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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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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25. 2023

[공동기획] 낡은 신도시, 조용한 비명

[우거지다] 편집위원 파란 

 ‘분절된 공간을 이음으로써 소통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수단.’

 공간의 연결을 끊는 자연적 장애물은 무수히 많다. 하천이나 호수, 또는 높은 산이 공간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오래도록 ‘다리’를 놓아왔다. 최초의 다리는 무엇일까-란 질문은 의미가 없다. 역사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다리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자그마한 징검다리에서부터,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현수교까지. 인류는 다리를 통해 문명을 이룩하고 생활 반경을 넓혀 왔다.


 ‘천당 아래 분당.’

 1990년대 분당신도시의 홍보 문구이다. 분당수서로와 수인분당선, 수많은 광역버스 노선을 통해 서울 강남권에 빠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구분되어 깔끔한 도시경관을 갖고 있다는 점, 적재적소에 자리잡은 사회기반시설과 공공기관, 충분한 일자리와 교육시설 등의 요소들은 분당신도시가 개발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이 꽤 매력적인 주거 공간 중 하나로 언급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약 2년간 분당지역에 거주하며, 분당의 크나큰 장점 중 하나로 집 앞을 가로지르는 탄천을 떠올릴 수 있었다. ‘탄천’은 분당신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지방하천으로, 분당 남쪽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발원하여 분당을 거쳐, 한강으로 연결된다. 탄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는 도보나 자전거를 통해 인근 도시로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평일 저녁 시간대나 주말에는 수많은 시민이 탄천 주변을 걷고, 자전거를 타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성남시청 측에서도 봄에는 꽃밭을 조성하고 여름에는 물놀이장을 개장하는 등, 탄천 활성화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남시 예산서에 의하면, 매년 약 30억 이상의 예산이 탄천 관리와 정원 조성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 분당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탄천에 의해 분당신도시는 동서로 나뉘게 된다. 탄천의 폭이 넓기에, 차량과 보행자가 빠르게 분당의 동부와 서부지역을 오가기 위해서는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한국토지공사는 탄천을 가로지르는 20개의 교량을 건설하였다. 분당의 동부지역에는 학교와 공공기관, 주거지역이 밀집해 있고, 서부지역에는 경부고속도로, 분당수서로와 상업지역이 분포하고 있기에, 출퇴근과 등하교를 위해서는 동-서간 이동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출퇴근 시간에는 20개 다리 대부분이 차량 정체를 빚고, 이외 시간대에도 이 교량들의 통행량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다리를 통하지 않으면 분당 동부지역 주민은 타지역으로 이동하기 어렵고, 서부지역 주민은 동부지역의 사회기반시설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분당의 서부지역에 거주하면서, 분당 동부지역의 시립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마트에 가기 위해 수시로 다리를 이용했다. 다리가 분당신도시 조성 초기부터 존재했기에 노후화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리 위 보도블록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진 회색 계열의 정사각형 블록으로 교체된 상태였고, 수시로 보강공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교량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다리를 건너다 노을이 아름답거나, 벚나무가 탄천을 따라 꽃을 피워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낼 때면 사진을 찍는 등 매우 여유롭게 기초적인 사회기반시설인 교량을 이용해 왔다.


 이러한 나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믿음, 그리고 탄천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환상은 2022년 4월 5일에 산산이 조각났다. 이틀 연속으로 많은 비가 내렸던 그날, 분당구 탄천 20개 다리 중 하나인 ‘정자교’의 보행로 일부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인해 다리 보행로를 걷던 시민 1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보행로가 무너진 정자교는 2020년에도 내진 보강공사를 진행한 바가 있었고, 매년 수행하는 안전진단에서도 위험신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을 주었다. 시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건너던 다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분당지역의 다른 다리 또한 보행로 부분이 침하하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발견되며 무수한 민원이 발생했다. 이후 성남시는 탄천 소재 교량들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을 수행했고, 그 결과 탄천의 다른 다리인 수내교, 불정교, 궁내교, 금곡교 등 동일시기에 지어진 다른 교량의 보행로 역시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탄천을 가로지르는 20개 다리 대부분의 보행로는 전면 차단된 상태이고, 가장자리 차선 하나를 막아 임시 보행로로 사용하고 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도 건축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이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1기 신도시의 노후화된 사회기반시설을 얼마만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무너진 정자교의 모습.

