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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호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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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Mar 15. 2024

우당탕탕 스포츠 팬의 계절

편집위원 띵동

 여름편


 뭐든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지난 연말, “장애인이 게임을 왜 하냐”[1]와 같은 문장이 기사에서 어렵지 않게 보였다. ‘장애인이 게임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하면 어쩔 건데?’라고 화가 불쑥 솟구치다가도 한 명의 게임 유저로서 이 저열한 혐오와 차별이 웃기지도 않게 들렸다. 그러나 이 말은 익숙함을 넘어서 질리게 접한 문장이기도 했다. 이 신기한 문형은 응용이 쉽다는 특징이 있어서, 단어 몇 개만 바꾸면 언제 어디서나 무심하게 뱉을 수 있는 말이 된다. ‘장애인이 스포츠를 왜 보냐?’, ‘장애인이 직관을 뭐 하러 오냐?’, ‘장애인이 왜 돌아다니냐?’……. 혐오는 이렇게 호기심 섞인 의문을 가장한 채로 일말의 부끄럼 없이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과거에는 맥락과 행간 사이에 자리한 은근한 혐오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느덧 2024년에 이른 현재에는 되레 노골적인 형태의 혐오를 조금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가 공론화되고 이에 대한 백래시가 더더욱 심해진 것이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얼마 전부터 혜화역에서 이루어진 출근길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는 물론이고 여기에 동조한 일반 시민마저 질질 끌려 연행[2]되었다고 했다. 장애인 이동을 위해 마련한 서울시의 장애인버스는 장애인 활동가를 체포하여 이송할 때 쓰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차별적인 구조를 개선하고 기본적인 권리 향상을 요구하는 것조차 국가 권력에 의해 와해하고 박탈당하는 판국이니, 혐오가 보다 더 장려되어 판을 치는지도 모른다. 뒤로 밀리는 휠체어 바퀴와 바닥에 넘어져 끌려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사회가 시대를 역행하는지 내가 사회를 역행하는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사실, 액면 그대로의 폭력적・혐오적인 언행보다도 장애인 당사자를 적잖이 당황하게 하는 것은 애매한 ‘헤아림’을 곁들인 억측이다. 장애인이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면[3] 별소리를 다 듣는다. 그중에서도 매우 인상 깊었던 말은 ‘신체 기능에서 비롯된 결핍을 스포츠 시청・관람으로 해소한다’라는 해석이었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그 해석이 너무나 얄팍한 편견과 일반화를 통하여 도출되었다는 점이 기가 찼다. 당연하게도 어떠한 결손이 결핍으로 직결될 리 없는 데다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거짓된 명제의 적용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판단의 기저에 깔린 발상이 무엇인지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라는 문장은 프로스포츠의 영역일수록 비단 장애인 팬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팬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프로 선수의 기술이나 체력, 실력이 비(非)선수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의 영역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만족감 얻기’ 논리는 이상하게도 장애인 팬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장애인 팬도 다양한 동기로 접근하여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데도!

 그러므로 장애인이 스포츠를 왜 보느냐는 질문은 애초에 답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면서도 정작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리 보면 이는 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인 셈이다. 다만, 어떤 것에 열광해 온 흔적과 기록은 누구에게나 있겠다는 생각이 일면 들었다. 특히 “왜 하지?” 싶은 것들을 골라 하며 다채로운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에 이 중에서 한 가지를 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스포츠는 내가 오랫동안 즐겨 왔거니와, 좋아하는 종목도 많아서 여러모로 되짚을 기억이 꽤 있었다. 사람들이 딱히 관심을 두지 않거나 알지 못하겠지만, 누군가는 장애인이 어떤 방법으로 스포츠를 즐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의미로, 이번 글에서는 스포츠에서 내가 지난하게 마주한 즐거움과 장벽의 양태를 적고자 한다.


 금단의 공놀이

띵동이 그린 평소의 띵동. 유니폼을 입고 응원에 여념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일평생 살면서 얻은 분노와 울화의 대부분은 스포츠 때문이다. 사실 이 문장도 영 틀렸다. 매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거의 다 야구 때문이니까. 부모님이 야구팬이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야구와 응원팀을 접하는 수순을 우리 가족 또한 아주 비슷하게 따랐다. 우리 집은 무려 3대가 야구팬이라 모 팀이 이긴 날에는 할아버지부터 아빠, 삼촌들까지 싱글벙글하셨던 기억도 많았다. 으레 자녀는 부모의 응원팀을 따라간다고 하나, 나는 모 팀과 전통적으로 관계가 최악인 다른 팀을 응원하게 되었다. 별다른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으레 야구팬들이 그러하듯이, 야구의 신에게 신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응원 팀이 정해져 버렸다. 그때 내가 대여섯 살이었으니 응원 팀만 제외하면 아빠가 바라는 대로 야구 조기교육 하나는 확실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른 말씀 들어 나쁠 것 없다는 속담은 난데없이 여기서 효력을 발휘했다. 내 응원 팀이 오랫동안 하위권을 전전하거나 우승을 목전에 두고 실패할 때, 아빠의 응원 팀은 승승장구하여 우승 트로피도 여러 번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가족 내 대세를 순순히 따랐다면 야구 때문에 화내고 잠 못 이루는 날이 조금은 줄었을지 모른다. 가뜩이나 못 하는 팀 좋아하느라 힘든데 가족들과는 다른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회유 섞인 조롱도 매일 들었다. 팀이 못하는데 왜 자기가 조롱받냐고 푸념하던 한 야구팬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야구팬이지만, 야구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정말 대답하기가 힘들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작 하나를 떠올리려고 골머리를 앓는 반면, 야구를 보면 화가 나는 이유는 과장 없이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한때 그림을 열심히 그렸던 적이 있는데, 스케치북의 절반 가까이가 야구 때문에 우러나온 분노가 원천인 그림이었다. 야구가 대체 뭐길래 이럴까? 야구는 우선 경기 수가 너무나도 많다. 팀마다 1년에 144경기를 하고, 3월 말부터 10월 초까지는 월요일 빼고는 거의 항상 경기가 열린다. 야구는 타 종목과 달리 제한 시간이 없어서, 짧게는 2시간 반 만에 끝나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무박 2일 경기를 하기도 한다. 야구팬들은 그 모든 경기를 전부 챙겨 보고, 때로는 직관도 한다. 한 경기 지고 나면 치솟은 분을 삭일 새도 없이 다음 날의 경기를 봐야 한다. 연패라도 하면 상황은 더더욱 끔찍해진다. 분노에 분노를 들이붓는 격이니까. 그렇다 보니 응원 팀이 진 다음 날 아침은 개운하지 않다. 순위표를 보지 않아도 응원 팀이 몇 등인지, 얼마나 이겨야 순위가 오를 수 있는지 야구팬은 모두 알고 있다.

 야구팬은 응원 팀이 1등이든 최하위든 늘 화가 나 있다. 야구팬의 문제라기보다는 야구라는 종목 특성 탓이 크다. 경기 수가 많다 보니 응원 팀이 6할의 압도적인 승률[4]로 1등을 하더라도 최소 58번의 패배에는 화를 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구는 득점이 매우 들쑥날쑥한 스포츠다. 안타나 홈런이 터져서 득점이 몰아치듯 나오면 10점에도 금방 도달하지만, 타격이 수비에 봉쇄되면 경기 내내 겨우 1점을 내기도 어려운 기묘한 스포츠다. 계속 공을 잘 던지던 에이스 투수가 실투 하나로 홈런을 얻어맞아 승리를 내주는 일도 흔한 것이 바로 야구다. ‘분위기 싸움’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선수단 전력으로 승패를 예단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응원 팀이 언제 역전을 할지도,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야구팬은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켜본다. 승패의 향방이 어느 정도 결정되면 누군가는 도파민에 휩싸여 환호하고 누군가는 절규하며 비속어 섞인 방언을 터뜨린다. 그러고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자연스럽게 야구 중계를 튼다. 나도 그렇다. 오죽하면 나의 지인은 내가 야구만 보면 야수가 된다고 평했으니,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다.     

띵동이 그린 수비 실책에 분노하는 띵동

 신기한 점은, 그런데도 야구를 계속 본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응원 팀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우리 팀은 소위 구제 불능한 상태였다. 내가 응원하고 나서의 기간을 포함하면 꼬박 10년 연속으로 하위권에 있었다. 슬프게도 나는 우리 팀이 꼴찌에 가깝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이 팀을 좋아했다. 저주스러운 안목이었다. 어릴 때 스포츠뉴스를 보면 “통한의 역전패”, “충격적인 경기력”과 같은 헤드라인이 우리 팀에 따라붙는 미사여구로 등장했다. 우리 팀은 지지리도 못했다. 프랜차이즈 선수나 스타급의 선수가 여럿 있었는데도 우리 팀은 구제 불능이었기에, 나는 구제 불능 팀의 오랜 팬으로서 괜히 그 훌륭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평범하게 패배하는 것은 우리 팀의 사전에 없었는지 지는 방법과 과정도 가지가지였다. 야구에서 이론적으로 저 상황이 실현 가능한지 의아할 만큼 엽기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언젠가부터 야구 룰을 줄줄이 꿰게 되었다. 어느 날에는 내가 야구를 보는 것인지 코미디 쇼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나는 내가 어떤 것을 사랑할 때 얼마나 절제가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피겨스케이팅에 게임에 K-pop까지 즐기느라 시간이 부족했는데, 여기에 야구까지 더한다면 해야 할 일을 모조리 뒷전으로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는 실시간 야구 중계를 최대한 멀리했다. 그래서 진작에 응원 팀이 있었는데도 본격적인 야구(극성)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019년부터였다. 직전 해에 롤러코스터를 타 또다시 하위권에 머무르던 우리 팀은 운 좋게도 내가 야구에 허우적대기 시작한 그해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성적이 좋아질수록 우승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져서 기쁨 못지않게 실망감과 좌절도 몇 년간 겪어야 했고, 우승을 목전에 두고 실패할 때마다 울화를 터뜨리며 좌절했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 화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과 별개로 2019년부터 매년 강팀만 갈 수 있는 포스트시즌[5]에 진출해서 우승 도전을 하는 우리 팀을 보며 나는 상전벽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이 야구를 잘할수록 나는 내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조금 더 떳떳하게 밝히게 되었다. 처참한 성적을 거둔 암흑기 동안 누군가 먼저 물어봐야만 겨우 응원 팀을 밝혔던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야구팬이 야구를 본다고 매일 똑같이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화가 덜 나고 -보통은 이기는 날이 그렇다- 어떤 날에는 수심이 깊어지고 뒷골이 당길 정도로 격노하게 된다. 야구와 응원 팀이 나에게 최악의 불행을 선사하던 순간은…… 솔직히 셀 수 없을 만큼 너무 많다. 경기로 그 범위를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즌마다 144경기씩 있거니와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도 정말 오래되었으니까. 그래도 직접 괴로운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엄선한 최악의 경기와 모멘트를 꺼내 보자면, 2021년 5월 21일 경기와 2022년 10월 27일 플레이오프 3차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나는 끔찍한 경기들이다.

