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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Apr 15. 2023

<134호> 빈칸 채우기

수습편집위원 빈칸

흰 바탕에 원고지 양식이 깔려 있다. 빨간색 줄로 이루어진 원고지 칸마다 글의 제목인 '빈칸 채우기'가 한 글자씩 들어가 있다.


6년을 토론했고, 7년째 글을 쓰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말하고 글 쓰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경험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간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괴로움, 보람과 두려움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시작은 어쩌다

처음부터 토론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 친구가 토론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겁이 나서 곧바로 거절했다.

“다른 거면 모르겠는데 토론은 좀 무서워서….”

그렇게 말해 놓고 토론을 6년을 했다. 이 어이없는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려면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새 학기가 막 시작해서 동아리 신입 부원 모집이 한창일 때였다. 영어신문부부터 시작해서 영화관람부, 도서부, 과학실험부, 배드민턴부, 그 외에도 수많은 동아리. 1층부터 3층까지 계단을 따라 줄줄이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그 하고많은 포스터 중에서 나는 갑자기 토론동아리의 포스터에 꽂혔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심장이 콩닥거리는 게 느껴졌다.

엄청난 기대와 함께 토론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사실 토론동아리 활동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거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미뤄지기 일쑤였다. 모두가 매번 토론을 열심히 준비해 오는 건 아니었기에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족했다. 그렇지만 매주 혹은 격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토론을 준비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한 가지 이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정확한 표현을 볼 때, 혹은 정교한 논리를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접근 방법을 발견하면 ‘이 문제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니!’하고 놀랐다. 그럴 때마다 내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때부터 토론이 각별해졌다. 토론이라면 정말로 뭐든지 했다. 토론동아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쭉 계속했다. 반에서는 칠판 옆 게시판에 논제를 적어두고 포스트잇 토론을 주최했다. 2학년 때는 학생회장 후보자의 정책토론을 도왔고, 3학년 때는 정책검증토론을 준비해서 후보자들에게 정책 질의를 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나갔던 교내토론대회에서 우승했고, MVP 상도 받았다. 교외토론대회에도 두어 번 나갔다. 대상을 받았고, 전국대회에 진출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토론으로 가득했다.



중립도 권력

고등학교 때 수두룩이 토론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 보려고 한다. 때는 고등학교 교내토론대회. 논제는 <적극적 안락사, 허용해야 한다>였다. 심사위원으로 오신 분 중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분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토론을 모두 듣고 나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 주셨고, 토론자 한 명 한 명에게 본인의 실제 입장은 어떤지를 물어보셨다. 자리에 앉아 있던 토론자 중 몇몇은 본인이 중립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분은 “여러분, 중립도 권력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면서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중립도 권력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의제에 대해 손쉽게 중립을 선언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자신이 그 의제에 뛰어들어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심각한 병에 걸려 오랜 시간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면 어떨까? 고통이 끝나면 낙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고통은 죽음이 오기 전까지 지속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 쉽게 중립을 말할 수 있을까? 뒤집어 생각해봐도 중립을 선언하기는 어렵다. 돈이 없어서 치료가 아닌 죽음이라는 선택지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그렇다. 만약 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갈라놓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중립을 외칠 수는 없을 것이다.

중립도 권력이라는 그 말을 들은 후로, 나에게 토론은 ‘간단하게 중립을 선언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내 원래 입장과 같은 편에 서든 다른 편에 서든, 내 생각과 감정 아래에 깔린 전제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따지고 드는 일이 토론이었다. 이 말을 계속해서 되새기면서, 나는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든지, “무슨 말이든 다 일리가 있어”라는 식으로 편리하게 논쟁을 중단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물론 서로 간의 마찰을 줄이는 데에는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합의할 수 있는 장을 좁힐 뿐이었다. 토론을 계속하면서,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옳다면 어떤 부분이 옳고 그르다면 어떤 부분이 그른지 판단하고 발화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과정을 포기하면 결국 공론장에 남는 건 목소리 큰 사람의 말뿐이라는 것도.



대학과 토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에 가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과 더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중립도 권력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그 심사위원분의 지분이 꽤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분이 아니었더라도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바라본 대학은 환상의 공간에 가까웠다. 왜, 대학생에 대한 그런 이미지 같은 것들 있지 않나.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선 두꺼운 책 두세 권 정도 뒤져 가며 서로의 의견을 펼치는 모습 같은 거 말이다.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나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코로나 학번’이었다.

