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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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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25. 2023

[공동기획] 책이 만들어지는 세계

[우거지다] 편집위원 영원

* 글의 제목은 정영목 역, 헨리 페트로스키 저, 『책이 사는 세계 - 책, 책이 잠든 공간들에 대햐여』, 서해문집, 2021 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책이 만들어지는 세계,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이하 플랫폼P)는 서울시 마포구의 출판문화 진흥과 지역문화 발전을 목적으로 지난 2020년 8월 개관했다. 플랫폼 P는 지하철 홍대입구역 7번 출구 바로 앞의 ‘코-스테이션 (CO-STATION)’이 크게 쓰여져 있는 5층 건물의 2층과 3층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코-스테이션은 홍대입구역 앞에 AK플라자가 세워지며 서울시와 마포구가 기부채납 받은 시설을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1]로서 유관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조성한 출판문화 및 디자인 분야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플랫폼 P의 경우 마포구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고, 플랫폼 P가 사용하지 않는 코-스테이션의 3층 나머지와 4, 5층은 서울시 산하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창업센터(이하 플랫폼 D)가 들어섰다. 플랫폼 P를 같은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는 플랫폼 D와 대별해 보자면, 플랫폼 P는 무엇보다 공모를 거쳐 이곳에 입주해 있는 소규모 출판사 혹은 개인 창작자가 책을 ‘출판’하는 과정 전반을 지원한다는 데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구체적으로는 출판사 등록 기준 창업한지 만 3년이 지나지 않은 작은 출판사와 출판 생태계 내의 다양한 작업자–예컨대 작가, 번역가, 저작권 에이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지원한다. 2020년 개관한 이래로 매년 중순 신규 입주사 공모를 내어 심사를 진행했으며, 선정된 이들에게 작업이 가능한 입주실 혹은 오픈 오피스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왔다. 다만 올해 신규 입주사 공모의 경우 후술할 마포구의 운영 파행으로 인해 기약 없이 연기된 상황이다. 관련해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자, 플랫폼 P의 위탁 운영을 맡고 있는 보스토크 프레스의 서정임 팀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1 | 3층 입주실


    플랫폼 P가 사용하는 3층 일부 공간은 모두 공모를 통해 선발된 입주사들의 입주실과 오픈오피스로 사용되고 있다. 입주실은 총 20개로, 19개의 2인실과 1개의 4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입주실은 나란히 늘어선 개별 방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리벽으로 칸을 질러 공간을 분할해 둔 형태이다. 3층 중간에 위치한 1개의 4인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2인실은 유리벽이 천장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천장이 뚫려 있다. 서정임 팀장은 2020년 5월, 마포구와 계약을 맺고 처음 이 공간을 방문했을 때 입주실이 모두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소음 문제’를 걱정했다며 말해주었다. 


“(저희는 잡지사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 대부분이 소음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유리벽일 때 소리가 통통 튀고 (소리의) 간섭이 많이 일어날 거라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걱정을 했죠. 그래서 이러한 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청에 제안했으나 내부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구조 변경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들이 찾아낸 답은 ‘공동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개인마다 소음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입주사와 대화를 거치며 합의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나갔다.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입주실 벽 소재인 유리의 특성상 소리가 울려서 나며 간섭 효과로 인해 소리가 증폭되어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차근히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다. 조명도 초기에는 출판 노동을 하는 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어두운 조명이어서 밝은 스팟등으로 바꾸고, 공간의 색과 조명의 색온도가 맞지 않아 입주사들이 작업하기 편하도록 색온도를 조정하는 과정도 거쳤다. 


사진 2 | 3층 오픈 오피스  
인터뷰 후 서정임 팀장님의 안내로 3층 입주 공간을 둘러볼 수 있었다. 다만 오픈 오피스의 경우 재실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직접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해당 사진은 플랫폼 P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info_platform_p)에서 가져온 것이다. 외에 모든 사진은 필자가 직접 촬영하였다. 


