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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134호> 취미열전 II

편집위원 데어, 사의

by 연세편집위원회
연세 134호 썸네일_페이지_6.png 살구색 배경 위에 찢어진 종이가 가운데 위치해 있다. 종이의 윗부분에는 크라프트지 질감의 테이프가 붙어 있고, 종이 가운데에는 청록색으로 '취미열전 II'가 적혀 있다.

편집위원 데어 auda9180@gmail.com

나는 올해로 5년째, 취미로 필사를 한다. 필사라고 하면 서점에 꽂힌 필사용 책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마음에 드는 글을 여기저기서 골라와 베껴서 공책에 모아두는 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문구와 노래 가사를 공책이나 교과서 여백, 텅 빈 한국사 모의고사 시험지에 끄적이던 것은 오래된 습관이지만, 본격적으로 '필사'라는 단어 아래 필사를 한 것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단편소설인데, 그 결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12페이지 정도의 초단편소설이니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려요) 하지만 그런 기억은 생각보다 잊기 쉬우니까,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게 공책에 적어두자고 생각했다. 이 글을 남겨두어야지, 내 손과 눈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남겨두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 생각들. 그래서 단순하게도 그 소설을 전부 베껴 썼다. 그게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20230130_210347.jpg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사실 이 취미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 노력이 필요했다. 한국의 공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고등학생의 세상이 취미보다는 공부를 중심을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필사를 하는 데 들이는 시간 자체가 소중해졌고, 들인 시간과 노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시각적으로, 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좋았다. 내 글씨로, 내 펜으로, 내 공책에 적고 나면 어쩐지 글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은 느낌. 손에 쥐어질 수 있는 현현(顯現). 그런 면에서 디지털 필사는 손에 쥐어지는 결과물이 없고, 지나치게 휘리릭 적히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모바일 타자에 아직도 서툴러 오타를 자주 내는데, 그렇다고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자니 책 한 권을 읽는 데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일 아닌가. 디지털 시대에 굳이 손으로 필사하겠다고 펜을 쥐고 나면, 이제 필요한 것은 글이다. 그럼 글을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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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나희덕의 '천장호에서'. 가운데 정지용의 '겨울'. 오른쪽 신형철의 '무정한 신 아래에서 사랑을 발명하다'.

어떤 글을 필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주 단순히, 그냥 그 글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발음이 입에서 굴러가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 필사하는 글이 있다. 예를 들어 나희덕 시인의 <천장호에서>는 "쩡 쩡 날아오른다/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라고 읽었을 때, 쉼표로 끊어지는 흐름이 마음에 든다. '우박' 대신 '누뤼'라는 방언을 쓴 정지용의 <겨울>도 마찬가지이다. "비ㅅ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에서 반복되는 유음이 혀 위에서, 정말 우박이 구르듯이 움직인다. 시가 아니라 수필이나 칼럼을 필사할 때에는 글의 소리보다는 글의 내용과 형식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읽으라는 조언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막연하게 '좋다'가 아니라 왜 좋은지를 기억하고 적용하려면 글을 꼼꼼히 읽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필사하면서 글을 읽으면 글을 읽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출 수 있다. 그러면 글의 단어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기가 좀 더 쉬워진다. 어떤 단어와 어떤 문장이 글을 만들어내는지 관찰하고,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단어를 생각해 냈는지 톺아보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 쓰다 보면 의도적으로 천천히 생각하고, 그 생각의 여백에서 다른 생각이 흘러나오게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신형철 평론가의 <무정한 신 아래에서 사랑을 발명하다>는 이영광의 시 '사랑의 발명'에 관한 글이다.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 거기 누워 죽겠다고 말하는 "너"에게 놀라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속으로 무심코 저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도 놀라버렸을지 모를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내 앞에서 엉망으로 취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라도 곁에 없으면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말로 조용히 바꿔보았을 한 사람 말이다. 같은 말을 하는 듯한 문장이 서너 번 반복된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반복적이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장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매우 촘촘히 붙어 있어 비슷한 울림을 주는 것이다. 시의 구절을 보고 화자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말을, 딱 알맞은 수식어와 호흡으로 손질해 낸 부분이다. 이런 글을 필사하면서 더 배우고 싶다. 어떤 글에 어느 정도의 톤을 가져가야 하는지, 쓰고 싶은 주제에 어울리는 문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 언젠가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도 골랐다면 바로 공책을 펼쳐 글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없는 것이 필사의 장점이지만, 굳이 주의할 점을 찾는다면 당장 써야 하는 글이 없을 때가 좋다. 좋은 글을 읽으면 곧장 영향받은 티가 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는 남의 글이 끼어드는 것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글이 뚝뚝 끊겨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마감에서 해방되면 공책을 펼치곤 한다. 길게 썼지만 요약하자면, 난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관련된 것들을 야금야금 수집하는데, 그게 이번에는 글이 된 것뿐이다. 명확하고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 느낌이 좋아서. 그게 나의 취미다.






편집위원 사의 sauisai.2022@gmail.com


과정에 대한 기록. 동기는 이러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걸스 파이터’, ‘스트릿 맨 파이터’까지 대한민국에 스트릿 댄스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특정한 장르를 타지 않고 자유로운 동작 속에서 안무를 창작하는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 영상들이 유행을 타며 유튜브 숏츠로, 인스타 릴스로 우후죽순 올라온다. 하지만 내가 춤을 시작한 이유는 이런 유행 때문이 아니었다.

