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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132호> 지극히 평범한 상담기록

기고자 제이

by 연세편집위원회
2022 연세대 132호 홍보용_페이지_5.png

* 이 글은 상담과 심리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필자에 의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강박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이에게 트리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2021년 1학기, 나는 ‘인생 노잼 시기’에 접어들었다. 뉴미디어 언론사 ‘비쥬얼다이브’에 의하면, 인생 노잼 시기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1. 뭘 해도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음

2. 해야만 하는 일을 계속 미루면서 스트레스 받음

3. 뭔가를 하다가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음

4. 인간관계가 귀찮고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듦

(...)

6. 하루하루를 억지로 버티는 느낌

7.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다 현타와서 더 우울해짐

8. 내일은 궁금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음

(...)


당시 나는 기숙사에 살면서 사이버 강의를 듣고 남는 시간에는 근로장학생으로 학교 기관에서 일하는 일상을 보냈다. 대부분의 나날이 딱히 기억에 남는 일 없이 지루하게 흘러갔다. 강의를 듣고 있어도 교수님, 학우들과 강의실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강의를 듣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근로장학생 일도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뿐이었기에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월급을 받아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친구와 밥을 먹고 수다를 떨어도, 새 옷을 사도 즐거운 것은 그 순간뿐이었다. 피곤한 하루 끝에 기숙사 방으로 들어와 누우면 나 자신이 광활한 우주 속 먼지 알갱이처럼 특별할 것 없고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몹시 어렵게 느껴졌다.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면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조별 과제나 자치단체 활동에서는 멋지고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친구를 만나면 재치있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와 대화할 때면 긴장감 때문에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자기 전엔 내가 했던 말실수, 어색한 행동 하나하나를 복기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시간을 보냈다.


일상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이 없었기에 미래에 대한 기대도 되지 않았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지루하고 피곤한 것일까”, “어차피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아등바등 노력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지?” 등등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부정적 생각에 에너지를 빼앗겨 항상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해야 할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다가 ‘이러다 큰일 나겠다’라는 불안감을 원동력 삼아 해치웠다. 당연히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강의 시간에 카메라를 끄고 조는 일이 잦았다. 과제도 자주 늦거나 빼먹었다. 해야 하고, 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자괴감까지 더해지며 자존감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다.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불어났다. 취직도 제대로 못 하고, 친구도 없이 변변찮게 살아가는 미래가 자꾸만 뇌리를 스쳤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혼자 힘으로는 슬럼프와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이야기해도 좀처럼 공감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하자니 나의 우울감을 그들에게 옮기게 될까 봐 걱정됐고, ‘답정너’처럼 칭찬과 격려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 민망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에게는 부담 없이 나의 깊숙한 내면에 대해서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들의 지혜를 빌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었다.


험난했던 심리상담 탐색전


가장 먼저 찾아봤던 것은 우리 대학교 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였다. 심리상담센터에서 재학생에게 10회 동안 무료로 상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신청이 마감된 이후였다. 심리상담센터에서는 월 단위로 온라인 상담 신청을 받는데, 신청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마감된다.


그때 나는 한 달씩이나 기다릴 수 있는 참을성이 없었다. 당장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법을 듣고 싶었다. 검색창에 ‘심리상담’을 입력하자 가장 먼저 네이버 엑스퍼트라는 플랫폼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당 플랫폼을 통하여 심리상담 전문가를 골라 전화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강박, 불안장애, 우울, 성격, 대인관계 갈등이라는 키워드만 보고 나는 단숨에 6만 원을 결제했다. 상담을 신청한 것만으로 불안감은 훨씬 누그러졌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슬럼프에서 빠져나갈 단서를 잡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상담 첫 경험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우선 첫 단계부터 문제였다. 현재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심리 상태는 어떤지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당시 나는 정신과에 다닐 만큼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 계기를 뚜렷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상담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묻는 심리상담사에게 나는 “어…요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고…친구가 없는 것 같아 그것도 좀 고민이에요. 또 다른 사람 마음에 공감도 잘 안 가는 것 같아요.”라는, 모호한 말을 더듬더듬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상담사는 내 고민과 상태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후 대화는 좀처럼 내가 원래 이야기하고 싶었던 고민을 건드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전화상담이

라는 형태도 이에 한 몫 거들었던 것 같다.


