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8호 13화

[공동기획] 입구가 필요하다

[FINAL CALL] 기고자 흥구

by 연희관 공일오비

행정병으로 군 생활을 했던 나는 늘 다른 병사들과 점심 식사를 하지 않고, 부대 내 장교 및 부사관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단체 일과를 수행하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간부들과 같은 업무 스케줄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나는 그들이 식사 중간에 나누는 이야기들을 주워들었다. 식당 벽에는 걸려있는 커다란 TV 두 대는 항상 뉴스 종합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을 즈음이면 그날 있었던 주요 시사 뉴스에 대해 패널과 앵커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정오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커다란 TV 화면에서 전투복을 입은 낯선 군인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있던 간부들의 시선이 화면으로 쏠렸다. TV 속 군인은 본인이 성소수자이자 트랜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용히 TV를 보던 간부들이 말을 한 마디씩 얹었다. “근데 저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전역 처리 되는 건가?” “군 생활 이어서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남군 여군 애초에 선발 제도가 다른데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마치 전문가인 듯 TV 속 이야기를 사건으로 분석했다.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듯 차가운 태도였다.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일을 들은 것 같은 태도로 몇몇은 관심 없다는 듯 반찬을 뒤적이며 말했다. 나에게 의견을 물을까 잔뜩 긴장한 채로 밥을 먹었다. 다 먹은 식판의 물기를 털며 1년도 넘게 남은 군 생활 동안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1년도 넘게 지나 전역을 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 나는 그 날 TV에서 보았던 군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낯설었던 그녀가 익숙해질 만큼의 시간동안 그녀는 싸워왔다. 변희수 하사는 트랜스젠더 군인이 성별 정정을 진행한 이후에도 군복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싸워왔다.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난 지 곧 2년이 된다. 변희수 하사가 겪은 강제 전역 조치는 위법한 조치였다는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으로 강제 전역 조치가 취소되었으나, 그녀의 죽음은 군 복무 중 ‘일반 사망’으로 남아있다. 복무 중 ‘일반 사망’은 본인의 고의·중과실 또는 위법행위로 숨진 경우에 해당하며, 복무 중인 군인이 사망할 경우, 순직 처리가 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라고 한다. 그녀의 죽음에는 본인 아닌 국방부와 군의 ‘고의·중과실 또는 위법행위’만 존재했음에도, 육군 보통전공사상심의위원회는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일반 사망’ 분류를 한 것이다.[1]


“저는 인권 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변희수 하사 기자회견문 중에서, 2020.01.22.)[2]


변희수 하사는 육군의 강제 전역 결정이 발표된 날 위와 같은 말이 담긴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변 하사가 말했던 ‘임무와 사명’은 대한민국 군에 소속된 군인으로서 가지는 국가와 국민을 보위하는 임무였을 것이다. 공동체와 국가를 지키는 군인의 사명은 “조국 또는 민족을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며, 궁극적인 시민의 의무라고 여겨져 왔다”(Yuval-Davis, 1985 ; 1991b, 니라 유발 데이비스, 2012에서 재인용). 즉 군대는 국가를 구성하는 주요한 틀이자, 국가가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군대는 남성성을 담지한 공간으로 여겨지곤 한다. 특히 “군대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말이 예시하듯, 한국의 군대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내가 느꼈던 군대의 첫인상도 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군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육군 훈련소 30연대의 단체 샤워장이었다. 머리를 박박 깎은 백 명 가까운 남자들이 ‘왼발’ 이라는 구호 아래 발을 맞춰 샤워장으로 향했다. 나는 발을 맞추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조교의 구령에 규칙적으로 발을 맞춰야 하는데 내 발은 자꾸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였다. 다른 남자들은 익숙한 듯 쉽게 발을 맞췄다. 다들 어릴 때 군대 캠프라도 다녀온 걸까. 태권도 학원이라도 다녔어야 했나 생각했다. 맨 앞에 선 조교는 샤워장 상태를 힐끔 확인하고,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샤워 시간 12분을 부여했다. 군인 만들기의 첫 단계는 분 단위의 시간에 반응하는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훈련병들은 질세라 샤워장 안으로 달렸고, 부서지지 않고 멀쩡한 샤워기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매일 같이 펼쳐졌다. 훈련병들은 훌러덩 입던 옷을 벗어 던졌고, 순식간에 백 명 가까운 남자들이 헐벗은 몸을 드러냈다. 나는 뒤쪽에 서서 누가 볼세라 주춤주춤 옷을 벗었다. 무엇부터 벗어야 하지- 라는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맨 몸이 되었다. 늦게 샤워장에 들어가면 늘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한 번은 자리를 찾는 나를 본 다른 남자가 내 팔뚝을 잡아챘고, 나는 당황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저 다 씻었어요. 여기서 씻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시계를 흘끔 보고, 6분 정도 시간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몸을 닦았다. 햇빛에 붉게 익은 내 몸이 거울에 보였다. 내 몸 뒤로 백 명 가까운 남자가 나체로 서 있었고, 나는 그런 상황에 매일 같이 놓일 때마다 괜히 의심을 받을까 시선을 아래로 거두었다. 거울 속 내 몸은 다른 남자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몸을 하고 있었다. 내가 군대에 와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내 몸은 남자의 것이었다.


