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세편집위원회 Jul 08. 2021

<128호> 왜 하필 메이플스토리일까?

수습편집위원 여름(aestivalsummer@naver.com)

왜 하필 메이플스토리일까?


초록색 풀밭을 연상케 하는 패턴 위로 주황버섯 두 마리가 뛰는 듯하다. 그 위로 짙은 빨간색 단풍잎과 함께 '왜 하필 메이플스토리일까?'라는 물음이 적혀있다.


추억 속 메이플스토리


 

 이 귀여운 주황버섯은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다. 우리의 기억 깊은 곳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주황버섯은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했던 게임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딱지나 문구같이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던 굿즈에 대한 추억일 수도, 그 시절 가장 읽고 싶었던 메이플스토리 만화책에 대한 회상일 수도 있겠다.

 메이플스토리는 위젯 스튜디오에서 제작했고 넥슨에서 유통하고 있다. 200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18주년에 들어선 장수 게임이다. 작고 귀여운 몬스터들과 도트 캐릭터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살아남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유저들은 그 긴 시간동안 왜 하필 메이플스토리를 즐기고 있는 걸까? 최근 이 게임을 시작한 유저로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     


 어렸을 때의 나는 이유도 없이 ‘게임은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죄책감에 플래시 게임을 몇 번 하다 말았을 뿐 프로그램 설치가 필요한 게임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특히나 메이플스토리는 관심 밖이었다. 초기 메이플스토리의 그림체는 나의 이목을 단번에 끌기에는 다소 투박했고, 무엇보다 그 게임에 대해 무지하여 시도해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동생이 방학마다 그 게임을 하다 나에게 걸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동생은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애들이나 할 법할 게임을 몇 년 동안이나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수능이 끝난 이후, 너무나도 심심하던 차에 각종 게임 방송이나 대회를 즐겨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진 게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뒤였다. 결국 할 일이 너무 없던 작년 여름, 동생을 불러 앉혀놓고 메이플스토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조잡하고 아기자기한 이미지와는 달리, 2020년의 메이플스토리는 견고하게 잘 짜인 세계였다. 많은 세월과 디렉터를 거치면서 그 안의 스토리와 콘텐츠, 시스템은 구체화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게임의 근간은 같다. 여러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같은 맵을 공유하며, 스쳐 지나가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필요할 경우 협동하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활동은 처음 게임 세계에 던져진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을 때 퀘스트가 게임 내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퀘스트가 시키는 대로 사냥[1]하며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퀘스트를 따라가며 소소한 스토리부터 게임의 메인 스토리라인까지 맛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나는 선택한 직업의 콘셉트에 따라 다양한 스킬과 스토리를 즐기며 캐릭터를 성장시켰다. 내게 가장 처음 와닿았던 내 캐릭터의 성장은 ‘레벨’이었다.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한 당시는 한 번의 레벨업으로 세 단계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작은 노력으로도 빠르게 레벨업을 할 수 있어서 보다 큰 결과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처음 메이플스토리를 하는 유저에게 레벨을 올리는 일은 매우 지겹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벤트 기간에는 조금만 키보드를 눌러대며 사냥을 해도 내 캐릭터는 어느새 높은 레벨이 되어 있다. 이를 보며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게임 내에서 레벨업을 하게 되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노란빛과 함께 무언가 대단한 일이 생긴 것 마냥 경쾌한 효과음이 들리고, 같은 맵에 있는 유저나 길드원도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유저들은 소소한 축하를 해주기도 한다. 작은 노력이 큰 결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채우는 노란빛과 노란색 단풍잎 마크, 그리고 오른 레벨(84)와 '레벨이 올랐습니다'라는 문구가 노출된다.


