하려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 그 약의 부작용으로 살이 더 쪘다. 악순환의 반복인 거다.


어울리는 색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탈색을 많이 하고 염색도 많이 해야 했는데 이것 때문에 지금도 머릿결이 안 좋다. 또 탈색이나 염색을 하고도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가발을 썼는데 가발을 매일 오랜 시간 쓰다 보니 두피도 안 좋아졌다.


그리고 연습생을 하면 필연적으로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 같다. 나도 개인정보가 해외까지 퍼져서 꽤 고생했다. 내 친구의 경우 중국과 우크라이나에도 신상 정보가 노출되었다. 개인정보가 어디서 퍼졌는지, 어디까지 퍼지는지도 모른다.


앞서 짧게 언급했듯 도내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수험생도 장기간 했고, 연습생도 장기간 했다. 또 어떤 아이돌의 팬으로서 오랜 시간 살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았으나 나와 다른 경험을 풍부하게 해보았던 친구에게, 아이돌과 연습생에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오월: 아이돌의 데뷔 평균 연령이 낮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내: 착잡하다. 어린 나이부터 미용 목적으로 몸을 바꿔나가고 고치는 것이 너무 유해하다고 느꼈다. 이 아이들이 데뷔하면 다른 친구들은 그걸 보고 따라 할 테고, 연습생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미용 목적 관련 시설의 이용 연령대도 낮아질 거다. 나도 연습생 당시 했던 고민이, 내가 이렇게 건강을 갈아 넣어서 데뷔해도 나의 불건강한 모습을 본 어린애들이 열광해서 거식증이 생길 정도로 다이어트를 하는 악순환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럼 그 열광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고 난 마냥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월: <프로듀스 101>, <보이즈 플래닛>, <아이돌 학교> 등의 공개 오디션 방송을 통해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콘텐츠화되면서 아이돌과 연습생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는데,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도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대중에게 공개하면 당연하게도 욕을 많이 먹는다. 또, <프로듀스 101>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인 연습생들의 경우 회사가 없기 때문에 악플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고, 이후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약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또 아이돌로 데뷔하는 게 확정된 것도 아니므로 나중에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는 건데, 자신의 미숙한 모습이 영상으로 녹화되어 그대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상황을 참가자들이 달가워할지도 의문이었다.


오월: 아이돌로 데뷔한 친구들과 연락했을 때 느낀 점은?


도내: 연습생을 관두고 정신과를 다니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던 때, 나는 몸도 안 좋고 성적도 아직 좋지 않은,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황이었다. 반면 나와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은 그사이 데뷔해서 신인상도 타고, 콘서트도 했고, 또 새롭게 데뷔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오월: 연습생과 수험생을 모두 장기간 해본 입장에서, 연습생과 수험생을 비교해본다면?


도내: 연습생을 해서 좋은 점도 있다. 인신공격을 당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정신력이 생겼다. 또 원하는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끝이 보이는 일들은 정신력을 잘 관리하면서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연습생은 신대륙 찾기에 비유할 수 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반면 수험생은 그냥 장거리 마라톤같다. 결승선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수험생은 디데이를 셀 수 있는데 연습생은 디데이를 셀 수가 없다. 수험생은 객관적 수치가 있어서 내 위치를 알 수 있는데 연습생은 그런 게 없고 주관적인 평가만 있는데다 그 평가들도 천차만별이라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수험생은 대학에서 어떤 전형으로 몇 명 뽑는지 알 수 있고, 추가가 돌고 데이터가 있는데 연습생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오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내: 어린 나이의 연습생들이 힘든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숙소 생활이다. 숙소 생활을 하다 보면 적절한 돌봄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 가족과 제대로 연락도 못 하는 데다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연습 외의 영역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당시 11살인 학생과 함께 숙소 생활을 했었는데 주변 언니들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면 그 친구는 그 나이대에 맞는 적절한 도움을 받기 힘들다.


연습생을 하면 기본 교육을 받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도 중, 대형 소속사를 가면 학교생활, 성적 등의 기초 학력을 챙길 수 있지만 소형 기획사에 들어가면 이런 것조차도 없다. 성교육, IT 교육 등의 기초 교육도 받을 수 없다. 소형 기획사의 경우 임직원 중에 불법적인 일과 연관된 사람들도 있어서 데뷔가 엎어진 연습생들을 데리고 불법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지인 중에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일이 없어지려면 관련 제도가 있어야 할 텐데, 제도가 미비해서 연습생을 하다 보면 불법적인 영역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부분이 큰 문제라고 당시 느꼈다. 또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제한할 수도 없고, 연습생을 보호할 안전장치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연습생 생활 내내 피부로 느껴졌다. 관련 제도가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느껴지듯, 연습생 생활은 도내의 삶에 깊은 트라우마와 피해를 낳았다. 그 때문에 도내가 이 이야기를 하다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를 섞어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덕분에 웃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도내가 겪은 일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도 도내의 힘든 청소년기는 여실히 느껴졌다.