 먼저 2021년 5월 21일은 후반부가 특히 다이나믹한 경기였다. 2점 차로 끌려가던 경기의 9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연속 홈런 3득점이 나오면서 우리 팀은 역전에 성공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우리에게 넘어왔기 때문에 나는 승리를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게 김칫국이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역전했던 우리 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듯 그날 9회 말 상대에게 2점을 헌납하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패배하게 된 원인은 야구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우리 팀 포수가 이미 아웃된 주자[6]를 아웃되지 않았다고 착각해서 그 주자를 아웃시키려고 달려갔던 사이 다른 주자가 홈에 들어와 결승점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당시 40년째였던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기이하고 해괴했기에 일명 ‘귀신 목격 플레이’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알려지면서 우리 팀과 당사자 선수의 망신살은 글로벌하게 뻗쳤다. 그때 경기를 보던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황당해하던 것도 잠시, 뒤늦게 분통이 터져 야밤에 집 근처 공원을 몇 바퀴를 돌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정체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던 나는 야구라는 굴레에 갇힌 내 신세를 자조했다. 이 못 볼 꼴을 다 보았음에도 다음 날에도 야구를 볼 것이 뻔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022년 10월 27일 플레이오프 3차전은 악몽과도 같은 경기였다. 같은 해 정규시즌에서 6할 승률에 구단 역대 최다승을 올리고도 2위에 머무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팀은 양질의 전력으로 28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다. 직전 2차전에서 충격적인 패배가 있었고 3차전 선발투수의 맞대결에서 열세로 예측되기는 했지만, 우리 팀의 공격력이 워낙 좋아서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경기였다. 게다가 예측과는 정반대로 우리 팀의 젊은 선발투수가 허리 부상에도 크게 선전하여 6회 초까지 우리 팀이 2:0으로 앞서던 상황이었다. ‘우리 ○○○ 정말 대견하다’, ‘너는 역시 실망시키는 법이 없어’, ‘내년에 꼭 연봉 100% 인상 받아라’ 등등 인심과 사랑이 가득한 코멘트를 내뱉으며 미소 짓던 때는 폭풍전야였는지 나는 6회 말부터 도끼눈을 치켜뜨고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잘하던 선발투수가 통증 문제로 인해 다른 투수로 교체[7]되자마자 3점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해서였다. ‘해도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수가 점점 적어졌지만,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은 그다음에 비로소 방송에 송출되었다. 우리 팀이 재역전에 성공해 4:3으로 다시 우위를 점하고 난 직후에 최악의 과정을 밟아 역전패한 것이었다. 우리 팀은 7회 말에 2아웃을 깔끔하게 잡았는데도 뜬금없이 애매한 안타를 맞더니 급기야 화룡점정으로 연속 타자 홈런까지 얻어맞았다. 홈런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것이 야구이니 연속 타자 홈런이 얼마나 드물게 발생하는지는 부연할 필요도 없을 테다. 비하인드 다큐멘터리에서는 연속 타자 홈런 허용 직후에 투구 연습장으로 돌아온 투수가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담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경기에 출장한 선수도 아닌데 그 상황에 정신이 나가서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다. 이어진 공격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작전 실패로 절호의 기회를 날리며 우리 팀의 패배에 쐐기가 박혔다. 아마 그 경기가 끝나고 나서 우리 팀 선수단, 프런트, 팬들 모두 한국시리즈 진출이 매우 어려워졌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4차전에서 우리 팀은 우승 후보로 평가받은 정상급의 전력에도 허무하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때 허탈감에 빠져 하마터면 야구를 멀리할 뻔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루에 최소 세 시간은 야구와 응원 팀에 들이붓고 매 경기에 일희일비하느라 감정 소모가 큰 데다가 좌절이나 선사하는 야구 따위 깔끔하게 끊으면 그만일 텐데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인생에 야구 하나 걷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야구팬조차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명쾌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저 야구에 매여 버렸다고 단정하기에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의욕이 있었다. 야구에 대한 각자의 사랑 방식과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나에게는 선수 개개인에게 애정이 있다는 점 또한 야구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팀의 레전드 선수가 기록을 경신하며 역사를 써 내려가면 감동하고, 프랜차이즈 스타[8]나 에이스 선수[9]가 빼어난 실력을 선보이면 내가 저 선수를 길러낸 것처럼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구원투수와 백업[10] 야수의 헌신에 고마워하고, 신인 선수의 완연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대신 행운을 바란다. 경기만 봐도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나를 비롯한 꽤 많은 야구팬은 구단의 콘텐츠나 선수들의 인터뷰, 참여 방송까지 모조리 찾아본다. 그러니 야구팬은 자연스럽게 선수 각자가 가진 서사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아주 많이 쌓인다는 뜻이다.

 물론 이 친밀감과 사랑이 항상 보답 되는 것은 아니다. 기량이 급격하게 저하되거나 성적이 저조한 것도 팬이 선수에게 실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선수에게 오만 정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사실 선수 개인의 처신 문제다. 처신만큼 많은 것을 포괄하는 애매모호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처신 문제는 다양한 사안을 어우른다. 그것은 경기 혹은 연습에 임하는 태도도, 리그 내 규칙・규약 준수 여부도, 동료와의 관계도, 심지어 야구 밖 영역의 이슈인 사생활이나 범죄도 될 수 있다. 개인의 처신 문제에 대한 예민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확실한 점 하나는 범죄를 용납하는 야구팬은 없다는 것이다. 뉴스 사회 면에 -특히 응원 팀 소속의- 야구선수 구설수가 올라올까 봐 팬들은 매일 알게 모르게 불안한 마음으로 인터넷 뉴스 창을 켠다. 나도 비슷한 심정으로 간혹 벌어지는 선수나 관계자의 사건・사고를 접한다.

 야구팬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또는 팀의 대표 격인 선수의 이름-대부분 두 경우가 서로 일치하고는 한다-과 등번호를 유니폼에 마킹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킹된 유니폼은 보통 ‘(선수 이름)+유니폼’이라고 불린다. 유니폼에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를 마킹하면 일정 비율의 인센티브가 초상권과 유사한 개념으로 선수에게 지급되기에 선수를 응원하는 목적으로 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몇십 벌씩 구입하는 팬들도 있다. 나는 열정 없이 소소하게 응원하는 팬이라 팀 레전드 선수의 유니폼 두 벌과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 한 벌을 가지고 있었다. 유니폼에 새겨질 정도로 좋아했던 선수는 내가 야구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2019시즌에 많은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외야수였다. 그 외야수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나는 그해 말에 그 선수 유니폼을 구매했다. 나의 기대와 반대로 그 선수는 이후에 2019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성적과 기량은 점점 하락했다. 심지어 등번호까지 내가 마킹한 것과 다른 번호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그 선수를 응원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그 선수가 사회면에 기삿거리로 등장할 때까지는 그랬다. 처음에 익명으로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선수의 타격 자세가 실루엣 처리된 사진도 내용에 있었는데, 나는 타격 자세 실루엣만 보고도 그게 누구의 사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선수가 방출되기도 전에 접착제 제거제를 이용해 유니폼을 차지한 마킹을 떼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마킹 떼기를 처참히 실패해서 유니폼 자체를 내다 버려야 했다. 그것은 돈만 생각해도 마치 10만 원 이상을 땅에 버린 것과 같았다. 내가 퍼부었던 애정에 크게 데이고 만 셈이다. 물론 새 유니폼을 구매해 거기에 좋아하는 또 다른 선수-앞서 언급했던 2022년 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투수-의 마킹을 부착했으니 아직 사랑의 동력이 꺼지기란 머나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직관을 어떻게 하냐고요?

 야구에 이성을 잃고 살아가면서 나는 경기를 직관하러 1년에 몇 번씩은 야구장에 가게 되었다. 그마저도 전염병 상황 때문에 2020년부터 3년간은 야구장에 거의 가지 못했지만, 초봄과 늦가을을 제외하면 야구를 보기에 딱 알맞은 날들이 이어져서 주기적・충동적으로 야구 직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직관할 때마다 매번 응원 팀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이하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의도적으로 다른 구장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의 응원 팀도 공교롭게도 잠실야구장이 홈구장이라서 우리 팀과 맞대결할 때 주로 직관하러 가서였다. 나는 패배 귀신이었다. 내가 야구장에 가면 우리 팀은 졌다. 심지어 내가 야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잠실 인근에 가도 졌다. 야구를 꽤 많이 보러 갔는데도 내가 갔을 때 우리 팀이 승리했던 적은 고작 세 번뿐이었다. 귀가하는 길에 그렇게 험한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는 안 간다고 다짐해 놓고 우리 팀에게 또 속아서 지는 경기를 보러 가는 날이 몇 번인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 가서 우승에 도전할 때 나는 잠실 일대에 얼씬거리지도 않았고, 우리 팀은 29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오래간만에 보람 있는 자제를 했던 것 같다.

 패배 귀신 소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야구장에 가면 우리 팀은 패배하려고 발악이라도 하듯 경기했다. 오죽하면 나는 1년에 10개 팀이 도합 다섯 개도 못 치는 인사이드더파크홈런[11]을 직관 현장에서 목도했던 사람이다. 문제는 우리 팀이 인사이드더파크홈런을 치지 않고 맞았다는 것이다.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 난무한 직관 경험만 가득한데도 나는 기어이 직관을 끊지는 못했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야구장에는 야구팬-과 일반 관람객-이 즐길 것이 너무 많다. 이곳에서는 중계로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 열기와 스릴이 있고, 선수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을 팬으로서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야구장은 노래방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경기 내내 응원가를 따라 부르다가 집에 올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경기에서 패색이 짙어지면 구슬프게 응원가를 불러 울화를 승화할 때도 많다. 선수의 등장 곡이 아는 노래면 열심히 따라 부르고, 모르는 노래가 들리면 다음에 다시 나올 때 따라 불러야 하기에 짧은 시간 안에 배워서 외운다. 내가 야구를 보러 왔는지 노래를 부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다. 야구장에서 노래를 부른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야구장 노래 중독에 시달려서 등장 곡과 응원가가 수록된 플레이리스트까지 스스로 제작한다.

 또 다른 야구장 직관의 묘미는 야구장 음식을 먹는 것이다. 나는 야구장에서 주로 국수나 만두를 먹는데, 야구장 내 상점가가 워낙 광활한지라 웬만한 메뉴는 다 찾아서 먹을 수 있다. 물론 인근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하거나 배달받아 야구장에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파리와 팅커벨(나방)로부터 짐과 음식을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노후화된 시설로 인해서 잠실야구장에는 날개 달린 여러 존재가 떼를 지어 상주하고,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더 증식해 있다. 그들이 불시에 습격해 올지도 모르므로 음식이든 무엇이든 유유자적하게 펼쳐 놓으면 위험해진다. 작년의 나는 경기 상황 때문에 쓰린 속을 달래려고 맥주만 들이켜다가 그만 소중한 만두를 팅커벨과 공유하고 만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성인이 되기 전부터 야구장을 제법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엇나간 자식의 야구 응원 팀을 교정하기 위해서 아빠는 부질없는 시도의 일환으로 자주 나를 잠실야구장에 데려가셨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나를 안고 다니셨기 때문에 비장애인 석을 주로 이용했던 나는 휠체어석의 존재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휠체어석이 어떤지 진작 알았다면 -그리고 당시에 휠체어석이 존재했더라면- 나는 휠체어석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오늘날의 잠실야구장 휠체어석은 예상보다 훨씬 더 배리어프리 한 곳이다.     

