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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호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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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25. 2023

[공동기획] 나만 아는 곳? 모두가 아는 곳!

[우거지다] 편집위원 띵동

해가 중천인 12시 50분. 4교시 수업이 끝난 후 강의실을 빠져나온 나는 7교시 시작 시각인 3시쯤까지 일명 ‘우주공강’을 보낼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그러나 갈 곳이 그리 마땅치 않았다. 건물마다 있는 학습/휴게 공간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내 휠체어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은 탓에 내가 행인들에게 걸릴지 걱정되었다. 보통 그런 공간들은 각 건물 로비에 위치하기 마련이니 눈길이 가기 쉽다는 점도 마냥 편치 않았다. 외솔관 특유의 반 층[1]에 위치한 과방은 애초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엘리베이터로 갈 수 없는 데다가 경사로 설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끼니를 해결하고자 교내 식당에 갈 수도 없었다. 혼잡한 식당에서 뜨거운 음식이나 식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은 휠체어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다행히도 아직 식당에서 사람들과 크게 충돌하거나 떨어뜨린 음식을 뒤집어쓰는 사고를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기는 싫었다. 송도캠퍼스 때와는 달리 통학하였기에 기숙사에 갈 수도 없어 이 한 몸-휠체어를 갖다 놓을 곳이 더더욱 애매했다.

물론 내가 실제로 갈 곳을 몰라 정처 없이 헤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장애학생휴게실의 존재를 몰랐다면, 나에게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몇몇 다른 장애학생들은 계속해서 이런 어려움을 안고 생활 중일지도 모른다. 장애학생지원실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교내 장애학생의 수는 학부와 대학원을 포함해 100명 내외지만 실질적으로 휴게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만큼 학내 구성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 바로 장애학생휴게실이다. 그렇기에 이 공간과 공간성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장애학생휴게실에 대하여

신촌캠퍼스에 장애학생휴게실은 총 두 곳이 조성되어 있으며, 송도캠퍼스에는 진리관A에 장애학생휴게실이 있다. 학기 초에 장애학생지원실에서 장애학생휴게실 출입증 발급 방법과 과정을 공지하면 절차에 따라 출입증을 발급받아 휴게실을 드나들 수 있다. 장애학생휴게실 중 하나는 학생회관 지하 1층에, 또 다른 하나는 위당관 1층에 있다. 이 중에서도 나를 포함한 장애학생들이 많이 찾는 공간은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이다. 위당관과 그 주변의 교육과학관, 외솔관, 연희관 등이 많은 사람이 찾는 건물인 만큼 수업 전후에 시간을 보내거나 휴식하러 가기에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은 1층 ATM기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위당관 118호라고 적혀 있으나, 높이는 1층의 다른 구역들보다 반 층 정도 낮다. 입구에는 출입 카드를 대는 곳과 미닫이 자동문이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름방학에 출입했을 때는 벽에 붙어 있던 카드 인식기가 거의 다 떨어져 전선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카드 인식은 가능했고, 이후에 카드 인식기가 교체되었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면 교실 반 개 크기의 다소 아담한 공간이 나온다. 오른편에는 낮은 목재 서랍장과 2인용 검은색 가죽 소파가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왼편에는 커다란 목재 사물함이 놓여 있다. 왼편의 이 커다란 사물함 덕분에 안쪽 공간은 입구에서 들어왔을 때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작은 서랍장에는 (물) 휴지와 청소 도구, 소소한 간식거리 등의 생필품이 있으며,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여기서 낯설지 않게 물건을 꺼내서 사용한다. 그런데 사물함은 과거에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칸은 사용자 이름 없이 용도 불명인 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끔 장애학생지원실에 연락하여 몇몇 칸의 실사용자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하지만 실사용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모든 칸이 잠금 해제되어 비워진 사물함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입구 정면에는 폭이 좁은 파란색 파티션과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에는 먼지가 앉는 것을 감안하여 비닐 소재의 커버가 깔려 있으며, 학생들은 차마 이것을 벗겨내지 못한 채 -벗겨내면 다시 씌워야 하므로- 그 위에 눕는다. 소파가 있는 곳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숨겨진 공간이 모두 드러난다. 높은 벽에는 창문이 이어져 있고, 오른편에는 작은 사각형 책상과 높낮이조절책상이, 왼편에는 또 다른 침대가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작은 원탁과 의자 두 개가 침대와 거의 바짝 붙다시피 놓여 있다. 처음 이 장소를 장애학생지원실로부터 안내받았을 때 돋보기 등도 비치되었다고 들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내용물을 궁금해하던 정체불명의 사물함 속에 있었을지도? 장애학생휴게실에만 존재한다고 자부하는 인테리어 소품은 단연 벽 한쪽에 껴 있는 부러진 지압 훌라후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휴게실 공간이 넓지 않기에 그 두껍고 큰 훌라후프를 휴게실 내부에서 돌리기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것이 왜 휴게실에 있는지, 그것도 부러져서 방치되어 있는지는 학교생활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러한 장애학생휴게실을 절대적으로 넉넉한 공간과 자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웬만한 건 다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곳을 오가는 학생 수를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몇몇 학생이 그럭저럭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기도 하다.

