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편집위원 이응
나를 누군지 애써서 생각해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의 이야기지만, 곧 너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뭐...아닐 수도 있고.
나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내가 왜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지?’를 떠올리려고 하면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문과였고, 연극을 좋아하고 연극연출가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연극영화과를 가고자 실기를 준비할 자신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께 ‘명문대에 합격하는’ 장녀로서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예술계에 몸을 아예 담그는 ‘삶의 불확정성’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연극 연출들은 연극영화과 출신보다 일반과를 나오는 경우가 더 많더라’라는 나만의 카더라 통신을 만들어 가고 싶었던 길을 선택하지 않은 나를 합리화하곤 하였다.
이 합리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다음에는 내 멋대로 연극이라는 장르를 정의 내렸다. ‘그래 역시 연극은 문학을 공부해야지!’ 나에게 연극은 곧 희곡이고, 희곡은 곧 문학 장르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문학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가야 나중에 연극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문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국어국문, 중어중문, 불어불문, 독어독문 등등 다양한 어문계열 과들이 있는데 왜 굳이 영어영문이냐고 물어본다면, 이것도 ‘삶의 불확정성’을 피하고 싶은 그 마음에서 나온 하나의 선택이었다. 취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연극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안전망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다른 어문계열보다는 영어영문학과가 아주 미미하게 취업 시장에는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나중에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나중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영문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갔다.
꽤 보편적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은 결국 첫해 큰 부작용이 났다. 사실 송도에서 지내는 동안 전공이라고는 영문학 입문과 영어학 입문 두 개가 다 이긴 했지만, 마실 것도 없이 꾸역꾸역 퍽퍽한 음식물을 목구멍에 쑤셔 넣는 것처럼 괴로웠다. 우선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자만에 불과했다. 나는 그저 한국식 영어 글을 독해하는 속도가 빨랐던 거지 영어 단어를 많이 알거나, 회화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언어적 베이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부족하니 문학 수업에서 작품이 주는 감정선이나 주어진 상황이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 흥미를 느끼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설사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
니.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지루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나는 희곡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연극'이 좋았던 것이지 문자화된 연극은 도무지 몰입되지 않았다. 계속 눈과 마음은 활자 위에서 겉돌 뿐이었다. 겉도는 시간에 비례해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고등학교의, 재수 시절의 나에게로 가 ‘한 번 더 생각해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송도에서의 전공 생활을 마치고 온 신촌은 더욱더 곤욕스러웠다. 입문 수업을 넘어서 수업을 선택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듣고 싶은 수업이 없었다. 이래저래 다른 사람들이 좋았다고 평가한 소위 ‘꿀강’들을 수강 신청하고 들었지만, 송도 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전공에 대한 의구심과 반감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처음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역으로 얻게 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난독증이었다. 글이 읽히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읽히지 않았다’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읽을 수 없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눈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 줄 그리고 한 줄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한 문장의 반 정도 읽으면 내 의지와 다르게 눈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향한 다른 곳에서도 반 정도 읽으면 또 다른 곳으로 눈이 ‘돌려졌다’. 그렇게 한 글에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장이 거의 없으니 남들이 30분이면 읽을 논문 한 개를 2시간가량 쪼개면서 읽었다. 단, 이건 한글의 경우였고, 모국어가 아닌 영어에서는, 예상할 수 있다시피, 더 고된 과정을 겪었다. 괴로웠다. 차라리 국어국문을 갔으면 영어보다는 났을 텐데. 우리말을 사랑하지 않아서 받는 벌 같았다. 당연하게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처참했다. 도무지 이렇게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의 기묘한 반려병[2], 난독증과 첫 휴학을 하게 되었다.
첫 휴학을 ‘글을 못 읽어서’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들처럼’ 인턴 하느라, 시험 준비하느라 혹은 다른 무언가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이유로 휴학을 했으면 했지 이런 이유로 휴학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사실 내 인생에 명확한 계획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그 존재하지도 않던 계획이 꼬인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영어영문학은 내 마음속 빌런이 되었다.
영문학(이후부터는 편의상 ‘영문과’ 혹은 ‘영어영문’이라고 지칭하겠다)에 대해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어느 날,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나의 난독증‘썰’과 영문과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게 되었다. 그렇게 분노를 와르르 쏟아내던 나를 가만히 보고,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나의 말을 끊더니 조곤조곤 말했다.
