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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Sep 23. 2022

<132호> Q.

수습편집위원 사의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A : 같은 댄스팀 사람이었고 사는 곳이 되게 가까웠어요. 매일 서울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까 집까지 오는 지하철에서 자주 이야기 하게 되고 연습날 외에도 직접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 하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생긴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연습날 9시까지 서울 연습실에 도착해야 했을 때도 아침 일찍 데리러 가고 일정이 있어도 늦게라도 집 근처로 가서 막차 끊긴 시간에 택시 타고 집 들어오고... 결국 헤어지긴 했지만 만나는 동안은 남부럽지 않게 행복했고 즐거웠어요.


B : 첫 만남에 호감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볼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다가 고백도 했었는데, 차이고 안 좋게 끝나서 요즘은 연락도 안 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솔직히 그냥 흔한 이야기 같지만 저한테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C : 교실에 아침 일찍 도착한 날에 자습을 하다 누가 갑자기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거에요. 너무 불쾌해서 바로 돌아보았는데, 그게 어떤 친구가 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직후,  불쾌하던 마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눈녹듯이 사라진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그 때 자각했는데 그 강렬한 경험이 아직까지도 가장 강한 기억으로 박혀있습니다. 


D : 음…그런 친구들 있잖아요. 운동 잘 하고 잘생겨서 그 시절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던 친구. 어릴 때긴 하지만 그 때만큼 누군가를 설레하면서 좋아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전 굉장히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어서 말을 걸어보진 못했는데 학원을 같이 다녀서 덕분에 학원 가는 걸 꽤나 좋아했습니다.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다. 상대방의 외모, 성격, 태도, 능력 어쩌면 그 사람과의 특별한 계기 등. 특별한 이유 없이도 상대방이 자신의 세상에서 선명해지는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내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선명해져도 어쩔 수 없이 애만 먹는 미련한 모습들조차 이내 받아들이곤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감정이 아닐까. 그러니 이 감정을 대하는 것은 누구나 서툴다. 우리 4명은 능숙한 줄 알았으나 결국엔 서툴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리석어서 사랑스럽고, 그만큼 예뻐서 안타깝기도 했던 이야기들. 많은 이들이 한 번쯤 공감할 법한 그때 그시절의 사랑 이야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공개하자면, 3명 중 한 명은 글쓴이 본인이고 이성애자이다. 3명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의 퀴어에 해당한다. 이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한’ 이야기는 여전히 찾지 못할 것이다. 이 중에서 이성을 좋아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보겠는가.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여러 작품들에 동성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브로맨스’ 등으로 따로 표기하며 작품 홍보를 하고, 이에 대한 장르도 따로 생겨났다. 수요도 많으니 음지에만 머물던 ‘퀴어(Queer)’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요즘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7월 17일에는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퀴어 퍼레이드가 개최되어 퀴어들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관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온전히 따뜻한 관심만을 가지지 못하는 그들은 스스로 수면에 올라온 것이 아닐지라도 수많은 혐오와 차별에 맞닥뜨린다. “정상이 아니야.” 보편적인 것이 정상인가. ‘난 네 취향 존중해.’, ‘난 그런 거 상관없어. 이해해.’ 존중과 이해가 필요한가. 많은 이들이 지금껏 퀴어를 보고, 들은 것 이외에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을 많이 마주쳐 왔을 것이다. 모르고, 혹은 모른 척 하고 지나쳐 왔을 뿐.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나 아직 그들은 물에 잠겨있다. 그래서 ‘퀴어(Queer)’. 기묘하고 괴상하다는 의미의 단어로 묶인 사람들을 만났다. 이 글은 영화도, 드라마도, 문학도, 그저 하나의 작품이 될 깜냥도 되지 못하니 나는 단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할 뿐이다.

  

Q.ueer


‘퀴어(Queer)’ 기묘하고 괴상한.


2020년 7월 말, 네이버가 성별 카테고리에 남자·여자 외에 "선택 안 함"을 추가했다. 카카오는 2017년 7월부터 성별을 의무가 아닌 선택적으로 입력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미국의 항공업계 ‘에어라인스 포 아메리카(A4A)’는 2024년까지 항공권을 예약할 때 성별란에 성별 중립적 표현인 ‘X’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생물학적인 성(性)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性)을 고려한 움직임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性)은 두 가지로 먼저 분류된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생물학적 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성별이다. 공항이나 문서에서 요구하는 성(性), SEX는 이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XX, XY의 염색체 둘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 XXY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성체와는 다른 성향을 가졌기에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인터섹스(INTERSEX), 생물학적 성소수자이다. 


