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나-아는 가지만 나는 남아있다.
분당선을 탄다. 신분당선을 탄다. 내린다. 셔틀버스를 탄다. 내린다.
C동으로 간다. 지하 카페로 간다.
“안녕하세요.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추가 해주시고요. 얼음 많이 주세요.”
커피를 받는다. 잘그락 잘그락 얼음 부딪치는 소리.
8층으로 간다. 사무실 불을 켠다. 노트북을 켠다.
“업무시작”
.
.
.
“업무종료”
셔틀버스를 탄다. 신분당선을 탄다. 분당선을 탄다. 내린다.
집으로 간다.
.
.
.
분당선을 탄다. 신분당선을 탄다. 내린다.
눈이 내린다.
손으로 비벼 가루를 낸 스트리폼 조각 같이 눈이 내린다.
역 출구로 나온 이들이 한 데 모여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다들 무언가 홀린 듯 가던 길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바닥도 잠시 바라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까?
.
.
몇 초간의 정적이 지나고 마법이 풀린 듯 다들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차곡차곡 쌓이고 싶었던 눈송이들은
바쁘게 자신의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신발 바닥에 납작하게 짓눌린다.
그렇게 하얗고 사그락 거리던 이들은 검고 딱딱하게 변한다.
보고싶지 않다. 외면한다.
.
.
내 길을 마저 간다.
셔틀버스를 탄다. 내린다. C동으로 간다. 지하 카페로 간다.
“안녕하세요.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추가 해주시고요. 얼음 많이 주세요.”
커피를 받는다. 잘그락 잘그락 얼음 부딪치는 소리.
8층으로 간다. 사무실 불을 켠다. 노트북을 켠다.
“업무시작”
.
.
.
이런 날들이 왕왕 있다.
‘사소한’ 무언가가 내 심장 속 연한 살을 건드리는 날들.
그런 날,
나-아는 가지만 나는 남아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