작은 공간임에도 의외로 없는 건 없는 장애학생휴게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침대의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회관 휴게실과 위당관 휴게실에 모두 갖춰진 침대는 학생들에게 누워서 휴식할 기회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학교에서는 기숙사를 제외한다면 누울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학교 측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이자 나태함을 뜻하는 일종의 상징이 되어버린 눕는다는 행위를 대부분의 공간에서 최대한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학교에서 휠체어에 누워 있는 채로 다니는 나는 어쩐지 이단아가 된 듯한 기분을 종종 맛봐야 했다. 그렇기에 누울 수 있는 공간 그 자체의 존재 여부가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했다. 누울 장소가 있다는 것은 거기서 휠체어에 누워 있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내포하니 말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공용 공간에서 은근히 눈치를 보던 입장에서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자치도서관처럼 장애학생휴게실 또한 누워 있는 나에게 편안한 장소가 된 점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학생휴게실과 사람들

나는 지난 2학기 때 2년 반만의 대면 학기를 맞이했고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일주일에 이틀이나 세 시간씩의 우주공강이 있는 시간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소화해야 했다. 맨 앞에서 언급했던 우주공강 상황도 이때를 말한다. 말 그대로 ‘우주공강’인 만큼 밥과 간식을 먹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시간이 가지 않았기에 공부든 과제든 휴식이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문과대학 학생인 나는 수업이 열리는 위당관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교육과학관 앞의 급격한 경사 길을 오르내릴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도서관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장애학생휴게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필요한 일들을 하고는 했다. 휴게실에서 냄새가 심하지 않은 빵이나 요거트로 점심을 때우고, 그 후 높낮이조절책상을 이용해 과제를 하거나 휠체어에 멍하니 누워서 쉬었다. 이렇게 일련의 행적들을 보면 나 혼자 휴게실에서 살림이라도 차렸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이는 장애학생휴게실이 그만큼 매우 높은 자율성을 지닌 공간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청경관에서 사 온 김밥을 먹고 침대에서 쪽잠을 자거나 그날 해야 할 공부에 집중한다. 휴게실에서 웬만한 활동은 모두 가능한 셈이다. 장애학생휴게실만큼 열려 있거나 다수의 공간이 머무르기에 마땅치 않아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학생휴게실, 그중에서도 위당관에 있는 곳을 출입하는 학생은 사실 두 손에 꼽을 만큼 극히 적다. 그러나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장애학생휴게실에 장애학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학교생활에서 여러 면으로 부모님이나 가족들, 활동보조지원사, 혹은 학교에서 배정된 활동보조 근로학생의 조력이 필요하다 보니, 장애학생의 동행인도 함께 휴게실에 출입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무래도 부모님들께서 장애 정도가 심한 학생의 동행인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신다. 근로학생에게 활동 지원을 일임하기에는 여러모로 서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고, 활동보조지원사도 수업 중에는 활동보조가 불가하여 지원 시간 조정이 다소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을 때 부모님들께서도 장애학생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에 놓이신다. 어떤 분께서는 도대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셔서 한 학기가 다 가도록 수업 때마다 차 안에만 계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에야 장애학생휴게실을 발견하셨으니 그간 얼마나 곤혹스러우셨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장애학생처럼 장애학생의 학부모님 또한 돌고 돌아 대부분 장애학생휴게실로 모이시게 된다. 이따금 휴게실에 가면 수업이 끝나기까지 기다리시는 학부모님들을 뵙고는 하지만,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반갑게 인사드릴 뿐이다. 내가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도 거기서 시간을 보내신다. 장애학생의 숨은 조력자들이 휴게실에 출현하는 셈이다.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공간