사회적인 성(性), 젠더(GENDER)는 성정체성을 포함한다. 성정체성이란 본인이 생각했을 때의 성을 말한다. 내가 타고난 생물학적인 성과는 상관없이 나의 생각에 따라 성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이 동일한 경우를 ‘시스젠더’, 동일하지 않은 경우를 ‘트렌스젠더’ 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바이젠더, 본인의 성 정체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에이젠더 등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성 지향성이란 무엇일까. 성 지향성이란 생물학적, 사회적인 것과는 별개의 개념으로서, 말 그대로 어떠한 성별에 끌리는지를 의미한다.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이성애자,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동성애자. 양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양성애자와, 어떠한 성별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 그리고 성별이 아닌 그 사람 자체에게 끌리는 범성애자가 퀴어의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무엇을 지향하는데 자신의 정체성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본인은 생물학적 남성이고 사회적인 성정체성 또한 남성이라고 할지라도 남성에게 끌릴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성애자, 시스젠더들에게 그들은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낯설기에 외롭고, 외로운 만큼 강하게 싸워나가는 그들에게 물었다.


나의 퀴어 이야기



Q. 성정체성 혹은 성지향성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어렸을 때부터 이성만을 연애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요.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설레는 사람이 저와 같은 성별일 뿐이고, 그게 제가 그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 어떠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B : 고등학생 때, 묘하게 호감이 간 사람이 동성이었는데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자 내가 로맨스 감정으로 바라봤던, 과한 호감을 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동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후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C: 어렸을 때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이성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 퀴어의 개념을 접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동성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동성들의 목록이 쭉 떠오르더라고요. 그 때 ‘아, 나는 양성애자구나.’라고 정체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Q. 그때 어떤 생각 혹은 느낌이 드셨나요?


A :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내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동성을 만난다는 것이 특별히 새롭다거나 색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B :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이성의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보니 이성적 호감보다는 특정 부분만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팬심이나 멀리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 진짜 잘해주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들은 전부 동성이었는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거죠.


C :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성인 친구들에게 갖는 마음을 우정으로 한정지어야 했던 무의미한 노력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설레고 좋았어요.


Q. 자신의 성정체성 혹은 성지향성에 대해서 주변인에게 알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 있으시다면 어떻게, 그때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 없으시다면, 그리고 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 친한 친구 몇 명에게 알린 적이 있어요. 다행히도 제 주변에서는 저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놀라기는 해도 크게 혐오감을 보이는 친구는 없었어요. 다들 ‘아 그렇구나’ 하면서 이해해줬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커밍아웃은 한 친구한테 평소 대화하는 것처럼 ‘나 여자친구 있어.’ 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 친구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예민한 부분이니까 네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소한 배려가 되게 고마웠고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B : 친구랑 만나서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 난 여자가 좋아.” 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내 주변에도 그런 애들이 많다면서(미국에서 지내는 친구였습니다.) 별 말 없이 넘어갔어요. 또 한 명은 “나…사실 레즈비언이야.” 라고 말했더니 “오~ 신기하다. 난 누구 좋아해본 적 없어서 말야.” 라고 대답하며 쿨하게 넘어갔죠.