2020년의 대학 생활이 나에게 남긴 건 이수학점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토론 수업을 신청해서 들어보기도 했는데,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수업 시간에 다른 사람의 의견 한마디 듣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웠다. 교수님이 수강생들을 소회의실에 배정해 주시면, 30초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어… 저희 자기소개부터 할까요?”가 나오고 그 이후부터는 질문이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토론에 대한 목마름이 가실 리가. 아, 나 정말 더 잘 알고 싶은데. 자료 준비 열심히 해서 즉석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싶은데. 내 의견도 네 의견도 아닌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던 차에 학교 토론학회의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학회에선 매주 토론 세션을 진행한다고 했고, 토론자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주의 토론 주제에 대한 의견을 담은 글을 쓴다길래 이거다 싶었다.

학회에서는 정말 하고 싶은 만큼 토론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 한 달간 진행됐던 신입회원 토론 교육 기간에는 정말로 눈 뜨자마자 토론 생각을 시작해서 눈 감을 때까지 토론 생각만 했다. 학회에서 활동한 첫 학기에 나는 가장 많이 토론한 학회원으로 상을 받았다. 외부 토론대회에도 두 번 나갔다. 그다음 학기에는 회장직을 맡았다. 그 학기에도 토론을 가장 많이 해서 상을 받았다. 정규 세션에서 진행되는 토론은 물론이고 토론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한 모의 토론까지 합치면 아마 일 년간 못해도 서른 번은 토론했을 거다. 그러니 일 년간의 토론학회 활동이 끝났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일 년밖에 안 했다고? 너 그거 이삼 년은 한 거 아니었어?”라는 질문이 돌아오기도 했고, “와, 너 그동안 거의 토생토사였잖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만큼 토론에 빠져 살았다.



토론의 가치

한 해 동안 학회에서 토론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요약하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나는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 되어보기’의 방법을 배웠다. 토론에서는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토론장에서는 내가 서 있는 그 위치, 그 자리에서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배정된 입장에 맞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어느 위치에 서서 누구를 위해 싸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토론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성매매 합법화 찬성 입장에서 토론하게 되면서, 나는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그제야 들여다볼 수 있었다. 65세 정년 연장과 관련한 토론을 하면서는, 내가 아직 사회초년생조차 되지 못한 대학생이라 알지 못했던 노후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었다. UN이 아프가니스탄에 인도적 군사개입을 개시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서는, 내 몸과 마음이 한국에 있어서 잘 몰랐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상황을 최소한 헤아려볼 수는 있게 되었다.

둘째, 말의 힘을 알게 됐다. 고백하건대, 토론을 준비하면서 허무감을 느꼈던 적도 많았다. 몇 주씩 시간을 쪼개 가며 토론을 준비하다 보면 ‘내가 뭐 하러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그 순간에만 스쳐 지나갈 뿐이고 사람들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토론자로서든 청중으로서든 토론장에 나가면 생각이 달라졌다. 바위처럼 꿈쩍 않을 것 같던 생각도 기우뚱할 때가 있었다. 몇 주간 공들여 준비한 토론이 끝나고 누군가가 “나 원래는 반대 입장이었는데, 오늘 토론 듣고 나니까 찬성도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더라. 앞으로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토론을 여러 번 하면서 얻은 가장 값진 깨달음은 ‘말을 통해 정말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토론의 한계

토론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하지만 나는 이제 토론하지 않는다. 대신 토론이라는 말하기의 방식을 멀거니 지켜보곤 한다. 예전에는 토론이라는 방식 안에서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만,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서 토론이라는 게 뭔지를 곱씹는다.