군대는 하나같은 단체를 중시한다. 유사시 발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단합과 질서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훈련소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군대 안에서는 절대 튀지 말고 중간만 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튀는 몸들이 있다. 남성성을 지닌 대한민국 군대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전혀 동질적이지 않다. 왼발을 내밀어야 하는 순간에 자꾸만 오른발이 나가는 사람도 있고, 거리낌 없이 옷을 벗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퀴어(queer)’도 있다. 단합과 규칙이 가장 중요한 공간에서 자꾸만 엇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까.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로 연 글은 대한민국의 ‘병역’ 제도와 ‘퀴어’ 의 삶 사이의 긴장으로 이동한다. 다시 말해 나는 “누가 국가를 지킬 자격이 있는가”를 규정짓는 병역법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군대 속의 퀴어의 분투(奮鬪)를 다룰 생각이다.


불명확했던 나의 퀴어한 정체성은 군대 내에서 명료해졌다. 이는 시간적 우연이 아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가 갖고 있는 특성과 형질 - 예컨대 표면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려는 경향 혹은 군인의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병사 생활 관리 - 과 ‘퀴어’함의 우연한 마찰과 조우 속에서 가능했다. 이를 자세히 그리기 위해 경험과 이론을 더불어 서술하고 싶다. 이를 통해 군대란 체계가 지닌 국가 통치의 기술을 분석하고, 이론적 논의로 드러나지 않는 퀴어-군인이 지닌 삶-현실의 복잡성을 드러내려 한다. 즉 국가의 통치 전면에 있는 ‘군대’의 견고한 통치 기술을 휘젓는 ‘퀴어’ 군인의 정치적 함의를 고민하려 한다. 나아가 드러나지 않는 신체(혹은 드러날 수 없는 신체)의 연대와 정치의 가능성을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조건들이 파괴되고 와해된” 상황에서 “강압의 상태에 놓여 있는 신체들에 의해 실행되는 집회”(주디스 버틀러, 2020 : 36)의 의미를 찾는 버틀러의 말을 빌려 길어 올릴 것이다.


*


제3조(병역의무)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3]


위 문장은 대한민국 병역법 제 3조의 일부이다. 문장은 국가 내에서 누가 병역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며 남성이라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나는 해당 조문의 ‘국민’과 ‘남성’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춘다. 즉 국가는 병역법을 통해 병역의 의무가 있는 자 - 국민이자 남성 - 를 구별 지으면서, ‘국민’됨의 자격을 규정하고, 개인의 섹슈얼리티 규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제 전쟁은 보호해야 할 군주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모든 이의 생명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국민 전체는 생존의 필요라는 명목으로 서로 죽이도록 훈련받는다. 살육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그토록 많은 체제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이게 하면서 그토록 많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명과 생존, 육체와 종적의 관리인으로서의 역할 때문이다.(미셸 푸코, 1976 : 147)


