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

<120호> 우리, 같이 살래요?

수습 편집위원 이해일

by 연세편집위원회
KakaoTalk_Moim_8w0urG9TqLgDVbAcTbJnEwL57jtiSt.png



당신이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고자 한다면 아마도 통학, 기숙사, 자취라는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선택지가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셰어하우스다. 셰어하우스란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공간은 공유하되 방은 혼자 혹은 두세 명이 사용하는 형태의 주거 공간이다. 덕분에 자취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나름의 개인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일까? 셰어하우스 전문 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 새로 등록된 셰어하우스의 침대 개수는 3777개로 상반기 대비 77%나 증가했다. 나 또한 신촌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셰어하우스에 살았고, 교환학생을 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관심 받기 시작한 거주 형태인 것 치고는 꽤 ‘셰어하우스 장인’인 셈이다. 내가 처음 셰어하우스를 선택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기숙사는 떨어졌고, 자취를 할 목돈은 없었으며 통학은 죽어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살아보니, 셰어하우스에 산다는 것은 좀 더 복잡 미묘한 경험이었다.




셰어하우스의 이상과 현실


내가 셰어하우스에 산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접했던 반응은 “청춘시대 같은 거야?”였다. JTBC에서 2016년도에 시즌1을 방영한 드라마 <청춘시대>는 예쁜 2층짜리 셰어하우스 ‘벨에포크’에서 살게 된 다섯 명의 입주자들의 이야기다. 입주자 각자의 스토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한 편 입주자들이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큰 흐름도 보여준다. 셰어하우스라는 거주 형태가 명시적으로 방송에 나온 거의 첫 번째 작품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라면 셰어하우스라고 했을 때 누구나 자연스럽게 <청춘시대>를 떠올릴 만하다. 그래서 셰어하우스에 산다고 하면 다들 ‘정말 그렇게 예쁜 집에 사는지’, ‘정말 그렇게 하우스메이트(이하 하메)들과 끈끈한지’를 궁금해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방송에서 그려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셰어하우스의 삶 또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 우선 서울 지역에 등록된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들은 다세대 주택 형태로 벨에포크처럼 크고 예쁘지가 않다. 물론 셰어하우스마다 다르겠지만 일반 주택을 셰어하우스로 세 주는 경우나 처음부터 셰어하우스를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의 경우나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거주 공간은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벨에포크처럼 작은 마당과 옥상 공간, 부엌과 분리된 거실, 넓은 부엌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셰어하우스에 따라 거주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옥상 공원이나 휴게실을 별도로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가격이 더 비싸다.

하메들과의 관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예를 들어 나의 세 번의 셰어하우스 거주 경험 중 첫 번째에는 우리 하우스의 모든 거주자들이 한 학기 내내 매우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밖에 되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다른 하메가 외출하려고 방에서 나오면 “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받는 사람은 인사를 받을 줄 몰랐다는 듯이 놀라며 “아!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하며 나가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부탁을 하거나 뭘 물어볼 때에도 카톡방에는 참 많은 ‘죄송하지만’, ‘혹시나’, ‘실례가 안 된다면’이 난무하곤 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쯤에는 하메를 위해 칼 앞에 몸도 날리는 <청춘시대>와 같은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뒤의 거주 경험들은 사뭇 달랐다. 하메들과 밥을 같이 해 먹기도 하고, 각자의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함께 야식을 시켜 먹거나 놀러 가기도 했다. 아마 첫 셰어하우스 거주 경험 당시엔 내가 너무 서툴고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우스의 분위기는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성향, 암묵적인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서로 전혀 터치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면 그렇게,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또 그렇게 살면 된다. 이렇게 다소 환상과는 동떨어진 셰어하우스의 삶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셰어하우스를 선택하는 것은 셰어하우스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유럽에서 셰어하우스 생활을 했던 셰어하우스 장인으로서 그 매력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타인


무엇보다 내게 가장 와닿았던 셰어하우스의 매력은 ‘적당한 거리의 타인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들 한다.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가 배구공에 굳이 사람 얼굴을 그려 넣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현대인들이 직면한 과제는 남과 연결되는 것과 동시에 나만의 공간을 확보해내는 것이다. 가족에게조차 완전한 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구역을 구축하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부모들도 있다. 나는 명절날 친지들의 “취직은 어디 준비하고 있니?”, “연애는 하고 있니?”와 같은 말을 불편한 간섭으로 느낀다.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지 최근에는 ‘명절 잔소리 가격표’ 같은 것들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동시에 나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 SNS ‘좋아요’를 신경 쓰기도 한다. “인간은 왜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빡치는가”라는 유명한 ‘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참 모순적인 존재다.


