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132호> 강철같이 살아남기

편집장 데어 & 수습편집위원 모호

by 연세편집위원회
2022 연세대 132호 홍보용_페이지_4.png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 몇 명과 오랜만에 만나 '갓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갓생의 정의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나왔고, 우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잠 6시간, 기상 9시 전, 밥 세 끼 챙겨 먹기

사람 후회 없이 많이 만나기

인간관계와 해야 하는 일 모두 잡고자 하고 잘 해내는 것

자기 계발, 여가, 인간관계 등 모든 분야에 소홀하지 않는 삶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

객관적으로 남들보다 바쁘게, 알차게 사는 것

잉여 시간 없이 밀도 있게 살아가는 삶

생산적인 일을 많이, 다양하게, 오래 하는 것


네 명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건강, 인간관계, 자기 계발, 바쁘게 사는 삶 등인데, 우리의 대화를 통해 갓생이 상당히 다양한 요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갓생은 MZ세대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MZ세대는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이들을 워너비로 여기면서 그들의 삶을 모방하고자 하고, 이를 실천하는 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소위들 선망하는 ‘갓생’을 살아간다는 이들의 패턴이 하나의 정형화된 갓생 루틴으로 떠올라 챌린지처럼 그들의 일상을 살아보는 체험이 여러 동영상 플랫폼에서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MZ세대가 갈구하는 갓생의 대표 주자로는 tvN 예능,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김유진 변호사를 하나의 예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개인의 여유 시간을 빼곡히 가진 후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갓생,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삶에 관한 영상 댓글은 대부분이 ‘대단하다’ , ‘본받고 싶다’ 이다. 이외에도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기 계발을 꾸준히 이뤄내는 사람들은 MZ세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나 역시도 그들의 삶을 모방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곤 했더랬다.


갓생을 이루는 것


갓생은 신조어이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가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여러 매체에서 그 정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볼 수 있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갓(God)’과 인생(人生)이 합쳐진 신조어이다. 접두어 ‘갓'이 ‘대단하다’, ‘훌륭하다’, ‘존경받을 만하다' 등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갓생’은 ‘훌륭한 삶', ‘타의 모범이 되는 삶' 정도의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갓생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키면서 현실에 집중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바탕으로 '갓생'이라고 불리기 위해 충족해야 할 요소를 고민해보았다. 먼저 갓생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살다 보면 부모님 등 타인으로 인해, 또는 학교나 회사 일에 바빠 반강제적으로 부지런하게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삶이 얼마나 바쁘든,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든, 갓생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일에 끌려다니는 것은 갓생이 아니다. 갓생은 그를 실행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삶을 이루는 행위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이어야 한다. 이는 곧 갓생에는 계획이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인스타그램에 갓생을 검색하면 쏟아지는 사진들 속에는 플래너가 자주 눈에 띈다. 빽빽하게 계획이 적혀있고 시간별로 알록달록 색칠된 플래너. 그렇게 스스로 계획한 삶을 갓생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갓생의 또 다른 요소는 성실성과 지속성이다. 사람들은 작심삼일을 갓생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성실함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합의한 기간은 없겠지만, 습관이 형성되려면 최소 한 달, 길면 3개월쯤 걸린다고 하니 갓생의 기준 역시 그 정도가 아닐까.


또한 갓생은 향상성을 지녀야 한다. 갓생러는 더 나은 모습을 목표로 하고, 그가 세우는 계획은 이러한 목표 아래에 있어야 한다. 단순히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사는 삶은 갓생이 아니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는 다짐은 건강 유지하기, 시간 허투루 쓰지 않기 같은 긍정적인 목표가 있을 때 비로소 갓생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불완전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갓’생 즉, 신의 완벽한 삶에 더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요소는 포괄성이다. 갓생은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학업, 취미, 직업, 자기 계발, 인간관계 등 여러 분야가 모두 ‘갓생’으로 통합될 수 있다. 누군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30분 동안 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때 누군가는 수업 복습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두 사람은 모두 갓생러라고 불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갓생은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보람되다', '알차다', '바쁘다', '생산적이다' 등 갓생을 묘사하는 형용사는 어떤 행동을 평가한 결과이다. 이때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이 될 수도,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갓생러가 혼자서 자신의 삶을 갓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화자찬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갓생을 평가하는 이가 자신이라면 ‘노력하는 나’와 구분된 ‘평가하는 나’가 되어야 한다. 갓생은 이렇게 제삼자의 입장에서 인정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따라서 갓생은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워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지켜나가는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모호의 갓생 체험기