푸코가 자신의 저작 『성의 역사』에서 말했듯, 군주가 지닌 권력의 원천이자 상징이었던 군대는 현대 국가에서 모든 생명, 다시 말해 국민 모두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운영되고 있다. 군주 1인이 아닌 국민 모두를 지킨다는 명분은 군대가 행하는 사살과 폭력 행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국가는 ‘국민 모두를 지키는’ 군대를 운영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생존, 다시 말해 치안의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치안의 관리자 역할을 자임하는 국가가 그 역할을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군대는 신성한 곳이 된다. 그리고 군인의 죽음은 국가 내에서 그 어떤 죽음보다 숭고하고 신성한 죽음으로 여겨진다. ‘신성한 죽음’이라는 군인 정신을 개인에게 이식하는 일은 군인 만들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코로나 19로 군 역시 격동을 겪을 당시, 휴가를 다녀온 병사는 격리 생활관에서 2주의 시간을 보내고 기존 생활관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격리 기간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기 안 좋았는지, 간부들은 병영 TV를 통해 육군 뮤지컬 시청 후 감상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했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찾는 유해 발굴병이 자신의 할아버지 친구들의 유해를 찾는 스토리였다. 2018 9·19 군사합의를 통해 수십 년 간 진행되지 못한 DMZ 일대의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되던 시기였던 만큼, 현실과 맞물려 해당 뮤지컬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감정을 그대로 글에 담았고, 간부들은 글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내친김에 직속 사령부에서 진행하는 육군 핵심가치 백일장에 참가했다. 당시 육군은 선진 병영 전환의 일환으로 책임완수, 상호존중, 위국헌신을 3대 핵심가치로 선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나는 작은 책임일지라도 그것을 완수하는 것이 곧 위국헌신의 길임을 깨달은 20살 청년이라는 서사를 사용하여 군이라는 곳에서 주어지는 임무와 책임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작성해 대상을 받았고, 커다란 휴가 포상을 받았다. ‘쓰리스타’ 의 표창을 받아온 나를 간부와 병사들은 다른 눈빛으로 보았다. 군 생활 20년 한 본인도 못 받아본 것이라는 말이 오갔다. 단숨에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바람직한 군인이 되었다. 휴가를 받으려고 잔뜩 포장한 글을 쓴 것이라고 여겼지만, 군대의 신성함은 그렇게 내게 자연화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성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는 누구일까. 위의 조문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국민이자 남성은 마땅히 ‘신성한 죽음’을 맞이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무는 ‘시민’ 됨의 자격과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Snyder(2003 : 187)는 병역과 ‘시민’ 됨의 자격의 관계에 대해 ‘시민-군인 전통’(citizen-soldier tradition)이란 용어를 통해 설명한다. ‘시민-군인 전통’에 따르면 시민이 사회 속에서 권리와 자유를 원한다면, 그들은 사회를 위협하는 내부·외부의 비민주적 적의 위협으로부터 마땅히 사회를 지킬 의무를 공유해야 한다. ‘비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북한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한민국의 경우, 이와 같은 ‘시민-군인 전통’을 적용하기에 더욱 적절해 보인다. 더하여 대한민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이유로 ‘내부의’ 시민들에게 폭력을 자행했던 대한민국 현대사를 비추어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시민-군인 전통’은 더욱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대 내 퀴어는, 다시 말해 남성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른 몸은 ‘시민-군인 전통’안에서 시민이자 군인이 될 수 있을까?


*


102의3. 성별불일치(gender incongruence)

주: 생활기록부, 정밀심리검사결과 등의 자료와 정신건강의학과적 평가 등으로 성별불일치 상태가 확인된 사람 가운데 사회적 변화나 신체적 변화로 인한 군 복무의 적응가능성을 판단한다.[4]


위 문장은 병역법상 ‘병역판정신체검사등 검사규칙’ 중 ‘질병·심신 장애의 정도 및 평가 기준’의 일부이다. 해당 규칙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이나 누군가의 ‘퀴어한’섹슈얼리티는 성격 장애의 일부로, 병역 면제의 사유가 된다. 2021년 2월 기존 사용하던 ‘성 주체성 장애’라는 용어를 ‘성별 불일치’로 변경하였으니 한 걸음 나아갔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성격 장애’의 항목 중 하나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아 개선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퀴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군 입대를 준비했던 나 역시 위의 문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나는 심리 검사 문항 중 “나는 동성(남성) 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라는 문항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를 체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서웠다. 군 입대가 거부되는 상황부터, 입대 이후 소위 말하는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중점 관리를 받는 상황까지 상상했다. 결국 ‘그렇지 않다’를 선택한 후, 해당 문항을 넘어갔다.