 무너진 정자교는 ‘캔틸레버’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이는 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인 교각이 직접 보행로까지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각의 지지를 받는 차량 통행로 부분 옆에 보행로를 붙여 시공하는 방식이다. 분당신도시의 다리들에는 교각이 지지하지 않는 보행로 부분 하부에, 배관까지 연결하여 시공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교량의 경우, 보행로 아래에는 직접 해당 부분을 지탱하는 기둥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행로 부분과 차량 통행로 부분 간의 결속력이 약해지거나, 보행로 하부에 매설된 배관에 문제가 생길 경우 보행로의 침하 및 붕괴 위험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1기 신도시에 시공된 캔틸레버 방식의 교량 중 약 90% 정도가 분당신도시에 있으며, 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대부분이 캔틸레버 방식으로 건축된 교량이다. 동일한 시기에 같은 공법으로 지어졌기에, 다른 교량들도 긴급안전점검 이후 보행로 부분의 위험성이 동일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캔틸레버 방식의 건축 공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팔보 공법-캔틸레버 공법의 또 다른 이름-을 활용한 교량 건축방식은 1950년 독일에서 처음 개발된 뒤, 오래도록 활용됐다. 정자교와 같이 하천을 가로지르는 짧은 다리뿐만 아니라 원효대교, 강동대교, 김포대교, 서해대교와 같이 길이와 폭이 넓은 교량을 건축하는 데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외팔보 공법을 활용한 다른 건물들 또한 멀쩡하게 존속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내의 ‘루스 채플’의 천장 또한 캔틸레버 공법으로 건축되었으나, 완공 후 수십 년이 지나고도 그 자리를 오롯이 지키고 있다.


 결국 부실공사나 관리 문제, 혹은 이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정자교 붕괴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 국토안전관리원 사고조사위원회의 2023년 7월 11일 정자교 붕괴 사고 관련 발표에서는 ‘콘크리트와 캔틸레버부 철근(보행로 부분) 사이 부착력 상실’로 인해 붕괴가 발생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부착력 상실은 콘크리트에 수분이 침투해 동결과 융해를 반복하며 콘크리트 손상을 일으키는 ‘동결 융해’ 현상과 제설제 도포로 인한 철근 부착력 감소가 주요 원인이었다. 발표 세부 내용으로는 정자교 보도부에서 채취된 콘크리트 시료 17개 중 14개가 압축강도(콘크리트의 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 교각의 지지를 받는 도로부 슬래브는 안전율(건축물 등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응력과 하중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도출하는 계수)을 확보하였으나 캔틸레버부는 층 분리 및 파손이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발생하여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세부 사항이 추가되었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부실 공사’가 보행로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자교 자체는 설계도면 그대로 설계되었고, 오히려 캔틸레버부 철근은 설계보다 많이 시공된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제설제 살포로 인해 방수층이 손상되고, 이에 따라 발생한 콘크리트 부식, 층 분리 및 균열이 발생한 것이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유지보수의 미흡함이 중첩되면 건축물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고의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제설제 사용에 대한 관리 규정의 필요성, 노후 시설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의무 실시, 육안 점검이 되지 않는 바닥판 콘크리트와 방수층에 대한 손상 점검 등을 재발 방지 대책으로 언급하였다.


 사고조사위원회의 재발 방지 대책에서 의문이 몇 가지 제기되는데, ‘맨눈으로 점검이 불가능한 도로포장 아랫부분 바닥판 콘크리트와 방수층 손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정자교와 같은 시설물에 대해 그동안 안전 점검을 육안으로만 수행해 왔다는 것인가?

 이는 필수 안전 점검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 문제이다. 시설물안전법상 다리에 대한 안전 점검은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 정밀안전진단의 3가지로 분류하여 수행한다. 이중 정자교는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만 받으면 되는데, 정기안전점검은 ‘기술자가 외관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끝나고, 정밀안전점검 역시 ‘간단한 시험 장비만 사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고 한다. 특히 성남시의 경우 20개의 다리에 대한 정밀안전점검에 1억 7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하였는데, 이는 다리 하나에 8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사용한 것으로, 설계도면 분석, 시료 채취와 같은 정밀진단까지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성남시의 홍보 문구가 다리 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장식하고 있다.

 주요 사회기반시설인 교량 1개의 정밀안전점검에 약 800만 원을 쓰는 성남시는, 과연 예산이 부족해서 안전 관련 예산까지 절감해야 했던 상황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 성남시의 재정자립도(재정 운영의 자립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59.59%로, 인구 50만 명 이상의 16개 지방자치단체 평균 재정자립도인 38.46%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에서 집행해야 하는 예산 중 상당수를 자율적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도 성남시 추경 예산서를 보면, 성남시는 다양한 분야에 예산을 활용하고 있다. 2023년은 성남시가 시로 승격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1973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분리되었음)이기에, 성남시는 이를 기념하고자 여러 사업을 추진해 왔다. 성남시 추경예산서에 의하면, 시는 ‘시 승격 50주년’ 행사에 2억 6천만 원을 편성하여 사용했다. 세부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산은 ‘각종 매체 홍보비’로, 약 1억 원 정도가 편성되었다. 실제로 페이스북 등 온라인 매체뿐만 아니라 성남시 곳곳에 게시된 현수막에서, 시 승격 50주년을 자축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무너진 교량의 차단을 안내하는 현수막에도 ‘시 승격 50주년’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첨단과 혁신의 희망도시’라는 수식어가 추가된 상태로-로 성남시의 홍보 의지는 상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재정 상태가 양호한 성남시가 왜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노후 교량 정밀안전진단에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들 뿐이다.