토론에는 1) 상대방의 반론을 선명하게 의식하면서 2)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첫째로, 일반적인 말하기나 글쓰기와는 다르게 토론에는 늘 ‘내 말에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가 전제된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인 반박과 질문이 습관이 됐다. 옛날 만화에서 주인공의 머리 양옆에 있는 천사와 악마가 서로 싸우는 것처럼, 찬성과 반대의 두 자아가 계속해서 싸우는 것이다. 사실 둘이면 다행이다. 토론 주제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찬성도 반대도 아닌 여러 관점이 자꾸 나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처음에는 내 의견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누구의 의견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다. 명확한 입장을 가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며 비판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둘째로, 토론은 청중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인 활동이다. 홍승은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상 속 독자에게 언어를 다듬으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집필 노동과 눈앞의 청중에게 짧은 시간 안에 맥락을 소거하지 않으며 말하는 노동에는 각기 다른 힘이 쓰인다.” 물론 내가 하는 말과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리고 읽힐지를 염두에 두는 일은 연습이 됐다. 그렇지만 가상의 청중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나에게 토론은 분명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는 일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사회적 통념의 눈치를 보게 됐다. 어떻게 하면 가상의 청중에게 내가 하는 말을 논리적인 비약이나 모순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토론을 자꾸 하면 할수록, 어렵고 복잡할지언정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말 대신 다소 극단적이지만 논리적인 흠이 없는 말 중 후자를 선택하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의 나에게 토론은 연극 무대 위에서 하는 칼싸움 같다. 토론장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철저하게 논박할 수 있던 건 결국 이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를 적대하는 건 오로지 찬성과 반대라는 가면을 썼을 때뿐이라는 걸 아니까. 상대가 나에게 들이미는 칼이 진짜로 나를 상처입히긴 어렵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맞붙어볼 수 있었던 거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극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면 후련함 대신 허탈함이 느껴졌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관객을 떠올리며 무대 위에서 쓸 가면을 열심히 다듬었지만, 정작 가면 속 내 얼굴은 살피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제 나는 토론이 매우 특수한 소통의 방식임을 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토론장에 올릴 수 있는 건 아니고, 모든 사람이 토론자 혹은 청중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토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다루고 싶었다. 그게 글쓰기였다.



시작은 또다시 어쩌다

여기까지 읽으면 토론하느라 진이 다 빠진 다음에야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글쓰기도 토론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선생님께서는 교과서나 학습지 진도를 나가는 대신 글쓰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우리는 함께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었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나니 글쓰기가 삶을 치유하는 마법 같았다. 글을 잘 쓰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구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첫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는 글쓰기는 힘겨웠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걸 글로 옮겨내기가 어려웠다. “~해서 즐거웠고 ~해서 슬펐으며 ~해서 나빴다”는 식의 뻔한 표현들이 가득했다. 그런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현학적인 단어들을 덧붙였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썩 잘 쓰는 편이 아닌가 보다, 글쓰기가 내 업이 될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별다른 뜻을 두지 않던 때에 K를 알게 됐다. K는 나보다 한 살 위 언니였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진 우리는 블로그 서로이웃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에 시간이 잠깐 떠서 K의 블로그에 들어가 글 몇 개를 읽었는데, 나에게는 그 기억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K의 글 중 몇몇은 이런 식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할 시점에는 다 힘들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머리가 복잡하다고 고백했다. 그래 놓고는 문장을 하나씩 이어갈 때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뭔지, 왜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건지, 그래서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를 짚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는 자기가 왜 힘들어했던 건지 이제 알았다면서 시원해했다. 글을 쓰고 나니까 문제가 해결됐다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치 셀프 상담을 하는 것 같았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글을 더 자유자재로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지러운 하루를 정돈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마련하는 데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어떤 사건과 경험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잘못 뜯은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자꾸만 의식될 때면 글을 썼다.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웠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마땅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때로는 이럴 시간에 매운 걸 먹든 산책하러 다녀오든 그것도 아니면 그냥 하던 일이나 마저 하든,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될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길게 지속되진 않을지언정 확실한 몰입의 순간을 제공했다. 손톱을 바짝 깎고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쓰는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가볍게 타자 치는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글을 다 써내고 나면 비로소 문제를 훌훌 털어내고 완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목에 걸린 가시가 쑥 내려간 듯이, 손톱깎이로 딱 알맞게 거스러미를 정리한 듯이. 일인칭으로만 반복 재현되던 경험들은 글을 통해 삼인칭 시점으로 끄집어내지면서 새로운 면들을 얻었다. 토론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글이 주는 몰입과 해방은 포기할 수 없었다.



예리하게 벼른 창으로 정확한 곳에 찔러넣기

토론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글쓰기가 들어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언어의 원형은 토론이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나에게 언어는 줄곧 싸움의 도구였다는 뜻이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논쟁論爭—즉 말로 싸우는 것이니까. 나는 잘 싸우는 말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고, 잘 싸우는 건 ‘예리하게 벼른 창으로 정확한 곳에 찔러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는 창을 뾰족하게 다듬는 것이고, 둘째는 찔러야 할 정확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이다.

