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4호 14화

비로그 #6

빙봉

by 연희관 공일오비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늘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고 엽서에 적어내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유독 파도 소리가 지우를 덮칠 것만 같았다. 귀가 멍해질 정도로, 그래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거센 파도 소리는 형체 없이 지우를 습격한다. 빛이라고는 수명을 다해가는 가로등이 전부인 어두컴컴한 새벽이었다. 지우의 언어로 의진과의 관계가 선언되는 순간, 지우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더는 파도가 두렵지 않았다.


***


제주도에서 서너 달 살다 오겠다는 지우의 결심에 의진은 어떤 얼굴을 했더랬지. 졸업을 앞두고 바빠야 할 시기에 지우가 선언한, 프로젝트와 객기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그 결심 비스무레는 제가 생각해도 볼품없었던 것 같다.


“제주도에서 살 집은 알아본 거야?”

“…아직 생각 중이야.”

“성수기라 집 구하기도 마땅치 않을 텐데. 가서 일도 하려면 몸도 힘들 거고.”


타박하는 음성인지, 걱정하는 음성인지, 그 사이 어드메인지 지우는 알 수 없어서 그저 어색한 얼굴로 웃고 말았다. 웃는 볼에는 보조개가 패었다. 지우의 잔뜩 쪼그라든 마음과는 대비되는 깊은 볼우물. 한참이나 지우의 제주살이를 걱정하던 의진은 이내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 소리 내어 웃었다. 제주도 좋겠다. 나도 일만 다 끝나면 제주도 가서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누구는 같이 살아준대? 하면서도 지우는 안도했다. 의진의 입에서 왜 제주도인지, 제주도에 사는 것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 당위와 명분을 묻는다면 나는 어떤 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일. 의진이 말하는 그 일들은 늘 의진과 지우 사이 어딘가를 떠돌았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늘 의진의 망설임 없는 제언들이 함께했고, 저는 그저 인맥 쌓기를 위해, 취업 정보를 재빠르게 알아내기 위해 가입한 SNS에는 의진이 말하는 당위와 명분들이 떠다녔다. 의진은 늘 자신이 사랑하지만, 소리 내어 응원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글로 썼다. 성소수자, 홈리스, HIV 질환자, 학내 청소노동자... 지우는 의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른 차원의 명석함을 감각했다. 의진이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글들은 지우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써내지 못할 것만 같은 활자들로 뒤덮여있었다.


언젠가 지우는 악의 없이 멍청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꾸만 세상은 변화하고, 악의 없음과 멍청함은 공존할 수 있었다. 그 악의 없는 멍청한 말은 무어였지.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에 눈을 반짝였던 거였나. 과 동기의 남성 편력을 재미 삼아 속삭였던 거였나. 무슨 주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것 하나만큼은 선명하다. 지우 역시 그 말을 내뱉자마자 입술을 꽉 깨물었던 것.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임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 그때, 의진은 눈썹을 찡그렸다. 완곡한 불쾌의 표식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고 시작하던 그 말들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의진을 사랑하면서 무서워했던 것 같다. 동경과 두려움은 분명 공존할 수 있었다. 그 앨 멋지다고 치켜세우면서도 지우는 의진이 또다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렇게 살면 안 되지. 그런 것들.

지우는 언젠가부터 의진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이 왕왕 두려웠다. 그는 제 가장 친한 과 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무언가를 판단하듯 저를 응시하는 그 눈동자 한 쌍의 서늘함을 마주할 때마다 지우는 기분이 들척했다. 지우는 언젠가부터 의진이 저를 한심하게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생사회와 학내 정치. 학생의 책임과 권리와 의무가 난잡하게 뒤섞인 것들에 고개 돌려버린 자신에 대한 비난이 섞여 있을 거라고 지우는 굳게 믿었다. 그래서 사실은 보여주고 싶어서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던 것이다. 나도 한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너처럼 아찔함에 온몸을 내맡기기도 하는 사람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


제주는 좋았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은 조그마한 논밭뿐이었고, 그곳에서 바다는 무척이나 멀었다. 누군가 바닷가에 다녀왔다는 일이 지우에게는 동물원에서 사자를 봤다는 것과 같이 들렸다. 분명 어딘가에 실존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평생토록 보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구한 집은 바닷가 근처였다. 눈을 감고 온 정신을 귀에 집중하면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한 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돈을 벌게 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쓰게 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얻어걸린 집, 얻어걸린 직장임에도 지우는 그 행운들이 자신의 삶을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해안을 따라 주욱 걷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곧 깨어지리란 걸 알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결핍을 메우고 싶었다.