장애학생휴게실에 들어가면 자주 맞닥뜨리는 광경이 있다. 바로 사람들이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휴게실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면면을 거의 다 알 수 있다. 서로 안면을 트고 멋쩍은 정적을 지우기 위해서 소소한 일상이나 수업 이야기를 하며 상대방을 알아간다. 간식거리를 먹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학교생활에 관해서 경험이 많은 학생은 신촌 일대가 낯선 다른 학생에게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학교에 언덕이 많다 보니 보행으로도 휠체어로도 이동하기 여의찮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여러 길 중에서도 가장 덜 힘든 동선이 어디인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장애학생휴게실에 두 사람 이상 있으면, 꽤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이 잦다. 애초에 그 정도 크기의 공간에서 서로 아는체하지 않고 눈길을 돌리기가 더 어려운 일이다.

드넓은 우리 대학에서 수많은 사람의 면면을 전부 알고 지내기란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학내에는 수만 명의 구성원들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하여 2년 반가량 실시되었던 비대면 수업에 소속 학과의 학우를 아는 것은 차치하고 다른 학우들과 알고 지내며 교류하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려웠다. 나 또한 2019년에 입학한 뒤에 몇 년간의 팬데믹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작년 2학기에 오랜만에 등교했을 때 내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기우로 만든 데는 장애학생휴게실의 영향이 한몫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학교 복귀 적응에 생각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전공이 같은 학우도 이곳에서 만났고, 우연히 ‘겹강’을 같이 듣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타과 소속이거나 학년이 다른 학우도 장애학생휴게실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니, 적지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무리 없이 사귈 수 있었다. 물론 위당관이라는 위치와 공간의 특성상 문과대학 소속 학생들이 대부분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을 찾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배경의 학생을 만나고 교류할 공간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면 수업을 재개하고 나서 명확히 체감할 수 있었다.

장애학생휴게실에는 적은 학생들이 모이지만, 그만큼 서로가 누구인지 관심을 두고 알아갈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좁은 공간으로 인해 휴게실 내에 존재하는 타인을 그저 ‘낯선 이’로 인식하고 서로 모르는 체하며 지내기가 더 어렵다. 그렇다 보니 말을 섞고 시시콜콜한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며 서로 친밀해지게 된다. 의도치 않게 소수 정예로 모인 사람들이 제법 돈독한 커뮤니티를 장애학생휴게실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이루는 셈이다. 이처럼 장애학생휴게실이 단순한 휴게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만남과 관계 형성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간은 더더욱 넓은 범위로 확장된다. 장애학생휴게실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규모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이곳을 출입하시는 학부모님께서도 서로 최소한 알음알음 아신다. 자녀를 기다리는 동안 친교의 시간도 가지시기에 때로는 학부모님들의 관계가 휴게실에 모이는 학생들의 네트워크보다도 더 견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장애학생휴게실을 통하여 짜인 네트워크가 유달리 강력하다거나 단단히 결속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네트워크의 존재 자체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작게는 나만 외따로 학교에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 크게는 학교에서 일상적인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함께 분노해 줄 사람이 있다는 든든한 연대가 있다. 실제로 지난 학기에는 위당관 경사로 출입구에 오토바이가 매일 같이 주차되어 있는 바람에 통행이 어려울 때가 빈번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 오토바이는 주차장도 아닌 경사로에 주차하기를 고집했지만, 어떤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함께하는 이들의 존재는 매번 큰 힘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쉽게 지치고 포기하고 체념했을 일이었지만, 같이하여 더더욱 집요해질 수 있었다.     