잠실야구장 좌석도(출처: LG트윈스 홈페이지)

 우선 잠실야구장의 휠체어석은 40석 내외이며, 양측 블루석에 6석이, 레드석에 나머지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비장애인 석의 경우 블루석이 레드석보다 시야가 좋고 가격이 비싼 만큼, 블루석의 휠체어석에는 투명 아크릴판에 작은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더욱더 편리하게 음식과 짐을 놓고 야구 응원과 관람을 할 수 있다. 레드석의 휠체어석에는 별도의 테이블이 없지만, 그 대신 101구역과 122구역의 휠체어석 위에는 처마와 유사한 구조의 천장이 있어 직관하는 와중에 따가운 햇빛이나 비를 피할 수 있다. 휠체어석은 모두 내야 1층과 2층 사이의 편평한 면에 배치되어 있는데, 다른 좌석과 비교하면 그라운드(운동장)와 거리가 아주 가깝지는 않으나 시야가 어떠한 제한 없이 확 트여 있다. 파울볼이 휠체어석으로 날아올 것을 대비하여 강화 유리로 추정되는 투명 가림판도 설치되었다. 관중석에서 별다른 제약 없이 경기를 관전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일면 갖춘 셈이다.

 잠실야구장에 휠체어석이 생긴 것은 2009년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휠체어석과 장애인 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로 장애인 접근성이 없다시피 했는데, 이에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려는 장애인 팬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신설・확충할 것을 잠실야구장에 권고[12]했다. 이를 계기로 잠실야구장에 휠체어석이 40여 석 규모로 새롭게 조성되었고, 이후로 좌석 수의 큰 변동 없이 장애인 방문객을 맞고 있다. 잠실야구장이 25,000석이 넘는 대규모의 수용 인원을 자랑하는 것과는 상반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잠실야구장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경기장 모두 휠체어석을 포함한 장애인 좌석 수가 전체 좌석 수의 0.5%를 채 밑도는 수준[13]으로, 그 규모가 매우 작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휠체어석을 비롯한 장애인 관람석 수가 전체 관람석 수의 1% 이상이어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내용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잠실야구장의 휠체어석은 가격도 꽤 저렴한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팀이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경기를 개최할 때 휠체어석 입장료는 굉장히 저렴했다. 휠체어석의 좌석 위치와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외야석인 그린석 가격의 50%에 해당하는 4,000~4,500원이었다. 당시 우리 팀의 관계자는 휠체어 이용자 관중은 외야석 등 다른 좌석을 이용할 수 없어 선택지가 휠체어석밖에 없으므로 휠체어석 입장료를 이처럼 책정했다고 밝혔다.[14] 하지만 지난해 2023년부터 블루석 휠체어석은 10,000~11,000원, 레드석 휠체어석은 8,000~9,000원으로 입장료가 인상되었다. 각각 블루석, 레드석 입장료의 50%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휠체어석 티켓과 함께 판매되는 동행인 좌석은 비장애인 석 입장료를 다 받는다.[15] 예를 들어 블루석 휠체어석의 동반인 석을 구매한다고 하면, 20,000~22,000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문화예술 공연에서 휠체어석과 동반인 석 모두 일반 좌석의 50% 입장료에 판매되는 관례와 휠체어 사용자가 대체로 동행인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동반인 석 입장료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보통 혼자보다는 같이 방문하는 야구장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의 경우, 블루석 이하의 내야석과 외야그린석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프리미엄・테이블・익사이팅석 이용 시에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 참고로 휠체어석을 포함해 모든 좌석의 입장료를 산정하는 기준은 오로지 각 구단의 재량에 달려 있다. 주중 경기와 주말 경기의 입장료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특정 구단의 경우 상대 팀에 따라 입장료를 다르게 책정하기도 한다. 휠체어석 티켓 가격 역시 구장과 구단마다 각기 다르며, 그 편차가 매우 큰 편이다. 어느 구단은 4,000원을 받고 또 다른 구단은 10,000원 이상을 받는다. 동반인 석도 마찬가지다. 동반인 석이 무료인 구단이 있는가 하면, 비장애인 석의 정가를 모두 받는 구단도 있다.

 잠실야구장에서 휠체어석을 이용한다고 가정하고 동선을 설정해 보자. 접근 불가능한 경로가 대놓고 휠체어 앞을 가로막지는 않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없이 계단으로만 통행 가능한 곳이 없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찾아 조금 더 먼 길을 돌아서 이동하는 경우가 존재할지언정 휠체어석으로 가는 과정에서 휠체어로 갈 수 없는 모순적인 경로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먼저 휠체어석을 인터넷 예매한 뒤 현장에서 발권하거나, 경기 당일 현장에서 휠체어석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제1매표소 장애인 창구를 방문해야 한다. 잠실야구장에 수많은 매표소와 창구 그리고 무인 발권기가 있지만, 장애인 창구는 오직 제1매표소 한 곳에만 있기에 이동 방향을 헷갈리면 드넓은 야구장을 끼고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아야 해당 창구에 도착하게 된다. 간혹 중간에 장애인 창구를 안내하는 표지판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몇 미터를 더 돌아가라는 식으로 표시되어 둥그렇고 번잡한 야구장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공간지각력이라고는 눈을 뜨고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이정표다. 무인 발권기를 이용하거나 모바일 티켓을 발급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휠체어석을 이용[16]하거나 장애인 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표소 장애인 창구에서 장애인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티켓을 발급받을 수 있다. 그래도 장애인 창구가 마련됐다는 것이 어디인가 싶어서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일반 매표소 창구는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설치한 바리케이드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휠체어는 그사이에 들어가 줄을 서기도 어려워서였다.

 그렇게 겨우 발권하고 나면 야구장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휠체어석은 앞서 설명되었다시피 내야 지정석 중 블루석과 레드석에 있어, 지상보다 한두 층 정도 높은 위치의 개찰구와 내야 출입구를 차례대로 거쳐야 휠체어석에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개찰구와 내야 출입구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 1루 쪽[17] 휠체어석 또는 3루 쪽[18] 휠체어석에 갈지에 따라서 이동 경로와 방법은 달라진다. 나의 경우 우리 팀이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삼기 때문에 원래라면 1루 휠체어석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원래 휠체어석 이용자가 많지 않음에도 내가 가려고 한 날이면 1루 휠체어석이 매진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는 1루 휠체어석과 3루 휠체어석을 모두 이용해보았고, 이 두 가지의 이동 경로와 방법을 모두 체험해 볼 수 있었다. 1루 쪽 휠체어석에 가려면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반면, 3루 쪽에는 오로지 1루 쪽과 똑같이 생긴 경사로로 통하는 방법만 존재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비장애인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 3루 쪽에는 이만한 선택지조차 갖추어지지 않았다. 경사로는 길이가 길고 가파르며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되어있는데, 이 경사로에 오를 때는 나에게 동행인이 있다는 사실에 절로 안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수동휠체어 사용자가 홀로 이곳을 통과하기에는 역부족이며, 목발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이는 매한가지다.[19] 이동에 제약이 있는 방문자는 고려하지 않은 이동 동선과 시설 구조이다.

 그래도 먼저 언급했던 것처럼 휠체어석으로 가는 길에 휠체어가 넘을 수 없는 턱이나 계단, 혹은 사용 불가한 리프트가 버티고 있지는 않다는 점 하나 때문에 잠실야구장의 편의시설에 크게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잠실야구장 정도면 배리어프리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이유 역시 아주 단순했다. 휠체어석의 시야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방해도 없어서였다. 어떤 좌석이든 시야제한석이라고 명시가 되어있지 않은 한 시야가 트여 있는 상태가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여러 공연장이나 경기장에서 휠체어석 이용자는 알게 모르게 시야 제한을 당한다. 휠체어석 사용자의 눈을 가리는 존재는 정말 다양도 하다. 오가는 사람이나 좌석에서 일어서있는 사람, 기자가 세워둔 대포 카메라와 삼각대, 휠체어석과 똑같은 높이에 배치된 앞 열 의자, 불투명 현수막, 바리케이드 등 이런 방법으로도 앞을 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잠실야구장의 휠체어석에서는 구조나 시설에 의한 시야 방해는 물론, 사람에 의한 것도 없었다. 앞 열과 휠체어석 사이의 단차가 확연히 있어서 앞 사람이 일어나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잠실야구장의 휠체어석을 처음 이용했을 때 괜히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앞서 짚어 본 문제점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여전히 잠실야구장이 배리어프리 한 곳이라고 명시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 때문일까? 프로야구 경기 중에도 장내의 휠체어석은 대체로 비어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잠실야구장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프로야구 구장 전체 좌석의 0.5%도 되지 않는, 그나마 적은 수의 휠체어석이 모두 예매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22시즌에는 시즌 시작일인 4월 2일부터 9월 1일까지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한 관중은 총 471만 명 이상이었으며, 이 중 장애인 관중 수는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2만 명 사이로 추산되었다.[20] 간혹 인터넷 예매 페이지에서 휠체어석이 ‘이미 선택된 좌석’으로 안내되는 창이 뜨기도 하지만, 경기 관람 시에 야구장을 방문하면 예매되었다는 해당 좌석을 누군가 실제로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노쇼 상황’을 어딘가에 문의하기도 애매했다. 대부분의 구단이 온라인 예매를 위주로 입장권을 판매하고 이러한 온라인 티켓 판매 과정은 인터넷 티켓 판매 업체에 위탁되는데, 이와 같은 업체는 현장의 노쇼 문제를 인지하지 못해서였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휠체어석 티켓을 예매하여 이용하는 것일까? 야구장의 편의시설과 휠체어석이 완전히 배리어프리하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좌석・동선・시설의 측면에서 접근성이 전무할 만큼 최악이라고 평하기는 어려운 야구장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문화예술 및 스포츠 활동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야구장인데도 어째서 장애인은 이곳을 자주 찾지 않고, 휠체어석 자리는 많이 비어있을까?

 예매 후에 발권하러 장애인 창구를 찾아 헤매는 것은 사소한 일로 보이게 하는 문제들이 예매와 안내 시스템에 산재해 있다. 사실상 예매 및 안내 시스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든 예매가 온라인으로 일괄 전환되었을 때 많은 장애인이 장벽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 이전에는 장애인 휠체어석 예매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구장도 존재했다.[21]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서는 좌석 선택 시 5분 이내로 결제하여 티켓 예매를 진행해야 하는데, 대체텍스트, 음성지원 등의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구단 애플리케이션과 예매처가 대부분이라 장애인에게 온라인 예매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이에 인권위에 진정이 이뤄져 장애인의 온라인 티켓 예매 시에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라는 인권위의 권고가 있자 KBO에서는 장애인 관중의 현장 예매를 허용하라는 지침을 모든 구단에 공유했지만, 한 구단이 지침을 따르지 않아 인권위가 해당 구단에 구단 차원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할 것을 재차 권고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22] 해당 문제는 빠르게 시정되어 좋은 개선 사례로 지목되었지만[23], 그런데도 야구에서 장애인 이용자의 예매와 안내 시스템은 미비하다. 프로야구 구단 중 절반에 달하는 다섯 곳이 사용하는 온라인 예매처는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으며[24], 창원 등 일부 구장을 제외한 곳에서는 장애인 안내 지원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용자에게 알려지지 않아 실제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니 장애인 예매・발권 창구를 찾지 못해 떠돌아다니거나 자신의 좌석이 어디인지 찾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

 휠체어석 이용자를 비롯한 장애인 야구팬에게는 좌석이나 가격의 선택지가 거의 전무하다는 문제점도 있다. 특히 잠실야구장의 경우 구역 위치 외에 휠체어석은 비장애인 석과 달리 높이나 그라운드와의 거리와 같은 측면에서 별도의 좌석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오렌지석’으로 불리는 응원지정석에서는 야구팬을 비롯한 좌석 이용자가 모두 기립해 응원단을 따라 응원가를 부르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확 트인 시야에 비해 가성비가 훌륭한 중앙네이비석이 있는가 하면, 가격이 비싼 대신에 훌륭한 시야와 널찍한 테이블이 제공되는 프리미엄석・테이블석도 있고, 선수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익사이팅석도 있다. 개인의 선호와 사용 가능한 금액에 따라서 구역과 좌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그럴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오직 휠체어석에만 접근할 수 있고, 내가 응원하는 구단은 휠체어석 이외에는 블루석 이하 등급의 좌석에 한정하여 장애인 할인을 제공한다. 다른 일부 구장과 구단의 사례를 살펴보면,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에게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25] 여러 공연이나 행사에서 장애인의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 중 하나는 비장애인과 동등한 참여・관람 기회를 보장받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참작했기 때문인데, 배리어프리 환경 조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과연 이러한 가격 산정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장애인 이용자의 선택지가 극히 제한되었는데도 휠체어석이 존재한다고 해서 배리어프리가 온전히 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잠실야구장의 엘리베이터와 경사로에 관해서도 조금 더 덧붙이고자 한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중 ‘편의시설의 구조・재질등에 관한 세부기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장애인등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

 가. 유효폭 및 활동공간

  (1) 휠체어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접근로의 유효폭은 1.2미터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중략)

  (3) 경사진 접근로가 연속될 경우에는 휠체어사용자가 휴식할 수 있도록 30미터마다 1.5미터X1.5미터 이상의 수평면으로 된 참을 설치할 수 있다.