일하게 된 조그만 카페는 그럼에도 붐볐다. 제주도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나뉘지 않는 것 같았다. 지우와 교대하며 앞치마를 벗던 앞 타임 언니는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한 달 살기’하는 애들이 여기 오면 가는 인스타 감성 카페가 있다고 했다. 당근 케이크가 유명하다고. 밤에 꼭 바다를 가보라고 그랬다. 방에서도 파도 소리는 들리는데요, 하고 볼멘소리를 하려다가 말았다. 곧 일이 시작이었고, 지우는 사장의 눈을 피해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알겠다고 대강 고개를 주억거리는 언니가 가방을 들쳐메고 꼭 후기 남겨주기야, 하고는 문을 나섰다. 귀찮은 일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곱 시에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파도 소리를 배경음 삼아 자소서를 쓴다. 다른 이들의 ‘제주 한 달 살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체험 에세이에서 ‘자기소개서’라는 글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한 달 제주에 사는 사람은 내가 최초겠지, 같은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사 년을 압축하는 종이 한 장을 만든다.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학술학회는 두 문장, 전 남자친구를 만나 인간관계가 파투난 동아리는 대충 한 문장으로 줄어든다. 그러다가 문득 지나치게 커다란 바닷소리에 슬리퍼를 신고 바다로 나갔다. 고작 한 문단 쓰는데도 기력이 닳는 것 같았다.

그렇게 듣는 파도 소리는, 잔인했다. 지우는 언젠가부터 밤바다가 두려웠다. 칠흑 같은 풍경에서 지나치리만큼 커다란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누가 살해되어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이 차갑고 잔인한 현장 같았다. 지우는 파도 소리에 묻히기 위해 아아, 소리를 낸다. 한참이나 말없이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더니 내 목소리마저 생경했다. 한참이나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생각난 얼굴은 다름 아닌 의진이었다. 의진과 연락한 지도 오래였다. 오고 싶다고 했는데, 걱정도 했는데 안부나 물을까. 하다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당장은 딱히 보고 싶지 않았다. 뭐 하고 있어? 하는 그 물음에 자기소개서 쓰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서울서 그 애는 늘 그렇듯 생뚱맞은 책을 읽고 멋진 글을 쓰고 있을 거였다.

한참이나 밤바다를 들여다보다가 방에 들어와 누웠다. 나는 늘 답지 않은 행동만 하는 것 같아. 전공 시간에 오고 가는 첨예한 토론의 장 속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던 나는 이젠 제주에 와서 자기소개서를 쓴다. 기분이 울적해져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 누웠다.


***


“카페 다녀왔어?”

“카페? 아…. 아직요.”

“그렇게 미루다가 아무 데도 못 간다. 그런 애들 여럿 봤어.”


제주 토박이라는 언니는 지우가 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실은 자신이 ‘제주 한 달 살기’를 싫어한다고 고백했다. 한 달짜리 인연들이 너무 자주 왔다 간다는 것이 아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애들 여럿 봤다던, 한 달짜리 애들의 최후를 수도 없이 목격한 언니의 저주 같은 말이 자꾸 귀에 남아 카페에 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고심하는데 귀퉁이에 놓인 일러스트 엽서들이 눈에 띈다. 우표와 엽서 값만 내면 카페에서 한 달 뒤에 발송해준다고 그랬다. 미래의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쓰라고 했다. 왜 의진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우는 노란 한라봉을 든 소년이 그려진 일러스트를 샀다. 혹시 제가 오늘 쓰고 내일 다시 카페에 와서 두고 가도 될까요? 하자 점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펜도 있는데요. 하기에, 아. 집에 가서 쓰고 싶어서요. 라고 얼버무렸다. 쓰고 싶은 장소가 따로 있다는 말은 거추장스러웠다.

듬성듬성 있는 가로등을 골라 그 아래 앉았다. 가볍게 들고 온 외투를 벗어 자리에 놓고 그 위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를 듣자마자 의진을 생각난 것에 변명하고 싶어서. 한 문장을 재빠르게 적어낸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늘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그 위의 틈에 억지로 의진에게, 욱여넣자 대강 편지의 모양새를 띄기 시작했다.