작고 적은 공간보다는……

선술 했듯이 학내에 수만 명이 재학 중인 것을 감안했을 때 장애학생이 백 명 정도라는 것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와닿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학생 수라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가 신입생이었던 당시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여기서 학교의 장애학생 지원 제도 등에 대한 정보와 장애학생 선배들의 학교생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에 참여했을 때 보았던 다른 참석 학생은 열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전공에 맞춰 수업을 듣다 보니 신촌캠퍼스의 여러 건물로 흩어졌고, 다른 장애학생을 학교에서 마주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다른 학년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소속된 문과대학은 장애학생 수가 비교적 많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1년간의 신촌캠퍼스 생활에서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에서 직접 만나거나 이곳을 이용한다고 몇 다리 건너 이야기만이라도 전해 들은 학생은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겨우 여섯 명 안팎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장애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없는 건 없다며 그럭저럭 지내는 공간임에도, 장애학생휴게실은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다소 뜬금없지만 글을 작성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아주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학생회관 장애학생휴게실이나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이나 모두 그리 쾌적한 환경은 아니다. 비교적 사람들이 드나드는 위당관 휴게실도 어딘가 퀴퀴한 냄새와 침대에 수북이 쌓인 먼지, 부서진 훌라후프 같은 것들 때문에 학부모님들께서 학교에 오셔서도 또다시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셔야 했다-그리고 훌라후프는 차마 버리지 못하셨다-. 또한, 장애학생지원실에서 언젠가 송도 휴게실을 언급할 때 지원실에서 정리를 자주 하지 않아서 휴게실 환경이 미비하다는 식으로 표현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학생휴게실은 관리 당사자가 없을 것이라고 방향을 설정한 채 취재했는데, 정말 죄송스럽게도 아니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인 새벽에서 아침 시간대에 매일같이 청소노동자분들이 위당관 휴게실을 청소해 주셨다. 마치 17호 모자의 글 제목 <보이지 않던 노동을 마주할 때>[2]를 행위로 구현한 기분이라 이 공간을 위해 일해주시는 모든 분께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했다.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대체 왜 장애학생휴게실은 쾌적하지 않을까? 이렇듯 학교 안팎의 여러 사람의 노동이 있었는데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던 건 어째서일까?

오래 고민하던 나는 그 이유를 휴게실의 공간과 위치에서 찾게 되었다. 신촌캠퍼스와 송도캠퍼스의 장애학생휴게실은 모두 지하나 지상 1층에 있는데, 여기서 지상 1층은 다른 곳과 제법 달랐다. 다른 1층 공간보다 반 층 정도 층고가 낮은 위치였다. 지하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지상에 있는 장애학생휴게실도 환기가 용이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곳은 명목상 1층이나 사실상 층고는 0.5층에 가깝다-이는 송도캠퍼스 진리관A의 휴게실도 마찬가지다-. 다른 공간보다 낮은 층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렬로 연결된 유리창과도 0.5층 차이가 난다. 그래서 창문이 네다섯 개나 있는데도 창문을 열면 위쪽 공기가 주로 순환되어 실제 사용 공간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다. 어딘가 탁한 공기와 자꾸만 쌓이는 먼지의 원인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공간의 넓이와 장소에도 다소 문제가 있다. 학교에서 ‘휴게실’이라는 공간이 그리 내보이고 싶은 곳인지는 알 수 없어도, 캠퍼스 내의 장애학생휴게실은 모두 의도된 것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휴게실의 접근성이 몹시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공간 안팎의 공기 순환도 비교적 매끄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한, 공간 자체도 매우 협소한 편이다. 그나마 신축인 송도캠퍼스의 휴게실은 교실 한 개 정도 크기의 널찍한 공간이며 신촌캠퍼스의 장애학생휴게실 두 곳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당관 장애학생휴게실은 4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실 반 개 넓이에 불과하며, 학생회관의 장애학생휴게실은 장애인권위원회실 내부 일부분을 차지하기에 또한 공간이 비좁다. 협소하고 환기도 잘되지 않아 먼지가 앉는 공간을 아무리 정리하고 청소한다 한들 청결해지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쾌적해지기가 거의 불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 장애학생휴게실의 환경은 어떠하고 개선이 필요한지 검토하는 작업을 학교 차원에서 꾸준히 행해야 할 것이다.