 나. 기울기 등

  (1) 접근로의 기울기는 18분의 1[26]이하로 하여야 한다. 다만, 지형상 곤란한 경우에는 12분의 1[27]까지 완화할 수 있다.

 (중략)

 12. 경사로

 가. 유효폭 및 활동공간

  (1) 경사로의 유효폭은 1.2미터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건축물을 증축•개축·재축·이전•대수선 또는 용도변경하는 경우로서 1.2미터 이상의 유효폭을 확보하기 곤란한 때에는 0.9미터까지 완화할 수 있다.

  (2) 바닥면으로부터 높이 0.75미터 이내마다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수평면으로 된 참을 설치하여야 한다.

  (3) 경사로의 시작과 끝, 굴절부분 및 참에는 1.5미터×1.5미터 이상의 활동공간을 확보하여야 한다. 다만, 경사로가 직선인 경우에 참의 활동공간의 폭은 (1)에 따른 경사로의 유효폭과 같게 할 수 있다.

 나. 기울기

  (1) 경사로의 기울기는 12분의 1 이하로 하여야 한다.

  (2) 다음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는 경사로의 기울기를 8분의 1[28]까지 완화할 수 있다.

   (가) 신축이 아닌 기존시설에 설치되는 경사로일 것

   (나) 높이가 1미터 이하인 경사로로서 시설의 구조 등의 이유로 기울기를 12분의 1이하로 설치하기가 어려울 것

   (다) 시설관리자 등으로부터 상시보조서비스가 제공될 것


 잠실야구장의 언덕에 가까운 경사로가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 조성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이 ‘장애인등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로 해석되었는지 ‘경사로’로 해석되었는지와 상관없이 그 기울기가 5도 이하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다만, 잠실야구장이 매우 오래된 야구장임을 고려한다면 이곳의 경사로 기울기는 상기된 요건 중 (가)를 적용하여 ⅛, 즉 약 11도 정도에서 기준이 설정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률・행정적으로 이 언덕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접근성에서 배리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가파르고 길며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수동휠체어 홀로 통행하기란 여의찮고, 전동휠체어든 수동휠체어든 동행인이 없는 한 휠체어의 전복 위험성을 언제나 내포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아도 목발을 이용하는 등 하지에 부상이나 장애가 있다면 이곳을 통과하는 것이 마냥 쉽지 않다. 그러니 1루 쪽에만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3루에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엘리베이터 우선 탑승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비장애인과 뒤섞여 엘리베이터를 적절하게 이용하기도 힘들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앞에도 이를 통제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은 예매 과정뿐만 아니라 직관 도중에도 낮은 접근성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잠실야구장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에게도 배리어프리 한 곳이 되지 못한다. 야구장 외부에 상점이 줄지어져 있는 넓은 대로변에는 점자블록이 깔려 있지만,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계단 앞[29] 그리고 경사로 등에는 여전히 점자블록 설치가 미비한 곳이 많다. 야구장 내부에서도 점자블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점자블록뿐만 아니라 점자로 이루어진 표지가 야구장 안팎에 충분히 배치되어 있지 않고, 그나마 존재하는 표지마저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30] 게다가 경기장 앞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음향신호기가 없고, 수많은 좌석 중 자기 좌석을 찾도록 돕는 편의지원마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31] 잠실야구장이 평소에 인파로 혼잡한 장소라는 점과 노약자・장애인 관중을 대상으로 한 안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각장애인의 야구장 안팎 이동이 어려워질 수 있는 데다가 자칫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때 시스템의 부재로 시각장애인의 직관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과거에는 실시간 라디오 중계가 존재하여 시각장애인이 직관 와중에도 라디오 해설을 통해 경기 상황을 전달받는 방식으로 실시간 경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약 3년 전부터 일부 지역 방송국을 제외하고는 라디오 중계가 사라지면서[32] 시각장애인이 직관에서 실시간 응원을 즐기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라디오 중계는 모바일로 대체되었는데, 현장과 15초 이상의 시간 차가 발생하여 실시간으로 경기 실황을 전달받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8월 4일부터 KBO가 잠실, 광주, 사직 구장에서 시각장애인 현장 관람객 대상 음성지원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해결의 물꼬를 텄다. 이 서비스는 음성지원 단말기를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모든 구장에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현장을 즐기도록 하는 적절한 편의지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단말기를 원활히 제공하기 위한 안내 시스템은 아직 미비하기에 이 또한 이른 시일 내에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33]


 배리어가 별것인가요?

 그나마 시설과 관련된 문제는 분노나 체념[34]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삭이며 지나갈 수 있지만, 장애인이 마주하는 가장 큰 ‘배리어’ 중 하나는 사람 그 자체다. 이때 사람은 장애인을 차별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는 경기장 운영 관련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 배리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뜻밖에도 장애인이 마주하는 곤란한 상황은 대체로 ‘보통 사람’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왜 장벽으로 등장할까? 또는 어떻게 장벽이 될까?

 스포츠 경기장을 포함한 문화예술 전시・공연 공간에서 휠체어석을 차지하고 있는 비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최소한, 나는 많이 겪었다. ‘휠체어석의 예매 여부와 상관없이 비장애인이 휠체어석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상식 내지는 통념이 이 사회에 공유되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일이 매번 놀라기도 지칠 만큼 잦기 때문이다. 휠체어석으로 구역 된 공간이 시야 좋고 편한 입석이 아닌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무단으로 그곳에 서 있다. 물론 옆에 동반인 석이 있다면 거기에 착석하기도 한다. 장애인 관객의 동반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야구장은 통제가 전혀 없는 다른 시설과 달리 비장애인의 장애인석 이용 문제가 시큐리티에 의해 통제되는 편인데도 이러한 광경이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장애인이 휠체어석을 이용하러 갈 때 이런 사람들을 대면하면 상당히 난처해진다. 마땅히 하면 안 되는 행위를 조금의 문제의식 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당위를 설명하거나 비켜달라고 요청하려니 머릿속이 아득해지기 때문이다. 겨우 휠체어석에 앉거나 서면 안 된다고 설명하면 돌아오는 것은 약간의 멋쩍음과 온몸을 흘겨보는 시선이다. 그 시선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야 없겠지만, 장애인은 그 시선에 불쾌함과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에도 위축되는 장애인을 통해 우리는 장애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비어있는 휠체어석에 대한 접근은 작년 한국시리즈 때 에브리타임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야구 관련 게시판에 “장애인 좌석 남았는데 휠체어라도 사러 가야 하나”라는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휠체어석을 어떤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와 휠체어석이 어떤 이유와 취지에서 조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무지와 장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 및 혐오가 이 발언에 예시와 같이 드러나 있다. 당시 치열한 예매로 많은 사람이 직관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태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발언이 용인될 수는 없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휠체어석이 단지 ‘비어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빼앗아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장애인의 접근성과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박탈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다. 휠체어를 구매하여 장애를 가장하겠다는 의지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학내 인식이 그 정도로 바닥은 아닌지 작성자를 비판하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러한 발언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학내와 사회의 인식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접근성・인식 문제를 개선하고 권리 증진을 제도적으로 명시하여 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어 왔다. 차별에 대하여 인권위에 진정을 낸 사례가 있는가 하면, 문화예술 및 스포츠 분야 관련법을 개정하여 장애인의 참여 권리를 개선할 것은 물론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명문화하도록 했다. 작년에 스포츠산업 진흥법이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개정되기도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포츠산업 진흥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③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포츠산업의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을 수립ㆍ시행할 때 장애인이 관련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제2항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5조(기본계획 수립 등)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스포츠산업 진흥에 관한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중장기 진흥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라 한다)을 5년마다 수립ㆍ시행하고, 기본계획에 따라 스포츠산업의 각 분야별ㆍ기간별 세부시행계획(이하 “세부시행계획”이라 한다)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② 기본계획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중략)

 9.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제2항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에 관한 사항

 제18조의3(장애인의 스포츠관람권 보장을 위한 특별지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스포츠산업의 진흥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할 때에는 장애인의 스포츠관람권(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행정적ㆍ재정적으로 특별한 지원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의 중요성은 앞서 살펴보았던 음성지원 서비스를 통해서 실감할 수 있다. 스포츠산업 진흥법이 통과되고 나서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명시되자 KBO가 이 음성지원 서비스를 신속하게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매뉴얼 및 인식 개선도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적절한 매뉴얼이 부재하고 장애 인식이 부족하여 현장에서 편의지원이 원활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매 과정과 관람 현장에서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편의지원을 꾸준히 언급・안내함으로써 관계자와 모든 관객에게 장애인의 존재를 주지하는 것도 실질적인 권리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다.


[1] 복건우 기자, “'집게손' 이어 이번엔 장애인 서비스 트집... "장애인이 뭔 게임?"”, 오마이뉴스, 2023.12.05., (https://omn.kr/26n0h).

[2] 복건우 기자, “"팔다리 꺾고 질질 끌고 가"... 또 가로막힌 전장연 출근길 시위”, 오마이뉴스, 2024.01.02., (https://omn.kr/26xtf).

[3] 스포츠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어떤 이들의 억측을 뒷받침하는 핑곗거리에 불과하니까!

[4] 야구에서는 6할 승률을 달성하면 대체로 정규시즌 1위를 한다.

[5] 일명 ‘가을야구’로 불리는 정규시즌 이후의 경기들을 말한다. 리그 10개 팀 기준으로, 정규시즌 순위에 따라서 4, 5위 팀이 맞붙는 와일드카드 결정전(WC),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승자와 3위 팀이 겨루는 준플레이오프(준PO), 준플레이오프 승자와 2위 팀이 대결하는 플레이오프(PO),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 승자와 1위 팀이 최종 우승을 두고 경쟁하는 한국시리즈(KS) 순으로 포스트시즌이 개최된다.

[6] 주자는 아웃된 순간 부유하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7] 보통 선발투수가 5~7회까지 던지고 남은 수비 이닝을 구원투수 몇 명이 쪼개서 등판한다. 체력적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개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적게 던지고 오래 등판할수록 투수와 포수의 경기 운영 능력이 좋다고 평가된다.

