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유자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 대한민국의 군대를 돌아보다>는 기획기사로서 세 편의 글로 나눠져 있습니다.
① 들어가는 글
② 군대는 누구인가
③ 당신이 살기를 바라기에: 생존의 연대와 군대, 그리고 시설사회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쳐온 한국에서 군대는 나라 그 자체였다. 1949년에 제정되고 1957년에 시행된 병역법으로 징병제는 출발하였다. 냉전이 해소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로 각국은 징병제를 폐지하는 추세였으나, 군부정권이 들어선 한국은 오히려 징병제가 강화되었다[1]. 박정희 정권은 파시즘과 유사점이 많은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파시즘의 특징은 국가주의적 공동체주의이다.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 속에서 국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부속물로 간주된다[2]. 특히 북한이라는 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면서 한국의 국가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군사정권은 교육을 통해 군사적 애국주의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남성 대중을 징집하고 군사문화를 확산시켰다. 학교에서는 ‘교련’이라는 과목의 이름으로 모든 남학생에게 군사 훈련을, 여학생에게는 응급처치법을 가르쳤다. 고등학교·대학교의 준 군사 조직인 학도 호국단이 부활하기도 하였다. 군대의 훈육은 군대를 넘어서 학생들의 일상에도 적용되었다. 일련의 조치를 통해 병역은 남성의 필연적인 의무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3].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 강력히 뿌리내린 반공 의식은 군대와 징병제를 도전받지 못하는 제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징병제는 많은 모순을 내포한다. 민주화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 담론이 확산하며 공정성이 주요한 사회 규칙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2년간 민간사회와 격리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견뎌야 하는 군대 징병에 대한 반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 사회는 금방이라도 타오를 수 있는 징병제라는 불씨를 떠안게 되었다. 병역 비리로 대표되는 징병의 불평등함, 군역에 대한 적절한 보상 문제, ‘남성’ 징병제라는 요소가 복잡하게 섞인 채로 징병제는 다양한 갈등을 점화한다.
한국은 예외 없이 모든 남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병역 비리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 당선 후보였던 이회창은 두 아들의 병역 기피 논란으로 지지율 추락을 겪었고, 가수 유승준은 병역 기피 문제로 20년가량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치아를 뽑아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이 알려진 MC몽은 여전히 방송에 출연하지 못할 만큼 그에 대한 여론이 싸늘하다.
이렇듯 병역 기피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고 예민한 사안이 된 배경에는 군대 징병 과정에 내포된 계급적 갈등이 존재한다. 수많은 민간인이 동원된 한국전쟁 시기에도 정부 고위 관료의 아들은 대개가 병역을 면제받았다[4]. 힘 있는 정치인의 자식이 군대를 면제받는 사례, 해외 국적을 통해 병역을 면제할 수 있는 사람이 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안이라는 사실, 유명 연예인이 특혜를 받거나 공익 판정을 받는 상황 등은 여전히 군역이 계급에 의해 차별적으로 부여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군 복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계속되는 논쟁의 중심에 있다. 특히 군가산점제 폐지 이후 군필자 보상 문제는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군가산점제는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군 가산점 제도의 헌법상 근거 부재’, ‘여성과 장애인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 침해’를 근거로 재판관 전원의 위헌 결정을 받은 후 폐지되었다. 그러나 폐지된 이후에도 군필자 보상 문제를 이야기할 땐 어김없이 군가산점제도의 부활이 언급되고 있으며,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언급하여 파문이 일기도 하였다.
군가산점제는 1961년 공공부문 위주로 도입되었다가 1980년대에 민간기업까지 확대되었다[5]. 군 복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군가산점제는 제대군인에게 공공기관 취업의 길을 열어주는 국가적 차원의 보상이었다. 따라서 군가산점제는 “군 복무의 힘겨움을 국가가 인정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시”한다[6]. 이 제도가 민간기업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징병제 유지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또한 군사정권은 미필 남성의 고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하였고[7] 기업체는 사원 모집 시 ‘병역필’을 지원 자격으로 명시하였다.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 외에도 다양하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한국의 특성상 이러한 방식의 제대군인 우대 조치는 필연적으로 성차별과 장애인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예컨대 미국의 제대군인 보상 정책은 기본적으로 직업군인이 제대 후 혜택을 받으며 직업군인으로서 입대 기회는 성별을 불문하고 주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제대군인 혜택의 범위는 직업군인이 아닌 남성 일반으로 확대된다. 또한, 한국의 병역법에 따르면 여성은 일반 사병으로서 복무할 수 없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시행되는 제대군인 혜택 정책은 남성만을 병역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의 징병제로 인해 성차별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군가산점제는 남성의 입대로 발생한 시간적·학업적 공백을 여성과 미필자 남성의 희생으로 보상하는 정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군사정권 시절 미필 남성의 취업을 제한하고 병역경험을 입사 지원 자격으로 명시한 역사적 배경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배제해왔다[8]. 그 외에도 군대에서의 기간을 호봉에 포함하여 군필자의 월급을 더 높게 주는 군 호봉제, 군 복무 여부 혹은 군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하는 승진심사 등의 정책이 이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9].