    오픈오피스의 기본 골자는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 1층의 24시 열람실 B와 유사하다. 높은 칸막이가 쳐져 있는 책상이 마주 본 채 배열되어 있다. 다만 그보다 책상이 가로로 훨씬 더 길고, 공간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개별 사물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역시 마포구청의 초기 계획안에서 보스토크 프레스의 개입 이후 많은 변화를 거쳤다. 마포구청이 처음 구상했던 오픈오피스는 후에 설명할 2층의 워크플레이스처럼 커다란 책상 하나를 입주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플랫폼 P 개관 준비에 한창이던 2020년 5~7월은 코로나가 한창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기에 최소한의 칸막이가 필요했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매월 선착순으로 신청하여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2층 워크플레이스와 달리 3층 오픈오피스는 심사를 거쳐 합격한 입주사들이 사무를 보는 공간이라 제아무리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개인 공간의 마련이 절실했다. 때문에 보스토크 프레스는 가구 디자이너와 함께 개인에게 최소한 확보되어야 하는 책상의 크기가 어느 정도여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존의 계획을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해나갔다. 


사진 3 | 3층 제작 큐레이션


    3층에는 또한 제작 큐레이션이 마련되어 있다. 입주사들이 입주해 있는 공간이니만큼, 다양한 인쇄 제작 용지와 후가공 샘플북을 마련해 두었다. 예전에는 인쇄소에서 용지 샘플을 무료로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샘플북 하나하나를 제지사별로 연락해서 구매해야 한다. ‘출판 창업’을 한 이들이 입주해 있는 플랫폼 P의 특성상 1인 출판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샘플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플랫폼 P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출판 인쇄 제작 용지의 경우 종이의 사양, 종류, 두께(g)에 따라 다양한 용지들을 비치해두어, 이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후가공 샘플북을 마련하기 위해서 서정임 팀장은 “국내사, 수입사 할 것 없이 다 전화해서 샘플을 받았다”며, 이제는 따로 부탁드리지 않아도 샘플북을 가져다주신다고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제작 큐레이션에는 입주사들 중 편집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책들이 사양서(판형, 표지와 내지의 종이, 후가공 등)와 함께 비치되어 있다. 책이 출판되었을 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진 4 | 2층 북&라운지


    시민들이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는 2층은 비지정석 오피스인 워크플레이스와 북&라운지, 그리고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공간들이 여럿 마련되어 있다. 워크플레이스의 경우 시민이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선착순으로 신청하고 사용료를 낸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방문이 가능한 공간은 ‘북&라운지’이다. ‘북&라운지’는 2층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데,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45개 동네 서점과 입주사의 큐레이션이다. 출판 도매상 및 유통사에서 손쉽게 책을 구매해서 쉽게 채울 수 있는 공간을 큐레이션 된 책으로 채운 이유를 그는 “공공의 역할을 고민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유통사를 통해 책을 사서 장소를 채울 수 있죠, 충분히. 그런데 그렇게 채우기는 싫었어요. (...) 그리고 당시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작은 동네 서점들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졌고 또 폐업을 하던 시기이기도 해요. 실제로 (동네 서점 큐레이션에 참여한) 45개 서점 중에 없어진 서점들도 있어요. 그분들께 아주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뭘까, 하다가 동네서점 큐레이션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동네서점 큐레이션은 단순한 동네서점이 추천한 책들의 모음이 아니다. 이곳에는 ‘인터랙티브 아카이브 미디어 시설’이 같이 마련되어 있어, 서점별로 제작된 네모난 아크릴 블록을 미디어 장치의 홈에 올려두면 해당 서점에 대한 정보와 각 책을 추천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장치 한편의 프린트 버튼을 누르면, 해당 내용들을 담은 QR 코드가 프린트되어 나오게끔 되어 있다. 서정임 팀장은 이용자들이 “작은 서점들이 이렇게나 많이 도처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됨과 동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미디어 시설을 책 큐레이션과 더불어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네서점 큐레이션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다양한 형태의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고 한쪽 벽면에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입주사 큐레이션, 즉 플랫폼 P를 거쳐 간 입주사들이 이곳에서 작업하며 만들어 낸 출판물들이 서가에 꽂혀있다. 흔히 떠올리는 네모반듯한 판형의 종이책 외에도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전시된 만큼 입주사마다 전시 방법도 다양하다. 