- 매사가 조용하고 차분함.
- 변화를 즐기지 않고 반복되는 활동을 선호함.
- 주변의 시선을 신경 씀.
- 소심함.

‘매사 조용하고 차분’해왔던 난 새내기가 되자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다. 어떻게든 지금까지의 내성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야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빛나는 대학생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댄스 동아리는 ‘활발하고 빛나는 나’라는 꿈을 이루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장이었다. 정리하자면 난 ‘춤’이 아니라 ‘댄스 동아리’를 원했다.

장르는 힙합으로 결정했다. 당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동아리 공연 영상이 힙합이었기 때문이다. 힙합은 시대 순으로 올드스쿨, 미들스쿨, 뉴스쿨로 구분한다. 올드스쿨 힙합이 가장 오래된 스타일인 것이다. 당시 동아리는 올드스쿨을 선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장르는 올드스쿨 힙합이 되었다.


온전한 나를 애정하는 과정은

그리하여 바야흐로 2022년, 뚝딱이는 춤을 추기로 한 것이다. 동아리 선배 A의 3개월 기본기 강좌를 통해 힙합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고, 그 3개월로 1년 동안 총 4번의 공연, 한 개의 배틀에 참여했다. 난 천재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항상 ‘난 왜 못하지.’ 하는 초라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센터 파트에서 곧잘 끼를 부리는 사람들만큼 무대에서 여유로울 수 없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본래의 소심했던 성격이 괜한 노력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번 느꼈던 또 다른 기분은 따스함이었다. 같이 연습하며 공연을 준비하던 이들의 조언과 도움은 내가 춤 자체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유대감이 당시의 1년을 살게 해 주었다는 데에도 부정할 마음이 없다. 나의 부족함과 실수에 인내를 가지고 매사 도와주었던 그들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사랑스러움.

이들은 ‘춤’이라는 관심사 하나만으로 모여있었다. (물론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외의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겠지만 중심은 ‘춤’일 것이고 시작도 ‘춤’이었을테니.) 성격도, 스타일도 다 달랐던 이들은 신기하게도 춤을 출 때만큼은 여나 할 것 없이 진지했다. 덕분에 난 내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녹아있다는 생동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동작 하나하나로 이어지는 경험들은 온전한 나를 인정하고 내 세상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내가 꿈꾸던 성격이 아닌 내가 살아오던 성격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춤은 내가 애정하는 나와, 내가 애정하는 그들 간의 교류 행위가 되었다.


나의 속도를 찾는 과정은

사람들끼리 둥글게 모여 한 명씩 가운데로 나와 프리스타일 춤을 추면서 노는 것을 ‘잼’이라 한다. 내가 하는 프리스타일은 별 볼 일 없었다. 말 그대로 정말 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하지 마, 그냥 음악을 듣고 움직여!”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떻게 움직이라는 말인가. 음악은 당연히 듣고 있다. 속이 상했던 난 한 댄서 분의 프리스타일 수업을 찾아갔다. 수업에서 들은 첫마디는 ‘결국 춤은 혼자 춥니다.’라는 말이었다.

내 세상이 무너졌다. 처음으로 내가 춤을 좋아하는 것인지, 춤을 같이 추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난 선배들처럼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춤을 췄고, 추다 보니 생기는 동료들이 좋았다. 그래서 더 잘 추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던 것이었다. 그러니 혼자 춤을 춰야 한다면 딱히 춤을 추고 싶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나의 프리 영상에는 여전히 못하는 나만 있을 뿐이었다. 못하는 나를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는 건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동료들과 함께하며 내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싫었다. 동기들은 얼마 안 있어 클래스를 같이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에겐 칭찬과 박수가 따라다녔다. 의기소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옆에서 너무 잘 추고 칭찬을 들으니까 전 속상해요. 이런 기분을 이기고 앞에 나가서 춤추는 게 힘들어요.’라고 털어놓은 날, 그들은 웃었다. 자신들의 처음과 똑 닮았다는 이유로.

누구나 겪는 과정의 처음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쳐갔던 과정이다. 난 그들을 닮고 싶었나 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결과만 닮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닮으려고 노력해야겠구나 깨달았다. ‘느리면 그냥 느리게 하면 돼.’ 그날의 프리스타일 수업에서 내가 들은 피드백 중 하나이다. 음악의 속도가 느리다면 그냥 느리게 추되, 괜히 동작으로 더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느린 내 속도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


나의 과정을 권해보자면

춤, 꽤 괜찮은 취미이다. 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춤이 재미있어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내 성격, 재능, 체형 등등등… 취미 하나 시작하는데 뭘 그렇게 따질 필요도 없지 않은가. 원래 다 재밌어 보여서 시작하는 것이겠지. 준비물도 별 거 없다. 춤출 때 입을 옷과 신발만 있으면 끝난다. 굳이 더 말하자면 춤을 추는 것은 결국 몸을 쓰고 남에게 멋있는 동작들을 보이는 과정이니 이를 위한 ‘근력’ 정도는 필요하겠다.

돌아와서 2023년이다. 아직도 뚝딱이는 춤을 추긴 한다. 활발하고, 시선을 끌고, 끼를 부리고.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빛났던 2022년이었다. 올해는 모든 뚝딱이들의 희망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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