“근데 네가 영문과 수업에서 남들이 좋다는 수업만 들어보고 과 자체가 너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아? 한 번 너한테 맞는 거 있나 찾아보고 들어봐야 되는 거 아니야?”
듣고 보니 당연한 논리고, 그랬어야 맞는 건데, 그 당시에는 패배감과 자기연민에 찌들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안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불과 30초 전까지 영문과에 정제되지 않은 혐오를 쏟아내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안 그래도 안면홍조 때문에 화끈거리는 얼굴이 더더욱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약속이 끝난 후,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에 갔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면지를 꺼내 가운데에 영문과를 써놓고 내가 그동안 느꼈던 마음들, 분노의 이유 등등 다양한 감정들을 꺼내 펼쳐보았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것들을 활자로 마주하니 생각보다 문제의 원인은 간단했다.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했지만, 그 선택을 그 누가 아닌 내가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20년가량을 그렇다 할 후회스러운 선택 없이 살아왔던 모범생 김이응의 (그렇다 할) 첫 판단 실수였다. 그래서 더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정돈한 날,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가볍고 간사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저 ‘한 줄’을 인정하고 나니 해탈한 현자처럼 배배 꼬였던 마음들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난독증에 대한 걱정도 ‘그래 차근차근히 해보지 뭐’라고 쉽게 풀어졌다. 물론 난독증과의 기묘한 동거는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친구가 말 한대로 일단 내가 좋아하는, 관심 있는 것들을 찾고 그다음 부딪쳐보기로 했다.
나는 소위 ‘연(뮤)덕’[3]이라는 공공연한 정체성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나 역시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위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니, 내가 좋아한 연극은 그저 내가 좋아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정확히 어떤 스타일 혹은 장르의 연극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하곤 했다. 내 안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나만의 취향’ 같은 것은 하얀 백지 수준이었다. 12년간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의 ‘부역자’로 살아온 나에게 갑자기 ‘나만의’ 무언가를 찾는 것은 ‘나’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음에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휴학은 ‘나의 선호, 취향....’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만의 온전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되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 외에는 처음으로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혼자 유럽으로 여행도 떠나고, 영화도 책도 닥치는 대로 찾아보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니, ‘나만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에 꼼꼼히 색칠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동그라미를 칠 수 있을 정도는 확신은 생겼다. 나는 움직임이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리고 움직이고 있음을 몸소 느끼는 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북적거림을 사랑했다. 사람 내음이 가득한 어떤 공간을, 어떤 일들을 사랑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소함을 사랑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정말 티끌만큼 사소해도 그 작은 순간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휴학이 끝나고 복학 수강 신청을 할 무렵, 문학이라는 활자 속의 세계에 머무는 수업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외면받을 수 있는 문화학 계열의 수업을 들어보자 결심하게 되었다.
‘혹자는 나의 선택 그리고 나의 판단이 너무 근시안적이고 편협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문제에 정면 돌파하지 못한 나를 용기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라는 자의식 가득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2021년의 내가 2019년의 나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 당시 나를 위해 변론을 하자면, 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일단은 그 혼란과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휴학 이후 선택한 수업들은 여러 방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반려병인 난독증에게도 견딜만한 수업들이었다. 문학 수업들보다는 텍스트들 대신 영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희곡을 읽다가 힘들면 인터넷에서 공연 영상을 찾아 텍스트와 함께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바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공 시간에 죽상을 하고 위당관 강의실 한구석에서 시들어가던 사람이, 수업 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교수님과 열띠게 토론하고 있는 건 나 스스로조차도 상상 못 했던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실제로 당시 나와 수업을 같이 듣던 한 친구는 나의 활기찬 모습을 보더니 그야말로 ‘복학 버프’의 실현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전까지는 무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퀴어, 빈곤, 환경, 노동 등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매 순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말 남들이 말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구나.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매 수업은 반성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배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치, 경제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을 지탱하는 또 다른 중요하지만 가려진 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다시 새로운 벽에 부딪히고 만다.
복학 이후 두 번째 학기였다. 그 학기도 이전 학기와 마찬가지로 문화학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수업은 “영어권에서 생산된 문학작품 및 영화를 분석하면서 에코비평, 문화연구, 퀴어 연구 등의 이론적 틀을 활용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시도”한다는 수업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었다. 시작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열띤 토론들과 함께했다. 다양한 토론들이 오고 가는 수업 시간은 매 순간 설렜고, 기다려졌다. 그렇게 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수업의 일환으로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of Men)을 보았다.