나는 실패해도 괜찮은 네가 부러웠어. 아니, 실패하고 나서 돌아가야 하는 플랜비를 만들지 않는 네가 부러웠어. 내 인생은 플랜에이부터 플랜제트까지 있는데, 너의 인생은 늘 플랜에이 뿐인 거 같아서.


왜 휴학하지 않느냐는 친구들의 말에 얼버무려왔다. 나는 휴학할 시간도, 돈도, 정신도 없는걸. 하나뿐인 가족들은 내가 취직해서 돈 벌기만을 목 빼놓고 기다린다는, 그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민망해 할 것 같아 대강 그러게, 하면서 순간순간을 넘겨왔다. 졸업하고 무얼 하겠냐는 친구들의 말에 아빠가 서른까지는 놀아도 된다고 했다던 의진의 우스갯소리를 듣고 지우가 느꼈던 일종의 열패감을 형상화한다면 용암 같았을 것이다. 자신의 열등감과 시기는 부글부글 끓어올라 어딘가로 퍽퍽 터졌을 것이다, 마치 지금 지우를 위협하고 있는 파도처럼. 바다는 여전히 무서운 낯을 하고 무언가를 삼킬 듯이 다가왔다가 이내 포기하고 물러난다.


나의 멍청함을 감각하는 내가 너무 싫었어. 너를 만나면 내가 자꾸 잘못 사는 거 같아서, 그래서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어. 나는 자꾸 평범함 속에 도태될까봐 두려웠어. 너는 저만치 뛰어가는데 나는 자꾸 제자리걸음으로 걷고만 있는 거 같아서. 모두가 뛰어가는데 나만 걷고 있으면, 그것도 도태되는 거잖아.

사랑하는 친구를 미워하게 될까 두려웠다.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도리어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까 무서웠다. 그리고 그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할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잘하고 있다는 감각만이 지우의 삶을 지탱할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아 지우는 남몰래 울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그 말을 듣고 싶었던 이유는.


엽서 위 펜촉이 머뭇댄다. 사실 그 이유는, 지우가 잘 알았다. 잘하고 있다는 말에 맹목적이었던 이유는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였다는 것을. 얄팍한 전공지식마저도 사용하지 못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나.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여러 이야기에도 쉽게 끼어들지 못하고 한참이나 생각해야 그럴듯한 말을 해낼 수 있는 나. 그러고도 집에 와서 그 말을 후회하는 나. 자유로운 그 애들 사이에서 취업 그깟 거에 목숨 거는 나. 언젠가부터 이게 스펙이 될까만 궁리하게 되어버린 나. 그런 나를 생각하면 도저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우는 잘살고 있다는 말이 고팠다. 그런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음에도. 지우 자신을 비롯하여.

지우의 마음이 소복소복 쌓인다. 그 쌓인 마음들을 바다는 폭군처럼 다가와 다 삼켜낸다. 그 마음들이 비명을 질러도 소용없다. 바다는 그런 거니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지우가 잔뜩 흘려놓은 아픈, 날 것의 생각들도 바다는 인정사정없이 다가와 가져갔다. 어쩐지 지우는 홀가분한 마음이 된다.


나는 이제 너를 두려워하는 게 아님을 알겠다. 나는 네가 두려운 게 아니었어.

하는 문장을 쓰고 가로등 불빛 아래 그 문장을 확인하자마자 지우는 편지를 박박 찢기 시작했다. 억세던 한 장의 엽서는 지우의 손에 이리저리 찢겨 종잇조각이 된다. 한 움큼이 된 마음들을 움켜쥐고 주머니에 털어 넣었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 조각들은 이미 바다에 던져졌다. 어쩐지 지우는 소리치지 않았음에도 바다를 향해 소리친 기분이다.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한다. 주욱 내린 스크롤 속에 의진의 프로필이 여러 번 반짝이길래 얼른 클릭했다. 무슨 말로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

[뭐 하고 있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의진이 카카오톡을 읽은 것을 확인하고 부산스럽게 방을 정리한다.

[야 반갑다]

[지금 책 읽고 있어]

[이거 읽는데 너 생각 나더라ㅋㅋㅋ]

[사진]


의진이 보낸 책의 제목은 양자역학이었다. 의진다운 독서 취향이라서 지우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젠 의진의 책 읽는다는 말에도 웃을 수 있다. 앞으로도 원인 모를 마음들이 자꾸 지우를 때려대겠지만 지우는 이제 의진을 무서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제주를, 바다 곁을 떠나도 될 것 같다.




편집위원 빙봉(jolieb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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