군가산점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군필자 보상 문제를 마치 여성과 남성의 대립, 혹은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대립 등 군필자와 미필자 사이의 갈등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강제징병에 관한 적절한 대우 및 보상이 부재한 국가에 있다. 국가는 지금까지 노동시장 및 국가정책에서 미필자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을 대신해왔다. 이러한 정책의 역사는 군대가 국민 전체의 문제임에도 여성과 남성 혹은 군필자와 미필자의 갈등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징병제가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가 도전할 수 없는 제도로서 한국 사회에 굳건히 뿌리박혀 있기에, 그 불만은 다양한 방식으로 굴절되었다. 여성은 징병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분노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이었던 2000년대에도 ‘군대 vs 출산’ 구도는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불러왔던 논쟁 중 하나이다. 여성징병제는 징병제를 향한 남성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출구로 쓰였다. 사회 속 성차별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울하면 너희도 군대가라’와 같은 방식으로 여성징병제가 거론되기도 하였다[10].
군 가산점제 혹은 여성징병제를 둘러싼 사회적인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치솟은 공무원 시험 응시율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공정성’을 사회 속에서 극도로 중요한 가치로 만들었다. 실업과 일자리 불안정성이 증가한 사회 속에서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분노, “여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남자들에게 무임승차한다”, “여자들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힘든 일은 남자들에게 떠맡긴다”와 같은 여성혐오 담론[11]은 군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여성징병제를 둘러싼 발화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혐오 발언의 장으로 남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여성차별 극복과 군대문화의 변화’를 위해 여성징병제를 주장하는 입장이 나오긴 하였으나 주요 논의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출생과 인구절벽의 문제로 남성 징병만으로는 충분한 군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군사안보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징병제를 둘러싼 사회의 모순과 갈등도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여성징병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우리는 어째서 여성이 군대에 가지 ‘못’했는지, 여성이 군대에 가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지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이 정하는 바’의 법률인 병역법에 따르면 남성만이 징병제의 대상이며, 여성은 지원을 통해서만 군 복무가 가능하다. 이와 같은 법률에 의해 여성은 일반 사병이 아닌 장교와 부사관과 같은 군간부에 한정하여 지원할 수 있고 학력조건과 필기시험 등의 선발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결국 대한민국 헌법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선언한 ‘모든 국민’은 사실상 남성만을 의미한다. 절대다수의 여성은 군대라는 조직에서 근본적으로 타자화된 것이다[12].
사회학자 문승숙은 징병제에서 여성이 배제됨으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다른 시민권을 부여받았음을 지적한다. 군사정권은 산업발전을 위해 병역의무자를 ‘산업 역군’으로 배치하는 병역특례법을 제정하였다. 군수산업과 중화학 공업 등에 종사하는 남성은 지불 노동으로 병역을 대신할 수 있었으며, 국가는 이들을 위한 직업훈련을 제공하였다. 반면 여성을 위한 공공직업훈련은 거의 없었기에 여성은 섬유산업과 같은 노동집약산업에 값싼 노동자로서 일해야 했다. 수많은 여성이 노동자로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역과 중화학공업을 연결하는 국가정책은 여성을 경제에서 주변화된 존재로 만들었다. 이로써 노동시장의 성별분업은 더욱 강해졌고, 여성은 노동자가 아닌 출산과 돌봄을 통해 사회적 재생산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시민권을 부여받았다[13].