    이외에 2층에는 다목적실, 소강의실, 멀티미디어실, 편집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공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에도 숱한 조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예컨대 초기의 계획안대로 하면 회의실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 지금의 소강의실로 몇 회의실을 바꾸는 것, 멀티미디어실 내부에 조명을 설치해 책 홍보용 사진을 찍기 용이하게 세팅을 해두는 것, 그리고 코로나 시기 양질의 비대면 강연이 차질 없이 송출될 수 있도록 크로마키를 세워 배경을 만들고 간편하게 온라인 강연(ZOOM) 조작을 할 수 있는 기기를 찾아내는 등 플랫폼 P 내의 크고 작은 공간들에 모두 위탁 운영사인 보스토크 프레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플랫폼 P의 시간을 두텁게 읽어내기 


    마포구가 플랫폼 P라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이상으로 위탁 운영사인 보스토크 프레스가 공간을 입주사들과 부단히 가꾼 다음에야 지금의 출판 생태계 내 다양한 소규모 창작자들의 단단한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플랫폼 P가 마포구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지난 과거 마포구 내 크고 작은 출판 및 디자인 회사들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던 덕이 크다. 본 절에서는 플랫폼 P의 시간을 개관에서부터 지금, 3년으로 한정해서 보지 않고 플랫폼 P를 마포구 출판문화 태동의 긴 시간 속에 위치시켜 보고자 한다. 


    1978년 8월, 출판인들은 근대화된 도서 일원화 유통 시스템을 출판계에 정착시키고 한 울타리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마포구 신수동 일대에 출판 단지를 조성했다.[2] 마포구가 서울 시내의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저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범우사, 계원출판사 등 출판사 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단지 내 공간을 마련해 두었고, 단지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출판사가 하나둘 모여들어 이른바 ‘출판계의 마포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1989년, 단지 내에 입주해 있던 출판사들이 입주 기간 크게 성장하여 각자 신사옥을 짓고자 단지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출판사인 열화당, 문학과 지성사 외에도 출판유통협의회, 출판협동조합 등의 출판단체도 각자 사옥을 마련해 흩어지자는 안에 동의하여, 마포출판단지는 1989년 5월경 해산하게 되었다.[3]


    마포 출판단지가 해산하던 경의 기사에서는 “출판단지가 사라짐으로써 출판 벨트는 서서히 무너지고 출판의 ‘마포 시대’도 막을 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2005년 경기도 파주에 출판단지가 완성되면서 이 같은 예측은 현실이 된 듯해 보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파주에서 마포구로 돌아온 11곳의 중·대형 출판사가 교통의 요지인 마포로 다시 돌아왔다.[4] 이외에도 출판사들이 대거 파주로 이동할 때 마포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출판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마포구가 지리적으로 제작과 물류의 중심인 파주와 대형 서점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를 연결하는 가운뎃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5] 여기에 힘입어 2005년에는 ‘제1회 서울 와우 북 페스티벌’이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문화의 거리 에서 열려 지금까지도 매년 계속되는 등 마포구 내에서는 출판계 안팎의 사람들이 꾸준히 나름의 책 문화를 형성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2007년, 서울시는 ‘전략산업육성 및 기업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표하며 전략산업과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 및 특정 개발진흥지구(이하 진흥지구) 제도 운용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 조례에 근거하여 2010년 1월 29일 마포구 일대가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었고, 2012년 10월에는 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마포-홍대 등지에서 지역발전에 관심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잔다리 동네 산업 발전위원회’가 시작되어, 진흥지구와 관련한 논의를 해나갔고 그 결과 같은 해에 ‘마포 디자인·출판 진흥지구 협의회’(이하 DPPA)가 만들어져 사업 결정을 위한 의결기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6] DPPA는 2014년, 사업 진행을 위해 거점이 되는 앵커시설인 ‘종합지원센터’ 를 개소한다.[7]