C : 친한 친구들에게 알려 본 적이 있어요. 내가 좋아했던 친구의 이름을 물어 그대로 대답해 주었는데, 동성인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 주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의 성향을 보고 문제삼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알려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반대에 부딪힌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공개적으로 굳이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코로나 19의 방역지침이 점차 완화되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자신의 일상생활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기에 돌연듯 등장한 새로운 감염병, 원숭이 두창이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킬 만했다. 그리고 하나의 조사결과가 공개되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6월 15일 사이 42개국에서 확인된 2103건의 원숭이두창 감염 사례 중 99%가 0세에서 65세 사이 남성의 감염 사례이며 주로 동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이라는 것이다.(WHO, 2022) 재작년 코로나 19를 게이바와 연관지었던 기사 하나로 코로나19가 게이들이 퍼뜨린 전염병이 되었던 것처럼, 결국 원숭이 두창 또한 게이들이 퍼뜨린 것이라는 루머가 공공연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WHO에 보고되지 않은 사례건수가 보고된 감염 사례 건수보다 훨씬 많아 실제로 남성 동성애자와 질병 확산 간의 인과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퀴어들은 또다시 사람들의 원망어린 눈빛을 받아들여야 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혐오가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전부는 아니었다. 10년 전,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었고 이는 지극히 이성애를 기준으로 내린 정의였다. 그러던 2012년 어느 대학생 5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으로 사랑의 사전적 정의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다. 사랑의 대상에 성소수자를 포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잠시 받아들여지는 듯 하더니 이내 실패로 돌아갔다. 기독교계 등 일부 개신교 단체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며 거센 불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을 주고받는  ‘어떤 상대’는 다시 ‘남녀’의 틀에 갇혀야 했다. 2014년 조선일보에는 광주시 인권헌장 중 동성애와 관련된 조항인 제12조 “모든 시민은......성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자신의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를 개정해달라는 전면광고가 실렸다.  인권헌장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유발하는 동성애 관련 조항을 싣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출처 :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22년 7월 17일, 휘황찬란한 무지개색 깃발들과 개성 넘치는 사람들. 쏟아지는 인파와 행진. 3년만의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였다. ‘다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뭉친 이들은 동질감 속에서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바로 옆에 존재했으나 무지개색 깃발은 계속 흔들렸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는 올해 퀴어퍼레이드에 사용되었던 슬로건이다. 이미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뒤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꿈 꾸어야 할 테지만 무지개가 뜨기에 현실의 나날은 기약없는 흐림이다. 

노골적인 혐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퀴어로 살아가는 사회


Q.지금껏 퀴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느낀 혐오나 차별의 시선이 있으신가요?   


A :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제가 퀴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제 앞에서 동성애자들이 이해가 안 된다 이상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또래 중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없어서 혐오나 차별을 느낀 적이 많지는 않은데, 기성세대를 이야기 해 보자면, 연애하고 있는 상대의 어머니께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자 친구 어머니께서 우연히 저와 연애 중인 것을 알게 되셨고 제 여자 친구에게 ‘레즈비언이냐 더럽다.’ 라는 말과 ‘그년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는 등의 말을 하시는 걸 들었어요. 현재까지도 저의 호칭은 ‘그년’이고… 그냥 어린시절의 방황이니 시간이 지나면 남자 친구를 만들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 여자 친구에게 계속 강요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러한 시선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지난달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갔을 때 어떤 중년 남성 분이 남자들끼리 항문으로 관계를 하고 여자들끼리 젖가슴을 빨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냐며 퍼레이드 입구 앞 신호등에서 외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네요…


B : 농담의 느낌이 강하게 “나는 여자가 좋아!”라고 말하니까 기겁하면서 더럽다고 말했던 친구의 기억이 나네요. 농담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여전히 퀴어에 대한 시선은 더럽구나 생각했습니다.


C : 거의 밝히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혐오나 차별의 시선을 제가 직접 받아본 경험이 잘 떠오르진 않네요. 혐오나 차별은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때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날 떠보듯 부모님께 “내가 퀴어라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았는데 “가능하다면 아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퀴어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저의 인생에 대한 걱정을 해 주신 것 같지만 그 사실이 조금 슬펐습니다. 자유롭게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싶을 뿐인데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Q.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 ‘남자를 안 만나 봐서(혹은 못 만나 봐서) 여자를 만나는 거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많아요. 그냥 여자가 좋아서 여자를 만나는 거지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 게 무슨 근거가 있나 싶네요. 또 남자 역할, 여자 역할 나누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동성끼리 연애를 하는데 어떻게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생길까요. 동성인 친구에게 받은 ‘너 그럼 나도 좋아하니?’ 라는 질문. 저도 취향이 있고 눈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 줬음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숏컷이라고 다 레즈라고 생각하는 것 정도.


B :  전 오해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오해할 사람은 퀴어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C : 퀴어를 너무 먼 존재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주변에는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많은 퀴어분들이 계시고, 실제로도 별다를 게 없을 거에요!


Q. 이러한 혐오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들을 이해해 달라는 소리는 안 해요. 그저 제 성정체성을 남들에게 숨기고 싶지 않고 그에 따른 차별을 받고 싶지 않을 뿐이죠. 하지만 이해가 안 된다고 혐오하고 차별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개인의 취향이 다를 뿐인데 주류의 잣대를 가져다 대고 약간이라도 다르면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거나 이성애를 강요하는 것. 성소수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B: 어차피 겉은 똑같은 사람인데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왜 그렇게 다들 싫어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괴상할 정도로 정상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너무나도 이상한 것 같아요. 브로맨스나 워맨스에서 나오는 케미는 좋아하면서 동성애자는 정작 싫어하는 점이 너무 괴리감 느껴져요.