남성만의 군사훈련이 무력 사용과 자기방어로부터 여성을 멀어지게 했다는 설명도 존재한다[14]. 한국의 남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군대에서 무력 훈련을 받지만, 여성은 훈련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며 무장 남성 대 비무장 여성의 구도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성별에 따른 자기방어능력의 비대칭성을 가져왔다. 또한 징병제에 속하지 않음으로써 국방의 의무에서 소외된 여성은 군사 안보와 관련한 정치적 의제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 결국 ‘남성 징병제’는 여성을 경제활동에서 주변화된 존재, 국방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없는 국민, 출산과 양육만을 주 역할로 부여받는 ‘반쪽짜리 시민’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징병제는 남성들에게는 2년간의 군사훈련이라는 부담을 지우고, 여성들에게는 군대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의 소외를 겪게 한다. 모두가 이 제도에 대해 만족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성별에 따라 징집을 달리하는 병역법에 대한 헌법소원도 세 차례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모두 남성 징병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15]을 들여다보면 군대가 어째서 여성을 징집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판결문은 징병제 문제가 국가안보와 직결되어 있기에 ‘최적의 전투력’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법이 입법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징집대상자의 범위가 효율적인 병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이러한 법률상의 규율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근거를 들어 입법 과정에서 병역의무자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성별’을 삼은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음을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를 합헌의 근거로 삼았다. 전투를 수행할 때에 남성의 신체가 더욱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에서는 남성에 비해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존재함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개개인의 신체적 능력을 수치화, 객관화하여 비교하는 검사체제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병역 가능 여부를 성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성별을 불문하고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세우는 일은 현재의 병역검사와 같이 “전투 수행을 위한 신체적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남성 신체를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설명이다. 여성의 ‘월경’ 또한 여성의 신체가 군 복무에 부적합한 이유에 해당한다. 월경은 전투 관련 업무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임신한 여성의 경우 군사훈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또한 전시상황에서 여성은 성적 학대를 비롯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에 실전투입에 부담이 크다는 점도 근거로써 제시되었다. 이러한 신체적 차이로 인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은 최적의 전투력을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헌법재판소는 설명한다.
본 판결문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보충역이나 제2국민역 역시 국가안보를 위한 병력자원임을 분명히 한다. 만일 여성을 모두 병력자원에 투입하여 적정한 병력 규모를 초과하는 경우, 큰 비용이 소모될뿐더러 오히려 국가안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헌법재판소가 “군사문화의 사회적인 확산 및 헤게모니 장악”을 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병역의무자가 된다면 군사문화의 사회적 확산이 “자유와 평등, 평화의 헌법적 이념 실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에, 병력규모는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 판결문은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여성이 군대에 들어갔을 때 필요한 시설과 관리체제를 갖추는 것은 큰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 남성중심적인 군조직에 여성이 들어갔을 경우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헌법재판소는 남성만이 병역대상이 되는 법률조항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서울대학교 양현아 교수는 청구인이 본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출한 직후 다양한 관점에서 남성 징병제의 합헌 여부를 검토하였다. 양현아 교수는 “군대조직, 최적의 전투력, 여성과 남성의 차이 등은 모두 기성의 제도에 기초한 개념이며, 그 제도에 녹아 있는 문화적 관념”임을 명확히 한다. 사회 속에서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실제로는 만들어진 관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성별 간 차이를 특별한 검토 없이 근거로 삼는 것은 차별적 통념을 승인하고 영속화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16].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위와 같은 문제 제기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여성 징병시 발생하는 비용을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군대조직의 유지를 위한 행정 편의적 판결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과 국가가 가진 통념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먼저 군대는 전쟁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조직이다. 따라서 군대의 제1목적은 ‘최적의 전투력’이며 국가는 이에 맞게 군사력과 국방비를 활용하여야 한다.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군력을 배치하고 군대조직을 바꾸는 일은 국가로 하여금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결국 국가는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정상’을 가정하고, 그것에 개인을 맞추는 방식으로써 군대조직을 유지한다.
남성 징병제에서의 정상의 기준은 ‘비장애인 성인 남성’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신체는 군대의 효율을 위해 합법적으로 배제된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비효율의 신체를 가진 것으로 간주 되기에 징집 대상이 아니며, 일정 조건과 시험을 통과해야만 군대에서 복무할 수 있다. 신체검사를 통해 병역 또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남성 신체 또한 군대에서 배제된다. 문제는 군사문화가 민간사회에까지 깊숙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특징에서 발생한다. 군대에서의 ‘정상’과 ‘비정상’의 분류는 다시 사회 속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만들어낸다.
한국은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남성을 군인으로 징집해왔다. 군사정권은 교육을 통해 군사주의를 주입했고, 병역의무와 노동시장을 연결하는 정책을 집행했다. 한국에서 군대문화는 곧 주류 사회의 문화이자 기업문화이다. 군대의 기강을 뜻하는 단어인 ‘군기(軍紀)’는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두루 쓰이는 단어다. 조직의 규율을 잘 따르지 않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군기가 빠졌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게도 군기가 요구된다. 심지어 군사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미필자도 군기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학습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군대문화는 군대에서 통용되는 ‘정상성’을 민간사회에까지 확장한다. 이때의 정상성은 단순히 군사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신체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군대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간주되는 모든 사람은 정상 바깥으로 밀려난다. 군인의 항문성교를 징역으로 처벌하는 군형법, 성별불일치를 현역 불합격 요건으로 규정한 병역신체검사규칙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군대 내 ‘관심병사’를 지정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과거 존재했던 보호관심병사 등급 분류 기준에 한부모가정, 경제적 빈곤자, 동성애자가 포함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17]. 사회 속에서 차별받아온 소수자에 관한 몰이해와 편견이 군대에서의 ‘비정상’을 만들어내고, 군대에서의 ‘비정상’은 다시 민간사회로까지 연결된다.
