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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9호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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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25. 2023

[공동기획] 자치도서관의 언어를 기록하기

[우거지다] 편집위원 띵동, 영원

사회과학대 자치도서관 공동 기획을 시작하며


 공일오비 19호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이고, 편히 쉬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인 사회과학대 자치도서관(약칭 자도)을 다룬다. 이는 지난 5월, 사회과학대 내 교육 연석 협의체인 연희마루에서 “자치도서관이 운동권 쪽에서 관리하다 보니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방문하기 어렵다”, “(자치도서관 운영위원이) 열고 싶으면 열고, 열기 싫으면 열지 않는다”[1]라며 공간의 자치성을 훼손하는 취지의 이야기가 오간 데에서 문제의식을 느껴, 앞으로의 자치도서관 존속을 위해서 일련의 사안-일명 ‘운동권 사태’-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나아가 2012년 3월 개관 이래로 자치도서관이 ‘여기, 또 다른 언어가 있다’라는 가치를 지켜내고자 애써 온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특히 근 1년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학교가 폐쇄되며 함께 문을 닫았던 자치도서관이 운영을 재개한 첫해로, 2년간의 공백을 메우고자 자치도서관 운영위원들이 분투한 시기이기도 하다. 2년의 휴관 기간 동안 기존의 자치도서관 운영위원 대부분이 졸업함과 동시에 학교를 떠나, 자연히 새로이 활동하고 있는 운영위원들은 코로나 시기 이전에 자치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없거나, 혹은 알음알음 그 존재를 희미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이들로 꾸려졌다. 기존에 활동하던 자치도서관 위원과의 교류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들이 지난 일 년간 ‘누구든 거리낌 없이 넘나들 수 있는’[2] 자치도서관의 공간성을 지켜 나가고자 기했던 노력을 서술하는 것은 곧 멈춰 섰던 자치도서관의 이야기를 다시 연결 지어 미래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글을 종이책의 형태로 읽고 있다면, 잠시 책을 덮고 표지를 봐 달라. 표지 한켠에 “연희관 지하 015호 자치도서관에서 펴내는 사회과학대학 잡지”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그게 공일오비의 정의다. 자치도서관에서 발간하는 잡지. 정말이지 그렇다. 우리는 학기 중에는 매주 목요일, 자치도서관에서 학기 시작과 동시에 선정해 둔 책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하고, 방학 중에는 주에 2번 편집위원들끼리 일정을 조정해 편집회의를 하는 데 이때의 편집회의도 자치도서관에서 진행한다. 자치도서관에서 공일오비의 모든 활동이 진행되는 셈이다. 때문에 ‘운동권 사태’가 일어났던 당시, 나는 개인으로서도 상황을 불안하게 받아들였으나, 더 크게는 공일오비의 필진으로서 공일오비가 있을 곳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사건의 진행을 더욱 두려운 마음으로 좇았다.


 연세 춘추의 2000년대 초중반의 기사로부터 공간 연희관 015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막상 자치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의 이야기는 기록물은 고사하고 자치도서관에 몸을 담고 있는 이에게 물어보아도 ‘과거에 언젠가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어디선가 전해 들은 출처 불명의 이야기에 의존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만 있었다. 코로나로 2년간 자치도서관이 문을 닫으며, 직접 마주친 바 없는 이들이 운영위원으로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어 자치도서관의 옛이야기들을 공유할 기회가 자연스레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일오비는 현 자치도서관 관장인 진영뿐 아니라 2017년에서 2021년까지 자치도서관 위원과 관장을 지내신 선경, 연자에게도 연락을 드려 인터뷰를 진행해 궁금한 점들을 여쭸고, 이들의 답변을 나란히 놓아 포개어지는 부분과 어긋나는 부분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자치도서관과 관련한 인터뷰라 말씀드리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세 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전한다. 그럼, 이제 연희관 지하에 위치한 잉여들의 아늑한 아지트, 자치도서관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보도록 하자! ✨



오세요, 연희관 015B에


 자치도서관은 연희관의 지하 1층, 015호에 자리하고 있다. 연희관에 와본 적 없다 해도 자치도서관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연희관 정문 옆의 지하 1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통로로 들어온 뒤, 왼쪽으로 쭉 걸어가면 하얀색 벽에 붙어있는 각종 포스터와 색색의 스티커가 지나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소수자성을 가진 이와 연대한다는 의미로 자치도서관 운영위원들이 붙여 둔 포스터와 스티커를 따라가다 보면, 이 모든 연대가 귀결되는 자치도서관의 기조, ‘여기, 또 다른 언어가 있다’가 새겨져 있는 명패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이 자치도서관이다. 자치도서관은 학기 중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위원들이 재실하고 있고, 시험 기간에는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자치도서관 회원이 아니어도 공간을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회원가입 비용 3,000원을 납부하고 회원이 되면 대관이 가능하고, 책들을 대출해 갈 수 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을 찾아냈다면 제대로 찾아간 것이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도록!     


 자치도서관인 만큼, 책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우선 공일오비가 창간호부터 가장 최신호인 18호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다. 대부분의 책들은 운영위원들이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독립서점에 방문해 자치도서관에 있었으면 하는 책들을 구매해 온다. 물론 구글폼으로 이용자들로부터 희망 도서를 신청받기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 답변이 없어 운영위원들의 재량으로 해당 과정은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 먼 과거에는 책 기부를 받기도 했었다. 다만 선경은 이 경우를 두고 “교수님들이나 연구실 분들이 학교를 떠나실 때 안 쓰는 옛날 교과서를 기부하고 가시더라고요”라며 개론서는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개정되기도 하고, 크지 않은 서가를 다양한 책들로 채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데에 당시 활동하던 운영위원 모두가 동의해, 본인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던 때 부터는 책 기부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일러 주었다.