첫 번째 요건은 뾰족한 창, 바로 온전한 언어화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있던 것들을 정확하고 분명한 단어들로 잡아채는 문장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행운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 맡는 냄새가 무엇인지 아리송할 때 누군가가 딱 알아맞혀 줬을 때의 후련함.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때의 개운함. 안개가 걷히고 저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일 때 느껴지는 상쾌함.

가령 이런 글들을 읽을 때 그랬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
오래전 당신과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자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 병원 어르신들을 보면 가끔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그 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 김애란, 『바깥은 여름』   

  

그들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기에, 나는 어려운 건 잘 모르겠으나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고 일상에 널린 참괴와 환멸을 용의주도하게 피해가며 자신의 삶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뒤 아이를 최소한 넷은 낳아 길러서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 적 없어 보이는 사람이 쓰는 반듯한 세계관의 이야기를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동문서답으로 때워서 (후략)
-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이런 글은 한 번 읽으면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분명 느꼈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던 것들을 기민하게 잡아채서 내 눈앞에 보여줄 때, 그 순간 혼자 안고만 있던 응어리들은 내가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곤 했다.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파도를 벗어나 단단한 배 위에 올라온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누적하다 보니 한 가지 소망이 생겼다. 나의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느낀 바를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목구멍에 걸려 있는 그 말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말과 글을 갈고닦고 싶었다.     

두 번째 요건은 찔러야 할 곳이 어디인지 똑바로 아는 것, 즉 정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정확한 상대와 싸우는 말보다는 약자성을 공격하는 말들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니던 고등학교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몸이나 정신이 아픈 학생이 아니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온라인 강의실의 토론 게시판에는 동성애라는 왜곡된 성인식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를 묻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그런 말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앞의 안내문을 떼어 달라는 글을 썼다. 학교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과 정신장애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이런 비유를 활용하는 건 장애인 비하라고 적었다. 토론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을 보고는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님에도 치료를 논하는 것은 엄연한 혐오 발언이라고, 전공수업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나는 언어를 통해 뾰족하고 단단한 존재감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날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언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칼을 잘 갈아서 정확한 곳을 찌르는 일, 혹은 그것보다 덜 호전적인 방법이 있다면 가시를 바짝 세워서 ‘여기도 사람 있소’ 하고 밝히는 일이 언어의 효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서

창과 방패

혹자는 내 생각에 대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네가 쥐고 있는 그 창이 항상 옳은 지점만 찌를 수 있을 것 같냐고. 너 혼자 잘나서 네가 하는 말은 다 맞을 것 같냐고.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타인의 창에 내 아픈 구석을 찔려보고 알았다. 나름대로 예리하게 다듬어서 필요한 부분만 찔렀다던 그 창에 움푹 찔려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온 말하기의 방식은 늘 창이었기에, 나는 더 많이 알아서 더 예리한 창을 만들고 더 정확한 지점을 찔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최소한 반격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K에게도 이런 얘기를 했었다. 셀프 상담을 잘하는 만큼 다른 사람 상담에도 능하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라면 곧잘 들어주는 K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벼리고 벼려서 정말 날카로운 창이 되고 싶어. 그러자 K는 자신은 방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마음에 굵직하게 남았다. 창은 기본값이었고 나는 ‘벼리고 벼려서 정말로 날카로운’에 강조점을 두고 말했던 거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K는 방패가 되고 싶다고 말한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행위로서, 무지한 상대를 자각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그리고 그런 글들은 대체로 부드럽더라고. K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글이 꼭 창의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성과 상대성

K의 말을 들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 몇 번 더 있었다. 토론학회 활동을 끝마치고 오랜만에 같은 과 H를 만났을 때였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더 많이 토론하고 더 좋은 토론을 하면 사회적인 합의에 다다라서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자 H는 웃으면서 “당신 드디어 하버마스를 탈출했구나!”라고 말했다. 이어 H는 소통은 다름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얘기했다. 같은 입장이라면 애초에 싸워가며 소통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도 말했다.