8_우리, 같이살래요_이해일_사진1.jpg <그림1: 트위터 게시글. ‘인간은 왜 혼자 살면 외롭고 둘이 살면 빡치는가’라는 내용이고 리트윗이 16.3K회, 마음에 들어요 표시가 2,481회다.>

그런 의미에서 하우스메이트란 현대사회의 거의 완벽한 동거인이다. 우선 거주 공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 식재료나 두루마리 휴지를 대량으로 사서 나누기도 하고, 하수구가 막히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면 출장 수리비를 나눠 낸다. 혼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없지만 하메가 있다면 너무 아플 때는 약이나 죽을 부탁할 수 있다. 또 갑작스럽게 우울한 날에는 함께 맥주를 마시며 한바탕 전애인과 직장 상사 욕을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하메는 내가 공부는 하는지, 취직준비는 하고 있는지, 애인과 결혼 할 건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내가 어딜 나가서 몇 시에 들어왔는지 눈치를 주지도 않고, 눈치를 주지 않는데도 나 혼자 눈치가 보여 괴로워할 일도 없다. 우리는 거실에서 10년 지기 친구처럼 깔깔대다가도 각자 방으로 들어가면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의 방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노크를 하며 방문을 함부로 벌컥벌컥 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적당한 거리 아닌가. 적당히 따뜻하며, 또 적당히 먼 거리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당연히 혼자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일상에 약간 불편한 타인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일이다. 혼자 살다 보면 스스로를 잘 돌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취생은 절대 옷을 서랍에서 꺼내 입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빨랫대에서 꺼내 입기 때문이다.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 나서가 아니라 그릇이 없을 때 하는 것이 설거지란다. 혼자 쓰는 공간이니 원하는 만큼 쌓아 뒀다가 곰팡이가 필 것 같을 때 처리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셰어하우스는 그렇지 않다. 민폐 동거인이 되지 않으려면 자연히 나의 주거공간을 부지런히 돌볼 수밖에 없다. 뜻밖에 건강하고 야무진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다.




여성들의 끈끈한 유대


작년 기준 우리나라 셰어하우스 거주자의 85%가 여성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내가 처음 셰어하우스에 살게 된 이유 중에서는, 딸을 절대 자취는 시킬 수 없다던 어머니가 셰어하우스라는 주거방식에 대해서는 약간 너그러우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난생처음 만난 사이에도 생리대를 빌려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이 사회에서 여성들만이 마주하는 어려움들을 함께 헤쳐 나가다 보면 묘한 의리가 싹트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여성 혼자 사는 집’이란 알 수 없는 성적 함의를 가진 것으로 소비된다. 이 때문인지 홀로 사는 여성들은 수많은 범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자취방 창문으로 어떤 남자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든지 집에 들어갈 때 채 닫히지 않은 현관문을 누군가 열려고 해서 한참을 문고리를 잡고 대치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려온다. 이런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여성의 자취방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여 시작 된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으로 자취를 하는 여성들이 겪은 현실적인 위협들을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여성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잘 잡아낸 것이 셰어하우스이기도 하다. 페인 포인트란 주로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의미한다.

어느 날 새벽에 술에 심하게 취한 어떤 남자가 우리 집 현관을 마구 두드렸던 일이 있었다. 잠을 자던 나와 하메들은 한참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 잠에서 깼고, 현관 신발장 앞에 모였다. 숨을 죽인 우리들은 다른 호에 사는 누군가가 술에 취해 층을 잘못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을 문을 두드리던 그는 아무 반응이 없자 “택배 왔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술에 취해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택배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고안해낼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점은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남자가 자신의 집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자 우린 모두 모골이 송연해졌다. 우린 겁에 질려 어떻게 해야 여자 목소리를 들키지 않고 그 남자를 쫓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떠나고, 가슴을 쓸어내린 우리는 다음 날부터 알 수 없는 전우애를 느끼게 되었다.