 연자, 선경, 그리고 진영에게 자치도서관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셋 모두 자치도서관은 “누구나 편히 올 수 있는 공간”이라 말했다. 보통의 도서관이라면 금지되었을 음악 소리와 웃고 떠드는 소리가 자치도서관에서는 항상 흐르고, 한쪽에는 토퍼가 깔려 있어서 누워서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이동의 방법이 걷기 말고도 다양함을 인지할 때, 학교 내의 승인된 공용 공간에서 “누울 수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글을 함께 쓰고 있는 띵동은 휠체어에 누운 채 이동한다. 그는 인터뷰 당시 진영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치도서관의 토퍼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누워서 이동한다 해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앉아 있기, 혹은 걸어 다니기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공의 공간에서 자꾸만 남의 눈치를 살폈는데 자치도서관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서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자치도서관에서는 음식 섭취도 가능하다. 비록 연희관 내에서 공식적으로 음식물 섭취는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 타 단과대와 달리 건물 내에 트레비앙은 고사하고 1층의 음료 자판기뿐이 없는 만큼, 학생들은 싸 온 도시락이나 청경관에서 사 온 김밥을 이곳에서 먹어도 괜찮다.


 세 명의 자치도서관 위원들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도는 누구나 올 수 있다”고 확언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치도서관이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치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문턱을 넘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경 사실 과방이나 동아리방 같은 경우에는 현역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잖아요. 말로는 모두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내가 현재 활동하는 기수가 아니면 들어가기 민망하고. 과방도 2학년 넘어가면 들어가기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고. 특히 (과방은)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인데 자도는 그런 게 없어요.

연자 공강 시간에 달리 가 있을 곳이 없을 때 많이들 자도를 먼저 떠올렸던 것 같아요. 과방은 좀 어색하고, 동아리방은 멀거나 쓰기 어려울 수 있고, 한두 시간을 위해 카페에 가 있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도서관에 가 있자니 연희관에서 중도까지는 거리도 꽤 머니까요.

진영 사실 과방이나 학생 자치 공간이 있긴 하지만, 과방을 여러 가지 이유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동아리방도 동아리를 하지 않아서 동방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어떻게든 학교에서 자기가 몇 시간을 자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정말 좋아요. 편안하고 안전해서 고학번 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과방 들어가기도 눈치 보여서 온다고 얘기하고 그러거든요.


 이들의 말처럼 자치도서관은 연희관의 다른 학생 자치 공간과 달리 특정 학과 혹은 동아리의 구성원이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사회과학대 학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 연희관까지 걸어오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실 수만 있다면야 - 상관없다. 무엇보다 자치도서관 문 앞의 LGBTQIA+ 스티커, 자치도서관 운영위원들과 이용자들이 함께 꾸민 여성의 날 포스터는 곧 자치도서관이 소수자를 환대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선언이다. 동시에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공간 내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의미로도 자치도서관에 오기 위해 넘어야 할 턱은 없다. 문턱이 없어 휠체어를 타고도 자치도서관에 쉽게 들어올 수 있고, 책상마다 의자 한 두개는 꼭 빼두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 선경의 말처럼 이곳은 “누구든 자기 모습 그대로 있어도 비난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연희관 지하 1층 015호의 변천사


 자치도서관은 언제부터 자치도서관이었을까? 자치도서관이 자치도서관이기 이전의 모습을 확인하려면,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학부제[3]가 한창이던 2002년, 자치도서관은 강의실로 쓰였다. 당시 학생들은 사회대 내 학생 자치가 운영되는 단위인 ‘반’의 학생들이 지낼 수 있는 ‘반방’이 부재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공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자치 공간 확보의 당위성을 사회대 본부에 전했다. 그러나 사회대는 신규 임용 교수들의 연구실 마련, 그리고 절대적 공간의 부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4] 학생들은 이에 멈추지 않고 천막 투쟁 등의 방법을 통해 공간 확보를 위해 애썼고, 2004년 강의실 하나(지금의 015호)를 확보했다.[5] 칸막이를 쳐서 6개의 반방과 사회학과 과방을 015호에 마련하는 계획이었다. 2004년 9월 10일부터 9일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015호는 강의실에서 자치 공간으로 바뀌었으나, 자치 공간 내 비품 미비로 학생들의 실질적인 사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사회대 학생회는 학교 측에 비품을 요청해 책상과 의자를 마련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는데, 당시 사회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조남흥 과장의 말을 빌리자면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자치 공간에 필요한 비품을 부담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6] 이렇듯 전례 없던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학생회가 실시한 서명운동에 오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할 정도로 사회대 학생들의 큰 지지가 있어서였다. 자치도서관이 최초에 강의 공간에서 자치 공간으로 바뀔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단체로 나서서 직접 요구했기 때문이 크다.


 그러다 2008년, 학교는 2010년부터 신입생 모집 단위를 기존의 광역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바꿀 것이라 예고한다. 학부제에서 학과제로의 전환은 학생 자치의 기본 단위가 반에서 학과로 바뀔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도 사회과학대학은 2010년부터는 반 학생회를 없애고 과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회를 개편하였다.[7] 자치의 중심이 반에서 학과로 옮겨가자 자연히 여러 개의 반방으로 사용되었던 015호 또한 사용률이 낮아졌다. 교수들로 구성된 공간위원회[8] 측에서는 이곳을 스터디 라운지로 만들 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치 공간을 겨냥하면서도 논의 과정에 학생들을 포함하지 않아 크게 반발을 샀고,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9]


 015호의 미래는 48대 사회대 학생회가 당선되면서 결정되었다. 48대 학생회는 학생 총회를 통해 ‘사회과학 도서관 건립’을 주요 교육 투쟁 안건으로 포함시켰는데, 참석 인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로 해당 안건이 통과했고, 학교 측에서 015호를 도서관 공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10]

 48대 학생회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11년 1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2년 3월 15일, 장서 1천 600여권 규모를 갖춘 지금의 ‘사회과학대 자치도서관’이 개관했다.[11] 다만 사회대 학생회가 처음에 구상했던 “사회대 학생들만의 공간”, “전문성을 갖춘 사회과학 서적으로의 접근성”을 담보하는 것 이상으로, 자치도서관은 나름의 운영위원회 꾸려 자치도서관을 ‘생활도서관’으로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12]      

 대학생 자치기구로서 생활도서관은 금서(禁書)가 아직 존재하던 시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8-90년대 당시 생활도서관은 권력에 의해 접근이 금지된 책들을 들여와 자유롭게 읽고 토론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생활 도서관에 모여 나눴던 이야기는 도서관 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넘실대며 퍼져나가 당시 학생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1994년 개관한 이화여자대학교의 생활도서관은 개방되지 않은 중앙도서관의 서가를 개방하라는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13]