    그러나 2016년, 서울시는 마포구가 DPPA를 구성하여 진흥지구 운영을 위탁하는 과정에서 절차 상 미비한 지점이 있었음을 들어 마포구에 시정조치를 요구한다. 마포구가 구의 보조금을 통한 민간(이 경우 DPPA) 위탁 과정에서 누락한 항목은 크게 세 가지이다. 서울시로부터 받은 보조금 사업의 지출 근거 가 될 자치구 조례가 제정되지 않았고, 공개 모집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특정 기관에 시의 보조금을 민간 위탁금으로 간주해 처리했으며, 자치구가 부담해야 할 사업비 비율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마포구는 답변으로 서울시의 시정 사항을 받아들일 경우 초기에 목표한 민·관·학 협의체 형태로의 사업 진행이 어렵고, 무엇보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전달한다.[8] 그 결과 DPPA는 2016년을 끝으로 해산하고[9], 2018년부터는 서울시에서 직접 DPPA를 모체로 한 앵커시설인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whatreallymatters, 이하 wrm)를 윤디자인에게 민간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10]


    위의 맥락에서 보건대, 플랫폼 P는 플랫폼 D와 더불어 마포구의 디자인 및 출판문화 진흥을 위해 설립된 앵커시설이다. 관련 내용을 서정임 팀장과의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저희랑 이름이 비슷한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whatreallymatters)는 저희처럼 입주 공간을 운영하는 곳은 아니고, 디자인 관련한 프로그램이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에요. 사실 거기 말고도 마포구에 경의선 책거리도 있고, 여기(플랫폼 P)도 있어요.” 


    민간 중심의 산업 공동체 DPPA가 해체된 만큼 마포의 디자인·출판 진흥 계획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관 중심으로 새로이 설립된 앵커시설들 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청된다. 서정임 팀장은 “과거 마포구의 같은 부서에서 (앵커시설) 관리를 담당했다”며 앵커시설들 간 내부적으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정리했다는 사실을 공유해 주었다. 


“그때 서로 정리를 한 게 있어요. 경의선 책거리는 작가 중심 북토크 같이 시민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저희(플랫폼 P)는 출판사 창업 인큐베이팅, 그리고 wrm는 디자인을 맡기로요.” 


    플랫폼 P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계약서를 잘 쓰는 법”, “표지디자인 실무 이야기하기”,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출판업 세무 가이드”와 같이 ‘출판사 창업 실무’에 집중된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교육 프로그램도 공간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P 개관을 전후로 하여 여러 조정의 과정을 거쳤다. 서정임 팀장은 2020년 1기 입주사 선발을 위해 서류를 검토한 이후, 다시 한번 기존에 “출판의 A to Z”를 콘셉트로 출판의 전 과정의 가장 기초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짜두었던 교육 프로그램의 난이도를 수정해야 했음을 회상했다. 


