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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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교코의 만화 <치와와>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달 벌어진 토막살인 사건의 피해자신원을 파악했다고 오늘자 신문은 밝혔다.
지와키 요시코
20세
간호전문학교 학생
이윽고 장례식장 안과 밖에서 추모가 이루어진다. 장례식장 안에 있는 이들은 ‘지와키 요시코’가 밖에서 ‘치와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고, 장례식장 밖에 있는 이들은 ‘치와와’가 ‘지와키 요시코’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된다.
TV에 출연한 모 평론가는 생전 치와와의 행적을 바탕으로 그를 “사물과 정보가 대량 소비되는 극장형 도시 도쿄에서 연기하며 살아가는 청년 비극의 전형”이라 칭하지만, 그의 말은 이어지는 “그 자식 죽여 버리고 싶어.”라는 치와와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유미의 말로 인해 곧바로 기각된다. 그러나 장례식장 밖, 도쿄 거리에서 치와와를 만난 이들도 치와와를 알지 못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치와와와 긴밀한 성적 관계를 맺었지만, 그 애가 물도 안 끓이는 여자애라고 알고 있는 것. 사실 치와와는 요리에 능한대도 말이다. 도쿄 거리에서 치와와를 만난 이들은 모두 치와와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치와와로부터 받은 게 있는 사람들인데 –돈을 꿔 주거나, 주먹을 나누거나(싸웠다는 소리다), 성관계를 맺거나–, 이들이 한 명씩 나와 생전 치와와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몽타주로 이어 붙여진 컷을 읽어 나가다 보면 치와와라는 인물에 대한 단일한 총체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듯 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치와와 역시 자기 자신을 잘 몰랐을” 테니까.
어느 깜깜한 새벽에 거리 위에서 치와와와 무언가를 주고받은 이들은 모여 치와와를 추모하기 위해 꽃과 생전 좋아하던 화이트 와인을 사 들고 치와와가 버려진 바다로 간다. 그리고 각자가 어떤 모습의 치와와를 만났는지를 말하는 것을 영상으로 남긴다. 간호 학교에 두 달 다녔다가 관두고 회화 학원 패션 학교도 관두고 집도 나와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집에서 신세를 지던 치와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AV에 고이즈미 아스코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치와와의 죽음을 애도하려면, 장례식장 안의 사실 뿐 아니라 장례식장 밖의 이야기 또한 필요하며, 때로 그 이야기들이 서로 엇갈리고 다른 사실을 지시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가 치와와에 대한 진실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의 20살에 대해 말할라치면,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 내가 세 번의 20살을 보냈기 때문이다. 학교를 한 해 일찍 입학해 한 살 위의 친구들과 줄곧 학창 시절을 보내왔던지라 주위 친구들이 모두 열아홉에서 20이 될 때 나도 같이 20살이 된 셈 쳤다. 주민등록증이 아직 나오지 않아 술집에서 해가 바뀔 때 친구들이랑 술 마시기 같은 건 못 해봤지만. 그리고 그다음 해, 그러니까 친구들이 20에서 스물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20살이 되었다. 그러다 이제 드디어 길었던 20을 뒤로 하고 스물하나가 되나 했더니 대뜸 정부에서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 밝혔고, 나는 세 번째 20살을 살아야 할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내가 오카자키 교코라는 만화가를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20살을 보낼 때였다. 친구가 그녀의 또 다른 만화, <헬터 스켈터> 이야기 해주는 것을 듣고 재밌겠다 싶어서 사서 읽었었다. 제도 안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할까 봐 삶을 멀쩡하게 살아내지 못할까 봐 생계를 스스로 마련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입시가 끝났다는 사실이 안겨다 주는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온갖 욕망을 따르겠다 다짐했던 그 시기에, 교코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욕망하는 것들은 사실은 시시한 것이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현실이 된 그 세계에서도 삶이 끈질기게 계속된다고 믿게 되었다.
같은 나이를 3년씩이나 살아내는 것은 되게 이상한 일이었는데 가장 이상했던 점은 앞으로 흘러가야 할 시간이 한 해의 끝에서 다시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 나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이었다. 잘못만 잔뜩 저질렀던 첫 번째 20살을 뒤로 하고 스물한 살이 되고 싶었는데, 다시 20살이 되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꿔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살을 실수 없이 살아낼 기회. 그러나 당연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냥 20살을 두 번 산 사람이 되었다. 이즈음 되어서야 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서 살아갈 수는 없고 실수가 항상 잘못인 것은 아니며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그저 다음 선택에서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혼자서 헤쳐 나가기 어려우면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 20살을 보낼뻔한 바로 그 해, 법은 나를 20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스스로 ‘이제는 스물둘’이라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한 해를 살아냈다는 의미에서, 한 살씩 꼬박꼬박 까먹지 않고 제때 잘 챙겨 먹고 있다.
무서워하는 것이 많은 나로서는 남들은 한 번 사는 나이를 두 번, 원한다면 세 번까지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시간 잘못된 시간 없던 셈 치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랬던 20살을 뒤로 하고, 스물네 살에 <치와와>를 읽었다. TV 뉴스가 지와키 요시코를 가리켜 “요시코가 자신을 돌보아준 할아버지를 고등학생 때 암으로 잃은 것을 계기로 간호사를 꿈꾸며 도쿄의 간호학교에 입학했다”라며 필사적으로 그가 살아낸 생의 일부만을 기억하려고 하는 시도가 내가 20살을 세 번씩이나 살려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 안의 사람들은 단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치와와가 살아낸 시간은 살아생전 그를 알고 있는 모두의 교차하고 엇갈리는 이야기들 속에 존재한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치와와는 누군가에겐 증오의 대상, 사랑하는 상대, 같이 놀았던 친구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남아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치와와가 그 시간을 전부 진짜로 살아냈다는 사실일 테다.
내가 살아낸 시간과 살아낼 시간을 긍정하기 위해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다.
편집위원 영원(wizjulia@hanmail.net)
참고문헌
오카자키 교코, 2023, 『치와와』, 이소담 옮김, 서울: g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