징병제라는 군인 징집 방식은 군대가 허용하는 신체를 곧 국가가 용인하는 정상성의 영역으로 치환하였다. 모든 국민은 헌법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군대는 군법과 신체검사를 통해 특정한 신체를 배제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국민’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어떤 신체는 관리할만하고, 어떤 신체는 내버려둬도 되는가’를 결정짓는 생명정치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군대는 단순히 군필자와 미필자의 대립, 혹은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군대를 둘러싼 논의는 국가적 문제이자 사회적인 의제이다. 그 조직을 둘러싼 복잡성을 들여다보지 않고 표면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한다면 군대는 한국 사회에서 영원한 골칫거리로 남게 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군필자 보상문제와 ‘여성징병제’ 제안은 군대가 지닌 모순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채 성별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군대와 민간사회에서 반복되는 차별과 배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성학자 이김정희는 여성징병제가 가부장제 문화의 핵심인 사회의 성분리질서를 해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징병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18]. 동시에 그는 군사축소와 평화운동, 반폭력적인 군대문화 정립 등 해체의 전략이 수반되어야만 여성징병제가 성분리질서 해체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민간비영리조직 군인권센터는 군대 내 인권침해와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군대문화의 폭력성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혹자는 징병제가 수반하는 국가폭력을 비판하며 모병제로의 전환을 역설한다. 궁극적으로는 군대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반전주의 운동도 존재한다.
오랜 기간 축적되어온 군대의 모순을 한 번에 혁파할 현실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배제와 폭력을 비판하고 그러한 비인간화가 민간사회에 전이되는 일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변화와 함께 전쟁과 군대가 없는 유토피아를 동시에 그려내야 한다. 더 이상 군대에서 배제되어온 누군가의 죽음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군기’ 빠진 사회이다.
[1] 최재희, 「[역비논단] 징병제의 역사: 국가폭력과 민주주의의 충돌」, 『역사비평』, 제69호, 2004, 227~229쪽.
[2] 이연호, 『불평등발전과 민주주의』, (주)박영사, 2013, 53쪽.
[3]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이현정 옮김,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2007, 81~86쪽
[4] 여성한국사회연구회, 『남성과 한국 사회』, 서울: 사회문화연구소, 1997, 177~186쪽
[5] 사립학교와 ‘취업 보호 실시기관’으로 정해진 기업체에 군가산점제가 적용되었으며, 시기에 따라 그 범주가 달라졌다. (문승숙, 2007, 65~69쪽)
[6] 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이현정 옮김,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2007, 68쪽
[7] 문승숙, 앞의 책, 83쪽.
[8] 문승숙, 앞의 책, 65쪽.
[9]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르면,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의 승진 심사의 군 경력이 포함되는 경우 관련 규정을 정비토록 요청하였다.
[10] 권인숙, 「징병제의 여성참여」, 『여셩연구』, 제74호, 2008, 173쪽.
[11] 김영미, 「노동시장 피해자 경쟁과 여성혐오」, 『황해문화』, 제97호, 2017, 38~39쪽.
[12] 양현아, 「병역법 제3조 제1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을 통해 본 ‘남성만의’ 병역의무제도」, 『여성연구』, 제75호, 2008, 137쪽.
[13] 문승숙, 앞의 책, 103~140쪽.
[14] Becker, Mary et al. 『Feminist Jurisprudence-Taking Women Seriously- Cases and Materials』, St. Paul; West Group (2nd), 2001. (양현아, 앞의 글, 156쪽에서 재인용)
[15] 병역법 제3조 제1항 등 위헌확인 (2006헌마328, 2010. 11. 25.)
[16] 양현아, 앞의 글, 144~159쪽.
[17] “가난하면 무조건 중점 관리?…황당한 ‘관심 병사’ 기준”, <한겨레>, 2014년 6월 23일.
[18] “여자가 군대를 간다면…-'여남군대에 대한 꿈꾸기'”,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2003년 봄호, 86~93쪽.
수습편집위원 유자
zyouza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