 그러나 자치도서관이 개관한 것은 2012년으로, 한창 대학 등지에서 생활도서관이 만들어졌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학생들이 그 시절 부러 생활도서관을 찾았던 것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해 열람할 수 없었던 책을 열람하고 토론하기 위함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도 손쉽게 당대의 금서를 빌려볼 수 있는 지금, 생활도서관을 표방하며 문을 연 자치도서관은 개관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 가야 했다.[14]      


 새 학기가 되어 새로운 운영위원들을 맞이한 자치도서관이 첫 모임에서 ‘교양’을 실시하는 것은 바로 저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연자의 말을 빌리자면, 교양은 “자치도서관의 역사와 기조, 이 공간이 지금까지 무슨 활동을 해왔고 어떻게 기능해왔는지를 되짚어보는 시간”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자치도서관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 연자는 자치도서관이 내어보인 답이 “학생들의 권리와 자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 만큼 학내·외 여러 이슈에 목소리를 직접 내거나 연서명을 하고, 간담회 등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퀴어·장애·노동·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담론을 형성”하며, “자도의 언어는 책 안에만 있는 게 아니고 책 밖으로, 도서관 밖으로 꿈틀거리는 것”임을 말해주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덮기 전, 자치도서관의 운영위원들은 이같은 교양 시간 뿐만 아니라 자치도서관을 함께 운영하며 자치도서관에 대한 이해를 공유했다. 그리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이 중 한 명이 관장을 맡아 다음 세대의 자치도서관을 이끌어가다보니 자연스레 언어 밖의 언어를 듣고자 하는 자치도서관의 기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전 운영위원들과 함께 공간을 운영해본 적이 없음에도 현재의 운영위원들은 자치도서관의 필요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가며 자치도서관의 기조를 이어가고자 분투하고 있다. 후술할 운동권 사태에 대해 자치도서관이 2023년 6월 2일자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자도는 그때(개관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학생 자치 공간으로서 누구든 거리낌 없이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자 ‘언어 밖의 언어’가 깃든 공간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뷰에 함께 한 진영 또한 “(자치도서관이) 정말로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진짜 모두를 위한. 누군가는 또 자도에 오는 걸 망설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자치도서관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라며 소망을 밝혔다.                



운동권 사태 타임라인[15]     


1. 5월 8일: 자치도서관장 행정실에 전화, "운영비 요청" - 왜 필요할 때만 연락하냐는 행정실의 답변 -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5월 15일 결정

2. 5월 10일: 연희마루

▶ 문제의 속기록 (5월 12일 발견)

▶ “(자치도서관을) 운동권에서 관리하다 보니 (운동권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 사회과학대 학생회에 상황 설명 요청

3. 5월 14일: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 대책 회의

4. 5월 15일: 학생회-자치도서관-행정실 삼자대면

▶ 갑작스러운 학생회의 동석 (행정실에서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고 연희마루 속기록에 해당 내용이 존재했음)

당일 자치도서관에 많이 있었던 사람들

▶ 학생회장의 "자치도서관 문 앞 퀴어 스티커 불편하다는 학생들 있다" 발언

▶ 자치도서관의 요구: (1) 속기록에 발화자 이름 명시할 것, (2) 사과문 작성할 것

▶ 행정실의 말: (1) 다 같이 소통하며 사이좋게 지내라 (2) 누워 있는 공간 보기 안 좋으니 없었으면 좋겠다

5. 5월 19일: 사회과학대 학생회 [연희마루 내 자치도서관 논의 및 발언 관련 사과문] 게재

6. 6월 2일: 자치도서관 입장문 발표

7. 자치도서관 입장문 발표 후, 사안 종결 (별다른 반응 X)               



운동권 사태 전개     


 지난 1학기에 자치도서관 존속을 위협했던 ‘운동권 사태’는 5월 8일에 자치도서관장이 사회과학대학 행정실에 봉사 장학금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 전에 연락이 잘되지 않다가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며 자치도서관장의 연락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행정실은, 5월 15일에 자치도서관 측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5월 10일에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학 협의체 '2023 사회과학대학 연희마루(이하 '연희마루')'[16]에서 자치도서관이 언급되었다. 자치도서관 측과 논의하기도 전에 사회과학대 행정실에서는 누가 어떻게 자치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냐고 묻는 한편, 활용도가 낮으니 자치도서관 공간을 회수하여 자치도서관 맞은편에 위치한 소셜 이노베이션 랩과 유사하게 만들자는 의견을 개진하며 자치도서관 폐관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교육팀 TFT원에게서 운동권 사태 타임라인 2번의 두 번째 항목과 같은 문제 발언이 등장했고, 해당 발언에 대한 지적 없이 “(운영위원회가) 열고 싶으면 열기도 하고 싫으면 안 열고 학생분들은 존재 자체도 모르고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인지도 없으니”와 같은 발언이 더해지며 자치도서관 공간 개조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자치도서관장 진영은 “(연희마루에서) 자도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고 짐작할 수 있었어요. 행정실의 태도를  보아하니,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죠”라며 자치도서관에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했다고 밝혔다. 5월 12일에 연희마루 속기록을 확인한 자치도서관장은 연희마루에서 나온 발언에 문제성을 느껴 자치도서관 운영위원이 아닌 학우와 함께 사회과학대 학생회실을 찾아가 부학생회장에게 상황 설명을 요청했다. 동시에 속기록은 그 존재 이유 자체가 회의의 모든 과정을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빠짐없이 기술해야 하는데, 연희마루 속기록에 발언자가 표시되지 않은 점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다. 행정실에서는 자치도서관에 알리지 않았으나, 연희마루에서 5월 15일 회동에 학생회도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학생회와도 그때 이야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희마루라는 공론장에서 ‘자치도서관 공간 회수’ 이야기까지 나와버린 만큼, 5월 14일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에서는 자치도서관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며 행정실과 학생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긴급회의를 열었다.      