“처음에는 저희도 교육을 “출판의 A to Z”, 이렇게 해서 초기 교정 교열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쭉 짜놨어요. 그런데 입주자 선발을 하기 위해서 공모를 받고, 서류를 검토하다 보니까 이분들이 초짜가 아니시더라고요. (영원: 진짜요?) 네. 초짜가 아니라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지원하신 분 중에 큰 출판사에서 오랜 기간 편집자로 일하시다가 자신의 책을 만들고 싶어서, 혹은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서 나오신 분이 많았어요. 말고도 디자인에서도 회사에 오래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가 이제 막 나오신 (분들이 지원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처럼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출판계의 각 분야에서 각자의 경력을 쌓은 뒤 출판사 창업에 도전한 이들이 지원자 중에 많자, 보스토크 프레스는 기존에 계획했던 것보다 좀 더 실무에 가까운 내용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다시금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원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내공을 쌓았음에도, 글 편집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유통, 회계, 마케팅 등 본인이 담당하지 않은 출판의 다른 과정에 있어서는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지원자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멘토링을 신설했다. 멘토링은 교육 프로그램처럼 한날한시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입주자가 출판 과정 중에 특정 문제에 부닥쳤을 때 신청하면 그들이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단체가 수행하는 일이 곧 그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냄을 고려해볼 때, 플랫폼 P는 마포구 ‘출판’ 산업의 앵커 시설로 자리매김하고자 상황에 맞는 유연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겠다. 


    플랫폼 P를 마포구가 일궈 온 기나긴 디자인·출판의 시계 위에 올려둬 보면, 올해 초 시작된 마포구의 플랫폼 P 운영 파행이 더욱 의아하게 다가온다. 우선은 플랫폼 P 운영 파행이 진행되어 온 순서를 차례로 되짚어 보자. 



플랫폼 P 운영 파행 


타임라인[11]



남아있는 질문들

하나, 마포구의 주민은 누구인가? 


    지난 6월 7일 마포구가 공개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 개편 추진(안)”을 살펴보면, 마포구에서 플랫폼 P를 출판·문화 중심 창업 지원 공간에서 다양한 업종을 추가 지원하는 청년 창업 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공간이 전액 구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3월 29일 열린 제261회 마포구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부터 마포구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입장이다. 마포구가 문제 삼는 지점은 센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전부 마포구의 예산 안에서 편성을 하고 있음에도 마포구민이 전체의 28% 정도만 입주하고, 타 지역 사업자가 주로 입주하는 등 사실상 플랫폼 P가 마포구에 거주하고 있는 구민이 아닌 전국 출판계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의 용도 변경에서 그치지 않고 6월에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위원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입주 연장 심사 기준에 ‘사업장과 주민등록상 소재지가 모두 마포구일 것’이라는 기준을 마련해 소급 적용하고자 했다. 


    플랫폼 P의 입주사들이 마포구의 ‘주민’이 아닐지라도, 그들은 모두 마포구의 자영업자로 마포구에 사업자등록을 해 마포구에 세금을 낸다. 물류, 디자인, 세무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협업하며 운영되는 출판업의 특성상, 플랫폼 P에 입주해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들은 마포구에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풀어나가고자 마포구의 여러 다른 회사와 협업을 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모빌리티의 발달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지역 내의 이동이 용이해진 지금, 특정 산업이 집적되어 있는 지역에 가 일을 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0년, 그보다 더 전부터 서울시 내 출판문화의 집결지라고 여겨지는 마포구에 출판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마포구가 플랫폼 P에 요구하고 있는 ‘마포구민’의 기준은, 마포구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다른 공공 창업시설과 비교해 보아도 그 범위가 턱없이 좁다. 3월 신규 입주사를 모집한 마포비즈니스센터의 경우 모집 대상에 초기 창업자인지 여부만 따지고 있을 뿐이다. 마포구 주민자치회 운영 조례의 경우에도 ‘해당 동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 외에도 해당 동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업장에 종사하거나, 혹은 (해당 동에 주소를 두고 있는) 학교나 기관에 속해있거나, 나아가 외국인이라 하여도 해당 동의 외국인 등록대장에 등록되어 있다면 주민자치회의 위원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마포구에서 플랫폼 P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둘, 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가? 