위에 적어놓은 갓생에 대한 나의 기존의 생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3일 간의 갓생 체험을 통해 갓생에 대해 낱낱이 톺아보았다.


먼저 갓생을 체험하기 전 나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나는 애초에 갓생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계획적인 편이 아닌, 굉장히 즉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MBTI의 판단-인식(J-P) 선호 지표에서 P에 극도로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제껏 MBTI 검사를 하면서 해당 영역은 한순간도 바뀌어본 적이 없다. 극단적인 사례를 설명해보자면 나는 대학 입시를 할 때도 즉흥적이었다. 어느 학과를 지원할지 담임선생님과 오랜 시간 상담을 하여 이미 결정했음에도 접수 10분 전에 갑자기 다른 학과가 끌려 그 학과로 원서 접수를 했다. 와중에 운은 좋아서 해당 학과에 붙었고 그 결과로 당시에 끌렸던 학과가 지금의 내 학과가 되긴 했다. 결말이 좋으니 웃고 넘기는 것이지, 당시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는 것을 넘어 거의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즉흥적이어도 그렇지, 정도가 심하다면서 말이다. 그만큼 즉흥적인 내 삶은 계획적임의 끝판왕인 갓생과는 영 거리가 멀다.


일단 나는 약속이 없는 날엔 알람 없이 계속 잠을 잤다. 밤잠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그래봤자 4시간 정도를 자긴 하지만 새벽 4시 정도에 자다보니 일어나면 오전 8시였다. 일어나면 휴대폰을 하면서 11시까지 보내다가 낮잠을 잤다. 밤잠은 없지만 낮잠은 많은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잠을 자고 1시쯤에 일어나면 그제야 밥을 먹었다. 식욕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닌데 소위 말하는 귀차니즘이 심해서 집에 밥이 없으면 대충 초코파이 두어 개 정도로 식사를 대체하고는 한다. 개인적으로 더부룩하게 배부른 느낌을 안 좋아해서 양껏 먹지 않기도 하고 약속이 없으면 굳이 식사를 하지 않는 것에 더 익숙해서 약속이 없는 날은 점심만 먹기에 필수 영양소를 못 챙기는 날이 허다했다.


점심을 먹은 후엔 TV나 유튜브, 혹은 OTT 플랫폼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나는 보통 그 시간의 사이사이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평소 즉흥적인 성격이긴 해도 일에 쫓기는 느낌을 싫어해서 해야 할 것들은 미리미리 끝내두는 성격이다. 때문에 매번 마감 시간이 많이 남아 느긋하게 일을 하다보니 중간중간 미디어에 뺏기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다시 새벽 4시에 자는 게 내 루틴이다.


하지만 이런 삶에 있어서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내 모든 여유로움은 업무가 없는 여유시간에서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기한에 쫓긴 적이 거의 없었고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다양한 대외활동들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만족하지만 매시간을 계획적으로 쪼개는 사람들은 불만족할 나의 느긋한 삶에 갓생을 끼워보면 과연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갓생 1일 차] 8월 4일


-오전 6시 기상

갓생을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오전 중에서도 가장 이르다고 볼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힘겹게 몸을 일으켜 보았다. 평소보다 확연히 짧아진 수면 시간에 몽롱한 기운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었다. 사람의 생활 패턴이라는 것을 한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물이라도 끼얹으면 잠이 깨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샤워를 하고 나니 잠이 깨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맡는 상쾌한 새벽 공기 또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솔직히 빨리 일어난 것만으로 공부의 의욕이 생긴다거나 하진 않았다. 되려 여유 시간이 갑자기 늘어난 것만 같은 기분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계획했던 것보다는 늦게 책을 펴게 되었다.