 레벨 200을 넘기면 레벨업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시작한다. 반복적으로 몬스터들을 잡는 일은 레벨업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지만 오래 하기엔 피로감이 있는 작업이었다. 사냥을 하며 직업에 따라 다른 스킬들을 활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금세 지루해졌다. 그럴 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많았다. 그중 하나가 ‘보스’를 잡는 것이었으며, 내가 두 번째로 도취된 캐릭터의 성장 또한 이것이었다. 사냥은 그저 키 몇 개만 두드리며 생각 없이 맵을 돌아다녀도 되는 반면, 보스를 잡는다는 것은 하나의 센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냥에 비해 보스전은 공격 패턴을 파악해야 하고, 정해진 목숨과 제한 시간 내에 성공해야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보스전을 성공하는 것은 큰 자극이 된다. 이러한 자극은 자신감이 되어서, 한 단계씩 더 어려운 보스에 도전하게끔 만든다. 또 처음 만든 캐릭터 외에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키운다든가, 예쁜 코디를 구해서 내 캐릭터를 예쁘게 꾸민다든가 하는 만족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겨나갔다.

 현실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긍정적인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게임은 시각적이고 분명한 결과를 제공해 준다. 게임 내 재화, 경험치, 아이템 등등. 메이플스토리는 18년의 경험이 누적된 게임인 만큼, 다양한 보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올릴 수 있다. 이벤트나 재화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예쁘게 꾸미고, 레벨이나 능력치 등 스펙을 올리고, 어려운 보스를 성공하고, 해본 적 없는 새로운 퀘스트를 완료한다. 이렇게 내 캐릭터는 점점 다양한 방면으로 크게 성장해갔다. 게임 내 업적이 쌓이는 것을 보며 나는 메이플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게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아졌다.


직업 패스파인더의 스킬을 활용한 사냥 장면.


직업 윈드브레이커의 스킬을 활용한 사냥 장면.


직업 아델의 스킬을 활용한 사냥 장면.


 게임에 접속해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내게 길드 가입을 권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그전에 하던 게임들은 모두 1인용 게임이었다. 인터넷 접속도 필요 없는, 혼자서 NPC와 노는 것이 친목의 전부이던 것들이었다. 실제 사람과의 친목이 부담스러웠지만, 계속해서 모르는 사람의 권유를 거부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귀찮아졌던 나는 덜컥 어떤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마주하게 된 메이플스토리 세계 속 인간관계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길드원과 디스코드라는 음성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목소리로만 소통하는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활기찬 사람들의 에너지는 음성만으로도 내 기운을 북돋아주었고, 나의 팍팍한 메이플 생활에 단비가 되었다. 서로 게임을 도와주기도 해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고, 모르는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길드에는 나와 같은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막내였던 나는 어른들의 길드가 충격적이었고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나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어른이 되자 다른 어른들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게임은 더 이상 일탈이나 비행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제도 잊을 만큼의 흥밋거리였고, 누군가에게는 퇴근 후 즐기는 건전한 취미생활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밥벌이[2]였다. 나는 게임을 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즐기는 나도 긍정할 수 있었다.


메이플스토리그 복잡한 세계     


 그러던 중 나는 한계를 느꼈다. 게임에 쏟을 수 있는 노력이나 시간 그리고 재미의 한계였다. 같은 방식과 엇비슷한 보상은 더는 쾌락을 주지 못 했으며, 성장하면 할수록 다음 단계의 성장을 위해 요구되는 노력과 시간이 커져만 갔다. 이럴 때 유저들은 게임 내 뽑기 콘텐츠의 맛을 보게 된다. 시작은 무료다. 이벤트로 무료 뽑기권이 주어지기도 하고, 게임 내 재화로 뽑기권을 살 수도 있다. 이는 점점 커져서 현금 결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동생에게 이끌려 이벤트로 주어지는 무료 뽑기를 경험했다. 동생은 어차피 무료이니 안 하면 손해라고 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본전이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접한 나의 첫 확률형 아이템 뽑기는 스킬 레벨 올리기였다. 전투에 필요한 다양한 스킬을 더 세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냉혹한 게임 세계는 우리가 이런 방식을 통해 편하게 강해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정 아이템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하나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스킬이 강화되면 좋지만, 덜 중요한 스킬이 강화되기도 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필요하지도 않은 스킬이 강화되는 경우다. 한 마디로 ‘꽝’이 존재하는 뽑기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뽑기 콘텐츠를 처음 접할 때, 그것은 오로지 재미였다. 그러나 레벨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스킬 레벨을 올리지 않으면 사냥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이것은 레벨의 정체를 의미했다. 돈을 쓰지 않으면 다음 단계를 즐길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후반부에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메이플스토리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하여 스킬 레벨을 올리기 시작한 지 9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렇지만 스킬 레벨을 최대로 찍기에는 아직 멀었다.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올 경우의 수가 아주 많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수많은 확률형 아이템을 사야 한다. 게임에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던 나에게, 그 사실은 큰 장벽처럼 느껴졌다. 게임 초반에는 시간과 노력이 게임 내 보상으로 돌아왔지만, 후반에는 서서히 돈을 요구한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 나는 그러한 구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캐릭터를 강해지게 하는 데에 스킬 레벨은 극히 일부였다. 더 많은 방면에서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게임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쯤, 길드원이 확률형 코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로얄스타일’ 뽑기를 하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다. 4주에 한 번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에 로얄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코디 아이템들을 출시한다. 하나에 2,200원이라는 가격은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뽑기권이라는 데에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다. 정해진 가격을 주고 얻는 것보다, 뽑기를 통해 얻게 될 경우 그 쾌감은 배가 되기 때문에 합리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은 뽑기에 빠져든다.