그 영화를 보고 ‘유일하게 임신을 할 수 있는 인류인 키(Key)가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밝히는 장면에서 카메라 워킹이 드러난 가슴 부근을 클로즈업하고 있음이 “어쩌면” 흑인 여성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racial stereotype toward black women)을 극대화하고, 과잉 성애화(hyper-sexualize)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나 역시도 그 장면에 대해 비판했던 것 같다. 내 할 말을 하고, 다른 학우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는 흘러 흘러 '감독의 무의식 속에 흑인 여성에 대한 인종·성차별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을까?'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발언을 듣는 순간 팍하고 머릿속 스파크가 꺼지면서 강의실 안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부터 교수님이, 학우들이 하는 그 모든 발언이 상황, 장소 그리고 시간에 맞지 않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낯섦’, ‘이질감’을 어떻게 활자를 표현하려고 하니 막막하지만, 그 순간 그 수업을 듣는 모든 이들의 발언이 나의 삶과 너무나도 괴리된 이야기여서, 허공에 동동 떠다니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소위 ‘토종 한국인’인데 이런 내가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마치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정의한, 이야기하는 것들이 이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물론 무지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내 주변의 것들도 잘 모르면서 만 리 타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일종의 양심의 가책 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세계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고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그들과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어서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그날 이후로,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귓가에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내가 이곳에 맞지 않는 인물 같이 느껴져서’ 오는 괴로움은 아니었지만, 수업을 듣는 것이 이전처럼 편하고 즐겁고 새롭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내 마음속 이야기를 해당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님과 할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다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라 고민을 하다 교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교수님 수업이 너무 흥미롭고 좋은데, 가끔은 수업을 들을 때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뭐라고? 내가 뭘 알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이 수업에 흥미롭다고 느끼는 게 어쩌면 같잖은 선민의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교수님은 잠시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시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나도 그런 생각할 때가 있어. 나도 흑인 문학에 대해서 논문도 쓰고 흑인 인권에 대해서 많이 썼지만... 내가 뉴욕에 있을 때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업한 적이 있거든? 그때 교실에 들어갔는데 30명의 거구인 흑인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나는거야. 그렇게 논문에서 흑인에 대한 스테리오타입(stereotype)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태까지 뭘 위해 그런 논문을 썼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교수님은 나의 고민이 당연하다고, 학문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감정이 든다고 공감의 말을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교수님의 (아마) 바람과 달리, 오히려 힘이 빠졌다. 영어영문학과에서는 내가 사는 이 곳, 그리고 이 사회에 맞닿아 있는 학문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내가 아무리 외치고 알아가려고 해도 전달되지 않는 무의미한 외침으로 남을 것이라는 하나의 선고 같이 말이다. 내가 배운 지식이 나에게 와 닿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고민 혹은 걱정이 있을 때, 그것을 덜어주는 귀인(?)을 만나곤 한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귀가 얇은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은근한 반항심에 복수전공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엄청난 취업난 속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복수전공을 한다고 하면 다들 소위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를 복수전공 하려고 하는 그 세태가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은근히 ‘대학에 다니는 선비정신의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풍파 속의 대2병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근본 없는 고집을 하던 중, 동아리를 통해 문화인류학과 학생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자기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오는 과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의 고민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어떤 마음으로 문화인류학 복수전공을 추천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에게 문화 인류학과를 복수전공 해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연세대학교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봤고, 문화인류학과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았다.
“현장에서 탐구하는 인간의 삶과 문화. 새로운 문화를 상상하고 기획하는 창조의 배움터”
여러 수업의 강의 계획서도 살펴보았다. 또다시 내 선택에 회의감이 들 수는 있겠지만, 어쩌면 이곳에서라면 내가 영어영문학과에서 받은 이질감이나 괴리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나는 문화인류학과로 또 다른 여정을 떠났다.