 사회대 학생회장과 행정실 직원, 그리고 자치도서관 관장이 자치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5월 15일, 자치도서관에는 많은 학생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진영은 “그때는 일단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행정실이 자도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아서요. 학생들이 얼마나 자도를 이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행정실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왔어요. (중략) 솔직히 저는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행정실 내의 어떤 공간에서도 얘기를 하기가 싫었거든요. 좀 겁이 났거든요. 그래서 자도에 데리고 오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라면서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을 드러냈다. 하루아침에 자치도서관 존폐가 달린 상황이었으니 어찌 보면 그 두려움은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행정실은 자치도서관 측에 학생회와 많이 소통하고 잘 지내면 좋겠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한편 학생회로부터 자치도서관 운영이 잘 안 되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자치도서관에는 우리 연희관 015B 편집위원 세 명도 있었는데, 행정실에서 우리를 보더니 “015B도 자치도서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른다던데?”라면서 무언가 떠넘기는 듯한 느낌으로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안과 관련하여 행정실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도 전달받지 못했을뿐더러, 자치도서관을 사용하고 자치도서관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아리로서 이곳에 대해 모른다고 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이야기에 당혹스러웠지만, 우리 015B는 “저희는 자도 여전히 잘 쓰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행정실에서는 자치도서관의 눕는 공간을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 삼으며 없앨 것을 요구했지만, 자치도서관 측은 눕는 공간도 자치도서관 정체성의 일부라며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자치도서관 공간 회수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했냐는 듯 행정실에서는 한참 공간 활성화와 홍보를 강조한 뒤 긍정적인 분위기로 떠났다. 자치도서관장은 그때부터 학생회장과 연희마루에 관해 이야기를 더 나눴다. 진영은 “학생회가 진행한 행사에 속기록이라고 이름을 붙여놨으면 학생회원으로서 누가 발언했는지 당연히 알 수 있어야 하지 않냐”면서 학생회에 운동권 발언의 주체 명시를 집요하게 요구했고, 운동권 발언 및 연희마루에서 보인 자치도서관에 대한 학생회의 태도와 행동이 문제인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자치도서관 측은 강경한 태도로 사과문을 쓸 것과 사회대 운영위원회에 보고 안건으로 운동권 사태에 관해 사과문을 쓰기로 했다는 기록을 남길 것을 요구했다. 학생회장은 이에 곧바로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자치도서관장은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학생회장이 자치도서관 문 앞에 붙여진 퀴어 스티커가 불편하다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아냐면서 에둘러 ‘시정’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에 자치도서관은 이런 방향으로 공간을 더더욱 꾸밀 것이며 “눕는 공간이나 자도 문 앞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에 대해서 학생회가 바꾸라고 얘기하는 것은 월권이니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표명했다.     


 이후 5월 19일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에서 사과문을 게재했고,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는 이 사태에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논의하고 준비하여 6월 2일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 뒤에는 자치도서관에 어떠한 피드백도 오지 않았다. 진영은 “입장문을 쓰고 나서…… 사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는, 그 입장문을 봤으면 다시 어떤 액션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화를 내는 것이든 입장문 봤다는 내용이든 아니면 미안하다는 내용이든 간에 어쨌든 무언가가 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반응도 오지 않았고 그렇게 끝이 났어요”라며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자치도서관에 붙여진 사과문을 발견한 행정실은 “학생회에 미안하니 오해하지 말라”고 말하며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를 달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학생회나 행정실의 추가적인 반응은 없었고, 문제의 발언을 했던 두 명 중 한 명이 자치도서관을 이용하나 운영위원이 아닌 학생에게 자치도서관 입장문 올라온 거 봤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이 말에도 진영은 “그 사람은 운영위원도 아닌데 왜 그런 얘기를 하지?”라고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진짜 바뀐 게 없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허탈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자치도서관은 추가로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자도를 그렇게까지 모른다고 하니까, 자도를 알리는 카드 뉴스를 만들었다”라면서,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1학기를 마쳤다고 한다.           



사태의 시작     


 그러나 더 이상의 관련 언급과 행위가 없다고 해서 이 사태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운동권 사태’가 발생한 이유를 주목해 봐야 한다. 특히 자치도서관의 존재에 심각한 위협이었던 이 일련의 사태가 촉발된 계기를 말이다. 자치도서관에서 행정실에 자치도서관에 대한 개별예산, 혹은 이전에 지급되었던 봉사장학금을 받는 방법을 문의하자 행정실이 이에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행정실은 개별예산은 고사하고 봉사장학금조차 지급 근거가 없다며 지급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봉사장학금은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를 대표하는 관장 개인에게 도서관 재실과 활동을 명목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자치도서관 관리 운영에 사용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후 자치도서관 측에서 자치도서관 존재 및 활동 근거를 제시하자 행정실이 이를 받아들여 봉사장학금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끝나고 대면 학기가 시작되면서 자치도서관 운영이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급 근거가 없으니 안 된다는 답변부터 내놓은 행정실이었다.


 하다못해 5월 15일에 예정되었던 자치도서관과의 논의가 진행되고 나서 지급 가능 여부에 대해 확언하여도 늦지 않았다. 그러나 자치도서관과의 어떤 논의도 이루어지기 전에 행정실은 연희마루라는 공론장에서 갑작스럽게 자치도서관 활성화를 문제 삼으며 공간 회수를 의제로 내세웠다. 학생회나 행정실이나 자치도서관 문 앞 퀴어 스티커와 토퍼 깔린 공간 등의 제거를 요구하면서 자치도서관이 ‘모든 학생의 공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학생 자치단체와 자치 공간에 대한 침해와 월권은 서슴지 않고 자치도서관이 학생들의 이용 확대를 위해 노력하라면서도, 정작 자치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비용은 조금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고려하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 자치로 운영되는 공간 성격에 행정실 혹은 학생회가 개입하려는 것은 명백히 자치에 대한 침범이고,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모두의 공간이어야 마땅할 자치도서관 활성화’를 명분으로 삼았다면, 공간 유지에 필요한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 명분과 얼마나 앞뒤가 안 맞고 모순적인지 알아야 했다.          