해당 문항에서 ‘그렇다’를 체크했을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이어지는 군 생활에서 ‘그렇다’ 이후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우리 군에서는 병사들의 안전한 군 생활을 목적으로 병사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인성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나 역시도 해당 검사를 분기 별로 실시했으며, 해당 검사에는 또다시 “나는 동성(남성) 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라는 문항이 등장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대신 ‘그렇다’를 선택했다. “별 일 없을 것”이란 마음이었으나, 검사를 마치고 며칠 뒤 소속 부대의 중대장은 나를 따로 호출했다. 그는 나에게 해당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며, 왜 ‘그렇다’를 선택했는지를 물었다. 당황스러워 웃음을 보이자, 그는 내게 “장난이었지?”라고 물었으며 이에 나는 설명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종종 남성에게도 호감을 느끼며, 그것이 성적 매력인지는 모르겠다고 답을 얼버무리자, 중대장은 진지한 답변이었다면 정기적인 상담 등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맥락의 답변을 건넸다. 당시의 대화는 짧은 대화였지만, 군대 내에서 가시화된 퀴어의 자리는 없겠다는 사실을 감각하게 했다.


당시 내가 느낀 감각은 사건으로서 실재(實在)이기도 했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우리 군은 지난 2017년 군 내 성소수자를 색출하려 했던 전력이 있다. 이는 군형법 제 92조 6항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제92조의6(추행)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5]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6]


위 조항은 군형법 제 92조 6항이다. 위 조항은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추행을 금하기 위한 조항이다. 허나 추행의 강제성이나 ‘그 밖의 추행’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이 조항이 존재하고 있다. 즉 범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형법의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불명확한 법은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진,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섹슈얼리티/욕망을 통제하고, 동시에 퀴어한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들 자체가 공유되거나 발화되지 않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위 조항은 동성 군인 간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성적 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2017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근거 조항으로 활용되었다. 2017년 당시 육군 중앙수사단은 육군 성소수자 군인을 위 조항을 근거로 색출 및 조사했다. 조사 방식은 성소수자의 데이팅(dating)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A 군인을 조사하며, A 군인이 퀴어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연락을 나누고 만남을 지속한 다른 군인 B와 C를 조사하는 방식이었다. 총 23명의 육군 군인이 추행 혐의로 입건되었으며, 그 중 9명은 재판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군형법상 추행죄 처리 기준’이란 문서를 군 검찰에 하달하며, 위 색출 과정을 적극 지원했다. 성소수자 병사의 권익 보장을 위한 신상비밀 보장, 아웃팅(outing) 방지, 차별 금지를 언급한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 중 제7장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 조항은 위 실재(實在) 앞에서 무색했다.[7]