'XX님이 로얄 스타일 쿠폰에서 상큼 펭귄 장갑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노란색 배경안에 적혀있다.


 특히나 여기에서 메이플스토리는 유저들의 동조 심리를 아주 잘 건드린다. 바로 노란 줄이라고도 부르는 시스템인데, 로얄스타일에서 가장 좋은 등급의 아이템이 떴을 경우 전체 메시지에 어떤 유저가 어떤 로얄스타일 아이템을 획득하였는지 출력된다. 이 메시지는 한눈에 다른 메시지와 구분할 수 있도록 노란 줄 안에 그 내용이 담긴다. 그 노란 줄을 보며 유저들은 승부욕을 느끼거나, 체감되는 확률이 꽤 높다고 생각하며 로얄스타일의 구매 동조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속한 길드 내에서도 동조 심리로 인한 확률형 아이템 구매 현상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곤 했다. 한 길드원이 로얄스타일을 구매해서 랜덤 결과를 확인하면, 다른 길드원이 화면 공유로 시청하다가 좋은 결과가 나오면 체감 확률이 좋다는 명목으로, 나쁜 결과가 나오면 이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차례라며 여러 명이 이어서 구매를 하고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이 구매 현상은 새로운 로얄스타일이 나올 때, 즉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계속 행해졌고 아주 자연스럽게 게임 콘텐츠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어쩌면 우스운 일이다. 게임 캐릭터를 강해지게 하는 데에 확률형 아이템을 기약도 없이 사야한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낀 이들이, 확률형 코디 아이템에 재미를 붙인다.     


확률이 쏘아올린 작은 공     


 뽑기 콘텐츠를 통해 얻는 결과는 평범한 노력을 통해 얻은 보상보다 더 자극적이다. 특히나 뽑기 콘텐츠는 게임을 오랜 기간 즐긴 유저들이 더 집착하기 쉽다. 게임을 즐기는 초반에는 노력과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손쉽게 레벨을 올리고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되며 반복적인 콘텐츠에 금방 질리게 되고 한계를 맞이한다. 그때 뽑기 콘텐츠가 게임의 재미를 다시 불어넣는 것이다.