-오전 8시 전공 공부 시작


원래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휴대폰을 생각보다 오래 만진 탓에 아침 먹을 시간을 부득이하게 공부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종강을 하긴 했지만, 나의 전공은 쉬는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이후에 공부하기가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종강 직후 전공 관련 책을 구입했었다. 하지만 여의찮아 계속 미루고 미루다 보니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해 찔리던 차에 이번 갓생 체험을 통해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맑은 정신으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스르륵 감겼다. 집중력 부족이라기 보다는(물론 집중력 부족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생활 패턴의 변화에 몸이 적응을 못 한 느낌이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깨우면서 읽어보았지만 공부의 내용을 잘 소화해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공부를 끝내고 나서의 뿌듯한 마음이 굉장히 컸을 뿐.


-오후 1시~3시 연세편집위원회 회의


회의를 위해 본가에서 신촌으로 가는 40분 동안, 나는 지하철에서 계속 졸았다. 내려야 하는 역에서 내리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원래 계획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계속 존 탓에 가져온 책은 그저 짐이 되어버렸다. 아침부터 노력했던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훅 기분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다음엔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회의에 갔다.


아침 대용으로 단백질 음료를 마시며 회의에 참여했는데 다른 편집위원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너무 피곤했다. 이미 하루가 끝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억지로 손등을 꼬집으면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피곤함을 떨쳐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회의가 끝나면 또 약속이 있는데 어떻게 감당하지 싶었다.


-오후 3시~6시 여유시간


신촌역 빨간 잠망경 앞에서 6시 반에 다른 모임의 사람들과 만나기로 해서 잠시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원래 계획은 아까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쓸 세미나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했던 것 같다. 졸지 않고 손을 움직여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아침과 같았다. 6시 반부터 있을 약속에서 또렷한 정신으로 있을 자신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소파에서 1시간가량 낮잠을 잤다. 빽빽하게 세워둔 계획들이 나의 피곤함으로 인해 많이 무산된 것 같아 속상했다.


-오후 6시 반~오후 11시


저녁을 먹고 보드게임 카페에 갔다가 술을 먹었다. 원래 우리는 항상 비대면으로 일만 하는 관계였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친목을 위해 대면으로 만난 지라 그런지 내향적인 나로서는 꽤나 진이 빠졌다. 물론 다들 좋은 사람이었지만 원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많으면 금방 지치는 편이어서 아까 한 시간이라도 안 잤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전까지는 계속 촉박하게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는데 무계획으로 놀러다니며 이야기만 나누는 상황이 되려 마음 편하게 느껴졌다.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아침처럼 졸지 않았다. 비록 술을 마셔 어지러운 탓에 책을 읽진 못했지만 적어도 피곤하지 않은 정신으로 노래를 들으며 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이걸 내일은 잘 할 수 있을까?


[갓생 2일 차] 8월 5일


-오전 6시 기상


어제 하루 빨리 일어났다고 오늘의 기상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시 자고 싶었다. 앞의 내용과 계속해서 겹치는 말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자고 싶었다. 어제 낮잠을 너무 자주 자서인지 잠이 오지 않아 늦게 잠이 든 터라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차라리 평소대로 일어났더라면 수면 시간을 늘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어제처럼 일어나서 씻고 양치질을 하며 창문 밖을 보았다. 상쾌한 공기는 시원했다.

오늘은 어제처럼 낮잠을 자주 자지 말아야지. 그 생각만 반복적으로 했다.


-오전 7시 반 전공 공부


어제보다는 그래도 머리에 뭐가 많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어제는 정말 흐릿한 정신에 억지로 단어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은 것 같았다면 오늘은 제대로 소화는 하는 것 같았다. 뿌듯함도 컸다. 하지만 솔직히 하기 싫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원래도 하기 싫었던 걸 하기 싫은 시간에 하는 데 좋을 수가 없었다.