 정자교 붕괴 이후의 성남시의 대처 또한 많은 비판점을 함의하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정자교 붕괴 이후 중앙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요청했다. ‘30년이 넘은 노후 시설이 가득한 분당의 상황은 재난지역과 흡사하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1기 신도시의 교량 등 기반 시설에 대한 관리 책임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있기에, 특별재난지역 선포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시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중앙정부에 떠넘긴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 문제해결을 전가하는 성남시의 대응 방식은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행정력을 낭비하는 처사이자,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정자교의 붕괴 원인이 부실공사가 아닌 관리 문제였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성남시의 특별재난지역 지정 요청은 더욱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려워졌다. 결국 성남시의 특별재난지역 지정 요청은 거부당했고, 시는 1,600억 원 상당의 17개 교량 보행로 재시공 예산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분당의 탄천 교량 보행로 하단부 곳곳은 현재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미리 공장에서 찍어 나온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소재의 임시 가설물 및 철제 기둥으로 보강된 상태이다. 이러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철제 기둥은 임시 구조물로, 다리 보행부 재시공 이후에 다시 철거할 예정이다. 결국 성남시는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보행부 재시공, 그리고 해당 임시 구조물 건축 및 철거에 이중으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에 놓였다.

정자교 옆의 다리인 ‘궁내교.’ 역시 보도부 침하가 보이며, 아래에는 PC 임시 구조물이 있다.

 정자교 붕괴 이전에도 분당구의 캔틸레버 방식 교량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2018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소재한 ‘야탑 10교’에서, 보도교 인도 부분이 10도 정도 기우는 균열이 발생해, 인도 부분 하부의 수도관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별다른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분당구 차원에서 재발 방지 대책이나 지역 내 다른 교량에 대한 선제적 대처를 위해 노력했다는 언급은 찾기 어렵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뒤, 동일한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건축된 교량의 비슷한 부분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번 정자교 붕괴 사고는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성남시는 최근 1,6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재시공 사업의 비용 상당수를 절감했다는 언론 대상 발표를 진행했다. 다리 양쪽의 보도를 모두 철거하고 재시공하려 했던 기존의 방안을 선택하지 않고, 한쪽의 보도교만 재시공한 뒤, ‘차선폭 조정’을 통해 차선 일부를 반대편 보도부로 만듦으로써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성남시는 ‘기존의 교량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예산 절감이 가능한 점’, ‘차량 통행에 지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해결 방안의 이점을 역설하고 있다. 기존 교량의 차선폭이 법정 기준보다 넓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을 줄여(‘차선폭 조정’이라고 보도 자료에 표현했으나, 사실상 ‘폭 줄이기’가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자리에 보도부를 새로 만들더라도 불편함은 없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크기와 폭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1], 30년 전에 만든 차선의 폭을 오히려 줄이겠다는 성남시의 결정은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더군다나 보수가 필요한 분당의 대부분 교량은 현재 교통량이 많으며, 차폭이 넓은 대형차량(광역버스 및 시내버스)의 통행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보도부뿐만 아니라 교량 전체가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아 차도 또한 전면 통제된 ‘수내교’의 경우를 예시로 들면, 이 다리는 배차간격이 촘촘한 6종의 버스 노선이 지나다닌다. 이처럼 대형 차량의 통행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있던 다리의 차선폭을 줄이겠다는 성남시의 결정은 많은 의문점을 함의하고 있다.


 사건 이후 정치권의 반응 역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노후 신도시의 기반 시설 전반에 대한 안전진단의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시민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과 같이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임 시장 및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저격, 그리고 남 탓 공방이 이루어졌다. ‘전임, 그리고 그 이전 시장 시절 교량 안전 관련 예산이 삭감되어서 제대로 된 안전진단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한 언론사의 팩트체크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났다.[2] 성남시의 교량 관련 안전진단 예산의 증감 양상은 시장이 누구인지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 시장의 부적절한 발언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2022년 7월부터 성남시장으로 재임한 신상진 성남시장은, 2023년 4월에 일어난 정자교 참사와 관련하여 ‘시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지 못하겠다’는 소지의 발언을 하였다. 시장 취임 후 9개월이 지난 시점임에도, 자신이 행정 총책임자로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겠다’라고 발언하는 무책임함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해당 발언은 여러 언론을 통해 전파된 상태지만, 이에 대한 정치권 및 언론의 비판 혹은 당사자의 사과는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무책임한 시정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성남시 곳곳에 매달린 ‘시장 취임 1주년 축하’ 현수막만 공허하게 나부끼고 있다.