C : 혐오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내가 알던, 내가 살던 세상이 맞나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혐오자들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좁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러한 혐오에 대한 자신의 자세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 사실 저도 차별이나 혐오가 두려워서 그에 크게  반하는 행동은 하지 못해요. 그냥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 몇 번 참여하는 게 다인 거 같아요.


B : 주변에서 퀴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의도치 않은 혐오를 내비칠때 은근슬쩍 정정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C : 글쎄요, 일단 함께 분노하는 것 같아요. 퀴어 관련 유튜브나 매체를 보면서 위로를 얻고 마음을 다시 굳세게 다잡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가 그들을 로맨스로 묶을 때.


 1990년대, 퀴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험악했다. 교정의 대상이자 질병으로 , 이들이 불건전한 사회악인 것처럼 취급했다. 그러던 2000년, 배우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시작으로 퀴어, 특히 동성애의 존재가 미디어에도 드러났으나, 이후 그의 방송활동 중단은 당시 사회가 바라보는 ‘퀴어’의 위치를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이들을 드러내고자한 수많은 매체들은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꾸준했다. <왕의 남자>(2005)를 시작으로 <아가씨>(2006), <킬 유어 달링>(201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퀴어작품이 되었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에서도 퀴어의 소재가 등장했다. ‘메리 퀴어(2022)’는 성소수자 커플 세  쌍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성소수자 커플들의 일상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꾸준하게 시청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결과 어떤 사람들은 미디어 속의 그들에게 설레기 시작했고, 설렘은 관심이 되어 호감으로 번지기도 했다. 미디어의 흐름이 변했다는 것. 퀴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아닐지라도 동성인 등장인물들을 엮어 홍보하는 것이 광고수단이 되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시상식의 커플상에는 언제부턴가 동성 커플도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퀴어’가 점점 더 미디어 세상에 녹아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 많은 OTT 플랫폼에서 ‘퀴어’는 로맨스의 틀에 갇힌 하나의 장르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애자의 사랑은 굳이 로맨스장르가 아니더라도 액션, 공포, 가족, 코미디 등으로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말이다. 로맨스가 없는 곳에 그들이 등장할 자리는 없고, 그들이 하는 로맨스마저도 ‘퀴어’라는 장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로맨스 마저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낸 것이 아니라면? 미디어가 그들을 로맨스로 묶을 때,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몇 번의 타협을 보았을까. 퀴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에 퀴어인 당사자들을 공감하고 있을까. BL이나 GL만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캐릭터성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 마냥 고착화된 유형과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합쳐져 당연하다는 듯이 소비된다. 미디어에 퀴어들이 많이 등장하며 그들의 존재를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것은 선한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디어는 ‘신선하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소재’라는 허울좋은 핑계에 포장해 입맛대로 노출시킨 것은 아닐까. 이런 미디어 속의 ‘퀴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차별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괜히 그들의 사랑이 더 야해 보이고 더 위험해 보이는 착각을 한다. 우리는 사적의 영역인 그들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도 별 다를 것 없는 사랑을 한다. 


내가 고민했던 이면성, 그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퀴어가 보는 퀴어  



Q. 퀴어가 등장하는 작품(이하 퀴어작품)을 보면서 느낀 차별이나 혐오의 요소들이 있으셨나요?(있었다면 어느 부분에서)


A : 영화 빌로우 허 에서 굳이 여성상 남성상을 나누자면 달라스는 남성상이 강한 지붕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트럭을 몰고 다니는 셔츠와 바지를 즐겨 입는 여성, 재스민은 여성상이 강한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진 원피스를 즐겨 입는 여성으로 나와요. 영화 속에서 둘이 관계를 할 때도 클럽에 있던 달라스가 관계를 위해서 바지를 내렸더니 바지 속에서 페니반(남성 성기모양의 성인용품)이 나오기도 해요. 이 모든 등장인물 설정과 장면들이 레즈비언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나누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쾌했어요.


B : 퀴어가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성끼리 사랑하는 것만이 옳다는 것과, 이성과의 교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많이 보였습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자주 봐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C : 특히 BL 소설이나 만화에서 퀴어가 등장할 때 굉장히 작위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고착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 퀴어작품에서는 퀴어가 정말로 ‘장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퀴어 문화의 요소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퀴어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있는 현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편견 없는 세상을 위하는 취지에서는 좋은 것 같아요. 다만 정말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있고 개개인마다 취향, 연애 스타일 등이 분명 다를 텐데, 약간 카테고리별로 일반화 시키는 느낌도 받고 있어요.