    플랫폼피 입주사 협의회에서 정리한 타임라인과 각종 회의록과 보도 자료를 읽으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합당한 절차와 납득 가능한 논리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련의 사안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사건이 처음 시작되었던 2022년 12월, 마포구청은 명확한 이유 없이 위탁 운영사의 계약 연장, 혹은 신규 위탁 운영사 공모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기존의 위탁 운영사와 3개월, 그리고 9개월 연장 계약을 했을 때에도 운영위원회에는 별달리 알리지 않았고, 운영위원 없이 심사가 진행되었다.


    올해 6월에는 아무런 고지 없이 입주사 연장 심사 기준에 “사업장 소재지가 마포구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주민등록상 소재지가 1년 이상인 마포 구민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소급 적용하여 당장 7월에 심사 예정이었던 2기 입주사 중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 기준이 미비하여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같은 달 7일 소집된 운영위원회에서 운영 위원들이 강하게 비판하며 해당 안건을 재상정할 것을 건의 했지만, 다음 날 마포구청은 “운영위원회에서 입주 연장 승인 안건이 승인을 얻지 못했으므로 입주사 14곳 전원과 연장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 


    플랫폼피 입주사 협의회는 마포구청에 민원을 넣으며 구청장과 대화하길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긴급 수다회’, ‘긴급 간담회’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며 박강수 마포구청장과의 대화의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마포구청장은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마포구청장 뿐만 아니라, 플랫폼 P의 운영 전반에 걸친 사항들에 대해 의논을 하는 기구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위원회의 경우도 사실상 마포구 내에서 의사결정 전반이 완료된 후에야 통보하는 형식으로 직전에 소집한 것이 전부였다. 과거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온 것에 대한 자성으로 우리나라 행정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거버넌스’를 찾아볼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사례가 바로 민(民)과 관(官)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와 같은 기구이다. 그러나 플랫폼 P의 경우에서 보여지듯, 민관이 만나서 대화를 나눠 결론에 도달한다고 한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논의에서 진정한 의미의 협치란 달성되기 어렵다. 충분한 대화와 합당한 절차 없이 진행되고 있는 플랫폼 P의 사례를 두고 마포구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례를 제공해주고 마는 것이다. 합당한 이유 없이 지자체가 사업 운영을 방기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고 마는 선례를 말이다. 



나가며 


    공간을 지켜내기 위한 지난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의 경우, 작년 12월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2025년에는 해당 부지에 60층 규모의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서울시의 계획에 반발하여 조직된 <서울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은 지역 공동의 여가 공간에 민간 자본이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며 혁신파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13] 강원도 원주시의 아카데미 극장을 두고 원주시는 올해 4월, 극장을 철거하고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카데미 극장 보존과 재생을 위한 시민 모임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서명 운동을 벌이며 단관극장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이곳,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14] 그리고 폐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호의 다른 글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의 자치도서관도 이 사안들과 궤를 같이 한다고 느꼈다.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한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바뀔 것이고, 시대가 그에 요구하는 바도 매번 달라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분명히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언젠가는.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또 다른 것이 들어설테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그저 사라지지 않고 분명 흔적을 남긴다. 1978년 만들어진 마포 출판단지가 1989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지만 출판단지가 마포에 형성되며 그곳에 모여든 출판사들이 출판단지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곳에 남아 책을 만들어 왔던 것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그러나 플랫폼 P의 향방이 대화를 거치지 않은 채 정해진다면, 그때 사라져버린 이 공간의 한 조각이 남기는 것은 ‘행정 권력이 그리 정책을 집행해도 괜찮다’는 허용이다. 이는 곧 우리가 크고 작은 변화가 매일 같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또 새로이 생기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편집위원 영원 (wizjulia@hanmail.net)




[1] 서울시는 2010년부터 특정 지역에 밀집한 서울형 전략산업과 첨단산업을 활성화 할 목적으로 산업·특정개발 진흥지구를 지정해왔다. 마포구에는 합정동, 서교동, 동교동 일대가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된 바 있다(오은주, 양재섭, 허등용, 윤종진 2020). 