대한민국 군 안에서 퀴어의 자리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퀴어-군인이라는 사실은 존재 자체로 불법인 신체가 되어 가는 일일 것이다. 혹자는 동성인 군인만 만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불법과 비불법의 경계 위에 서 있다는 감각은 퀴어-군인에게 공포감을 안긴다. 나 역시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가에 따라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 앞에 적지 않은 절망감을 느꼈다. 불법의 유무를 가르는 근거는 표면적으로 ‘군형법 제 92조 6’에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누가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국가의 성스러운 질문에 기반하고 있다. 김청강(2016)이 지적했듯,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선별”하는 병역법은 섹슈얼리티를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정상’의 신체와 죽을 자격이 없는 ‘예외상태’의 신체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제를 바탕으로 퀴어의 신체는 탈북 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성의 신체와 같이 국가를 지키기에는 고유하지도, 동질적이지도 않은 신체, 나아가 불법의 신체가 되어 그 자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내가 퀴어라는 사실만 숨기면 군 생활은 평탄할 것 같았다. 훈련소 수료 후 전입 간 자대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나를 반겼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남성 사회와 마찰하지 않은 채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나를 자신들의 분대(군대 내 가장 작은 생활 단위)에 데려오려고 노력했다. 맡은 업무를 군말 없이 해내고, 싹싹하게 구는 나를 부대 간부들도 좋아했다. 군대는 자기 계발을 강조했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며, 핸드폰만 만지다가 나가는 애들이 제일 한심한 애들이라는 말이 오갔다. 남성적 언어가 나를 침범하는 것을 막고 싶어 시작했던 책읽기는 나를 ‘군 생활 중에도 자기계발에 최선을 다하는 병사’로 만들었다.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들키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았다. 잘 숨겨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마음을 먹을수록 내가 퀴어라는 사실은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나와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나에게 성적인 농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쁘장하게’ 생겨가지고- ‘너가 여자였으면 내가 널 어떻게-’로 시작하는 농담들. 매우 불쾌하고 모욕적인 말들이 분명했으나, 동시에 내가 남자들에게 ‘팔린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 같았다. 분명히 불쾌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런 말을 듣는 내 모습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동시에 혐오적인 말들도 내뱉었다.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았다. 같은 부대의 동료 병사가 ‘게이 같다’고 말하며 상상하면 할수록 더럽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분명 며칠 전엔 나를 ‘먹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대란 곳과 나의 불화는 점점 커졌다. 사람들이 하루는 나를 부러워했고, 하루는 나를 혐오했다. 불화 중에 찾은 군 생활 상담관은 아무와도 이야기 할 수가 없다는 내게 ‘영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교회를 다녀볼 것을 권유한다. 상담을 그만두었다. 내 영성(spirituality)은 내가 퀴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잭디(퀴어 데이팅 어플)와 틴더를 훑어보다가, 자기가 군인임을 숨기지 않고 번개 상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사람들은 걱정 되지도 않나- 라고 거리를 두었다. 트위터에는 남자 군인끼리 관계를 맺은 이야기들이 타래 안에 풀려 있었다. 팔뚝까지 전투복 상의를 걷어 입고, 고무링으로 알맞게 전투복 하의 밑단을 정리해 일자로 곧은 다리를 뽐내는 군인이라는 사실이 나의 ‘팔림’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지했다. 하루는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어플상에 드러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쌓이는 채팅이 무서워 황급히 계정을 삭제하고 어플을 삭제했다.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선임 중 한 명이 어플에서 나를 발견했다.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자기도 ‘그 쪽’이라고 내게 말했다. 동시에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을 말했고, 나는 그 요청을 거절한 채 자리를 떴다. 같은 퀴어도 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막막하게 만들었다. 막막함을 피하고자 또 다른 퀴어들을 찾으려 애썼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퀴어들. 나와 같이 다른 남자들을 욕할 수 있는 퀴어들. 시시콜콜한 남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퀴어들이 필요했다. 한 명은 나를 먼저 알고 찾아왔고 다른 한 명은 무례하지만 내가 먼저 알아보았다.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았다. 동시에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내가 욕하려는 것을 함께 욕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무해함 덕분에 나는 작게나마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 다시 말해 권리의 유무와 관계없이 퀴어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군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희정(2016)의 글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는 남성의 “완전한 시민권(full citizenship)” 획득을 위한 필수 과정이며, 이는 타국 영주권을 가진 남성들이 자원 입영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퀴어 정체성을 지닌 남성 또한 “완전한 시민권(full citizenship)” 획득 앞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 자신의 존재를 감추거나 일부만 드러낸 채 병역 의무를 수행한다. 누군가를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 둔 군주의 생사여탈권에서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둘’ 권리, 나아가 죽음 ‘속으로 몰아가는’ 생명통치의 기술을 말하는 푸코(1976 : 147-149) 의 분석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은 꽤나 섬뜩하지만, 죽음 ‘속으로 몰아가는’ 권력 앞에 죽지 않은 퀴어는 죽게 ‘내버려진’ 군 안에서도 삶을 기꺼이 이어나가고 있다.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군대 내 삶을 이어나갔다.


군대에서 진급을 위해서는 군 자격인증평가는 필수였다. 20발의 총을 쏴 16발 이상 명중해야 했으며, 2분 당 72개의 팔굽혀펴기와 80개가 넘는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11분 안에 3km를 달려야 했다. 매달 하는 자격인증평가는 나의 몸이 얼마나 남성적이고 강인한 신체가 되었는지 측정하는 것 같았다. 평가항목 중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꾹 참고 달리는 것에 자신이 있었던 것을 빼고, 근력과 맷집이 있어야 하는 항목들은 여지없이 낙제점이었다. 총을 쏠 때는 몸이 덜덜 떨리고 귀는 먹먹했다. 간부들은 평가 기준에 대해 군 생활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평균 이하의 근력을 가진 신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나의 몸은 아주 아래의 근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가장 쓸모 있는 존재로 칭찬받던 나의 몸은 사격장과 체력 평가장 안에서 가장 쓸모없는 몸이 되었다.