상담이 초중반쯤 진행되자 상담사는 어린 시절에 관한 주제를 꺼냈다. 그는 “사람이 유년기에 형성했던 애착 관계는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쳐요.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문제는 이 애착 관계가 원인일 수 있어요.”라며 어릴 적 주된 애착 대상인 부모님과 어떤 관계였다고 생각하는지 물어왔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이혼이라는 사건을 경험했다. 또 부모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이를 수용 받아봤던 경험이 적었다. 심리상담사에게 그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린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야기하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꼈다. “그때는 부모님을 힘들게 할까 봐 제 이야기를 잘할 수 없었어요. 뭐든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말을 하자 서러움과 자기연민이 되살아나며 눈물이 좀처럼 주체가 안 될 정도로 흘렀다. 상담사는 퍽 다정하게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공감하고 위로해주었다.


상담이 후반으로 접어들자 심리상담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음, 조금만 더 힘내라?” 내 대답을 들은 상담사도 당황한 듯 정말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 말만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릴 적 나를 돌아보면 힘들긴 했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꿋꿋이 살았다. 슬프고 화나는 일은 있었어도 절대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함부로 동정하거나 연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상담사는 내 대답이 석연치 않은 듯했다. 50분이 끝나가자 그는 나에게 상담을 통해 고민이 해결되었는지, 어린 시절의 응어리가 해소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간단한 인사 후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욕실에서 눈물을 씻어내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상담에서 약 10년 전의 이야기만 했을 뿐 현재의 내 고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기분이 나빠졌다. 심리상담을 받은 목적은 전혀 달성되지 못한 채 예전의 상처만 건드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 정하기


결국, 나는 학교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첫 심리상담을 마치며 상담의 효과를 잘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상담사는 대학생이라면 학교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할 것을 추천했다. 나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대학생들을 상담해본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고, 무료로 꾸준한 상담을 받을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다. 한 상담사와 신뢰관계를 쌓아가며 상담을 받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신청이 열리는 날을 캘린더에 표시해 두었다가 당일에 바로 개인 상담 신청을 했다. 일부 시간대는 이미 예약이 잡혀 있었지만, 날짜와 시간대를 어느정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상담센터는 중앙도서관 옆 창문이 많고 하얀 건물인 백양관 408호에 있다. 상담센터에 방문한 첫날은 성격특성검사와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을 얼마나 경험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검사 두 가지를 하고 돌아왔다.


두 번째 방문한 날에는 검사 결과에 대한 해설을 듣고, 앞으로 진행될 심리상담을 통해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지 정하는 사전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 선생님이 해설해준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성격특성검사에서 나는 향상심이 있는 성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가끔 긴장과 불안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다.


결과를 듣고 마음이 놓이는 한편 걱정도 되었다. 나는 분명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검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자에게 나의 문제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괜한 걱정으로 한 번밖에 없는 상담 기회를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나는 주저주저하면서도 평소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을 풀어놓았다. “대학교에 들어와 대인관계가 좁아졌고, 또 이미 친한 친구들과 만나도 편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 스트레스로 인해 겪었던 우울증과 강박증이 취업과 진학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재발할까 봐 무섭다”, “성격이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성이 없는 것 같아 고민이다” 등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던 걱정거리들을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주변 사람과 갈등을 겪었던 이야기,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일 등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경험들도 같이 이야기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말을 종이에 메모하면서 많은 질문을 했다. 고등학교 때 겪었던 강박 증상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그 증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당시 힘든 일이 있었는지 등 나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에 대한 것들이었다. 내가 대답하면 상담 선생님은 이 대답에 대해서 또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였고, 상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옆자리 사람이 다리를 떠는 것에 심한 불안을 느끼는 증상과 함께 우울증을 겪었다. 수능을 볼 때 옆자리 사람이 다리를 떨어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걱정에 시달렸다. 그 생각을 몰아내려고 노력할수록 집착이 심해지며 증상은 악화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차도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할 때 옆 사람이 다리를 떨면 불안이 높아졌다. 책을 읽을 때 옆에 있는 물건이 신경 쓰이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진학 시험을 볼 때 혹은 공부할 때 비슷한 증상이 다시 나타날까 무서웠다.