[2] 이봉호, “마포출판단지 17일 문닫는다”, 「매일경제」, 1989.05.01., https://www.mk.co.kr/news/%20economy/870299.

[3] “麻浦(마포)출판단지 5월門(문)닫는다”, 「동아일보」, 1989.02.07., https://www.donga.com/archive/%20newslibrary/view?ymd=19890207&mode=19890207%2F0001601965%2F1.

[4] 최모란·양정숙, “‘원조출판단지’ 마포 르네상스”, 「중앙일보」, 2011.08.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5923619#home. 

[6] “마포 디자인 출판 진흥지구 선정의 의의와 배경”, whatreallymatters., 2012.08.21., http://wrmatters.kr/archives/dppa/704/?ckattempt=1. 

[7“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 → whatreallymatters”, whatreallymatters., 2018.01.27., http://wrmatters.kr/archives/dppa/1495/. 

[8] 오은주, 양재섭, 허등용, 윤종진. (2020). 서울시 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 현황과 활성화 방향. 서울연구원 정책 과제연구보고서, (), 80-81쪽.

[9] “공지사항”, whatreallymatters., 2017.01.02., http://wrmatters.kr/archives/dppa/1182/.

[10] 앞의 자료, 80-81쪽 

[11] 본 타임라인은 ‘플랫폼피(Platform P) 입주사 협의회’가 운영하고 있는 노션 페이지(https://bit.ly/platformp_club)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했다. 

[12] 플랫폼 P 입주사들은 기본적으로 2년 입주가 가능하다. 다만 입주가 끝나는 시기에 심사를 거쳐 1년 입주 연장이 가능하다. 2020년 선발된 1기 입주사의 경우 최대 3년 입주 기간이 완료되었고, 본 사안에서 문제가 되는 이는 심사 대상인 2기 입주사, 그리고 추후 심사 대상자가 될 3기 입주사다. 

[13] 유경선, “10월 문닫는 서울혁신파크 ... “소중한 공공 공간 지켜내자” 팔걷은 시민들”, 「경향신문」, 2023.07.20., https://m.khan.co.kr/article/202307201821001.

[14] 김수영, “[기획] 극장을 지켜라, 철거 발표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 이후”, 「씨네21」, 2023.04.24.,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2556. 




참고문헌 


논문 

오은주, 양재섭, 허등용, 윤종진. (2020). 서울시 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 현황과 활성화 방향. 서울연구원 정책과제연구보고서, (), 1-215. 


기사 

김수영, “[기획] 극장을 지켜라, 철거 발표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 이후”, 「씨네21」, 2023.04.24.,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2556. 

유경선, “10월 문닫는 서울혁신파크 ... “소중한 공공 공간 지켜내자” 팔걷은 시민들”, 「경향신문」, 2023.07.20., https://m.khan.co.kr/article/202307201821001. 

이봉호, “마포출판단지 17일 문닫는다”, 「매일경제」, 1989.05.01., https://www.mk.co.kr/news/economy/870299. 

최모란·양정숙, “‘원조출판단지’ 마포 르네상스”, 「중앙일보」, 2011.08.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5923619#home.

“麻浦(마포)출판단지 5월門(문)닫는다”, 「동아일보」, 1989.02.07., https://www.donga.com/archive/newslibrary/view?ymd=19890207&mode=19890207%2F0001601965%2F1. 


인터넷 자료 

“마포 디자인 출판 진흥지구 선정의 의의와 배경”, whatreallymatters., 2012.08.21., http://wrmatters.kr/archives/%20dppa/704/?ckattempt=1.

“공지사항”, whatreallymatters., 2017.01.02., http://wrmatters.kr/archives/dppa/1182/.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 → whatreallymatters”, whatreallymatters., 2018.01.27., http://wrmatters.kr/archives/dppa/1495/. 


편집위원 영원 (wizju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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