공간 활성화의 재정의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대체 ‘모든 학생의 공간’과 ‘활성화’란 무슨 의미일까? 단지 많은 사람이 오가고 머무르는 사람이 빠르게 회전되는 곳이라면, 우리는 그 공간이 모두의 것이며 활성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도의 아주 중요한 정체성은 소수자 친화적이라는 것”이라는 진영의 표현처럼, 자치도서관은 소수자를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며 마이너리티를 기꺼이 표방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갖는다. 그만큼 자치도서관은 소수자에게 열린 공간이며, 다수의 공간에서 밀려난 소수자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띤다. 누울 수 있는 공간의 존재로, 퀴어 스티커로 어딘가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발걸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진영은 “소수자를 포용하는 건, 소수자가 소수자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소수자의 역할이 아니라 다수자가 해내야 하는 책임이고 그것이 선출된 학생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현재 소수자가 외부로 밀려나고 떠도는 것에는 다수자의 책임 소지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다수의 공간이 소수자를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므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공간 활성화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특성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 소수자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기꺼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공간. 그런 곳이라면, 우리는 이 공간이 나름의, 그리고 매우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월권과 침범이 무너뜨린 학생자치     


 운동권 사태를 마주한 전현임 관장의 반응은 제각기 달랐지만, 이 사태가 개탄스럽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했다. 자치도서관 현장에서 사태 당시 관장으로서 온몸으로 위협을 느꼈던 진영은 “되게 무섭고 불안했어요”라고 말하며 당시의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밝혔다. 또한, “사실 그 사람들은 공간(자치도서관)을 없애는 걸 실행할 의지도 없었던 것 같은데, 저는 공간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 사람들이 쓰는 단어나, 그 사람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에서요. 사실 행정실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자도를 공사해 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학생회에서도 어떻게 할지 모르는 거니까요”라는 그의 말에서 자치도서관 위원이 체감한 위협의 정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와 행정실이 공간 회수와 자치도서관 폐지를 강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진의와 관계없이 이들은 언어로써 자치도서관 공간 회수를 형상화・구체화하였고, 동시에 그것을 얼마든지 실행할 힘을 가진 주체이기도 했다. 자치도서관과의 논의도 하기 전에 공간 회수를 언급한 학생회가 그런 맥락에서 연희마루라는 공론장에 ‘자치도서관 공간 회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비단 학생 자치의 권한을 침범할 뿐만 아니라 자치공간의 박탈마저 이들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설령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고 어떠한 결과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위협을 가한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론장에서의 책임 주체로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행사력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무책임하고 방만한 태도일 뿐이다.     


 진영이 두려움을 느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도 학생회가 자치도서관에 개입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2022년)에도 연희마루에서 일이 있었네요. 연희마루 TFT를 모집한다는 카드뉴스를 학생회에서 만들었어요. 카드뉴스 설명에 따르면 TFT가 팀으로 운영이 되는데, 팀별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안건 예시들을 학생회에서 만들어서 적어뒀어요. 거기에 ‘자치도서관 활성화’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당시 관장님이 그때의 학생회장한테 사과를 개인적으로 받아냈거든요. 그리고 게시물을 수정했고요. 그런데 올해 또 이런 일이 일어나서 제가 물어봤어요. 작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알고 있었냐고요. 근데 (학생회에서)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됐거든요. 저희가 그래서 더 위협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라고 진영은 당시 상황에 대해 덧붙였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두 편집위원은 비슷한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가까운 시기에 이미 발생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자치도서관의 활성화를 주도하고 실행하며 그 과정을 주관하는 주체는 학생회도 행정실도 아닌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이며, 이외의 단체가 ‘자치도서관 활성화’를 명분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해 학생회가 연희마루 TFT의 업무에 ‘자치도서관 활성화’를 넣음으로써 자치도서관의 자치성을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당시 학생회장이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카드뉴스 게시물을 수정하기도 했다. 진영의 말마따나 학생회에서는 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금년 연희마루에서 문제의 ‘운동권’ 발언이나 자치도서관 활성화, 공간 회수 문제를 꺼낸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학생회가 당시에 사과하고 게시물을 수정했던 이유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이해는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제를 되풀이하고 악화시키는 것은 학생회에서 해당 사안의 문제성을 인식하고 자성한 정도가 얼마큼인지 방증할 뿐이다.



자치도서관의 정체성과 소수자성     


 특히, 진영은 학생회와 행정실이 자치성을 훼손하고 자치도서관의 존재 당위 증명을 요구하는 데에 분노했다. 자치도서관 관장은 “자도의 아주 중요한 정체성은 사실 소수자 친화적이라는 건데 학교랑 학생회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굳이 얘기하자면 다수자인 거죠. 그런 다수자에게 소수자가 존재하는 이유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설명하고 입증해야 했거든요. 그 사람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중략) 아무튼 그런 식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자도의 존재 이유와 자도의 역할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다는 게요. 그 어떤 자치단체도…… 예를 들면 공일오비가 학교에 왜 있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잖아요. 어떤 단체든 간에요. 학생회가 왜 있는지도요. 물론 설명이야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를 설득시켜야 하는 내용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걸 자기들이 학교고 학생회라는 이유로 너무 당연하게 요구를 해대서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라고 말했다. 소수자 친화적이고 모두에게 열린 자치도서관은 소수자성을 포함하고 매개한 공간이자 단체가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소수자에게 행해지는 존재 입증 및 정당화 요구와 맞닥뜨리는 결과로 직결된 것이다. 자치도서관은 명백히 학생 사회의 합의하에 출범한 학생 자치단체이며, 10여 년간 모든 구성원, 특히 소수자에게도 열린 공간으로의 변모에 끊임없이 힘써왔다. 학내에 어떤 단체가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존재 목적을 물을 수는 있더라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도 ‘존재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어떤 증명 행위를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학교 안과 밖을 막론하고-는 소수자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데 능숙하다 못해 이골이 났고, 소수자는 이에 매번 응답하기도 급급할 지경으로 내몰려 있다. 그 누구도 어떤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라고 할 수는 없는데도, 대상이 소수자이기에 증명 요구는 거리낌 없이 자행된다.[17] 이러한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학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이번 사태를 촉발한 셈이다. 그렇기에 자치도서관이 소수자성을 매개하고 있어 학생자치의 영역이 더더욱 쉽게 침범되고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행정실이고 학생회라고 한들, 자치도서관의 눕는 공간과 퀴어 스티커에 관여할 수 없다. 또한, 자치도서관의 뚜렷한 정체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도 그들에게는 없으며, 공론장에서 자치공간 회수를 언급하는 것은 부당한 존재 증명 요구이자 위협임이 자명하다.     