이 여성들 간의 유대는 단순히 ‘친해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라고 해서 우리가 갑자기 더 친밀해지거나 대화를 많이 하게 되지는 않았다.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난 후에 우리는 다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뒤에 나는 혼자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술에 취한 남자가 말을 걸며 쫓아오는 일을 겪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 내렸지만 집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던 그 상황에서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비록 새벽일지라도 이런 일로 하메들을 깨우면 분명 흔쾌히 일어나서 날 달래주리라’는 믿음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서로의 잠을 아무렇지 않게 깨우는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에 있어서만큼은 무한한 애틋함을 보여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렇듯 함께 사는 여성들 사이에는 우정과는 또 다른 미묘한 믿음이 싹튼다.




소소한 매력 포인트들


물론 셰어하우스가 매우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지라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신촌 지역만 생각해보아도 보증금 500만 원에 50만 원은 돼야 살 만한 방을 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셰어하우스의 경우 보증금이 평균 138만 원, 월세가 42만 원으로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격만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셰어하우스에는 일종의 ‘거주인 규모의 경제’가 있다. 예를 들면 빨랫대 같은 가구는 사람 수만큼 필요한 집기는 아니다. 한 집당 하나만 있으면 되므로 그 집에 사는 인원수가 많을수록 거주인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집기 구매 비용은 줄어든다. 단순히 돈만 덜 드는 게 아니다. 혼자 살다 보면 물건 하나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데에 도가 큰다. 예를 들어 다양한 모양의 프라이팬을 갖춰두고 사는 것은 자취생에게는 사치이므로 웍 하나로 볶고 조리고 부치기도 하는 것이 가난한 자취생의 미덕이다. 하지만 셰어하우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다섯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라면 1인당 한 개의 프라이팬만 사도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형태의 프라이팬을 구비해놓고 살 수 있다. 한결 풍요로운 삶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와 함께 기업형 셰어하우스도 늘어나고 있다. 이 기업들은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아예 셰어하우스를 목적으로 한 건물을 지어 여러 개의 셰어하우스를 운영한다. 이들은 마케팅과 입주자 복지 차원에서 특색 있는 서비스들을 운영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입주자들을 위한 바비큐 파티를 열거나 작은 헬스장을 갖춰두는 식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매달 한 번씩 공용 공간을 청소해주는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전문 청소업체와 제휴를 맺어 제공되는데 아무리 오랜 자취 경험을 가진 프로 자취러라고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깨끗함을 선사했다. 독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들은 아직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셰어하우스의 소소한 서비스들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셰어하우스가 가야 할 길