‘드디어’ 하버마스를 ‘탈출’했다는 그 말이 강렬하게 남아서 생각날 때마다 곱씹곤 했다. 하버마스는 시민들의 의사소통적 힘이야말로 고도로 분화된 현대사회를 통합하는 열쇠라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통을 잘하기만 하면 모두의 마음에 드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토론을 아무리 잘해도 듣는 사람의 생각이 완벽하게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구나, 혹은 내 의견이 꼭 다 좋기만 한 건 아니었네, 정도의 감상만 남겨도 무척 준수한 거였다. 하물며 한 사람의 의견을 바꾸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공동체가 단 하나의 완벽한 의견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H가 그 말을 해준 이후로, 나는 다름을 인식하는 과정을 불편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됐다. 소통이 필요한 건 결국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지난 학기에 들었던 한 강의는 매주 동문 분들께서 오셔서 이야기를 나눠 주시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중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대표를 맡고 계신 이산 동문께서는 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 상담을 진행해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더 많이 아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그런데 상담을 계속해나가다 보니, 내가 겪은 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성폭력 경험과 다른 사람의 성폭력 경험을 겹쳐보는 게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나는 모른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문제에 천천히 접근하는, 혹은 아예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다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주셨는데, 이 말이 울림이 컸다. 나는 이제껏 ‘아는 게 힘’과 ‘모르는 게 약’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고르던 사람이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더 많이 아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이 하나둘씩 바뀌었다. 언어는 꼭 창의 형태일 필요가 없었다. 꼭 유일하고 절대적인 결론에 이를 필요는 없었다. 더 좋은 결말에 이르기 위해 꼭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틀리는 글쓰기

나는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라는 드라마 <송곳>의 대사를 수시로 떠올린다.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책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한다고 해도, 나는 어떤 풍경들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내 주변의 풍경들만 지나치게 크게 볼 수밖에 없을 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나 옳은 걸 수도 있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제아무리 언어를 가다듬고 발화의 때와 장소를 가린다고 해도 늘 맞는 말, 좋은 말만 할 수는 없다. 나는 해봐야 1인분의 생각까지만 할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구체적으로, 성의 있게 틀리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빈칸을 채우고, 미련 없이 채운 칸을 고쳐나가면서 말이다. 나의 빈칸은 즉 나의 무지다.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무지가 몰라도 되는 권력의 위계 안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그 무지는 투명한 지적 공백이 아니라 ‘몰라도 되는 힘’으로 가득차 있다”는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말을 되새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채운 칸, 즉 내가 알고 있는 것들도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은 아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에 의한 것임을 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1인분의 생각을 바지런히 말과 글로써 표현하는 일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다’와 ‘모른다’, ‘맞다’와 ‘틀리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다 보면 그게 무엇이든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원고지에 글을 쓰든 노트에 수학 문제를 풀든, 연필로 써놓고 틀리면 박박 지워버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볼펜으로 쓴 다음 두 줄 긋고 만다. 내가 했던 실수를 부정하는 대신 기억하고 싶다. 내가 했던 실수의 궤적을 새기고, 다른 사람들이 했던 실수의 궤적을 가다듬으면서 글쓰기를 계속해나가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그 실수를 기록하면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나아가 나는 이러한 실수의 기록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 언젠가 블로그에 노키즈존을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용을 베풀면 좋겠다는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친구 J는 이런 댓글을 달아줬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어릴 때 울보로 그렇게나 유명했던 아이였는데 모르는 아기가 우는 건 어찌나 싫던지…. 이전의 나를 생각지 못하고 그 순간의 편안함만 추구했던 나는 얼마나 작고 작은 인간이었는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구만!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더 관용을 가졌으면 좋겠네. 이전의 나를 달래주듯!

그 댓글과 같은 말들이 나에게는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통해 변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 나는 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지도 안다.



참고문헌

 홍승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서울: 어크로스, 2020)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서울: 메멘토, 2015)

 김애란, 바깥은 여름, (파주: 문학동네, 2017)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서울: 문학동네, 2018)

 장명학.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과 토의민주주의.” 한국정치연구 12, 2 (2003): 1-35.

 송곳, 에피소드 3, “3화”, 연출 김석윤, 각본 이남규, 원작 최규석, 2015.10.31. 방영, JTBC

 위근우,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서울: 시대의창, 2019)



수습편집위원 빈칸

avecy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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