 선경은 “그런 (자치도서관의) 투쟁이, 저희는 어쨌든 졸업한 사람들인데도 타자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제로 저희가 재학할 때 저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했던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 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았고요. 이 사태를 보면서 이게 저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고, 어떻게 보면 늘 이루어져 왔던 그런 투쟁 같다고 저는 느꼈던 것 같아요”라면서 이번 사태가 자치도서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 같았다고 설명했다. 선경이 자신의 재학 시절에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는 답변을 내놓은 데서 이러한 소수자성에 대한 침범이 비단 이번만의 문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는 자도보다는 아무래도 (2018년, 2019년 당시에는) 젠더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단체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어요. (중략) 그래서 저희는 그때 (투쟁의) 주체라기보다는, 그런 싸움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하고 협력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때 저희가 분노했던 건 학교라는 공간마저 우리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회의 흐름 자체였던 것 같아요. (중략) 그러니까 저희가 과거에 연대를 해서 냈던 입장문들도 청소노동자 권리, 여성 인권 등 관련이어서요. 사회과학대에서는 저희가 그런 거를 너무 적극적으로 하는 걸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저희는 “알 바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임하긴 했는데요. 그래도 저희가 봉사 장학금을 받으려면 활동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요. 사실 약간의 타협으로 활동 보고서에는 조금 상대적으로 온건한 활동 위주로 기록을 하기는 했어요”라는 선경의 답변에서 당시에 이루어졌던 자치도서관의 정체성 위협의 단상을 들어볼 수 있었다. 사실 당시와 현재 상황 사이에 크게 다른 점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쉽게 그 차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소수자 친화적이고 소수자와 연대하는 단체는 여전히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쉽게 공간을 박탈당하고 비난과 멸시에 놓이며 안전한 범위 밖으로 밀려나고, 이들과 연대하는 데는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 어째서 소수자와 연대하려면 그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까. 다름 아닌 학교가 그 리스크를 만들어 안긴 주체인 점이 씁쓸할 따름이다. 또한, 학교가 학생자치에 일종의 검열을 자행해 왔던 것도 실망스러웠지만 동시에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은 학생자치단체인 자치도서관이 결정할 몫으로, 그 누구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하지 말라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학교는 자치도서관의 권한 내에 있는 활동에 간섭하려고 했고, 자치도서관은 어쩔 수 없이 일부 타협해야 했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가 월권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거나 직접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변명하는 것은 구차하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분노와 연대     


 한편, 선경은 이번 사태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실 저도 재학했던 시절에는 굉장히 분노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그냥 우리인데 남들이 우리를 남들을 규정하고, 그거를 핑계로 우리의 독립성을 지우고, 우리 존재의 정당성을 해치려고 한다는 것에 굉장히 억울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런 공격을 너무 많이 받으면 좀 지치는 것처럼 그냥 그쪽은 원래 그랬고 우리는 어쨌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킨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라며 이번 사태에서 ‘체념적인 태도’였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 답변이 너무나도 쉽게 이해되었다. 계속해서 존재 이유를 확인하라며 자기 증명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것에 응답하다 보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부당한 현실이나 요구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지켜낸 것에 안도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경은 분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계속해서 가졌던 가치들을 유지해 나갈 수 없을 테고, 어쨌든 분노도 동력의 하나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회 변화가 실제로 분노를 동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그 과정이 지금의 자도 위원분들께 덜 상처가 됐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그게 저희의 동력이 될 수 있고 그런 부당한 조치에 분노하는 게 저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상처받는 걸 너무 가볍게 얘기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 분노한 사람들의 자치도서관을 향한 응원도 이어졌다. 진영은 “자도 위원, 그 공간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느꼈던 건 일단 15일에 20명 정도 모인 것도 그렇고 자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어요. 자도 위원들끼리도 더 단단해졌고요. 그 공간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이 화를 내주는 게 되게 힘이 많이 됐어요. (중략) 이번에 응원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거든요. 응원을 많이 받으면서 자도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이렇게 약간의 노이즈 마케팅을 해서 학내에 있는 또 다른 소수자들이 쉽게 (자치도서관에)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라고 밝혔다. 이 사태가 분명히 자치도서관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고 좋지 않은 기억이기는 하나,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부당함에 분노하여 자치도서관을 지켜낸 것은 물론이고 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사태에 대한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발화함으로써 자치도서관을 더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로 이 사태로 단지 자치도서관이 지워질 뻔한 위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존재를 더욱더 선명히 그리고 확고히 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운동권 프레임의 문제     


 연자는 “누군가는 자치도서관을 구성하고 있는 도서나 단체로서 표명하는 입장을 두고 ‘운동권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학부생 시절에도 에브리타임에 가끔 그런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여러 맥락에서 동의하지 않고 타격 입지 않는 이야기라, 개인적으로는 그 말 자체가 딱히 새롭거나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이 ‘연희마루’에서 나왔다는 점이 달랐죠. 조금의 제대로 된 상호 이해도 없이 학내 공론장에서 다른 구성원을 낙인찍고 곡해하는 배제적 맥락에서 상당히 문제적인 발언이라 생각했고, 자도 운영과 공간 활용에 대한 이후 논의들까지 이어 읽고 나니 참담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졸업하기 전 코로나19로 학교 오프라인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학교가 폐쇄되면서 도서관 운영이 어려웠고 부득이하게 공백이 있긴 했지만, 그간의 맥락과 공간성이 단숨에 사라져 납작하게 일컬어지는 건 아쉽고 속상했어요”라고 사태를 접하여 느낀 참담함을 드러냈다. 연자의 말처럼 ‘운동권’ 발언은 암암리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히 단어 자체가 가진 순수한 의미로 누군가를 수식하기보다는 타인을 비난하고 낙인찍는 의도와 맥락을 포함한 상태로 쓰이며 이면에는 소위 ‘운동권은 거른다’라는 식의 배제의 논리가 끼어있다. 당최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치도서관을 두고 ‘운동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전의 자치도서관 관장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경 또한 인터뷰 중 운동권 관련 언급을 하였기 때문이다.     