근육으로 부푼 몸이 가지고 싶어서 매일 저녁 체력 단련장에 갔다. 무거운 바벨을 몇 번 들어 올리자 양 쪽 가슴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거울 앞에서 차오르는 몸을 오래 쳐다보았다. 꽤나 남자의 몸 같았다. 그러다가 벌컥 체력 단련장의 문이 열리고, 진짜 남자의 몸을 한 무리들이 들어오면 나는 운동이 끝난 듯 짐을 챙겨 체력 단련장을 빠져 나왔다. 대신 산을 자주 올랐다. 능선을 따라 전화 통신선을 설치하는 것이 내 업무였기 때문이다. 몇 가지 공구가 든 가방과 전선 뭉치를 어깨에 들쳐 메고 산을 올랐다. 등산로로 닦인 길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고 가팔랐다. 날카로운 돌멩이가 발에 자꾸 채였다. 오르막에 숨이 차올라 목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었다. 날씨라도 추운 겨울이면 몸의 끝에서부터 추위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능선에 오르면 멀리까지 보였다. 매일같이 오르면 매일같이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능선에 오르면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소리를 크게 질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답답할 때면 작업할 것이 있다며 산을 올랐다.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뛰어다니며, 발목에 힘을 꽉 주고, 단단하게 발을 내딛고, 다시 한 발을 앞으로 크게 내딛었다. 속도가 붙으면 전투화와 흙이 부딪히는 소리에 맞추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한참 소리를 지르고 산을 내려오면 또 며칠은 살아졌다.


*


전역 전 휴가를 나가는 날, 그니까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삶을 이어나갔던 부대를 떠나는 날이었다. 행정보급관, 그니까 나의 직속상관이자 나의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간부는 아침 일찍 짐을 싸고 있는 나를 찾았다. 언제나 그랬듯 나의 침대를 발로 툭툭 차며, “가자, 태워줄게”라고 말했다. 내가 생활했던 곳은 부대 내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했기에, 부대 출입구까지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했다. 그의 차에 나의 짐을 가득 실었다. 무슨 짐이 저렇게 많은지 물었고, 나는 대부분 책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것도 적당히 읽어야지”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1년 반이나 같이 지냈지만, 업무 실수를 할 때마다 나를 엄하게 혼낸 그였기에 내 몸은 그 앞에서 늘 위축되었다. 그는 어색했는지, “나 아무나 차 안 태운”다며, 입을 열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감사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부대 출입구에 부모님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행정보급관은 부모님을 보자 차에서 내려 그의 차에 있던 나의 짐을 부모님의 차로 옮겨주었다. 부모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흥준이 정말 잘 생활하다 갑니다. 덕분에 고마운 일이 많았습니다. 격려 많이 해주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그의 손에서 부모님의 손으로 옮겨진 나의 짐은 꽤 많은 것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손에 붙들린 삶. 하지만 여전히 나를 모르는 손.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를 가장 가깝게 본 사람이니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지 않았을까. 알았어도 ‘잘 생활하다 간다’고 말해주었을까. 나는 그가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걸 알고도 나를 지지해줄 간부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그걸 말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렇게 난 군대를 살았고, 군대를 나왔다.