B : 퀴어의 존재가 많이 드러나야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 : 좋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퀴어의 존재를 알고 나서야 정체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알려질수록 사람들이 더 그 존재를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퀴어로 재정체화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당연하게 등장하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좋아하는 퀴어작품이 있으신가요?(그 이유와 함께)


A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퀴어 작품이다 라고 하기 보다는 정말 두 소년의 첫사랑을 다룬 절절한 사랑 영화에요. 당시 동성애 혐오가 심했던 대만의 시대상도 잘 담고 있고 그 상황 속에서 방황하는 두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되게 인상 깊었어요.


B : ‘안녕, 로즈가든(도쿠타 페파코)’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190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인 두 여성의 이야기예요. 두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그 당시 레즈비언에 대한 시선도 자세하게 묘사했어요. 두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뿐만 아니라 작가가 당시 배경에 대해 조사를 열심히 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여성 작가의 이름에서 따오는 등 신경을 쓴 티가 나 좋았습니다.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유자키 사카오미)’라는 만화는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깨닫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예요. 일본 내 여성 차별도 함께 다루는 등 현실감이 있고 몰입하기 좋았어요. 


C :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퀴어작품을 좋아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서부터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낭만적으로 잘 담아낸 것 같아 좋았어요.


Q. 별로였던 퀴어작품이 있으신가요?(그 이유와 함께)


A : 빌로우 허, 앞에 말했던 것 같은데 이유는 똑같아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바라보는 여성상과 남성상을 구분하고 강요하는 느낌.


B : 전 딱히 생각나는 작품이 없네요. 


C : 저도요.


인터뷰를 정리하며.


여전히 사람들은 ‘성(性)’에 무지하고 ‘SEX’만을 기억한다. 여전히 그들을 상처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미디어는 그들을 로맨스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다. 이런 문제들을 패기있게 지적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글을 기획할 때 가장 큰 관건은 인터뷰이를 구하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처럼 사람들이 구해지지 않았다. 본문 세 개를 다 쓰고도 인터뷰이를 구하지 못해서 주제를 바꾸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나도 나름대로 활발하게 물어보고 다녔다. 그러나 누구는 금기라도 물어본 듯이 얼굴을 찡그렸고,  누구는 자신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말했고, 심지어 누구는 추측만 하고 있으니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대체 무엇으로 추측을 했을까). 그제서야 나도 깨달았다. ‘퀴어’를 알긴 아는데, 알지 못했다.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무엇을 통해 퀴어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나처럼 그들이 어디있는지 몰라 다가갈 수 없는 이들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지금껏 숱하게 옆을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없다’라고 정의 내린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퀴어의 세상에 다가간다. 그렇기에 내 글은 직접 만난 이들과의 정리본이어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세 사람을 통해 배운 것처럼.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세상이 좁았다는 것을. ‘우리’가 어색하지 않을 날을 고대한다.


보편적인 것들이 언제나 보편적일 수만은 없고, 반대로 소수가 언제나 소수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 세기의 시간동안 수 많은 예상을 뒤엎었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설명되는 일들을 기록에 남겼다. 이 과정 속에서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가 소수가 되는 역사를 반복했다. 어떤 일들은 남들보다 힘이 셌던 존재들이. 어떤 일들은 남들보다 유난히 머리가 좋았던 존재들이. 어떤 일들은 당시 사회에서 외면당하던 존재들이. 끊임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넓혀온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결국 하나의 ‘우리’로 남아야 한다. 좁은 나의 세상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나 넓은 세상,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그저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퀴어(Queer). 기묘하고 괴상한. 그 이름만큼이나 이상하지 않은 우리들이기에.


어설픈 인터뷰에 진지하게 답변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낯선 저의 인터뷰를 받아들여준 시작부터, 글의 완성까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별별기자단 김민지] 성지향성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공식블로그>, 2021.05.24.

 “[별별기자단 김민지] 성정체성이 뭐야?”, <국가인권위원회공식블로그>, 2021.05.13.

남·여·동의 안함..포털 등 가입때 '성별 선택지' 늘었다.”, <머니투데이>, 2022.06.30.,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22062923020795875&type=outlink&ref=https%3A%2F%2Fwww.google.com, (2022.08.02).

 “美항공사들, 티켓 예약 시 제3의 성별 'X' 표기 도입”, <머니투데이>, 2022.07.04.,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22070409484018569&type=outlink&ref=https%3A%2F%2Fwww.google.com,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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