 주변에서 뽑기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을 많이 보면서, 몇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첫 뽑기는 가볍게 시작한다. 단순히 예쁜 아이템을 가지고 싶어서, 혹은 심심풀이로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여 결과를 확인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결과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매 행위를 계속하며, 많은 실패 끝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더라도 ‘본전도 못 뽑았다’며 다시 구매한다. 마지막은 일명 ‘메테크[3]’라고 부르는 단계다. 메테크란,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얻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가치가 높아졌을 때 되팔거나 그런 미래를 염두에 두는 행위다. 많은 유저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얻은 예쁜 아이템을 바로 착용하거나 팔지 않고 일단 가지고 있는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해지거나, 충분히 아이템의 가격이 높아졌다고 생각되면 판다. 이 단계의 유저는 애초에 되팔 생각을 하며 돈을 쓰기 때문에, 본인이 사용할 아이템을 뽑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 이를 ‘투자’라고 명명한다. 물론 이 방법이 성공하면 많은 게임 내 재화를 얻을 수 있고 현금으로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위험성이 매우 큰 방식이다. 특히 올해 들어 게임 내 재화 대 현금의 비율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현금을 써가며 예쁜 아이템을 뽑아둔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보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서야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세한 확률을 공개하는 중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유저들은 확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비대칭적인 정보는 알 수 없는 뽑기 결과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고, 이성적인 계산과 사고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확률형 아이템을 뽑는 행위가 주요 게임 요소로 자리잡다 보니, 운영진 측은 새로운 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확률형 아이템만 내놓아도 좋은 매출 성과를 보이고, 다른 콘텐츠를 내놓아도 콘텐츠가 외면 받거나 개발진이 혹평을 받은 경험이 늘어갔다. 유저가 퀘스트를 깨며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차원의 도서관과 같은 콘텐츠, 한 단계씩 미니게임을 깨나가는 더시드 등 현재 다양한 콘텐츠가 있지만 하는 사람만 하는 마니악한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확률형 아이템은 다수의 유저이 즐기며 매출과도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넥슨 측은 게임의 퀄리티를 위하여 버그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기보다, 예쁜 확률형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데에 더 집중해왔다.

 이렇게 기이한 메이플 세계는 확률형 아이템과 함께 이상하리만큼 잘 돌아가고 있었다. 뽑기 콘텐츠가 랜덤이라고 믿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이 유저의 운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18일 전까지는 말이다.


메이플스토리의 2021년 2월 18일 공개된 패치노트. '개선 및 오류 수정 - 아이템 / 아이템에 부여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추가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됩니다.'


 2월 18일에 올라온 패치노트[4]의 일부다. 간단히 말하자면, 넥슨이 특정 확률형 아이템이 ‘무작위’로 결정된다고 하였으나 사실 동일한 확률이 아니었다는 내용이다. 넥슨의 주장에 따르면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의 무작위[5]였다. 넥슨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숨김으로써,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를 실제보다 더 부풀린 것이다.

 유저들은 넥슨의 행동이 소비자 기만이라고 여겼으며 분노하였다. 메이플스토리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SNS, 유튜브 등에서 넥슨을 비판하고 나섰다. 유저들은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넥슨 캐시의 한도를 0원으로 설정하여 최소 1개월 간 넥슨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인 한도 0원 챌린지를 펼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내가 이때 특이하게 생각했던 것은 유저들이 이번 사태를 기만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단순한 기업의 횡포나 논란이 아니라 기만이라는 어휘를 선택한 것에서 나는 유저들이 메이플스토리와 18년을 함께하며 가진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유저들에게 메이플스토리는 단순히 돈을 지불해서 맛보는 소비품이 아니라, 현존하는 추억이자 일상의 일부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많은 확률형 아이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연속적으로 드러났다.

 게임에 접속하는 사람이 줄었고, 아이템 시세가 나날이 떨어졌고, 아무도 게임 내 결제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메이플스토리에 등을 돌렸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의욕을 잃었다. 아, 내가 이 게임을 하던 이유는 뭐였더라? 그 근간에는 이 게임의 유지 가능성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었다.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이 게임과 함께한 나의 시간과 노력과 돈과 추억은 없던 것이 되나? 이미 나에게 메이플스토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달래주던 취미 생활이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한 추억이기도 했기 때문에 사태로 인한 회의감은 더 컸다.