 “에브리타임 같은 곳에서 자도에 대해서 ‘거기는 원래 운동권 애들 모인 데다’, ‘페미 도서 꽂혀 있고 거기 있는 애들 맨날 민요 튼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고요. 저희도 항상 저희가 반(半) 운동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에타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보고 하니까요. 그래서 그냥 저희는 오히려 약간 기시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게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 운동권과 반(反)운동권 프레임이 유지되는구나 싶고 좀 씁쓸하기도 하고요.” 이와 같은 발언에서 자치도서관에 ‘운동권’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아주 만연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특정인 혹은 특정 단체를 프레임화함으로써 일종의 사상 검증 대상이자 불온한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병폐가 마냥 낯설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공의 논리로 사상이 불온해 보이는 존재를 추궁하고 ‘색출’하여 어떤 단어로 규정하고 말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무려 현재까지 내려오는 현상의 잔재가 씁쓸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연자와 선경의 말처럼 엄연한 학생자치단체인 자치도서관의 역사와 역할을 파악하려는 일말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학내 공론장에서 자치도서관을 왜곡하고 프레임화하여 배제하는 발언을 하고, 위에서 언급한 ‘불온함'의 맥락 위에 자치도서관을 갖다 놓았다. 언어로써 자치도서관을 배제한 셈이다. 학생회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만큼, 진정으로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어떤 의미와 맥락이 끼어있는지와 자치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되새기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자치도서관이 그려나갈 미래


자치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이유     


 우리 편집위원들은 자치도서관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진영은 “일단 제일 가까이 있는 문제는, 제가 학교에서 있을 공간이 없어요. 그리고 공일오비도 적을 두고 있을 곳이 없어질 거고요. 그리고 진짜로 갈 곳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단순히 학교에서 잠깐 공강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사람들도 정말 많겠지만, 분명히 자도라는 이 안전한 공간이 없어지면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하거든요. 그 정도의 안전함을 보장하는 공간이 (자치도서관 외에) 학교에 너무 없어요. (중략) 사실 누구나 다 살아 있잖아요. 공간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어디를 가든요. 수업 교실에 가도 책상과 의자. 내가 그 시간 동안 쓸 책상과 의자가 정해지는 거고. 집에서도 나의 공간이 있고. 집은 되게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흔히 생각되는 그런 공간이기도 하고요. 공간과 존재가 그래서 직결되는 것 같아요. 공간을 내가 차지할 수 있어야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감각이 생기는 건데 그런 게 흔들리면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이런 정체성이 뚜렷한 공간일수록 더더욱 그럴 것 같아요. 얼핏 생각하기로는요”라고 답했다. 어디든 우리가 물리적으로 발붙이고 안전하게 존재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다. 물리적으로 차지할 공간이 있어야만 한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도 공고히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학내 소수자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자치도서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소수자 친화적인 색채가 강한 자치도서관인 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진 소수자적 정체성 또한 굳건히 유지되고 보호될 수 있다. 그만큼 자치도서관이 없어지면 마음 편히 지낼 공간을 잃어버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선경은 “가장 큰 거는 아무래도 메인 스트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할 거라는 거. 물론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 나름의 공간을 찾겠지만 어쨌든요, 그러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제가 재학할 당시에는 동아리나 학생회 같은 공간들은 메인 스트림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쨌든 주로 점유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었는데 그런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많이 줄어들 것 같아요. 그래도 자치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없다면 그게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 싶어요……”라며 자치도서관이 없어졌을 때 주류(혹은 다수자)가 아닌 사람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잉여들의 공간’을 표방하는 자치도서관이 사라진다면 소수자성과 다양성을 내포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제약을 느낄 것이다. 이는 거꾸로 개개인의 색채와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자치도서관 같은 공간이 학내에는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자는 “연희관 내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났더라고요. 공강 때 있을 만한 매끈하고 조용한 곳들은 생겼을지 몰라도, 동아리 유무나 전공과 관련 없이 누구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자도는 분명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공간성 덕에 사랑받아 왔고요. 그 형태가 반드시 자도일 필요는 없지만, 안 그래도 공간이 부족한 연희관에서 떠들고, 생각해 보고, 먹고 자고 읽고 쉬고, 작당도 모의해 보는 공간마저 점차 사라지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말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요”라고 답했다. 자치도서관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말처럼 도서관의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단순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해 왔다. 자치도서관의 기조이기도 한 ‘여기, 또 다른 언어가 있다’처럼 자치도서관에는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독특한 언어와 활동과 사람들이 있다. 자치도서관만큼 주류의 언어가 아닌 다채로운 언어가 사용되는 공간도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오는 책이 바로 연희관 015B다!          


앞으로의 자치도서관     


 자치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혼자서 발견하여 방문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물론 전수조사를 한 것은 아니기에 그 비중이 전체 방문자에서 얼마를 차지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치도서관이 위치한 B015호는 워낙에 외지고 눈에 잘 띄는 곳이 아니거니와, 편집위원들이 인터뷰하며 만나봤던 사람들도 모두 지인을 통해서 자치도서관을 알게 되고 방문한 경우에 해당되었다. 진영은 친구를 통해, 선경은 과거 같이 활동했던 소리패 회장을 통해, 그리고 연자는 선배를 통해 자치도서관을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한 점들을 종합하였을 때, 연희관에 찾아와 우연히 자치도서관의 존재를 발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네트워크를 통하여 알음알음 자치도서관을 알고 방문하는 경로가 가장 주된 경로가 되는 셈이다. 자치도서관의 지향점이 모두가 오갈 수 있고 더 많은 소수자가 포용 되는 공간이라면, 이 ‘자치도서관 방문 경로 확대’에 어떠한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테다. 분명히 언급해야 할 것은, 자치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자치도서관의 존재를 알지 못했거나 자치도서관 방문을 망설였다면, 이 글을 읽고 기꺼이 찾아와 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 이후에 자치도서관을 다시 열면서, 이전에는 진행했으나 지금은 미처 재개하지 못한 활동들이 있기도 하다. 여태까지는 엔데믹 상황으로 많은 활동이나 행사를 서둘러 다시 구성하고 개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면 전환, 그리고 자치도서관 재개관을 한 지도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공간을 정돈하고 개방하는 것이 자치도서관의 최우선적인 일이겠지만, 앞으로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치도서관을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활동이나 행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 점을 자치도서관 위원들도 알고 있기에 지난 1학기에 영화 상영회를 여는 등 추가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자치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될지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요청에 어떻게 부응하며 변화할지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만약 자치도서관에 새로운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한다면, 학생사회의 기록을 아카이빙하는 공간을 겸하는 방향도 존재한다. 우리 연희관 015B가 자치도서관에 아카이빙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자치도서관이 결정하고 나아가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도 공간이 존재하고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자치도서관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을 지켜보며 찾아오기를 바란다. 또한, 특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자치도서관이 ‘와글와글하고 자유롭고 느긋한 공간’[18]의 모습을 간작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자치도서관을 오갔던 진영, 선경, 연자가 기대하는 자치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을 그려보며 이 기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진영  이제 바라는 거는 (자도가) 이어지고 아니고는 제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도라는 공간이 가진 힘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다만 제가 바라는 건 어떤 위협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어떠한 공간이 있는데,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고 거미줄 쳐져 있어서 청소해야 하는 게 아닌 이상 어떤 외부의 위협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외부라는 걸 구분 짓기도 되게 애매하지만, 자도가 있겠다고 하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경  사실 제가 졸업을 한 입장에서 새롭게 자도를 향유하는 분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제가 어떤 이렇게 돼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조금 적절하지 못하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냥 새롭게 오시는 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분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계시는지에 따라서 그냥 그분들이 계속해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쭉 남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공간으로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연자  제가 반했던 자도의 첫 모습이 엄청 생생한데요. 앞으로도 와글와글 시끌시끌하고 자유롭고 느릿한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1] 2023년 5월 10일에 진행된 연희마루의 실시간 속기록에서 확인 가능하다.