그렇게 복수전공을 시작한 문화인류학과의 첫 학기가 끝난 현재 소감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확실한 건 나의 첫 번째 방향 전환(영문과 내에서 문화학을 위주로 수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족도는 높았다. 그리고 영문과에서 느끼던 이질감들을 많이 해소가 되었다. 사실상 미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적 없는 내가 미국의 인권, 환경 등에 관해 이야기하던 때보다는 내가 ‘정말로’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빈곤의 인류학"에서 <착취도시, 서울>과 <노랑의 미로>를 읽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홈리스의 사연에 울컥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을 붙잡고 엉엉 울었던 그 날. 남들에게 숨기기 급급했던 내 몸의 아픔에 대해 "몸의 인류학"에서 허물없이 공유한 순간. "과학기술과 문화"에서 항상 내 곁에 존재하지만 멀게만 느껴진 인공지능이 결코 사람 없이 돌아갈 수 없고 또 다른 계층화를 만든다는 것을 배운 그 순간. 그 순간, 순간들이 영어영문학과에서 생겼던 “와 닿음”, “현실”이라는 메꿔지지 못한 빈 구멍들을 하나, 둘씩 채워주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인류학은 (영)문학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아예 결이, 관점의 중심이 다른 두 학문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문학 역시도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을 비춰주는 창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류학과 형태만 다를 뿐, 사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영문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잘못이 없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문학 속 숨겨져 있는, 실존하는 현실을 하나의 상상 속 ‘사건’인 것처럼 대했던 나의 태도가 문제였다.
그리고 막상 교실 밖으로 나가면 전혀 다른 관념의 세상이 펼쳐졌다. 혐오 표현을 지양하고 모든 이들을 포용하자는 수업 속 기조와 달리 세상은 차별과 혐오로 푸르죽죽했다. 내가 배운, 내가 믿는 지식과 상식들과 다르게 세상은 여전히 사람들을 차별했고, 미워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미디어 속에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문화인류학을 복수전공을 한 또 다른 친구가 일전에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연희관에서 인권에 대해 젠더에 대해 열띠게 토론하다가 연희관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완전 다른 세상임. 그야말로 정글이랄까.”
나는 분명히 현실에 맞닿은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내가 사는 이곳에 대해 알고자 문화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복수)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는데, 현실을 외려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배운 상식 속 대한민국과 실제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달랐다.
혹자는 현실과 학문이 다르고, 그 학문을 통해 학문을 배우는 주체인 내가 이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배우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겁이 났다. 그저 일개 학생일 뿐인 이 현실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무기력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속의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은데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 속의 많은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에도 벅차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염없이 날아가는 지식을 바라만 보고있다.
여기까지가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4] 나와 나의 전공( 들) 사이의 이야기였다. 줄곧 파경, 이혼은 실패처럼 묘사되고 하나의 불행한 상황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선택의 실패는 또 다른 시작을 할 발판을 마련해준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존의 자신과 자신 주변의 관계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나와 전공 역시도 완전한 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리고 졸업까지 남은 1년 동안 합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처음부터 완전한 합을 이루고 싶었던 것, 그리고 매 선택이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던 것이 한편으로는 내 욕심이 아니었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졸업까지 1년이 남은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그 ‘온전하지 않다고 느낀 선택들' 덕분에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문화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잃었던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었으면 언제 내가 학문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이렇게 오롯이 고민할 수 있었을까.
나는 ‘무엇을 전공한다.’를 하나의 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입시의 결말이랄까. 하지만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이 입시의 끝이 아닌, 그저 내 학문적 영역 확장과 나라는 사람에 진정으로 알아가는 하나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온전해지고 싶다’, ‘그만 흔들리고싶다’라는 강박감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참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전공의 늪에서 방황하는 자들이여. 언젠가는 이 모든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1] 결혼이야기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한 설명: 제목은 영화 <결혼이야기>에서 따왔다. ‘파경을 맞았으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와 전공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결혼이야기>에서 제목을 가져오게 되었다.
[2] 강이람 작가의 「아무튼, 반려병」에서 빌려온 단어다. 강이람 작가는 자신이 ‘좋아서 혹은 의도해서 만든 능동적인 세계가 아닌, 잔병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태의 세계’가 자신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잔병들이 ‘슬그머니 내(자신) 안에 들어와 내(자신의) 감정들과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어느새 절묘한 배합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말하며 ‘반려병’에 대한 글을 시작한다.
[3] 연극, 뮤지컬 덕후의 줄임말이다. 뮤에 괄호를 친 이유는 (안타깝게도) 애정이 뮤지컬보다는 연극 쪽으로 많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4] 영화 <결혼이야기>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줄거리 소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