그러니 이 글은 군대를 나온 지 2년이 지나, 그녀의 소식을 접한 것도 2년이 지나, 군대 안에서는 언어화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생각들을 갓 배운 이론들과 함께 줄줄이 풀어놓은 글이다. 이론과 경험을 구분 없이 이어 서술하는,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을 허물고 싶다는 마음에서 등장했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퀴어-군인들의 인권을 더욱 보장하라는 당위적 주장으로 맺고 싶지 않았다. 소수자 정치의 언어가 시민권, 다시 말해 권리의 언어로 치환되는 것이 지닌 문제는 소수자의 삶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퀴어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퀴어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섹슈얼리티와 성생활의 부분은 사적인 영역에 남게 되며, 이는 퀴어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를 가져온다. 이는 허성원(2019)의 주장과 결을 같이 하는데, 성소수자 정치가 시민권 담론을 주장하고 그에 의존할수록 시민권의 범위를 넓혀 이성애규범성을 교란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권리 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성소수자의 욕망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퀴어-군인이 가진 정치적 가능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을 흩뜨려 놓아야 한다. 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은 공적인 것의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는 소수자들이 안과 바깥을 오가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퀴어-군인은 정치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사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성적 실천들에 자신의 존재 기반을 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군대와 같이 국가 통치를 위해 존재하는 가장 ‘공적’인 곳에 있다면 그들이 지닌 정치적 함의는 더욱 그 물결을 넓혀갈 것이다. 국가가 자신들의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 적절하고 치밀하게 짜놓은 통치 테크닉인 ‘군대’를 자기 마음대로(혹은 어쩔 수 없이) 휘젓는 군인-퀴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게이 데이팅 어플에서 더 잘 팔리기 위해 마음껏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여전히도 데이팅 어플을 통해 군대 내에서 몸을 나눌 상대를 찾는 사람들.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어떻게든 모여 다른 남성들과 기존 체계를 씹고 모욕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자크 랑시에르(2008, 2015 ; 허윤, 2016에서 재인용)가 말하는 치안과 정치의 구분을 다시 생각한다면 언급한 사람들의 행위와 삶은 정치의 근간일 것이다. 즉 “몫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 짓고 그 분할을 유지하는” 것이 치안이라면, 정치는 몫이 없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기존의 분할에 균열을 내고, 본인들의 몫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존 체제의 규율과 질서에 물음을 던지고, 균열을 가하며 그 속에 존재하는 갈등과 억압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군대 내에서 살게 ‘내버려’진 사람들, 혹은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이 이어나가는 삶이 정치의 일부 혹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들로 이 글을 말끔히 맺을 수는 없다. 군인-퀴어의 군대 내 삶은 정치적 가능성 혹은 저항의 언어에도 완전히 포섭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처음을 열었던 변희수 하사는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고 싶어 했다. 군대가 퀴어에게 억압적인 체제일지라도, 그 체제 내의 당당한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군대(억압)- 퀴어(저항)의 서사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녀에게 군은 생계이자 목표고 그 자체로 삶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퀴어니까. 그 자체로 정치적이야” “우리의 삶은 저항이고, 그러니까 정치적이야”라는 말로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럼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군인-퀴어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장뿐 아니라 군인-퀴어가 가진 삶의 양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는 ‘다양성’ 과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담론과 헤게모니에 대항할 우리의 담론을 구축해야 한다. 상탈 무페(2018)의 말처럼 대항 담론을 바탕으로 기존 담론과의 적대와 갈등을 발생시켜야 기존 현실의 구도를 바꿔낼 수 있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Don’t ask, Don’t tell, Don’t pursue, and Don’t harass”(묻지도, 말하지도, 알아내지도, 해치지도 말아라). 위 문장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으면 군 복무를 허가하고, 군에서도 병사의 성 정체성에 관하여 묻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김용민, 2020 : 230) 미국의 법안이며, 미국의 군대에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묻고, 더 말하고, 서로를 알아차리고(noticing), 듣고, 지지해야 한다. 여기서의 말하기는 단지 언어화되어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초반에 언급했던 주디스 버틀러(2020)의 말처럼, “모든 이가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16쪽)기에, “나설 수 없는 이들, 나설 수 없도록 제한당하는 이들 곧 강압의 상태에 놓여 있는 신체들”(36쪽)의 말하기들을 더욱 알아차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할 수 없어 침묵하는 사람들. 매일 같이 일기를 쓰고 기록하는 사람들. 저항할 방법이 없어 밥을 먹지 않기 시작한 사람들. 위험해도 남자를 만나고 몸을 섞는 사람들.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숨어서라도 이야기를 키우는 사람들. 다른 남자들을 욕하고 씹는 사람들. 이러한 군인-퀴어들이 각자 만들어내고 있는 각자의 입구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알아차려야 한다. 정치의 가능성은 이 입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 묻지도 말하지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입구를 알아차리는 마음들은, 자신이 가까스로 만들어낸 입구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현실이 변화하길 바랐던 변희수 하사의 마음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나의 태몽이 무엇이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결혼하는 신부한테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받는 것이 나의 태몽이었다고 설명했다. 문득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시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신부가 건넨 프리지아 꽃 한 다발로 정해진 나의 운명. 초음파 사진에서 중요 부위를 늘 가리고 있어 핑크색 옷을 준비해야겠다고 말한 의사가 뒷걸음질로 예시한 운명. 주춤주춤 몸을 가리며 다른 남자들과 섞여 있을 운명. 날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자꾸 붙들리게 될 운명. 남자들이 익숙한 제도 바깥에서 다른 입구를 만들어 보겠다고 분투할 운명. 우리만의 입구를 통해 제도의 안팎을 가로지르길 소망할 운명. 그러한 운명이 나를 전혀 모른 채 나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서 시작했다는 감각은 오히려 나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나를 붙들고 있는 손들을 꼭 잡고, 여기 (새로운) 가능한 세계로 나아가자며 우리의 입구를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경향신문 사설,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이 사망 원인인데 순직 아니라니”, 경향신문, 2022.12.01. (https://m.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212012043025#c2b)

[2]김민제, “공개석상 나온 성전환 하사 “육군에 돌아갈 때까지 싸울 것”, 한겨레, 2020.01.2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5474.html)