전화하는 내내 나는 나의 중학생 시절과 도내의 중학생 시절을 비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도내가 얼마나 흔치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는지를 느꼈다. 당시 내 인생에서 최대 고민은 친구 관계였다. 몇 번을 실패해도 기회가 돌아왔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다독여주던 친구와 부모님이 있었다. 눈앞에 다양한 길이 열려 있었고 다양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때마다 적절한 돌봄을 받았고 어느 누구도 내게 막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천천히 자라나는 동안 도내는 한순간에 너무 큰 성장을 요구받았다. 당시 도내의 세상에서 도내는 자신의 꿈을 위해 막말을 듣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일상인, 이상한 세상의 연습생이었다.


4.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리스너


그 이상한 세상은 때때로 내게도 이상한 지위를 부여했다. 가령 ‘국민 프로듀서’가 그랬다. 나는 <프로듀스 101 시즌 2> 연습생들이 중학교 여자 탈의실 벽과 사물함에 도배되고, 음악 시간이 끝나면 음악실에 남아 친구들이 빔프로젝터로 ‘NEVER’ 무대를 볼 때도 해당 프로그램만은 보지 않았다. 그땐 그냥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게 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프로그램이 주는 모순이 싫었던 것 같다. 프로그램 속에서 조명되는 것은 개개인의 피나는 노력, 당연하게도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무대를 올려야 하는 압박, 높은 압박 속에서도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웃어보여야 하는 아이돌적인 면모 등이었는데 나는 그 뒤에 숨어있는 영상의 구도가 싫었다. 왜 저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낼 방에도 카메라가 설치된, 사생활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 놓여 밤잠 없이 연습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낮은 우리를 ‘국민 프로듀서’라고 부르면서 기꺼이 을이 되는지.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서 채널을 돌리는 내가 순식간에 갑이 되는 그 순간이 싫어서 나는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냥 팬이나 리스너이고 싶었지 ‘국민 프로듀서’씩이나 되고 싶지는 않았다.


케이팝이 발전할수록 모순적으로 그 안에서 노동하는 연습생은 점점 힘든 환경에서 근무하게 된 셈이다. 연습생은 트레이너와의 관계에서도 을이었고, 소속사와의 관계에서도 을이었고, 이따금 만나는 방송사 사람들에게도 을이었는데 이제는 국민들에게도 을이 된 것이다. 자꾸만 을에서 병, 병에서 정으로 밀려나는 연습생. 아이돌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존재들. 이들이 아이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갑이 될 리가 없다. 고난 끝에 데뷔해도 그들은 여전히 처음 보는 방송국 관계자 앞에서 90도로 인사하고, 길 가다 만나는 낯선 일반인에게도 웃으며 응대한다. 이상한 나라의 연습생은 사회에 나와서도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이 된다. 꿈이라는 흰 토끼를 쫓아가던 이들도 이제는 바깥세상으로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트 여왕의 논리 없는 꾸짖음을 피해, 이제는 문 속 열쇠 구멍을 통해 정상적인 세상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팬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세상에 함께 들어갔던 나도 이제는 그들과 정상적인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편집위원 오월 (chlsunny@yonsei.ac.kr)



[1] 레드벨벳(Red Velvet) 앨범 ‘The ReVe Festival: Finale’ 타이틀곡 <Psycho>의 가사

[2] 그룹 내 모든 멤버를 골고루 담는 보통의 방송 카메라와 달리, 오직 한 사람만을 무대 처음부터 끝까지 팔로업한다. 직캠 카메라가 찍은 영상은 이후 음악방송 유튜브에 별도로 업로드 된다.

[3] 팬과 아이돌 간의 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든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이다. 친구와 카톡을 하듯 아이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4] 월급이 안 들어온다고 화를 내던 친구들도 결국 사장님께 보낼 카톡을 쓰기 시작하면 몇 번이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며 친구들의 검수를 받곤 했다. 임금을 받지 못한 건 자기 자신이고 임금을 제때 주지 않은 건 사장인데도.

[5] 견습생은 연습생 직전 단계를 의미한다. 연습생과 달리 기초를 다지기 위한 트레이닝 양이 연습생보다 많아서 커리큘럼은 다르지만, 연습 시간은 더 적으며 연습 공간도 분리되어 있다. 계약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연습생은 계약금이 있지만 견습생은 계약금이 없다. 대신 트레이닝할 때 드는 돈은 따로 없다.

[6] 담배 금지는 성년이 되면 사라진다고 한다.

[7] 회사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범죄에 연루되는 것 등이 그 예시다.

[8] 도내는 서울과 집이 비교적 가까워 집을 오갔지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살던 친구들은 숙소 생활을 해야만 했다.

[9] 이런 경험으로 인해 도내는 불안 장애를 앓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치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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