교우 관계에 대한 고민은 대학에 들어오고 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 적 없었다. 주말과 자는 시간을 빼면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접촉이 적은 대학에서는 친구를 사귀고 유지해나가기가 어려워졌다.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말을 날카롭게 뱉는 버릇 때문에’, ‘말할 때 재미가 없어서’ 등 나 자신의 여러 단점들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여러 가지 고민을 사전 상담 선생님에게 털어놓고 난 후 나는 강박 증상 극복, 교우 관계 개선 두 가지를 상담 목표로 정했다.


걱정과 불안 덜어내기


해설 상담을 받고 3주에서 한 달 남짓이 지난 후에 개인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던 시기였기에 개인 상담은 모두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개인 상담 첫날, 내 담당 선생님은 해설 상담에서 말했던 나의 고민거리에 대해 하나씩 물어보았다. 해설 상담 선생님이 작성한 메모를 전달받으신 것 같았다. 나는 해설 상담에서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고민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말을 경청해주셨다. 또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지셨다. 먼저 강박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근로장학생 일을 하면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내고 싶어 늘 책을 가져가 읽었는데, 핸드폰 케이스의 무늬나 컴퓨터 불빛 등이 신경 쓰여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집중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박 증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그런데 책에 집중을 못 한다고 큰일이 생기나요?”라고 물어보았다.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닌데 꼭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집중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나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냥…기왕 읽는 거 잘 읽고 싶어서요. 그리고 미래에 시험을 봐야 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선생님은 친구를 만나면 왜 긴장하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동안 사회적 상황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경험들을 떠올려보았다. 장난을 던졌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었던 경험이나 대화에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경험, 친구가 하는 말에 공감이 되지 않아 어색한 반응을 보였던 경험 등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거나, 나와 만나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다. 나 자신이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것 같아 자책감이 들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이 ○○씨를 싫어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라고 물어보았다. “어…저를 다시 만나주지 않을 수도 있고…나중에 저를 욕할 수도 있잖아요.” 또 친구와 있을 때 꼭 재미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반문하셨다. “일단 제가 재미있어야 그 친구도 저랑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합리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해도 선생님은 내 말에 대해 평가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도한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다. 그냥 ‘당신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갖고 계시는군요’라고 말하듯, 이야기는 흘러갔다.

그 주의 상담이 끝나고 나서 문득문득 선생님이 던진 질문이 생각났다. “○○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나?” 나는 나의 걱정들을 되짚어보았다. 시험을 망칠 것 같다는 걱정,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날 것 같다는 걱정,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나 외톨이가 될 것 같다는 걱정… 하지만 그 일들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고, 벌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고, 지금 걱정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동안 현실적이지 못한 걱정에 과하게 제약당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또 어쩌면 걱정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과도한 걱정을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상담에서 이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정말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몸 곳곳의 감각에 집중하는 ‘바디 스캔’이나 심호흡을 통해 신체의 긴장을 풀어주면 심리적인 불안과 걱정도 잦아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을 만들 것을 추천해주었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꼭 건전하고 생산적인 취미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어진 상담에서 선생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 목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생각들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소위 ‘악마의 편집’에도 굴하지 않고 댄서들의 다양한 매력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 최근 친해진 친구와 있었던 안 좋은 일, 사소한 걱정거리 등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일들을 털어놓았다.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상담을 받기 위해 혼자 있을 수 있는 기숙사로 이동하는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다.