[8] 한 구단에서 데뷔해 그 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쳐 해당 구단의 대표로 삼을 수 있는 선수를 말한다.

[9] 대부분 팀에서 가장 좋은 선발투수를 가리킨다.

[10] 주전이 아닌 대체 선수를 말한다.

[11] 담장을 넘기지 않고 기록한 홈런. 야수가 수비하는 사이에 타자가 1루, 2루, 3루를 다 돌고 홈까지 들어와야 인정된다.

[12] 박종태 기자, “잠실야구장 장애인 접근성 살펴봤더니”, 에이블뉴스, 2009.08.26.,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24).

[13] 박대로 기자, “"국내 프로야구장 장애인 휠체어석 0.2%"”, 뉴시스, 2012.09.21., (https://naver.me/5zlbL6ab).

[14] 황혜정 기자, “‘휠체어석 가격’ 달랐던 LG, 두산과 사이좋게 인상 [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3.10.16., (https://naver.me/FWfrKbGX).

[15] 한편, 응원 팀은 2024 시즌부터 동반인 석 가격을 50% 인하하기로 했다.

[16] 휠체어석을 이용하기 위한 요건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휠체어 이용이고, 둘째는 경증/중증 여부와 상관없이 장애인임을 입증 가능한 서류 제출이다.

[17] 잠실야구장 기준 홈팀 응원석(좌석도 기준 우측 부분)

[18] 잠실야구장 기준 원정팀 응원석(좌석도 기준 좌측 부분)

[19] 박소정 에디터, “[DUGOUT Voice] 불친절한 야구장”, 더그아웃매거진, 2020.10.19., (https://naver.me/GhNXZ2wz).

[20] 황혜정 기자, “'1/470'을 위해...소수를 배려하는 다수[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2.09.19., (https://naver.me/FZ9Ujn0L).

[21] 조훈희 기자, “한화이글스, 휠체어석 예매와 좌석판매 없다…장애인 불만 표출”, 중도일보, 2018.07.26.,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180726010012272).

[22] 박동희 기자, “"임직원 인권교육 받아라" 인권위, 장애인 차별한 KIA에 권고 [SPOCHOO의 눈]”, 스포츠춘추, 2022.01.29., (https://naver.me/xzi7Und1).

[23] 김근한 기자, 박동희 기자, “'장애인 차별' 지적 받았던 KIA의 놀라운 변신…"말이 아닌 행동으로 '장애인 차별 철폐' 나섰다" [춘추 기획]”, 스포츠춘추, 2022.05.02., (https://naver.me/xBpJalcg).

[24] 이원재 기자, “예매부터 중계까지 장애인에게 ‘직관’을 허하라”, 경남도민일보, 2022.08.08.,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01468).

[25] 황혜정 기자, “'1/470'을 위해...소수를 배려하는 다수[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2.09.19., (https://naver.me/FZ9Ujn0L).

[26] 5도

[27] 7.5도

[28] 약 11도

[29] 박종태 기자, “잠실야구장 장애인 접근성 살펴봤더니”, 에이블뉴스, 2009.08.26.,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24).

[30] 이는 비가시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애인 마크나 점자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에는 미관상의 문제 따위의 명분이 늘 따라붙는다.

[31] 전영지 기자, “'시각장애인'SSG-삼성팬 직관 즐길 권리...김예지 의원 '스포츠관람권 3법'이 필요한 이유[현장동행기]”, 스포츠조선, 2022.07.26., (https://sports.chosun.com/baseball/2022-07-26/202207270100187830011771).

[32] 조현대 칼럼니스트, “프로야구 중계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 에이블뉴스, 2021.06.03.,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961).

[33] 전영지 기자, “"실시간중계 직관!" 1년2개월만에 바뀐 야구장,시각장애'찐팬'들의 행복한 야구생활#김예지의원#모두의스포츠#코이의법칙[현장동행기2]”, 스포츠조선, 2023.09.19., (https://sports.chosun.com/baseball/2023-09-19/202309200100140860017812).

[34] 소수자에게 체념은 몹시 익숙한 정서다. 소수자가 차별이나 장벽을 맞닥뜨렸을 때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도, ‘그러면 그렇지’, ‘기대도 안 했다’처럼 단념하기 일쑤다. 분노하고 항의하는 데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이 분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일상에 산재한 나머지 종래에는 대응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소수자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침묵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가? 그러면 거꾸로 묻는다. 사회가 소수자의 권리 포기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참고문헌


 인터넷 사이트

 LG트윈스 홈페이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티켓링크 홈페이지


 신문 기사

 김근한 기자, 박동희 기자, “'장애인 차별' 지적 받았던 KIA의 놀라운 변신…"말이 아닌 행동으로 '장애인 차별 철폐' 나섰다" [춘추 기획]”, 스포츠춘추, 2022.05.02., (https://naver.me/xBpJalcg).

 류재민 기자, “오늘은 ‘장애인의 날’ 신축구장 휠체어석은 이렇게 달라요”, 서울신문, 2021.04.20., (https://naver.me/FIgiozZr).

 박대로 기자, “"국내 프로야구장 장애인 휠체어석 0.2%"”, 뉴시스, 2012.09.21., (https://naver.me/5zlbL6ab).

 박동희 기자, “"임직원 인권교육 받아라" 인권위, 장애인 차별한 KIA에 권고 [SPOCHOO의 눈]”, 스포츠춘추, 2022.01.29., (https://naver.me/xzi7Und1).

 박소정 에디터, “[DUGOUT Voice] 불친절한 야구장”, 더그아웃매거진, 2020.10.19., (https://naver.me/GhNXZ2wz).

 박종태 기자, “잠실야구장 장애인 접근성 살펴봤더니”, 에이블뉴스, 2009.08.26.,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24).

 복건우 기자, “'집게손' 이어 이번엔 장애인 서비스 트집... "장애인이 뭔 게임?"”, 오마이뉴스, 2023.12.05., (https://omn.kr/26n0h).

 복건우 기자, “"팔다리 꺾고 질질 끌고 가"... 또 가로막힌 전장연 출근길 시위”, 오마이뉴스, 2024.01.02., (https://omn.kr/26xtf).

 이원재 기자, “예매부터 중계까지 장애인에게 ‘직관’을 허하라”, 경남도민일보, 2022.08.08.,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01468).

 전영지 기자, “'시각장애인'SSG-삼성팬 직관 즐길 권리...김예지 의원 '스포츠관람권 3법'이 필요한 이유[현장동행기]”, 스포츠조선, 2022.07.26., (https://sports.chosun.com/baseball/2022-07-26/202207270100187830011771).

 전영지 기자, “"실시간중계 직관!" 1년2개월만에 바뀐 야구장,시각장애'찐팬'들의 행복한 야구생활#김예지의원#모두의스포츠#코이의법칙[현장동행기2]”, 스포츠조선, 2023.09.19., (https://sports.chosun.com/baseball/2023-09-19/202309200100140860017812).

 조훈희 기자, “한화이글스, 휠체어석 예매와 좌석판매 없다…장애인 불만 표출”, 중도일보, 2018.07.26., (https://m.joongdo.co.kr/view.php?key=20180726010012272).

 조현대 칼럼니스트, “프로야구 중계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 에이블뉴스, 2021.06.03.,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961).

 황혜정 기자, “'1/470'을 위해...소수를 배려하는 다수[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2.09.19., (https://naver.me/FZ9Ujn0L).

 황혜정 기자, “‘휠체어석 가격’ 달랐던 LG, 두산과 사이좋게 인상 [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3.10.16., (https://sportsseoul.com/news/read/1358539).

 황혜정 기자, “휠체어석 티켓값, 프로야구 구단별 3배 차이?[황혜정의 두리번@@]”, 스포츠서울, 2022.08.23., (https://sportsseoul.com/news/read/1153074).



 겨울편


 덜컹덜컹 강릉행

차창 밖 풍경. 산과 땅에 눈이 덮였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은데?’

 간만에 곤란한 상황 없이 나서는 여행이었다. 강릉선과 KTX-이음 기차는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일치기 여행으로 기획해 버린 과거의 내가 조금은 미웠지만, 다행히도 모든 이동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극단적인 복불복 대기 시간을 자랑하는 장애인콜택시도 비교적 제시간에 탔고, 서울역에서 별로 헤매지 않았으며, 기차에 탑승할 때 역무원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휠체어리프트를 문제없이 사용했다. 무엇 하나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졌다면 기차를 놓쳤을지도 모르니 참 다행이었다. 열차가 강원도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차창 밖 풍경이 온통 하얬다. 눈이 많이 왔다더니 추운 날씨 탓에 아직 다 녹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따가 도착하면 어떻게 되려나?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이대로면 좋겠다고 바라며 출발했다.


 직관하기 참 힘들다

 강릉 기차 여행은 초행길이었지만, 강릉에 가는 것 자체는 처음이 아니었다. 6년 전에 나는 비슷한 목적으로 똑같이 강릉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최종적인 목적지도 같았다. 두 번 다 피겨스케이팅 대회를 관람하기 위한 여행이어서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6년 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이었고, 이번에는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었다.[1] 내가 즐겨보는 프로야구가 5달이 넘게 거의 매일 경기를 하는 데 반해, 피겨스케이팅은 대회 자체도 드물게 열리고 특히 국제대회는 국내에서 2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한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2]에서 열리는 대회에 가려고 해도 후술할 모종의 사유로 직관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국제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직관하러 가고는 했다. 우리나라에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 장소로 적합한 빙상장-혹은 많은 수의 좌석이 배치된 얼음을 깔 만한 공연 시설-이 거의 없기에 서울이나 강릉에서 주로 국제대회가 열린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후에는 국내에서 개최된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를 모두 관람했다. 그런 내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은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다.

 이번 생에 향유하는 스포츠는 야구 하나로 충분할 텐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 피겨스케이팅이라니……. 의도치 않게 나는 하절기도 모자라 동절기까지, 1년 내내 스포츠에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 나라의 많은 피겨스케이팅 팬이 그렇듯 나 역시 초등학교에 다녔을 즈음에 ‘-느님’ 호칭이 붙은 위대한 선수의 경기를 TV로 처음 접하고 이 종목의 팬 노릇을 시작했다. 김연아 선수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단순히 압도적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넘어서 무엇이든 본받고 싶은 경지에 오른 존재였으므로 나는 일말의 과장도 없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를 숭배하다시피 해 왔다. 하지만 누구든 은퇴하지 않고 평생 선수 생활을 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고, 김연아 선수가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에서 부당한 판정에도 의연히 웃으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더러운 세상’을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김연아 선수는 그때 은퇴하여 더는 경기 출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최애 선수가 아끼고 사랑하는 종목을 함께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는 일종의 의리도 있었고, 나도 스포츠 팬으로서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피겨스케이팅 자체에 이미 온갖 애정을 쏟아부어서 차마 발을 빼기 어려웠다는 점도 피겨스케이팅 팬 수명 연장에 크게 작용했다.

 이 바닥에 오래 머무를수록 회전수와 선수의 발동작에 집착하느라 동체 시력이 좋아졌고 클래식 및 영화 음악 명작에 매우 해박해졌지만, 그만큼 나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커져만 갔다. 피겨스케이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채점 기준 및 규정을 공부했는데 실제 심판의 채점은 내가 배운 것과 영 딴판으로 이루어져서였다. 좋게 말하자면 심판들이 평가에서 일정 부분 유연함을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판정의 잣대가 명확하지 않아 쉽게 악용될 가능성이 컸다. 야구도 판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종종 발생하는 종목이지만, 피겨스케이팅은 심판 평가에서 산출된 점수가 모든 성적을 좌우하는 만큼 이것은 문제성이 심각해질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개 팬에 불과하니 ‘전문가의 안목은 아무래도 다른가 보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관점을 바꾸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피겨스케이팅 국제 심판이 되고 싶었으나, 휠체어와 의료기기 때문에 비행기 이용이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말았다.