-오후 1시 신촌 약속


신촌 빨간 잠망경에서 지인과 1시에 만나기로 했다. 괜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이르게 준비하고 이르게 나간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이번엔 정말 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환승역에서 이클립스도 샀다. 입안이라도 화하면 잠이 덜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클립스를 한 번에 5개씩 입에 문 채로 지하철을 타니 확실히 졸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잠을 쫓아내야 할 정도로 나랑 맞지 않는 습관이라면 안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남들의 기준엔 내가 게으른 생활 패턴이었을지라도 따지고 보면 수면 시간도 괜찮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적도 없는데 굳이 나만의 생활 패턴을 바꿔야만 했던 걸까?


무수한 생각을 하면서 약속 장소로 가서 지인과 무사히 만났다. 밥을 먹고 카페를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잠은 그다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긴 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왔다나 뭐라나. 밤을 새웠냐는 질문에 갓생 체험기를 쓰기 위해 빨리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고 하자 상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 너 이미 성실하지 않아? 난 너 되게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상대가 읊어주니 기분이 묘했다.

빨리 일어나지 않아도 난 내 삶을 잘 살고 있었는데. 아침에 공부하지 않아도 가끔씩 저녁에 자발적으로 공부도 하고 홈트레이닝도 1시간씩 하면서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원할 때 하는 것은 그렇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건만 2일간의 갓생 루틴 속 그것들은 내겐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오후 6시


신촌역에서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내 입엔 이클립스가 한가득 머금어져 있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책을 읽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싶었지만 퇴근길 2호선은 제법 무서웠다.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책을 읽는 건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인지 많이 피곤했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 홈트레이닝도 해야 했고, 마저 공부도 해야 했다. 이 정신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싶었기에 환승역에서 캔 커피를 샀다. 집으로 가면서 계속 커피를 홀짝거렸다. 카페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지 않기 위한 나의 최선의 노력이었다.


-오후 7~10시


1시간 반은 공부를, 나머지 1시간 반은 홈트레이닝을 했다. 카페인을 먹어도 몸이 피곤하긴 매한가지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하는 심정이었다. 공부는 잘 되지 않았고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피곤한 마음에 좀 짜증도 났다. 빨리 끝내고 빨리 씻고 빨리 자야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운동을 끝내고 나서 10분 만에 씻고 곯아떨어졌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시간도 없이, 너무 피곤했다.


[갓생 3일 차] 8월 6일


-오전 6시 기상

오늘의 기상은 이전처럼 어렵지 않았다. 나름의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이 이른 기상에 적응한 듯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후 10시에 정신을 잃다시피 한 덕에 8시간이나 잔 것이니 피곤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씻으면서 오늘 내가 살아야 할 삶을 계속 되뇌었다. 제법 갓생에 익숙해진 내가 기특했지만, 속으로는 오늘이 갓생 체험의 마지막임에 안도했던 것 같다.


아침을 먹으면서 여유롭게 하는 전공 공부는 할 만했다. 전공을 좋아하기에 재밌기도 했다. 이전의 체험기에서 공부하는 것이 싫었던 이유는 피곤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피곤함을 덜어낸 상태에서 하다 보니 괜찮았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아침에 하는 공부였다는 점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느낀 것인데, 나는 낮보다 밤에 효율이 강한 사람이었다. 갓생 체험을 하며 해야 할 일들을 주로 오전에 하다보니 효율이 낮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낮에 효율이 높은 것은 아닌 법인데 갓생은 보통 낮에 할 일을 끝내야 한다고 종용되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오후 10시까지


오늘은 약속이 없었다. 덕분에 원래 계획되어있던 홈트레이닝, 책 읽기 등등을 여유롭게 끝낼 수 있었다. 자기 전까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중 다른 갓생러들처럼 또 계획을 세울까, 생각을 해봤지만 어쩐지 나는 그동안의 갓생에 대한 나의 체험 소감을 일기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즉흥적인 행동을 한 것이 갓생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끝내고 한 행동이니 갓생이라고 믿겠다.)