[2] 2023년 6월 2일, 자치도서관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재한 “2023년 연희마루에 대한 자치도서관 운영위 원회 입장문”에서 일부 발췌하였다.

[3] 명확한 전공 없이 인문, 사회, 이학, 공학, 의치의학, 예체능의 6개 계열 중 하나로 입학해 두 학기를 보낸 후 전 공을 선택하는 제도이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실시되었다.

[4] 오승준, “열악한 자치공간, 서로에게 책임은 없다?”, 「연세춘추」, 2002.03.04., https://fulltext.yonsei.ac.kr/image_2/000000011100/SERVICE/000000011100_01.PDF.

[5] “단과대 공간투쟁 희비 엇갈려”, 「연세춘추」, 2005.01.01.,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7303.

[6] 권혜진, “”학생“ 없는 사회대 ”학생“자치 공간”, 「연세춘추」, 2004.10.03.,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6950.     

[7] 연세춘추공동취재단, “미리보는 연세 2010”, 「연세춘추」, 2009.12.30.,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690.     

[8] 앞서 언급되었던 학생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대의 “공간대책위원회”와는 다른 것으로,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9] 최명헌, “존폐 위기 사회과학대 자치공간, 진실은?”, 「연세춘추」, 2008.03.15.,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737.   

[10] 이예진, “[학생회 공약이행평가] 사회대”, 「연세춘추」, 2011.11.12.,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172.     

[11] 정세윤, “사회대 자치도서관 개관! ”열린 도서관“ 지향”, 「연세춘추」, 2012.03.19.,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511.    

[12] 여수현, “학교 내 숨어있는 도서관 탐방 - 자치도서관 편”, 연세대학교 공식 블로그, 2017.09.21., https://blog.naver.com/yonseiblog/221086672355.     

[13] 사루비아, “”우리는 자유롭게 연애하고 있을까?“ - 이화여대 생활도서관 기획도서전 <연애의 정석>”, 고함20-20대의 소란한 공존, 2013.12.12., https://goham20.tistory.com/3496.      

[14]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건 비단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만이 아니었다. 자치(생활)도서관을 찾는 학생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90년대 당시 개관했던 생활도서관들 또한 변화한 시대 상황에 발맞춰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가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학생 사회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모으는 &아카이브&로써의 생활도서관의 정체성을 구축한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의 사례이다. 자세한 내용은 박연진, “학생사회의 기록보관소, 생활도서관”, 「고대신문」, 2018.04.02.,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875. 에서 확인할 수 있다.

[15] 자치도서관 측의 동의를 얻어 명명하였다.

[16] 연희마루란 사회과학대학 학생, 교수, 교직원 등 구성원이 모여 사회과학대학 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말한다.

[17] 좀 더 노골적으로 일례를 이야기하자면, “누군가 동등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하며 사회에서 대우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말에는 모두가 긍정하고 동의하면서도, ‘누군가’의 자리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가 들어가면 “지금도 이미 충분하지 않냐”, “당신들이 약자로 존재하기는 하냐”,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라” 같은 혐오 깔린 요구가 빗발친다.

[18] 후술된 연자의 표현을 빌렸다.


참고문헌     

권혜진, “”학생“ 없는 사회대 ”학생“자치 공간”, 「연세춘추」, 2004.10.03.,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6950.     

사루비아, “”우리는 자유롭게 연애하고 있을까?“ - 이화여대 생활도서관 기획도서전 <연애의 정석>”, 고함20-20대의 소란한 공존, 2013.12.12., https://goham20.tistory.com/3496.      

여수현, “학교 내 숨어있는 도서관 탐방 - 자치도서관 편”, 연세대학교 공식 블로그, 2017.09.21., https://blog.naver.com/yonseiblog/221086672355.     

연세춘추공동취재단, “미리보는 연세 2010”, 「연세춘추」, 2009.12.30.,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690.     

오승준, “열악한 자치공간, 서로에게 책임은 없다?”, 「연세춘추」, 2002.03.04., https://fulltext.yonsei.ac.kr/image_2/000000011100/SERVICE/000000011100_01.PDF.     

이예진, “[학생회 공약이행평가] 사회대”, 「연세춘추」, 2011.11.12.,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172.     

정세윤, “사회대 자치도서관 개관! ”열린 도서관“ 지향”, 「연세춘추」, 2012.03.19.,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511.     

최명헌, “존폐 위기 사회과학대 자치공간, 진실은?”, 「연세춘추」, 2008.03.15.,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737.     

“단과대 공간투쟁 희비 엇갈려”, 「연세춘추」, 2005.01.01.,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7303.
 

편집위원 띵동(glowingpinky0@gmail.com), 편집위원 영원(wizju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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