 김연아 선수가 2014년에 은퇴한 뒤로도 나는 피겨스케이팅 분야를 떠나지 못하고 전전했지만, 3년 동안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전설적인 선수가 첫사랑이 되어 버려서 한동안 어느 선수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아도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어떻게 3년이나 버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와중에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었다. 김연아 선수가 국내 피겨스케이팅의 선구자이자 역사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함으로써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국내 기업의 지원이 점진적으로 생겨나면서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유망주 선수들이 하나둘씩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2017년 겨울에 마침내 ‘현역 최애 선수’를 발견해 행복한 피겨스케이팅 팬 생활을 재개하게 되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갔던 것도 그 선수를 보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6년 전의 평창올림픽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웃음이 난다. 다만 좋은 기억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선착순이 아닌 응모 및 추첨으로 예매가 진행되었다. 전통적으로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이스하키와 더불어 피겨스케이팅이 인기 종목으로 자리해 왔기에 당시에도 예매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여느 문화예술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와 다르지 않게 올림픽에서도 휠체어석은 비장애인 석에 비해서 경쟁이 훨씬 덜했고, 나는 운 좋게도 경쟁률이 가장 치열했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3] 프리 스케이팅[4] 경기 예매에 성공했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은 강릉 아이스 아레나였는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는 통제의 편리성을 위하여 일괄적으로 버스를 이용하여 올림픽공원과 경기장 앞에 도착하는 입장 방식만 안내했다. 하지만 그 버스라는 교통수단이 휠체어 역시 탑승 가능한 저상버스인지도 불투명했거니와, 내 휠체어는 크기가 커서 관람객으로 붐비는 버스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올림픽을 보러 갈 엄마와 나는 이메일과 전화로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입장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하지만 별다른 답변이 오지 않았고, 올림픽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나 이 또한 타개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올림픽’이나 되는 큰 대회라 막연히 괜찮을 것이라고만 여겼다. 이것이 어떤 문제로 탈바꿈할지 생각도 못 한 채로.

 미국 프라임 타임[5]에 맞추느라 평창올림픽 당시 대부분의 피겨스케이팅 세부 종목 경기는 아침에 가까운 오전 시간부터 진행되었다. 더구나 경기 날이 설날 다음 날이었으므로 며칠간 강릉으로 떠나는 일정을 잡기도 애매했던 관계로 나는 경기 당일 이른 아침인 6시경에 집에서 길을 나섰다. 그때 기차를 타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하차 후에 경기장까지 가려면 강릉의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려서 타야 한다는 점이 복잡하게 와닿았다. 당시에 나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거주했는데 그곳의 장애인콜택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공휴일에 운행되지 않았고, 해당 지역이 주소지인 사람이 아니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러한 장애인콜택시 ‘탑승 자격’은 지자체마다 천차만별의 기준을 가진 데다가 지역별로 운영되는 장애인콜택시는 해당 지역의 인접 지역만 도착지로 설정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 장애인콜택시로는 환승 없이 인천에 다다를 수 없다. 서울의 인접 지역인 부천에서 하차해서 부천시 장애인콜택시로 환승하여 인천으로 가야 한다. 당연하게도 환승에 필요한 배차 대기 시간은 따로 존재한다. 그러니 대기 시간과 환승 시간으로 인해 얼마큼의 시간이 더 소요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6] 이러한 연유로 나는 강릉시 장애인콜택시도 지역 주민 조건과 공휴일 상황으로 인해 탈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했고, 가족 차로 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강릉에 도착하고 나서 경기장이 모여 있는 강릉 올림픽 파크에 가까워질수록 부모님과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내비게이션에서 표시된 것과는 달리 아무리 주변 길을 돌고 돌아도 올림픽 파크에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일련의 사태가 끝난 뒤에야 눈치채게 되었는데, 테러 예방 목적으로 강릉 올림픽 파크의 위치를 정확히 표시하지 않고 인근의 GPS를 무력화하는 조치가 이루어진 탓이었다. 인근의 아파트 단지를 맴돌면서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여러 번 길을 물으며 찾아다니고 나서야 나는 올림픽 파크 앞의 한 검문소에 다다랐다. 차로 진입하려는데, 검문소의 경찰이 갑자기 막아서며 우리에게 진입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경기 시작이 임박하여 다급해진 부모님과 나는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인 나의 사정을 최대한 설명하면서 차로 이곳에 진입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고, 필요하다면 부모님과 나의 신분증과 티켓 예매 내역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강경한 태도로 회차하라는 답만 내놓았다. 우리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경기장에 갈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저상버스인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강릉역에서 셔틀버스를 타라는 답을 듣기까지 했다. 물론 저상셔틀버스가 선택지로 존재했더라도 내 침대형 휠체어는 폭이 넓기에 사람들이 밀집한 버스에 탑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즉, 우리에게는 개인 차량 진입 허용 외에는 경기장에 입장 가능한 길이 아예 없었다.

 한바탕 실랑이가 이어진 끝에 가까스로 나는 경기가 시작한 뒤에야 강릉 아이스 아레나가 위치한 강릉 올림픽 파크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일로 실랑이까지 벌이다 보니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놀라움은 입장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입장 방법 강구에 아주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었던 검문에서의 기억은 마치 전생이었던 것처럼 올림픽 파크 내의 경찰과 자원봉사자는 어떠한 마찰 없이 주차 방법 안내뿐만 아니라 경기장 내부로의 인솔을 진행했다. 올림픽 파크 내부 인력이 충분해서였는지 안내 및 인솔 과정에서 어떠한 지연이나 마찰도 없었고, 경기장 착석까지 모든 절차는 순조롭게 지나갔다. 처음에 우리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 사태가 검문을 맡은 경찰 개인에 기인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올림픽 파크 안의 강릉 아이스 아레나 앞에 택시가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검표와 신분 확인을 자청하는 자차의 입장은 막으면서 불특정한 사람이 탈 수 있는 택시는 올림픽 파크에 들어오게 한다니. 물론 그 택시도 우리 가족처럼 검문소에서의 논쟁 끝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러 방지를 위해 세운 원칙 또는 매뉴얼에 근거하여 입장객 개인 자차는 돌려보내고 택시의 진입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면 우리 차를 막지 않고 차량 검사를 실시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직위원회도 현장의 경찰도 셔틀버스 외에 다른 입장 방식을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애인 할인이 포함된 좌석이나 휠체어석의 입장권 추첨 예매를 시행해 놓고 막상 장애인 입장객의 경기장 진입 방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행정이었다. 사전에 여러 창구로 문의까지 했건만, 무(無) 회신과 함께 돌아온 것은 입장 불가 위기였으니 저절로 황당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참 길을 헤매고 때아닌 악다구니를 하느라 경기 시작 20여 분 후에 겨우 입장했으니 더 그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검문소의 경찰 또한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장애인 입장객에게 적절하지 않은 대응을 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찰이 그때 무척이나 완고한 태도였지만, 동시에 좀처럼 영문을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던 게 그제야 일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올림픽 경기 관람에 들어간 후에도 제법 곤혹스러운 상황이 몇 번 발생했다. 본래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는 휠체어석이 1층 계단석과 2층 계단석 사이의 평지에 있으며, 빙판을 둘러싼 네 개의 면 중에서 세 개의 면에 휠체어석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넓은 가로면 두 쪽 중에서 한쪽이 방송 및 취재 장비를 설치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평창동계올림픽 중에는 가로변과 세로변 각각 하나씩만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좌석으로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대회 당시에 실제 가용한 휠체어석 수는 경기장 시설 차원에서 완비된 휠체어석 수 ⅔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림픽 조직위에서 휠체어석의 수요를 얼만큼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만에 하나 경기장의 휠체어석이 텅 비어있다고 해도 그 좌석이 있는 공간을 전혀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백번 양보하여 방송 관계자와 취재원이 사용할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강릉 아이스 아레나는 엄연히 올림픽 개최를 위하여 건설된 경기장이었으며, 세계인의 축제로 불리는 올림픽에 수많은 언론・방송 관계자가 몰릴 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실제로 프레스 이용 공간이 부족했든지와 상관없이 기존의 휠체어석을 없애고 취재 구역으로 활용한 결정은 직관을 다녀와서도 두고두고 의아함만 불러왔다.

 설상가상으로 시야도 그다지 원활하지 않았다. 올림픽 당시 강릉 아이스 아레나는 안전 문제로 휠체어석 앞에 철제 펜스가 설치되었는데, 그래도 펜스 중간이 뚫려있어서 펜스 자체만으로 시야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펜스에 경기장 내부 색감에 맞는 보라색 현수막을 두른 것이었다. 의자 높이가 낮은 휠체어 대부분을 감안하면 현수막이 휠체어 사용자의 시야를 가릴 가능성이 컸고, 나는 현수막 때문에 링크[7]를 반 정도만 볼 수 있었다. 안 보이는 링크 면으로 선수가 이동하면 나는 재빨리 실시간 중계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리느라 원치도 않던 안구 운동을 실컷 하게 되었다.