 현재 성남시 분당구의 사회기반시설은 노후화되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보도교 붕괴 위기에 처한 교량뿐만 아니라, 수많은 구조물이 적절히 관리되지 못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2023년 6월에는 분당구 수내동의 수내역 지하철 입구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여, 시민 14명이 다쳤다. 해당 에스컬레이터 또한 이전의 안전 점검에서 문제를 지적받지 않은 상태였기에, 안전점검 제도 전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수내역의 경우, 역사 내외의 에스컬레이터 중 상당수가 공사 및 정비 중이며, 이에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사회기반시설뿐만 아니라 거주시설의 환경 역시 열악하다. 2000년대 이후 개발된 탄천 서쪽의 일부 주상복합 단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분당 아파트단지들은 1990년대 초반에 건설되었다. 노후화된 아파트는 가구당 주차대수가 부족하여 퇴근 시간대에는 이중, 삼중주차가 자주 발생한다. 건축 당시보다 가구당 차량 소유 대수가 2배 이상 증가했기에[3], 설계 당시 주차장이 현재 차량 대수를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녹물로 인해 샤워기와 수도시설에 필터를 끼워 사용해야 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균열과 누수 등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 역시 종종 일어나는 편이다. 2022년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약 83%의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1기 신도시 특별법’을 통한 정비사업이 대선주자들의 주요 공약으로 떠올랐고, 자체적으로 리모델링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단지 또한 등장하는 등, 나름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노후 신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이 가진 위험성과 불편함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대다수의 1기 신도시 시민들은 앞선 사례와 같이 개별 정비사업,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 교체 등을 통해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다.


 분당신도시는 개발된 지 30년이 지났다. ‘낡은’ 신도시의 ‘조용한’ 비명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노후화된 사회기반시설과 열악한 거주환경은 소극적인 행정과 방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휘어지고 무너진 다리, 거꾸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금이 간 아파트는 이제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로 작용하고 있다. 약 47만 명의 시민이 거주하는 분당구의 책임 주체인 성남시는 사명감 있는 자세로 도로와 교량 등의 노후화된 시설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선제적인 주거환경 정비사업을 통해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있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분당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민들이 마음 놓고 삶을 영위하고, 47만 명의 생각과 꿈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성남시가 진정한 ‘첨단과 혁신의 희망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


추가 설명 및 참고문헌      

[1]일례로 한국 대표 중형차인 ‘쏘나타’의 너비는 1989년식의 경우 1,750mm였으나, 2019년식의 경우 1,860mm으로 약 11cm 증가했다. 출처: 현대자동차

[2]“[단독]‘좌파’시장들이 안전예산 줄여 정자교 사고 났다?”, 세계일보, 2023년 4월 13일 수정, 2023년 7월 24일 접속, https://m.segye.com/view/20230413524296

[3] 가구당 자동차 등록대수는 1990년대 초에는 0.4대였으나, 2019년에는 1.18대로 증가했다. 출처: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통계청.

[4]“사상자 2명 ‘정자교 붕괴’ 원인은?...결함 알고도 조치 미흡”, SBS 뉴스, 2023년 7월 11일 수정, 2023년 7월 24일 접속, https://biz.sbs.co.kr/article/20000126470                                                                     

[5] “정자교, 7년 전부터 가라앉았다... 안전점검 의구심 확산”, YTN 사이언스, 2023년 4월 11일 작성, 2023년 7월 24일 접속,  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304111105509903   
[6] “정자교 붕괴사고 조사결과 발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3년 7월 11일 작성, 2023년 7월 24일 접속,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156579957                                      

[7] “‘특별재난지역’지정 거부당한 성남시, 다리 재시공비 1600억 마련 전전긍긍”, 한겨레, 2023년 5월 24일 수정, 2023년 7월 24일 접속, https://m.hani.co.kr/arti/area/capital/1093051.html                          

[8] “[설계자들]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댐 책임 공방전, 야탑10교 균열 원인은”, 엔지니어링데일리, 2018년 8월 6일 작성, 2023년 7월 24일 접속http://www.eng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8589  


편집위원 파란(dowon616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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