 2021년 3월 1일 새벽에도 나는 조금은 허전한 마음으로 길드원과 디스코드로 이야기하며 메이플스토리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공지가 떴다고 말했고, 나는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온 메이플스토리 강원기 디렉터의 사과문을 읽었다. 최근 2년 동안의 관련 재화 100% 보상은 물론이고, 유저들이 그토록 원하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가 포함된 내용이었다. 넥슨의 다른 게임에서도 확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지만 확률을 공개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내비친 뒤였기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6]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절대 공개하지 않을 거라는 여론이 강했을 당시였다. 또한 폐쇄적인 시스템과 유저들의 소통 요구를 의식한 것인지 앞으로 적극적인 소통을 해나가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사과문을, 혹은 그 사과의 자세를 신뢰하지 못했다. 나는 고작 1년도 겪지 못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게임을 한 길드원들의 말을 들으며 형성된 마음이었다. 버그 수정처럼 당연히 해야 되는 일도 안 하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 소통을 할 리 없다는 편협한 마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4월 11일 넥슨 주최의 메이플스토리 고객간담회는 넥슨의 적극적인 첫 소통이자, 이미지 쇄신의 첫 시작이었다. 간담회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던 확률 문제뿐만 아니라 메이플의 고질적인 문제부터 크게 논란이 일지 않았던 문제까지 이야기하며 기한이 있는 약속이 이루어진 장이었다. 길드원 사이에서 넥슨 측 발언과 유저 측 발언 한 마디 한 마디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화제가 되었다. 간담회가 끝나고 났을 때 우리가 가졌던 공통적인 감상은 ‘그래도 무언가 달라지긴 하나 보다’였다. 바꾸겠다는 약속 또한 추후에 바꾸겠다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몇 월까지 바꾸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그 자리에서 제시해 준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후, 실제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해나가며 넥슨의 자율적이고 세부적인 확률 공개가 이뤄졌다. 그 외에도 간담회에서 약속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한다면서도 게임에 복귀하는 유저들이 서서히 늘어갔다.     


현존하는 추억과 평화로운 즐겜을 위하여     


 나에게 메이플스토리의 일들은 모두 급작스럽게 느껴졌다. 그 안의 커다란 세계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그 세계가 거짓으로 짜인 세계라는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는 사기였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통의 부재였을 뿐 사기까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게임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회사 측 잘못이었지만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유저들에 의해 이런 현상은 반복되었다. 이제야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그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주변부 인물이라서, 돈을 적게 쓴 유저라서는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 접한 메이플스토리는 나에게 게임이 더는 죄책감이 아니라 적절한 취미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게임은 나름의 일상과 경제와 질서를 가지고 돌아가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캐릭터와 캐릭터가 속한 그 세계에 애착을 가지는 일은, 현실 세계와 같은 방식이었지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있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웠다. 하다가 질리면 컴퓨터를 끄면 그만이고, 쉰다고 꾸짖을 사람도 없으며 게임이 그리울 때쯤 여전히 잘 돌아가는 세계에 다시 발을 담그면 되었다.

 나를 비롯한 유저들은 메이플스토리에 대한 애정에 기인하여 게임을 저버리지 않고, 바꾸어나가고자 목소리를 키웠다. 다수의 메이플스토리 유튜버가 운영진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고, 소위 ‘20억’을 썼다고 알려진 스트리머가 실망하면서도 간담회에 나가고 게임을 떠나지 않는 것도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변화의 주체는, 유저였다. 더 나아가 넥슨의 다른 게임과 다른 회사 및 산업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온라인 세계를 위한 투쟁이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어렸을 때의 내가 이 사태를 보았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게임에 가진 애정만큼 게임이 내게 주는 의미도 커졌다. 우리는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려는 세계에, 애정 어린 감시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1] 맵에 있는 몬스터를 반복해서 처치하는 행위. 몬스터를 처치하면 경험치와 게임 내 재화 등을 얻을 수 있다. 경험치를 모아서 레벨업을 할 수 있다.

[2]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대회가 없어서 전문 프로게이머는 없지만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스트리머, 유튜버 등이 있다.

[3] 메이플스토리와 재테크의 합성어.

[4] 게임의 업데이트 내용을 유저에게 설명하는 것.

[5] 넥슨 측은 랜덤, 임의, 무작위가 ‘정해진 조건에 따라 난수를 발생시켜 결과를 결정하는 행위’라고 밝히면서 자신들이 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무작위가 맞으므로 확률 조작이나 유저 기만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저 측은 그 조건을 알 수 없던 비대칭적인 정보 상황이었기에 랜덤, 임의, 무작위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동등한 확률로 발생하게 하는 행위’, 즉 조건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의 무작위로 받아들였다.

[6] 2021년, 21대 국회에서 이상헌 의원을 포함한 17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및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27호> 평범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