[3]국가법령정보센터, “병역법” (2023.2.8.접속)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B3%91%EC%97%AD%EB%B2%95

[4]국방부, “병역판정신체검사등 검사규칙 중 ‘질병·심신 장애의 정도 및 평가 기준”, 2021

[5]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兵), 군무원, 군적(軍籍)을 가진 군(軍)의 학교의 학생ㆍ생도와 사관후보생ㆍ부사관후보생 및 「병역법」 제57조에 따른 군적을 가지는 재영(在營) 중인 학생, 소집되어 복무하고 있는 예비역ㆍ보충역 및 전시근로역인 군인이 여기에 해당한다.(국가법령정보센터 참고)

[6]국가법령정보센터,“군형법”(2023.2.8.접속) https://www.law.go.kr/%EB%B2%95%EB%A0%B9/%EA%B5%B0%ED%98%95%EB%B2%95/%EC%A0%9C92%EC%A1%B0%EC%9D%986

[7]나경희, “국제앰네스티로 간 군대 성소수자 문제”, 시사인, 2019.07.2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122)



참고문헌


흥구, 「입구가 필요하다」

단행본

안준범 역,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저, 『읽기』, 리시올, 2022

박혜란 역, 니라 유발-데이비스 저, 『젠더와 민족』, 그린비, 2012

신은영, 문경자 역, 미셸 푸코 저, 『성(性)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나남출판, 2004

이규현 역, 미셸 푸코 저, 『성(性)의 역사 1 : 앎의 의지』, 나남출판, 2004

김응산, 양효실 역, 주디스 버틀러 저,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창비, 2020

양창렬 역, 자크 랑시에르 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길, 2008

진태원 역, 자크 랑시에르 저, 『불화 : 정치와 철학』, 길, 2015

Mouffe, C. For a Left Populism, La Vergne: Verso, 2018

논문

김용민, 「성전환 수술 부사관 강제 전역의 의미와 과제」, 『법학논총』, 27(1), 225-264, 2020

김청강, 「국가를 위해 죽을 “권리” : 병역법과 "성(聖/性)스러운" 국민 만들기(1927-1971)」, 『법과 사회』, 51(0), 251-280, 2016

최희정, 「피할 수 없는 “자원” 입영: 영주권자 청년의 시민권 추구로서의 군 복무」, 『한국문화인류학』, 49(3), 137-181, 2016

허성원, 「정치를 새롭게 읽어내는 퀴어정동정치: 한국 퀴어퍼레이드를 중심으로」, 『문화와 사회』, 27(3), 7-48, 2019

허윤, 「1950년대 퀴어 장과 법적 규제의 접속: 「병역법」ㆍ「경범법」을 통한 섹슈얼리티의 통제」, 『법과 사회』, 51(0), 229-250, 2016

Nira Yuval-Davis, 「Front and Rear: The Sexual Division of Labor in the Israeli Army」, 『Feminist Studies』, 11(3), 649-675, 1985

Nira Yuval-Davis, 「The Citizenship Debate: Women, Ethnic Processes and the State」, 『Feminist Review』, 39, 58-68, 1991

R. Claire Snyder, 「The Citizen-Soldier Tradition and Gender Integration of the U.S. Military」, 『Armed Forces & Society』, 29(2), 185-204, 2003

뉴스 자료

경향신문 사설,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이 사망 원인인데 순직 아니라니”, 경향신문, 2022.12.01. https://m.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212012043025#c2b

김민제, “공개석상 나온 성전환 하사 “육군에 돌아갈 때까지 싸울 것”, 한겨레, 2020.01.2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5474.html

나경희, “국제앰네스티로 간 군대 성소수자 문제”, 시사인, 2019.07.2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122

DB

국가법령정보센터, “군형법” (2023.2.8.접속)

https://www.law.go.kr/%EB%B2%95%EB%A0%B9/%EA%B5%B0%ED%98%95%EB%B2%95/%EC%A0%9C92%EC%A1%B0%EC%9D%986

국가법령정보센터, “병역법” (2023.2.8.접속)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B3%91%EC%97%AD%EB%B2%95

기타 자료

국방부, “병역판정신체검사등 검사규칙 중 ‘질병·심신 장애의 정도 및 평가 기준”, 2021


흥구(heungjun18@yonsei.ac.kr) [기고자]



keyword
이전 12화[공동기획]복수 複數의 여성들, 국가와 가부장제의 교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