선생님은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당신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었다. “○○씨를 보면 공감 능력이나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보이지 않아요”라는 말에 정말 큰 위로와 안도감을 느꼈다. 장난인 척 비난하는 친구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에도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친구의 문제라고 단호하게 말씀해주셨다. 상담을 통하여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고 이상하기에 고쳐야 한다”라는 생각이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은 이상하지 않다”로 점차 바뀌어 갔다. 상담이 후반부로 접어들자 선생님은 내 생각이 많이 현실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씀하셨다.


인생이라는 파도를 surfing


7월에 시작한 상담은 9월 말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상담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상담을 받는 기간 동안 혼자 소화하기 어려운 생각, 감정, 증상이 생기면 상담 선생님에게 언제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상담이 좋았던 만큼, 앞으로 혼자 헤쳐나가야 할 나날들이 걱정되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결국 마지막 상담 날이 되었다. 선생님은 처음에 세웠던 목표인 교우 관계 고민과 강박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잠시 과거를 생각해보다가, “사실, 저는 지금까지 꽤 잘해왔던 것 같아요. 앞으로 좀 더 노력한다면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과도한 걱정과 불안, 자기혐오에 시달렸지만 한 번도 나를 놓아버린 적은 없었다. 항상 노력했고, 꽤 많은 성과를 냈다. 완벽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방향이 보였다. 선생님은 나의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걱정이었다. 상담의 도움으로 나아진 지금이 좋은 만큼, 상담이 끝나면 서서히 그때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선생님은 웃으며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어떤 기분이냐면, 배를 떠나보내는 기분이에요. 이제 이 손만 놓으면 배는 넓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러 가는 거예요. ○○씨라면 잘할 거라고 믿어요.”


상담이 끝나고, 여러 걱정거리들을 혼자 헤쳐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이전과 같은 실패들을 반복했다. 여전히 모임에 나갈 때 긴장했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거나 대화하지 못했다. 심리상담을 받은 여름방학의 다음 학기는 수업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한 과목은 거의 내던지다시피 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었다. 풍파를 견디며 요령을 익혀 더 능숙하게 인생이란 파도를 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작은 실패에 대해 크게 좌절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처한 상황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거뒀다. 종종 친구들을 만나 마음 편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때로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세지에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너무 막막해서 포기하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을 쓴 결과 교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시험을 치르고 왔다. 시험을 준비하는 내내, 수능을 준비할 때처럼 태풍과 같은 슬럼프가 찾아올까 걱정되었다. 시험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는 불안한 마음을 전환하기 위해서 집 앞 천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선선한 여름밤 공기를 들이쉬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망치더라도 나는 나다.” 결과에 상관없이, 또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든 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험을 망치더라도 나는 나를 여전히 사랑할 것이고, 좌절을 딛고 일어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산책에서 돌아와 플래너에 이렇게 썼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만약 감당할 수 없는 패닉이 와도, 그냥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고 오자. 그날의 일은 그날의 나에게 맡기고, 나는 미래의 나를 믿고 응원하자.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윤동주 시인의 시 한 소절 같았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눈물로 눈앞이 흐릿한 가운데, 다시 상담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라는 배가 항구를 떠나온 후 드디어 내가 찾고자 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으로 내 안에 자기 신뢰라는 씨앗을 심어주신 선생님에게 감사했고,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자랑하고 싶었다. “선생님, 저 청새치를 봤어요.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자존감은 조건부가 될 수 없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준다고 해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공부를 못하고 돈을 못 벌어도 친구가 한 명도 없어도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만큼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내 편이 돼 주어야 한다. 나에게 나는 ‘원 앤 온리’이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은 나에게 나를 믿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자체로 나를 아끼는 과정이었다. 사실 10회의 심리상담이 나의 모든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준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모임 등 사회적인 상황에서 긴장하는 편이다. 얼마 전 적성시험을 치르고 왔을 때도 옆자리 사람이 다리를 떨지 않을지 불안한 마음에 약간의 고생을 했다. 하지만 변한 것도 있다. 걱정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 자신이 그것에 대처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새로 만난 사람과 어색할 땐 천천히 알아가며 친해지면 되고, 친구와 싸웠을 땐 대화로 풀면 된다. 대화의 기술은 이제부터 더 배워가면 된다. 또 시험장에서 옆자리 사람이 다리를 떨면 죄송하지만 조금만 조심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면 된다. 만에 하나, 걱정하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생길 것이다. 유지하기 어려운 관계라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면 되고,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치거나 다른 길로 가면 된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 미래가 아니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여기까지가 심리상담을 계기로 이뤄낸 나의 작은 성장 기록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을 당시의 나보다 더 깊은 아픔과 어려움을 견디고 계시는 독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런다고 내가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드시는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10회의 짧은 개인 상담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방향의 전환이었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비관으로부터, 자기 신뢰라는 불과 몇 도의 방향전환을 이루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라도 여정이 길어질수록 도달하게 되는 목적지는 크게 바뀌게 된다. 얕거나 깊은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이 아주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뇌피셜 Q&A>