 배리어가 산재한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직관 과정이었으나,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응원하던 선수는 전날 쇼트에서의 이변에 가까운 부진을 씻어내고 내가 직관했던 프리 경기에서 고난도 기술을 성공시켜 1위를 차지해 종합 순위를 크게 끌어올렸다. 쇼트의 부진으로 인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그 선수가 마음을 다잡고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것에 나는 크게 감동하고 또다시 그에게 반하여 올림픽 이후로 더더욱 열렬하게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피겨스케이팅에는 선수의 연기가 끝나면 꽃이나 인형을 빙판에 던져주는 응원 문화가 있는데, 나도 그때 돈을 탕진하며 인형을 몇 개 사 가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인형을 던졌다. 정빙[8] 시간에는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관계자와 본의 아니게 몇 마디 요상한 대화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날 휠체어석에 있던 사람 중에서 엄마와 나만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휠체어석에는 대부분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으며[9], 가끔 네덜란드 사람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보통 올림픽 관중석에 개최국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런 휠체어석의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해서 옆자리에 계셨던 분[10]과 말을 섞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기장에 어떻게 왔을까?’ 또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곤란한 일을 겪었을까?’와 같은 물음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약 저 관람객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작은 해프닝 정도로 일축되기 어려운 사건으로 충분히 비화할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 이후에도 당시 올림픽에서 외국인이 연관된 유사 사건을 접하지 못했던 점을 보면 다행히도 이들에게 그런 일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은 조금 더 이동에 용이한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탑승했거나, 사전에 비표를 받아 올림픽 파크에 진입했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나는 알 수도, 시도할 수도 없었지만.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몇 번이고 강릉 아이스 아레나 앞에 있던 택시를 떠올렸다. 그게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가용이 아니라 강릉의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했다면 올림픽파크 안에 문제없이 진입할 수 있었을까? 한동안은 긍정하고 있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며 이 가설조차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개회식 전날인 2월 8일 컬링 예선전을 관람하러 갔던 내국인 장애인도 올림픽 파크 진입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았다는 기사[11]를 접해서였다. 그나마 개회 전이라 당사자는 입구 근처에서 하차할 수 있었으나, 개회 이후에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아 나의 경험처럼 회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셔틀버스를 타라는 천편일률적인 말과 저상셔틀버스에 관해 명확하지 않은 답변을 들은 것도 놀라우리만치 비슷했다. 북문에서 하차한 뒤에도 경기장까지 약 3km나 보행으로 이동해야 했던 이 사례의 당사자는 결국 긴 시간을 허비하느라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가 다 끝나고 나서 경기장에 입장했다. 이런 일이 또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누구라도 같이 겪어서 좋을 만한 일일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창동계패럴림픽의 전반적인 대회 운영이 장애인 관람객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정황은 이 밖에도 적잖이 포착되었다. 강릉 올림픽 파크 북문의 검색대는 전동휠체어나 큰 수동휠체어의 통과가 불가능했고, 언덕 지형이나 경기장까지의 거리의 측면에서 올림픽 파크 내 장애인의 동선은 이동이 여의찮은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다.[12] 휠체어 이동에 필요한 엘리베이터는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것[13]은 물론,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제대로 안내되지 않아 장애인 관람객이 방황했던 사례[14]도 존재했다. 시각・청각장애인에 대한 편의지원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점자블록 설치가 일부 이루어져 도로에 점자블록이 없는 부분도 있었으며[15], 수어통역이나 음성지원 서비스가 패럴림픽에서는 명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 장애인 관람객이 실제로 이용하기에 용이치 않았다.[16] 배리어프리는 차치하고 배리어를 줄이려는 시도는 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인생 첫 피겨스케이팅 직관이 예상보다도 더 복잡다단했지만, 나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직관에 맛을 들여버리고 말았다. 때마침 응원하는 선수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로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압도적인 면모를 굳혀 갔기에 나는 올림픽 이후에 그 선수의 경기를 어떻게든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술 했듯이 국내에서 국제대회를 자주 열지 않는 데다가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선수 생활이 길어봤자 이십 대 중후반 무렵에는 끝나기 때문에 언제 또 그 선수를 볼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선수는 당시 신예여서 나이는 만 18~19세 정도로 어렸지만, 학업에도 열의와 재능이 넘쳐서 여차하면 이만 자기는 공부하겠다고 피겨스케이팅계를 떠나버릴지도 몰랐다. 초조해진 나는 2019년 3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보러 간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타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 알았지만, 일생일대의 해외 직관이니 모두 감수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대학 새내기로서 맞는 첫 학기의 출결도 성적도 돈도 모두 날릴 각오를 결연히 다졌건만, 나는 대회 입장권 예매도 하지 못한 채 일체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해외 관람객을 위한 입장권 예매 사이트 어디에도 휠체어석 선택지가 없었고, 나는 다른 구매 경로를 통해야 하는지 궁금해 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답변의 내용은 ‘휠체어석 수가 충분하지 않아 해외 관람객에게는 휠체어석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세계 대회를 연다면서 해외에는 휠체어석 티켓을 팔지 않는다니. 간다고 해도 오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답변을 받고 억울함이 차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쯤에서 포기할 수만은 없었기에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일본 내국인 예매 사이트까지 찾아 접속했다. 그러나 주소와 전화번호 등 신상을 기재하는 대목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중계로 대회를 보면서 나는 관중석이 카메라 앵글에 들어올 때마다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선수가 당시에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며 큰 점수 차로 우승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거뜬히 수용할 정도로 거대한 공간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관중석에 사람이 가득할뿐더러 외국인 관람객에게는 제공하지 않던 휠체어석이 저만큼이나 채워져 있다니……. 어쩐지 무슨 자신감으로 해외 장애인 관객을 마다하나 했는데, 자국민의 수요만으로도 좌석을 채울 수 있다는 확신에서 우러나온 결정인 모양이었다. 일본은 비교적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덜한 환경을 갖춘 것으로 유명한 국가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장애인이 보다 더 원활하게 이동 가능하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나 말고는 온통 외국인뿐이었던 올림픽 휠체어석의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휠체어석 수가 적어 해외 관람객에게는 휠체어석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영문 답변. 나는 양해한 적도 없는데 양해해줘서 고맙다는 문장이 황당하다.

 비록 세계선수권대회 직관은 시도도 못 한 채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오기와 집념을 발휘한 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터지기 전인 2019년부터 2020년 2월까지 두 번이나 피겨스케이팅 직관을 하는 데 성공했다. 한 번은 김연아 선수가 주최한 아이스쇼였고, 다른 한 번은 4대륙선수권[17]이었다. 서울의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아이스쇼는 3일 동안 진행되었고, 비단 김연아 선수뿐만 아니라 내가 열렬히 응원하는 선수도 출연할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했으므로 나는 학기 중에 객기를 부리다시피 하며 매일 출석했다. 이때도 마냥 직관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내로 들어가는 골목에 계단에 가까운 턱이 있는 바람에 공연장에 출입할 때마다 시큐리티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공연이 끝나고서도 오지 않는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다가 다음 날 새벽에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18] 그렇지만 그 행사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엉겁결에 국내에서 최근에 열린 아이스쇼가 됨으로써 그때의 3일 개근은 지금까지도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이 되었다. 목동에서 개최된 2020년 4대륙선수권 여자 싱글 직관은 순전히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는데, 휠체어석 앞에 프레스 구역이 있어 카메라 같은 장비가 즐비해 시야 방해가 심각했다. 당황스러워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시야를 가로막은 한 일본 신문사 기자와 눈이 마주쳐 멋쩍게 웃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목동 아이스링크는 심각한 낙후 시설로 악명이 높은지라 핫팩과 보온 물품을 바리바리 싸 갔는데도 하마터면 경기를 보다가 몸이 얼어서 골병들 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때의 하이라이트는 장애인콜택시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빨리 온 탓에 시상식을 보지 못하고 경기장을 떠난 것이었다. 참고로 해당 시상식에는 시상자로 김연아 선수가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덕후는 역시나 계를 못 타는 법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이뿐만 아니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특히 남자 싱글 직관을 하고도 남았을 테다. 하지만, 전염병 상황으로 인해 2020년 하반기 대회부터 해당 올림픽까지 거의 모든 대회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거나 취소되었다. 응원하는 선수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4년간 우승을 휩쓸고 두 번째 도전 만에 올림픽 챔피언이 되는 것을 TV로 시청하면서 나는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그 선수가 이후 학업과 연구에 집중해 의사가 되겠다며 무기한 휴식을 선언하고 일말의 미련 없이 대회 출전을 중단하자[19] 나만 또 피겨스케이팅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버렸다. ‘최애’ 없는 헛헛한 세월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몇 년간 그랬듯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선수에게 간택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그것이 얼마큼의 시간을 필요로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6년 후의 강릉

 그런 와중에 2024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가 성큼 다가왔다. 부담스러운 입장권 가격 때문에 지갑 사정과 살림살이가 절로 곤궁해지는 여느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나 아이스쇼와 달리, 동계청소년올림픽은 홍보 목적[20]으로 모든 경기가 무료로 입장 및 관람이 가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회가 유치되고 난 뒤 내내 동계청소년올림픽 직관을 벼르고 있었으므로 설령 티켓이 유료라고 했더라도, 직관을 가려는 마음에는 별 영향이 없었을 테다. 2022년 올림픽 이후로 나는 현역 최애 선수가 없는 대신에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고, 지난해 치러졌던 대표 선발전도 모두 본 만큼 이번 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우리 유망주 선수들이 출전할 것을 일찌감치 알아서였다.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 경기는 매진이 예상될 정도로 주목받았는데, 경기 당일이 임박해서는 취소 표가 일부 나왔지만, 한때 휠체어석 입장권까지 모두 예매된 시점도 있었다. 예매가 열리고 나서 부지런히 입장권을 준비한 것이 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기차 여행을 몇 번 가 본 적이 없었고, 특히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 것은 이번을 제외하면 어렸을 때 한 번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최근에는 무궁화호를 탄 기억밖에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KTX를 이용하려니까 꽤 감회가 새로웠다. 휠체어가 기차에 탑승하려면 사전 신청을 하고 출발 15분 전에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기에 나는 기차 출발 시간보다 적잖이 이르게 역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장애인콜택시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또- 지연되느라 계획 시간대로 타지 못하는 바람에 하차하자마자 역을 질주했다.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여 기차에 타려면 절대적으로 일정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기차를 놓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다행히 겨우 적절한 시간에 도착한 나는 정신없이 리프트를 탔다. 일전에 무궁화호를 탔을 때 수동식 리프트[21]를 이용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동식 리프트를 이용했는데, 수동식 리프트보다 시간이 덜 들어 불과 몇 초 만에 열차 출입구로 올라설 수 있었다. KTX-이음에서는 반대쪽 출입구가 막혀서 리프트에서 내릴 때 맞은편으로 굴러떨어질 위험성이 방비 된다는 측면도 당연하면서 동시에 만족스러웠다. 연식이 의심스럽게 들리겠지만, 나는 기차 벽에 무선충전기가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무궁화호에는 없던 신문물이어서였다.     

기차의 휠체어석

 기차를 놓칠까 봐 마음을 졸이며 땀을 흘린 것 말고는, 어찌 되었든 경쾌한 출발이었다. 겨울인데도 날씨가 춥지 않았고, 별다른 곤란한 상황이나 배리어를 마주하지도 않았으니까. 기차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여유를 부리며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KTX-이음에는 차창이 열마다 있어서, 온통 눈으로 덮인 바깥 풍경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강릉행 기차를 탄 경험이 한 번도 없었지만, 예상보다도 매끄럽게 과정이 흘러가니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기차가 강릉역에 가까워질 즈음에 강릉 장애인콜택시를 호출했다. 강릉 장애인콜택시는 원칙적으로 강릉시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데, 외지의 장애인이 강릉 장애인콜택시를 ‘특별교통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증빙 서류를 구비하여 강릉시 교통과에 요청하면 심사를 거쳐 신청을 승인받을 수 있다. 처리 기간이 며칠 소요되므로 나는 강릉에 가기 열흘 전에 미리 신청해 두었다. 이곳의 장애인콜택시는 호출한 지 얼마 안 되어 곧바로 배차되었다. 아직 하차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기사님께서는 하차 후 전화하면 ‘쏜살같이’ 오겠다고 답해주셨다. 화통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강릉시 장애인콜택시

 콜센터에서는 강릉역 1번 출입구로 나오라고 안내했지만, 기사님께서는 그곳에 주・정차를 할 수 없으니 1번 출입구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으라고 하셨다. 원래 택시와 장애인콜택시는 2번 출입구 앞에서 승・하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당시에 그곳이 공사 중이라 택시가 마땅히 주・정차할 공간이 없던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 옆은 인도와 차도 사이에 높은 턱이 있었기에 휠체어가 차를 타고 내리기 불편했다. 그런데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 애를 먹으며 버스 정류장에서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뵈었던 기사님께서는 ‘쏜살같이’라는 말씀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명쾌하고 적나라하며 찰진 표현을 애용하시는 분이셨다. 평창동계패럴림픽 때 강릉에 장애인 이동 수단이 급증했다는 사실을 기사님께 전해 듣고 내가 동계청소년올림픽을 보러 간다고 말씀드리자, 기사님께서는 작정한 듯 강릉역 출입구 공사의 부적절한 시기뿐만 아니라 강원 청소년동계올림픽의 운영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으셨다. 대회 기간에 기사님께서 청소년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보러 온 장애인 승객을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태우신 적이 있었는데, 동선 안내가 미비하여 경기장에 접근 가능한 승강기를 찾느라 해당 승객이 크게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참고로 강릉 아이스 아레나의 경우 한쪽은 언덕이 있어 계단이나 경사로, 승강기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고 한쪽은 평지인 작은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여러 번 길을 물어 한 번에 경기장으로 가는 곳에서 하차시키기 위해 노력해주셨다. 경찰이나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동선에 대해 물으셨는데, 대체로 분명하지 않은 답이 나왔고 때때로 실상을 잘 모르는 외부인이 모호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기사님께서 ‘이러면서 무슨 대회를 열겠느냐’와 같은 촌철살인을 날리셔서 은근히 마음속을 통쾌하게 만들어주셨다.