19개의 단과대학과 수많은 건물이 있는 학교, 그리고 100명 정도의 장애학생들. 이를 감안하였을 때 신촌캠퍼스와 국제캠퍼스에 갖춰진 장애학생휴게실 세 곳이 충분하다고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내가 입학했던 2019학년도의 학부 입시요강[3]을 살펴보면 특수교육대상자(장애학생) 전형에서 15명을 선발할 계획이었으며, 2021학년도까지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2022학년도부터 입학처에서 공개한 선발 결과 자료에 의하면,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각각 2022학년도에 24명, 2023학년도에 15명이었다. 여타 전형으로 입학하는 장애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2019학년도 이후로 최소 80명이 넘는 장애학생이 학부에 입학한 셈이다. 더군다나 2022학년도부터는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선발 인원을 거의 1:1에 가깝게 설정해 놓은 상태였다. 거꾸로 말하자면 문과대학 이외에도 장애학생이 소속된 학부가 매우 다양하다는 뜻이다. 학생회관이나 위당관 인근을 오가는 학생이 아니라면 장애학생휴게실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장애학생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특히 소속 학생과 유동 인구가 많은 상경대학이나 이과대학, 공과대학 건물에 장애학생휴게실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뜻밖이다. 장애학생휴게실의 부재로 달리 갈 곳이 없어 불편함을 겪는 학생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휴게실의 수가 부족하다. 당장 단과대학 건물마다 휴게실이 하나씩 마련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많이 확충되어야 한다. 몇몇만 알고 이용하는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든 장애학생이 장애학생휴게실을 알고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쉼’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이 공간의 의의를 살리는 방법일 테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장애학생휴게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 공간의 존재를 널리 알려주기를 바란다. 더 많은 장애학생이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장애학생휴게실을 발견한 장애학생은 주저하지 말고 찾아오고 이용하기를 희망한다. 이 작은 공간은 언제나 열려 있다.


[1] 외솔관의 2층과 3층 사이에는 2.5층 층고의 공간이 있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로 갈 수 없으며, 자주 고장나 있는 휠체어리프트만이 유일한 접근 수단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휠체어 탑승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가 이 ‘2.5층’의 강의실에서 진행될 때 장애학생지원실에서 강의실 변경 요청을 적극적으로 권할 만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경로다.

[2] 공일오비 17호 <보이지 않던 노동을 마주할 때>는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가 놓이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하며 연세대분회의 노동 환경 개선 투쟁을 연세대학교 어학당지부의 투쟁과 연결하여 기록한 글이다. 존재조차 지워진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이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므로, 모두가 이 글을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권하는 바다. 연희관 자치도서관에 비치된 연희관 015B 17호 책이나 연희관 015B 브런치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링크: https://brunch.co.kr/@yonsei015b/152

[3] 연세대학교 입학처


참고문헌

연세대학교 장애학생지원실 홈페이지. https://ablecenter.yonsei.ac.kr

연세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 http://admission.yonsei.ac.kr/seoul/


편집위원 띵동(glowingpinky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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