에브리타임 우울증 게시판 등에서 심리상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읽고 ‘뇌피셜’로 예상질문을 추려 답변해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는 전문가도 아니고 심리상담을 받아 본 경험도 많지 않다. 나의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만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Q.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개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A. 학부 혹은 대학원 재학생이어야 한다. 휴학생 중에서도 개인 상담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다. 금전적 여유가 없지만 개인 상담이 꼭 필요한 경우 학교 심리상담센터 외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심리상담을 고려해볼 수 있다. ‘청년마음건강 지원사업’은 만 19세-34세 청년을 대상으로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가 심리상담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유형에 따라 회당 6천 원 혹은 7천 원의 개인부담금을 내면 10회의 개인상담을 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상 거주지의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 신청해야 한다. 또, 각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하면 무료로 몇 회 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관련 사업 혹은 기관에 연계해주기도 한다. 다만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경우 도움이 되었다는 후기도 있는 반면 상담사의 말에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는 후기도 존재하니 고민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Q. 증상이 정신과에 다닐 정도는 아닌데 심리상담을 받아도 될까?


A. 심리상담은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10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기에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용하면 된다.


Q. 이미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까?


A. 정신과 상담은 의학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정신과 상담은 길어야 30분, 평균적으로는 10분 이하였다. 그리고 주로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증상은 어떤지, 약의 효과는 어떤지 등이다. 반면 심리상담은 그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원인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1년 남짓 정신과를 다녔고, 그때로부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등학교 때의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리적인 증상은 가라앉았으나 그 증상을 일으킨 심리적인 요인은 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심리상담이 이 응어리를 풀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이 없거나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과정을 무사히 겪어내는 데에 심리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심리상담을 받아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악화되면 어떡하나.


A. 글을 쓰면서 학교 심리상담센터 후기를 비롯해 많은 후기를 찾아보았다. 너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 한편,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상담받는 동안은 너무 좋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느끼거나, 상담자에게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또 10회의 상담횟수는 차도를 실감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럴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큰 기대는 버리고 나를 위해서 그냥 한 번 해본다는 생각으로 가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또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우울, 불안, 강박, 공황 등 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담만으로 호전될 수 없다. 꼭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시기를 바란다.


Q. 심리상담을 잘 받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그날 상담받은 내용을 짧게나마 기록해두면 좋을 것 같다. 다음번 상담을 갈 때 도움이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어보아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미리 어떤 고민을 이야기할지 정해두면 주어진 시간 안에 원하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부담은 갖지 말자. 여력이 된다면 기록을 해두면 좋지만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심리상담을 가는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는 동안 내담자 본인의 마음이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담에 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기고자 제이

yonseij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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