셰어하우스에서의 한 학기 이후 나는 교환학생을 떠났다. 유럽에서 경험한 셰어하우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무엇보다 셰어하우스라는 거주 방식이 훨씬 보편적이라는 점이 그랬다. 학교 기숙사 중에도 셰어하우스형 기숙사가 있을 정도였다. 많은 대학생들이 학교 인근 셰어하우스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거주의 미래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셰어하우스는 앞길에 산을 몇 개 마주하고 있다. 물론 셰어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제도를 변화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언뜻 보면 셰어하우스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는 일을 방해하는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유럽에서 두드러지게 느낀 것은 여성들의 신체가 성적 대상화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기숙사가 아닌 일반 셰어하우스에 경우 남성용 집과 여성용 집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크게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친구는 6명이 거주하는 셰어하우스에서 혼자 남자였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서 경비 절약을 위해 10인용 이상의 혼성 도미토리에 묵다 보니 자연히 이해하게 되었다. 혼성 도미토리에서 여자들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속옷 빨래를 널어두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양 국가라고 해서 여성이 느끼는 위험이 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여성의 신체가 성적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적인 예로 독일 사우나는 남녀 혼탕 문화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여체라고 해서 무조건 흥분하거나 여자와 함께하는 모든 것을 성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육체 자체는 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자 혼성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것이 전혀 불편하거나 무섭지 않았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혼성 셰어하우스가 운영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실질적으로는 남성용 셰어하우스가 되지 않을까. 최근 룸메이트를 구하는 애플리케이션의 보안 취약성이 문제가 되었다. 여성 유저가 룸메이트를 찾는 글을 올렸을 때 일부 남성 유저들이 성별을 속이고 연락을 하거나 월세로 ‘성관계’를 지불할 여성 룸메이트를 찾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성을 동등한 하우스 ‘메이트’로 보지 못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제도와 시스템을 이용해 억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 자체를 뿌리 뽑지 않는다면 완벽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다. 사실 원하는 위치, 원하는 가격의 집이 있는데 성별로 인해 다른 집을 찾아야 한다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또한 남성들은 자유롭게 혼성 셰어하우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여성들은 이를 꺼리게 된다면 분명히 공평하지 않다. 효율성 면에서도 형평성 면에서도 성차별은 비용을 유발하고, 이는 주거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세입자 보호 강화의 필요성이다. 셰어하우스가 보편화된다는 것은 단순히 대학생들이 대학을 다니는 몇 년 동안 학교 근처에서 셰어하우스에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평생의 보금자리로 셰어하우스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감이 우리나라보다 덜한 편이라고들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제도적으로 매우 강력하다는 것도 한몫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빈집에 무단 침입(?)하여 일정 기간을 버티면 세입자로 인정해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독일의 경우 집주인이나 집주인의 가족이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임대차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도 임대차계약 갱신 청구권을 인정한다. 집을 사지 않고 세를 들어 살더라도 충분히 이를 ‘내 집’으로 여기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변화다. 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정상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의 혈연 가족만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간주하고 그 외의 모든 가족 형태는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지배적 가치관을 의미한다. 한국의 관습적인 전통은 여성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고, 독립은 곧 결혼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사는 여성은 비정상 취급을 받아왔다. 가족주의가 비교적 강한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혈연이 아닌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은 기껏해야 학업이나 직업으로 인한 임시적인 주거로만 인정받을 뿐이다. 이러한 인식 또한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것이 하나의 안정적인 일생의 주거 형태가 될 수 없게 한다.

이는 단순히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반영된 법제도와 현실의 괴리도 야기한다. 우리 사회에는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일상과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남은 할머니들만으로 이루어진 시골 마을 공동체가 있다. 하지만 정상가족만을 인정하는 우리나라 가족제도는 이런 다양한 공동체들을 커버하지 못한다.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는 등장인물 수경이 장폐색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수경의 어머니는 “기도하고 있다”라며 수술 동의를 해주지 않았고 3년 동안 함께 살았던 마루가 아무리 수술을 요청해도 의사는 ‘보호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한다. 마루는 “대체 가족이 뭔데! 옆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지!”라며 오열한다. 이런 괴리를 해결하고자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동성애를 조장한다.” 등의 반대에 부딪혀 입법되지 못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혈연 및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가족에게도 기존의 가족관계와 마찬가지로 삶의 동반자로서 법적 권리와 의무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동반자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도 비혼가구, 1인가구, 동거가구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법안이 생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함께 산다는 건 참 ‘단짠단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토하는 나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준 하메에게 감동하다가도 식탁 위에 며칠째 방치된 과자봉지에 짜증을 내리누른다. 거실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떠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럽다고 느끼다가도 나 혼자만의 집을 꾸며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렴하면서도 적당히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보려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이상, 셰어하우스는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셰어하우스라는 라이프스타일은 꽤 완성된 듯도 하고 또 갈 길이 멀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난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래 셰어하우스에 살 것 같다. 비록 달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다’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이해일 (dlgodlf00@gmail.com)





<참고문헌>

1) “쉐어하우스 반년만에 77%↑... 거주자 85%가 여성”, 머니투데이, 2019.01.03.

2)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범죄 위협에 떠는 혼사녀들“, 한겨레, 2017.02.03.

3) “남녀 상관없이 '그냥 벗는' 목욕탕, 야하지가 않네”, 오마이뉴스, 2018.01.31.

4) “"방세 대신 性관계 어때".. 못믿을 주거공유 앱”, 문화일보, 2018.12.28.

5) “전월세 안 올리려면 방 빼? 독일서 있을 수 없는 일”, 한겨레, 2018.09.11.

6) 송제숙, 『혼자 살아가기』, 황성원, 동녘, 2016, 49쪽




YIRB 듣는 교지 사운드클라우드 들으러 가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0호> 이브에서 인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