갓생 3일 간의 일기를 집필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굴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만의 생활 패턴이 이미 구축된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밤에 효율이 좋은 것을 알고 있었고, 배부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체험에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의 특성을 반영할 수 없었다. 일은 낮에 해야 했고 배불러도 3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했다. 물론 갓생루틴에 모두 불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낮잠으로 인해 불규칙했던 수면 패턴이 고쳐진 것은 매우 좋은 성과였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내 시간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불만족스러웠다.


사실 처음부터 정형화된 생활 패턴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생활 패턴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강철 로봇이 아닌 만큼, 모두가 갓생을 만족스럽게 체험할 순 없는 것이 당연했다. 체험 종료와 함께 체험기 일기의 마지막에 적은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나만의 특성을 고려해서 갓생의 생활패턴을 수용하자.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갓생을 살고자 노력하진 않을 것 같다. 갓생의 좋은 루틴들은 수용하되, 그럼에도 정형화되지 않은 나만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갓생을 살고자 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갓생을 살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 사람의 계정에 팔로우를 걸어 타임라인에 간직한다. 갓생에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갓생은 그 자체로 일종의 동기부여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갓생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갓’이라는 접두사가 만들어내는 느낌은 모두가, 특히 이 신조어에 익숙해져 있는 MZ세대가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삶이 갓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훈장이며,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두 번째로, 갓생은 동기부여가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갓생 체험기에서는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전공 공부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전공에 대한 이해력이 늘었을 것이고, 줄글을 읽는데 필요한 단어를 몇 개라도 더 암기했을 것이다. 이처럼 갓생러는 계획을 달성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내게 된다.


또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2년째 지속되며,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온라인 학습, 재택근무 등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 위축이 사람들의 불안과 우울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2020년 10월 진행한 ‘코로나19 3차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48% 정도가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우울감을 경험했다.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증폭되는 때에, 갓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직관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달성하며 빠른 피드백을 얻고, 매일 작은 만족감을 얻으면서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길을 잘못 든다면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갓생은 한없이 엇나가기도 한다. 갓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인데, 목표를 잃고 ‘갓생을 산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오히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학창 시절 농담처럼 ‘필기는 예쁘게 해놓고 수업 시간 끝나면 펼쳐보지를 않는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 사용하는 투두리스트 역시 그러하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앞서 갓생을 이루는 요소 중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는 갓생이라 불리기 위해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타인이 시선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본래 목적을 잊어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화려한 형광펜, 깔끔한 글씨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적절한 목표를 세웠는지, 그 목표를 매일 달성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갓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또, 갓생은 가끔 우리를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말 그대로 ‘God’이라고, 언제까지고 이렇게 기계처럼 일정하고 바쁘게 살 수 있다고. 우리는 갓생을 살겠다고 자신을 몰아치고, 그렇게 만들어낸 갓생은 다시 우리를 독촉한다. “이 생활을 유지해야 돼. 무너지면 안 돼.” 혹은 적어도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어느 날 하루는 컨디션이 나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외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우연히 일정이 꼬일 수 있다. 세운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것이 일시적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투두리스트에 X표를 치고 나면 어쩐지 누군가를 실망시킨 기분이다.

갓생이 강박이 되면 체험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갓생은 주관적인 개념이며, 설령 같은 개인이라 하더라도 그날의 상황과 건강 상태 등의 조건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자신의 갓생은 자신만의 것인데, 우리는 때로 강박적으로 남의 갓생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비교하며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경우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가 같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하루하루 강철같이 살아남기를 기대받는다.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한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한다’와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니 갓생을 살 때도 철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실제로 그렇게 철인처럼 사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쉬엄쉬엄해라’ 가 아닌, ‘대단하다’라고 평하며 그 삶을 갓생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강철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때로 실패할 수 있고 쉬어갈 수 있다. 그건 당신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그 말은 즉, 신의 삶인 ‘갓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강철같음을 우상시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두부처럼 말랑하더라도 나에게 맞다면 괜찮은, 온전한 나만의 삶이 아닐까.


참고문헌

보건복지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코로나19 3차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 2020년 10월 3일.




편집위원 데어 auda9180@gmail.com

수습편집위원 모호 junghyowon@yonsei.ac.k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31호> 답답하고 불친절한 어느 상담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