 아무래도 청소년올림픽은 올림픽보다 규모가 작은 대회다 보니, 경비가 평창올림픽 때만큼 삼엄하지 않았고 강릉 올림픽 파크에 배치된 경찰과 자원봉사자 수도 눈에 띄게 적었다. 하지만 지난번의 검문이나 회차 통보처럼 황당한 일을 겪지 않고 차로 경기장 앞까지 진입했다는 장점이 있었다. 기사님께서는 수소문 끝에 운전 실력을 발휘하셔서 강릉 아이스 아레나 옆 주차장의 좁은 틈새로 나를 내려주셨다. 감사하게도 길을 헤맬 필요 없이 곧장 아레나로 향하여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주차장에서부터 자원봉사자분들의 인솔을 따라 경기장에 입장했다. 경기장 풍경이 6년 전의 올림픽 때와는 사뭇 다른 점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번 청소년올림픽에서는 장내에 있는 휠체어석을 모두 이용 가능한 상태로 두었으며 펜스에 현수막을 걸지 않아 휠체어석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가 적었다. 그 대신 펜스 곳곳에 ‘안전주의’가 표시된 종이가 부착되어 빙판의 일부를 가린다는 점이 관람에 지장을 주었다. 나는 그 종이를 말아두었다가 내가 퇴장할 때 다시 펴놓는 방법을 택했다. 왜냐하면 종이가 가린 부분이 동선상 많은 선수가 점프를 뛰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시야를 가로막은 안전주의

 문제는 휠체어석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나를 제외하면 한 명도 없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휠체어 자리에 유아차가 있거나, 동반인 석에 장애인 동반인이 아닌 비장애인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 많은 휠체어석이 가득 채워졌지만, 도무지 바람직하지 않은 양태로 제공되던 것이었다.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는 티켓이 지정좌석제로 배분되지 않아서 경기장에 들어오는 선착순으로 원하는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휠체어석은 비장애인 석과 별도로 예매가 이루어졌기에 원칙적으로 비장애인 석 입장권 보유 관람객은 휠체어석에 앉으면 안 되었다. 백번 양보해 유아차는 접근할 수 있는 좌석이 휠체어와 마찬가지로 얼마 없으니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해도 휠체어 동반인도 유아차 동반인도 아닌 비장애인이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는 이전 경기에서도 발생해 인터넷에서 소소하게 빈축을 샀고, 이로 말미암아 나도 경기를 직관하기 전에 이와 유사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음을 일찍이 인지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광경을 마주하니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아무도 휠체어석을 통제하지 않는 것은 항의를 듣기 힘들기 때문이었을까? 무슨 이유에서든 이 상태가 어떠한 제재 없이 그대로 방치되었던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휠체어 그림이 버젓이 그려져 있는 곳은 당연하게도 휠체어가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 비워야 한다.

 더 이른 출발 시간인 강릉행 기차 예매에 실패하여 2그룹 웜업[22] 시간에 입장했는데도 나는 여러 유망주 선수의 퍼포먼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만 14세부터 18세까지의[23] 청소년 선수들이 출전하는 동계청소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에는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특히 여자 싱글의 경우 성인이 되기 전인 어린 선수들이 일찍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흔하여 이번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도 쟁쟁한 기술과 연기를 선보이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라 작년과 올해에 국내 대회를 석권한 신지아 선수와 고난도 기술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김유성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망주인 시마다 마오 선수는 4회전 점프까지 시도할 만큼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라 이번 대회 여자 싱글은 향후 피겨스케이팅계를 이끌어 나갈 선수들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과연 순위권에 든 선수들은 내가 보러 간 날에도 훌륭한 경기력을 뽐내서 감탄을 자아냈다. 나는 이번 시즌 신지아 선수의 프리 스케이팅을 꼭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선수가 큰 실수 없이 아름다운 수행을 해내 오랫동안 간직할 추억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심판들은 엄격하다 못해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채점을 순위권 선수들에게 선사했고, 1등 시마다 선수와 2등 신지아 선수는 준수한 연기에도 평소보다 점수가 10~20점은 덜 나와 매우 각박한 점수를 받았다. 오죽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채점표를 보며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청소년 선수들이 이런 큰 대회에서 부담을 견디면서 최선을 다했고, 우리나라 선수들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번 청소년올림픽 직관에서의 또 다른 수확은 나의 숭배 대상을 저 멀리 점으로나마 보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회를 유치하고 홍보하는 과정에 김연아 선수가 깊이 관여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으로서 그분이 경기장에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기도 했다. 쇼트 경기 때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기대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반대편 좌석에서 점으로 보이는 ‘영원한 최애’를 보았을 때의 설렘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피겨스케이팅 팬의 마음은 다들 똑같은지라 많은 사람이 김연아 선수의 사진을 찍었고, 전광판에 김연아 선수가 나오면 가장 큰 환호성이 나왔다. 서울행 기차 예매도 실패한 나는 늦게 귀가했는데, 그 때문에 강릉역에서 밥에 간식까지 먹어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나 같은 사람이 적잖았는지 늦은 시간 기차 안에는 청소년동계올림픽 티켓이나 기념품을 든 승객이 대다수였다. 서울행도 문제없이 승・하차해 돌아다녔으니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역에서 집으로 올 때 탔던 장애인콜택시 기사님의 말씀이 무척이나 인상 깊은 마무리였다. ‘이번에 강릉을 갔으면 다음에는 더 멀리, 부산을 가 보세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지!


 어디로든 가게 해주세요

 나는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를 어디로든 가게 하려면 내 마음만이 전부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장애인이어도 마음껏 이동하고 스포츠 직관을 즐기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권리인데도, 누군가의 의문에, 무신경함에, 단정에, 혐오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향유하는 데 장애가 높은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 시설이나 경기장이 배리어프리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광경이 흔해졌으면 한다. 물론 배리어프리는 언제 어디서나 당연히 실현되어야 하지만, 오늘날의 장애 인식을 비추어 보았을 때 아직 배리어프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먼저 우리 사회에 빈번하게 노출되어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법적・행정적 개선도 필수 불가결하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개선의 규모와 속도가 현격해지기 어렵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애인이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1] 두 대회 모두 빙상 종목은 강릉에서 경기가 열렸다.

[2] 일본은 빙상 종목 중에서도 특히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지원이 활발한 국가로, 국제빙상연맹(ISU)의 협력・후원 기업 중 대부분이 일본 기업이기도 하다.

[3] 남자 선수 1명이 연기를 펼쳐 겨루는 피겨스케이팅 세부 종목을 말한다.

[4] 피겨스케이팅은 쇼트 프로그램 경기와 프리 스케이팅 경기의 득점을 합산하여 순위를 결정한다. 쇼트 프로그램은 수행 기술과 연기 시간이 적은 대신에 선수가 필수 요소를 엄격히 준수해 수행해야 하고, 프리 스케이팅은 상대적으로 필수 준수 사항이 적은 대신에 수행 기술과 연기 시간이 많아 체력 부담이 크다.

[5] 프라임 타임은 시청률이 가장 높은 저녁에서 밤 시간대를 말한다. 올림픽 주관 방송사가 미국 NBC라는 것이 경기 시간을 아침으로 조정하는 데 한몫했다.

[6] 이러한 애로사항은 내가 의정부에서 주로 열리는 국내 대회 직관을 쉽게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7] 빙판

[8] 경기 전후와 중간에 파인 얼음을 정돈하는 작업을 말한다.

[9] 일본에서는 피겨스케이팅 인기가 높아 이른바 ‘티켓 파워’가 강한 편이다.

[10] 내 휠체어 크기가 큰 것을 보시고 감사하게도 조금 더 넓은 본인의 자리와 바꾸자고 제안해주셨다.

[11] 하석미, “세계인의 축제 평창동계올림픽 진정 평등한가?”, 에이블뉴스, 2018.02.09.,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550).

[12] 하석미, “세계인의 축제 평창동계올림픽 진정 평등한가?”, 에이블뉴스, 2018.02.09.,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550).

[13] 김종화 기자, 특별취재반, “[생생 올림픽현장]장애인 편의시설 '깜깜' 동계패럴림픽은 어쩌나… 계단위 화장실·끊어진 점자블록, '유리장벽' 쌓은 축제”, 경인일보, 2018.02.23.,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80222010007950).

[14] 김우리, “입장부터 난관…평창 패럴림픽 유감 보고서”, 광주드림, 2018.03.14.,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108).

[15] 김종화 기자, 특별취재반, “[생생 올림픽현장]장애인 편의시설 '깜깜' 동계패럴림픽은 어쩌나… 계단위 화장실·끊어진 점자블록, '유리장벽' 쌓은 축제”, 경인일보, 2018.02.23.,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80222010007950).

[16] 김우리, “입장부터 난관…평창 패럴림픽 유감 보고서”, 광주드림, 2018.03.14.,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108).

[17]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선수들이 출전하여 경쟁하는 대회다. 유럽선수권에 대응되는 대회이기도 하다.

[18] 17호 <투명 망토>에 언급되기도 했다.

[19] 이 글을 쓰던 중 그 선수가 올해는 학업을 위해 아이스쇼 출연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소식마저 들었다. 이제는 정말 과거 영상만 내게 남아있는 것이다…….

[20] 동계청소년올림픽은 2012년에 처음 개최된 신생 대회다. 아직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청소년올림픽을 대중에 알리기 위해 입장권을 무료로 하거나 유명 선수를 홍보 영상에 등장시키는 등 다방면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21] 사람의 힘으로 장치 등을 눌러서 조금씩 리프트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22] 싱글 종목의 경우 6명을 한 조로 편성하여 연기 직전에 조마다 6분의 연습 시간을 주고 빙판을 사용하게 한다. 이 연습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 웜업이다.

[23] 2006년생부터 2009년생까지 출전 가능하다.


 참고문헌


 신문 기사

 김민지 기자, “휠체어석인데…“입석승객 많아서 못타요” 장애인 탑승 거부한 코레일”, 서울신문, 2023.04.20.,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420500025&wlog_tag3=naver).

 김우리, “입장부터 난관…평창 패럴림픽 유감 보고서”, 광주드림, 2018.03.14.,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6108).

 김종화 기자, 특별취재반, “[생생 올림픽현장]장애인 편의시설 '깜깜' 동계패럴림픽은 어쩌나… 계단위 화장실·끊어진 점자블록, '유리장벽' 쌓은 축제”, 경인일보, 2018.02.23.,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80222010007950).

 이정화 기자, “[Pick] "손님 많아서 못 타" 예매하고도 탑승 거부당한 장애인”, SBS 뉴스, 2023.04.20.,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16128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전영지 기자, “'모두의 올림픽' 강원2024 무장애 '열린 관광지'를 소개합니다!”, 스포츠조선, 2024.01.29., (https://m.sports.chosun.com/life/2024-01-30/202401290100196310027159).

 하석미, “세계인의 축제 평창동계올림픽 진정 평등한가?”, 에이블뉴스, 2018.02.09.,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550).


편집위원 띵동(glowingpinky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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